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비켜!”순간 그녀를 붙잡으려고 다가오던 검은 옷의 사내는 깜짝 놀라 제 자리에 얼어붙어 옴짝달싹 못 했다.제갈연준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렸다.“아영아, 지금 이성준 때문에 나한테 반항하는 거야? 기분이 정말 나쁜데?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네 아들이 무슨 벌을 받을지 알고 있기나 해?”은침을 잡은 백아영의 손이 저도 모르게 살짝 떨렸다.그녀의 얼굴은 핏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창백했다. 아들은 그녀의 약점이자 아킬레스건이다.“제갈연준, 내 손을 빌려 살인을 저지르는 건 꿈도 꾸지 마! 오늘 무슨 수를 쓰든지 갈 테니까, 날 막는다면 너부터 죽여버릴 거야! 같이 죽자.”그녀는 최후의 승부수를 띄웠고, 제갈연준이 타협하도록 밀어 붙었다.그가 아직 죽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데 올인했다.다만 제갈연준은 두려워하기는커녕 여전히 음산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악마가 따로 없었다.그는 피식 비웃었다.“오늘 도망간다면 네 아들을 다시는 못 볼 줄 알아. 아들의 목숨을 희생하더라도 이성준을 살리겠다는 건가?”이는 선택지가 아니라 백아영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겉보기에 그녀가 제갈연준을 협박하는 듯싶지만, 사실 패는 제갈연준의 손에 있었다.백아영은 제갈연준에게 강요할 자격은 물론 그럴 급도 안 되었다.“게다가 하루 만에 해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스스로 제일 뻔하지 않아?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성준은 죽은 목숨이야.”제갈연준의 웃음소리가 점점 더 음침해졌다.“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아들의 목숨까지 희생하는 건 수지가 안 맞잖아?”죽을 사람.제갈연준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백아영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고,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렸다.그녀의 손은 점점 더 심하게 떨리더니 결국 은침을 놓쳤고,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졌다.마침내 기력을 다한 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피를 쿨럭 토해냈다.“착하네.”제갈연준은 무릎 꿇고 마치 애완동물을 다루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이번에 큰 공을 세웠으니
백아영은 살이 더 빠졌지만, 정성스럽게 스타일링한 덕분에 여신이 따로 없었고 얼굴에 혈색마저 감돌았다.새빨간 드레스를 입고 10cm가 넘는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제갈연준과 팔짱을 낀 채 미모를 한껏 뽐내면서 눈부신 자태로 뇌 연구 프로젝트 입찰이 진행하는 접수센터로 향했다.이내 뭇사람의 주목을 받으면서 뇌 연구 프로젝트 지원서를 제출했다.그녀가 대표하는 제갈 일가는 그제야 뇌 연구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할 자격이 생겼고, 오늘 내로 지원서를 접수하지 않은 사람은 해당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할 수 없었다.제갈연준과 도착했을 때만 하더라도 늦게 온 편에 속하지만, 지금까지 이씨 가문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10분 뒤면 신청이 마감되는데, 뇌 연구 프로젝트 입찰을 포기하려는 건가?이때, 누군가 백아영의 어깨를 우악스럽게 붙잡더니 억지로 돌려세워 뺨을 날렸다.짝-!맑은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간 백아영은 볼이 화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귀싸대기를 날린 사람은 바로 백채영이다.데일리룩 차림의 그녀는 화장도 하지 않은 채 다크서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짙었다. 얼굴은 병적으로 초췌하고 창백하면서도 사납고 광기가 넘쳤다.“제갈미연, 이 천하고 지독한 년아!”그녀는 이미지 따위 안중에도 없는 듯 미친 사람처럼 백아영을 두들겨 패려고 했다.“어떻게 이성준을 죽일 수 있지? 어찌 감히! 그 사람은 내 미래의 남편이자 유일한 희망이란 말이야! 앞날이 창창해야 마땅한데, 너 때문에 미래가 엉망진창이 되었어. 죽여버릴 거야! 당신 죽여버린다고.”백아영은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백채영의 공격을 손쉽게 피했다.그러나 악을 쓰는 백채영을 보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고 두 눈에 씁쓸함이 가득했다.백채영이 이처럼 난리 친다는 건...백아영의 풀이 죽은 모습에 제갈연준은 피식 비웃으며 그녀를 끌고 가라고 손짓했다.“내가 얘기했잖아? 이성준은 죽었다고.”제갈연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가 없으니 이씨 가문을 이끄는 사람도 사라져서 난장판이 되었을 테니까 뇌 연
