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Y그룹 로비.김예훈은 담담하게 스크린에 나타난 빨간 선을 바라보았다.“형부, 엄청나게 감동했죠?”정소현은 정민아의 팔을 끌어안고는 예쁘게 꾸며진 꽃바구니를 문어귀에 내려놓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언니랑 나랑 오늘 형부를 응원하기 위해서 이박삼일 동안 몰래 준비했다고요! 언니가 겉으로는 정씨 가문의 뜻대로 움직이는 척, 형부와의 의리도 끊어내는 척했지만 사실상 로열 가든 그룹의 모든 자금을 꺼낼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 모든 건 오늘 형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예요!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어 로열 가든 그룹이 파산하게 되고 우리가 실업자가 되더라도 형부가 우리를 먹여 살리실 거죠?”정소현은 계속 생글생글 웃어 보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먹여 살릴게.”김예훈은 정소현을 향해 웃었다. 그러고는 그제야 정민아를 보며 말했다. “이렇게 작은 일에 당신이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당신 남자의 신분을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누구도 나를 이길 자가 없다는 걸 당신은 알 거 아니야.”김예훈은 오늘 이 자리에 정민아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의 이 함정은 너무도 깊었다. 비록 김예훈이 직접 일을 꾸며 낸 것도 있지만 곽영현 등 사람들이 사적인 원한이든, 진주 시장을 위한 일이든 무조건 전력을 다해 달려들게 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배후에는 청별 그룹과, 용연옥, 용문당, 그리고 부산 견씨 가문 등이 있었다.무모하게 끼어들었다가는 뼈도 못 추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김세자의 신분만으로 오늘은 거의 승산이 없었다. “하루를 살아도 부부라고 함께 지내 온 시간이 얼만데 감정이 깊지 않을리가...”정민아가 웃어 보였다. “만약 내가 오늘 오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 아내 자격이 없는 거지.”말을 마친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은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김예훈 옆으로 다가가 바짝 붙어 섰다. 이 남자는 내 남편이고, 또한 엄청나게 우수한 사람이지.만약 이런 사람 곁에 내가 서 있지 않는다면 아
대형 스크린에는 주가가 계속하여 하락하는 추세였다.이때, 거리에서 굉음을 내며 낡아 빠진 고물차 한 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그러고는 이내 CY그룹 문 앞에 멈춰 섰다.낡아 빠진 고물차는 겉으로 보기에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소한미 등 사람들의 얼굴에는 조롱하는 표정이 역력했다.김예훈 이 자식은 배가 고프니 가리지 않네. 아내와 처제도 모자라서, 자신을 위해 나서 줄 사람이 그리도 없을까? 어떻게 낡아빠진 골동품 차를 몰고 온 사람을 내세워 체면을 세우려고 하는 거지? 뭘 하려는 걸까? 장난치려고?이대정과 공명진도 혐오하는 표정이었다.그리고 곧이어, 삼베옷을 입은 어르신 한 분이 천천히 차에서 내렸다. 어르신의 양쪽 옆에는 두 명의 훈남, 훈녀가 서 있었는데 그들은 다름 아닌 선우재현과 선우정아였다. 그 순간, 선우건이가 미소를 머금고 인사하며 말했다. “오늘처럼 기쁜 날, 우리 선우 가문에서는 근래에 CY그룹과 협조한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무엇으로 보답할지 고민하다 축하는 의미로 4,000억의 현금을 김세자에게 드리려고 합니다!”말이 끝나고 선우건이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스크린에서 빨간색 그래프가 수직으로 급격히 상승해 갔다. 30포인트나 하락했던 주가가 상승세를 타면서 순식간에 20포인트나 상승한 위치에 머물렀다. 다시 말해 이대정이 방금 투자했던 1,000억이 순식간에 허공 속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심전도와 같이 심하게 요동치는 그래프를 보고 있던 현장의 모든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 사람은 부자지만 그중에는 몇백억, 몇천억의 부자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은 천억, 또는 조 단위의 거래도 주기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천억이 넘는 현금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은 그들에게도 충분히 놀라워 쓰러질만한 일이었다!“이럴 수가!?”“선우 가문이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이대정과 공명진도 마주 보며 서로
