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이성준은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깊고 차가웠다.그때 병실 문 옆에는 뚱보 아줌마가 살금살금 다가와 안을 훔쳐보고 있었다.방금 전 백채영은 평소와 다름없이 핑계를 대며 물건을 사러 가게 아줌마를 내보냈고 그녀는 일부러 다시 되돌아왔다. 아니나 다를까 침을 놓고 있던 건 백아영이다!백채영이 자기가 한 것마냥 공로를 빼앗고 득의양양해 하는 모습을 생각하자 그녀 역시도 백아영을 대신해 안타까움을 느꼈다.아줌마는 핸드폰을 꺼내 몰래 이 장면을 촬영했고 기회를 찾아 백채영의 악랄한 모습을 모두 까발릴 생각이었다.그 시각 백채영은 병원 아래층 정원을 산책하며 바람을 쐬고 있었다. 그녀는 병원 특유의 향과 소독제 냄새를 아주 싫어했으며 안에 있는 것조차도 짜증이 나 모든 치료가 끝나면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채영이?”그 시각 오미란이 깜짝 놀라며 다가왔다.“여기서 뭐 해?”손에 보양품을 든 채 다가오는 그녀의 모습에 이성준을 만나러 온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 백채영은 초조해졌다.이성준은 아직 침맞고 있고 끝나려면 적어도 20여 분은 걸린텐데 지금 올라가면 틀림없이 마주치게 된다!백아영이 치료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오미란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힘들게 얻은 호감마저 사라져 버리게 된다.백채영은 머리를 굴리더니 이내 서럽고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었다.“어머님, 그냥 마음이 심란해서 혼자 생각하며 좀 걷고 싶었어요.”마음이 심란하다는 그녀의 말에 오미란은 다급하게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사실 별거 아닌데, 성준 씨와의 결혼이 다가오니까 조금 겁이 났나 봐요. 그래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결혼 전에 느끼는 두려움은 대부분 여성이 겪는 일이었고 오미란도 마찬가지였다.동질감을 느낀 오미란은 차분하게 백채영을 달래며 그녀를 위로했다.백채영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시간을 바라보며 치료가 빨리 끝나기를 기다렸다.시간이 다 되어가자, 백채영은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
백채영과 오미란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VVIP 병동까지 걸어갔다.병실 밖에 숨어 훔쳐보던 뚱보 아줌마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서둘러 핸드폰을 끄고 화장실로 숨었다.백채영은 재빨리 병실 문을 열어 오미란을 데리고 들어왔다.병실 문을 열어보니 옷차림이 단정해야 할 이성준이 상반신을 벗고 있었고 그 앞에는 백아영이 앉아 있었다.‘치료가 아직 안 끝났나?!’백채영은 너무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고 심장이 튀어나올 듯이 긴장됐다. 그러나 모든 걸 직접 목격한 오미란에게 변명을 하기엔 너무 늦었다.어쩔 줄 몰라 하던 백채영은 황급히 핑계를 대려고 했다.“어머님, 제가 다 설명할게요...”“너희 지금 뭐 하는 짓이야!”백채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미란은 화가 나서 호통을 쳤고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백아영, 넌 정말 뻔뻔하구나. 병원까지 와서 성준이한테 치근덕대고 싶니?”백채영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한참 서 있더니 순간 눈빛이 악독하게 변했다.그녀는 그제야 침을 뽑고 상처를 싸맨 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백아영이 이성준에게 붕대를 감아주고 있는 모습은 마치 미심쩍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장면이었다.백채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더니 눈시울을 붉히며 흐느꼈다.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 화가 치밀어오른 오미란은 달려가 백아영을 침대 곁에서 끌어 내리며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넌 왜 이렇게 염치가 없니? 이혼한 마당에 성준이한테 매달리고 싶어? 부끄럽지도 않니? 성준이는 채영이랑 결혼할 사람이고 곧 아이 아빠가 될 사람이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야만 속이 후련하니?”오미란은 네일아트를 한 긴 손톱으로 백아영을 잡았고 너무 세게 잡은 나머지 피부가 찢길 정도였다.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붓는 그녀의 모습에 백아영은 울화가 치밀었다.“사모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고 말씀하세요. 전 치료를 해주고 있었을 뿐이고 생각하시는 그런 일 따윈 하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성준은 침대에서 내려왔다.마침 뚱보 아줌마가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백아영을 부축하며 오미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사모님, 정말 아영 씨를 오해하고 있습니다. 도련님한테 침놓는 걸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오미란은 노발대발하며 입을 열었다.“아주머니까지 이제 절 속이시는 거예요?”“제가 어떻게 감히 사모님을 속이겠어요.”뚱보 아줌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백아영을 보며 이를 악물더니 핸드폰을 오미란에게 건네줬다.“직접 확인해 보세요.”