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올라타려던 우충식은 잠깐 멈칫하더니 김예훈을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다.“우 부회장님, 죄송합니다.”비록 높은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부회장님이라는 단어가 똑똑히 들려왔다.그는 가까이 오려던 용문당 제자들을 걷어차 버리더니 태연하게 우충식을 쳐다보았다.“저희 이렇게 다시 볼 정도로 인연이 깊은 줄 몰랐네요.”우충식은 여진수가 김예훈을 잡아두지 못한 것에 의외라는 생각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지만 별로 무서워하지도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무슨 짓 하려고?”“무슨 짓이라뇨...”김예훈이 웃었다.“그저 장인어른께 회장직 꿈을 깨시라고 말씀드리려던 참이었어요. 너무 안 어울리시거든요...”짝!말을 끝낸 김예훈은 우충식의 뺨을 때렸다.아주 맑고 시원한 소리였다.김예훈은 그러다 다시 미소를 지었다.“지금 이 뺨이 어르신이 꿈꾸던 꿈에서 깨어드렸나요?”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이곳을 떠났다.분위기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우충식은 부어오른 얼굴을 잡고 잠깐 멍때리더니 어이없어 웃음을 터뜨렸고 이내 살기가 가득한 눈빛을 장착했다....김예훈은 용문당 검도관을 떠나자마자 심아현에게 전화했다.그가 정한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하은혜가 계속 연락해오지 않으면 직접 심씨 가문을 찾아가려던 참이었다.하지만 심씨 가문을 찾아가기 전에 부산 용문당 문제부터 해결하려고 했다.회장이라는 명예를 가지고 심씨 가문을 찾아가면 수많은 어려움이 따라서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최신소식에 의하면 우충식이 회장직을 탐내는 데는 배후에 부산 6대 세자 중의 일인인 견청룡이 등을 떠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한마디로 짧은 시일 내 이 일을 해결하자면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김예훈은 부산의 여러 가지 일을 하나하나 해결하자니 머리가 아팠다.전소현이 포레스트 1호 별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떠올라 밖에서 도시락을 사 들고 별장으로 향하게 되었다.별장으로 들어서려고 했을 때, 뒤에서 누군가의 놀라움이 섞인
“포레스트 별장은 부산에서 제일 좋은 별장이잖아. 오늘 효임이와 함께 이곳 가격과 환경을 보러 왔어. 그러면 이제 일할 때 더욱 힘 날 거 아니야!”조인국은 두 날 만에 몇억 원을 벌어들인 딸이 인기가 많아졌다고 해서 오산그룹 업무를 내팽개치지 않은 모습에 흐뭇한 표정을 했다.이때 조효임이 애교 섞인 말투로 말했다.“아빠, 걱정 마세요. 팬 한 분이 맨날 선물을 쏘고 있기 때문에 최소 한 달 내로 이 별장을 살 수 있을 거예요.”조효임은 블랙 샤넬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정갈한 메이크업에 매력 넘치고 자신감 있어 보였다.“어머, 지금 뭐 하는 거야? 돈 자랑이라도 하는 거야?”이미연은 이들의 대화를 끊었다.“몇십억이나 되는 걸 예훈이가 알아들을 리가 있겠어요? 평생 만져보지 못한 돈인데! 그리고 그렇게 계속 자랑질하면 예훈이 마음이 어떻겠어요? 내일 출근도 해야 될 텐데. 그 일자리도 효임이가 알아봐 준 건데 어떻게 생각하겠어요?”이미연은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김예훈 앞에서는 자랑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신에게 들러붙어 이것저것 달라고 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리고 조효임과 죽마고우라는 핑계로 죽을 각오로 조씨 가문의 대리사위가 되겠다고 할까 봐도 걱정이었다.그렇게 되면 체면을 중히 여기는 조인국이 둘을 결혼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이런 끔찍한 상상에 이미연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더니 순간 화제를 전환하면서 말했다.“예훈아, 미안해. 아저씨랑 효임이가 네 기분을 생각하지도 않고 자랑질만 했어. 별다른 생각 하지 말렴. 근데 왜 여기였는지 우리한테 말 안 했잖아. 아까 포레스트 별장에 들어가려고 하던데, 이곳은 엄청난 분이 살고 계셔. 함부로 들어갔다간 화를 입을 거야.”조인국도 김예훈이 이곳에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이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조효임은 김예훈 손에 쥐고 있던 도시락을 보고 배달온 줄만 알았다.“아저씨, 저 요즘 잠깐 1호 별장에서 살고 있어요.”김예훈이 웃으면서 말했다.“들어와 보시지 않
