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혜는 으쓱한 듯하면서도 눈썹을 찡그렸다.나는 티 내고 싶지 않았다.“어, 어디 있어?”“정말 공교롭게도 내가 부산에 있는 가게의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더니 사러 갔어.”가혜는 웃으면서 손으로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고 키스 자국이 드러났다.“그래?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나는 두어 걸음 걷고 나서 다시 가혜를 돌아보았다.“그가 정말 너를 사랑한다면, 별일 없으면 네가 많이 설득해서 일찍 이혼 합의서에 서명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해, 짜증 나니까!”이 말을 들은 가혜가 갑자기 화를 냈다.“강혜진, 이 나쁜 년, 뭐가 그렇게 당당해?”가혜가 화를 내는 모습에 내 마음은 더없이 후련했다.‘이게 뭐라고,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뒤에 있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뉴스에서 가혜를 보게 되었다.가혜 조상들의 무덤이 인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현지 언론은 도굴범이 어느 왕조의 유적지인 줄 알고 도굴한 것이라 추정된다고만 했을 뿐이라고 전했다.도굴범이 한 부분을 망가뜨리고 보니 잘못됐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추측이었다.보도된 사진은 가혜가 부모님이 묻힌 장소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장면이었고 태성의 코트 자락도 보였다.한눈에, 옆모습만 보고 나는 태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나는 태성이 녹성에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익명으로 문서를 이사회의 고위층 이메일에 보냈다.요 몇 년 동안, 태성의 행위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생겼고 예전에 내가 태성 뒤에서 막아줬기에 태성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결국 내가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하지만 나는 회사가 내 의사 결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3년 동안, 이 회사는 태성에 의해 거의 빈 껍데기로 운영되고 있었다.그렇게 하면 곧 무너질 것이다.“혜진야, 나한테 와, 나는 항상 너의 능력을 인정해 왔어, 네가 나를 도울 수 있다면, 조건은 네 마음대로 해!”수지는 한 잔 또 한 잔 나를 취하게 하려고 컵에 술을 부었고 그녀와 함께
사실 며칠 밤인지 나도 셀 수 없었다.늘 잠을 잘 잘지 못하고 꿈을 많이 꾸었으며 잠이 잘 오지 않았다.나는 리클라이너에 누워 눈을 감았다.순간 어둠침침한 지하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지저분한 목소리로 온갖 욕설과 모욕을 퍼붓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혜진 씨? 혜진 씨?”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심준휘의 점잖은 얼굴이었다.준휘는 평온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생각보다 더 안 좋네요? 괜찮아요, 저만 믿으시면 문제없어요!”나는 준휘가 건네준 물을 받고 말했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사실 저희 만난 적 있어요.”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준휘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깜박였다.“어릴 적요. 혜진 씨 부모님이랑 그분들의 일을 알고 있어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내 기억 속에는 정말 준휘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준휘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그는 나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혜진 씨는 그때 항상 나를 끌고 바비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나는 미안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어렸을 때, 바비인형을 끌고 같이 놀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났다.준휘는 머리를 흔들더니 갑자기 정중해졌다.“아저씨, 아주머니는 좋은 분들이라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혜진 씨는 어려운 상황을 딛고 밝은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그 순간 나는 준휘의 몸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그의 눈을 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내리깔았다.“감사합니다!”세 번째 심리치료가 끝난 후, 나는 준휘를 데리고 한 식당에 와서 밥을 먹었다.그런데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태성과 가혜가 팔짱을 끼고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태성은 나와 내 옆에 앉아 있는 준휘를 보았고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냉랭해졌다.태성은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강혜진, 어쩐지 네가 나와 이혼하려고 하더라니, 나 몰래
