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아는 살짝 고개를 끄덕임으로 모두와 인사를 한 셈 쳤다. 그리고 이윽고 심아현과 장은비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왜요? 내가 그렇게 배달원처럼 보였나?”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심아현과 장은비는 그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아, 아니, 아니요... 우리가 배달원 같은 겁니다! 우리가요!”심아현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장은비도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다.“임시아 아가씨, 다 우리의 잘못입니다. 우리가 몰라뵈고 함부로 지껄였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세요.”임시아는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쏘아보고 귀찮아서 더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리고 김예훈의 앞에 젓가락을 놓아주며 미소 짓고 얘기했다.“김예훈 님, 고조 찐만주와 가장 어울린다는 남서의 두유를 준비했습니다. 드셔보시고 입에 맞지 않는다면 바꿔드리죠.”말을 마친 임시아는 공경한 자세로 김예훈에게 두유를 부어주었다.“이게...”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눈가의 근육이 파르르 떨렸다.임시아는 평소에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공경한 태도로 저 촌놈의 시중을 들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저 촌놈이 도대체 뭐라고 임시아 아가씨가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것인가! “이, 이건 불가능해! 우리가 꿈을 꾸는 게 아닐까?”“저건 고조 찐만두에 남서의 두유야!”“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임시아 아가씨가 저 자식을 위해서 사 오다니. 심지어 김예훈 님이라고 존칭을 쓰다니!”“고작 데릴사위 따위가 무슨 자격으로?!”심아현과 장은비, 두 사람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져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지켜보고 있었다.김예훈이 무슨 능력으로? “김예훈 님은 우리 강서 임씨 가문의 귀빈으로서 부산에서는 저 임시아의 주인과도 같은 분입니다.”임시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심아현과 장은비를 쳐다보며 얘기했다.“지금부터 김예훈 님과 척지는 사람은 곧 저와 척지는 것이고 나아가서 강서 임씨 가문과 척지는 것입니다. 다들 그 후폭풍을 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그 말을 들은
이윽고 김예훈이 손을 흔들자 오만하던 두 사람은 빠르게 자리를 떠났다. 김예훈이 그녀들에게 가져다준 충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두 사람은 돌아가서 마음을 안정시킨 후 이 소식을 하은혜에게 알려줄 생각이었다.그리고 심아현은 오늘의 일을 심씨 가문에 알려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김예훈의 비밀을 지켜주어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이후에 김예훈을 발판 삼아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으니까.두 여자가 떠난 후, 임시아는 눈짓했다. 그러자 보디가드들이 들어와 레스토랑의 사람들을 모두 쫓아냈다. 그러자 누군가가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열어보니 안에는 낡은 긴 검이 있었다.김예훈이 의아해하며 임시아를 보자 임시아는 웃으며 얘기했다.“이 보검을 영웅님께 드립니다. 이 당도는 수백 년이 된 유물입니다. 철을 흙 베듯이 베죠. 제 양아버지가 수년간 보관한 보물입니다. 이제는 김예훈 님께 드립니다. 이건 저희의 자그마한 마음입니다.”“네, 고맙습니다.”김예훈도 거절하지 않았다. 이 당도는 그가 그때 들고 다니던 당도보다 더욱 정교해 보였다. 그래서 김예훈은 마음에 들어 했다.당도를 몸에 지닌 그가 웃으며 얘기했다.“고조 찐만두도 괜찮군요. 임시아 씨도 앉아서 같이 드시죠.”“네, 감사합니다.”김예훈의 호의에 임시아는 거절하지 않고 바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아까의 선물은 그저 선물일 뿐만이 아니라 김예훈을 향한 시험이기도 했다.만약 그가 일본과 관계가 있다면 절대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당도를 받지 않을 것이다.당도를 받았다는 것은, 그가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그 뜻인즉슨, 김예훈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임시아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기뻐졌다.“맛이 괜찮군요. 다음에도 먹고 싶으면 임시아 씨한테 연락하죠.”김예훈이 웃으면서 얘기했다.임시아는 조심스레 찐만두를 한 입 먹더니 웃으며 얘기했다.“김예훈 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제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건 제가 따로 준비한 선물입니다.”그렇게 말하면서 임시