핸드폰에서는 동영상이 재생됐고 그 안에는 방금 백아영이 이성준에게 침을 놓는 모습이 담겨있었다.충격에 빠진 오미란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참 멍하니 서 있다가 백채영한테 물었다.“네가 직접 성준이한테 침을 놓아주고 있다고 했었던 것 같은데?”백채영은 정신이 혼미했다. 뚱보 아줌마가 몰래 영상을 찍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고 당장이라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오미란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 일의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그러니까 사고 당시 성준이를 구해준 사람이 네가 아니라 백아영이란 말이지! 넌 그저 자신이 한 것처럼 속이고 있었고!”오미란은 그녀를 이성준 생명의 은인이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하고 있었다. 싸늘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던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미안하게 생각했고 그 쌓인 감정을 풀어주려 애썼지만, 결과는 이러했다.“백채영, 내가 널 잘못 봤어. 이렇게 독한 애인 줄도 모르고 고쳐주길 바라고 있었다니!”질책과 혐오의 눈빛은 백채영을 난감하게 만들었고 자리에 서 있는 것조차도 좌불안석이었다.“저도 사정이 있는데...”“사정이 있으면 거짓말해도 돼? 백아영을 대신해서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더니 넌 양심에 찔리지도 않니?”억울해하는 백채영의 모습을 보고 짜증이 난 오미란은 문을 가리키며 내쫓았다.“꼴도 보기 싫으니까 당장 나가!”쥐구멍이라도 찾아 숨고 싶었던 백채영은 증오의 감정이 가득한 채로 초라하게 자리를 떴다.백채영을 쫓아내
치료를 마친 백아영이 자리를 뜨려던 순간 뚱보 아줌마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고 그 모습에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랐다.“사모님, 제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뚱보 아줌마는 근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영 씨가 도련님 치료해 주려고 어쩔 수 없이 선우 일가의 의술을 배웠는데 이걸 선우 일가에서 알게 된다면 분명히 벌을 받게 될 겁니다.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해도 될까요? 제가 마음대로 이 일을 털어놓았으니 저는 그 어떤한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아영 씨만은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주세요.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이성준을 구하려다 백채영한테 꼬투리 잡인 채 그저 묵묵히 모든 억울함을 참고 있는 백아영의 모습에 오미란은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이 일은 선우 일가에 비밀로 할게요.”오미란은 뚱보 아줌마를 땅에서 일으켜 세웠고 한껏 부드럽고 상냥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다.“성준을 구해준 은혜는 앞으로 평생 잊지 않고 갚을게. 나중에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줘.”증오하는 사람을 대할 땐 한없이 차갑다가 은혜를 갚을 때는 진실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얘기하는 오미란이었다.백아영은 웃으며 인사를 나고선 자리를 떴다.그녀가 떠난 후에야 조용하던 이성준이 입을 열었다.“옥팔찌는 채영 씨한테 줬어요?”이 얘기를 꺼내자, 오미란은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나 다름없었고 진정한 며느리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물려줄 정말 귀중한 물건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백채영에게 속아 넘어갔다.“넌 구해준 사람이 백아영인 걸 알면서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엄마가 속아서 쩔쩔매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었던 거야?”이성준은 그녀의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한마디도 다투지 않았다.“위정시켜서 가져오라고 할게요.”그의 행동에 오미란은 깜짝 놀라 몇 초 동안 멍해있었다.“이미 준 물건을 다시 돌려받겠다고? 설마 백채영이랑 결혼 안 할 생각이야?”이성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그 사람은 제 아
화가 치밀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먼지털이개를 가져와 열심히 치웠다.화를 삼키며 일하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좀 풀렸다.소파가 깨끗하게 정리되면 기름을 수영장에 부어 죽을 때까지 치우게 할 생각이었다!바로 그때 위정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예전에는 이씨 가문의 사람을 마주치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는데, 지금은 지은 죄가 있으니 저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했다.그러나 거짓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뱃속에 이성준의 아이를 임신했으니,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걸 예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되찾은 자신감으로 득의양양하게 위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여긴 무슨 일로 오셨어요?”