이성준은 기다란 다리를 움직여 그들을 향해 점점 가까이 다가갔다. 1m 90cm에 육박하는 키 때문에 엄청난 압박감이 느껴졌고, 온몸으로 싸늘한 기운을 풍겼다.차가운 시선은 마치 서늘한 칼날처럼 백아영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다.“제갈미연, 이제 결판을 좀 내볼까?”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그녀가 속으로 아무리 안도하고 뒤에서 애를 쓴다 하더라도 이성준의 눈에는 단지 악독한 제갈미연이자 자신을 독살하려던 살인자에 불과했다.이제 와서 복수한다면 그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게 뻔했다.“이성준.”제갈연준은 백아영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았는데, 그녀를 지키려는 모습과 소유욕을 드러내는 자세이기도 했다.“어떤 결판을 내든지 지금은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뇌 연구 프로젝트는 참가자끼리 사적으로 다투는 경우 입찰 자격을 상실한다는 규정이 있거든.” 제갈연준이 오늘 겁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이성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싸늘한 시선으로 옆에 서 있는 선우경진을 바라보았다.선우경진은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규정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나저나 제갈미연 씨가 다쳤나 본데요? 얼굴에 피가 나는 것 같은데, 마침 지혈제가 있어서 제가 대신 치료해줄까요?”말을 마치자 백아영의 얼굴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제갈연준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백아영은 방금 백채영의 손톱에 긁혀 얼굴에 상처가 나서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언뜻 보기에 전혀 문제없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피부층이 두 겹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의학을 전공한 선우경진은 눈썰미가 예사롭지 않았기에 당연히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고, 지혈해주겠다고 제안한 이유도 따로 있었다.제갈연준은 즉시 앞으로 나서더니 선우경진을 가로막았다.“고양이 쥐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형식적인 선심은 집어치우지? 우선 본인부터 살고 보는 게 어때? 이번에 절대로 프로젝트를 따낼 일은 없을 테니까! 가자!”말을 마친 그는 백아영을 끌고 성큼
접수센터를 떠나자 아무도 없는 통로에서 제갈연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하더니 커다란 손으로 백아영의 목을 움켜쥐고는 벽으로 밀쳤다.“대답해! 네가 이성준 구해줬지?”목이 당장이라도 으스러질 듯 극심한 고통이 밀려오면서 질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온 그녀는 온몸이 흠칫 굳었다.다만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사실 이미 제갈연준의 의심을 살 거로 예상한지라 지금 같은 상황은 머릿속으로 수만 번 시뮬레이션해 본 덕분에 거짓말도 술술 할 수 있게 되었다.“나 아니야.”“너 아니면 누가 있겠어? 선우경진은 해독할 능력조차 없는데!”“이번 만이 아니잖아?”백아영은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 냈다. 이번에는 대충 얼버무린다고 해서 쉽게 넘어갈 상황이 아니기에 뭐라도 얘기해야 했다.“지난번에 이현무를 독살했을 때도 선우경진은 독성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아냈잖아? 심지어 예전에는 우리가 새로운 독약을 개발할 때마다 선우 일가는 해독제를 연구해냈어. 정녕 선우 일가에 숨은 고수가 있다고 의심해본 적은 없어?”제갈연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무슨 뜻이지?”“이 세상에 재능 있는 사람이 어찌 나뿐이겠어? 당신 아직 선우 일가 아가씨가 누군지도 모르잖아?”백아영이 피식 비웃었다.“여기서 나랑 실랑이할 시간에 선우 일가에서 아가씨를 찾았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더 낫지 않겠어?”제갈연준이 제일 두려워하는 사람은 바로 선우 일가 아가씨였다.만약 선우 일가 아가씨를 찾아 낸다면 제 아무리 백아영이라고 해도 상대가 안 될지 모른다.이번 뇌 연구 프로젝트 입찰은 제갈 일가의 생사가 달린 일이라 선우 일가 아가씨가 불쑥 튀어나와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걸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만약 진짜 그런 사람이 있다면 죽여버릴 작정이다.“그 말이 사실이길 기도해. 감히 날 속인다면 네 새끼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백아영을 홱 뿌리치고 제갈연준은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자유를 되찾은 백채영은 바닥에 털