김예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얘기했다.“아저씨, 이 집은 진짜 제집이에요. 제가 왜 아저씨를 속이겠어요. 아니면 안에 들어가서 얘기할까요?”“그만해, 김예훈. 우리 앞에서 잘난척해봤자 소용없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허세를 부리는 게 재밌어?”이미연은 김예훈을 보면서 차갑게 비웃었다.“별장은 분명 임강호 어르신의 것이야. 그런데 네 것이라고 계속 우겨? 그게 아니면, 뭐, 강서 임씨 가문에서 이 별장을 너에게 줬다는 거야?”이미연은 김예훈을 보며 차갑게 비웃었다.잡초는 역시나 잡초였다. 그 태생은 변하지 않는다. 그들의 앞에서 허세를 부리기 위해 이런 거짓말까지 하다니. 정말 비참하고 웃기지 않은가.김예훈은 씁쓸하게 웃더니 해명했다.“이 별장은 확실히 임강호 어르신이 제게 선물해 주신 겁니다.”“됐어, 예훈아. 그만하거라.”조인국도 김예훈을 보면서 실망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차가워진 눈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른 것 다 필요 없어. 네가 자기 분수를 잘 알고 착실하게, 성실하게 일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조인국은 김예훈에게 크게 실망했다.만약 김예훈의 부모가 김예훈이 이런 허세 가득한 사람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실망할까.“만약 네가 아직 나를 웃어른으로 생각한다면 내일부터 출근하러 가. 이런 쓸데없는 허세를 부리지 말고. 네가 말하는 별장은, 사양하마.”말을 마친 조인국은 별장을 둘러보지도 않고 뒷짐을 쥔 채 어두운 표정으로 떠났다.“인국 씨, 김예훈은 너무 사치스러워요. 앞으로 우리한테 빌붙으면 어떡해요!”이미연은 조인국의 뒤를 쪼르르 따라갔다.“예전에 김예훈과 효임이를 결혼시키겠다고 한 말 취소해요. 절대로 저런 자식에게 우리 효임이를 맡길 수 없어요.”조인국은 차갑게 얘기했다.“그냥 장난으로 한 말인데, 누가 진심으로 듣겠어.”이미연은 담담하게 얘기했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멀어져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김예훈은 어쩔 수 없다는
김예훈은 조효임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조효임이 떠난 후, 정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소현이 갑자기 촬영 현장으로 가서 추가 촬영을 하기 위해 별장에 없다는 소식을 들은 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리고 김예훈은 또 오정범에게 전화를 걸어 사람을 보내 정소현을 보호하게 했다.이 모든 것을 마친 후, 김예훈은 배달 용기를 들고 포레스트 별장으로 들어섰다.1호 별장 앞에 선 김예훈은 키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발로 문을 걷어차더니 바로 뒤로 물러섰다.푹. 작은 소리와 함께 활 세 개가 김예훈이 서 있던 곳을 노리고 날아왔다.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별장을 뒤덮었다.김예훈은 진작 예상한 듯, 활이 날아오는 순간에 손을 저어 배달 용기를 던져버렸다. 그리고 뛰어올라 2층 발코니 난간을 잡고 힘을 주어 빠르게 2층에 올라갔다.날아간 배달 용기는 마침 스위치에 닿았고 전등이 순식간에 켜졌다.2층 구석에 매복해 있던 킬러들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검은 야행 복을 입고 있었는데 머리까지 꽁꽁 싸매고 눈, 코, 입만 드러내놓고 있었다.불이 켜지는 순간, 킬러들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뜨고 다시 김예훈을 찾으려고 했다.하지만 김예훈은 바로 배달 용기에서 젓가락을 꺼냈다.푹. 그와 가까이 있던 세 명의 킬러들은 목을 부여잡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쓰러졌다.김예훙는 가장 가까운 곳에 쓰러진 시체를 방패로 삼았다.푹. 또 화살이 세 개 날아왔지만 김예훈의 털끝도 다치지 못했다.오른발로 바닥의 화살을 끌어온 김예훈은 빠르게 활을 쐈다.작은 신음과 함께 세 명의 킬러들이 2층 발코니에서 떨어져 1층 홀에 쓰러졌다.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이 시체들을 발로 차서 홀에 모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의 종이를 뽑아 손에 묻은 피를 닦았다.짝짝짝.가벼운 박수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정교한 소파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칭찬을 담아 얘기했다.“역시 다이아몬드를 한 손에 깬 고수답네. 정말 상상 밖의 실력이야.”김예훈은
