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나카노 지로는 넋이 나간 듯 얼굴을 부여잡고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초점을 맞춘 그는 자신을 때린 사람이 다름 아닌 나카노 타로우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뿐만 아니라 조효임 등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 기세등등하던 나카노 타로우가 왜 갑자기 자기 동생을 때리는 거야? 부산 최고의 검객이 이렇게 물러난다고? 아무래도 우진 도련님이 어떤 사람인지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야. 아무렴,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지. 그렇게 대단한 나카노 타로우도 우진 도련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형님,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예요?”나카노 지로는 자신이 왜 맞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막연한 표정의 사람들 사이에서 김예훈은 잘 아는 것 같았다.나카노 타로우가 나타나자마자 그는 상대가 일본군으로 참전한 적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심지어 전장에서 그와 마주친 적도 있는 것 같았다.일본군은 처참한 패배를 맛봤다. 그러나 나카노 타로우가 그를 두려워하는 것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도 일본군 따위를 정확히 기억하지는 않았다.퍽!나카노 타로우는 설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또 나카노 지로의 뺨을 때렸고, 인사불성이 된 나카노 지로는 이빨이 떨어져 있는 바닥에 쓰러졌다.“내가 왜 이러냐고? 그걸 몰라서 물어?”나카노 타로우는 나카노 지로를 향해 소리를 지르더니 이를 악물면서 말을 이었다.“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고,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으며,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 당장 가서 무릎 꿇고 사과하지 못해? 스스로 뺨을 백대 정도는 때려야 할 거야! 성의 있게 사과해!”“뭐라고?!”나카노 타로우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숱한 고수를 거느린 나카노 타로우가 사과를 요구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조효임 등의 표정은 놀라움에서 변우진에 대한 존경함으로 변했다. 모두 나카노 타로우가 한국의 최고 격투기 고수인 변우진에게 겁먹었다고 생각한 모양이
나카노 지로도 바보는 아니었다. 그는 나카노 타로우의 공포를 보아낸 순간 바로 조효임 등의 앞에 달려가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대단하신 분들을 못 알아봤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디 이 비천한 목숨을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말을 마친 그는 자기 뺨을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 있던 사람들도 따라 무릎을 꿇고는 애원하기 시작했다.불안하다 못해 눈꺼풀이 툭툭 튀었던 나카노 타로우는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허리 숙여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이번 일은 전적으로 저희 잘못입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사과를 하면서도 그는 불안한 듯 김예훈을 힐끗거렸다. 그가 과연 만족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말이다.“나카노 타로우 님이라고 했죠?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돼요.”나카노 타로우가 겁먹은 것을 보고 조효임은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리고 나카노 지로의 얼굴을 툭툭 치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다들 부산에서 힘들게 일하는 입장인데, 저희도 그렇게 난감하게 굴지는 않을 거예요. 성의만 보여준다면 일을 크게 만들 생각도 없고요. 대신 오늘 일은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 같네요. 한국에서 지내려면 그 못 돼먹은 성격은 좀 고쳐야 하거든요. 괜히 건드려서 안 되는 사람을 건드렸다가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요. 누구나 우리처럼 관대한 건 아니니까요.”조효임은 나카노 타로우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물론 그와 같은 사람과 척을 져서 좋을 건 없기에 선은 지켰다.지금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 없지만, 변우진이 영원히 그녀의 편에 서줄 거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적당히 하고 넘어가는 것이 최선이었다.