임강호의 아내한테 문제가 생겼다.임시아는 더 해명하지 않고 김예훈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떠났다.김예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따라가 보기로 했다.아무리 그래도 선물을 두 개나 받았다. 게다가 임강호의 상황이 일본의 음양술과 관련이 있었다. 이번에 임강호 아내에게 생긴 문제도 일본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임시아는 김예훈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 김예훈은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한 시간 후, 사람들은 금정산 아래의 별장에 도착했다.이 별장은 바다 옆에 있어서 풍경이 예뻤다. 드넓은 하늘과 깊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어 쾌적하게 느껴졌다.“이 별장은 예전의 세자들이 쓰던 별궁입니다. 이미 백여 년의 역사가 있죠. 양아버지와 양어머니는 모두 조용한 것을 좋아하셔서 부산이 빠르게 성장한 후부터는 이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곳은 일본의 대사관이었기도 해요. 과거에 많은 일들이 발생했었습니다. 김예훈 님께서 흥미가 있으시면 나중에 시간이 될 때,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김예훈의 눈이 반짝였다.“일본 대사관이요? 그 생화학 무기를 연구하던 그곳?”임시아의 눈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김예훈 님이 그 소문을 알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이건 그저 찌라시처럼 도는 소문이니까요. 양부모님이 입주하기 전에 전문적인 회사를 고용해 이곳을 검사해 봤어요. 그리고 범령산에서 풍수지리사들도 모셔 와서 이곳의 풍수지리를 알아보았죠. 검사해 본 결과, 이곳에서는 생화학무기를 연구한 흔적이 없대요. 게다가 풍수지리도 아주 좋아서 재물과 운이 들어오는 자리라고 해요. 그래서 양부모님이 마음 놓고 들어오신 거예요.”잠시 고민하던 김예훈은 생각하다가 물었다.“임강호 씨가 암살위협을 받기 시작한 것이 이곳에 입주하기 전인가요, 후인가요?”임시아는 멍해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이곳에 입주하고 나서예요. 양부모님께 일이 생긴 것도 이곳에 입주한 후예요. 그렇다면 김예훈 님의 말씀은, 제 양부모님에게 생긴 일이 이곳에 입주했기
김예훈은 입을 다문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시선으로 별장을 훑어보았다.임시아를 따라, 김예훈은 별장의 마당으로 들어섰다.마당에는 번호가 0001인 제네시스가 있었다. 그걸로 이미 임강호의 신분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김예훈은 이미 추측하고 있었지만 임강호의 신분을 확인하고 나니 세상이 정말 좁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이 차를 본 임시아는 멍해져서 얘기했다.“양아버지도 돌아온 것 같아요. 원래는 차를 몰고 서울에 가셨었는데 소식을 듣고 바로 돌아온 모양입니다.”김예훈은 고개를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에 길은 경비가 매우 삼엄했다. 실탄을 찬 보디가드까지 있었고 국방부에서 온 장병도 있었다. 하지만 부산은 한국에서 특별한 도시인 데다가 임강호의 신분까지 떠올리니 국방부의 사람이 그를 보호하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했다.“용의 부대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군.”김예훈이 몰래 입을 열었다.한국에는 용의 부대, 용문당, 용연옥, 이 세 개의 암조직이 있다.용의 부대는 한국에서 중요한 사람을 지키는 부대이다.고위 관직인원을 제외하고도 과학기술연구원이나 비즈니스 업계와 문화예술계의 큰 인물들도 그들이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다.임강호의 신분을 보면 옆에 용의 부대 사람이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임강호는 10대 명문가 중의 강서 임씨 가문 출신이다. 이런 큰 가문의 사람은 기관에서 자기의 사생활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용의 부대 보호를 거절하기도 했다.그래서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 김예훈은 임강호의 곁에 용의 부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임시아를 따라가다 보니 김예훈은 순조롭게 모든 관문을 넘어 뒷마당의 작은 거실에 오게 되었다.전통가옥처럼 생긴 곳에 열몇 명이 모여있었다.거실의 바닥은 곳곳이 깨져있었고 피까지 묻어있었다. 벽에는 피가 묻은 식칼까지 꽂혀있었다. 임씨 가문의 보디가드들은 창백한 얼굴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그들은 아마도 귀신에 씐 사모님한테 찔린 것 같았다.“양어머
