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일본 남자는 제때 피하지 못하고 변우진의 따귀를 맞아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어지럽고 머리가 윙윙거렸다.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변우진은 다시 그의 뺨을 때렸다.퍽.한 번 더 맞자 일본 남자의 이빨이 날아갔다.두 번의 따귀를 날리고 나서야 변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테이블 위에 놓인 수건을 들어 손바닥을 닦으며 냉정하게 말했다.“자, 이제 내가 너희들을 건드렸는데 어떻게 할 거야?”그 일본 남자는 얼굴을 움켜잡고 한동안 멍해 있었다.그는 야마자키 파에서 꽤나 지위가 있었는데, 언제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있겠는가?순간,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변우진을 바라보며 분노를 터뜨렸다.“바까! 감히 나를 때려? 내가 누군지 알기나 해? 이봐! 이 개자식을 죽여!”그의 명령에 따라 주위에 있던 가라테 복장을 한 십여 명의 일본 사람들이 일제히 변우진에게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다.퍽퍽퍽.변우진은 자주 멋있는 척했지만, 싸움왕의 명성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이때 그는 침착하고 서두르지 않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풍당당함으로 연달아 펀치를 날렸다.잠시 후 십여 명의 일본 남자들이 수평으로 날아가 땅바닥에 쓰러져 비참한 비명을 연신 질렀다.반면에 변우진은 무사했고, 오히려 손을 등 뒤로 하고 앞으로 나아갔다.선두에 있던 서늘한 기운의 남자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변우진은 이미 발을 내밀어 그의 가슴을 바로 발로 차서 입에서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바까! 감히 날 때려!”서늘한 기운의 일본 남자는 가슴을 움켜잡고 계속 몸부림쳤다.“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나 해? 난 야마자키 파의 나카노 지로다! 감히 나를 건드리면 내 형인 나카노 타로우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나카노 타로우’라는 이름을 듣고 방 안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조금씩 변했고, 심지어 조효임도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야마자키 검도관에서 수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카노 타로우가 야마자키 검도관의 최고 칼잡이로 알려져 있다는 것을 알고
“네가 사람을 불러오기 전에 한 가지만 말해주게, 한국의 격투왕이 여기 있다고만 전해. 그런데도 감히 나타날지 보자고!”이때 변우진은 무패의 전쟁의 신처럼 무적의 기운을 뿜어내며 두 손을 등 뒤로 놓았다.나카노 지로는 코웃음을 치며 수화기에 대고 소리쳤다.“형, 나 맞았어요! 여기 위치는...”그가 정말 사람을 부르기 위해 전화한 것을 보고 이때 조효임은 긴장하기 시작했다.“변우진 도련님, 이러면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어쨌든 저들은 외국인인데...”옆에 있는 하은혜도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가요.”김예훈은 무표정으로 그 장면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그는 소위 부산 야마자키 파 최고 칼잡이라고 불리는 사람에게 관심이 있었다.이 일본인들이 뭘 믿고 이러는 건 지, 왜 감히 부산에서 대담하게 나대는 건 지 알고 싶었다.“효임 씨, 은혜 씨, 이런 사소한 문제로 도망칠 거예요? 나 변우진의 명성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에요. 내가 이정도로 못 견딜까 봐요? 오늘은 누가 감히 내가 있는 이곳에 와서 우리를 건드리는지 봐야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켜드릴 테니까.”변우진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바로 테이블 바깥쪽 문 앞에 기대어 무심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이 모습은 단순히 그가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자신감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다.변우진의 잘생긴 얼굴과 거침없는 태도는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여성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열광하는 표정으로 가슴을 잡고 있었다.일편단심으로 1호 팬만 생각하던 조효임도 이 순간에는 살짝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1호 팬은 돈이 많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교류가 없었기 때문에 오직 그녀 혼자 짝사랑하고 있는 걸 지도 모른다.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변우진이 가까이 있으니 조효임은 그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총애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일까?여인들이 넋을 잃고 있을 때 연회장 입구
이때 나카노 지로는 더없이 거만하게 걸어와 변우진의 코를 가리키며 화를 냈다.“감히 나를 때리다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 오늘 너희들을 죽이지 않으면 나 나카노 지로는 이름을 거꾸로 쓸 거야! 남자들은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여자들은 모두 잡아서 우리 집으로 보내! 예쁜 아가씨들 많네, 아주 좋아. 오늘 이 한국 놈들이 감히 우리 신성한 일본인들 앞에서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굴 수 있는지 보고 싶군!”나카노 지로는 변우진을 가리키며 노란 이를 갈면서 말했다.“특히 이 자식, 널 금호강에 던져서 감히 날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해주마!” 이 순간 나카노 지로는 자신감이 넘쳐서 조금 전 뺨을 맞았던 분노가 순식간에 분출되었다.“무슨 일이야?”이때 사람들 뒤쪽에서 몇 사람이 더 나왔다.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175에 가까운 체격의 일본인이었는데, 흰색 정장을 입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이 사람을 본 주변 사람들은 중얼거렸다.“정말 나카노 타로우가 맞잖아? 그가 나타났으니 이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끝장이야!”“나카노 타로우는 예전에 부산 용문당 전 회장 최종호를 검으로 찌르고 반 수 차이로 승리해 용문당 검도관 맞은편에 야마자키 검도관을 열 자격을 얻었다고 해요!”“난 항상 그걸 전설 같은 소문이라고만 생각했지 사실인 줄은 몰랐어요.”“칫, 생각해보면 알죠. 용문당이 그렇게 강한데 겨우 반 수 차이로 패했으면 자기 도관 맞은편에 야마자키 도관이 생기는 걸 지켜보고 있었겠어요?”“말도 안 돼요!”한 무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은 나카노 타로우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심지어 이제 야마자키 검도관에 가서 검도를 배우겠다고 결심한 사람들도 있었다.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앞으로 부산에서는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 나카노 지로가 인사를 건네며 재빨리 말했다.“형님, 제 부하 중 한 명이 단지 여자를 꼬시러 왔을 뿐인데, 어떤 자