가혜는 말문이 막혔다.“너!”“가자! 강혜진이랑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야! 강혜진, 나는 네가 나에게 부탁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그들이 간 후 준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뭘 빌어요?”“무릎 꿇고 용서를 빌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농담으로 이혼하겠다고 한 줄 아는 것 같은데요?”준휘은 한참 동안 커피를 마시다가 말을 꺼냈다.“아까 사람한테 제 명함 드리고 싶네요.”나는 피식 웃었다.준휘은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나는 부끄러운 듯 웃음기를 삼켜버렸다.“혜진 씨, 많이 웃어요! 당신은 웃으면, 아주 예뻐요!”...그날 이후, 나는 태성이 서명한 이혼 서류를 받았고 나는 1초만 더 있어도 태성이 번복할까 봐 급히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나는 그와 이혼 수속을 밟을 시간을 정했고 대기하는 한 달 동안, 태성은 여전히 고귀한 자세로 나에게 명령했다.“고개만 숙여주면 이번은 용서해 줄게, 강혜진, 네가 고개만 숙이면 말이야!”내가 관심이 없자, 태성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완벽히 이혼하던 날, 가혜는 태성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쯧쯧, 태성, 강혜진 좀 봐. 하하, 뭘 닮은 거 같아? 물에 빠진 개 같네?”태성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네.”태성이 차를 몰고 지나가자 먼지가 날렸다.나는 쉬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해서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나는 늘어선 자동차 배기가스를 보면서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시작해도 돼.”내가 일곱 번째로 심리 치료를 하러 갔을 때, 태성이 사고를 당했다.정확히 말하면 회사에 일이 생겼다.태성이 앞장서서 투자한 프로젝트에서 책임자가 돈을 받고 도망쳤던 것이다.경찰에 신고했지만, 사람을 찾지 못했다.그리고 회사가 처리하려고 했을 때, 태성과 가혜마저 자취를 감췄다.빚진 돈이 너무 많아 태성의 명의로 된 모든 돈을 쓸 수 없게 되었다.그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예전에 집은 빨간 페인트로 가득 찼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서서 한없이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실에서 나는 못 쓰게 된 한쪽 다리를 끌고 구석에 앉아 있었다.축축한 벽이 내 웃옷을 적셨고 대문이 열리고 뿜어져 나오는 빛에 나는 적응하지 못해 눈을 가렸다.발소리를 듣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시 안으로 몸을 숨겼다.“사모님, 사장님께서 사모님 데리고 오라고 하셨어요.”나는 나를 향해 걸어오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그 사람은 진태성이 계속 고용하던 경호원이다.나는 눈을 내리깔고 대꾸했다.“응.”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한쪽 다리를 절며 몇 걸음 걸었다.경호원은 깜짝 놀란 듯했다.“사모님, 발이 왜...?”나는 손으로 바짓가랑이를 꽉 쥐고 있었고 머리는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아까 궤짝에 맞아 뼈가 끊어진 것 같아.”경호원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사장님께 왜 말 안 하세요?”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대답하지 않았다.‘뭐라고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진태성이 나를 내보내 줄까? 아니면 나를 위해 의사를 불러줄까?’“제가 부축해 드릴게요.”경호원이 복잡한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나를 부축했다.지하실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차에서 내리는 태성과 임가혜를 봤다.“태성, 저 여자 일부러 불쌍한 척하면서 사람 신경 쓰이게 했을 거라고 했지? 봐봐, 이렇게 가까운데, 다른 사람보고 부축해 달라고 하다니.”태성은 소리를 듣고 내 쪽을 보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에는 우쭐거리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태성은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고 가장 가까이 다가왔을 때 갑자기 두 손을 벌렸다.그러나 나는 확 움츠러들었고 황급히 태성의 품을 피했다.나는 다리에서 전해지는 심한 통증을 느끼지 못한 듯 몸을 심하게 움츠렸다.“때리지 마, 때리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태성의 두 손은 여전히 벌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태성은 천천히 두 손을 내려놓고 내 앞에 섰다.“무슨 일이야?”태성은 내 옆에 있는 경호원에게 물었
