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현은 별로 다른 사람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비록 부산 6대 세자이긴 했지만 그중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이었다.바둑을 두고, 그림을 그리고, 거문고를 연주하고, 무술을 연마할 때는 그 누구도 방해할 수가 없었다.지금 바둑 놓고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화가 울렸다는 건 큰일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말해.”전화기 너머 비서는 그의 불쾌한 말투를 알아차리고 용건부터 말했다.“세자님, 견 서장님과 상현 어르신께 일이 벌어졌습니다! 김예훈 찾으러 병원에 갔다가 마침 임강호 임시아 부녀를 만나 견 서장은 그 자리에서 제복을 벗어야 했고 상현은 어르신 역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리고 또 혜성 엔터테인먼트 역시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봐주지 않으면 파산될 지경입니다. 제가 특별히 무법 지대 소식통을 통해 김예훈의 신분을 알아보았더니 저희 생각보다 심상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성남에서는 김 세자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경기도 김 세자님이요!”비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 이름을 외쳤다.시간이 긴박하여 확인한 내용이 많지는 않았지만 경기도 김 세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세자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 커다란 경기도에 김세자는 단 한 명뿐인데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이 가.’“그래? 난 또 그냥 평범한 사람인 줄 알았네. 상현 어르신이 상대가 안 되었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네.’성수현이 또 담담하게 말했다.“그런데 뭐 어때서? 나도 김세자를 들어봤는데 혼자 힘으로 경기도에서 유일한 명문가인 김씨 가문을 꺾었다지. 그런데 김씨 가문은 우리가 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야. 경기도를 독차지했다고 해도 우리 상류층에 들어올 수 있는 자격이 없어. 기껏 해 발꿈치나 닿을 수 있는 정도겠지. 그깟 경기도를 점령했다고 감히 부산에 와서 거들먹거려? 부산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성수현은 시종일관 태연한 모습이었다. 김예훈의 신분을 알았다고 해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부산 센터를 침입해! 죽고 싶어?”이때 손에 총을 쥐고 있는 한 무리의 보디가드가 달려와 김예훈을 겨냥했고 뒤에 있는 통로에서는 고통에 허덕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이 보디가드들은 흉악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김예훈을 향한 두려움도 없지 않아 있었다.이곳을 들어오면서 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던 것이다.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게 바둑판 앞에 앉더니 백돌 하나를 바둑판에 놓았다. 이로써 모든 흑돌의 길이 가로막히고 말았다.그는 또 백돌 하나를 집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소문으로는 성수현 세자께서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지요. 바둑 실력도 대단하다고 들었는데 오늘 보니 뭐 그냥 그렇네요.”성수현은 보디가드들에게 물러가라면서 손짓하더니 김예훈을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김예훈? 김 세자?”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저 같은 사람은 성 세자님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부산 6대 세자이신 성 세자님께서 저를 알아볼 줄 몰랐네요. 무서워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성수현은 그저 말없이 아무렇지 않게 우려낸 차를 김예훈에게 건네더니 말했다.“김 세자님 겸손하시네요. 경기도를 주름잡으신 분이 어찌 저 성수현을 무서워하시겠습니까? 그런데 김 세자님은 경기도 최강자이긴 해도 부산의 물이 몸에 안 맞을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건의 하나 드릴까요?”김예훈은 찻잔을 들더니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성 세자님께 어떤 좋은 건의가 있으신가요?”“배상하고, 패배 인정하고 물러나면 부산의 물이 몸에 안 맞을 거라는 걱정도 따라서 사라지겠죠.”성수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김예훈도 피식 웃더니 말했다.“사실 저에게도 처방 하나가 있는데 아쉽게도 보조 약재가 하나 부족하네요.”“보조 약재요?”성수현은 웃을 듯 말 듯 하면서 말했다.“그냥 보조 약재일 뿐이에요.”김예훈이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혜성 엔터테인먼트 하나면 이 병도 말끔히 치료될 것 같네요. 성 세자님 평소에 좋은 일을 많이 하