조효임은 아주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마치 인플루언서가 재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겁먹었다는 것이다. 변우진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상대 쪽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러니 돈으로 일을 해결하는 것이 낫다는 게 그녀의 판단이었다.“조효임? 인플루언서라고?”나카노 타로우는 잔뜩 무시하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인터넷에서 몸뚱이 흔들 줄밖에 모르는 여자가 어디서 감히 체면 타령이야? 그리고 이건 체면 문제가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야.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대가를 치러야지. 내가 아직 기분 좋을 때 무릎 꿇고 사과하면 약간 봐줄 수도 있어.”“무릎 꿇고 사과하라고?”이때 변우진이 갑자기 허리를 꼿꼿하게 펴면서 나카노 타로우를 노려봤다.“야마자키파의 최고 고수라고 했나? 이번 일은 옳고 그름을 떠나 내 의견을 주장할 거야. 폭력도 물론 서슴지 않을 거고. 내 사과는 꿈도 꾸지 마, 사과를 해도 그쪽들이 해야지. 하기 싫으면 어디 한 번 붙어보든가. 야마자키파 검도와 한국 격투기의 자존심을 걸고!”변우진은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움직였다. 목 쪽에서는 관절을 푸는 소리가 났다.“나는 말이야. 한국 제일 격투기 선수라는 이름을 받은 후 한 번도 제대로 싸워본 적 없어.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의 관부터 준비해야 하니까.”자신만만했던 변우진은 살기를 뿜어냈다. 나카노 타로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그는 야마자키파의 중요한 일원이다. 실력은 전쟁의 피바다 속에서 살아 돌아올 정도로 훌륭했다. 그러니 당연히 살기와 기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그가 오른손을 내밀자, 부하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장검 하나를 건넸다. 곧이어 나카노 지로의 흥분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형님, 이 검으로 돼지 새끼의 멱을 따십시오! 우리 일본 사람만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종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십시오!”나카노 타로우는 머리를 쳐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한국 격투기의 자존심이라... 흥미롭군. 한국에서 내가 무서워할 만한 사람은 전설 속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카노 지로는 넋이 나간 듯 얼굴을 부여잡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초점을 맞춘 그는 자신을 때린 사람이 다름 아닌 나카노 타로우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효임 등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기세등등하던 나카노 타로우가 왜 갑자기 자기 동생을 때리는 거야? 부산 최고의 검객이 이렇게 물러난다고? 아무래도 우진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야. 아무렴,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지. 그렇게 대단한 나카노 타로우도 우진 도련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형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나카노 지로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막연한 표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김예훈은 잘 아는 것 같았다.나카노 타로우가 나타나자마자 그는 상대가 일본군으로 참전한 적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심지어 전장에서 그와 마주친 적도 있는 것 같았다.일본군은 처참한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나카노 타로우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도 일본군 따위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않았다.퍽!나카노 타로우는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또 나카노 지로의 뺨을 때렸고, 인사불성이 된 나카노 지로는 이빨이 떨어져 있는 바닥에 쓰러졌다.“내가 왜 이러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나카노 타로우는 나카노 지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이를 악물면서 말을 이었다.“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으며,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당장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지 못해? 스스로 뺨을 백대 정도는 때려야 할 거야! 성의 있게 사과해!”“뭐라고?!”나카노 타로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숱한 고수를 거느린 나카노 타로우가 사과를 요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조효임 등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변우진에 대한 존경함으로 변했다. 모두 나카노 타로우가 한국의 최고 격투기 고수인 변우진에게 겁먹었다고 생각한 모양이
나카노 지로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나카노 타로우의 공포를 보아낸 순간 바로 조효임 등의 앞에 달려가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대단하신 분들을 못 알아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이 비천한 목숨을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자기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무릎을 꿇고는 애원하기 시작했다.불안하다 못해 눈꺼풀이 툭툭 튀었던 나카노 타로우는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허리 숙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 잘못입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사과를 하면서도 그는 불안한 듯 김예훈을 힐끗거렸다. 그가 과연 만족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나카노 타로우 님이라고 했죠?