선우재현의 말에 소한미는 그날 골동품 가게에서 있었던 일이 불현듯 생각났고 얼굴은 삽시간에 뭐 씹은 표정 보기 좋지 않게 변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선우재현의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고, 싸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곧장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선우 가문에서 나온 골동품들 짜가라는 소문이 돌고 있으니, 각지의 진품 검증 좀 한다는 전문가들 연락해서 조사토록 해. 그리고 선우 가문에 발 담근 중소 주주들한테 연락해서 수중의 주식 우리한테 다 넘기라고 해, 다 사줄 테니까. 마지막 하나. 앞으로 청별 그리고 진주 4대 가문과 등지기 싫으면 각자 알아서 선우가는 블랙리스트에 꽂아두라고 해둬. 오늘 아주 선우가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버리겠어!”지금, 이 순간부터 소한미는 선우 가문을 시작으로 모든 CY그룹 편에 서는 측과 적대시하고 전쟁을 치르겠다는 선포를 했다. 그녀의 엄포에 장내는 온통 연민의 눈빛이 오갔고 그 시선은 하나같이 선우건이를 향했다. 눈빛에는 약간의 조소와 비아냥거림도 섞여 있었다.선우건이가 지금 후회스럽지 않을까 싶었을 것이다. 굳이 대놓고 김예훈을 도와준 덕분에 선우 가문이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 눈에 뻔하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한미의 명이 내려지자, 선우 가문 세 사람의 휴대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걸려 오는 전화 하나하나에 세 사람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져만 갔다. 다만 김예훈은 전혀 영향받지 않고 변함없이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렇게 아직도 센 척하는 김예훈을 지켜보면서 소한미는 속으로 비웃었다. ‘까짓 게 날뛰어 봤자 손바닥 안이지! 오늘 여기서 어떤 결말을 맞을지 눈치도 없어 보이고. 참, 안타깝네.’그녀의 생각대로 삼분도 지나지 않아 스크린에서 오름 추세를 타던 CY 주식이 머뭇거리더니 주가가 멈춰 섰고 그대로 횡보하기 시작했다.누가 봐도 지금 당장 선우가의 자금 길이 막혀서 당분간 주식시장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CY그룹 주식을 올려 칠 가능성이 없어졌다.이대정 등 사
전남산 이름 석 자에 현장은 당장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고 숨소리마저 내기 조심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다.전남산이면 국가 명수 그 전남산?그런 거물이 김예훈을 응원한다고 여기까지 온 거?명수 전남산이면 말이 달라진다. 그가 백만 원을 투자한다고 하면 누가 감히 그의 주식을 증발시킬 수가 있겠는가? 누가 감히 그를 손해 보게 만들겠는가? 나중에 자신이나 가족이 아플 때 그에게 치료받지 못할 두려움을 넘어설 사람은 없었다.그 시각, 전남산은 현장 사람들을 외면한 채, 주위에 돌아가는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인터뷰하듯 얘기했다.“전남산입니다. 오늘 여기서 CY그룹의 주식을 한주 사려하는데, 이거 내부자 거래니, 뭐니, 문제 될 것 없겠죠?”구경하고 있던 언론사 기자들이 서로서로 쳐다보더니 기사로 쓰기 시작했고, 잠시 뒤 기삿거리는 상상 이상의 속도로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주식시장의 이슈 거리는 늘 큰 파장을 일으켰고, 전남산이 CY 주식을 샀다는 얘기에 엄청난 규모의 개미투자자들이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마치 피비린내를 맡은 흡혈귀처럼 무서운 기세로 말이다.곤두박질치던 주가가 다시금 상상하기 힘든 속도로 로켓 그래프를 그리며 치솟았다. 사람이 많으면 힘이 세지고, 힘을 합치면 세상도 뒤엎는다고 모든 변화는 순간이었다. 만원이던 CY그룹 주가는 이만 원으로 두 배로 치솟았다. 앞서 롱콜 포진했던 투자 자금은 순식간에 배로 늘었고 반대로 이대정같이 숏포지션에 들어간 자금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를 지켜보던 전남산은 부처님 같은 미소를 지었다.“아이고. 이 늙은이가 주식은 초보라, 주식투자 처음 해본 건데 엄청나게 오르네요. 운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네요.”김예훈은 웃으며 답했다.“어르신, 농도 하시고 기분 좋네요. 열 배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맛있는 음식 대접하겠습니다. 저리로 이동하시죠.”“자!”김예훈 일행은 전남산 모시고 라운지로 향했다.소한미 등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멍하니 보고만 섰다.“어떻게 이런...”