“됐어, 태성아, 화내지 마, 회장님과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으니 일단 가자.”태성은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손에 든 핸드폰을 꽉 쥐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강혜진, 말 잘 안 들으면, 지금부터 좀 적게 나와! 내 체면 깎이게 하지 말고!”“이 3년 동안 넌 내 아내로서 뭘 했어? 모두 가혜가 당신을 대신해서 내 곁에서 날 돌봐 주었잖아. 가혜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전부터 견딜 수 없었을 거야! 너는 네가 내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이 말을 남기고 태성은 가혜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가혜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그녀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루저’라고 했다.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사모님! 새끼손가락이 왜 그래요?”나는 천천히 머리를 숙여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바라봤다.떨어져 있은 지 3년, 태성은 그저 황급히 나를 한 눈 보고 갔을 뿐이다.그는 심지어 내 다리의 이상한 점을 미처 발견하지도 못했고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나는 자기적으로 웃음이 났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나는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온몸에 힘이 빠져 나는 경호원의 몸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가혜는 3년 전에 태성의 곁으로 왔다.나는 줄곧 태성에게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이성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후에 그 여자애 집에 일이 생겨서 여자애를 외국으로 보냈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태성은 연애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성과도 썸도 타본 적이 없었다.나는 알고 있었다. 태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러나 나도 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몇 년 동안, 집에서 나에게 많은 남자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부모님은 내가 동성을 좋아하는 줄 아셨다.그날, 태성이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나를 찾아왔다.“혜진아, 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거야. 너 결혼하고 싶은 사람
경호원은 나를 별장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떠났다.문 열기 전, 나는 경호원이 입력한 비밀번호를 똑똑히 보았다.그것은 이 집의 옛날 비밀번호가 아닌 가혜의 생일이었다.나는 발꿈치를 들고 안의 모든 것을 봤다.3년 전과 똑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배치였다.입구에 놓인 남녀 슬리퍼, 남성용은 태성 것이고 여성용은 가혜 것일 것이다.태성의 침실에는 베개가 두 개 있고 옷장에서 왼쪽이 그의 옷이고 오른쪽이 가혜의 옷이었다.화장실 안에는 칫솔 두 개와 컵 두 개가 있었고 여성용품도 크고 작은 병들이 가득 있었다.이 모든 것이 나에게 말하고 있다.태성과 가혜는 진작에 함께 잤다는 것을 말이다.문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을 때, 나는 일찍이 나의 것이 아니었던 이 방에서 나왔다.두 가닥의 얽히고설킨 그림자는 어두운 달빛 아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입맞춤을 나눴다.“퍽!”나는 거실의 조명을 켰다.가혜는 홍조를 띤 얼굴로 경악을 금치 못했고 태성은 무의식적으로 가혜를 밀쳐냈다.“언제 돌아왔어?”태성은 이마를 문질렀다.“술을 많이 마셨는데, 가혜가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그 늙은 술꾼들의 손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그러고 나서 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혜진아, 이 모든 일은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애초에 네가 그렇게 미치지 않았다면, 내가 이 몇 년 동안 이렇게 힘들었을까?”나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태성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원망을 듣고 있었다.가혜가 부엌에서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따뜻한 물 좀 마시세요.”가혜의 부드러움은 지금의 내 모습에 비하면 더 살뜰한 아내 같았다.태성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가혜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혜 요즘 집을 구하고 있는데,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살아.”태성이 내가 대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때,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당신의 침실에 가혜 씨 물건으로 가득 찼던데?”