백아영은 3일 연속 쉬지 않고 다니며 수많은 가문을 방문했지만 협조하겠다고 대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처음에 의욕이 넘치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타격으로 인해 점점 기가 죽었다.밤하늘 아래 2층 주택을 바라보며 허름하면서도 스산한 분위기에 그녀는 가슴이 쓰리고 어깨가 축 처졌다.이내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그러나 잠시 후 애써 눈물을 참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우울한 표정을 지우고 기운을 차리고 나서 안으로 들어섰다.괜히 속상함을 드러냈다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걱정을 사게 할 수는 없었다.“할아버지, 아빠, 오늘은 그래도 성과가 좀 있어요. 제가...”말을 마치기도 전에 도우미가 피가 가득 담긴 대야를 들고 선우소훈의 방에서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와 동시에 방안에서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할아버지!”백아영은 당황한 나머지 급히 뛰어갔다. 이내 침대에 엎드린 채 피를 토하고 있는 선우소훈을 발견했는데, 창백한 얼굴은 핏기가 전혀 없고 뼈만 앙상했다.그녀를 본 선우소훈은 황급히 입을 가리고 핏자국을 지우려고 했다.“아영아, 할아버지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이게 어딜 봐서 괜찮다는 거지?백아영은 서둘러 침대로 다가가 그의 맥박을 짚었고, 안색이 확 어두워졌다.“갑자기 병세가 왜 더 심해졌죠?”그럴 리가 없었다. 병세는 이미 안정되게 했기에 약만 제때 먹으면...‘약?’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백아영은 아직 마시지도 못한 한약을 들고 살펴보더니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갔다.“이건 제가 처방해 드린 약이 아니잖아요.”병세가 심한 선우소훈은 거의 약에 의존하여 연명하는 셈이다. 비록 독한 약이 대부분이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했다. 그러나 지금 마시는 약은 별 효능이 없는 일반 약초였다.더는 숨기기 힘든 탓에 온유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남원에서 약을 판매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전부 우리가 직접 산에서 캔 약초야.”백아영은 벼락을 맞은 듯싶었다.머릿속으로는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는 심유미의 말이
다만 백아영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내 정원에 서서 칠흑같이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먹구름이 잔뜩 끼어 별조차 자취를 감췄는데, 빛이란 찾아보기 힘들었다.결국 그녀의 기분도 괜스레 울적하고 속상했다.“아영 씨.”이도하가 옆에서 다가오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앞으로도 협력할 사람을 찾을 거야?”그는 지난 며칠 동안 백아영이 파트너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 다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또한, 그녀가 난관에 부딪혀 실패한 사실도 알고 있었다.백아영은 시도해볼 만한 사람은 거의 다 찾아가 봤다. 비록 희망이 보이지 않아 앞길이 캄캄하지만, 감옥에 있는 선우경진을 떠올리자 굳게 마음먹고 이를 악물었다.“네!”어쨌거나 그녀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이도하는 한숨을 내쉬었다.“남원 사람은 이미 이성준이라고 하면 지레 겁먹고 감히 적수가 될 생각조차 안 할 거야. 하지만 성씨 일가를 찾아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성씨 일가도 한때 남원에서 재벌가에 속했지만, 몇 년 전에 이미 해외로 이민 가서 산업을 이전했기에 남원에 남아 있는 자본이 많지 않았다.심지어 이씨 가문과 아무런 원한이나 갈등이 없었다.“성씨 일가를 이끄는 사람이 교체되었는데 성무열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어. 내일 귀국한다고 하던데?”이는 이도하가 최근에 입수한 소식이다.“자본을 남원으로 다시 이전할 의향이 있다고 했어. 그렇게 되면 이성준과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를 이룰 거야.”만약 성무열과 손을 잡는다면 백아영은 이씨 가문과 맞설 자본을 확보하게 된다.백아영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내일 찾아가 볼게요!”성무열의 귀국이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탓에 백아영은 정말 어렵게 제이드 펜션 디너쇼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알아냈다.디너쇼에서 그를 만나 협력에 대해 언급하는 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그러나 선우 일가는 파산했기에 백아영의 신분으로 제이드 펜션 디너쇼에 참석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결국 웨이터인 척하고 몰래 들어갈 수밖