대도시 성남시에는 좋은 차도 너무 많고 고급 차량 번호도 넘치고 넘친다. 게 중에 최고는 제한 없이 경기도를 수시로 드나들 수 있는 번호판이다. 그러나 그 어떤 좋은 것도 지금 눈앞의 123경1001 차량 번호를 가진 구식 아우디 A6에 겨눌 수가 없다.해당 번호판은 성남뿐만 아니라 경기에서도 하나뿐인, 한 사람만 사용할 수 있는 통행증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일인자 하정민!하정민이 경기에서 전출된다는 소문이 있기는 해도, 재임 중인 지금은 그가 최고 권력자임이 틀림없다. 어느 세력이든 경기에서 자리를 잡으려면 하정민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그러니 번호판이 나타났을 땐 장내는 또 한 번 조용해졌다.곧 조수석 문이 열리고 경기 기관 비서실장이 내렸고 이내 공손히 뒷좌석으로 가서 문을 열어줬다.이어 이런 자리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제복 차림의 하정민이 내렸다. 그의 아우라는 대단했고 일거수일투족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엄을 내뿜었다. 곧이어 아우디 차들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그중에는 성남시 일인자 양정국도 있었고 경기경찰청 이인자 문준남, 성남시 이인자 왕태호, 성남시 경찰서 여운기 서장 등이 있었다. 다들 김예훈과 친분 있는 정부 기관 사람들이 차례로 차에서 내렸다.경기 이인자 공문철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좀 의아하긴 해도, 공명진이 김예훈과 대척점에 섰던 상황을 고려하면 공문철이 동행하지 않은 것이 또 당연한 일이었다. 공문철이 어느 편에 명백히 줄을 서지 않은 한, 공명진의 입장이 대구 공씨 가문의 입장을 대표하는 게 아니었다. 그 점을 알아챘는지 공명진의 표정도 너무 구리지는 않았다.정부 기관 인사들이 하나둘 걸어오는 모습을 본 김예훈은 웃는 얼굴로 나와서 그들을 맞이했다.“하 지사님, 양 총장님 오셨어요. 여러분 왔어요. 어떻게 전남산 어르신 따라서 주식 한번 해보시려고 행차하셨어요?”“허허허, 김 대표, 농담도 잘하네요.”하정민은 껄껄 웃으며 김예훈과 악수 인사를 건넸다.“우리 같은 관공서 사람들이야, 주식시장에
“쿵...”비록 일정 거리가 있지만, 한자리에 모여선 이대정 일행은 그 순간 말 못 할 위압감을 고스란히 느꼈다.이런 게 바로 경기 일인자가 정부 기관에서 쌓인 내공, 다져진 권위가 아닐까 싶다. 더욱이 하정민은 서울 하씨 집안 사람이다.서울 하씨 가문은 전국의 10대 명문가 중 하나이고 하정민의 지금 피력한 입장은 하씨가문으로부터 김예훈을 뒤에서 돕겠다는 뜻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부산 견씨 가문이 받고 있던 압박이 슬며시 사라져갔다.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정민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있었다.특히 이대정, 공명진, 소한미 세 사람은 모두 창백해진 얼굴로 하정민의 눈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흠!”하정남의 강경한 시선에 맞춰 양정국은 헛기침하며 장내를 쓱 둘러봤다. 하정남 일행은 경기와 성남의 정부를 대표하는 인물들에다 특히 너무 높은 신분의 하정민, 양정국이 이 자리에 있는데, 누가 감히 정부 이름을 내세워 CY그룹을 탄압하고 김예훈을 제압할 수 있을까?“김 대표, CY그룹이 우리 경기의 내로라하는 준법 기업이니 앞으로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내가 경기에 없더라도 나한테 얘기해요.”하정민의 이 말은 개인적인 태도뿐만 아니라 서울 하씨 집안의 태도임을 김예훈에 표하는 바였다. 그에 반해 양정국은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성남에 상장회사가 많지는 않습니다. 시장도 부양하고 경영환경도 개선하기 위해 시에서도 관련 미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정부 격려 차원에서 회의는 만장일치로 앞으로 CY그룹에 절반의 세금 차감을 주기로 했습니다.”“헉...”하정민의 지지가 태도적 측면이었다면, 양정국의 지지는 그야말로 실질적 지지었다.세금을 반 줄인다는 건, 한 기업에 있어 상상하기 어려운 기회이고, 상당히 큰 금액이다!양정국의 말이 끝나자, 소식은 곧 퍼져나갔고 대형 스크린의 숫자들에서 그 영향을 보여줬다. CY그룹의 주식이 또 한 번 쑥쑥 치솟았다.불과 몇 분 사이 주식은 이미 150%의 문턱을 넘어섰다. 주식 가치 이
공명진은 김예훈이 무슨 능력이 있어 관청의 보스들마저 구워삶았는지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청별 그룹이 돈이 무수히 많다지만, 결국엔 이대정은 한국의 대표일 뿐, 북쪽에서는 떵떵거려도 경기에서 그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진주 4대 명가 역시도 잘 나가고 대단하긴 해도, 문제는 그들 중 아무도 이 자리에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당장 곽영현 등 인물이 나타나지 않는 한, 이 상황에서 어찌 CY그룹에 숏 포지션을 칠 것이며 어떻게 CY 주가를 폭락시킬 수 있겠는가?어떻게 김예훈을 파산시킬 수 있겠는가?공명진은 지금 목이 마르고 속이 타들어 갔고 소한미를 보더니 말을 건넸다.“한미 씨, 이제 어떡해? 영현 씨 쪽에...”“조용!”낯빛이 말이 아닌 소한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낮은 소리로 공명진을 향해 울부짖었다.