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 내 주술에 안 걸린 거야?”김옥자는 그제야 반응했다.‘김예훈이 주술에 걸리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했던 말을 녹음했다고?’김옥자는 한순간에 을의 위치에 처하게 되었다.“북한 주술이 대단하긴 해도 수련할 때부터 잘못되어 일부분밖에 배우지 못했네. 상태가 회복되자마자 나한테 그런 짓을 하려고 했으니 성공할 수 있었겠어?”김예훈은 한껏 비웃는 표정이었다.“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잖아.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는 거고. 내가 너의 자존심을 짓밟은 사람인데 나를 미워하기는커녕 웃는 표정으로 맞이하는데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너의 속셈을 모를 줄 알았어? 참 재미있네. 처음에는 금릉 김씨 가문의 아가씨가 북한 주술을 익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마지막에 우충식을 죽여달라고 했을 때 깨달은 것이 있어.”“무엇을 깨달았는데?”김옥자가 무의식적으로 물었다.“너는 김옥자가 아니야. 다시 말해서 진짜 김옥자가 아니라는 거지.”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내 생각이 맞다면 진짜 김옥자는 수년 전에 이미 죽었고 너는 북한에서 온 사람이겠지. 그런데 난 너의 진짜 신분과 이렇게 하는 목적에는 관심이 없어. 하나만 물을게. 현아 어머님께서 식물인간이 된 거, 설마 너의 짓이야?”김옥자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진지하게 말했다.“김예훈, 난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곧 죽는 마당에 누가 너의 헛소리를 믿어주겠어!”“죽는 마당? 헛소리?”김예훈은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흔들었다.“우충식이 이 녹음파일을 듣고 너를 먼저 죽일까 아니면 나를 먼저 죽일까? 우 부회장님은 아주 독하신 분이더라고. 어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김재중을 죽이는 순간 얼마나 독한 사람인지 알았지. 그렇게 단호하신 분은 잠자리를 함께하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죽일 거야. 더군다나 잠자리를 함께하는 사람이 진짜 김옥자가 아니라니.”김옥자가 멈칫하면서 부하를 부르려고 오른손을 들자,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사람을 부르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아니면 내가 참
김예훈의 담담한 눈빛을 바라보던 김옥자는 표정이 확 바뀌더니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무기력하게 오른손을 저었다.김예훈은 직감적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던 사격수들이 철수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김옥자는 벗어두었던 잠옷을 챙겨입고 김예훈의 앞에 마주 앉아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말했다.“김 도련님의 진짜 신분이 무엇인지 저에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알았다고 해서 뭐 달라질 거 있나요?”김옥자가 살짝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아무런 의미가 없긴 하죠. 첫 번째 물음에 대답하도록 하죠. 진짜 김옥자는 이미 제 손에 죽었고, 현아 어머님은 제가 우씨 가문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식물인간이 되어있었어요. 저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지만 제 추측으로는 우충식이 직접 그랬을 거라고 믿고 있어요.”“우충식?”김예훈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 그런 거죠? 현아 어머님은 무술 고수일 뿐만 아니라 내조도 잘하신 분인데 왜 직접 죽이려고 했을까요?”김옥자는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김 도련님처럼 똑똑하신 분은 짐작 가는 것이 있을 텐데요?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금릉 김씨 가문의 딸, 김옥자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함이었죠...”“증거 있어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증거요?”김옥자가 피식 웃고 말았다.“제가 바로 가장 좋은 증거 아니겠어요? 그해 우충식은 저를 위해 와이프와 이혼하고 저와 영원히 함께할 거라고 맹세했죠... 하지만 진짜 김옥자를 만난 이후로 저를 버리려고 했고요. 지금도 생각나는걸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그날 밤, 제가 우산 사러 외출하지 않았다면 저도 저의 남동생과 엄마처럼 피바다에 누워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날부터 저는 전설 속의 비 내리는 밤의 살인자가 되어 남동생과 엄마를 죽인 범인을 죽이러 다녔죠... 경찰에서는 저를 구속하려고 했고, 무술계에서는 저를 죽이려고 했고요... 나중에 북한으로 가서 우연히 주술을 배우게 되었는데 그러다 다시 돌아왔죠. 신혼 첫날밤, 진짜 김옥자를 죽여 주술로
