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이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다!“아영 씨...”민우진은 쉰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아니죠?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사람이잖아요. 이 사람과 만나고 있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죠?”선우소훈과 온유성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민우진까지 나타나다니!그의 날카로운 질문에 백아영은 미쳐버릴 지경이었다.민우진을 바라보는 성무열의 눈빛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이성준, 민우진 모두 백아영한테 감정이 남아있네!’하루 만에 만난 두 명의 라이벌을 생각하며 성무열은 이참에 완벽하게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그는 입을 삐쭉 내밀더니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백아영을 바라봤다.“아영아, 나에 대해서 얘기했던 적 한 번도 없어? 우리 집은 내가 너 아니면 결혼 안 한다는 것까지 다 알고 있는데.”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성무열을 당장이라도 걷어차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저 째려볼 수밖에 없었다.온유성과 선우소훈이 지켜보고 있으니 백아영은 이를 악물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그때는 무열이가 떠났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고 큰 상처로 남았어요. 차마 언급할 수가...”“그래서 지금은 용서한 거예요?”민우진의 목소리에서는 그의 다급함이 느껴졌다.“그때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상황이니까... 이 사람 탓은 아니죠.”백아영은 이런 말을 하는 자신한테 역겨움을 느꼈다.그녀의 말에 민우진은 벼락을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고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동안 옆에서 지켜주고, 아껴주고 행여나 백아영이 겁먹지는 않을까 고백하는 것도 조심스러워하며 미뤘다.그러나 그가 지키고 기다린 세월은 첫사랑이 돌아온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첫사랑의 등장만으로 백아영이 흔들리다니, 지금 보니 민우진의 사랑과 기다림은 그저 우스갯거리에 불과했다.그는 용기를 내지 못하고 조심스러워하며 시간을 헛되이 보낸 자신을 원망했다.조금 더 일찍 마음을 표현했더라면...“아영이를 잘 챙겨주는 가장 친한 친구라고 들었어요.”사람들을 등진 채 민우진을 바라보고 있는 성무열의
“그동안 챙겨줘서 고맙다고 했지. 별말 안 했어.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나 봐.”성무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거짓말을 하더니 자연스레 백아영을 끌고 방으로 돌아갔다.“시간이 별로 없어. 이틀 후면 약초원 경매 프로젝트가 시작될 텐데 연구에 집중해야지.”그의 말에 백아영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잡생각마저 사라졌다.이번 경매에서 약초원을 입찰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했기에 백아영은 심씨 일가의 사업 프로젝트를 면밀히 파헤치기 시작했다.그렇게 잠을 자지도, 밥을 먹지도 않고 연구에 전념했다.다음날 성무열이 시건방지게 다가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를 힐끗 보더니 집중하고 있던 백아영을 방해했다.“데이트하러 가자.”백아영은 거절했다. 경매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 어찌 데이트할 수 있겠는가!“남자친구랑 데이트하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일인데 싫어? 이런 게 싫으면 나랑 자러 갈래?”기대감으로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진 백아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그래, 데이트 하자!”데이트라면 영화를 보거나 쇼핑하는 걸 생각했겠지만 성무열은 아니었다. 그는 백아영과 함께 클럽에 갔다!클럽은 그가 재밌다고 생각하는 장소 중의 하나였고 남녀 사이에 불꽃이 가장 빨리 튀는 곳이기에 백아영도 분명 좋아할 거라고 착각했다.“...”어차피 데이트해도 흔들릴 마음조차 없으니 백아영은 놀러 온 셈치고 즐기기로 했다.그 시각 이씨 가문의 본가.서재에서는 술 냄새가 진동했다.이성준 앞에는 술 몇 병이 놓여있었고 그는 소파에 몸을 기댄 채 깊은 우울감에 사로잡혀 있었다.백아영과 성무열이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줄곧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무기력함을 느꼈다.분노가 치밀어 올라도 이현무를 찾기 전까지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또 술 한잔을 마셨다.“사장님.”그때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들어온 위정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몇 초간 망설이다 용기 내어 말을 꺼냈다.“