그녀는 지금 김예훈을 죽일 듯이 쏘아보더니 부들부들 떨며 문자 하나를 보냈다. 그녀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김예훈을 밟아버리고 망신시키고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파산시키기 위해서인데, 김세자라 불리는 김예훈의 파워는 정말 예상을 마구 벗어났다.그녀가 보기에 김예훈은 사기가 굉장하고 어마어마했다.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몰락한 집안 세자 따위의 체면치레가 어찌 진주 4대 명문가보다 더 서는지? 청별 그룹보다, 부산 견씨 가문보다 더 잘 나가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도대체가 왜?!’바로 그때 식은땀을 흘리던 공명진이 갑자기 몸을 움찔하더니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한곳을 바라보았다.“한미 씨...”“짝!”소한미는 가뜩이나 심란한 와중에 결국 참지 못하고 공명진의 뺨을 한 대 후렸다.“아니, 공씨 가문의 자제가 돼서 뭘 그렇게 쫄고 앉았어! 바보가 된 거야 뭐야. 공 씨 가문 체면을 혼자 다 말아먹는 거 알아!”평소 같으면 그녀도 예의상 공명진을 공손하게 대하였을 건데, 지금은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하고 화가 치미는 상황에 하필 공명진이 옆에서 못나 보이게 행동하니 그에게 화풀이했다.공명진은 얼굴을 부여잡았다. 평
마이바흐의 문이 먼저 열렸고 슈트 차림을 한 곽영현이 걸어 나왔다.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아직 불을 못 붙인 가늘고 긴 시가 하나가 끼어 있었다. 곽영현이 아무렇지 않게 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무적의 기운을 뿜고 있었다.뒤이어 롤스로이스에서 평상복 차림의 김병욱이 내렸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김병욱은 김씨 집안 사걸 중 일인이고 경기 지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김씨 가문이 몰락했는데, 김병욱은 어느 샌가부터 진주 4대 재벌 2세 모임에 들어가 있었다. 그 과정의 방법과 수단은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그러니 이미 유명 인사인 곽영현이든 4대에 갓 오른 김병욱이든, 두 사람이 나타난 것만으로 성남, 내지는 경기도의 권세 있는 사람들마저 기세로 압도해 버렸다.공명진의 얼굴에 기쁨이 흘러넘쳤고 소한미도 흥분했는지 온몸을 떨었다.둘이 들어오는 모습을 본 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오늘따라 이렇게 불청객이 많을 줄 몰랐다.곽영현이 온 것까진 그렇다 쳐도 망해 자빠진 김병욱이 온 건 뭔가 싶었다.‘딱 봐도 뭔가 자신에 찬 모양이네.’꽤 신중한 타입의 김병욱이 자신만만하게 이길 뭔가가 없으면 움직일 인간이 아닌 걸 알고 있었기에, 김예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곽영현은 진중하게 무게감 있는 모습이었고 김병욱이 되려 주위를 쭉 돌려보더니 하정민에게 시선이 멈춰 서서 인사를 했다.“오랜만입니다. 오늘 저를 봐서라도 자리를 비워주시면 정말 고마울 것 같네요.”하정민은 실눈을 뜨고 잠시 김병욱을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김병욱 도련님, 그런 말은 이일매가 나한테 했으면 내가 생각만이라도 해볼 텐데, 자네 말이 나한테 있어서 딱히 소용 있지는 않아.”김병욱은 담담하게 받아쳤다.“하정민 님, 김예훈이 우리 김씨 집안에서 내쳐진 자제인 걸 아실 텐데, 굳이 김예훈에 힘이 되어주신다는 건 결국 김씨 가문과 등지는 일인 걸 아시면서 그러세요? 우리 안동 김씨 집안이 오랜 역사를 가진 가문인 것도, 못 하고 무서울 게 없는 세력
다음 날 시즌 호텔 로얄 스위트 룸에서 깊이 잠들어 있던 김예훈은 다시 한번 끊임없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김예훈은 시계를 보고 나서 힘없이 문 열러 갔고 문 앞에 단정하게 차려입은 동하임을 보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동하임 씨, 지금 아침 9시예요. 나 조금만 더 자게 해줘요!”“좀 푹 쉬게 내버려둬요!”화장한 동하임의 안색이 안 좋았고 그녀는 김예훈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나랑 같이 공항에 누구 좀 데리러 가요!”김예훈은 자세히 물어보려고 했지만 동하임의 안색이 좋지 않을 걸 보자 침묵을 지켰다.얼마 지나지 않아 동하임의 포로쉐 911은 고속도로를 미끄러지듯이 달리다 진주 국제 공항에 도착했다.동씨 가문의 사람은 이미 대합실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동하임이 다가오는 것을 보자 급히 달려가 주차를 도와주고 한 레스토랑의 위치를 알려주었다.안색이 좋지 않은 동하임은 에르메스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갔다.김예훈은 뭔가 물어보고 싶었지만 일단 입을 꾹 다문 채 따라나섰다.그는 도대체 무슨 상황이길래 평소에 냉담한 동하임을 이토록 화나게 하는지 궁금했다.곧 두 사람은 레스토랑 입구에 도착했다.