위정은 소파를 치우고 있는 백아영의 모습을 보고 저도 모르게 눈빛이 어두워졌다.‘어쩐지 사장님이 이곳으로 보내더라... 아영 씨 선우 일가에서 이런 괴롭힘을 당하며 지내고 계셨구나...’백채영에 대한 인상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채영 씨, 팔찌 가지러 왔습니다.”그녀는 깜짝 놀랐고 손목에 차고 있던 귀중한 팔찌를 보더니 순간 안색이 굳어졌다.“이건 어머님이 저한테 주신 거예요. 이미 준 물건을 다시 돌려받으려는 게 무안하지도 않나 봐요?”“사모님이 팔찌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보물이고 며느리로 인정된 사람에게만 물려줄 소중한 물건인데, 채영 씨는 며느리로 인정해 줄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위정의 말은 비수처럼 날아와 가슴에 꽂혔고 난감해진 백채영은 몸 둘 바를 몰랐다.위정은 계속하여 재촉했다.“채영 씨, 팔찌 돌려주세요.”물건을 돌려달라고 재촉하자 백채영은 점점 화가 났고 난처한 듯 괴로워하며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팔찌를 빼내 위정에게 던졌다.“이깟 물건이 뭐가 중요하다고 그러는지. 저도 필요 없으니까 갖고 꺼져요!”눈치 빠른 위정은 재빨리 달려가 옥팔찌를 잡았다. 이씨 가문의 대물림 보물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는데 쉽게 부서지는 옥팔찌를 아무 생각 없이 던지는 백채영의 모
“채영아, 이성준이 널 이렇게까지 속상하게 만들었는데 이 결혼 취소하는 게 어떄? 넌 선우 일가의 보물이란걸 잊지 마. 앞으로 좋은 남자 훨씬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거야.”정말로 선우 일가의 핏줄이 맞다면 진지하게 선우경진의 제안을 고려해 봤을 텐데 하지만 그녀는 가짜였다.만약 이성준과 결혼하지 못한다면 선우 일가의 구성원으로도 남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게 뻔하다.“아무리 좋은 남자도 성준 씨랑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전 성준 씨와 결혼할 거예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아빠 없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 않아요.”선우경진은 한숨을 내쉬었고 가슴이 아파졌다.“네가 기어코 결혼하고 싶다면 오빠도 말리지는 않을게. 우리 선우 일가 공주님이 원하는 건 다 들어줘야지.”그는 싸늘한 눈길로 백아영을 바라봤다.“다른 사람은 오빠한테 맡기고 넌 마음 편히 신부가 될 준비해. 백아영이 너희 사이의 걸림돌이 되지 않게 내가 잘 처리할게.”선우경진은 겉보기에 상냥하고 부드러웠으나 선우소훈만큼 마음이 약하고 자비롭지 못했다.그가 손을 쓰게 된다면 백아영은 틀림없이 큰 고통을 받게 된다!백채영의 마음속은 고약한 심보로 가득 차 있었지만, 무고하다는 표정은 사람의 마음을 녹였다.“오빠, 정말 고마워요. 오빠 덕분에 마음이 좀 놓이네요.”그가 저지른 일들이 이성준한테 들킨다고 할지라도 그건 자신과 상관없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성준이 그걸 핑계 삼아 파혼을 주장하지도 못한다.그녀는 높은 곳에서 백아영이 한없이 처량해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다음날 아침 백아영은 일찌감치 선우경진과 함께 집을 나섰다.비록 선우 일가의 도련님이지만, 그동안 의사 생활을 하며 여러 정보를 수집했고 웬만하면 외출할 때 혼자 운전하는 편이었다.그는 백아영과 함께 시내를 벗어나 외진 곳으로 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려한 유럽식 캐슬이 보였다.불이 모두 켜져 있고 식물이 잘 가꿔진 거로 봤을 때 사람이 지내는 것 같았지만, 바닥에는 낙엽이 수두룩하게 쌓여있
선우경진은 같은 의사로서 그녀의 이런 인품이 얼마나 고귀한지를 더욱 잘 알 수 있었다.그러나 그런 인품이 백아영한테 나타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비열하고 허영심이 강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혼란스러워진 선우경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충고했다.“백아영, 잘 생각해 봐. 지금이 네가 도망갈 유일한 기회야.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런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 거야.”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있더라도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면 지금 도망가는 게 그녀에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백아영은 고개를 저었다.“지금 도망간다면 없는 죄를 인정하는 거나 다름없어요.”그녀는 이성준이 포대기의 진상을 조사하여 결백을 밝혀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건 믿고 기다리는 것뿐이었다.선우경진은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백아영이 도우미로 일했던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 죽기 살기로 버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그녀의 훌륭한 인품에 감동받은 것도 한순간 지금은 고집불통인 성격 때문에 화가 났다.“난 분명히 기회를 줬어. 들어가서 병에 걸려 죽더라도 날 탓하면 안 돼.”말을 마친 선우경진은 성큼성큼 캐슬을 향해 걸어갔고 백아영은 구급상자를 들고 그 뒤를 따랐다.철저하게 준비를 마친 두 사람은 캐슬안으로 들어갔고 안에서는 지독한 약 냄새가 풍겨왔다.캐슬안에는 수많은 방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방은 환자가 사망해 비어 있었다.생존한 사람들은 병약한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었고 아무런 효과도 없는 약에 의지하며 간신히 목숨을 매달고 있었다. 명확한 치료법이 없는 한, 그들은 그저 죽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수년의 의사 생활을 했지만, 이런 잔혹한 상황을 마주하는 건 그녀 역시도 처음이었다.긴장된 백아영은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거죠?”다른 사람에게 감염시키지 않으려고 모두 캐슬안에 남아 외부와는 단절된 그들의 모습에 의문이 생겼다.선우경진
