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찌 감히, 저는 겨룰 자격도 없습니다!”박용진은 너무 후회되어 피를 토하고 싶은 지경이었다.총사령관을 마주칠 줄 알았으면 죽어도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이곳은 박용진 같은 사람이 발을 들일 수 있는 곳이 아니다.“이건 당신이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당신네 인도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시비를 걸었는데 내가 당신을 이렇게 쉽게 풀어주면, 앞으로 개나 소나 다 나를 찾아와 시비를 걸지 않을까?”김예훈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일어나. 어디 한 번 막아봐.”김예훈의 말을 들은 박용진은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서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는 이미 김예훈이 박용진을 양보해 준 것이라고. 그렇지 않으면 김예훈은 한국에 발을 들인 박용진을 바로 밟아 죽일 것이다.목숨이라도 부지하려면 무조건 온 힘을 다해 김예훈의 공격을 받아내야 했다. “알겠습니다!”박용진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박용진도 무술 대가와 같은 급이었다. 두 손으로 바닥을 짚은 그가 뛰어올라서 발차기를 날렸다.인도 태권도 일인자인 그는 확실히 실력이 있었다. 그의 공격은 꽤 위협적으로 보였다.동작만 보면 평범한 발차기였지만 그가 발을 휘두르는 순간 숨겨왔던 힘을 터뜨렸다.쿵.거센 바람이 사방으로 불었다.바닥의 먼지와 낙엽도 다 바람에 의해 멀리 날아갔다.주변 사람들도 그 기운에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기절한 이대정의 몸도 날아가 버렸다. “역시 박용진 어르신이다!”그 모습을 본 이대정의 부하들은 기뻐서 입을 열었다.그들은 박용진이 어떤 상대를 만난 것인지 몰랐다.그저 지금의 박용진이 매우 강하다는 것만 알았다.강해도 너무 강했다.이건 사람의 범주를 뛰어넘었다!“풉.”이 일격이 김예훈의 몸에 닿기 직전, 김예훈이 앞으로 한 발 나서더니 아무렇지 않게 손을 들어 뺨을 갈겼다.짝.박용진의 발은 김예훈에게 닿지 못했다. 뺨을 맞은 박용진은 그대로 날아가 그의 롤스로이스에 박혀버렸다. 그의 차에는 사람의 자국이 그대로 났다.인도
그러자 CY그룹의 상장에 관한 일은 이렇게 잠잠해졌다.정민아는 김예훈 곁에 앉아서 복잡한 심경으로 한숨을 내뱉으며 얘기했다.“네가 얘기했던 게 다 사실이었구나. 네가 김세자였어.”정민아의 목소리는 매우 부드러웠다. 그녀는 김예훈을 다시 보게 되었다.전에는 이 남편이 다른 건 다 좋지만, 허세를 부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정민아는 그제야 알았다. 김예훈의 모든 말은 진짜였다.만약 그녀가 진작 김예훈을 믿었다면, 두 사람의 사이는 빠르게 가까워졌을 것이다. “세자가 맞든지 말든지 다 의미 없어. 네 앞에서 난 영원히 정씨 가문의 데릴사위인걸.”김예훈은 차를 마시며 담담하게 얘기했다.“그래도 네가 날 오해한 건 네 탓이 아니야. 내가 성남에 왔을 때 신분은 있었어도 돈은 한 푼도 없었거든.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 네가 비즈니스를 잘하니까, CY그룹은 너에게 맡길게.”“뭐?!”정민아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하은혜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살짝 질투하듯 얘기했다.“내가 너 대신 CY그룹을 운영하면 네 미녀 비서가 불쾌해하지 않을까?”그러면서 정민아는 가볍게 김예훈의 다리를 꼬집었다.전에는 하은혜가 김예훈에게 지나치게 잘해준다고 생각했다. 정민아의 촉이 하은혜를 멀리하게 했다.하지만 지금 알았다. 하은혜는 자기 남편의 수행비서였다. 그걸 알자 정민아는 질투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정민아가 다리를 꼬집은 것을 느낀 김예훈은 동공이 살짝 떨렸다. 겨우 문제를 하나 해결했더니 더욱 어려운 문제가 던져진 기분이었다.김예훈과 정민아 사이의 오묘한 기류를 눈치챈 하은혜가 차갑게 걸어왔다.그녀는 김예훈을 보며 인사라더니 진작 준비해 놓은 사직서를 김예훈에게 건네며 가볍게 얘기했다.“김 대표님, 전부터 사직하려고 했는데 그룹이 상장할 때까지 참았어요. 이제 모든 것이 안정됐으니 정식으로 사직서를 내겠습니다. 그룹의 일은 모두 송준 씨에게 인수인계를 마쳤어요. 송준 씨가 앞으로 그룹을 위해서 힘 써줄 겁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김예훈이 뭐라고