이 시각 우씨 가문.으리으리한 우씨 가문 별장에는 2, 30명의 사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남녀노소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우아하고 분위기가 넘쳐나는 이들은 바로 부산 우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부산 우씨 가문은 비록 전국 10대 명문가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부산에서 진정한 뿌리 깊은 로열패밀리였다.우충식이 속해있는 일맥은 우씨 가문 5대 일맥 중의 하나였다.오늘, 우충식은 우현아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기 위해 자신의 아버지, 우씨 가문의 어르신인 우용건까지 모셔 왔다.삼베옷을 입고 동안의 얼굴을 한 우용건은 로비에 있는 구식 팔걸이의자에 앉아 어마어마한 포스를 풍겼다.그의 옆에 있는 우충식은 담담한 표정으로 시가 한 대에 불을 붙여 서서히 연기를 뿜어냈다.이곳에 있는 우씨 가문의 사람들은 대부분 우충식과 같은 일맥이라 로비에 있는 우현아를 주의 깊게 쳐다보았다.JK 그룹 지분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회장직과 대표직을 겸임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질투를 받기 일쑤였지만 로열패밀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현아는 가족 간의 신경전이 익숙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이때 우현아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우충식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아빠, 이제 거의 도착하신 것 같은데 저희 엄마가 왜 식물인간이 되셨는지, 그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말씀해 주시죠? 사실대로 말씀해 주시기를 바라요. 증거가 있으면 더 좋고요.”퍽!우현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40 몇 살 되어 보이는 한 점잖은 남성이 의자 손잡이를 퍽 내리쳤다.“어디서 감히! 어르신도 계시는 가족회의에서 어떻게 아빠를 그렇게 심문할 수 있어? 이제는 다 컸다고 눈에 뵈는 것이 없나 보지? 예의가 뭔지 몰라? 예절을 중히 여기는 우리 우씨 가문에서는 가족법대로 진행해야겠어! 여봐라! 회초리를 가져오도록 해!”우현아의 둘째 삼촌의 손짓 하나에 보디가드가 회초리를 가져왔다.우씨 가문의 형벌을 맡고 있는 그가 입을 벌리자, 사람들은 멈칫하고 말았다.“그럴 필요까지는 없어
순식간에 주위에 우씨 가문의 사람들이 아닌 의문의 정장남들이 몇십 명 나타나 로비의 모든 출입구를 막았다.당황해하는 우현아와 다르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예상했던 일인 것처럼 태연하기만 했다.그렇게 로비는 순식간에 험악한 환경으로 변했고, 그 누구든 이곳을 벗어나려면 거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우현아는 표정이 확 변하면서 벌떡 뒤로 돌아섰다.바로 이때, 나일론 정장을 입은 견청룡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로비 입구에서 걸어들어왔다.잘생긴 얼굴에 아무리 미소를 짓는다고 해도 말로 형용하지 못할 차가움이 있었다.언제든지 사람을 물어버릴 것만 같은 독사처럼 말이다.그리고 그의 뒤에는 그를 따르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한 사람은 백낙당 호텔 총지배인인 방지호였다. 견청룡의 오른팔이 죽고 나서 방지호가 그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에 신분과 지위는 예전과 달랐다.다른 한 사람은 바로 견청룡의 개인비서이자 무술 실력이 뛰어난 보디가드 유화월이었다.우현아는 견청룡을 보자마자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어떻게 오셨어요? 누가 초대해서 오신 거예요?”“내가 오라고 했어.”상석에 앉아있던 우충식이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오늘 증인으로 서달라고 견 세자님을 초대했어.”우현아는 순식간에 불안한 느낌에 냉랭하게 말했다.“필요 없어요. 제 일에는 견청룡 씨가 참여하지 않으셔도 돼요.”이번에는 우충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견청룡이 먼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현아 씨, 억지 그만 부려요. 오늘은 장모님께서 묵은 억울함을 벗는 날인데 예비 사위로서 증인으로 나서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저희 미래 장모님을 해쳤든 제가 대신 복수해 줄 거니까요!”견청룡은 말을 끝내자마자 부하한테 우현아 옆으로 의자를 가져오라고 손짓했다.그리고선 아무렇지 않게 옆에 다리를 꼬고 앉아 태연하게 말했다.“장인어른, 제가 늦었네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전에는 장모님 일에 대해 잘 몰랐는데 저도 알게 된 이상 저희 부부한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가 오늘 이곳에 온 목적은 단 두 가지예요. 