캐슬에서 나온 선우경진은 복잡미묘한 눈빛으로 백아영을 바라봤고 돌아가는 길 내내 주춤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차를 별장 앞에 세우고서야 참지 못해 입을 열었다.“백아영, 넌 의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어. 열심히 배운다면 앞으로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거야.”선우경진은 그녀가 잘못된 길로 가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느꼈다.“네가 앞으로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면 내가 할아버지께 사정해서 용서해 달라고 할 수 있어.”이전의 태도에 비하면 많이 달라졌다. 그의 도움이 필요 없었지만, 그녀를 도와 사정하겠다는 말에 예의상 정중하게 인사했다.“고마워요.”별장에 들어선 선우경진은 서재로 들어가 선우소훈을 찾았다.그는 캐슬에서 있었던 모든 일을 말했고, 전과 다른 태도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 백아영이 전에 사칭했던 건 잠깐 눈이 멀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요. 젊은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잖아요. 이제 그만 용서해 주시고 기회 한번 주는 건 어떨까요? 정말 보기 드문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인재입니다. 집에 갇혀 도우미 생활하는 건 인재를 낭비하는 거나 다름없고 계속된 채찍질로 손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다면 큰일이에요.”선우소훈을 미간을 찌푸렸다.“그냥 내보내자는 뜻이야?”선우경진은 이 부탁이 사실 좀 지나치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용서해도 저희한테는 아무런 손해가 없을 겁니다.”“경진아, 백아영이 채영이랑 어떤 관계인지 잊지 마. 그냥 이렇게 내보내면 채영이가 좋아하지 않을 거야.”선우소훈도 인재를 아끼는 편이었지만 그마저도 손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이 일은 내가 좀 더 생각해 볼 테니까 넌 이만 나가봐.”비록 명확한 답을 듣지 못했지만 선우소훈도 마음이 흔들리는 듯했다. 더는 원래 방법으로 백아영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안심하고 돌아서 서재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화가 잔뜩 난 채로 백채영이 그를 찾아왔다.“오빠
분명 맛있는 음식인데도 백아영은 입맛이 없었다. 심지어 그녀는 몇 입 먹고 난 뒤 배가 아플 정도였다. 그녀는 이성준의 품에 안겨 얼굴빛이 하얗게 질렸다. 이성준은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껴안고 자리에서 크게 화를 냈다. “윌리엄스, 혹시 음식에 독을 넣은거예요?!”윌리엄스는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급히 변명했다.“아니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 백아영은 힘겹게 이성준의 손목을 잡고 힘없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스가 독을 넣지 않았어. 내가...”“너 왜 그래?” 이성준은 땀을 뻘뻘 흘리며 백아영을 안은 팔뚝을 가볍게 떨었다. 백아영은 몹시 아팠지만 눈길은 부드러웠고 약간 희색을 띠었다. “윌리엄스에게 실례지만, 국왕께 하룻밤 묵을 방을 빌려달라고 부탁해 줘.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를 불러줘.”이성준이 눈치를 채지 못하자 백아영은 창백한 얼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방금 맥을 짚었는데, 나 임신했어.” 이성준의 동공은 움츠러들었다가 한참 만에 겨우 회복되었다. 찰나의 놀라움 뒤에는 오히려 걱정이 밀려왔다.“임심했는데 통증이 이렇게 심해?”그는 조바심이 나서 윌리엄스에게 의사를 불러오도록 재촉했다. 백아영은 아파서 힘이 없었던 나머지 그의 품에 푹 기대어 있었다. 전에 백아영은 이런 비슷한 환경에서 한 아이가 강제로 유산되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하고 산에 가서 실랑이를 벌였고, 이로 인해 병세가 심했다. 이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고생할까봐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백아영은 가볍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정상적이야.”‘정상이라니?’ 이성준은 다른 여자가 임신을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랐지만, 백아영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진작 알았더라면 둘째를 갖지 않았을 것이다. 8개월 후. 산부인과 수술실 문이 열리자 이성준이 급히 달려들였다. 점잖던 남자는 안달복달한 얼굴로 물었다.“제 마누라는 어때요? 무사한가요?”“모녀는 무사합니다.”