그런데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커다란 손에 손목이 잡혔다.고개를 들자 눈앞에 나타난 이성준의 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차갑고 싸늘한 그의 표정에는 살기까지 맴돌아 험상궂었다.“주량이 안되면 게임 하지 말아야지?”그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꾸짖고 있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심장이 철렁 내려앉은 백아영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이성준을 바라봤다.“제 여자친구가 놀고 싶어 하든 말든 그건 성준 씨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 같은데요?”성무열은 백아영의 어깨를 감싸며 과시했고 그의 행동에 눈빛이 어두워진 이성준은 살벌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무열 씨가 남원에 돌아왔는데 당연히 제가 대접해야죠. 이 게임은 저랑 해요.”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성무열의 친구였지만 그들 역시도 이성준을 두려워하고 있었다.이성준과 진실 게임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올 거라고는 감히 상상할 엄두조차 못 냈다.게다가 살인을 저지를 법한 살벌한 분위기에 어찌 게임을 할 수 있겠는가?강현은 성무열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이만하고 끝내자.”‘데이트를 망쳤는데 이대로 끝낸다고? 꿈도 꾸지 마.’성무열은 이성준을 바라보며 야비한 웃음을 지었다.“좋아요. 모든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자신이 있다면 한번 놀아보죠.”자리에는 성무열의 사람들로 가득했기에 누가 봐도 이성준이 지는 상황이다.성무열은 데이트에 끼어든 이성준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고 싶었다!더 이상 단순한 게임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에 백아영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렸다.“무열아, 나 몸이 안 좋아. 집에 데려다줘.”백아영의 속셈을 모를 리 없었던 그는 기분이 언짢았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사랑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자기야, 조금만 기다려 줘. 내가 어떻게 이 게임에서 이기는지 보여줄게!”성무열은 이 자리에서 기필코 이성준을 무너뜨리고 싶었다.백아영이 계속하여 말을 이으려던 그때 이성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자들
기분 상한 이성준의 모습에 성무열은 마음속의 답답함이 조금 풀렸다.이성준을 이기는 건 힘들지만, 그의 부러움과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미친놈.’백아영은 마음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진실만 말하기로 약속해 놓고선 방금 말했던 모든 것들이 지어낸 허튼소리에 불과했다. 백아영은 그와 함께 눈을 본 적도, 눈사람을 만든 적도 없었다.눈 올 때마다 토끼보다 빠른 속도로 기숙사 건물로 뛰어갔던 사람이 성무열이었다!“진정성 있게 게임을 해야지.”백아영은 불만을 터뜨렸다.“나 진지해.”성무열은 백아영의 어깨를 감싸고선 그녀의 귓가에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말했다.“네가 그때 도망치지만 않았더라면 눈사람을 만들 수도 있었어.”“만들고 눈사람을 나한테 던지게?”그해 이튿날, 백아영이 아침 일찍 교실로 가던 중 성무열이 커다란 눈덩이를 든 채 그녀를 쫓아다니며 던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했고 그 일로 인해 눈덩이에 트라우마가 생겼다.순간 말문이 막힌 성무열은 행동마저 부자연스러웠다.그저 백아영을 놀리고 싶은 마음으로 눈싸움을 시작했던 건데 일방적인 ‘공격’으로 기억에 남을 줄은 몰랐다.클럽이 워낙 시끄러운 탓에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는 들리지 않았으나 입술이 귀에 닿으며 다정하게 귓속말하는 모습은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이를 본 이성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고 ‘쿵’하고 주사위를 테이블에 올려놓고선 이를 악물며 말했다.“계속해요.”이번 판은 성무열이 졌고 이성준이 공격할 차례였다.그러나 성무열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입가에 웃음을 띠며 물었다.“말해봐요. 성준 씨가 듣고 싶은 성씨 일가의 비밀이 뭔지.”어차피 헛소리로 대충 넘겨짚어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이 게임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 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더니 천천히 몇 마디를 내뱉었다.“팔굽혀펴기 500개.”“뭐라고요?”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성무열은 깜짝 놀랐다. 이건 체벌이었다!미치지 않는 이상 누가 팔굽혀펴기를 단숨에 500개