“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나카노 타로우는 식은땀을 닦으면서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다시는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단속하겠습니다. 제 무식한 동생이 한국 땅에서 활개 치지 못하도록 제대로 가르치겠습니다. 사과의 마음을 표시하기 위해 오늘의 식사는 제가 사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순간 조효임 등은 몸을 흠칫 떨었다. 변우진의 패기에 압도당한 것이다.그러나 나카노 타로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가 존경을 표시한 상대는 전설 속의 총사령관이다. 한낱 격투기 고수 나부랭이가 아니라 말이다.‘작은 규모의 경기에서 우승 한 번 했다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아는 거야? 허울뿐인 명성에 빠져서 잘난 척하는 꼴이란...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단칼에 잘라버릴 수 있는 녀석인데!’나카노 타로우도 이렇게 생각하기만 할 뿐 움직이지는 못했다. 김예훈이 입을 열기 전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괜히 김예훈을 건드렸다가는 되레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조효임은 나카노 타로우가 주먹을 꽉 쥔 것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우진은 모를 수 있겠지만 그녀는 부산 사람으로서 잘 알았다. 일본 사람이 얼마나 체면을 중요시하는지를 말이다.그는 지금 최선을 다해 참고 있다. 만약 참다못해 터지면 정말 큰 일이 날지도 몰랐다. 그러나 변우진이 뒷짐까지 지고 오만한 자태로 서 있는 것을 보고는 조효임도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 선택권은 변우진에게 있다.김예훈은 여전히 말없이 술 한 모금 마셨다. 그는 일본인에게 호감이 없었다. 나카노 타로우가 이대로 일을 무마하려고 한 것도 틀렸다고 생각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다 잘못했습니다!”김예훈의 시선이 여전히 차가운 것을 보고 나카노 타로우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흠칫 떨었다. 그리고 갑자기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술병을 들어 머리까지 메쳤다.이 모든 과정을 끝낸 다음에야 나카노 타로우는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이 정도 성의라면 어떻겠습니까?”나카노 지로도 따라 앞으로 나서더니 술병으로 머리를 메치고 나서 몸을 휘청거렸다.“죄송합니다. 제가 대단하신 분을 못 알아봤습니다.”하은혜는 고개를 돌려 김예훈을 힐끗 봤다. 그러고 나서야 변우진에게 말했다.“도련님, 나카노 씨가 이렇게까지 사과를 하는데 이만 넘어가는 게 어떨까요?”“은혜 씨가 그렇게 말
조효임이 보기에 김예훈은 그냥 실력 없는 주제에 하은혜의 경호원 노릇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토록 큰일이 일어난 와중에도 그는 나서서 싸우는 것이 아닌 도망가자는 말이나 했다.‘폐물이야... 쓸데없는 폐물... 우진 도련님이랑은 완전히 천지 차이라니까. 은혜 씨는 어쩌다가 이런 녀석한테 속은 거지?’조효임은 속으로 묵묵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이제는 김예훈이 우리 집안이랑 어떤 사이든지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꼭 은혜 씨를 설득해서 정신 차리게 해야지. 우진 도련님이 우리 곁에 없을 때 은혜 씨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김예훈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할걸.’“가자!”이때 김예훈이 손을 흔드는 것을 본 나카노 타로우는 묵묵히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변우진을 힐끗 보고 나서 사람들을 이끌고 멀어져갔다.그는 떠날 때까지 자세를 낮추고는 뒷걸음질로 멀어져 갔다. 앞에서 보면 정말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변우진은 뒷짐을 지고 콧방귀를 뀌었다.“폐물은 역시 폐물이네요. 은혜 씨만 아니었어도 제가 오늘 이 자식들을 전부 죽여버렸을 거예요.”나카노 타로우는 변우진의 말을 들었음에도 발걸음만 다그쳤다.“이게 다 도련님 덕분이에요!”나카노 타로우 등이 떠난 다음 조효임이 한달음에 다가갔다. 그러고는 활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도련님이 없었더라면 정말 큰 일 날 뻔했어요!”말하는 와중에 그녀는 또 하은혜를 향해 눈을 찡긋했다.“은혜 씨, 우진 도련님이 이렇게 큰 도움을 주셨는데 감사의 뜻을 보여야 하지 않겠어요?”하은혜는 김예훈을 힐끗 봤다. 그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는 곧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감사합니다, 우진 도련님.”“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었어요.”변우진의 표정은 아주 담담했다.“제가 전에도 말했죠. 제가 있는 한 아무도 은혜 씨를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 저만 따른다면 일본인은 물론 신이 온다고 해도 은혜 씨를 다치게 하지는 못할 거예요.”“제가 우진 도련님을 청한
