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영이 고개를 돌리자 바로 민우진을 발견했다.회색 정장을 입은 그는 우아한 젠틀맨이었다. 그는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했다.“행복하신 줄 알았는데.”오미란은 백채영만 예뻐해 주고 이성준은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게다가 생일 파티에서 백아영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민우진은 백아영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이성준까지 백채영의 존재를 허락했으니 백아영도 더는 두 사람이 알콩달콩한 척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명문 가문에서의 결혼 생활이란 다 이런 거 아니겠어요?”아무렇지 않아 하는 그녀를 보며 민우진은 마음이 아팠다.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녀가 침착하게 사람을 구하는 걸 본 순간부터 민우진은 단단히 그녀에게 빠져버렸다.하지만 그녀는 유부녀였다. 뿐만 아니라 이씨 가문의 사모님이었기 때문에 민우진은 자신의 마음을 꽁꽁 숨기고 멀리서 지켜봐야만 했다.민우진은 정장 재킷을 벗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백아영에게 걸쳐줬다.“아영 씨는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럴 자격 충분히 있어요.”그 말을 들은 백아영은 흠칫했다.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욕하고 아무 가치 없는 사람으로 비하해도 민우진만이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정말 따뜻한 사람이다.“우진 도련님, 고마워요.”백아영이 미소를 활짝 짓고는 정장 재킷을 벗었다.“그런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그녀는 말을 마치기도 전에 누군가의 싸늘한 눈빛이 느껴져 등골이 오싹했다.이성준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채 차가운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길쭉한 다리로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백아영은 삽시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졸라매는 것 같은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백아영, 그새를 못 참고 또 민우진을 꼬시고 있어?”그의 말에 백아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그녀가 변명하려던 참에 민우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젠틀하던 그도 안색이 점점 어두
이성준은 갑자기 멍해졌다. 그는 이성을 되찾고 빠르게 분노를 가라앉혔다. 하지만 두 사람의 주위는 냉기만 감돌았다.곧이어 이성준이 백아영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질투? 백아영,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설마 너 스스로를 내가 질투할 만큼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약속한 이 기간에 너는 그저 명의상 내 아내인 것이 아니라, 내 소유의 물건이나 다름없어. 그리고 난 다른 놈이 내 물건을 탐내는 걸 용납할 수 없어. 제대로 알아들었어?”이성준은 백아영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꽉 움켜쥐고 있던 그녀의 턱을 놓았다.“이번에는 작은 훈계로 끝났지만, 다음번에는 결코 쉽게 용서하지 않을 거야.”알고 보니 그에게 있어 백아영은 그저 하나의 소지품일 뿐이었다. 그의 날이 선 말은 순식간에 백아영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해만 쌓인 채, 불쾌한 기분으로 헤어졌다.이때 멀지 않은 곳의 어둠 속에서 백채영이 정색하며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방금 이성준과 백아영의 ‘다툼’ 을 그녀는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백아영을 대하는 이성준의 무정한 모습조차 그녀는 여전히 부러웠고 동시에 큰 위기감을 느꼈다. 어쨌든 이성준은 그녀에게 이와 같은 무자비한 모습조차 보여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는 백아영이 이성준의 주의를 끌려고 일부러 벌인 짓이라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년! 감히 내 남자를 꼬셔?’백채영은 순식간에 심기가 불편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눈빛마저 점차 악랄해졌다.생일 파티가 끝나자, 이성준은 곧장 가버렸다.백아영은 또 혼자 큰 저택에 남게 됐다. 그녀는 매우 어이가 없었지만 이곳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늦은 저녁 불어오는 찬 바람을 쐬며 백아영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또각또각 앞으로 걸었다.그러다가 움푹 파인 물웅덩이를 지날 때, 스포츠카 한 대가 급하게 질주해 오더니 백아영의 키만큼 높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백아영은 흠뻑 젖었고 찬 바람이