임시아의 태도를 본 임강호는 어쩔 수 없이 웃어넘기며 육성운을 보며 얘기했다.“너도 잘한 건 없어. 시아가 제 양어머니를 걱정해서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고 너도 똑같이 목소리를 높이면 어떡해!”눈가 근육이 파르르 떨리던 육성운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더니 얘기했다.“매형, 알겠어요. 그럼 사죄의 의미로 오늘 제가 시아를 데리고 나가 밥을 사 먹일게요.”임시아는 차갑게 대답했다.“필요 없어요. 오늘 밤은 김예훈 님과 같이 식사할 겁니다.”“김예훈 님?”그 말을 들은 육성운의 시선은 김예훈의 몸에 닿더니 이상한 감정이 눈에서 번뜩였다.하지만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임시아가 임강호를 보면서 말했다.“양아버지, 오늘 마침 김예훈 님을 만나러 갔었어요. 그래서 모시고 왔어요. 전에 그 일을 해결해 줬잖아요. 어쩌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김예훈을 본 임강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며 대답했다.“김예훈 씨, 오랜만이네.”임강호는 김예훈이 저번에 임강호를 구해준 일을 떠올리며 감격스러워했다.김예훈은 웃으면서 대답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우연히 오게 되었습니다.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도움?”임시아가 김예훈을 데리고 왔다는 사실 때문에 김예훈에게 불만을 품은 육성운이 차갑게 웃으면서 얘기했다.“매형, 내가 봤을 때 이 사람은 그냥 사기꾼이에요! 담도 크지. 감히 우리 임씨 가문에 와서 사기를 치다니! 이리 와서 이 사기꾼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던져버려!”“닥쳐!”임강호가 차갑게 얘기했다.“전에 내 상처도 김예훈 군이 해결해 준 거야. 그런데 감히 사기꾼이라니? 지금 내가 모자라다고 모욕하는 거야?!”육성운의 심장은 덜컹 내려앉았다. 김예훈이 임강호의 상처를 해결해 줬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웃으며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매형, 오해예요, 오해... 그저 걱정되어서... 게다가 박수무당이 얘기했잖아요! 우리 누나는 귀신에 씐 거라고요! 범령산의 사람 말고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요! 김예훈 님이
“건방진 녀석! 죽고 싶어? 너 같은 촌뜨기가 감히 우리 누나 손을 건드려?”김예훈이 누군지 자세히 보기도 전에 화가 잔뜩 난 육성운은 김예훈의 손을 쳐냈다.임강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입을 열지 않았다.오히려 그 도인이 헛기침하며 말했다.“여러분, 사모님은 귀신에 씌었습니다. 방금 부인을 위해 체내의 악령을 빼냈는데 왜 함부로 그녀를 건드리나요. 비록 좋은 뜻으로 상처를 보려고 한 건 알겠으나 만에 하나 다른 악령이 몸에 다시 들어간다면 저 따위는 감히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말이 끝나자 모두 어리둥절했다.김예훈은 몸을 돌려 눈을 가늘게 뜨고 범령산에서 온 도인을 보며 차갑게 말했다.“범령산의 박수무당이시죠? 사모님이 뭐에 중독됐다거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지금 이러는 게 아니라 귀신에 씌었다고 확신하나요?”박수무당은 웃으며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무 말 하지 않는 박수무당을 보자 육성운은 크게 웃으며 앞으로 와 말했다.“박수무당님, 너무 감사합니다!”그 후 임강호를 보며 말했다.“매형, 제가 이번에 우리 누나한테 들어간 귀신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범령산에 가서 박수 무당을 특별히 모셔 왔어요. 그리고 저는 박수무당이 무조건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요.”그의 말을 듣고 개량한복을 입은 몇몇 여성이 눈을 반짝이며 박수무당을 봤다.이 무당이 그렇게 대단하면 그녀들의 운을 바꿔 부잣집에 시집가게 해줄지도 모른다.“박수무당님, 정말 감사합니다.”임강호도 웃으며 박수무당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자기의 아내는 귀신에 씌고부터 사람이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게 됐다. 한의든 중의든 양의든 아니면 불교의 고승이나 기독교의 퇴마사든, 유명하든 안 유명하든 다 불렀지만, 그 누구도 아내를 멀쩡히 되돌릴 수 없었다.그러나 박수무당은 해냈다. 부인을 잠들게 한 것만 봐도 박수무당은 문제가 뭔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이전에 아내가 발작하기만 하면 오랜 시간 지속돼 매번 임강호가 애를 먹었다.그리고 지금
박수무당은 손가락을 짚어보고 계산하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 이렇게 된 거구나. 임 선생님, 저는 비록 이 저택이 원래 어떤 용도로 사용됐는지는 모르고 어떤 곳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이 저택 중간에서 서늘한 원기가 느껴집니다. 아마 누군가 이곳에서 억울하게 죽은 모양입니다. 부인은 여자여서 몸도 약하고 체내에 음기도 많습니다. 그래서 아마 부인께서는 저도 모르게 음기 본체와 부딪혔거나 너무 가까이해서 이렇게 귀신에 홀린 거 같습니다!”박수무당은 말은 전부 일리 있어 보였다.“아 그런 일이군요!?”임강호는 모두 깨달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그럼, 박수무당님, 이걸로 유인해서 해결될까요?”“당연하죠! 임 선생님, 조금만 기다리세요!”뒷마당에 한 조용한 구석을 짚더니 말했다.“임 선생님, 저기입니다. 만약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저곳에 먼지로 가득한 우물이 있을 것입니다. 우물 안에는 백골 한 구가 있을 것이니, 사람을 시켜 백골을 꺼내고 지폐를 준비해 주시면 제가 굿을 하겠습니다. 굿을 하면 부인의 모든 일이 해결될 것입니다.”“뭐가 그렇게 신통한 거야?”하나도 믿지 않은 임시아는 이 박수무당이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다.임강호도 믿지 않았지만, 손을 흔들며 육성운보고 다른 사람과 가서 확인해 보라 했다.30분 뒤 육성운이 다급하게 뛰어와 말했다.“매형, 정말로 그 뒷마당에 낡은 우물에서 백골 한 구를 발견했고 아마 몇백 년은 더 돼 보였습니다.”임강호는 더욱 한숨을 쉬며 박수무당에게 두 손 모아 공손하게 말했다.“무당님, 이번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이제 다음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말만 해주세요.”박수무당은 뒷짐을 지고 말했다.“지금부터 이 고인을 위해 굿을 할 것이니 원혼이 다 사라지면 부인이 깨어나 다시 이전처럼 활력을 찾을 것입니다.”“무당님, 감사합니다. 부인만 회복한다면 서운하지 않게 더 챙겨드리겠습니다!”임강호는 흥분했다.이 저택에 들어오고부터 이 부부는 사고가 끊이질 않았다.지금 임강호