집사는 경악했다.“폐하, 그들은 굴러들어 온 복도 차버리니 분명 본때를 보여줘야 하는데, 어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윌리엄스의 안색을 본 집사는 목이 메었다. “폐하, 왜 그러십니까?” 윌리엄스는 조금 전까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이성준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경외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간신히 이빨 사이로 글자를 밀어냈다.이, 이 대표?” 이성준은 경멸하듯 그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윌리엄 집안의 자식이 확실히 다 컸네.” 윌리엄스의 얼굴이 더 새하얗게 질렸다. 엄청난 두려움이 엄습했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 이성준을 처음 만났다. 그때 이성준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기세가 등등하고, 과감하며, 감히 국왕인 윌리엄스의 아버지와 거래를 논했다. 그 당시 그의 아버지조차도 이성준을 대단하게 여겼다. 심지어 윌리엄스에게 앞으로 절대 이성준의 미움을 사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온 나라의 세력이 처참하게 약해질 것이다. 윌리엄스는 어렸을 때부터 이성준은 악마라고 마음에 새겨 두었다. 게다가 윌리엄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었다. 이성준은 그의 나라에 협조하지 않는 대신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반년 동안 누워계셨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너무 커서 윌리엄스는 일찌감치 이번 생은 절대 H 국에 가지 않기로 했고, 절대로 이성준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기존의 거래 협력을 모두 점진적으로, 완곡하게 해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항상 악마를 멀리하려고 했지만 이렇게 엮일 줄은 몰랐다. 백아영은 뜻밖에도 이성준의 아내였다! 어떤 생명의 은인 규칙, 첫눈에 반한 사랑 따위는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는 어떤 계획도 할 수 없었다. 단지 자신의 왜 행동을 하기 전에 백아영의 신원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후회되었다! 악마를 끌어들여 버렸다... “복을 차버린다나 뭐라나, 말을 그렇게밖에 못해?” 윌리엄스가 집사를 발로 매우 세게 찼
차에 타고 있던 남자들도 일어서더니 기세등등하게 백아영과 이성준을 포위했다. 험상궂은 얼굴의 한 남자가 환영 반 협박 반인 어투로 말했다. “두 분, 차에서 내리십시오.”차 밖에서는 윌리엄스가 활짝 웃으며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백아영이 차에서 내리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곁에 있던 집사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폐하, 궁전의 수비를 모두 강화 완료했습니다. 궁전 주위에 800명의 호위 병사를 추가로 파견했어요. 이분들은 이미 독 안에 든 쥐가 되셔서 도망갈 수 없습니다.” “이혼 변호팀 사람들은 이미 도착하셨고 두 분이 차에서 내리시면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폐하, 곧 미인을 품에 안게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윌리엄스의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다. 산 위에서 백아영의 워낙 강인한 모습에 사람도모자라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지금은 백아영의 대단한 솜씨도, 그녀의 남편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단념할 수밖에 없다. 모두 생명의 은인으로 보고 첫눈에 반하게 만든 백아영 탓이었다. 그는 이 나라의 왕이다. 그가 마음에 드는 한 반드시 그의 것이다. 또한 결혼 후 백아영을 자신의 매력에 매료시켜 점차 이성준을 잊게 할 자신이 충만했다. 윌리엄이 생각을 하던 중, 차 문이 열리고 관광버스에서 백아영이 내렸다. 윌리엄스는 넥타이를 매만지며 그녀를 반겼다.“아가씨, 또 뵙네요.”윌리엄스가 아양을 떠는 모습을 보고 백아영은 입을 다물었다. 백아영의 뒤로 큰 덩치의 이성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녀의 머리 위로 이성준은 차갑게 말했다.“내 아내를 뺏으려는 게 너야?” 이성준은 포위망 속에 서 있었다. 다른 사람의 구역에서 그는 독 안에 든 쥐였지만 그는 움츠러들지도 않고 여전히 기세등등했다. 이성준의 기는 모두를 앞질러 버려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하는 왕인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서늘한 몇 글자가 사람을 더욱 섬뜩하게 했다. 집사는 높은 인물들을 많이 보았었기에 즉시 이성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하지만 이곳은 그들의 궁전이