성무열은 백아영의 뒤통수를 손으로 감싸더니 동의없이 소파로 밀어 넣고선 강제로 키스하려고 했다.긴장한 백아영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남녀의 피지컬 차이 앞에선 소용없었다.성무열의 입술은 그녀와 점점 가까워졌다.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이성준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저한테 조커 카드가 있으니까 원하는 대로 바꿔도 되는 거죠? 저 사람이랑 키스해요.”이성준의 기다란 손가락은 옆에 있던 강현을 가리켰다.조커 카드는 게임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무적의 카드였다.처음에는 쓸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인내심의 마지노선에서 저울질하고 있는 성무열의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저, 저를요?”강현은 소파에 주저앉아 입을 가리며 방금 전 두 사람을 키스시키려고 했던 자신의 시건방진 행동을 원망했다. 자신이 놓은 덫에 스스로 빠지는 꼴이 되었다.성무열의 얼굴은 잔뜩 어두워졌다. 백아영과 달콤한 시간을 보낼 줄 알고 잔뜩 기뻐한 와중에 갑자기 남자랑 키스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성준 씨, 당신 미쳤어요?”이를 갈며 말하는 그의 모습에 이성준은 코웃음 쳤다.“겁나요?”그 세글자는 완벽하게 성무열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발로 테이블을 걷어찼다.“됐어요!”말을 마친 성무열은 바닥에 깨진 유리 조각을 밟으며 이성준을 향해 다가갔고 저녁 내내 겪었던 수모와 화를 참을수 없었던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이성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살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일촉즉발의 상황에 백아영은 심장이 마구 뛰었다. 그녀는 이성준이 지금 손을 쓰는 순간 성무열이 인사불성 될 정도로 크게 다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는 성무열의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이성준 역시 부상을 피할 수는 없다.어찌 됐든 두 사람이 싸우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백아영은 그들 사이를 가로막으며 성무열을 잡았다.“일단 진정해. 재미도 없는 이런 게임으로 왜 싸워. 우리 이제 집 가자. 응?”백아영의
백아영은 이해할 수 없었다.‘날 원망하고 있으며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건데?’예전 같으면 이런 이성준의 행동이 아무렇지 않았겠지만 서로 인연을 끊고 아무 관계도 아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러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이성준, 내가 누구랑 만나든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야.”상처로 가득한 두 사람 사이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백아영은 완전히 놓아버린 듯했다. 이성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그는 싸늘한 말투로 잔인한 말을 내뱉었다.“백아영, 착각하지 마. 너한테 미련이 남아서 헤어지라고 하는 줄 알아?”술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우리 할머니 죽인 빚도 갚지 못했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연애하는 거야?”두 눈이 휘둥그레진 백아영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고작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유로 헤어지라고 하다니! 복수에 눈이 멀었다고 해도 너무 터무니없는 경우다!“이성준, 난 할머니를 해친 적도 없고 너한테 빚진 것도 없어. 빚은 이씨 가문이 나한테 진 거지! 그리고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이런 말 하는 거야?”백아영은 짜증 내며 그를 밀어냈다.“오늘 밤 같은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어. 무열이랑 함께하기로 결정한 이상 헤어질 생각은 없어!”말을 마친 그녀는 차에 올라타 곧바로 자리를 떴다. 그녀는 이성준과 엮일수록 자신이 고통스럽다는 걸 알고 있었고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그는 멀어지는 백아영의 차를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솟구쳤지만, 내뿜을 수 없는 상황에 그저 속으로 삼켰다.고개를 돌려 성무열의 집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곧이어 이를 악문 채 간신히 한 글자씩 내뱉었다.“성무열 죽여버려.”운전석에 앉아있던 위정은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직접 그 말을 듣게 되자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이성준한테서 백아영을 빼앗아 갔다는 건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셈이었고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거나 다