물러가라!박수무당은 지금 분명 물러가기를 요청하고 있다.임강호는 김예훈을 높게 여기지만 자기 아내가 더 중요한 건 사실이다.임강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김예훈 군, 내 아내 상황을 봐서 알겠지만, 확실히 귀신에게 홀렸어. 이 일은 박수무당님께 맡기고 내 체면을 봐서라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말아줘.”“들었어?”애초에 김예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육성운은 일부러 더 도발했다.“풍수지리나 점술 같은 건 전문적인 것들이야. 너 같은 애송이는 모르면 빠져. 박수무당님이 화나서 가버리면 책임질 거야?”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문제는 이씨 부인은 귀신에 홀린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주술에 걸려서 몸이 통제된 것뿐이에요. 지금 이렇게 안정을 찾고 조용히 잠을 자는 건 박수무당님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주술이 해 질 무렵에 위력이 가장 강해서 지금 힘을 누적하고 있는 거예요. 해가 질 때쯤 사모님을 이용해서 어르신을 죽일 거예요. 그때가 되면 사모님은 힘이 세져서 어쩌면 총칼을 들어도 감당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지금 주술을 풀지 않으면 밤이 되면 골치 아파져요.”김예훈이 당당하게 말하자 박수무당은 화가 나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네 이놈, 지금,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아무 소리나 지껄이고 있는 거야? 주술? 네가 주술이 뭔지나 알아? 너 ‘주역’ 봤어? 도법의 도자도 모르면서 지금 나한테 주술 같은 최고의 도법을 논하는 거야? 가당키나 해?”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도법은 모르지만 모든 살인 술을 다 알고 있어. 주술이 아무래 강해도 살인 술 중 하나일 뿐이야. 돼지를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돼지고기를 못 먹어 본 건 아니잖아?”박수무당은 김예훈을 가리키며 말했다.“네 이놈! 내가 똑똑히 말해줄게. 해가 질 때를 떠나서 밤이 돼도 사모님한테서는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 내가 굿을 잘 끝내고 사모님 몸 안에 남아 있는 나쁜 기운들을 다 빼내면 모든 게 다 좋아질 거야! 모르면 나가! 계속 내 능력을 모욕하면 나 정말 이 일에서 손
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일본인이 말 잘하는 걸로 유명하던데 오늘 그걸 직접 경험할 줄이야. 대한민국 무신이 나한테 이런 말을 했으면 분명 믿었을 거야. 그런데 입만 번지르르하고 배신에 익숙한 일본인이 한 말을 어떻게 믿으라고. 내가 곧 죽을 나이가 된 건 맞지만 알건 다 알아. 남양국과 대한민국 간의 분쟁은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일본이 목적을 달성하는 날이 다가온다면 우리 남양국도 좋은 날이 없을 건 확실해. 공과 사를 불문하고 내가 너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설득에 실패한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러면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얼마든지 덤벼. 지옥으로 보내줄 거니까.”아마미네 토시로는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속으로는 김예훈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진주·밀양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어떻게 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세력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는 거지? 김예훈을 죽이지 않았다간 앞으로 일본인이 진주·밀양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할 거야.”“불가능할 텐데? 지금은 물론 전성기 시절에도 나를 죽이지 못했을 거야. 나를 죽이려면 아마 야마자키파 전 수장인 야마모토 타케시를 모셔 와야 할 거야.”양상철은 태연하기만 했다.“넌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없어.”아마미네 토시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분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어. 너 같은 잡것들이 어르신을 방해하지 않게 내가 노력할 수밖에.”아마미네 토시로는 또 알약을 하나 삼켰다.알약을 삼키자마자 그는 근육이 수축하면서 눈동자가 새빨개지기 시작했다.다음 순간 양상철을 향해 비수를 날렸다.양상철은 넓은 소매를 휘둘러 비수를 한쪽으로 내팽개쳤다.펑.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숲속에 불꽃이 튀겼다.이 모습에 양상철은 속으로 일본인이 정말 뻔뻔하다고 욕했다.‘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옆길로 샐 궁리만 한다니. 정말 염치가 없네.’공격을 피한 양상철은 앞으로 나