윌리엄스는 어안이 벙벙했다.백아영의 솜씨는 정말 놀라웠다. 그녀의 기묘한 침을 꽂는 기술이 더욱 놀라웠다. 보기만 해도 눈이 즐거워지는 백아영의 몸에는 빛이 보였다.그녀의 아름다움은 남달라서 비길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백아영은 여전히 은침을 손에 들고 윌리엄스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만 좀 건드리세요. 알아들으셨죠?”“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윌리엄스의 의욕 넘치는 말은 눈앞으로 가까워져 오는 침에 놀라 목이 메었다. 순식간에 덮쳐 온 위험과 두려움이 그를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백아영은 다시 경고했다.“잘 가세요. 바래다 드리지는 않을게요.”젊고 고집스러운 윌리엄스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의 위협은 그를 이성적으로 뒤로 물러나 타협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백아영은 바늘을 다시 집어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네 부하는 경련을 일으키다가 10여 분 만에 의식을 회복했다. 그들은 서로를 부축하며 몸을 일으키자 멀리 떨어진 곳에 백아영이 보였다. 비록 뒷모습뿐이었지만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폐하,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부족했어요.”윌리엄스는 백아영을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너희 탓이 아니야. 저 소녀가 너무 강할 뿐이야. 가자. 이제 내려가야지.”부하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 여왕님을... 그냥 이렇게 포기하시려고요?”윌리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그럼 내가 지금 뭘 할 수 있겠어?”말이 통하지도 않고 싸워서 이기지도 못하니 부하는 조용히 입을 꾹 닫았다.하지만 윌리엄스는 미소를 띠었다.“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뿐이야.”이성준은 열매 한 봉지 가득 따왔다. 그는 열매를 깨끗이 씻은 뒤 쟁반에 담아 백아영 앞에 대령했다. 하지만 안색이 좋지 않았다.“방금 돌아오는 길에 들었는데 누가 너를 귀찮게 했다면서?”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시 도리도리 저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문제를 일으켰어.”이성준은 자초지종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백아영은 잠시 멈칫하더니 웃었다. “아파서 머리까지 다쳤나. 걱정 마세요, 위험했지만 목숨은 건졌어요. 돌아가시면 의사부터 보세요. 잘 케어하면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백아영은 진지하게 당부했지만 상대방은 한마디도 귀담아듣지 않았다.백아영이 그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 청년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저 지금 진지해요.”“이것은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규칙이기도 합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은 반드시 몸으로 갚아야 합니다.”윌리엄스 왕족?백아영은 입헌군주제인 국가에 왔다. 이곳은 현대사회와 어우러졌지만 여전히 왕권을 시행하고 있다. 지금의 왕은 20대 초반의 청년으로 나이는 어리지만 듬직하고 성숙하며 상당한 재주를 가졌다고 전해졌다. 왕은 1년 넘게 국가 정무를 질서 있게 처리했다.다시 이 풋풋하고 고집 센 청년을 본 백아영은 목이 메었다. 왕은 소문과는 좀 다른듯했다.백아영은 청년한테 잡힌 손을 빼냈다.“그냥 눈에 보여서 구해준 거니 고마워하실 필요 없으세요. 그리고 저는 결혼까지 한 여자에요.”“결혼하셨군요...”청년은 매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젊고 예쁜 백아영이 일찍 결혼했으니 흔치는 않은 일이다. 그러나 청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저는 재혼에 대해 편견이 없어요. 남편분과 이혼해도 그대를 왕후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저는 이혼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청년이 눈썹을 찡그렸다. 그는 그제야 난처한지 땅바닥에서 일어나 앉아서는 백아영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무슨 복잡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백아영은 혼자 심각하게 고민하는 청년이 이해가 되지 않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뜨려고 했다.곧이어 청년도 벌떡 일어났다. 너무 갑자기 몸을 일으킨 탓인지 몸을 휘청거리자 곁에 있던 남성이 얼른 그를 부축해 주었다.청년은 휘청거리는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백아영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막아섰다. 그의 맑은 눈은 어느새 포악해졌다.“아가씨, 억양을 들어보면 외국인인 것 같네요. 아직 우리 윌리엄스 왕족의 룰에 대해 잘 모