CY그룹 옥상에 있는 화원.용인주는 뒷짐을 지고 무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도로에 가득한 차량을 쳐다보았다.김예훈도 그의 옆에 서 있다가 한참 지나서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인주 님, 오늘의 일이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김예훈과 용인주는 예전에 꽤 친한 사이였다.다만 김예훈이 얼마 전에 최종호를 반 죽였고 최종호는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용문당에서는 김예훈이 최종호를 죽였다고 확신하고 있었다.원래대로라면 용인주는 오늘 와서 김예훈과 싸우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가 오늘 김예훈의 편을 들어주다니, 이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용인주는 고개를 돌려 김예훈을 보더니 갑자기 웃으며 대답했다.“총사령관님의 명석한 두뇌로 제가 온 목적을 모르다니요.”김예훈은 말을 하지 않고 몸을 돌려 담담하게 용인주를 쳐다보았다.용인주의 몸에서 갑자기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러더니 포식자 같은 무서운 기운이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순간, 아무리 김예훈이라고 해도 살짝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용인주가 그에게 매우 강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가 모든 사람의 목숨을 손에 쥐고 노는 듯한 기분이었다.김예훈의 목숨까지도 말이다.그리고 용인주가 가볍게 웃으며 얘기했다.“총사령관님, 일단 제 공격을 받으시죠.”말을 마친 용인주가 움직여서 평범해 보이는 주먹을 뻗었다.김예훈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나지 않고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똑같이 주먹을 앞으로 내뻗었다.퍽. 퍽. 퍽.아이들이 싸우는 듯한 가벼운 주먹 소리가 울렸다. 예상하던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두 사람은 허공 속에서 싸우고 있었다. 옷이 공기에 스쳐 쉭쉭 소리까지 났다.쨍그랑.거의 동시에 화원에 있던 모든 유리창이 깨부서졌고 가루가 되었다.붙어서 싸우던 두 사람도 떨어지게 되었다. 김예훈은 동작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원래 자리로 착지했다.용인주는 세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괴이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전설 속의 총사령관이 퇴역하고 나서도
용인주는 계속 얘기했다.“둘째, 퇴역한 총사령관이 정말 전설 속의 소문처럼 대단한 실력을 갖추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셋째, 최종호를 위해 나서주고 싶었습니다. 아무리 못나도 내 부하니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얘기했다.“죽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죽여줄 수 있습니다.”용인주는 웃으면서 오른손을 꺼내 옥 같아 보이는 패 쪽을 김예훈 앞에 던지며 담담하게 얘기했다.“넷째, 부산 용문당 지사는 내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곳입니다. 최종호가 총사령관님 손에 죽은 게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총사령관님의 이유가 가장 크죠. 최종호가 죽어서 부산이 혼란에 빠졌으니 저는 총사령관님이 한 달 동안 용문당 부산 지사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으면 합니다.”김예훈은 가볍게 웃었다.“인주 님, 꿈을 꾸셔도 적당히 꾸셔야지. 용상국 씨가 나에게 9대 국방부 총사령관이 되어달라고 계속 부탁했지만 나는 다 거절했습니다. 고작 용문당 당주가 나를 부산 용문당 지사의 회장이 되어달라고 협박하면, 내가 들을 것 같아요?”용인주는 미소를 지었다.“총사령관님이 과대 해석하셨습니다. 이건 명령도 아니고 협박도 아닙니다. 그저 총사령관님이 이 일을 할 것 같아서 그러는 겁니다.”그는 김예훈이 질문할 기회도 주지 않고 홀로 얘기했다.“우리 한국은 계속해서 5대 강국의 견제를 받아왔습니다. 수년 전에 있었던 유라시아 전쟁에서 총사령관님이 5대 강국 연합군을 혼자서 쓸어버렸죠. 그 후에는 변경에서 작은 다툼이 있었을 뿐이지 다시 전쟁이 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한국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부산은 그들이 쳐들어오기 딱 좋은 곳이죠. 얼마 전 들은 소식이 있습니다. 일본의 사이카 닌자가 부산에 잠입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목적은 아직 몰라요. 최종호가 부산에 간 것은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최종호가 죽었으니 총사령관님이 이 책임을 지셔야죠?”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렸다.“나한테 뒤집어씌우는 겁니까?”용인주는 작게 웃으며 얘기했다.“그런 것은 아닙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며 눈치를 봤다.얼마 지나 박인철이 말을 꺼냈다.