성수현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물었다.“그러면 어떤 요구를 제시할 건데요?”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요구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성 세자님이 패배하는 날엔 저의 졸개가 되는 거예요. 형님인 제가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거예요!”성수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한참 쳐다보더니 비서에게 손짓하면서 말했다.“계약서 준비해.”이때 한 아름다운 여비서가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계약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계약서 내용을 확인한 여비서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부산 6대 세자인 성수현이 이깟 촌놈이랑 이런 내기를 한다고?’하지만 일개 하인인 신분으로는 말릴 용기도 없었다.그렇게 계약서가 준비되고, 성수현은 보지도 않고 화끈하게 사인을 하고 지장까지 찍었다.이어 그의 손짓 하나로 계약서는 김예훈 앞에 놓이게 되었다.그 역시 담담한 표정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인을 하고서 여비서에게 건넸다.김예훈과 성수현의 신분을 봤을 때 일단 사인을 했으면 계약서 내용대로 시행해야 했다. 아니면 이 바닥에서 더는 어울릴 수도 없었다.이때 김예훈이 센터로 걸어가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성수현 동생은 어떤 무기를 사용할 건가?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으니까.”김예훈의 거들먹거리는 소리에 성수현은 표정이 일그러졌다.아무리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많이 만나보았다지만 나머지 다섯 명의 부산 세자들도 김예훈 정도로 거들먹거리지는 않았다.하지만 성수현의 심성을 보았을 때 김예훈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자신 역시 사용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는 갑자기 앞으로 덮치더니 김예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너무나도 갑작스럽고 현란한 움직임에 보디가드들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이 실력은 무림 고수인 것이 틀림없어.”“태극권.”김예훈은 갑자기 흥미가 당겼다.‘지금 같은 시대에 태극권으로 무술 실력을 연마한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사람이군.’하지만 김예훈은 전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 똑같이 주먹을 뻗었다.성수현과 정면으로
그제야 성수현의 실력을 깨달은 김예훈은 여전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고개만 까딱 몇 센티미터를 사이에 두고 성수현의 일격을 피하게 되었다.성수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또 두 주먹으로 김예훈의 태양혈을 노렸다.김예훈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뒤로 반보 물러서서 이 일격을 또 피하게 되었다.슉!성수현은 불굴의 의지로 이번에는 두 주먹으로 김예훈의 가슴을 치려고 했다.이대로 적중하게 되면 갈비뼈 몇 대가 끊어질 수도 있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이번에는 주먹으로 맞이하지 않고 오른손으로 성수현의 주먹을 내리누르자 사람 전체가 이상한 방향으로 날아가게 되었다.일련의 공격에도 김예훈은 정면승부보다 피하는 것을 택했다.다른 사람이 봤을 땐 김예훈이 열세에 처해 반격의 여지가 없어 보였을 수도 있었다.성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은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이들이 봤을 땐 성수현이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했다.‘김예훈 주제에 어떻게 성 세자님 상대가 되겠어?’“재미있군.”김예훈이 계속 피하자 성수현은 무표정으로 다시 아까보다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무시무시한 주먹을 내뻗게 되었다.아까는 상대방의 실력을 확인하려고 시험하는 단계였다면 이제는 진짜 실력을 보여줄 때가 되었다.이 일격은 김예훈의 흥미만 돋우게 되었다.김예훈은 자세를 다잡더니 성수현을 발로 차 멀리 날려 보냈다.아무런 기교도 없는 평범하디 평범한 발차기였지만 성수현은 표정이 확 변하고 말았다.‘계속 주먹을 뻗어봤자 김예훈 털끝 하나 건드리지도 못하고 발차기 하나로 멀리 날아갈 것이 뻔해.’이 순간 성수현은 당황하고 말았다.‘김세자라는 이 사람 경기도를 통합시킨 이유가 있었어. 그 실력은 일반인들의 상상을 넘어설 정도야. 무술을 이 정도로 수련한 걸 봐서 조선시대였다면 장군감이었을 지도 몰라. 지금 시대에서는 무신인 거지.’성수현이 봤을 때 김예훈은 이미 무신 급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었다.놀라움도 잠시, 성수현은 순식간에 김예훈의 앞으로 다가와 다리를 뻗었다.퍽!