1호 별장을 다 수색해 보았지만 백낙당의 사람들 빼고 아무도 없었다. 상대는 김예훈 혼자다.문빈은 굳은 얼굴로 김예훈을 보면서 얘기했다.“형님, 저 자식한테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그날 밤, 김예훈한테 크게 당한 후, 문빈은 오늘만을 기다리며 화를 꾹 눌러 참았다. 오늘 그들에게 포위당한 김예훈은 이제 곧 죽은 목숨이다.“너를 도울 사람은 하나도 없어. 방어 시스템은 이미 우리가 해킹했고. 그러니 너는 이제 도망갈 수도 없어. 그래도 네 용기 하나만큼은 칭찬할 만하네. 감히 우리 앞에 똑바로 서 있다니. 게다가 우리를 기다렸다고? 왜, 우리가 와서 널 죽이기를 기다린 모양이지?”정민은 흥미진진하게 김예훈을 쳐다보았다.김예훈은 여유롭게 물을 마시고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얘기했다.“내가 전국영과 마찰이 생겼어. 그가 준비한 계획을 망치고 그가 부산 용문당 사람들을 죽이게 했지. 그리고 너희는 다이아몬드의 흔적을 찾았고. 오늘 우충식이 나를 자기편으로 만들려는 것을 보고 내가 우충식의 마음에 들까 봐 걱정되었지. 혹은 나 때문에 우충식부터 무너뜨리려던 견청룡의 계획이 실패할까 봐 겁이 났던 거지. 그래서 견청룡이 서울에서 돌아오기 전에 나를 찾아온 거잖아. 나를 먼저 죽이지 않으면 견청룡이 서울에서 한 모든 일이 수포가 될 거니까. 우충식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소식을 일부러 흘린 건 나야. 그사이를 못 참고 날 찾아오다니... 정민, 당신 같은 사람도 이렇게 안절부절못할 정도인 줄은 몰랐어. 소식을 흘린 지 한 시간도 안 됐는데 바로 찾아오다니. 조급해하면 일만 그르칠 텐데.”김예훈은 그렇게 얘기하면서 차가운 얼굴로 정민을 쳐다보았다.정민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 눈에는 점점 살기가 어렸다.“그러니까, 전국영과의 마찰부터 시작해서 우충식의 일까지, 모두 네 계획이라고? 나를 움직이게 만들려고, 견청룡 세자가 부산으로 오기 전에 내가 너희들의 판에 발을 들이게 하기 위해서라고?!”“맞아.”김예훈은 웃으면서 담담
정민의 말을 들은 문빈은 기다릴 수 없었다.칼을 빼낸 문빈이 입을 열었다.“형님, 곧 죽을 놈한테 그런 말을 해서 뭐합니까. 저 자식 엄청 허세만 가득한 놈입니다. 제가 오늘 이 칼로 저놈을 베버려 죽여버릴 겁니다!”말을 마친 그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이 자식의 신분은 이미 조사해 봤습니다. 확실히 돈도 좀 있고 성남에서 힘도 있는 자식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부산이지 성남이 아니잖습니까. 부산에서 외지인을 죽이는 데 형님이 직접 나설 필요 없습니다.”김예훈이 백낙당에서 문빈에게 한 방을 먹였고 또 문빈의 곁에 있던 실력자를 해치웠지만 문빈은 김예훈이 자기보다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그때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뿐이지, 문빈이 진짜 진심으로 나섰다면 김예훈을 죽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김예훈은 날뛰는 문빈을 무시한 채, 정민을 보면서 웃었다.“정 대표, 내가 왜 아무 원한도 없는 당신을 죽이려고 계획했는지 궁금하지 않아?”정민이 담담하게 물었다.“물어보면 대답할 건가?”열심히 고민한 김예훈이 대답했다.“당연히 대답해 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고, 당신이 죽기 직전에 알려줄 거야. 난 착한 사람이라서 네가 죽어야 할 이유를 알려줄 수 있거든.”“이유를 알려준다고?”정민이 차갑게 웃었다.“네가 성남에서 얼마나 잘난 사람이었든지, 이곳은 부산이고, 넌 우리를 이길 수 없어.”김예훈은 물을 다 마시고 담담하게 얘기했다. “그런 말 못 들어봤어?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당신은 이제 빠져줘야겠어.”“하...”정민은 흥미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문빈은 손에 쥔 칼을 던지고 김예훈을 쳐다보면서 얘기했다.“김예훈,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 정민 형님을 죽이겠다고? 열 번을 달려들어도 한 번도 못 이길걸? 네가 킬러를 몇 명 죽였다고 뭐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널 죽이는 건 개미를 밟아 죽이는 것만큼 쉬워.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자르면 네 체면을 봐서라도 정민 형님
챙.칼과 젓가락이 부딪쳤다. 그 순간, 생각지 못한 힘이 퍼져나갔다.문빈의 팔 근육이 파르르 떨리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그러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팔이 조각났다.그의 칼도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났다.“으악!”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 충격에 문빈은 날아가서 동료에게로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끝났다. 그저 한방이었을 뿐인데!”문빈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버렸다.“이게 무슨 일이야!”“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젓가락이잖아? 젓가락으로 뭘 한 거야?!”