태성은 표정이 굳어 있었고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결국 태성의 미움을 샀다.태성은 탁자 위의 유리컵을 들고 나를 향해 던져버렸고 컵이 와장창 깨졌다.내 이마에서 천천히 피가 흘렀고 태성은 놀라 맞은편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너, 왜 안 피해?”‘피해? 내가 피할 수 있을까? 태성이 분부한 거 아니야? 피하면 안 돼, 내가 피하면, 우리 부모님의 뼈를 개에게 먹일 거야. 진태성은 늘 말한 대로 하지 않았어?’예전에 태성이 나에게 말했다.“강혜진, 네가 가혜의 나쁜 말을 꾸며내려고 한다면,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나는 지하실에서 가혜가 그 일 때문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졌다고 사람을 찾아 나를 심하게 때렸고, 가혜가 밥을 못 먹으면 나도 못 먹게 했다.식사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수 사용량도 조절해야 했다.가혜가 하마터면 뛰어내릴 뻔했다고 태성은 다른 사람을 시켜 내 다리뼈와 손뼈를 부러뜨렸다.피를 많이 흘려 나는 현기증이 나서 눈을 깜박였다.태성이 빠른 걸음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가혜야, 가서 거즈 가져와.”그러나 가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태성, 혜진 언니가 원하는 게 바로 이 효과야, 가만히 서 있다가 너한테 맞으면 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잖아?”태성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다.한참 있다가 태성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강혜진, 너 너무 유치한 거 알아? 이렇게 해서 나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너 나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사과했어? 지금 가혜에게 무례했던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면, 더 이상 네 잘못을 묻지 않고 용서해 줄게.”가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태성, 사과는 가볍게 한마디면 충분해?”태성은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곧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강혜진, 무릎 꿇고 사과해!”이마의 피가 갑자기 태성 손등에 뜨거운 물처럼 뚝뚝 떨어졌고 태성은 엉겁결에 피했다.가혜는 내 앞으로 다가와 태성의 손을 잡고 휴지를 꺼내서 그를 대신해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내 새끼손가락을 보자, 태성은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다가왔다.“나 몰랐어!”‘몰랐어? 그럴 리가?’매번 때린 후의 목소리는 확실히 태성의 목소리였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태성은 떨어지는 내 손을 빠르게 잡았다.나는 태성의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는 그를 밀어내는 것을 택했다.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앞에 있는 태성을 뚫어져라 보았다.“너랑 관련이 있든 없든 이젠 상관없어. 진태성, 나는 이미 장애인이 됐어.”진실이 뭐가 됐던, 태성이 사람을 보내 나를 때린 것이든 아니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다.애초에 나를 속여서 지하실로 보낸 사람이 바로 태성이기 때문이다.남편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태성의 발언이 아니었다면, 가혜에 대한 내 고집을 ‘벌’로 나에게 돌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꼴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아무것도 필요 없어, 회사 너한테 줄게, 난 빈털터리로 나갈 테니까, 우리 부모님 묻힌 곳만 알려주면 돼, 내일 계약서 쓸 사람 찾을 거야.”나는 안색이 창백하고 위가 조금씩 아파졌다. 지하실에서 3년 동안 갇혀 있어서 얻은 고질병이다.매일 설익은 밥, 차갑고 썩은 잎사귀만 먹어서 죽 한 그릇을 삼키기가 힘들었다.태성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강혜진, 난 정말 모르겠어, 내 말을 못 믿는 거야?”“태성, 혜진 언니가 너랑 이혼하는 것을 아쉬워 안 할 것 같아?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애초에 네 프로젝트가 잘못된 걸 언니가 사직하고 모든 걸 자기 책임으로 밀었잖아, 네가 자백 안 했던 거 잊었어?”“강혜진은 너랑 이혼하는 게 얼마나 아깝겠어! 잊었어? 언니한테는 이제 너밖에 없어!”가혜의 말이 맞다.그때의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정말 태성밖에 없었다.나중에 태성이 업무 중에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고 그는 해고되고 싶지 않아 했었다. 그는 자신이 한때 경멸했던 그 사람들로부터 폄하되고 싶지 않아 했다.“혜진아, 나 좀 도와