백아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지금 가면 안 돼요.”“왜요?”“제갈연준한테 납치당한 우리 아들을 구해줘야 해요.”백아영은 그녀가 현재 처한 상황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성준이 우리 아들을 찾아주면 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어요.”그동안 제갈연준이 보여준 영상을 통해 날씨와 불빛을 기록한 그녀는 각 지역의 기상 조건에 따라 일일이 제외한 결과, 마침내 한 영상에서 가능성이 제일 큰 5개의 지역을 발견했다.비록 찾을 기회가 여전히 희박하지만, 그래도 이성준에게 희망을 걸었다.“우진 도련님, 제갈연준은 자비가 없기로 유명해서 도련님까지 연루시키고 싶지 않아요. 오늘은 그냥 저를 못 본 거로 하면 안 될까요?”이는 또한 민우진 앞에서 순순히 정체를 인정한 이유이기도 했다.일단 의심한 이상 괜히 아니라고 했다가 옆에서 얼쩡거려 제갈연준의 심기를 건드릴 바에 차라리 상의해서 처리하는 게 나았다.하지만 민우진은 처음부터 수수방관하거나 한발 물러서 백아영을 위험에 빠뜨릴 생각이 없었다.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영 씨를 당장 데려가고 싶은 내 맘이 얼마나 간절한지 알아요? 의식을 잃게 만들더라도 절대로 위험에 처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방금 제갈연준이 무자비하게 목을 졸라 그녀를 죽이려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는가?“그렇다고 매정하게 아영 씨한테 아이를 포기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죠.”그는 백아영의 손을 꼭 붙잡았다.“아영 씨, 어찌 됐든 아영 씨 곁에서 도움을 줄 수 있게 해줘요.”울먹이는 목소리는 거의 애원에 가까웠다.순간 말문이 막힌 백아영은 잠깐 고민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네.”...제갈연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백아영은 항상 메일을 보내기만 했지, 상대방의 회신을 받지 못하도록 설정했다.따라서 이성준이 사람을 찾아주기로 했는지, 어느 정도로 진행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결국 그녀는 민우진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중간 다리 역할을 부탁했다.그러나 민우진이 이성준을 찾아갔을 때
뇌 연구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한 사람은 원서를 접수하고 나서 전부 같은 건물에 배정받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미팅을 통해 주제를 정했는데, 바로 5일 동안 지정된 주제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연구 방안을 발표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심사를 거쳐 가장 우수하고 잠재력까지 갖춘 방안을 발표한 자에게 뇌 연구 프로젝트를 실시하게 되는 영광이 주어진다.미팅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실험실로 향했다.팀장인 백아영이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는 찰나 문득 싸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는데, 마침 싸늘한 시선으로 훑어보는 이성준을 발견했다.이씨 가문의 실험실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니?그는 입구에 서서 고개를 돌려 백아영을 빤히 쳐다봤다. 더 정확하게는 모든 팀원을 관찰하고 있었다.서늘한 눈빛은 마치 레이저처럼 그들을 꿰뚫어 볼 기세였는데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백아영은 단 1초라도 더 머물러 있고 싶지 않은 듯 잽싸게 문을 열고 쏙 숨어버렸다.‘죽을 맛이 따로 없네.’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백아영, 이번 연구 결과는 뇌 연구 프로젝트 성패의 관건이야. 만약 실패한다면 네 아들의 목숨도 날아간다는 걸 잊지 마.”제갈연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위협했다.“그러니까 잡생각 하지 말고 오로지 연구에 몰두해!”이성준 때문에 상념에 빠진 백아영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주먹을 꼭 쥔 채 나지막이 말했다.“알아.”옆방에서 선우경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성준을 바라보았다.“성준 씨, 제갈 일가 연구팀을 한참 쳐다보던데 뭐 좀 알아냈어요?”이성준의 표정이 싸늘해졌다.“3명은 아예 다른 사람이고, 나머지 3명 중에서 그녀를 찾아봐야죠.”“제갈 일가 연구팀에 여자가 총 7명 있는데 3명에 3명을 더하면 6명이잖아요. 나머지 한 명은 누구죠?”이성준이 피식 웃었다.“제갈미연.”그녀는 아예 범주에 속하지도 않았다.선우경진은 할 말을 잃었다.고작 5일밖에 없는지라 시간이 꽤 촉박한 편이다. 각 참가