거대한 레스토랑은 이미 통째로 예약된 상태라 다른 손님은 없었고 모든 웨이터가 한 테이블 귀빈들한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테이블 중앙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남자는 서울 사람으로 잘생긴 외모에 큰 키를 가지고 있는 듯했고 금색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점잖고 우아한 귀족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의 맞은편에는 영국 제국의 외국 여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외모와 몸매는 그런대로 괜찮았고 관건적인 것은 독특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김예훈은 그것이 영국 제국 황족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외모는 영국 제국의 장공주과는 조금 차이가 났지만 특유의 기질은 숨길 수 없었다.그러한 사람이 진주 국제 공항에 나타났다는 자체만으로 뭔가 있어 보이는 듯했다.몇몇 젊은이들이 레스토랑 바깥 구석에 몰래
“제 기억이 맞다면 전에 손자분이 동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었죠?”“명목상으로는 동하임의 약혼자 맞죠?”김현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했다가 그 당시 동씨 가문이 아직 집권하지 않았을 때 장씨 가문과 혼약을 맺었던 게 떠올랐다.하지만 그의 손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오만하고 자부심이 강해서 서울 사람들을 경멸했고 오직 영국 제국 황실의 사위가 되기만을 원했다.그래서 그는 영국 제국으로 유학 갔고 황실 방계인 여친을 찾은 후에는 진주로 돌아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김현민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면 장현준은 그 일을 완전히 잊고 있었을 거다.김현민은 이어서 말했다.“어르신의 표정을 보니 제가 제대로 기억한 것 같네요.”“오늘 동하임이 현장에서 김예훈을 건드리려면 자신의 시체를 밟고 가라는 둥, 그런 말을 했다고 들었어요.”“그 말이 퍼지게 되면 장씨 가문의 체면이 구겨질 게 뻔해요.”“어쨌든 동하임은 어르신의 손자며느리이고 아직 파혼하지 않았잖아요.”“제가 보기에는 손자분이 돌아와서 동하임을 교육 좀 시켜야한다고 생각해요. 진주에서 누가 더 권력이 있는지 동씨 가문에 단단히 알려야죠!”“고작 동씨 가문 주제에 집권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장씨 가문의 은혜는 싹 다 잊은 거잖아요.”“게다가 동씨 가문을 망가뜨리면 김예훈이 계속해서 큰소리칠 수 있을까요?”“그 사람이 평성에서 아무리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진주에서는 뿌리 없는 초목일 뿐이에요.”“동씨 가문과의 인연만 끊어버린다면 얼마든지 밟고 올라설 수 있지 않겠어요?”“게다가 그 사람이 이번에 영국 제국을 거듭해서 모욕했는데 어르신 손자분과 황실 여자 친구가 같이 돌아와서 김예훈의 낯짝을 세게 후려갈겨 버리면 얼마나 속 시원하겠어요?”장현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김 수장님 역시 명성대로 인재시네요. 직접 나서지 못하는 대신 전략과 배치를 아주 완벽하게 짜놓으셨네요.”“어떻게 체면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한참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급한 마
장현준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물었다.“용현성이 김예훈을 제압하지 못할 거란 걸 진작에 예상했던 거예요?”“용현성은 용문당 집법부대의 부당주고 용문당 36개 지회를 총괄하는 사람이에요.”“그런데 김예훈이 어떻게 감히 용현성의 체면을 구길 수 있어요?”김현민은 직접 장현준에게 차 한 잔을 따라주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간단해요. 김예훈이 부산 용문당 회장 신분만 갖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죠. 회장이라는 신분은 그 사람한테 단지 아주 작고 보잘것없는 덤일 뿐이에요.”“그 사람의 진짜 정체는 아마 어르신도 들어봤을 거예요.”“경기도 김세자요!”“진주 이씨 가문의 이일메 큰 어르신도 그 사람을 건드렸다가 패배의 쓴맛만 봤어요.”“심지어 경기도 제일의 명문가의 모든 자원이 그 사람의 손에 들어가 있어요.”“그런 사람은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죠.”“게다가 용 어르신과 어르신께서 아무런 준비 없이 공격해서 큰 코만 다치게 된거예요.”김현민의 담담한 말투와 달리 그의 얼굴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가득해 보였다.장현준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다가 김현민을 응시하며 약간 화가 난 듯이 말했다.“그럼 왜 우리가 움직이기 전에 얘기하지 않았어요?”“제가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제 말을 안 들으셨잖아요.”“제가 어르신한테 그 사람의 진짜 정체를 미리 말해줬다고 해도 어르신의 성격과 용어르신의 독단성을 감안했을 때 제 말을 들어주고 믿어줬을까요?”김현민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면서 그에게 차근차근 미끼를 던졌다.“어르신과 용 어르신께서 정신을 집중하고 힘을 합쳐서 세상 물정 모르는 그놈을 처리해 버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두 분께서 미리 패배의 쓴맛을 맛보는 거예요.”“그래야 두 분께서 그런 놈을 상대하려면 아예 손을 쓰지 않거나 손을 쓴다면 바로 죽여버려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될 거니깐요.”그 말을 들은 장현준의 표정이 바뀌었고 안색이 많이 누그러졌다.잠시 후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김 수장님은 날 위해서 나설