“총사령관님,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만약 정말 일본의 사이카 닌자가 부산에서 무슨 수작을 부린다면 일반인이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문당 당주 같은 사람이 갑자기 부산으로 간다면 일본인들의 주목을 받게 될 테니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총사령관님께서는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지금은 김세자라는 신분이 밝혀지긴 했지만 진정한 신분은 그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총사령관님이 가서 조사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긴 합니다. 게다가 총사령관님이 은퇴하셨던 그동안, 당도 부대의 형제들도 총사령관님이 나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그때 가서 다시 보자.”김예훈은 가볍게 손을 저었다.큰 나무일수록 그림자가 더욱 크고 바람 잘 날이 없다.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그 책임이 더욱 무겁다.김예훈은 잘 알고 있었다.겨우 은퇴했는데 다시 총사령관으로 나선다면 그건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과 같았다. 앞으로 그의 사생활에 모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오정범은 고민하다가 얘기했다.“총사령관님, 만약 가고 싶지 않으시면 제가 가겠습니다. 그저 일본인 몇 명으로 총사령관님이 나서게 하다니.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입니다.”“조용히 해!”원경훈이 오정범을 노려보며 얘기했다.“부산은 손을 쓰기 어려운 곳이야. 부산 6대 가문을 보면 하나같이 어려운 상대야. 게다가 최씨 가문은 지금 총사령관님을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어. 네가 아니라 총사령관님이 가더라도 위험한 곳이야!”오정범은 동의하지 않았다.“총사령관님의 실력으로 무서울 게 뭐가 있습니까.”“네가 뭘 알아. 걸어오는 싸움은 몰라도 뒤에서 더러운 수작을 부리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법이다. 부산 같은 곳은 별별 수법을 쓰는 사람이 다 있어. 게다가 부산 용문당의 사람들은 총사령관님을 극도로 미워하고 있으니 함부로 나섰다가는 사방이 적이다.”원경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예전
김예훈은 소파에 기대어 담담한 목소리로 얘기했다.“아직 제대로 결정하지 않았어요. 이 두 늙은 여우한테 이용당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서. 게다가 부산 용문당을 처리하는 건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열흘에서 보름 정도, 그들이 싸우다 지칠 때 다시 보죠.”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송준이 걸어들어와 몸을 숙이고 얘기했다.“김 대표님, 하 비서 측은 제가 사람을 시켜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별로 이상한 점은 없습니다. 그저 일반인이 사직한 것과 같아요. 하지만 이게 제일 이상한 부분이죠. 그래서 내일 직접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내일 비행기로 성남을 떠난다고 들었거든요.”송준의 말을 들은 박인철과 원경훈, 오정범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이건 총사령관님의 사생활이니 끼어들어서도 안 되고 궁금해해서도 안 된다.김예훈은 미간을 짓누르고 한숨을 쉬더니 떠나버렸다.반 시간 후, 김예훈은 하은혜 아파트의 벨을 눌렀다.얼마 지나 문이 열렸다. 하은혜는 화장기 하나 없는 얼굴로 걸어 나왔다.집에 있었기에 그녀는 평소처럼 오피스 룩이 아닌 널찍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큰 잠옷은 그녀의 굴곡적인 몸매를 감추어 주었지만, 또 보일락 말락 하는 것이 사람을 애타게 했다.하은혜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김예훈을 마주한 그녀는 잠시 굳었다가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김 대표님, 왜 오셨어요?”김예훈은 웃으며 얘기했다.“은혜 씨는 내 옆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많은 일을 했는데 갑자기 설명도 없이 사직서를 내다니. 이건 좀 아니잖아요. 그래서 오늘 밤 해명을 들으러 왔어요. 물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해요. 내가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하은혜는 진지하게 김예훈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소파에 앉아 기지개를 켜더니 얘기했다.“김예훈 씨, 저는 이제 당신의 비서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부인이 신경 쓸 것 같은데요?”김예훈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질문은 대답하면 안 된다. 자칫하면 함정에 빠질 질문이었다.하은혜는