퍽!성수현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바닥을 힘껏 내딛더니 순식간에 김예훈을 향해 날아갔다.이때 대리석 바닥이 움푹 파여 깊은 구멍이 나고 말았다.김예훈은 그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켜만 볼 뿐이었다.성수현은 순식간에 김예훈 앞에 나타나 오른손 손톱을 드러내더니 김예훈을 할퀴려고 했다.이것은 바로 독수리 권법이었다.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오른손 주먹을 정면으로 뻗었다.퍽!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 스쳐 지나갔고, 성수현만이 휘청거리더니 저 멀리 날아갔다. 바닥에 떨어졌을 때 한참이나 휘청거려서야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김예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네가 졌어. 이제부터 내 졸개라는 명심해.”성수현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표정이 순식간에 확 변했다.언제부터인지 복부에 발자국이 나 있었다.아까 김예훈이 조금만 더 힘썼더라면 이미 병신이 되었을지도 몰랐다.성수현은 이 발자국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면서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맞아요, 제가 졌어요. 김 세자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김예훈이 고개를 흔들었다.“아니, 세자님이 아니라 형님이라고 불러야지. 그리고 혜성 엔터테인먼트 나한테 선물하는 거 잊지 말고. 오늘부터 내가 살라면 살고 죽으라면 죽어야 해! 아무튼 내 말 잘 들어!”성수현은 표정이 어두워지긴 했지만 전설급 인물이라 내기에서 졌으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뒤이어 직원들은 후다닥 혜성 엔터테인먼트 지분을 모두 김예훈 명의로 바꾸었다.성수현은 마지못해 형님 소리를 몇 번 하더니 핑계를 둘러대 자리를 피했다.자존심 강한 성수현 같은 사람은 내기에서 철저히 패배하긴 했어도 받아들이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다....병원 쪽에는 임강호와 오정범 등이 정소현을 봐주고 있어 별일 있을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윤하에게 전화해 용문자제들을 더 불러 병원 주위를 지키라고 했다.그리고 혜성 엔터테인먼트는 진윤하에게 위탁관리하기로 했다.이러면 진윤하와 지위가 동등해질 수 있었고 다른 한 방면으로는 직접 관리할 여유도 없었다.혜성
별장 입구, 언제부턴가 블랙 정장을 입은 올백 머리의 남자가 나타났다.김예훈이 반응하기도 전에 우현아는 이미 그 남자를 집안으로 들여보냈다.“선배, 오셨어요? 오래 기다렸어요.”올백 머리의 남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별장으로 걸어들어오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너의 일은 사부님한테서 이미 들었어. 오늘 전화 받으시고 바로 널 보호해 주라고 나를 보냈어. 현아야, 넌 진작에 우리랑 같이 무술을 연마해야 했어. 진작에 그랬다면 부산 용문당에 너의 자리 하나쯤은 있었을 거야. 너의 아빠도 너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겠지. 이번에는 사부님이 어머님을 봐서 나를 보내준 거고. 일이 해결되면 사부님께 많이 고마워해야 할 거야. 사부님은 세상일에 신경 끄고 사셨는데.”그 남자는 별장 로비를 쭉 훑어보더니 식탁 위에 놓인 포장 음식을 보고는 싫증 난 표정을 지었다.뒤이어 로비에 있는 김예훈을 발견하고 자신이 짝사랑하는 우현아가 다른 남자와 단둘이 있는 모습에 살기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곧바로 표정을 숨기고 기침을 짓더니 말했다.“현아야, 내가 잔소리하는 건 아닌데. 밖에서는 안전에 조심해야 해. 배달원을 이렇게 쉽게 집에 들여보내지 말고. 문 앞에 놓고 가라면 될 것을. 너 이러는 거 정말 걱정돼.”서진욱은 주머니에서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더니 바닥에 던지면서 말했다.“거기 배달원, 이거 팁이니까 받고 꺼져.”김예훈은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서진욱을 쳐다보더니 말했다.“제가 오천 원을 드릴 테니 꺼져줄래요?”김예훈은 나타나자마자 선배라고 꼴값 떠는 서진욱이 비호감이었다.잘난 척하고, 허세가 가득하고 예의도 바르지 않은 사람으로 보였다.우현아와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발로 걷어차 내쫓았을 것이다.김예훈은 우현아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그녀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하지만 우현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서진욱이 먼저 다가가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배달원, 좋은 말로 할 때 꺼지지? 손발을 부러뜨려 줘? 여기서는 너의 편이 되어줄