하지만 백아영은 현무가 힘들어할까 봐 차마 너무 많은 프로젝트를 참가하지 못하게 하고 관광지 한 곳만 더 돌고 남원에 돌아갈 생각이었다.이성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출산 장려 정책은 참 옳아.”백아영은 어리둥절했다.“자식이 많아야 집도 떠들썩하고, 현무도 동생이 생기지.”어린 노동자가 하나 더 필요하다는 그의 뜻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이성준은 방긋 웃으며 백아영을 벽에 바짝 붙였다. “여보, 우리 현무에게 동생 만들어주자.”이날 현무와 백아영은 영상통화를 했다. “엄마, 안색이 안 좋아. 어디 아파?”화면 속에서 백아영의 안색은 살짝 하얗게 보였다.하지만 별다르게 불편한 곳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낮에 산에 오르느라 피곤해서 그런가 봐. 괜찮아, 좀 쉬면 괜찮아 질 거야.” “그럼, 내일 일단 산을 내리지 말고 호텔에서 쉬는 거예요?”내일 하산할 예정이었지만 백아영은 단호하게 답했다.“맞아.”그제야 현무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통화를 끊고 백아영의 이마에 길쭉한 손이 닿았다. 이성준은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고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실제로 봤을 때 백아영은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이성준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내가 의사인데 모르겠어?”“하룻밤을 묵어도 좋으니까, 난 네가 좋아하는 열매를 좀 따올게.”이 산의 열매는 특산물이었기에 백아영이 매우 좋아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한 후, 이성준은 혼자 산꼭대기에 가서 열매를 땄고, 백아영은 아름다운 산기슭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아침 풍경을 감상했다. 그녀는 조용히 열매를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동안 찻집 안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고함소리가 들려왔다.“도와주세요! 여기 도와주세요!”“의사 없어요? 응급처치할 줄 아는 사람 혹시 있어요? 좀 살려주세요! 저의 도련님을 살려주세요...”식당에서 대략 이십 대 초반의 한 청년이 땅에 누워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
한 달 뒤.인천공항에서 현무는 양복을 차려입고 반듯하게 서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백아영을 배웅했다.“엄마, 걱정하지 말고 잘 놀다 와요. 여기 일은 저한테 맡겨요.” 현무는 이성준의 아들답게 한 달 만에 기본적인 경영 업무를 배웠고, 심지어 위정을 도울 수 있었다.또한 그는 이성준의 외아들인 만큼 이성그룹의 후계자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는 다섯 살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모든 주주와 직원들을 위협하기에 충분했기에 일을 더 쉽게 추진할 수 있었다.게다가 이성준의 한 달간 밑받침을 잘 깔아놓은 덕에 안심하고 현무와 위정에게 이성그룹을 맡길 수 있게 되었다.위정의 불평도 적어졌다. 그는 앞으로 일할 날에 희망이 생긴 것 같았다.“내 아들 최고.”백아영은 현무를 꼭 끌어안고 그의 볼에 쪽 뽀뽀했다.“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영상통화 해. 날마다 기분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줘.”“누가 감히 너를 괴롭히면, 엄마와 아빠가 바로 날아와서 때려 놓을 거야.”백아영의 품에서 현무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순간 엘리트에서 어린 아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하지만 이성준의 말과 백아영의 행복을 생각하며 현무는 마음을 가다듬고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였다.“엄마 걱정하지 마, 외삼촌과 위정 아저씨가 계셔서 아무도 날 못 괴롭혀. 내가 좀 더 크면 내가 엄마를 보호해야 해.”백아영은 감동되어서 감정이 벅차 놀랐다. 현무는 너무 든든한 아들이었다.선우경진은 팔짱을 낀 채 한쪽에 서 있었다. “이씨 가문의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 선우 일가가 남아있다는 것을 잊지 마.”“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새로운 아이템도 많이 생각해 둬.”한 달 동안 그들은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급한 불은 거의 다 껐다. 하지만 의학은 끝이 없고 신약 연구는 더 중요했기에 선우경진은 수시로 백아영을 감시했다.백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다른 곳에서 시야를 넓히고 영감을 얻으면 신약을 개발하는데 더 쉬웠다.이성준은 한쪽에
