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 당장 나가라고 해!」「이제 하다 하다 거지도 라이브 방송에 들어오네?」「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댓글 창에는 한동안 욕만 줄을 이었다.김예훈은 신경도 쓰지 않고 휴대폰으로 댓글을 남겼다.「뻔뻔하게 200만 원을 후원하면서 그런 소리를 해?」「그래, 200만 원이 큰돈은 아니지만 넌 이만큼도 본 적 없잖아.」‘부산 도련님’이 불쾌하다는 표정을 보냈다.「네가 뭐라도 되면 나한테 한번 덤벼봐. 누가 더 많이 후원하나 보자. 적게 한 사람이 많이 한 그 사람에게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야.」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동생이 되길 기다리는 거야?」부산 도련님은 이런 일은 흔하듯 경멸하는 듯한 표정을 보냈다.「너 같은 키보드 워리어는 딱 질색이야. 돈도 많이 쓰지도 않으면서 멍청하기 짝이 없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아무리 거지여도 너보다는 많을 듯.」「그래. 돈 많으신 건물주님이 별사탕을 얼마나 많이 보내는지 볼까? 왜? 못 하겠어? 못 하겠으면 그냥 나가!」기세가 등등한 ‘부산 도련님’은 사실 우지환이다. 우지환은 어쨌든 오산그룹의 임원이기 때문에 톡톡 플랫폼에서 현금 충전 시 혜택을 받는 방법이 있다.다른 사람이 현금 충전을 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없지만 우지환은 15% 할인을 받아 굉장히 여유롭기에 다른 사람과 돈 내기를 하는 것이 무섭지 않다.더욱이 라이브 방송에 들어온 이유는 조효임의 눈길을 사로잡고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인데 지금 다른 사람이 큰소리치며 도전장을 내밀은 상황이라 우지환은 이런 도전에 전혀 개의치 않고 조효임 앞에서 계속 환심을 사려한다.김예훈은 거절하지 않고 말했다.「내기가 하고 싶으면 해. 먼저 패배를 인정하는 사람이 동생 하는 거야.」김예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플랫폼은 김예훈 거고, 계정은 공식 계정이어서 조효임의 인기를 끌어주고 조효임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조인국에게 보답하는 셈이며 시간도 때울 수 있다.「좋아. 지금 방송을 보는 사람들이 전부 증인이야. 난 네가
「뭐야? 이 ‘건물주’는 어디서 온 사람이야?」「저 사람 아빠가 혹시 충청지역 최고 부자 심현섭이야?」「미쳤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야?」「와. 돈 많은 사람은 좋겠다. 돈 많으면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시청자들이 열띤 토론을 하면서 ‘건물주’라는 이름이 최고 인기 검색어가 됐다.그러나 상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예훈은 ‘부산 도련님’을 언급했다.「동생아. 패배를 인정하니?」‘부산 도련님’은 인상을 찌푸리며 이를 꽉 깨물었다.띠링. 띠링. 띠링.별난차 20개가 화면에 올라왔다.4억!‘부산 도련님’은 ‘건물주’를 반드시 짓누르고자 자기 연봉을 그대로 쏟아부었다.떨어진 위상을 다시 돌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계정은 웃음거리가 되고 조효임은 더 이상 자기를 봐주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우지환도 4억을 쉽게 후원하면 조효임의 마음을 움직여서 분명히 자기 여자로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4억 원?」「정말 4억 원 맞아?」시청자는 모두 깜짝 놀라 소리 지를 뻔했다.조효임도 신나서 어쩔 줄 몰라 ‘감사합니다. 오빠!’ ‘오빠, 최고!’만 연신 외쳤다.‘부산 도련님’이 기세등등하게 말했다.「동생아, 더 해볼 수 있어? 네가 낄 수 있다고 생각해? 그냥 가만히 있어! 능력이 있으면어디 한 번 더 해봐! 어서 날 밟아봐!」지금 ‘부산 도련님’은 미쳐서 날뛰고 있다.김예훈은 어떤 반응도 하지 않았다.‘부산 도련님’은 가소롭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돈이 다 떨어진 건 아니지? 설마 2억도 대출한 거야?」김예훈이 반응하지 않자, 시청자들은 난리가 났다.「대답을 안 해.」「그럼 ‘건물주’는 가짜 부자야?」「역시 ‘부산 도련님’이 대단하네!」「당연하지. ‘부산 도련님’은 부산 용문당 부회장 조카여서 재력이 어마어마하대!」「‘건물주’는 닉네임만 봐도 졸부잖아. 어떻게 ‘부산 도련님’과 비교를 해.」「2억은 온라인 대출인듯해. 지금 그냥 빈털터리 된 거지 뭐.」「부산 도련님 봐. 4억 원 후원으로 그냥 눌러버렸어!」