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돼요.”나카노 타로우가 겁먹은 것을 보고 조효임은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리고 나카노 지로의 얼굴을 툭툭 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다들 부산에서 힘들게 일하는 입장인데, 저희도 그렇게 난감하게 굴지는 않을 거예요. 성의만 보여준다면 일을 크게 만들 생각도 없고요. 대신 오늘 일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한국에서 지내려면 그 못 돼먹은 성격은 좀 고쳐야 하거든요. 괜히 건드려서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누구나 우리처럼 관대한 건 아니니까요.”조효임은 나카노 타로우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물론 그와 같은 사람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기에 선은 지켰다.지금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지만, 변우진이 영원히 그녀의 편에 서줄 거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나카노 타로우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단속하겠습니다. 제 무식한 동생이 한국 땅에서 활개 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 사과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오늘의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조효임 등은 몸을 흠칫 떨었다. 변우진의 패기에 압도당한 것이다.그러나 나카노 타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존경을 표시한 상대는 전설 속의 총사령관이다. 한낱 격투기 고수 나부랭이가 아니라 말이다.‘작은 규모의 경기에서 우승 한 번 했다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거야? 허울뿐인 명성에 빠져서 잘난 척하는 꼴이란...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녀석인데!’나카노 타로우도 이렇게 생각하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못했다. 김예훈이 입을 열기 전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괜히 김예훈을 건드렸다가는 되레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조효임은 나카노 타로우가 주먹을 꽉 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우진은 모를 수 있겠지만 그녀는 부산 사람으로서 잘 알았다. 일본 사람이 얼마나 체면을 중요시하는지를 말이다.그는 지금 최선을 다해 참고 있다. 만약 참다못해 터지면 정말 큰 일이 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변우진이 뒷짐까지 지고 오만한 자태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조효임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 선택권은 변우진에게 있다.김예훈은 여전히 말없이 술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일본인에게 호감이 없었다. 나카노 타로우가 이대로 일을 무마하려고 한 것도 틀렸다고 생각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김예훈의 시선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보고 나카노 타로우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술병을 들어 머리까지 메쳤다.이 모든 과정을 끝낸 다음에야 나카노 타로우는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이 정도 성의라면 어떻겠습니까?”나카노 지로도 따라 앞으로 나서더니 술병으로 머리를 메치고 나서 몸을 휘청거렸다.“죄송합니다. 제가 대단하신 분을 못 알아봤습니다.”하은혜는 고개를 돌려 김예훈을 힐끗 봤다. 그러고 나서야 변우진에게 말했다.“도련님, 나카노 씨가 이렇게까지 사과를 하는데 이만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은혜 씨가 그렇게 말
조효임이 보기에 김예훈은 그냥 실력 없는 주제에 하은혜의 경호원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토록 큰일이 일어난 와중에도 그는 나서서 싸우는 것이 아닌 도망가자는 말이나 했다.‘폐물이야... 쓸데없는 폐물... 우진 도련님이랑은 완전히 천지 차이라니까. 은혜 씨는 어쩌다가 이런 녀석한테 속은 거지?’조효임은 속으로 묵묵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이제는 김예훈이 우리 집안이랑 어떤 사이든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꼭 은혜 씨를 설득해서 정신 차리게 해야지. 우진 도련님이 우리 곁에 없을 때 은혜 씨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김예훈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걸.’“가자!”이때 김예훈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본 나카노 타로우는 묵묵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변우진을 힐끗 보고 나서 사람들을 이끌고 멀어져갔다.그는 떠날 때까지 자세를 낮추고는 뒷걸음질로 멀어져 갔다. 앞에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변우진은 뒷짐을 지고 콧방귀를 뀌었다.“폐물은 역시 폐물이네요. 은혜 씨만 아니었어도 제가 오늘 이 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렸을 거예요.”나카노 타로우는 변우진의 말을 들었음에도 발걸음만 다그쳤다.“이게 다 도련님 덕분이에요!”나카노 타로우 등이 떠난 다음 조효임이 한달음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도련님이 없었더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어요!”말하는 와중에 그녀는 또 하은혜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은혜 씨, 우진 도련님이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감사의 뜻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하은혜는 김예훈을 힐끗 봤다. 그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는 곧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 우진 도련님.”“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변우진의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제가 전에도 말했죠. 제가 있는 한 아무도 은혜 씨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저만 따른다면 일본인은 물론 신이 온다고 해도 은혜 씨를 다치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제가 우진 도련님을 청한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