남윤지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김현민이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차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도련님, 애초에 그 두 늙은이를 내보낸 건 단지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였잖아요.”“첫 번째 목적은 이 기회를 빌려 용문당이 김예훈에 대해 얼마나 관대한지 그 한계를 알아내기 위해서였고요.”“그리고 두 번째는 일본이 김예훈 측과의 싸움에서 패배돼서 이번에는 영국 제국의 힘을 빌려서 그놈을 죽이려고 했잖아요.”“이제 그 두 늙은이는 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쓸모가 없어졌고 마침 저희가 계획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잘된 거 아니에요?”김현민은 담담하게 말했다.“계획은 그렇긴 한데 안타깝게도 변수가 생겼어.”“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제도 모르고 아직도 자신이 권력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단 말이지.”김현민의 얼굴에 비웃음이 번졌다.“어떤 사람들이요?”남윤지는 생각에 잠긴 듯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거실 문 앞에서 급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잠시 후 코가 시퍼렇게 멍이 들고 얼굴이 부어오른 장현준이 거실 문을 열고 김현민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그의 얼굴은 끊임없이 일그러지면서 변화하는 동시에 원한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김 수장님, 김예훈 그놈 뭐예요?”“고작 용문당 회장 주제에!”“어떻게 감히 내 얼굴에 손을 대요!”“게다가 날 서양 놈들의 개라고까지 했어요!”“그놈을 당장 죽여버려요! 김 수장님, 내 원한을 꼭 갚아줘요!”“별거 아닌 놈이 감히 전임 총독의 얼굴을 때리다니!”“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앞으로 어떻게 진주·밀양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겠어요?”“또 어떻게 영국 제국 황실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겠어요?”장현준은 자신과 김현민의 신분 차이를 잊은 채 붉게 부어오른 얼굴에는 증오와 사나움만 가득했다.이어서 장현준은 그의 부하들 앞으로 다가가서 그들의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쓸모없는 것들! 이 쓸모없는 것들아!”“날 보호하지 않고 뭘 했던 거야?”“영국 제국의 퇴역 기사라면
김예훈은 생각하더니 또 말했다.“그리고 김현민이 일본, 영국과 결탁한 의혹이 있는 것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 큰 어르신의 생신날 김현민이 상속받으려 한다는 소문을 퍼뜨려 주세요. 소문을 퍼뜨린 사람이 누군지 모르게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양한 경로를 통해 퍼뜨려 주세요. 김현민이 밖에 나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 긴장감을 줘야죠. 맨날 집에서 음모와 계략을 연구하는 것도 정신상태에 좋지 않거든요.”김현민이라는 사람은 너무 계산적이고, 자기 보호에 강했다. 그런 그에게 짜증 날 대로 짜증 난 김예훈은 이렇게라도 그를 압박하고 괴롭혀 보기로 했다.그가 미쳐 날뛰기 시작해야 자기가 짜놓은 판이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알아볼게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동씨 가문은 그래도 진주에서 어느 정도 힘이 있어서 이런 일은 쉽게 처리할 수 있거든요.”김예훈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했다.김현민 같은 사람을 상대하려면 너무 의도적으로 계획하면 안 되었다. 너무 티 나게 하면 그가 눈치챌 수 있었다.오히려 이런 무심한 계획이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있던 동하임은 갑자기 웃더니 그에게 다가가 차를 한 잔 따라주었다.“도련님께서 저희 동씨 가문에 이렇게 잘해주시는데 마땅히 내놓을 것도 없고 해서 제 몸을 바치는 거 어떨까요?”농담처럼 보이지만 사실 큰 용기를 낸 것이다.김예훈만 원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튈 것이 분명했다.“하하하.”김예훈은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으로 동하임의 손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고개를 흔들었다.“하임 씨, 농담도 참. 아무리 그래도 저는 하임 씨 아버지의 친구이자 하임 씨의 삼촌이 되는 사람이에요. 이런 농담으로 저를 화나게 하면 제가 어떤 벌을 내릴지도 몰라요.”동하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도련님께서 이런 걸 좋아하셨어요? 그러면 삼촌, 저한테 어떤 벌을 주실 건데요?”김예훈은 갑자기 주제가 잘못된 것 같아 순