현무는 계획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다섯 살짜리 꼬마에게는 좀 시기상조였다. 하지만 이성준은 그런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그러나 이성준의 엄숙한 표정을 보니 바로 계획을 하나 만들어 내야 할 것 같았다.현무는 골똘히 생각했다.“공부를 열심히 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매일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요.”“엄마를 기쁘게 해주는 것과 함께 있는 것을 동시에 이룰 수 없어.”“왜요?”현무가 공부해서 잘하고 매일 학교 갔다 오면 자연스레 백아영을 볼 수 있고 그녀도 즐거워하는 게 일상이었다.“너 그동안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잊었어?”현무가 네 살 되기 전까지 백아영은 그의 곁에 있어줄수 없었다. 백아영이 돌아온 후, 비록 온 가족이 드디어 모였지만,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다 백아영은 떠나야 했고, 항상 바쁜 일상에 기쁠 때도 있었지만 힘들 때가 더 많았다. 현무는 그런 백아영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엄마는 나와 함께 있어서 기분이 나쁜 거예요?”어린 현무의 얼굴에 미안한 기색이 돌기도 전에 이성준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너 때문이 아니야. 엄마가 놓인 상황 때문이지. 남원에서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일들과 언제든지 생기는 변화 때문이야.”“만약 누군가가 이 짐을 대신 나눠주고, 그런 일들을 완전히 해결해 주고, 엄마가 마음껏 여행을 다닐 수 있게 해준다면 매일 즐거워할 거야.”현무는 어리지만 총명해서 즉시 이성준의 뜻을 알아차렸다.“아빠, 제가 엄마의 일을 나누어서 해도 돼요?”이성준은 확신에 차서 말했다.“너는 할 수 있어.”“그런데 힘들 거야. 엄청 힘들 수 있어. 대신에 엄마를 오랫동안 못 볼 텐데, 그래도 할래?”현무는 힘든 것은 두렵지 않지만, 오랫동안 백아영을 볼 수 없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현무는 머뭇거렸다. 그는 섭섭해서 고뇌했다.“나 그냥 엄마랑 여행 가면 안 돼?”이성준은 자애로운 아버지의 미소를 지었다. “네가 경영대를 일찍 졸업하면 돼.”현무는 지능이 높아서, 월반하는
이성준은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 은퇴할 생각이야.”‘역시!’백아영이 머릿속으로만 하던 황당한 추측을 이성준 입으로 직접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믿기지 않았다. 왜 이성준이 갑자기 도망 오려 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큰 짐을 위정과 선우경진한테 내던졋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성준은 그들을 훈련하고 있었다.수단이 좀 잔인했을 뿐이다.“왜 갑자기 은퇴하고 싶은 거야?”백아영은 아직 앞날이 밝은 이성준이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성준은 백아영을 응시하며 길고 가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쓱쓱 만졌다.“그동안 너무 고생 많았어.”이성준은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아 수많은 고통을 겪었다.이성준의 괴로운 심정은 눈에 훤히 비쳤다. 그는 사실 오래전부터 은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영아, 앞으로 남은 생 동안 나는 네가 조용하고 평온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은퇴하고 쇼핑센터를 떠나면 원한도 모두 훨훨 털어 버릴 수 있다. 두 사람은 세계 여행하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된다.백아영의 머릿속은 멍해졌다.백아영은 이성준이 은퇴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자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성준이 계획한 미래에 항상 그녀가 있었다. 그의 미래는 온통 백아영 한사람이었다.백아영은 감동되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가 환상하던 미래는 정말 기대할 만한 것같았다.“하지만 지금은 내가 선우경진과 위정을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아.”겨우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들은 고통을 호소하며 참지 못하는데 정말 큰 일이라면 더 감당하기 어려워할 게 뻔했다.이성준은 눈썹을 찡그리며 잠시 사색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현무 이제 다섯 살이니까 남자 다 됐지.”백아영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설마 현무에게 맡길 생각은 아니지?”이성준은 담담하게 되물었다.“안 될 게 뭐가 있어?”‘안 될 게 뭐가 있겠냐고? 현무 이제 겨우 다섯 살인데!’이성준은 여전히 꿈쩍하지 않았다. “내가 다섯 살 때, 이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