참가 선수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참가자들이 작성한 처방 중 잘못된 처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수들은 자신의 답안을 들고 칸막이를 나온 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긴 탁자 앞에 섰다. 그리고 작성한 답안을 차례로 탁자 위에 놓고 1차 오류 정정 심사를 거쳤다.오류 정정 심사 책임자는 민우진이었다. 그는 시합 참가자들의 답을 차례로 훑어보고 나서 냉정하고 결단력 있게 1차로 일부 자격 미달인 선수들을 탈락시켰지만 ‘백영미’ 가 제출한 답 앞에서는 의아한 표정으로 한참 동안 머물렀다.“이 처방전은 백영미 씨가 연구해낸 건가요?”백아영은 머리를 끄덕였다.“백영미 씨, 당신은 정말 대단한 인재입니다!”민우진의 진심 어린 칭찬과 함께 백영미를 보고 나지막하게 말을 이었다.“미리 축하드려요, 오늘 우승은 당신일 겁니다.”이번 시합에서 우승하기 위해 백아영은 치료하기 가장 어려운 병을 골랐기 때문에 다른 참가자들을 수월하게 이길 수 있다고 예상했었다.오류 정정 심사가 끝나고 8명의 참가자는 자신의 처방을 심사위원과 대중들에게 공개했고 심사위원들은 각자 점수를 매겨 최종 결과를 합산하느라 바빴다.앞부분의 채점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백아영의 차례가 되었을 때 여섯 명의 심사위원은 모두 채점을 멈추었고 눈빛이 굳어지며 불쾌한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중 한 사람은 버럭 화까지 냈다.“백영미 씨, 이 처방전은 어디서 얻은 거죠?”백아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제가 연구해낸 처방전입니다.”“여기가 어디라고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오 교수가 노하며 소리 질렀다.“이 처방전은 당신이 백채영 선생님한테서 훔쳐 온 거잖아요!”“시합이 끝나는 대로 우리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재능기부 차원에서 처방전을 공개하려던 참이었어요! 이렇게 파렴치한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말이죠.”“백채영 선생님, 선생님의 처방전을 꺼내 보이세요.”백채영은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서류를
많은 사람들의 의심과 욕설에도 백아영은 태연자약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백채영을 바라봤다.“백채영 선생님, 이 처방전에 따르면 당귀, 백급, 오크라 등 약재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세 가지 약재는 모두 약효가 온화한 편인데, 과연 yx증후군 치료에 도움이 될까요? 그 이유를 한 번 설명해 보시죠?”백채영은 의술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백아영이 당시에 남긴 처방전의 주해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 그녀는 백아영의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했다.“세 가지 온화한 성질의 약재이기에 다른 약효가 센 약재들과 중화되는 효과를 일으켜 치료 과정에서 환자의 불편함을 덜어드리는 겁니다.”“풋.”백아영이 소리 내 비웃었다.“백채영 씨, 도둑질도 하다가 말면 어떡합니까?”당시 백아영은 이 처방전의 주해를 쓰다가 잠깐 자리를 비우는 탓에 나머지 부분을 마저 작성하지 못했었다.“이 세 가지 약재는 확실히 환자의 치료 과정에 불편을 덜어주는 역할도 있지만 그건 위가 특히 약한 환자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이 처방전에 따라 약을 복용할 때는 생강차를 첨가하여 함께 복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환자의 경우에는 이 세 가지 약재를 제거하고 먹어야만 약효가 극대화됩니다.”현장에는 연세가 있는 교수들도 적지 않았는데, 그들은 한의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깊어서 백아영의 말이 타당한지 구별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 자리에서 바로 찬성하는 교수들도 부지 다수였다.“일리 있는 말입니다. 설명을 들으니 아차 싶네요. 이제야 답답하던 마음이 확 트인 거 같습니다!”이렇게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처방전을 연구해낸 장본인이라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 백아영과 백채영 중 이 처방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사리 분별이 가능한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 수 있었다.사람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백채영을 쳐다보았다.“백채영 선생님이 백영미 씨의 처방전을 표절한 건가 봐요? 정말 보고도 믿기 어려운 현실이네요.”“이 자리에서 들통났으니, 얼마나 창피하겠어요!”“백채영 씨가 이런 사람이었다니, 지금까