첫째, 증인으로 나서서 장모님을 위해 묵은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 둘째, 현아 씨와 결혼하는 것. 현아 씨 할아버지, 아버님, 삼촌, 고모를 포함한 모든 우씨 가문 사람들이 동의하는 대로 저한테 시집와야 할 거예요!”“견청룡 씨와 결혼해야 할거라고요?”우현아는 기가 막혀 웃음이 나왔다.“견청룡 씨, 혹시 제 말을 못 들으셨어요? 저는 바닥에 머리를 박아 죽을지언정 당신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요!”견청룡이 담담하게 말했다.“아무리 바닥에 머리를 박아 죽는다고 해도 저와 무조건 결혼해야 할 거예요! 살아서는 물론 죽어서도 견씨 가문의 귀신이 되어야 할 거예요. 부모님의 말씀대로 결혼하기 싫어도 해야 할 거란 말이에요!”우현아가 냉랭하게 말했다.“그러면 해보시든가요. 제가 시체로 변한다고 해도 견청룡 씨한테 가지 않을 것 같은데.”견천룡은 화를 내는 대신 웃으면서 말했다.“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저와 결혼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세요? 제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네!”우현아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현아 씨한테는 제가 이방인인 김예훈보다도 못해 보여요?”“맞아요!”“그래요!”견청룡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직설적인 성격마저 현아 씨가 점점 더 좋아지게 되네요.”견청룡은 얼굴에 변태적인 미소를 지었다.“현아 씨가 잘 모를 수도 있는데. 저희 남자들은 얻지 못하는 것을 더욱 얻고 싶어 하거든요. 저를 마음에 안 들어 할수록 저는 현아 씨를 더욱 갖고 싶어요. 저 견청룡은 아무리 별로인 사람이라고 해도 약속한 일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에요. 저희 둘 사이의 혼사는 잠깐 미루고 장모님 일부터 해결하시죠. 제 말이 맞나요? 장인어른?”견청룡의 시선은 상석에 앉은 우충식에게 향했다.우충식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견 사위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네. 이 말이 나왔으니, 약속대로 먼저 현아 엄마 일부터 설명하도록 하지.”우현아는 바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우씨 가문의 사람들이 떠나고, 견청룡의 손짓 하나로 그의 부하들은 어디선가 침대를 꺼내왔다.곧이어 몇 분도 안 되어 로비 전체가 신혼집으로 변해버렸다.우현아는 눈이 휘둥그레 이 상황을 지켜보더니 본능적으로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쓱.이때 옆에 있던 유화월이 우현아의 앞을 가로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사모님, 오늘 이곳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떠나면 안 된다고요?”우현아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견청룡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견청룡 씨,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거예요?”“무슨 짓이요?”견청룡이 피식 웃고 말았다.“원래는 우씨 가문에서 현아 씨한테 어떤 제대로 된 설명을 할지 궁금한 마음에 왔는데, 할아버지께서 오히려 저한테 미션을 내려줄지 몰랐죠. 현아 씨도 알잖아요. 저는 어르신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할아버지의 미션을 완수해야 할 것 같아요. 주식은 아직 급하지 않으니 지금 바로 신혼 첫날밤을 치르는 게...”견청룡은 말을 끝내자마자 우현아의 턱을 만졌다.짝!우현아는 맑고 고운 소리와 함께 견청룡의 뺨을 때리게 되었다.“비겁한 자식!”유화월과 방지호가 흥분하면서 나서려고 했지만, 견청룡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그는 손으로 자기 얼굴을 어루만지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왜 이 세상에는 좋은 말로 할 때 말 안 듣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요? 현아 씨가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었어요?”짝!견청룡은 말을 끝내자마자 우현아의 뺨을 때리게 되었다.너무도 막강한 힘에 우현아는 넘어질 정도로 연신 뒤로 휘청거렸다.“병신같은 자식!”우현아는 울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서 견청룡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인제 보니 처음부터 견청룡 씨 본모습을 알게 되어 다행이네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처음부터 당신과 결혼할 마음이 없었어요. 당신 같은 사람한테 부산 6대 세자라는 호칭이 가당키나 해요? 칵! 퉤!”짝!견청룡은 말하기도 귀찮은지 앞으로 다가가 또 우현아