시선이 마주치려는 찰나 백아영이 잽싸게 쪼그려 앉았고, 사람 벽 사이로 몸을 숨겼다.이성준의 눈에는 길길이 날뛰며 욕설을 퍼붓는 여자만 들어왔다.비록 명문가 자제이지만, 품격이나 아량은 눈 씻고 찾아볼 수가 없고 갑질하는 모습이 눈꼴 사나웠다.그는 무심한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심유미도 이런 일에 관심 없는지라 이성준의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다.“성준 씨, 성무열이 도착했다고 하는데 찾으러 가실까요?”성무열이 귀국해서 사업을 확장할 의향이 있는 이상 이씨 가문의 라이벌이 되기 마련이다. 만약 백아영과 먼저 접촉하게 된다면 선우 일가에게 재기하는 기회를 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선우 일가를 어떻게 무너뜨렸데, 심유미와 이영철이 어찌 이런 상황을 용납할 리가 있겠는가?따라서 오늘 밤의 목표는 성무열에게 협력을 제안하는 것이다.이 바닥에서는 오로지 이익만 존재할 뿐, 영원한 적은 없다.하락세를 걷는 선우 일가와 막강한 이씨 가문 사이에서 성무열도 어떤 선택을 내릴지 뻔할 테니까.이성준의 안색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비록 이영철의 강요에 못 이겨 떠밀려 오긴 했지만, 성무열과 협력하는 걸 반대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해야만 백아영은 철저히 단념하고 남원을 떠나 현재의 분쟁과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그는 더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한편, 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은 백아영을 보며 여자는 기고만장한 얼굴로 다리를 들어 올렸는데, 신발이 백아영의 얼굴에 닿을 지경이었다.“닦아!”이를 본 주변의 손님들은 다소 측은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아무도 선뜻 나서서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백아영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사람들 다리 사이로 이성준과 심유미의 발이 다른 방향으로 점점 멀어져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그제야 조마조마하던 가슴을 쓸어내렸고, 한편으로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씁쓸함이 몰려왔다.그녀는 심호흡하더니 애써 마음을 다스리고 손을 뻗어 바닥에 떨어진 디저트 박스를 주웠다.이때, 분노에 가득 찬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백아영과 성무열의 악연은 중학교 때부터 시작되었다.당시 성씨 일가는 남원에서 이씨 가문과 1, 2위를 다투는 최고의 명문가에 속했다. 권세가 하늘을 찌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성씨 일가의 도련님으로서 성무열은 늘 친구들 사이에서 ‘왕’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왕’ 노릇에 질린 그는 문득 평범한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로 했다. 심지어 심이안으로 이름도 바꾸고 마치 일반 중산층 집안 자녀인 척 ‘평민’의 삶을 체험했다.우월한 외모에 성격까지 튀어서 금세 학교의 인기남으로 등극했다.때마침 성무열에게 또 한 번의 무료함이 찾아온 순간, 어느 날 농구 경기에서 멋지게 3점 슛을 성공시키는 그의 모습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수많은 여학생 사이로 고개도 돌리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백아영을 발견했다.머리를 높게 묶고 순백색 원피스를 입은 채 책을 끌어안은 청순하면서도 얌전한 모습은 무리 지어 소리 지르는 여학생 사이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다.그녀에게 관심이 생긴 성무열은 일부러 접근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매력이 아무리 넘쳐도, 얼굴이 아무리 잘생겨도, 농구를 아무리 잘해도, 스케이트보드를 아무리 잘 타도 결국은 그녀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심지어 공부나 방해하지 말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처음으로 좌절을 겪어본 성무열은 이런 철벽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승부욕이 자극받은 결과 백아영에 대한 ‘광적인 추구’가 시작되었다.청소년의 연애는 안 그래도 유치한데 성무열은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었다.그는 마치 밥 먹고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백아영의 관심을 끌려고 하루가 멀다 하게 그녀를 귀찮게 했다.머리를 잡아당기고, 책상에 물을 붓고, 숙제까지 훔쳤다.백아영의 평화로운 학교생활은 금세 엉망진창이 되었고,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과 다름없었다.나중에 그가 갑자기 전학 갔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에 무려 3일 동안 자축했고, 그 뒤로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렸다.세월이 흘러 10년 뒤에 원수를 외나무다리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망나니