오륜 사찰 금지구역.아마미네 토시로는 복부 상처를 감싸 쥔 채 얼굴이 일그러져있었다.그는 곧 알약 하나를 삼키고는 절벽 끝에 엎드려 망원경으로 아래쪽 상황을 지켜보았다.잠시 후 그는 얼굴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혜선 스님이 아직 저 자식을 죽이지 않았다니. 역시 여자 등이나 처먹는 기생오라비가 맞았어. 여자들마다 아까워서 죽이지 못하잖아.”아마미네 토시로는 조심스럽게 일어나 이곳에 남긴 흔적을 없애고는 이곳을 떠나려고 했다.그런데 일어서는 순간 뒤에서 바스락 소리가 들려왔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무언가를 짐작한 듯 재빨리 거즈로 상처를 감싸고는 검을 쥐고 심각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1분 1초가 흘러가면서 주변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이 순간은 1분이 마치 1년처럼 느껴졌다.잠시 후, 마침내 숲속에서 어떤 노인이 뒷짐을 쥐고 서서히 걸어 나왔다.그는 어마어마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아마미네 토시로를 쳐다보았다.아마미네 토시로는 맞은편에 있는 노인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남양 무신 양상철?”양상철이 덤덤하게 말했다.“나를 알아봤으면 너의 아들보고 너한테 전하라고 한 말도 들었을 텐데. 지금 보니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린 모양이군. 왜. 10년 동안 너무 조용하게 지냈더니 나를 잊은 거야?”남양 무신 양상철을 알고 있는 아마미네 토시로는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남양국이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섬라국과 화국에 의해 멸망하지 않은 것도, 심지어 동해 해역에서 꽤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양상철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전해지기로는 대한민국 출신인 그의 조상님이 남양국으로 이주한 뒤 혼자 힘으로 이 나라를 일궈냈다고 했다.남양 무신은 남양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양국을 쥐락펴락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기도 했다.간단히 말해서 남양국에는 무신이 한 명뿐이지만 단 한 명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적어도 아마미네 토시로는 지금 상태로는 절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총사령관님은 젊고 멋있는 분이야. 포스까지 장난 아니라고. 그분은 우리 대한민국 국방부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무슨 염치로 자기가 총사령관이라고 하는 거야? ‘총사령관’이라는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혜선 스님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이 이유만으로도 난 네가 너무 싫어졌어. 오륜 사찰에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되는 규칙만 없었더라면 넌 오늘 살아서 나가지도 못했을 거야.”김예훈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내가 한 말은 다 사실인데 믿든 말든 마음대로 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말을 하다니.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네.”혜선 스님은 김예훈이 우상인 총사령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김예훈을 쫓아내. 저 자식이 원하든 말든 진주 밖으로 쫓아내라고. 그리고 앞으로 김예훈이 총사령관이라고 자칭하거나 진주·밀양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오륜 사찰에서 죽여버릴 거라는 공식적인 입장도 전해.”혜선 스님은 말을 끝내자마자 뒤돌아 떠나려고 했다.다음 순간, 열몇 명의 오륜 사찰 제자들이 나타나 검으로 김예훈을 겨냥했다.그중 한 명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김예훈, 꺼져.”김예훈은 이들을 무시한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혜선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혜선 스님,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전해. 나를 오륜 사찰에서 쫓아내는 건 상관없는데 진주·밀양에서 쫓아낼 생각은 하지도 마. 내가 총사령관이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한마디만 물을게. 김현민이 곧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 걔가 과연 전설 속 당도 부대 총사령관일까? 나이, 실력은 막론하고, 정말 김현민이 총사령관이라고 생각해? 총사령관님은 유라시아 전쟁에서 5대 강국을 단숨에 제압하고 혼자 힘으로 일본의 수많은 검신, 음양 대가들을 물리치신 분이야. 총사령관님 같은 분이 굳이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수장 자리를 탐내서 일본인에게 굽신거릴까? 솔직히 말해서 김현민 같은 사람한테 총사령관이라는