이런 히든 아이템은 톡톡이 개설된 후, 소문으로밖에 들어보지 못했다.많은 여캠들은 히든 아이템인 ‘판도라의 상자’를 후원해 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얘기했었다.하지만 그 누구도 ‘판도라의 상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청자는 아무렇지 않게 이유도 없이 모두 소문으로만 들은 ‘판도라의 상자’를 후원했다.모든 사람은 놀라서 굳어버렸다.몇몇 신문사에서는 이미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다들 이 일을 톡톡 플랫폼의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톡톡 플랫폼을 홍보하려는 김예훈은 목적은 달성되었다. 김예훈은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조효임은 흥분으로 가득 차 가만히 있지 못했다. 이미지 관리 따위는 잊은 지 오래였다.“판도라의 상자? 정말 전설 속의 판도라의 상자? 이건 몇십억짜리잖아요! 미쳤나봐! 미쳤어! 오빠, 도망간 게 아니라 코인 충전하러 갔던 거죠? 이걸 후원하려면 코인 충전만 10분 걸리겠어! 건물주 오빠! 사랑해요! 제가 오빠 아이를 낳아줄게요!”잠깐의 정적 후, 톡톡 플랫폼은 완전히 터져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의 댓글이 댓글 창을 덮어버렸다.이윽고 김예훈에게도 메시지가 수없이 쌓였다. 시청자들과 다른 여캠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지금 ‘건물주’는 톡톡 플랫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다. '부산 도련님'보다, 심지어는 조효임보다 더욱 유명했다.「부산 도련님? 이제 네 차례야.」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김예훈은 후원을 마친 후 바로 댓글을 달았다.많은 사람들이 ‘부산 도련님’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부산 도련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싸움을 계속 이어 나간다면 20억을 써야 한다. 부산에서 잘나가는 세자나 도련님을 빼면 20억을 손쉽게 내놓을 사람은 없었다.20억은 우지환의 몇 년 치 연봉이었다.하지만 20억을 내놓지 못한다면 창피해서 죽을 것이다.‘부산 도련님’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그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자기가 거지 같았다.코
정신을 차린 시청자들이 댓글 창에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부산 도련님’을 허세만 부리다가 돈을 잃은 바보로 보고 있었다.그런 바보가 다른 사람더러 자기를 형님이라고 부르게 하다니. 컴퓨터 앞에 있는 ‘부산 도련님’은 온몸이 벌벌 떨렸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아까 후원한 스포츠카도 대출금으로 산 것인데, 더 많은 돈을 가져올 수 있을 리 없었다.20억을 더 쓴다면, 그는 앞으로 배를 긂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완전한 그의 패배다.우지환은 속이 답답했지만 체면을 지키기 위해 차갑게 웃으며 얘기했다.「여캠 하나 때문에 20억을 쓰다니, 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에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뻔뻔한 사람은 자주 봤지만 이 정도로 낯짝이 두꺼운 사람은 처음이다.본인도 4억을 썼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냐고 묻는다니.「20억은 나한테 있어서 하루 이자의 십분의 일 정도라서. 별것 아니야.」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김예훈은 평소에 크게 돈 쓸 일이 없었다. 그가 돈을 쓴다고 해도 그의 재정 상태로 봤을 때, 20억은 정말 그의 이자 정도였다.「이만 꺼져. 20억도 없는 놈은 나를 형님이라고 부를 자격도 없어. 창피한 줄 알아!」김예훈은 바로 우지환을 라이브 방송에서 강제 퇴장시켰다.「건물주, 대단해!」「건물주, 정말 상남자다!」「건물주 오빠, 내 라이브 방송도 와줄 거지?」댓글창에는 많은 사람들이 폭주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댓글은 ‘건물주’에 관한 것이었다.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김예훈이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조효임이 방에서 뛰어나와 흥분한 표정으로 얘기했다.“아빠, 엄마, 저 대박 났어요! 아까 라이브 방송할 때, 누가 저한테 20억을 후원했어요! 30분밖에 안 했는데, 세금이랑 수속비 같은 걸 떼고 나면 6억은 훨씬 넘을 거예요. 돈은 둘째치고, 호구 하나 잡았으니 곧 뜰 거예요! 저도 유명해질 거라니까요! 그리고 아까 후원자랑 결혼할 거예요!”조효임은 신나서 콩콩