“재벌 집에서 각자의 이익을 위해 정략결혼 하는 가문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성무열의 말을 들은 백아영은 기가 찼다. 비록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자신이 원하는 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으려고 했다. 결혼, 감정 등은 그에게 고작 게임에 불과했다.“미안.”백아영은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난 이익을 위해 결혼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우리 집에서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야.”가치관이 다른 이상 이 협상은 결렬된 것과 다름없다.그러나 여태껏 가슴에 품은 여자를 위해 일부러 귀국까지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겠는가?“알았어, 알았어. 결혼이 싫으면 별수 없고, 요구를 낮추면 될 거 아니야?”이내 그윽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지그시 바라보며 추파를 던졌다.“2달 동안 내 여자친구가 되어줘. 혹시라도 그 전에 사랑에 빠진다면 나랑 결혼하고, 그래도 별 감정이 없으면 헤어져. 절대로 매달리지 않을 테니까.” 이는 백아영에게 아주 유리한 조건이다. 딱 2달만 참고 견디면 되지 않은가?다만...“나 좋아하는 사람 있어.”성무열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기에 전혀 고민거리가 안 되었다.그러나 이 제안을 승낙하는 순간 거짓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성무열은 피식 비웃었다.“이성준? 민우진? 둘 중 누구든 상관없어.”이내 백아영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더니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아영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 몰라? 2달이면 사랑에 빠지기 충분하지! 물론 실패한다고 해도 내 탓이니까 깔끔하게 인정할게.”자신감이 넘치는 성무열의 모습에 백아영은 할 말을 잃었다. 굳이 이성준 때문이 아니더라도 성무열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아영아, 난 오늘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와서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거야.”성무열은 기세등등하게 입꼬리를 올리고 낯익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만약
주변의 온도가 갑자기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성무열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이성준의 눈빛은 간담이 서늘할 지경이다.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죄책감을 느꼈지만, 나란히 서 있는 이성준과 심유미를 보자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미 갈라선 이상 더는 아무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굳이 따지자면 원수이자 적수일 텐데.그녀가 누구와 있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잠깐의 충격을 끝으로 심유미는 정신을 차리고 비아냥과 경멸이 가득한 표정으로 백아영을 바라보았다.“아영 씨가 선우 일가의 재기를 위해 선뜻 몸까지 팔아버릴 줄은 몰랐네요?”첫 만남에 연인 관계를 맺었다는 건 단지 겉모습에 끌려 대가를 필요로 한 거래일 뿐, 결코 사랑이 아니다.백아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즉시 반박하려는 순간 성무열과 2달 동안 사귀겠다는 약속이 떠올라 차마 말을 내뱉지는 못했다.비록 몸까지 팔면서 타락한 정도는 아니지만, 감정을 이용하여 거래를 한 건 사실이기에 괜히 떠벌려 봤자 본인만 난처할 것이다.성무열은 그녀를 지켜주기라도 하듯 어깨를 더욱 다정하게 끌어안았다.“말에 가시가 잔뜩 돋쳐 있네요? 유미 씨랑 성준 씨가 여기까지 찾아온 목적도 저를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하지만 포기하세요. 제가 귀국한 이유는 사실 아영 때문이거든요.”이내 고개를 돌려 애틋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우린 소꿉친구로서 한 번도 서로를 잊은 적이 없죠. 결국 돌고 돌아 만나게 될 운명인데 당신들 따위가 끼어들 틈이 어디 있겠어요? 내가 있는 한 아영을 괴롭히는 건 꿈도 꾸지 마세요. 그동안 우리 아영이가 받았던 수모와 모욕은 제가 대신 일일이 갚아 줄 거예요!”백아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녀를 소꿉친구라고 칭하다니?어떻게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허튼소리를 할 수 있지?그러나 체면이 살아난 건 사실이다. 앞에 서 있는 심유미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화가 나서 이만 바득바득 갈았다.백아영과 성무열이 그런 인연이