“24시간 내로 진주에서 꺼져주시면 예전에 있었던 일을 따지지도 않을게요. 어쩌면 저희가 약간의 혜택도 드릴 수 있어요.”혜선 스님의 진지한 말투에 김예훈은 피식 웃고 말았다.“성녀님, 저희 오늘 두 번째로 만나는 거 아니에요? 제가 그렇게도 싫으세요? 제가 정말 진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네. 김예훈 씨가 진주에 오고부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내부에서도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고요.”혜선 스님은 차분한 모습으로 제자가 건넨 차를 마시며 말했다.“안동 김씨 가문은 진주·밀양의 기둥과도 같아요. 김예훈 씨 존재만으로도 진주·밀양에 피바람이 불고 있는데 하루빨리 떠났으면 좋겠어요. 안동 김씨 가문을 위한, 진주·밀양을 위한, 김예훈 씨 자신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고 이 간단한 조건을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혜선 스님,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안 들어요?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진 걸 보면 김현민이 수장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는 거 아니겠어요? 제가 있든 없든 수장 자리를 지켜낼 자격이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말인데 저랑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일이 아닐까요? 이런 일로 제가 진주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혜선 스님이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씨,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 거예요?”“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해서 그래요. 제가 왜 진주를 떠나야 하는 거죠?”김예훈은 어깨를 으쓱이며 직설적으로 말했다.“이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제 자유 아닌가요? 아무도 저한테 뭐라 할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요? 오륜 사찰이 아직 저한테 해명해야 할 것이 있는 건 둘째치고, 그런 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제가 실수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봤다고 꺼지라는 거예요? 혜선 스님, 장사를 너무 잘하시네요. 오히려 제가 그 보잘것없는 몸매를 보고 눈을 버릴 뻔했는데도요? 서로 없었던 일로 하는 건 괜찮은데 이걸로 저를 협박해서 진주에서 쫓아내려
옷을 갈아입고 나온 혜선 스님은 정말 선녀와 다를 바 없었다.그녀는 유리알 같은 눈동자로 김예훈을 차갑게 쳐다보면서 말했다.“제 목욕탕에 무단 침입했으니 김예훈 씨를 죽일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전에 선재 스님 사건 때 저희 오륜 사찰에 해명을 요구했었죠? 이제 서로 빚진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혜선 스님.”오륜 사찰 여제자들은 하나같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성녀님의 알몸까지 봤는데 이대로 넘어간다고? 아, 선재 스님 사건을 해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러면 누가 손해 보는 거지?’이때 한 여제자가 무의식적으로 혜선 스님을 힐끔 쳐다보며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설마 오륜 사찰과 맨날 사이가 안 좋던 저 자식을 성녀님이 인정해버린 걸까?’김예훈은 그저 어이없기만 했다.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 여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하지만 오늘은 어쨌든 잘못한 것이 있으니 천천히 목욕탕에서 나와 혜선 스님이 살벌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향긋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냈다.그의 아무렇지 않은 행동에 한 제자가 말했다.“그건 성녀님께서 몸 닦는 수건인데...”퍽.제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선 스님은 얼굴이 빨개지면서 앞으로 걸어가 김예훈의 가슴팍을 쳤다.퍽.김예훈은 재빨리 손으로 막았지만 뻘쭘한 마음에 별로 힘을 쓰지도 않았다.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혜선 스님이 이미 수건을 빼앗아 간 후였다.혜선 스님의 표정은 다시 냉랭해지면서 김예훈을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이제 저희 오륜 사찰에 볼일 없을 것 같은데 이만 가시죠.”김예훈은 상대방의 분노를 느끼고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더 이상 도망가지 않으면 그녀가 칼을 빼 들고 죽일 것만 같았다.김예훈은 피식 웃으며 돌아서서 말했다.“가긴 가겠지만 한마디만 할게요. 오늘 이 일이 정말 우연이라면 제가 해명해야 되겠지만...”김예훈은 말을 하다 말고 눈빛이 차가워지고 말았다.“만약에 오륜 사찰이 일본인과 손잡고 저를 함정에