조효임은 인기가 많아진 뒤로 돈을 꽤 많이 번 모양이었다. 안 그러면 포레스트 11번지로 이사할 리가 없을 것이다.그녀가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었던 이유는 김예훈이 들러붙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오늘은 도무지 말하지 않고 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포레스트라는 말을 듣고 김예훈은 잠깐 멈칫하다가 미소를 지었다.“나도 같이 가자. 난 은혜 씨의 경호원이니까.”다른 곳이라면 김예훈은 절대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포레스트라면 상관 없었다. 그의 사람들이 아직 그쪽에 있었기 때문이다.1번지에 사건이 일어나 최근 포레스트는 꽤 시끄러웠다. 그래서 그는 하은혜를 조효임의 집에 보내고 최산하에게 ‘대청소’를 지시할 생각이었다.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는 조효임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들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아저씨, 포레스트 11번지로 이사 하셨다면서요? 축하드려요. 저 아저씨네 집에 가서 며칠 지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금방 출발할게요.”김예훈이 전화를 끊었을 때 조효임은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그가 하은혜에게 다가가기 위해 체면도 내려놓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잠깐, 내가 포레스트에 사는 걸 알고 목표를 바꾼 건 아니겠지? 이제는 은혜 씨가 아닌 나한테 들러붙는 거 아니야?’이런 생각과 함께 조효임이 김예훈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경계심으로 가득했다.‘이 녀석이 우리 아빠한테 괜한 말을 하면 어떡하지?’불길한 예감에 조효임은 자칫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나카노 타로우의 일 때문에 김예훈은 조효임 등과 함께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하은혜를 먼저 보냈다. 포레스트 쪽에는 그의 사람이 많으니 안전할 것이다.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백낙당의 대표이사실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유화월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오라고 했다.유화월은 금방 대표이사실에 도착했다.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뒤에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상대는 다름 아닌 나카노 타로우였다. 김예훈
김예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해외에서 온 손님이에요. 여권을 들고 정당하게 찾아온 손님을 쫓아낼 사람은 없어요, 나를 포함해서요. 물론 검도만 전술한다는 전제가 있어야겠죠. 전장에서 만나면 적이지만, 부산은 전장이 아니에요. 이곳에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거든요. 당신의 가치를 알려줘요. 내가 듣기에 솔깃한 가치면 일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은 생활을 제공할게요. 당연히 거절할 수도 있어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찻잔을 만지작대다가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 찻잔은 나카노 타로우의 앞에 차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떨어졌다.나카노 타로우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샤워기로 물이라도 맞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그는 일본 천황에게 무조건 충성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전쟁 중 김예훈을 앞두고 그는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 일본에서 가장 대단한 고수들이 동시에 나선다고 해도 김예훈은 쉽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그의 생각을 보아낸 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나카노 씨도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죠? 한 번의 선택으로 천국과 지옥이 갈려요. 이 차를 마시면 나는 나카노 씨를 죽이지 않을 거예요.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죽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나 나의 아군이나 적군으로 갈리게 되겠죠. 그러니 잘 생각해야 할 거예요.”나카노 타로우의 몸을 주체가 되지 않고 벌벌 떨렸다. 그가 힘들게 찻잔을 들어 올려 입가에 가져다 댔을 때 찻물은 전부 쏟아져 나온 다음이었다...저녁 8시, 포레스트 별장 11번지.11번지도 포레스트 별장 중의 하나이기는 하지만 가장 나쁜 별장이었다. 1번지의 가치가 2000억 원이라면 11번지의 160억밖에 안 했다. 물론 160억이라고 해도 일반인이 상상도 하지 못할 가격이었다.조효임은 인기 있는 인풀루언서이기 때문에 광고를 수도 없이 받았다. 저녁마다 라이브를 한 덕분에 통장도 아주 두둑했다.팬클럽의 1순위를 차지한 남자는 번마다 가장 비싼 선물을 쐈고 다른 팬들도 적지 않은
