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예지는 방 문을 밀었고, 침대 위의 지아가 두 눈 꼭 감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불쌍한 아이구나.”도윤은 그녀와 이남수의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대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른다.“안 돼!”지아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도윤이 아니라 심예지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는 자신이 추태를 보였다고 생각했다.“어머님.”“얘야, 나야. 네가 괜찮은 지 보러 왔는데, 좀 어때?”“괜찮아요.” 지아는 머리를 감쌌다.“악몽을 꾼 것뿐이에요.”“무슨 꿈이지?”구체적으로 어떤 꿈인지는 지아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그 꿈이 매우 혼란스럽고 또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자신의 얼굴에 튄 그 사람의 피는 무척 따뜻했고, 마치 그녀 스스로 경험한 것처럼 실감이 났다. 바닥에 이리저리 쓰러진 그 사람들은 피가 빗물에 섞여 온 바닥을 어지럽혔으니 만약 정말 발생한 일이라면, 그 현장은 또 얼마나 참혹할까?지금 이 순간, 지아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잊어버렸어요. 아무튼 끔찍하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그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심예지는 지아를 위로했다.“A시에서 고양이 한 마리 키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사람 시켜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할게. 이국의 땅에서 자신이 키우던 애완동물을 보면 기분이 좀 좋아질 거야.”“고마워요, 어머님.”심예지에 대한 호감이 점차 많아지면서 지아는 그녀가 무척 섬세한 사람이란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런 남자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니, 지아는 사뭇 안타까움을 느꼈다.“하…….”지아는 자신의 위를 감쌌다. 오후 내내 공포에 잠겨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지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무척 아팠다.“또 위가 아픈 거야?”“네, 배가 좀 고프네요.”“먹을 거 가져오라
“대표님, 방금 문자 받았는데 이제 들어가면 된답니다! 제가 이 망할 자식을 잡아올 테니 앉아서 기다리시죠.” 진봉은 흥분해하며 즉시 사람들 데리고 안으로 돌진했다.오늘의 일은 분명히 그가 세심하게 짠 계획이었지만, 도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진봉이 씩씩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윤은 심지어 은근히 후회하기 시작했다.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진봉을 부르려고 했다.염경훈은 몇 달 전 다리와 발을 다쳤는데, 비록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지금은 이런 행동에 참여하기 불편했다.도윤의 표정이 좀 이상한 것을 보고 그는 즉시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대표님?”“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진환은 줄곧 실수를 하지 않은 데다, 오늘은 대표님께서 직접 나서셨으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상대방도 단 한 사람뿐이죠.”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에 그 사람 번화가에서 한참 동안 돌고 나서야 이곳에 온 거 아니었어? 만약 진작에 매복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독 안에 든 쥐가 우리라는 말씀이십니까?”도윤은 이 근처를 힐끗 둘러보았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진환더러 먼저 철수하라고 해.”도윤의 예감은 줄곧 틀린 적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그를 여러 번 구해주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염경훈은 줄곧 도윤의 판단을 믿었기에 즉시 진환과 진봉에게 사람들 데리고 철수하라고 알려주었다.문자가 발송되자마자, 앞의 버려진 창고에서 갑자기 귀청이 터질 듯한 폭파 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직 들어가지 않은 진봉은 갑자기 터져 나온 화염에 휩싸였고, 그는 바닥에 엎드려 창고를 향해 소리쳤다.“형!”아무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도윤은 확실히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불길이 번지기 시작하자, 주변에도 불꽃이 튀더니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했다.“대표님, 매복