“문빈 형님이 방심한 거 아니야?”김예훈이 젓가락 하나로 문빈을 해치웠다는 사실에 그들은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딱 벌린 채 굳어버렸다.그들은 눈앞의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문빈 같은 사람이 김예훈의 손에 한방에 쓰러지다니.옆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던 정민도 표정이 약간 굳어버렸다,“너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문빈은 자기의 팔을 그러안고 몸을 바르르 떨며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게 참는 중이었다.“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어? 죽고 싶어?!”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지만 그 동시에 공포가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김예훈은 너무 강했다. 그런 김예훈이 문빈을 해치우기는 정말 쉬웠다. 문빈은 자기가 김예훈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얘기했잖아.”김예훈은 남은 칼을 집어 들었다.“너희가 이곳에 나타난 것은 내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죽고 싶어?!”문빈은 이를 꽉 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죽여버려!”“죽여라!”남은 여섯 명의 동료들이 바로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조직에 오래 몸을 담근 사람들이라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죽여보았다. 아무리 두려워도 그들은 지금 김예훈을 향해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그들이 칼을 들자 빛을 받은 칼이 섬뜩하게 빛났다.슉. 김예훈은 물러나지 않고 손에 쥔 칼을 휘둘렀다.고작 한 걸음으로 김예훈은 여섯 명을 지나쳐버렸다.쿨럭.여섯 명은 모두
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까딱였다.“그럼 당신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줘 봐.”“하.”정민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정민이 몸을 바르르 떨자 그의 옷이 바로 찢어지고 우락부락한 근육이 드러났다. 그 후, 정민이 바로 발을 내딛자 목제 타일이 바로 부서졌다.김예훈이 반응하기 전에 그는 오른발로 목제 타일을 조각내서 김예훈이 있는 곳으로 휘둘렀다.그와 동시에 정민은 주먹을 뻗어 김예훈의 얼굴을 노렸다. 정민은 부산 조직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정민이 직접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었는데 그는 나설 때마다 절대 봐주지 않고 일격에 상대를 죽인다고 한다. 김예훈은 담담한 표정으로 오른발로 칼을 들어 목제 타일을 쳐냈다.그 사이에 정민은 바로 김예훈 앞으로 다가왔다.“너 이 자식, 내 형제를 죽이고 내 부하를 죽이다니. 넌 오늘 무조건 죽어야 해!”말을 끝낸 정민이 김예훈의 얼굴에 주먹을 뻗었다.김예훈은 담담한 얼굴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정민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민이 주먹을 뻗는 순간, 그도 오른 주먹을 내뻗었다.쿵. 두 주먹이 맞닿았다.커다란 소리에 기세등등하던 정민이 뒤로 세 걸음 정도 물러났다.그가 한 걸음씩 밟을 때마다 바닥에 깊은 발자국이 생겼다. 거대한 반동에 정민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가 억지로 힘을 내리누르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피를 토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예훈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정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럴 수가 없다. 그는 부산 조직의 일인자고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그의 실력은 거의 군부대의 무신과 비슷했다. 그런 정민이 김예훈에게 밀리다니?설마 김예훈이 더 강해서...?그 순간, 정민의 눈에는 두려움이 살짝 서렸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김예훈을 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우리가 무슨 원한이 있어서...”정민은 종래로 후환을 남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다 죽이고 다녔다.“아무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