백아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눈빛으로 백채영을 경고했다.지금도 대회가 생방송되고 있으니, 만약 백채영이 급발진하여 백아영이 이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신분을 이 자리에서 밝힌다면 이씨 가문은 전국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원한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그녀는 이성준 때문에라도 신분이 까발려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백채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백아영의 명성을 더럽히고 이씨 가문에서 나가게 하려 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어떤 대가를 치르든지 상관없었다.“어쩐지 계속 화상을 입은 척하며 얼굴을 가리더니, 네가 바로 백아영이었기 때문이겠구나!”백채영은 이를 악물고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들에게 손짓했다.“저 여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내려주세요.”그 스텝들은 백채영이 일찌감치 매수해 놓은 사람들이었기에 백아영의 반항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칠게 마스크를 벗겨냈다.백아영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로 얼굴을 가리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가명을 쓴 건 그저 시합에 참여하기 위해서였어...”“백아영, 너 정말 뻔뻔하구나! 이제 와서 변명하려는 거야? 2년 전에 네 의술 때문에 사람이 죽었어, 어떻게 감옥에서 썩고 나와도 회개하기는커녕 가명까지 사용해서 모두를 속이고 HL한의학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가 있어?”백채영이 백아영에게 삿대질하며 욕을 퍼부었다.“여기 있는 모두가 바보로 보여서 농락하는 거야? 우리처럼 진지한 마음으로 의학에 한 몸 바친 사람들이 너 같은 쓰레기보다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겠다는 거야?”백채영의 말은 자리에 있던 모두의 심기를 건드렸고 백아영이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미움을 사게 했다. 몇몇 교수들이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가명으로 시합에 참여한 것은 엄연히 규칙 위반이니, 백영미 씨는 실격입니다!”백아영은 갑자기 온몸을 떨면서 비틀거리더니 뒷걸음쳤다. 시합에서 제명됐을 뿐만 아니라 신분마저 노출됐으니, 그녀의 희망과 미래는 다시 한번 백채영에 의해 파괴
백아영은 넋이 나간 채 이씨 가문의 별장으로 돌아갔다.홀에 들어서자 소파에 앉아있는 이성준이 눈에 띄었는데, 그는 냉랭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을 보니, 그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백아영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머리를 숙였다.“미안해.”그녀는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이씨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이성준이 차갑게 물었다.“사고를 쳐놓고 사과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일이지. 당장 이혼 절차를 밟도록 하지. 내일 해 뜨는 대로 이 집에서 나가 줘.”이미 일파만파 소문이 퍼져 이씨 가문 홍보팀도 대응하기가 만만치 않았다. 이성준은 이참에 할아버지인 이영철 어르신에게 백아영과의 이혼을 협상하려 했다.백아영은 놀라서 멍해졌고 온몸이 오싹해졌다. 3개월이라는 기한이 끝나 이성준과 이혼하기를 고대했던 그녀였지만 정작 그가 먼저 말을 꺼내니 뜻밖에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게다가 왠지 모를 허탈한 기분마저 들었다.몇 초를 멍하니 서 있고 난 후에야 백아영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해.”백아영은 위층으로 올라가 간단하게 짐을 정리하더니 그대로 짙은 어둠을 밟으며 이씨 저택을 떠났다.이성준은 은 창가에 서서 어둠 속을 헤치고 이씨 저택을 나서는 백아영의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뒤이어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쏟아낼 상대를 잃은 공허함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번지고 있었다.백아영은 우선 가격 부담이 적은 허름한 모텔에서 하룻밤을 묵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프런트 아가씨가 그녀를 알아보더니 혐오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매몰차게 내쫓았다.“백아영 씨? 쯧, 맞네, 그 파렴치한 의사 년이네! 우리는 당신 같은 인간한테 방을 내어줄 수 없으니 이만 나가줘요!”그대로 쫓겨난 백아영은 찬 바람이 부는 거리에 멈춰 서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는 그제야 인터넷에 도배된 그녀의 이름과 사진을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2년 전에 그