“아영은 제 여자친구니까 괜히 집적거리지 말고 처신 잘하세요.”말을 마친 그는 백아영의 손을 잡고 억지로 깍지를 끼더니 이성준의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며 자랑했다.이성준은 허공에 멈춘 손으로 주먹을 꽉 쥐더니 핏줄이 불끈 튀어 올라왔고, 살기가 솟구쳤다....디너쇼가 끝난 뒤 제이드 펜션을 나선 심유미의 안색이 유난히 어두웠다.그녀는 이를 갈며 말했다.“성준 씨, 설마 이대로 포기하는 건 아니죠? 선우 일가와 성씨 일가가 손잡는 꼴을 마냥 지켜보기만 할 거예요?”이성준의 낯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온몸으로 냉기를 뿜어냈는데, 살아있는 빙산이 따로 없었다.또한, 말투는 딱딱하고 서늘하기만 했다.“협력 건에 대해 당신이랑 제이드 펜션까지 같이 가준다고만 했지, 협상이 결렬해도 나랑 상관없죠.”말을 마친 그는 심유미를 지나쳐서 차에 올라탔다.길가에 서서 멀어져 가는 마이바흐를 바라보던 심유미는 화가 나서 발만 동동 굴렀다.이성준은 단지 형식적으로 협조하는 척했다. 결국 일부러 눈감아 준 거랑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선우 일가와 성씨 일가의 협력으로 인해 그녀의 모든 계획이 틀어졌기에 얼른 수습해야만 했다.심유미는 서둘러 심은아에게 전화를 걸었다.비록 이성준은 분노가 차올라 성무열을 죽이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지만, 이성적으로 성무열과 선우 일가의 협력은 백아영에게 유리한 점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성씨 일가는 선우 일가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며 백아영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둘이 손을 잡는다고 해서 방해할 생각은 없지만...“위정아, 알아냈어?”이성준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운전하던 위정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족히 3초가 지나서야 힘겹게 입을 열었다.“백아영 씨와 성무열 씨는 중학교 동창인데, 당시 두 사람이... 확실히 연인 관계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학교 다닐 때 심이안이 백아영에게 집적거린 탓에 백아영은 성가시다고 여겼을지 몰라도 남이 보기에는 단지 연인의 장난에 불과했다.게다가 심이안은 워낙 제멋대로인지라
성무열은 사람 됨됨이가 부족할지라도 일 처리 하나는 끝내주었고 그날 밤 바로 선우 일가의 펜션을 산 후 가족 모두를 돌려보냈다.선우소훈과 온유성 앞에서는 예의 바른 사람인 척 공손한 태도를 보이는 그의 모습에 백아영은 소름이 돋았다.“선우 일가의 재산도 이틀 동안 회수될 거고 그러면 한약방은 다시 문을 열 수 있게 됩니다. 이번 사건이 선우 일가의 명예에 먹칠한 건 맞으니, 사업에도 치명타를 입을 겁니다. 곧바로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잠깐의 휴식을 취하면서 심씨 일가의 프로젝트를 빼앗는데 집중하는 걸 제안합니다. 강원의 약초원은 심씨 일가의 가장 큰 사업입니다. 이걸 빼앗는다면 무조건 혼란에 빠질 거고 그 틈을 노려 약점을 알아내면 승산있는 싸움입니다.”진지하고 논리정연하게 말한 그의 생각은 백아영이 세운 계획과 거의 맞아떨어졌고, 처음으로 성무열을 다시 보게 되었다.‘트집 잡고 돈만 많은 줄 알았는데 능력도 나쁘지는 않네.’병상에 누워있던 선우소훈은 머릿속으로 큰 그림을 그렸고 주름 가득한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좋은 생각이군! 아영이가 이번에 훌륭한 파트너를 만났구나! 그런데...”선우소훈이 걱정이 앞섰다.“왜 이렇게 도와주시는 거죠? 혹시 요구 사항이라도?”이익 없는 일에 나서는 건 사업가의 마인드에 어긋났기에 선우소훈은 백아영이 불평등한 계약을 제안받은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됐다.여자친구가 되는 조건으로 거래했다는 걸 알게 되면 병세가 더욱 심해질 선우소훈이 생각난 그녀는 무조건 이 일을 숨기기로 결정하고 돌아오기 전 성무열과 입을 맞췄다.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성무열을 바라보는 백아영과 달리 그의 두 눈에는 애틋함이 맴돌더니 곧이어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사람들 앞에서 백아영의 손을 잡았다!숨겨주기로 약속해 놓고 이렇게 배신하다니!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당황한 백아영은 손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성무열은 더 꽉 잡았다.“어르신,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저랑 아영이는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연인이었어요.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