김예훈은 여전히 담담했다. 조인국은 어두워진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이미연! 당신 뭐 하자는 거야! 빌붙지 말라니! 예훈이와 효임이는 어릴 때부터 친구였어! 내가 키운 거나 다름없는 아이니까 예훈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알아! 예훈이가 우리 집의 사위가 되어준다면 나는 정말 기쁠 거야! 남자한테는 돈을 얼마나 버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책임감이 있는지가 더욱 중요해! 너희 둘 다 똑같아!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잖아! 예훈이는 그저 시작할 발판이 없어서 그래. 발판만 있다면 바로 몇억을 벌 거야! 내가 오늘 밤 예훈이를 부른 건, 고위층 임원 자리를 준비해 두었으니 언제든지 우리 회사에 와서 출근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야.”조인국은 정말 김예훈에게 잘해주려고 했다. 이 모든 것이 당연하다는 듯 얘기하는 조인국을 보며, 김예훈은 굳어버렸다.“뭐요? 그 고위층 임원 자리를 김예훈 같은 쓰레기한테 준다고요?”김예훈이 입을 열기 전에 이미연이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김예훈이 무슨 자격과 실력으로 그 자리에 앉아요? 고위층 임원? 연봉이 몇억 될 거라고요? 당신 돌대가리예요? 전에 얘기했을 때는 회사에 지인을 들이지 않겠다면서요! 내 사촌 동생이 그렇게 애원했는데 들여보내 주지 않았으면서, 김예훈은 들어가자마자 고위층 임원이라고요? 인국 씨, 당신 죽고 싶어요? 난 당신을 죽여서라도 반대할 거예요!”김예훈이 입사해서 몇억의 연봉을 받으며, 자기 집에 빌붙고, 조효임에게 매달리다가 결국 집안 재산까지 손을 대려고 한다면 큰일이다!이미연은 살기를 가득 담은 눈으로 김예훈을 노려보았다.조인국은 굳은 표정으로 얘기했다.“내가 그렇게 정했어. 이 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이미연은 조인국을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결정권? 데릴사위가 무슨 결정권이 있어요? 퉤!”욕설은 조인국을 향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데릴사위인 김예훈을 욕하면서 김예훈은 조씨 가문에 발을 들일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두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본 김예훈은 화를
오산 그룹이라는 이름을 듣자 조인국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오산 그룹은 큰 기업이었다. 그곳에서 일한다면 조인국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을 것이다.이미연도 한숨을 돌렸다. 김예훈이 조효임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거머리처럼 조인국의 회사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것보다는 나았다.그래서 이미연도 반대하지 않았다.조효임은 어쩔 수 없었다. 김예훈은 오산 그룹에 소개해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효임은 김예훈 같은 촌놈이 실수를 해서 조효임의 체면을 깎을까 봐 걱정이었다.그러나 김예훈의 일로 부모님이 싸우는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에 조효임은 빨리 김예훈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하지만 아빠, 먼저 얘기하는 건데요, 오산 그룹에 들어가자마자 몇억의 연봉을 받을 수는 없어요. 오산 그룹에서는 능력을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오산 그룹에 입사하는 건 도와줄 수 있지만 그 후의 일은 본인의 능력에 달렸어요. 능력만 있다면 몇억은 무슨, 몇십억도 문제없어요.”조효임은 진지한 얼굴로 부모님께 얘기한 후, 몸을 돌려 오만한 표정으로 김예훈을 보면서 얘기했다.“며칠 후에 나랑 같이 오산 그룹에 가. 1년 안에 연봉 10억을 찍을 수 있다면 나랑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줄게.”말을 마친 조효임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난 정말 천재야!’이렇게 하면 부모님의 갈등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김예훈이 그들에게 빌붙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리고 김예훈과 결혼시키려는 조인국을 완곡하게 거절할 수 있다.연봉 10억을 찍으면 기회를 주겠다고 얘기했으니 김예훈이 그만한 연봉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김예훈을 탓할 수밖에 없다.하지만 만약 김예훈이 연봉 10억을 찍을 수 있다면 그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기회를 줘도 괜찮을 것이다.조인국은 조효임이 머리를 굴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한참 있다가 겨우 입을 열어 물었다.“효임아, 확신 있는 거냐? 예훈이를 오산 그룹에 입사시키는 것 말이다. 게다가 10