3일 동안 모든 인력을 총동원한 이씨 가문 홍보팀 덕분인지는 몰라도, 시간이 지나자 여론이 많이 가라앉았다.마침내 백아영은 용기를 내고 밖으로 나갔다. 밤 10시가 넘어 사람이 적은 틈을 타서 그녀는 마스크, 선글라스, 캡 모자를 쓰고 완전히 무장한 채 편의점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기로 했다.그런데 막 물건을 고르고 계산대로 가려던 그때 편의점 입구에 몰려든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았다.“백아영 씨, 맞죠?”“무슨 낯짝으로 집 밖에 기어 나온 거예요?”“당신 때문에 팔 하나가 절단된 소녀는 지금 당신처럼 두 팔로 편하게 쇼핑하지 못할 텐데요!”“당신 같은 양심도 없는 의사는 제대로 혼이 나 봐야 정신을 차리겠군요, 다들 뭐해, 제대로 손봐 드려!”한 무리의 사람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백아영을 마구 폭행했다.백아영은 비록 호신용 은침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전혀 반항하지 못하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폭행당하고 있었다.그녀는 어떻게 해서든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배를 가려야만 했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뼈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녀는 머리가 어지러웠고 자기가 결국 여기서 이렇게 죽게 될 운명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그녀는 절망했고 자포자기했다.‘차라리 죽자,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 너무 고통스러워...’바로 그때, 최고급 세단 몇 대가 편의점 입구에 멈추어 섰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세등등하게 달려들어 백아영을 폭행하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제지했다.그들의 분노 섞인 주먹질과 발길질이 마침내 멈추었다.백인이 휘청거리며 고개를 들었고 이성준의 할아버지인 이영철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그녀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이 보였다.“가엾은 우리 손자며느리, 할아버지가 늦게 와서 미안해.”백아영은 코끝이 찡했고 울먹이며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더없이 감격스러웠다.백아영의 부상이 분명치 않아 보였기에 이영철은 감히 더 지체하지 못하고 백아영을 가까운 인근 병
백아영은 전혀 놀랍지 않았다. 어젯밤 이영철이 분노하며 떠났을 때, 그녀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였기에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성준아, 나 못 가...”이성준은 얼굴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헤어지기 싫어서 머리를 굴리는 줄 알았지만, 백아영은 뜻밖의 상황에 대한 설명을 보탰다.“지금 병원비를 낼 돈이 없어서 퇴원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야.”“무슨 일이야?”이성준은 무의식적으로 다급하게 물었다. 그렇게 다 물어놓고 나서야 가당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냉랭한 목소리로 덧붙였다.“어느 병원이야, 당장 돈 보내줄게. 난 오늘 이혼해야겠어.”이성준은 직접 차를 몰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았다. 그는 달리면서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까지 조급해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백아영은 이미 병실 입구에 서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며칠 못 본 사이에 그녀는 앙상해질 정도로 살이 빠졌고 얼굴엔 폭행당한 흔적인 멍과 상처가 있었다. 그리고 입술에까지 상처가 있었다.이성준은 가슴이 아팠다.“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백아영은 그가 이런 의외의 질문을 하자 괜히 민망한 듯 어깨를 으쓱했다.“대중의 분노를 샀으니...”그녀가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폭행당했다는 말을 들은 이성준의 얼굴빛이 더 어두워졌다. 이성준이 그녀를 집에서 내쫓은 것은 그저 할아버지와 담판을 짓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 그는 자기 때문에 그녀가 밖에서 이런 일을 겪게 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렇게 심하게 다친 거면 이혼은 다음에 하자.”이성준이 말하며 병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백아영은 꿈쩍하지 않았다.“다리를 다친 것도 아닌데, 이혼하러 갈 수 있어.”이성준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백아영을 착잡하게 쳐다보았다.‘그렇게도 간절하게 이혼하고 싶은 건가?’백아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무슨 문제 있어?”“아니야!”이성준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화가 잔뜩 나서 돌아섰다.이혼 절차는 아주 순조롭게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