“그렇다면 덕망 높은 두 분의 끊임없는 호소 끝에 김현민은 반드시 전략을 바꿔야겠죠. 만약 도련님께서 상대가 어렵다고 생각된다면 멀리 놓고 봤을 때 저 두 사람은 김현민이 자신을 위해 분풀이를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겠죠. 그렇다면 저 두 사람이 김현민의 마음을 흔들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다 단단한 고리에 작은 균열이 생길 수도 있어요. 만약 김현민이 오늘 일때문에 참지 못하고 직접 나선다면 계획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그중에서 부족한 점이 보이겠죠. 어쩌면 도련님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를 뿌리째 뽑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아무튼 도련님은 이 건물에 들어선 순간부터 함정에 빠진 것이 틀림없어요.”동하임은 손에 들고 있던 수표를 김예훈에게 건넸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김예훈이 흥분한 나머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까 아버지와 문자를 주고받으면서 조언을 듣고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김예훈의 행동이 막무가내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중한 움직임이었고, 걸음마다 김현민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비록 김예훈과 김현민이 아직 정식으로 붙지 않았지만, 신경전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현재 파악된 상황을 봤을 때 적어도 김현민은 김예훈에게서 그 어떠한 이득도 본 적이 없었다.이로써 동하임은 왜 아버지가 진주·밀양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는 김예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지만 안타깝게도...동하임은 김예훈이 미혼일 때 만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이때 김예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하임을 힐끔 쳐다보았다.비록 동태원의 조언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사람은 조금만 더 가르쳐주면 곧 큰 인물이 될 사람이었다.하지만 김예훈은 인정하지 않고 피식 웃을 뿐이다.“너무 과대평가하신 거 아니에요? 저는 그저 사람을 때렸을 뿐인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신 거 아니에요? 저를 너무 그렇게 과대평가하지 말아
잠시 후, 용현성과 장현준은 처참한 모습으로 이곳을 떠났다.동하임은 손에 든 2,000억 원의 수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김 도련님, 이번 만남은 정말 실패네요. 아무쪼록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줄 알았는데 저들에게 본때를 보여줬냬요. 이 2,000억 원, 더 두 분이 여기저기 연락해서 겨우 모은 거예요.”동하임은 여전히 한숨이 나왔다.‘그렇게 거들먹거리더니 돈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었어. 2,000억 원을 울며불며 여기저기서 빌려야 한다니.’김예훈은 그들에게 2,000억 원을 내놓으라고 한 것은 그들의 뺨을 때리는 것보다도 더 심했다.그들의 노후 자금마저 탈탈 턴 것과도 같았다.이로써 쌍방은 지금, 이 순간부터 더 이상 평화롭게 지낼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저희가 얼굴을 붉히지 않았다고 해도 저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었을 거예요. 어차피 저들 눈에는 제가 죽어야 마땅한 존재니까요.”김예훈은 다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공진해가 보내온 자료를 확인했다.“소식에 따르면 용현성은 특별한 능력 없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어요. 암암리에 일본 쪽과 연락하는 것 같더라고요. 류서우가 초대하지 않았더라도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기 위해 무조건 문제를 일으키러 왔을 거예요. 장현준은 원래부터 식민지 시대 때 영국에서 기르던 개였을 뿐이에요. 평생 무릎 꿇고 개처럼 살더니 외국인이 하느님인 줄 아나 봐요. 이런 사람은 아무리 체면을 세워주고, 또 기회를 줘봤자 절대 만족하지 않을 거예요. 아무튼 제가 회장 패쪽을 내놓지 않고, 또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일본에 가서 사죄하지 않는 한 둘 중 하나는 죽는 운명이었다고요.”김예훈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해서 말했다.“어차피 죽고 못 살 판에 2,000억 원을 배상하라고 한 것도 많이 봐준 거예요. 오늘 이렇게 많은 눈이 지켜보지 않았다면 저 사람들 오늘 이곳을 벗어나지도 못했어요.”김예훈의 담담한 말투에는 살기가 가득했다.그에게는 외국과 은밀히 연락하고 국민을 해치려는 비겁한 자