하은혜는 요즘에 있던 고민을 한꺼번에 다 얘기해 버렸고 마음이 한결 가벼운 기분이었다. 그리고 하은혜는 가볍게 한다미 덧붙였다.“김 대표님, CY그룹이 어렵게 상장했고 또 진주 4대 명문가와 청별 그룹, 그리고 부산 견씨 가문까지 상대하시느라 힘들었을 텐데 저까지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부산 심씨 가문도 10대 명문가 중 하나죠?”하은혜가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갔다.“제 외할아버지가 바로 부산의 심현섭이에요.”“뭐요?!”김예훈은 깜짝 놀랐다.“충청 졸부, 심현섭이요?! 게다가 그 방 도련님은 서울 방씨 가문이고, 은혜 씨의 서울 하씨 가문까지 있으면 10대 명문가 중의 세 가문이 모이는 거네요?”거기까지 생각한 김예훈은 참지 못하고 한숨을 내쉬었다.아무리 그가 총사령관이라고 해도 이 세 가문을 들었을 때는 머리가 아팠다.하은혜가 사직서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도 이해되었다.아마도 김예훈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겠지.쿵쿵쿵.김예훈이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하은혜, 문 열어. 데리러 왔어!”문밖에서 소리가 들렸다.“우리 엄마예요.”원래 아무렇지 않던 하은혜는 그 목소리를 듣고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리고 한편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김예훈을 숨겼다.김예훈은 어이가 없었다.“어머님이 왜 무서워요? 게다가 난 아직 당신의 상사고 은혜 씨는 내 비서예요. 내가 내 비서를 관심하는 게 뭐가 어때서요?”하은혜가 머리 아프다는 듯이 얘기했다.“김 대표님, 우리 엄마가 얼마나 끈질긴 사람인지 몰라서 그래요. 그렇지 않으면 저도 사직서를 안 내죠.”말을 마친 하은혜는 사방을 둘러보았다.하지만 그녀의 집에는 가구가 많지 않아 텅텅 비었다. 사람을 숨기기에는 너무 힘들었다.“이런 상황이 더 해명하기 어려워요. 만약 내가 숨어 있다가 발견되면, 그때는 정말 아무리 해명해도 믿지 않을 거예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그러니까 어머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은혜 씨가 부산에 가고 싶지 않은 거면
딸이 널찍한 잠옷에 간단한 외투를 걸친 채 몸매를 드러낼락 말락 하는 것을 본 하은혜의 엄마는 더욱 화가 나서 김예훈을 당장 죽여버리고 싶었다.하지만 하은혜가 급히 나서서 웃으며 얘기했다.“엄마, 회사 동료예요. 일 때문에 인수인계를 받으러 온 거예요.”“동료? 인수인계?”심정효는 차가운 표정으로 얘기했다.“업무 시간도 아닌데, 남자 동료가 집까지 찾아와서 인수인계를 받는다고? 야심한 밤에? 게다가 하필 집에서? 하, 내가 믿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해. 이 남자 너랑 무슨 사이인 거야?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심정효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웃어른의 포스가 상당했다.그녀는 죽일 듯이 김예훈을 노려보는데, 만약 시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그녀는 자기 딸을 더럽힌 이 남자를 수만 번 죽였을 것이다.하은혜는 뭐라고 답할지 몰랐다. 심씨 가문의 요구에 응하고 돌아가서 선을 보는 이유가 김예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오늘 심정효에게 딱 걸렸다. 만약 누군가 김예훈을 알아본다면 CY그룹은 끝장일 것이다.“아주머니, 은혜 씨 말이 맞아요. 저는 은혜 씨 동료 맞고요.”김예훈은 아무렇지 않게 입을 열었다.“저는 회사 대표고 은혜 씨는 제 비서예요. 오늘 갑자기 사직서를 냈길래 무슨 일인지 물어보러 왔습니다. 만약 강요당해서 사직서를 냈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러 가는 거라면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김예훈은 매우 솔직한 태도로 하은혜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대표?!”심정효의 시선이 더 날카로워졌다.“당신이 CY그룹의 대표 김예훈이야?! 감히 내 딸의 발목을 잡은 그놈?!”“네, 접니다.”“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놈이네!”심정효는 김예훈을 손으로 가리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러더니 하은혜를 노려보며 얘기했다.“너, 네가 한 약속을 잊었어?! 그룹이 상장할 때까지만 곁에 있겠다고 했잖아! 지금부터 너랑 CY그룹 그리고 이 남자하고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 말을 듣고 부산으로 가서 결혼해! 앞으로 이 남자와는 절대