우현아가 이를 꽉 깨물면서 한마디 한마디 내뱉었다.“다시 한번 말하는데!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퍽!견청룡은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발로 우현아를 걷어찼다. 우현아는 그대로 날아가 침대에 부딪히고 말았다.풉!그녀가 뿜어낸 피로 인해 침대는 붉게 물들고 말았다.그 모습은 마치 방금 피어난 매화처럼 처량하기 그지없었다.“너!”우현아가 억지로 고개를 쳐들어 견청룡을 쳐다보았을 때 그의 눈빛은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좋아하는 여자를 때리는 것이 아주 기분 좋은 일인 것처럼 말이다.이런 눈빛에 우현아는 등골이 오싹해지기 시작했다.그러다 견청룡이 변태적으로 가장 하기 좋아하는 일이 바로 여자를 죽이는 것이라는 소문이 떠올랐다. 최근 몇 년 동안 그의 손에 죽은 여자만 해도 백 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현아 씨, 알아서 옷 벗어요.”견청룡은 한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꾹꾹 참고 있던 희열을 느끼면서 휴지로 손가락을 닦았다.“계속 반항하면 제가 참지 못하고 발로 걷어차 죽일지도 몰라요!”그는 귀한 도자기가 깨지면 어떡할까, 하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퍽!바로 이때, 문밖에서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몇몇 정장남이 날아와 그대로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곧이어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견청룡,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내가 너희 부산 견씨 가문을 박살 내줄까?”우현아는 멈칫하고 말았다.‘김예훈이 온 것이 틀림없어.”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우씨 가문 로비로 들어오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쥐 죽은 듯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은 김예훈을 바라보게 되었다.견청룡 옆에 있던 사람들은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김예훈을 보고도 도도한 표정으로 그를 아래위로 훑었다.어떤 사람은 보잘것없다는 표정을 지었고, 어떤 사람은 억지 미소를 지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비웃기도 했다.견청룡의 일을 그르친 사람은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비록 김예훈이 부산 견씨 가문을 박살 내겠다고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
얼굴에 사악한 미소를 짓고 있던 대여섯 명의 정장남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기도 전, 김예훈이 아예 그들을 발로 걷어차 날려버렸다.천하무적! 이것이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김예훈, 내가 너를 죽여버릴 거야!”방지호는 이 모습을 지켜보다 허리춤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더니 김예훈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이때 옆에서 보고 있던 우현아가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김예훈, 조심해!”피융!김예훈은 방지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예 발로 걷어차 버렸다. 방향 잃은 총알이 난데없이 옆에 있던 정장남을 저격하면서 땅바닥에 누워 아파서 동동 발 구르는 사람이 두 명이나 더 늘어나게 되었다.“이것이 바로 부산 견씨 가문의 실력이야? 전국 10대 명문가 중에서 끝자리를 차지하는 이유가 있었어.”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뼈 때리는 말을 내뱉었다.“부산 6대 세자 중에서 제6위를 차지하는 너 견청룡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어.”견청룡과 유화월 등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견청룡은 부산 6대 세자에 속해있다는 것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었다. 이는 부산 상류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었다는 것을 설명하기 때문이다.김예훈이 자신만만해하면서 자신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의 멱을 따고 싶은 심정이었다.“죽여버릴 거야!”다음 순간, 분노한 견청룡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김예훈을 향해 발을 뻗었다.하지만 그의 발이 닿기도 전, 김예훈이 먼저 움직여 그의 옆에 나타났다.견청룡이 멈칫하면서 다음 동작을 준비하려고 할 때, 김예훈이 먼저 왼손으로 그의 멱살을 잡아 로비에 있는 기둥에 제압시켰다.견청룡은 무술 고수였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퍽!김예훈이 아예 그의 머리를 기둥에 박아버리자, 비명과 함께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제기랄!”유화월이 창백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감히 우리 세자님을 건드려? 죽여버릴 거야!”그녀는 말을 끝내자마자 김예훈을 향해 덮쳤다.김예훈은 담담하게 그녀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