가혜는 말문이 막혔다.“너!”“가자! 강혜진이랑 무슨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야! 강혜진, 나는 네가 나에게 부탁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그들이 간 후 준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뭘 빌어요?”“무릎 꿇고 용서를 빌 거로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농담으로 이혼하겠다고 한 줄 아는 것 같은데요?”준휘은 한참 동안 커피를 마시다가 말을 꺼냈다.“아까 사람한테 제 명함 드리고 싶네요.”나는 피식 웃었다.준휘은 나를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나는 부끄러운 듯 웃음기를 삼켜버렸다.“혜진 씨, 많이 웃어요! 당신은 웃으면, 아주 예뻐요!”...그날 이후, 나는 태성이 서명한 이혼 서류를 받았고 나는 1초만 더 있어도 태성이 번복할까 봐 급히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나는 그와 이혼 수속을 밟을 시간을 정했고 대기하는 한 달 동안, 태성은 여전히 고귀한 자세로 나에게 명령했다.“고개만 숙여주면 이번은 용서해 줄게, 강혜진, 네가 고개만 숙이면 말이야!”내가 관심이 없자, 태성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완벽히 이혼하던 날, 가혜는 태성의 옆에 바짝 붙어 있었다.“쯧쯧, 태성, 강혜진 좀 봐. 하하, 뭘 닮은 거 같아? 물에 빠진 개 같네?”태성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보았다. “그러네.”태성이 차를 몰고 지나가자 먼지가 날렸다.나는 쉬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해서 다리가 많이 좋아졌다.나는 늘어선 자동차 배기가스를 보면서 조용히 전화를 걸었다.“시작해도 돼.”내가 일곱 번째로 심리 치료를 하러 갔을 때, 태성이 사고를 당했다.정확히 말하면 회사에 일이 생겼다.태성이 앞장서서 투자한 프로젝트에서 책임자가 돈을 받고 도망쳤던 것이다.경찰에 신고했지만, 사람을 찾지 못했다.그리고 회사가 처리하려고 했을 때, 태성과 가혜마저 자취를 감췄다.빚진 돈이 너무 많아 태성의 명의로 된 모든 돈을 쓸 수 없게 되었다.그 두 사람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예전에 집은 빨간 페인트로 가득 찼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 앞에 서서 한없이
사실 며칠 밤인지 나도 셀 수 없었다.늘 잠을 잘 잘지 못하고 꿈을 많이 꾸었으며 잠이 잘 오지 않았다.나는 리클라이너에 누워 눈을 감았다.순간 어둠침침한 지하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지저분한 목소리로 온갖 욕설과 모욕을 퍼붓는 소리가 귀에 들어왔다.“혜진 씨? 혜진 씨?”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심준휘의 점잖은 얼굴이었다.준휘는 평온한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생각보다 더 안 좋네요? 괜찮아요, 저만 믿으시면 문제없어요!”나는 준휘가 건네준 물을 받고 말했다.“감사합니다.”“아닙니다, 사실 저희 만난 적 있어요.”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준휘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깜박였다.“어릴 적요. 혜진 씨 부모님이랑 그분들의 일을 알고 있어요.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내 기억 속에는 정말 준휘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준휘도 알아차린 것 같았다.그는 나를 향해 살짝 웃어 보였다.“혜진 씨는 그때 항상 나를 끌고 바비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나는 미안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어렸을 때, 바비인형을 끌고 같이 놀던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기억이 잘 안 났다.준휘는 머리를 흔들더니 갑자기 정중해졌다.“아저씨, 아주머니는 좋은 분들이라 지금, 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실 것 같아요.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라도, 혜진 씨는 어려운 상황을 딛고 밝은 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그 순간 나는 준휘의 몸에서 한 줄기 빛을 본 것 같았다.그의 눈을 보면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다.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눈을 내리깔았다.“감사합니다!”세 번째 심리치료가 끝난 후, 나는 준휘를 데리고 한 식당에 와서 밥을 먹었다.그런데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태성과 가혜가 팔짱을 끼고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태성은 나와 내 옆에 앉아 있는 준휘를 보았고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냉랭해졌다.태성은 빠른 걸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강혜진, 어쩐지 네가 나와 이혼하려고 하더라니, 나 몰래