변우진도 하은혜도 그들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김예훈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김예훈이 들어온 것을 보고 이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걸어가서 물었다.“예훈아, 네가 여긴 무슨 일이니? 우리가 너를 초대했던가?”“저는 아저씨한테 연락하고 왔어요. 아저씨 지금 어디에 있어요? 인사라도 하려고요.”이미연은 김예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 웃었다.“2층 접대실에서 용문당 부산 분당의 거물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어. 네가 감히 가까이 하지도 못할 분들이니 올라가지 말렴.”김예훈은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았다. 그가 분당의 당주가 된 다음 조인국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진윤하가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듣고 조인국과 협력을 늘린 모양이었다.김예훈의 태연한 모습을 보고 이미연은 기분이 더러웠다. 그래서 주변의 장식품을 가리키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넌 아직 이런 집 본 적 없지? 이 별장이 포레스트의 11번지이기는 하지만 가격이 160억 원이야. 너 160억 원이 어떤 개념인지 알아? 현금으로 바꿔서 이곳에 쌓아 놓으면 넌 들지도 못할 거라고. 참, 이 별장은 효임의 라이브 수입으로 산 거야. 통장에 남은 돈까지 합하면 우리 효임이는 몇백억 원이나 가지고 있어.”말을 마친 이미연은 팔짱을 끼며 김예훈을 멸시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녀의 뜻은 딱 하나였다. 바로 김예훈은 조효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그녀는 김예훈이 빨리 포기하고 물러나기를 바랐다.멀지 않은 곳에서 하은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김예훈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예훈을 별장을 자세히 둘러보지도 않고 피식 웃었다.“그러네요, 별장은 꽤 괜찮네요.”그는 1번지에 살았다. 이곳은 1번지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조인국이 전에 지내던 집에 비해서는 얼마나 나았는지 모른다.이때 조효임이 걸어오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참, 나 할 얘기가 있어. 나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사직할게. 월급이 낮은 건 아니지만 라이브 수입에 비하면 너무
“효임아, 넌 이제 어쨌든 200억 원 대가 되는 재력가인 사람이야. 그러니 네가 사귀는 사람은 세자 아니면 도련님이어야 해. 왜 이제 아무렇게나 저런 사람 따위를 이곳으로 데려오는 거야? 네가 체면이 깎이는 게 두렵지 않다고 해도 우리가 다 창피해. 저 사람 때문에 우리 체면이 다 깎이겠어.”바로 그때, 사람 몇 명이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고 모두 몸매가 호리호리하고 예쁜 얼굴이었다.자세히 보니 그녀들은 전부 SNS에서 요즘 핫한 인플루언서들이었다.그녀들은 눈앞에 서 있는 돈이 없어 보이는 거지 같은 사람을 전혀 무시하고 있는 듯 거들먹거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녀들 중에 키가 170cm가 되고 예쁜 얼굴을 가진 도도한 여자가 김예훈의 앞에 다가와 말했다.“넌 여기 경비원이야? 아니면 배달하는 사람이야? 이렇게 고급스러운 자리에 너 같은 사람이 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그녀의 말을 듣자 다른 사람들은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으며 재미있어하는 시선으로 김예훈을 바라보았다.그녀들은 손짓 한 번에 몇억 원을 쓸 수 있는 부자 오빠들을 많이 봐 왔었기에 이런 평범한 사람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그녀들은 자신이 하룻밤에 몸을 흔들어 번 돈은 김예훈 같은 사람이 평생 벌지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김예훈을 무시하는 것을 보자 조효임이 웃으며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예훈아, 이 분은 내가 SNS에서 사귄 친구야. 몇 달 동안 인기 순위 1위를 차지한 후지와라 미유 씨야. 당연히 후지와라 미유는 예명이고 본명은 나도 잘 몰라.”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후지와라 미유를 바라보며 흥취를 느끼는 표정을 지었다.후지와라 미유를 보아서는 아마 일본 사람이 아니지만 일본 이름을 쓰고 있는 것을 본 김예훈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가장 중요한 건 김예훈이 나타나자마자 그녀가 김예훈을 향해 비난한 것은 분명히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시킨 짓이었다.김예훈은 그녀에게 시킨 사람이 이미연이나 조효임이라고 생각했다. 그 목적은 김예훈에게 자기 주제를 알고 그녀들한테