김예훈은 우현아의 설명을 듣고 그제야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처리해야 될 일이 많아서 우현아를 홀로 별장에 남겨두고 집을 나섰다.안정감 없는 여자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아는 사람한테 연락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김예훈은 피식 웃더니 먼저 손을 내밀었다.“현아 선배님 되신다고요? 아까는 오해였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저는 김예훈이라고 해요.”“그래.”서진욱은 여전히 도도한 표정으로 마지못해 김예훈과 악수했다.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음식 포장을 뜯었다.“아직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드실래요?”서진욱이 비웃듯이 말했다.“김예훈이라고? 걱정하지 마. 내가 왔으니 현아 안전은 이제부터 내가 책임질게.”“그래서요?”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그러니까 현아 의식주는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는 더 이상 이곳에서 살지 않을 거고 이런 음식도 현아한테 어울리지 않아. 현아야, 짐 정리하고 근사한 거 먹으러 가자.”서진욱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무의식적으로 우현아와 김예훈의 사이가 가까워 보인다는 생각에 떨어뜨려 놓고 싶었다.김예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우현아를 힐끔 쳐다보았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말했다.“선배, 제가 이미 통화상으로 말씀드렸잖아요. 이번에 도움을 요청한 건 저도 그렇고 김예훈도 보호해달라고 한 거였어요. 저 때문에 견청룡과 저의 아빠, 그리고 새엄마를 잘못 건드렸으니까요. 제가 가버리면 김예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갈 수 없어요.”서진욱은 피식 웃더니 말했다.“현아야, 너는 아직 어려서 네가 이용당하고 있는 거 전혀 모르고 있어. 내 말 잘 들어. 이 남자와 멀리해. 너한테 접근해서 이렇게 잘해주는 데 다른 목적이 없었을 것 같아? 이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더욱 위험해질 거라고. 그리고 나는 이 사람을 보호할 의무도 없어.”우현아는 당황해하면서 김예훈에게 다가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김예훈은 뒤로 반보 물러서 손쉽게 이 한방을 피해버렸다.샤샥!서진욱은 멈칫하더니 이번에는 김예훈의 양옆을 향해 손바닥을 뻗었다.그는 아무렇지 않게 피하더니 손바닥으로 그의 손바닥을 후려쳤다.짝!쨍한 소리와 함께 동작을 멈추지 않고 이어서 서진욱의 뺨을 때렸다.서진욱은 그대로 제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젊은 층에서 하이레벨 고수라고 자만하던 그는 방금 김예훈의 실력을 떠보기 위해 5, 60퍼센트의 실력만 보여주었지만 그가 피하면서 도리어 자기 뺨을 때릴 줄 몰랐다.김예훈은 오른손을 툭툭 털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선배, 그만하시죠.”“선배, 김예훈은 우리 편이라고요!”우현아는 화가 나 본능적으로 서진욱 앞을 가로막더니 소리 질렀다.“도와주러 오라고 했지 행패 부리라고 부른 건 아니에요! 계속 이럴 거면 그냥 가세요. 필요 없으니까!”서진욱은 악독한 표정을 짓더니 김예훈 실력이 대단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너무 자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화를 내는 우현아를 향해 억지 미소를 지어볼 뿐이었다.“현아야, 걱정하지 마. 그저 김예훈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이야. 뭐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이 있는 것 같네. 김옥자 보디가드 손에서 너를 구해내 줄 만하네. 그런데 이제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는 견청룡이야. 소문으로는 이미 서울에서 돌아왔다던데 제1 킬러 양진우도 부산에 나타났다고 했으니 곧 너희 찾으러 올 거야. 김예훈도 실력 있긴 하지만 양진우를 만났을 때는 꼼짝도 하지 못할 거야!”서진욱은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예훈처럼 실력도 없는 놈이 멋있는 척 우현아를 보호하겠다고 나서는 건 자기 스스로 목숨을 내놓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일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병신처럼 현아 뒤에 숨기만 하고.’김예훈은 표정이 차갑기만 했다.‘이 서진욱이라는 사람은 뺨을 맞고도 겸손해질 줄 모르네. 현아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별장 밖으로 내쫓았어.’하지만 상대방이 양진우를 언급하자 그래도 흥미진진했다.“양진우를 알아요? 친해요?”“김예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