“쨍그랑!”지아는 한창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분명히 배가 고팠지만 그녀는 아까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고 실수로 그릇까지 땅에 떨구어 산산조각 냈다.지아는 바로 허리를 굽혀 주우려 했고 심예지는 입을 열어 그녀에게 말했다.“상관하지 마. 하인 시키면 되니까.”말을 마치기도 전에 손가락은 도자기에 긁혀 새빨간 피가 새하얀 도자기 위에 뚝뚝 떨어졌다.“그만하라니깐.”심예지는 즉시 하인을 불러 지아에게 싸매주었다. 지아는 피 흘리는 것을 보고 약간 넋을 잃었다.“도윤이 떠난 지 얼마나 됐죠?”“걱정 마, 금방 돌아올 거야.” 심예지가 위로하던 때에 테이블 위의 핸드폰이 울렸다.“전화 좀 받을게.”심예지는 지아의 손을 놓아주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 줄곧 냉정하던 심예지는 표정이 돌변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알았어, 당장 사람 더 보내.”지아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어머님, 무슨 일이에요?”“아무것도 아니야. 작은 문제가 좀 생겨서 그래. 계속 먹어, 난 가서 처리할 일이 좀 있어.”말을 마치자 심예지는 몸을 돌려 가버렸고 심지어 평소처럼 인내심도 없어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지아는 이 일이 도윤과 관계가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때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녀는 재빨리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너머에는 아무도 받을 수 않다는 차가운 알림이 들려왔고, 지아는 또 다른 경호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다들 연결할 수 없거나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다급한 마음에 지아는 얼른 심예지를 쫓아갔지만 심예지가 차에 올라타 떠나는 뒷모습밖에 보지 못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야?’지아는 심예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줄곧 통화 중이었는데 지금 매우 바쁜 게 분명했다.매일 심예지의 곁에 있던 이 집사도 지금 행방을 알 수 없었다.지아는 집에서 조마조마했다. 그녀는 방금 이 도시에 왔기에 아직 이곳이 많이 낯설었다.결국 방법이 없었던 지아는 어쩔 수 없이 어르신이 있는 별장을 향해
지아는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그녀는 연신 뒤로 물러서더니 테이블에 닿아서야 겨우 몸을 바로잡았다. 이때 지아의 다리는 무척 나른했다.“얘야, 이 세상에 절대적인 일은 없어. 나도 단지 당시의 상황을 결합하여 분석할 수밖에 없어. 폭발의 열기와 유독 가스까지 더해졌으니 일반인이라면 틀림없이 죽었을 거야. 그러나 도윤은 일반인이 아니고,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데다 또한 일찍이 각종 극단적인 도전을 겪은 적이 있으니 우리는 그냥 도윤만 믿고 그가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면 돼. 그럼 도윤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올 거야.”어르신은 애써 지아를 위로하려 했지만, 지아는 통하지 않는 전화를 떠올리며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그래서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아직은 행방불명이야.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아직 정확한 소식을 얻지 못했어. 폭발로 인한 영향이 너무 크거든. 그쪽은 폐기된 공장이라 사람들이 살지 않았기에 감시 카메라가 없어. 그래서 아무도 현장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지아는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그녀가 깨어난 후부터 도윤은 끊임없이 누군가 그녀에게 불리한 짓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지아는 예전의 기억이 없어 전혀 마음에 두지 않았다.그러나 이 순간, 도윤은 행방불명된 데다 심지어 화재 현장에 묻혔을 가능성이 아주 컸고, 그와 함께 들어간 사람들조차 나오지 못한 것을 보고 지아는 당황하기 또 두려워하기도 했다.“할아버님, 저를 그곳에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집에 있어도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안 돼, 현장은 아직 위험할 수도 있어. 게다가 수많은 유해 물질이 있다고 말했잖아. 지금은 아무도 그쪽의 구체적인 상황을 몰라. 상대방은 너를 겨냥했으니 도윤에게 손을 대는 것도 단지 너를 보호하려는 사람을 제거하려는 게 분명해. 지금은 오직 우리 집안이 가장 안전하니까 넌 절대로 떠나지 마라.”“하지만…….”어르신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이것은 네가 도윤의 아내로 되는 것을 선택했을 때 반드시 겪어야