“영국 사람을 등에 업으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니면 모든 사람이 어르신처럼 외국인을 언급하면 바로 무릎 꿇을 줄 알았어요?”쨕!말할수록 화가 난 김예훈은 장현준의 뺨을 때려 저 멀리 날려 보냈다.김예훈에게 얻어맞아 얼굴이 퉁퉁 부어오르고 정신이 혼미해진 장현준이 바닥에서 일어나려고 했을 때, 김예훈이 또다시 접근해 오자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사과할 기회를 드릴게요. 아니면 오늘 갈 생각도 하지 마세요. 내년 오늘이 어르신과 부당주님의 기일일 줄 아세요.”“너...”장현준은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면서도 얼굴을 부여잡은 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도 하고싶은 말을 다시 삼킬 수밖에 없었다.비록 이 시대에서는 권력, 힘, 돈, 인맥이 모든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주먹이 강한 사람이 승자였다.용현성이 이미 김예훈에게 짓밟힌 것도 모자라 장현준도 뺨을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장현준은 지금껏 의지해 온 영국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자 더 이상 김예훈과 맞서지도 못했다.이 순간, 장현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김예훈을 쳐다보았다.“미안하네.”쨕!“그렇게 사과하는 거 맞아요?”쨕!“영국에서 제대로 가르치지 않던가요?”쨕!“사과는 존중의 의미로 무릎부터 꿇어야 한다는 거 몰라요?”연이은 뺨에 장현준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그는 분노의 극치에 도달해 표정마저 일그러졌다.손을 쓰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떨리는 몸으로 결국 무릎을 꿇었다.“김 회장님, 죄송합니다. 오늘은 제가 잘못했습니다.”장현준 같은 사람은 무릎 꿇는 것이 그렇게 굴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그의 인식 속에서는 외국인을 만나면 무릎을 꿇어야 하지만 외국인은 김예훈에게 무릎 꿇을 자격이 없었다.“어르신같이 비겁한 자가 무릎을 꿇는다고 해도 아무런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지만, 저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거든요.”김예훈은 휴지로 손가락을 닦으면서 담담하게 말했다.“가보세요. 다음부터 저를
장현준은 힘겹게 일어나 숨을 헐떡이며 김예훈과 동하임을 째려보았다.“기다려.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거야!”그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했다.“반드시 동씨 가문을 진주 1인자 위치에서 끌어내릴 것이고, 오늘의 행동에 대해 후회하게 할 거야! 나는 전직 총독으로서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 이 일을 영국 황실에 알리면 너희는 끝장이야!”동하임은 피식 웃고 말았다.“영국이요? 저희가 끝장날 거라고요?”김예훈은 서서히 장현준 앞으로 다가가 비웃음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어디 전화해 보세요. 영국에서 어디 저희 대한민국 일에 간섭할 수 있는지. 저희 대한민국은 이미 세계 정상에 서있는데 어르신은 아직도 서양인의 그림자 밑에서 살고 계시네요. 당신 같은 사람이 전직 총독이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어르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서양인에게 길들어진 개일 뿐이에요.”김예훈은 또 한 번 발로 걷어찼다.장현준은 서양 격투기를 배워서 그런지 반응이 빨라서 김예훈이 발로 차는 순간에 최선을 다해 피했다.하지만 손을 들기도 전에 복부에 통증을 느끼며 의자와 함께 저 멀리 날아가고 말았다.“악!”비명이 퍼져나가고, 장현준은 네 발이 하늘을 향해 뒤집어져 마치 뒤집힌 거북이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얼른 전화해 보세요. 어르신을 지켜줄 수 있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고요.”김예훈은 피식 웃었다.“어르신께서 말은 힘이 무엇인지 확인해야겠어요.”류서우 등은 이 순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뻔뻔한 자식. 동하임이 장현준 어르신을 다치게 한 틈을 타 진주에서 존경받는 전직 총독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하다니. 정말 완전히 무시하는 거잖아!’“김 회장!”장현준은 힘겹게 일어나 김예훈에게 삿대질하면서 말했다.“감히 나한테 손을 대?”쨕!김예훈은 장현준의 뺨을 때려 바닥에 쓰러뜨렸다.다음 순간, 머리가 세게 바닥에 부딪힌 장현준의 얼굴은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고 말았다.화가 났지만 두려움과 절망감이 앞섰다.충분히 자기도 고수라고 생각했는데 김예훈의 움직임을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