식사하던 중 이성준은 갑자기 젓가락을 멈추더니 손가락으로 위를 지그시 눌렸고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위경련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성준의 모습에 백아영도 괴로웠다.‘멍청한 거 아니야? 매운 걸 못 먹으면서 이걸 왜 먹어!’속으로는 그를 원망했지만, 재빨리 따듯한 물 한 잔을 건넸다.“그만 먹어, 그러다 탈 나.”컵을 따라 고개를 들어보니 다름 아닌 제갈미연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이성준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고 눈빛에서는 감출 수 없는 분노가 느껴졌다.일부러 매운 음식을 먹은 게 제갈미연을 떠보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하필 그녀가 나타났다.탁!화가 난 이성준은 수저를 내려놓더니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걸어갔고 백아영은 화난 채 자리를 뜨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참 알 수 없는 남자네!’식당의 다른 한편에는 제갈연준과 리사가 나란히 서서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었고 리사는 이해가 안 되는 듯 의아해하며 물었다.“이성준 왜 저러는 거죠?”제갈연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떠보는 거야. 백아영 찾으려고.”“백아영이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죠?”“어쩌면 추측일지도 모르지, 아니면...”제갈연준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스파이가 있던지.”리사의 표정은 순식간에 험악하게 변했다.“설마 백아영이 말한 건가요?”“아니, 백아영은 그걸 말할 엄두조차 없을 거야. 이성준이 의심한 이상, 정체가 드러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만약에 들킨다면 원하는 대로 백아영 돌려줘야지.”...닷새째 되던 날, 늦은 새벽.연속 5일 동안 지속된 고된 작업으로 백아영은 체력은 물론 정신까지 극도로 지쳐있었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도 몽유병을 하는 것처럼 흐릿했다.화장실로 가던 중 우연히 난간 옆에 서 있는 이성준을 발견했다.그는 팔꿈치로 난간을 짚고 몸을 반쯤 기댄 채 칠흑 같은 어둠을 바라보며 입가에서는 연기를 내뿜었다.연기가 흩어지며 하늘로 피어오른 모습은 나름 이뻤다.‘담배 안 피우던 사람이
“도대체 왜 또 백아영인 척 연기를 하는 거지?”그의 말투에서는 단호함과 더불어 왠지 모를 살기도 느껴졌다.‘백아영? 지금 날 의심하는 건가?’어리둥절하던 백아영은 흠칫 놀라더니 쓴웃음을 띠며 이성준을 바라봤다.“들켰네.”그녀의 말에 이성준은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더 있다가는 이성준의 분노에 목 졸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위경련이 완화된 듯한 그의 모습에 이만 돌아가려고 했다.계획이 실패한 것처럼 완벽하게 연기를 마친 그때, 이성준의 핸드폰이 울렸고 이현무한테서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핸드폰에 이현무의 얼굴이 뜨자 백아영은 저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며칠 못 본 사이에 그녀는 자신이 이현무를 너무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이성준은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받았고 화면에는 이현무의 귀여운 얼굴이 나타났다.기분이 언짢았던 그는 무덤덤하게 물었다.“무슨 일 있어?”그런 그의 모습을 본 이현무는 갑자기 주춤했다.백아영이 갑자기 사라진 후, 안전하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이현무는 2, 3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용기 내 입을 열었다.“스파이 누나도 아빠랑 같이 경쟁한다고 들었는데... 저 누나랑 얘기해 봐도 돼요? 잠깐이어도 괜찮아요.”이성준은 고개를 들어 백아영을 바라봤고 그 눈빛은 싸늘하고 어두웠다.사악함으로 가득 찬 그녀와 이현무의 접촉을 줄여야 한다는 걸 이성준도 알고 있었기에 단칼에 거절하려고 했으나 겁에 질린 와중에 기대하는 이현무의 모습을 보고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머뭇거리는 사이에 백아영은 먼저 다가가 핸드폰 속의 이현무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현무야, 누나 보고 싶어? 누나는 현무가 너무 보고 싶었어.”백아영이 나타나자, 이현무는 순식간에 두 눈이 반짝였고 작은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보고 싶어요!”그는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현무도 스파이 누나 너무 보고 싶어요.”백아영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살이 빠진 것 같은데,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