어르신은 약을 복용한 후, 자신의 심장박동수가 그리 빠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도윤은 애송이가 아니고, 이런 일에 있어 줄곧 경험이 있었으니 틀림없이 살아서 돌아올 거야.’‘하지만…….’어르신은 두 눈을 감으면 불이 활활 타오르는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이런 거대한 재해를 마주할 때, 인간은 가장 무기력한 존재였다. 마치 눈사태가 닥쳤을 때, 아무리 솜씨가 대단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집사는 어르신이 피곤한 기색을 띠는 것을 보고 재빨리 설득했다.“회장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현장의 불은 아직 꺼지지 않은 데다 유해 가스까지 풍기고 있어 밑의 사람들은 지금 최대한 빨리 도련님을 찾고 있습니다. 곧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어르신은 나무 의자에 등을 기대고 두 손을 이마에 걸쳤다.“만약 도윤이 정말 그 자리에서 죽었다면, 나중에 저승에 갈 때, 난 도윤이 할머니를 볼 면목이나 있겠나.”집사는 한쪽에 서서 어르신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순간에야 그는 어르신이 정말 늙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도련님은 항상 운이 좋으셨죠.”지아는 그렇게 멍한 채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고, 문을 닫는 순간, 문에 기대어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도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볼 때 바다처럼 그윽한 눈빛과 뜨거운 포옹까지 모두 선하게 눈앞에 나타났다.눈시울이 시큰시큰하더니, 따뜻한 액체가 지아의 팔에 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의 볼을 어루만졌다. ‘눈물인가?’‘심장이 이렇게 아픈 거 보면, 난 도윤이 그렇게도 걱정되는 건가?’이 순간에야 지아는 자신에게 있어 도윤이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제일 아쉬운 것은, 그녀는 분명히 걱정이 됐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지아는 자신이 마치 갇힌 짐승과 같다고 느껴졌다. 그녀는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또 자신의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이런 상황에서 지
불빛에 비친 바다는 마치 포효하는 괴물과 같았다.이 집사는 당시의 상황을 정리했다.“사모님, 저희의 사람들이 접근하기도 전에, 도련님 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불빛 속에서 저는 심지어 총소리까지 들었습니다. 저희는 되도록 빨리 달려갔지만, 상황은 이미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는 방독 마스크를 챙겨오지 않은 데다 화재가 또 너무 심각했고, 심지어 멀리서 저격수까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이 집사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가득했다. 도윤이 생각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조차도 상대방이 이렇게 악독한 수단을 쓸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치명의 타격까지 남겨 도윤 그들에게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그들은 도윤이 산 사람을 원한다는 이 점을 이용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짰고, 오히려 큰 함정을 만들어 도윤이 뛰어들게 했다.심예지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몇 달 전에 상대방이 수백 명의 엘리트 용병을 동원하여 지아를 암살했다고 들었는데, 지금 지아는 이미 출국했고, 상대방은 이렇게 빨리 그녀의 움직임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준비했어.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누구든 아마 일반 사람이 아닐 겁니다. 이번에 저희는 상대방을 너무 얕잡아 보았습니다. 지금은 도련님이 무사하시기를 바랄 수밖에 없죠.”헬리콥터가 공중에서 끊임없이 맴돌고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내려갈 수도 없어 심예지는 그저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조사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조사해. 도대체 누가 감히 내 아들을 건드리려 하는지 한 번 봐야겠어.”심예지는 눈살을 찌푸렸다.“넌 그 잡종을 좀 조사해 봐, 그에게 동기가 있거든.”“알겠습니다, 사모님.”깊은 밤, 호텔의 최고급 스위트룸 테라스에서, 한 사람이 가운을 입고 와인잔에 든 술을 쾌적하게 한 모금 마셨다.‘모든 것을 짓밟고 있는 이런 느낌은 정말 좋다니까.’이씨 집안사람들은 거의 밤새 잠을 자지 못했고, 지아는 더욱 눈을 뜬 채로 하룻밤을 기다렸다.핸드폰은 바