가혜는 으쓱한 듯하면서도 눈썹을 찡그렸다.나는 티 내고 싶지 않았다.“어, 어디 있어?”“정말 공교롭게도 내가 부산에 있는 가게의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했더니 사러 갔어.”가혜는 웃으면서 손으로 목덜미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고 키스 자국이 드러났다.“그래? 그럼, 다음에 다시 올게.”나는 두어 걸음 걷고 나서 다시 가혜를 돌아보았다.“그가 정말 너를 사랑한다면, 별일 없으면 네가 많이 설득해서 일찍 이혼 합의서에 서명해,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말라고 해, 짜증 나니까!”이 말을 들은 가혜가 갑자기 화를 냈다.“강혜진, 이 나쁜 년, 뭐가 그렇게 당당해?”가혜가 화를 내는 모습에 내 마음은 더없이 후련했다.‘이게 뭐라고, 내가 준비한 서프라이즈는 뒤에 있는데?’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뉴스에서 가혜를 보게 되었다.가혜 조상들의 무덤이 인위적으로 파괴되었지만,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현지 언론은 도굴범이 어느 왕조의 유적지인 줄 알고 도굴한 것이라 추정된다고만 했을 뿐이라고 전했다.도굴범이 한 부분을 망가뜨리고 보니 잘못됐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추측이었다.보도된 사진은 가혜가 부모님이 묻힌 장소로 허겁지겁 달려가는 장면이었고 태성의 코트 자락도 보였다.한눈에, 옆모습만 보고 나는 태성이라는 것을 알았다.나는 태성이 녹성에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익명으로 문서를 이사회의 고위층 이메일에 보냈다.요 몇 년 동안, 태성의 행위에 짜증이 난 사람들이 생겼고 예전에 내가 태성 뒤에서 막아줬기에 태성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러나 결국 내가 책임을 지고 사직했다.하지만 나는 회사가 내 의사 결정과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내가 없는 3년 동안, 이 회사는 태성에 의해 거의 빈 껍데기로 운영되고 있었다.그렇게 하면 곧 무너질 것이다.“혜진야, 나한테 와, 나는 항상 너의 능력을 인정해 왔어, 네가 나를 도울 수 있다면, 조건은 네 마음대로 해!”수지는 한 잔 또 한 잔 나를 취하게 하려고 컵에 술을 부었고 그녀와 함께
나는 또 데이터 기술을 알고 있는 친구를 찾아 해독해 달라고 부탁했다.‘이 영상이 있으니깐 다른 영상도 분명 남아 있을 거야.’내가 아는 사람이 딱 그 몇 명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진성이 나를 찾을 수 있을 줄 예상했다.나는 태성을 친한 친구들에게 다 소개했었다.나는 수지 명의의 집 중 한 채에 묵고 있었다.내가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을 때, 오랫동안 기다린 듯한 태성을 만났다.태성은 나를 보자, 얼굴에 흥분과 불만이 번갈아 나타났다.“강혜진, 답장이 없길래 죽은 줄 알았어!”나는 태성을 무시하고 한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태성이 내 팔을 잡았다.“언제까지 이럴 거야? 너랑 이혼 안 하겠다고 했는데, 뭘 어떻게 하고 싶은데? 너는 그렇게 가혜를 용납할 수 없어?”“알겠으니까, 내가 가혜에게 다른 집을 구해주고 나가 살라고 할게, 이러면 돼? 그만 좀 해!”나는 내가 이렇게 단호하게 태성과 이혼하고 싶을 줄 몰랐다.나의 이런 모습은 태성의 눈에는 여전히 질투하는 것처럼 보였다.나는 그의 손에서 팔을 빼냈다.“진태성, 뭔가 오해한 것 같아. 내가 너랑 이혼하려는 건 네가 더럽다고 생각해서야, 너 때문에 임가혜를 질투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태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나빠졌다.“강혜진, 다시 한번 말해 봐!”나는 태성의 눈을 주시하고 또박또박 내뱉었다.“난 네가 더럽다고”태성은 그 3년 동안의 고통이 나에게 얼마나 심각한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알지 못했다.만약 태성이 조금만 신경을 쓰고 봤다면, 지금까지 내가 그를 마주하고 있을 때마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뼛속까지 파고드는 그 소리도 떠올랐다.“혜진야, 아직도 가혜가 미워?”마치 매일 누군가가 못으로 내 머리를 두드리는 것 같았고 이 몇 글자를 내 머릿속에 깊이 박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미워! 내가 어떻게 그들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수지가 부모님이 묻힌 곳을 찾았지만, 나는 그들을 마지막으로 볼 기회가 없었다.“혜진아, 버텨야 해, 아직 네가 해야
대문을 닫는 순간, 나는 새로 태어난 것 같았다.나는 나의 옛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10분도 채 안 돼 그녀는 차를 몰고 동네로 와 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진태성, 이 남자는 정말 지독해, 이 3년 동안 내가 줄곧 진태성에게 너의 행방을 물었는데, 걔는 그저 네가 외국에 갔다고만 했고 돌아오는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알려줬어. 나는 진태성이 임가혜와 사이가 가까운 것을 보고 네가 국외로 기분 전환을 하러 갔다고 생각했는데, 걔가 불법적인 일을 할 줄은 몰랐어!”“수지야, 부탁 좀 해도 될까?”“응!”“이혼 합의서를 작성해 주고, 부모님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아봐 줘.”수지는 흔쾌히 대답하고 나서 망설이며 나에게 물었다.“진태성과 임가혜는 그냥 놔둘 생각이야?”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3년 동안 암울했던 시간의 고통은 나를 너무 힘들게 했고 나는 이 일을 가볍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수지야, 나에게 아직 증거가 없어, 하지만 증거를 아마 누군가가 곧 가져다줄 거야.”...수지의 업무 처리 효율은 아주 높았고 이튿날 오전 태성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지만 나는 거절했다.