외국 여자의 말을 들은 장무준은 역겨움과 혐오감이 가득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바라보았다.그는 동하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 김예훈을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입을 삐죽거렸다.“어쩐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어디서 악취가 진동하더라니, 네 몸에서 나는 냄새였구나!”“동하임, 마리아 씨가 너한테서 어떤 악취가 난다고 했는지 알아?”“궁상맞은 냄새가 난다고 했어!”“동씨 가문은 어떻게 보면 별 보잘것없는 가문인데 자기네가 무슨 상류층 가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감히 진주 상류층에 끼려고 해?”“너희 동씨 가문의 그런 염치없는 모습이 참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워!”“특히 동하임 넌 영국 제국의 황녀에 비하면 길가의 개에 불과해!”장무준의 눈에는 거리낌 없는 경멸이 깃들어 있었다.“당장 이 기생오라비를 데리고 꺼져!”“앞으로 절대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참, 혼약은 할아버지한테 취소하라고 할 거야.”“그전에 조건이 하나 있어.”“바로 너랑 이 기생오라비가 장씨 가문 문 앞에서 3일 밤낮으로 무릎을 꿇고 비는 거야!”“3일 채우면 넌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어!”장무준의 빈정거림에 매서운 기운이 동하임의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그녀는 장무준을 차갑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장무준, 고작 며칠 동안 외국인 행세를 했다고 해서 자기가 무슨 영국 제국의 개라도 된 줄 아나 봐?”“잘 들어!”“파혼의 결정권은 나한테 있어!”“장무준 네놈이 3일 밤낮으로 우리 가문 문 앞에서 무릎 꿇고 빌면 파혼을 동의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이 내연녀랑 부부가 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내연녀?”장무준은 동하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더러운 년, 말조심해!”“네 눈앞에 있는 여인은 영국 제국의 황녀고 영국 제국 황위의 49번째 계승자야!”“이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공주고 네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존재야. 너랑 너희 동씨 가문이 평생 떠받들고 모셔야 하는 존재라고!”“감히 누구한테 내연녀라고 하는 거야?”“미친 거 아니야?”“마리아 씨가 나
“장무준 저 자식이 어렸을 때부터 영국 제국에서 자라서 결국 영국 제국 황실 방계의 여자 친구를 찾은 듯해요.”“저런 친밀한 모습이 해외에서 일어난 거라면 나랑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심지어 저 자식이 우리 가문이랑 진작에 파혼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도 저희 동씨 가문이랑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근데 지금 우리 동씨 가문이랑 파혼도 하지 않고 내가 마중 나올 거란 걸 뻔히 알면서도 외국 여자를 데리고 와서 내 뒤통수를 치잖아요.”“절대 가만히 있을 수 없죠!”동하임은 차가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인 저 남자한테 관심이 없지만 자신과 동씨 가문에 먹칠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이 일이 일단 진주·밀양 두 도시에서 퍼지게 되면 동씨 가문이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김예훈은 동하임의 심정을 이해했다. 그는 살짝 웃으면서 물었다.“그럼 이제 어쩌려고요?”“저 남자한테 가서 당신을 좋아하는지, 결혼은 할 것인지 물어볼 건가요?”“죽어도 싫어요!”동하임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김예훈은 웃으며 말했다.“그럼 간단하네요. 이왕 여기까지 온 거 가서 분명히 말해줘요.”“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없는 거면 장씨 가문 쪽에서 자발적으로 파혼하게끔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 거 아니에요?”김예훈은 장무준이 장현준의 손자란 걸 알고 있었지만 동하임이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랐다.어찌 됐든 동씨 가문과 장씨 가문이 이 지경에 이른데에는 자신한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으니 동씨 가문을 도와 이 일을 최대한 조용히 해결해야 했다.자신이야 나중에 진주·밀양을 떠날 거라서 상관이 없지만 동씨 가문은 여기에 뿌리를 박고 살아야 할 사람들이었다.동하임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파혼하고 싶은 건 맞아요. 하지만 일이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래요.”“장무준이 지금 이 관건적인 시기에 돌아왔는데 순순히 파혼할까요?”김예훈은 담담하게 말했다.“순순히 파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그 남자 교육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