“성녀님? 도포? 오륜 사찰? 당신이 바로 혜선 스님이에요?”보지 말아야 할 모습까지 다 봐버린 김예훈은 표정이 일그러져있었다.오륜 사찰의 성녀인 혜선 스님의 목욕탕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얼굴을 보니 왜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만 같았다.‘성녀의 목욕탕에 빠뜨리는 것이 바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계획이었나? 정말 그의 계획이라면 김현민이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을까? 그리고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현민 그 자식이 성녀 혜선 스님을 마음에 품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혜선 스님은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애써 감정을 추스르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잠시 후, 갑자기 자기 목욕탕에 나타난 이 건방진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이때 혜선 스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김예훈 씨?”“뭐? 몇 번이고 우리 오륜 사찰의 얼굴에 먹칠하고 경매회까지 망친 그 김예훈?”“선재 스님을 해친 것도 모자라 3일 안에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으라고 하지 않았어?”“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성녀님, 저 자식이 이곳에 나타난 건 성녀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욕이에요. 죽여야 한다고요.”오륜 사찰의 한 제자가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곧장 달려들어 김예훈을 검으로 찌르려 했다.퍽.이때 혜선 스님이 손가락을 튕겨서 검을 날려버리고는 뒤돌아 병풍 뒤로 가서 옷을 갈아입으며 말했다.“진주에 어쩌다 천연 온천이 생겼는데 여기서 피를 볼 순 없지.”제자들 모두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성녀님, 저희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 지금 바로 저 자식을 데리고 나가서 죽여버릴게요.”제자들은 검을 빼 들고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직 목욕탕에서 나오지 않은 김예훈을 째려보았다.‘계속 우리 오륜 사찰을 건들던 놈이 감히 성녀님 목욕탕에 뛰어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보네.’“툭하면 죽이느니 마느니 하지 말고 제 설명 좀 들어보면 안 될까요?”김예훈은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래도 여자 목욕탕에 뛰어들어 못 볼 꼴
쨕.아마미네 토시로는 옆으로 날아가더니 세게 바위에 부딪히면서 피를 뿜어냈다.그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눈빛이 어두워지면서 긴장하기 시작했다.비록 처음부터 온갖 함정까지 파놓으면서 김예훈을 평생의 적으로 대했지만 김예훈이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할 줄 몰랐다.연기까지 하면서 겨우 이곳까지 끌고 왔는데 김예훈을 죽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뺨 맞을 줄은 더더욱 몰랐다.‘정말 괴물이네.’퍽.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에 뺨 자국이 나 있는 채로 이를 꽉 깨물더니 말없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검을 휘둘렀다.칼날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처럼 빠르고도 정확했다.김예훈도 무심한 표정으로 검을 휘둘렀다.‘쨍’하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또다시 스쳐 지나갔다. 김예훈은 절벽 끝에 서 있었고, 아마미네 토시로는 울창한 숲 변두리에 서 있었다.“대단한데?”아마미네 토시로는 칼날을 만지작거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너 같은 사람은 몇 년 더 지나면 아마 내가 너의 상대가 안 될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널 얼마든지 죽일 수 있어.”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정말 자신 있었다면 왜 이런 꼼수를 부린 거지? 일본인은 무신 경지에 이르렀어도 결국엔 본성을 잃지 못하네. 네가 도망치려고 바다에 뛰어든 순간부터 넌 영원히 나를 따라잡을 수 없었어. 지금까지 너를 죽이지 않았던 이유도 네가 또 어떤 꼼수를 준비했는지 알고 싶어서였어. 그런데 너무 실망이네.”“실망하긴 아직 이른 것 같은데?”아마미네 토시로는 피식 웃고 말았다.“김예훈,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어? 여기에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냐고. 모르고 있었다면 내가 알려줄까?”아마미네 토시로는 검으로 힘껏 바닥을 내리쳤다.쿵.격렬한 진동이 울리면서 김예훈이 서 있던 절벽이 순식간에 갈라졌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던졌다.“풉.”몸에 검이 제대로 꽂힌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후회되지 않는 듯 미친 듯이 웃으며 뒤로 물러났다.반면으로