“아버지의 목소리가 여전히 이렇게 우렁차신 것을 보니 저도 안심이 되네요.” 이남수의 목소리가 거실에서 들려왔다. 요 몇 년 동안 그도 몇 차례 방문했지만, 매번 하인들에게 쫓겨났다.그래서 그동안 이남수는 체면 때문에 오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과 달리, 오늘 그는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고, 경호원도 감히 그와 맞서지 못했다.이남수는 어디까지나 어르신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장래에 다시 가문으로 돌아올 수도 있었으니 또 누가 감히 그의 미움을 사겠는가?이번에 이남수는 심지어 임수경과 이유민을 데리고 어르신 앞에 나타났다.지아는 얼마 마시지 않은 그릇을 내려놓고 그 세 사람을 바라보았고, 일시에 자신과 심예지가 우스운 것인지 아니면 이남수 일가가 더 광대 같은 지 몰랐다.그녀가 수저를 내려놓는 것을 보고 심예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좀 더 먹어. 쓰레기 같은 사람들 때문에 영향 받지 말고.”자신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찾아와서 시위를 벌였지만 심예지는 여전히 차분함을 유지했다.지아는 계속 죽을 마셨다. 이것은 이씨 집안의 원한이었기에, 그녀는 그저 도윤에게 시집간 사람일 뿐, 사실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임수경은 손에 정교한 쇼핑백 몇 개를 들고 있었고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아버님, 유민이가 아버님께서 차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 특별히 이 천년 홍차 나무의 산지에 가서 직접 사람들 따는 것을 지켜봤어요. 제가 좀 타 드릴까요?”어르신은 그녀가 건네준 차를 바로 바닥에 세게 던졌다. 지아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아팠는데, 만약 이것이 진정한 천년 홍차라면, 그 가치는 정말 가늠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것은 내연녀가 가져온 것이었기에 지아는 당장이라도 가서 세게 짓밟고 싶었다.“우리 집안에 무슨 좋은 물건이 없다고, 천박한 네가 나서서 내 비위를 맞출 필요가 있겠나? 오랜만이지만 넌 오히려 예전과 다름없이 뻔뻔하구나. 지난번 만났을 때 너에게 말했지, 이씨 집안 며느리는 심예지뿐이고, 이씨 집안의 손자는 이도
그러나 이유민은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르신을 부축하더니 공손하게 말했다.“할아버지,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저를 인정하시든 인정하시지 않든 우리는 같은 피를 가지고 있는 가족이에요.”“그래요, 아버님. 그때 남수 오빠는 확실히 너무 충동적이었어요. 이제 오빠도 잘못을 깨달았고, 오늘 이렇게 찾아온 것도 특별히 아버님에게 사과하러 온 거예요. 그러니 이제 그만 용서해 주세요.”두 모자는 입만 열면 이씨 집안을 언급했고, 미리 준비를 하고 찾아온 게 분명했다.지아도 점차 진정을 되찾았다. 도윤에게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그들이 찾아왔으니 세상에 이런 우연이 또 어딨겠는가?그리고 어르신은 지금 몸이 안 좋아서 그들을 욕할 힘조차 없었다. 이때 줄곧 입을 열지 않던 심예지가 차갑게 말했다.“당신들 귀가 먹은 거야 아니면 멍청한 거야? 어르신 말씀 못 들었어? 이남수, 만약 내가 잘못 기억하지 않았다면, 그때 당신은 이번 생에 다시는 이씨 집안에 발걸음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제 와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다니, 당신 그러고도 남자야?”이남수는 심예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많이 복잡했고 심지어 충격을 받았다.심예지는 요 며칠 줄곧 일부러 그와 맞서고 있었는데, 예전 같으면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심예지는 이남수를 아예 보지도 않았고 몸을 돌려 어르신의 응급약을 가져왔다.이를 본 임수경은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왔다고 생각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언니, 미안해요. 내가 남수 오빠 빼앗았다고 날 미워하고 있는 거, 나도 알아요. 나도 일을 이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단 말이에요. 내가 오빠를 언니에게 돌려줄 테니까 이제 그만 오빠가 집으로 돌아오게 해줘요.”사실 이것은 임수경이 전에 쓰던 흔한 수단이었지만, 하필이면 이남수에게 아주 잘 먹혀 그는 듣자마자 바로 화를 내려 했다.이번에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심예지가 먼저 말했다.“임수경, 당신 정말 정신이 나갔구나? 말끝마다 날 언니라고 부르다니, 나랑 아주 친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