백아영이 분주하게 입찰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하고 있던 그때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보통 이 시간에는 야식을 배달하는 아주머니가 찾아오기 일쑤였기에 그녀는 별생각 없이 말했다.“들어와요.”예상과 달리 심은아가 들어왔다.그녀는 향기로운 음식을 손에 든 채 테이블로 다가가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산책 중이었는데 아주머니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부탁하시더라고요. 시간도 늦었는데 왜 아직도 안 쉬고 계셨어요?”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백아영이 작성한 리스트를 향해 시선을 돌렸고 백아영은 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무의식적으로 서류를 가렸다.“고마워요. 이것만 정리하고 저도 쉴 거예요. 은아 씨는 잠이 안 와서 산책하고 있었어요?”심은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불룩 튀어나온 배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이 자식이 오늘 가만있지 않네요. 아영 씨, 먹으면서 해요.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심은아가 떠나자 방안은 다시 조용해졌다.백아영은 별생각 없이 야식을 먹으며 서류를 정리하는 데 전념했다.서재에서 나온 심은아는 조용한 곳을 찾아 전화를 걸었고 침착한 말투로 백아영이 요약했던 모든 내용을 알려줬다.“이번 경매에 모든 돈을 쏟아붓더라도 절대로 선우 일가에 뺏겨서는 안 돼. 돈이 부족하면 회장님한테서 빌려. 이럴 때 서로 도와야지. 백아영과 선우 일가를 공격하는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줄 거야. 그리고 변호사한테 연락해서 최대한 빨리 선우경진의 형을 선고하라고 해.”선우경진이 실형을 선고받은 게 대중에게 공개되면 성무열이 아무리 도와줘도 명예를 회복하고 정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명예가 실추된 가문은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인정되지 않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나 다름없었다.시간적 여유가 많았던 심씨 일가는 그들이 포기하고 처방전을 내놓을 때까지 버티고 있을 셈이었다!경매 시작 두 시간 전.이영철은 돈으로 심씨 일가의 경매를 도와야 한다며 이성준을 찾아왔다.성씨 일가도 이번 경매에 참여하니 오늘 밤은 눈을 뗄
경매장.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백아영과 성무열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심유미와 마주쳤고 그녀의 곁에는 이성준이 있었다.이곳은 약재 관련 경매장이기에 업계 관계자 외에는 참석한 사람이 없었다. 이런 곳에 이성준이 왔다는 건 누가 봐도 심유미를 도와주려는 게 뻔했다.백아영은 긴장한 듯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성씨 가문의 실력으로 충분히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성준의 등장으로 가능성이 희박해졌다.“아영 씨, 내가 가진 걸 빼앗아서 공격할 생각인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거예요.”심유미는 다정하게 이성준의 팔짱을 끼더니 득의양양하게 말을 이었다.“성씨 일가도 물론 강하지만 아직 복귀하지 못한 해외 기업에 불과하잖아요. 남원의 왕인 이씨 가문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을 텐데? 성준 씨가 이번에 저희를 도와주기로 했으니 아영 씨는 헛걸음하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생겼네요.”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자 백아영은 기분이 언짢았다.그때 성무열이 백아영의 어깨를 감싸더니 야비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그게 무슨 상관이죠? 어차피 경매는 돈 많은 사람이 이기는 싸움인데? 남원에 돌아오기 위해 자금을 몇십조 챙겨뒀는데 설마 이걸로 성준 씨를 못 이기겠어요?”수천억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아무리 큰 자본도 결국은 장식에 불과했다.그의 말에 심유미는 입이 파르르 떨렸다.“우열 씨, 큰소리치다가 망신당하는 게 두렵지도 않은가 보죠?”“그건 경매장에서 직접 확인해 보면 되겠네요.”무조건 이긴다는 자신감을 보인 성무열의 모습에 심유미는 마음이 조급해졌고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이성준을 바라보며 그에게서 조금의 위로라도 받고 싶었다.그러나 이성준의 싸늘한 시선은 줄곧 백아영의 어깨에 올려진 성무열의 손에 향했고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만 있다면 진작에 토막냈을 정도로 째려보고 있었다.성무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백아영을 끌어안으며 그를 도발했다.“성준 씨, 누가 돈이 더 많은지 붙어볼래요?”돈으로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