“바깥 세상?”김예훈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다른 건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요즘 리카 제국 쪽에서 독감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 약탈을 해서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고 하더라?”“그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니?”“그리고 영국 제국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무시하고 밤새도록 파티를 벌여 독감 감염률이 치솟았다던데 이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아니면 유라시아 전쟁에서 영국 제국이 세탁 세제 몇 봉지를 갖다가 유라시아 일부 국가들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모독하고 이를 빌미로 사람들한테 군사적, 재정적 제재를 가한 게 네가 말하는 문명이야?”장무준은 잠시 멍하니 있더니 차갑게 말했다.“어디서 주워들은 근거 없는 말들이지? 이 나라 사람들이 함부로 퍼뜨린 루머 아니야?”“난 왜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지? 증거 있어?”“증거 없으면 말 함부로 하지 마. 비방죄로 널 고소할 수도 있어!”장무준이 화를 내며 언성을 높였다.김예훈은 귀찮아서 더 이상 논쟁할 생각이 없었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지 않으면 다른 얘기 좀 해보자.”“내 기억이 맞다면 며칠 전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영국 제국의 기자가 한국의 독감 백신이 효과가 있느냐고 물었었지?”“맞아. 물을 만하잖아. 무슨 문제제라도 있어?”장무준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한국이 어떻게 독감 백신을 생산할 수 있겠어? 자기기만 하는 거잖아.”“자기기만?”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영국 제국의 기자가 이 질문을 하기 전에 무엇을 했는지 알아?”“그 사람이 백신 접종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온갖 노력을 다했고 결국은 백신을 맞았어.”“그러고 나서 기자회견에서 그런 질문을 내뱉은 거야.”“이런 이중 잣대와 뻔뻔함이 네가 말하는 문명이라고?”“너!”장무준은 너무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이 사건은 실제로 일어났고 국제적으로 큰 웃음거리가 되었다.김예훈은 계속해서 담담하게 말했다.“
“그만하고 우린 이제 시즌 호텔 경매장으로 가야 해.”“여기서 더 이상 역겹게 굴지 말고 이제 꺼져.”장무준은 조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동하임의 매혹적인 몸을 힐끗 쳐다본 후 몸을 돌려 마리아와 함께 자리를 떠날 준비를 했다.결국은 영국 제국의 황족이 되고 황위 계승권의 기회를 얻는 게 자신의 평생소원이었다.설사 그 황위 계승권이 실현하기 어려운 멀고 먼 꿈일지라도 장무준은 기꺼이 지금과 같은 선택을 할 것이었다.김예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장무준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차갑게 입을 열었다.“장무준, 똥 먹었어? 입냄새가 왜 그렇게 심해?”김예훈의 말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동하임은 김예훈을 이 일에 끌어들이는 걸 원치 않아 급히 김예훈을 잡아당겼다.“김예훈 도련님, 그만해요. 저런 놈이랑 말 섞지 말아요.”“이 뻔뻔스러운 놈이 나한테 무릎 꿇고 빌 때가 곧 올 거예요.”동하임의 단호한 태도를 보고 김예훈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동하임의 사적인 일이라 그가 너무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예훈이라는 이름을 들은 장무준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네가 바로 그 버르장머리가 없고 노인을 존중할 줄도 모른 데다 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진주에서 온갖 허세를 부리는 물러터진 놈이구나.”“물러터진 놈?”김예훈은 장무준의 말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 나온 말인지 몰라 그저 담담하게 장무준을 바라보기만 했다.“물러터진 놈이 아니야?”장무준은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동씨 가문에 빌붙어서 일본의 귀빈들한테 손댄 것도 모자라 감히 진주 전임 총독한테도 손을 대다니!”“능력은 눈곱만큼도 없으면서 어디서 허세야?”“완전 세상 물정을 모르는 놈이네.”“설마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알아?”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왜? 내가 너희 집 어르신 뺨을 때린 게 불만인가 봐?”장무준은 차갑게 말했다.“불만인지 아닌지가 문제가 아니라 네가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야!”“네 놈이 영국 제국의 황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