부모님이 어디에 묻혔는지에 관한 소식을 일주일 동안 기다렸지만, 아직 알지 못했다.수지는 나를 위해 전문 의료진을 불러왔지만, 진료를 받고 나서도 다들 아쉬운 표정이었다.“늦었지만 해볼 만해.”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리 힘들어도 힘껏 싸울 것이라고 마음먹었다.꿈속에서, 나는 수없이 악몽에 시달렸고 깨어난 후면 옷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수지가 서류를 나에게 건네줄 때, 그녀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혜진아, 네 추측이 맞아, 임가혜가 너희 부모님이랑 인연이 있어.”내가 서류봉투를 열자, 눈에 확 커졌다. 왜냐하면 그 속에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의 참담한 사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나는 사진을 구석구석 어루만졌고 가슴이 칼에 베인 듯이 아팠다.‘역시 내가 예상한 대로 임가혜가 갑자기 귀국한 게 아니라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온
기이하게 일그러진 내 새끼손가락을 보자, 태성은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 다가왔다.“나 몰랐어!”‘몰랐어? 그럴 리가?’매번 때린 후의 목소리는 확실히 태성의 목소리였다.“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태성은 떨어지는 내 손을 빠르게 잡았다.나는 태성의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나는 그를 밀어내는 것을 택했다.나는 입술을 오므리고 앞에 있는 태성을 뚫어져라 보았다.“너랑 관련이 있든 없든 이젠 상관없어. 진태성, 나는 이미 장애인이 됐어.”진실이 뭐가 됐던, 태성이 사람을 보내 나를 때린 것이든 아니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졌다.애초에 나를 속여서 지하실로 보낸 사람이 바로 태성이기 때문이다.남편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태성의 발언이 아니었다면, 가혜에 대한 내 고집을 ‘벌’로 나에게 돌려주지 않았다면, 나도 이런 꼴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아무것도 필요 없어, 회사 너한테 줄게, 난 빈털터리로 나갈 테니까, 우리 부모님 묻힌 곳만 알려주면 돼, 내일 계약서 쓸 사람 찾을 거야.”나는 안색이 창백하고 위가 조금씩 아파졌다. 지하실에서 3년 동안 갇혀 있어서 얻은 고질병이다.매일 설익은 밥, 차갑고 썩은 잎사귀만 먹어서 죽 한 그릇을 삼키기가 힘들었다.태성의 얼굴에는 오랜만에 보는 다급한 기색이 역력했다.“강혜진, 난 정말 모르겠어, 내 말을 못 믿는 거야?”“태성, 혜진 언니가 너랑 이혼하는 것을 아쉬워 안 할 것 같아? 일부러 이렇게 말한 거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 애초에 네 프로젝트가 잘못된 걸 언니가 사직하고 모든 걸 자기 책임으로 밀었잖아, 네가 자백 안 했던 거 잊었어?”“강혜진은 너랑 이혼하는 게 얼마나 아깝겠어! 잊었어? 언니한테는 이제 너밖에 없어!”가혜의 말이 맞다.그때의 나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정말 태성밖에 없었다.나중에 태성이 업무 중에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고 그는 해고되고 싶지 않아 했었다. 그는 자신이 한때 경멸했던 그 사람들로부터 폄하되고 싶지 않아 했다.“혜진아, 나 좀 도와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결국 태성의 미움을 샀다.태성은 탁자 위의 유리컵을 들고 나를 향해 던져버렸고 컵이 와장창 깨졌다.내 이마에서 천천히 피가 흘렀고 태성은 놀라 맞은편에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너, 왜 안 피해?”‘피해? 내가 피할 수 있을까? 태성이 분부한 거 아니야? 피하면 안 돼, 내가 피하면, 우리 부모님의 뼈를 개에게 먹일 거야. 진태성은 늘 말한 대로 하지 않았어?’예전에 태성이 나에게 말했다.“강혜진, 네가 가혜의 나쁜 말을 꾸며내려고 한다면, 나는 반드시 너를 죽일 거야.”나는 지하실에서 가혜가 그 일 때문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빠졌다고 사람을 찾아 나를 심하게 때렸고, 가혜가 밥을 못 먹으면 나도 못 먹게 했다.식사를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수 사용량도 조절해야 했다.가혜가 하마터면 뛰어내릴 뻔했다고 태성은 다른 사람을 시켜 내 다리뼈와 손뼈를 부러뜨렸다.피를 많이 흘려 나는 현기증이 나서 눈을 깜박였다.태성이 빠른 걸음으로 내 곁으로 다가왔다.“가혜야, 가서 거즈 가져와.”그러나 가혜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태성, 혜진 언니가 원하는 게 바로 이 효과야, 가만히 서 있다가 너한테 맞으면 네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잖아?”태성은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다가 내 팔을 잡았던 손을 놓아버렸다.한참 있다가 태성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강혜진, 너 너무 유치한 거 알아? 이렇게 해서 나를 붙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너 나온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사과했어? 지금 가혜에게 무례했던 것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면, 더 이상 네 잘못을 묻지 않고 용서해 줄게.”가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태성, 사과는 가볍게 한마디면 충분해?”태성은 나를 복잡한 표정으로 쳐다보았고 곧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강혜진, 무릎 꿇고 사과해!”이마의 피가 갑자기 태성 손등에 뜨거운 물처럼 뚝뚝 떨어졌고 태성은 엉겁결에 피했다.가혜는 내 앞으로 다가와 태성의 손을 잡고 휴지를 꺼내서 그를 대신해서 조심스럽게 닦아 주었다