생각해 보니 조효임의 말이 맞았다.우지환 같은 사람도 연봉이 4억 정도다.그러니 김예훈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억 단위의 연봉을 받을 리가 없었다.정말 꿈에서만 있을 일이다.그러니 일어나지도 않을 일로 조인국과 싸울 필요 없다.그 생각에 이미연은 김예훈을 쳐다보며 오만하게 입을 열었다.“김예훈, 이렇게 되었으니 그냥 효임이 말대로 해! 얼른 효임이한테 감사하다고 해야지! 오산 그룹은 부산에서 꽤 유명한 기업이야. 주주들은 모두 부산 용문당의 고위직이라고. 그곳에서 일하는 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야. 족보에 적어서 두고두고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러니 오산 그룹에 가서 네 주제를 잘 알고 행동해. 널 소개해 준 효임이한테 피해 가는 일이 없게 말이야! 네가 억 단위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면 인국 씨가 집을 선물한다고 해도 말리지 않으마! 그리고 10억의 연봉을 받는다면 두 사람의 교제를 생각해 볼게. 그전에는 꿈도 꾸지 마. 알겠어?!”이미연은 오산 그룹을 이용해 김예훈이 조씨 가문에 빌붙지 못하게 못을 박았다.조인국도 눈치챘지만 이미연과 더 싸울 수가 없어 그냥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그래, 예훈아. 나쁘지 않은 기회인 것 같다. 네가 잘되면 내가 또 이끌어줄게.”멈칫한 김예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웃으면서 얘기했다.“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효임이까지. 다들 너무 고마워요. 그럼 가서 한 번 시도해 볼게요.”김예훈은 원래 오산 그룹에 큰 흥미가 없었다. 하지만 조인국이 이렇게 믿어주고 지지해 주니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거절하면 그들은 또 싸울 것이다. 게다가 오산 그룹은 원래 김예훈의 것이다. 부산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니 들어가서 내부의 문제를 알아보고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하은혜가 곁에 없으니, 모든 일을 직접 해야 했다.그 생각에 김예훈은 또 하은혜가 떠올랐다.김예훈이 진지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본 조효임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이 자식은 정말 빌붙으려고 온 게 확실하다. 그
김예훈은 순간 할 말을 잃어 그대로 굳었다.조인국은 매우 난감했다. 물건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그건 김예훈의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그런데 결국 이렇게 되다니...조금 어색해진 조인국이 얘기했다.“됐어,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고 얼른 밥부터 먹어.”이때 김예훈의 핸드폰이 울렸다. 바로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의 임시아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김예훈 씨, 큰일 났어요! 얼른 와줘요! 그렇지 않으면 전...”말이 채 끝나기 전에 통화가 끊겼다. 김예훈이 다시 전화를 걸자 돌아오는 것은 통화 연결음뿐이었다.임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임씨 가문의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임시아가 걱정되었다. 조금 머뭇거린 김예훈이 바로 얘기했다.“아저씨, 저 급한 일이 생겨서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먼저 드세요. 나중에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말을 마친 김예훈은 조인국의 만류에도 바로 떠나버렸다.“흥. 그저 버섯으로 전골을 만들고 보이차로 차예단을 만들었을 뿐인데 태도가 왜 저따위야!”예의 없는 김예훈의 모습에 이미연은 화가 나서 온몸이 떨렸다.“저 쓰레기가 우리한테 빌붙으려고 해서 밥까지 먹여주고 직장까지 찾아줬는데, 고작 말 몇 마디 했다고 우리 앞에서 싫은 티를 내? 역시 가난한 사람이 예의도 없다고. 딱 김예훈을 보고 하는 말이었네.”조효임도 한숨을 내쉬었다. 조효임에게 구애하는 남자들은 수두룩했다. 김예훈은 그중에서 가장 급이 낮았다. 이런 남자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평생을 노예처럼 살다가 죽을 것이다.그래도 아까의 ‘건물주’가 백배는 나았다. 닉네임처럼 돈이 많으니까 말이다!조인국도 난감해졌다. 하지만 그는 김예훈을 위해 변명을 늘어놓았다.“급한 일이 생겼다잖아! 아까 전화 온 거 못 봤어?”“급한 일이요? 성남을 벗어난 촌놈이 부산에서 무슨 급한 일이 있겠어요? 뭐, 무료 나눔하는 음식이라도 배분받으려고 그러는 거예요? 그게 아니면 다른 급한 일이 뭐가 있어요?!”이미연이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