“풉!”핏덩이를 토해낸 아마미네 토시로는 한숨을 내쉬었다.“김예훈, 역시 대단해. 어린 나이에 탑 무신 급 경지에 이르다니.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거야. 너 같은 사람이 우리 일본의 귀족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김예훈이 덤덤하게 말했다.“아마미네 토시로, 아무리 쓸데없는 소리를 해도 난 널 살려줄 마음이 없어. 요트에 있을 때 이미 이 구역 통신을 차단하라고 했거든. 간단히 말해서 네가 방금 나 몰래 보낸 메시지, 아무도 볼 수 없다는 뜻이야.”아마미네 토시로는 얼굴이 살짝 굳으며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그런데 몇 분 전에 보낸 구조 요청 메시지가 발신 실패로 떠 있는 것이다.“이런 제기랄!”이 순간 아마미네 토시로는 본능적으로 고함을 질렀다.“정말 나랑 끝까지 해보자는 거야? 받아라! 불사참!”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노의 함성을 지르며 양손에 들고 있던 검을 힘껏 내리쳤다.칼날이 얼마나 매서운지 마치 귀신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김예훈은 아무런 무기도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미간을 찌푸린 채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하지만 아마미네 토시로가 이 기세를 몰아 검을 휘두를 거라 생각하고 있을 때, 김예훈을 스쳐 지나 산꼭대기 쪽으로 달려가는 것이다.김예훈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무신이라는 놈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공격하는 척하면서 또 도망쳐?’“아마미네 토시로, 그만 도망치지?”김예훈이 차갑게 말했다.“김예훈, 그만 쫓아오지?”아마미네 토시로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계속 울창한 숲을 이용해 김예훈을 따돌리려 했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아마미네 토시로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전혀 급할 거 없이 10미터 정도의 거리를 유지했다.한 사람은 도망치고, 한 사람은 쫓아가는 것이 마치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는 듯했다.곧 두 사람은 산 정상에 가까운 한 공터에 도착하게 되었다.먼저 땅에 발이 닿은 아마미네 토시로의 얼굴에는 음산한 기운이 가득했다.다음 순간 그는 땅을 구르더니 미리
야마자키파 검신, 일본 무신, 황실 어의인 아마미네 토시로는 분명 눈치가 있는 놈이었다.오늘 여덟 명의 바람의 아들들까지 불러내면서 만반의 준비를 했는데 한 방에 무너질 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아마미네 토시로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한 남아서 김예훈과 맞서 싸울 일은 없었다.그래서 상대를 존중하는 척 부하의 뺨까지 때리고, 부하의 시체로 요트 엔진을 고장 내서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친 것이다.게다가 도망치는 경험까지 풍부해서 바다 한가운데에 있던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김예훈은 요트 위에 남아있는 잔병들을 힐끔 쳐다보았다.이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져 마치 어떤 신념이 완전히 무너진 듯했다.이들과 말 섞기도 싫은 김예훈은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고는 곧바로 바다에 뛰어들어 아마미네 토시로가 도망친 방향으로 쫓아갔다.어쨌든 한 시대의 무신이자 검신이었기에 아무리 겁을 먹었다고 해도 실력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김예훈은 오늘로써 한 방에 끝내고 싶었다.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언제 또 습격할지 몰랐다. 김예훈은 상관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안전 또한 고려해야 했다.아마미네 토시로도 김예훈이 놔줄 생각이 없어 보이자 속도를 내 바닷가의 울창한 숲속으로 뛰어들었다.이 지역은 진주 태산 뒷산으로 진주 상류 인사들이 휴양하는 곳이라 절대 개발이 허락되지 않았다.이곳은 산짐승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진주에서 보기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아쉽게도 지금의 아마미네 토시로는 전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얼마나 많은 노력을 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했더니 마침내 절벽 끝에 오래 방치된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그런데 숨을 돌리기도 전에 멀지 않은 숲속에서 김예훈이 뒷짐을 쥔 채 태연하게 걸어 나왔다.“김예훈, 내가 이렇게까지 멀리 왔는데 좀 쉬면 안 돼? 요트에 그 많은 사람의 목숨으로는 부족했어? 왜 하필 나를 따라다니는 거야. 노인을 공경할 줄도 몰라?”아마미네 토시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