경호원은 나를 별장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떠났다.문 열기 전, 나는 경호원이 입력한 비밀번호를 똑똑히 보았다.그것은 이 집의 옛날 비밀번호가 아닌 가혜의 생일이었다.나는 발꿈치를 들고 안의 모든 것을 봤다.3년 전과 똑같은 듯하면서도 다른 배치였다.입구에 놓인 남녀 슬리퍼, 남성용은 태성 것이고 여성용은 가혜 것일 것이다.태성의 침실에는 베개가 두 개 있고 옷장에서 왼쪽이 그의 옷이고 오른쪽이 가혜의 옷이었다.화장실 안에는 칫솔 두 개와 컵 두 개가 있었고 여성용품도 크고 작은 병들이 가득 있었다.이 모든 것이 나에게 말하고 있다.태성과 가혜는 진작에 함께 잤다는 것을 말이다.문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을 때, 나는 일찍이 나의 것이 아니었던 이 방에서 나왔다.두 가닥의 얽히고설킨 그림자는 어두운 달빛 아래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입맞춤을 나눴다.“퍽!”나는 거실의 조명을 켰다.가혜는 홍조를 띤 얼굴로 경악을 금치 못했고 태성은 무의식적으로 가혜를 밀쳐냈다.“언제 돌아왔어?”태성은 이마를 문질렀다.“술을 많이 마셨는데, 가혜가 데려다주지 않았더라면 그 늙은 술꾼들의 손에서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그러고 나서 태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를 쳐다보았다.“혜진아, 이 모든 일은 원래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애초에 네가 그렇게 미치지 않았다면, 내가 이 몇 년 동안 이렇게 힘들었을까?”나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태성의 입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원망을 듣고 있었다.가혜가 부엌에서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따뜻한 물 좀 마시세요.”가혜의 부드러움은 지금의 내 모습에 비하면 더 살뜰한 아내 같았다.태성은 짜증이 난다는 듯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나는 가혜가 건넨 물을 한 모금 마셨다.“가혜 요즘 집을 구하고 있는데, 구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살아.”태성이 내가 대답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을 때, 나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당신의 침실에 가혜 씨 물건으로 가득 찼던데?”태성은 표정이 굳어 있었고
“됐어, 태성아, 화내지 마, 회장님과 약속한 시각이 다 되었으니 일단 가자.”태성은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고 손에 든 핸드폰을 꽉 쥐더니 나를 향해 소리쳤다.“강혜진, 말 잘 안 들으면, 지금부터 좀 적게 나와! 내 체면 깎이게 하지 말고!”“이 3년 동안 넌 내 아내로서 뭘 했어? 모두 가혜가 당신을 대신해서 내 곁에서 날 돌봐 주었잖아. 가혜가 없었다면, 나는 오래전부터 견딜 수 없었을 거야! 너는 네가 내 곁에 있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이 말을 남기고 태성은 가혜의 손을 잡고 돌아섰고 가혜는 나를 보며 비웃었다.그녀는 소리 없이 입 모양으로 ‘루저’라고 했다.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보고 있었다.“사모님! 새끼손가락이 왜 그래요?”나는 천천히 머리를 숙여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바라봤다.떨어져 있은 지 3년, 태성은 그저 황급히 나를 한 눈 보고 갔을 뿐이다.그는 심지어 내 다리의 이상한 점을 미처 발견하지도 못했고 내 오른손 새끼손가락이 이상하게 꼬여 있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나는 자기적으로 웃음이 났다.“아무것도 아니에요.”“병원까지 모셔다드릴게요.”나는 경호원의 부축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온몸에 힘이 빠져 나는 경호원의 몸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가혜는 3년 전에 태성의 곁으로 왔다.나는 줄곧 태성에게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이성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후에 그 여자애 집에 일이 생겨서 여자애를 외국으로 보냈고 그 뒤로 몇 년 동안 태성은 연애도 하지 않았으며 어떤 이성과도 썸도 타본 적이 없었다.나는 알고 있었다. 태성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그러나 나도 태성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몇 년 동안, 집에서 나에게 많은 남자들을 소개해 주었지만, 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부모님은 내가 동성을 좋아하는 줄 아셨다.그날, 태성이 쏟아지는 비를 무릅쓰고 나를 찾아왔다.“혜진아, 나 더 이상 기다리지 않을 거야. 너 결혼하고 싶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