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예지는 지아를 향해 바라보았다.“왜 그래? 어디 불편해?”지아는 손으로 위를 꾹 눌렀고 안색은 많이 괴로웠다.“위가 갑자기 좀 아프네요. 별일 아니에요.”“그럼 앞으로 찬 거 마시지 마. 이따 내가 가정 의사 불러서 검사 좀 해달라고 할게.”지아는 고개를 흔들었다.“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 국내에서 검사받은 지 얼마 안 됐거든요.”“이런저런 검사를 받았다고 해서 위까지 검사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만약 많이 아프면 전문적인 위 검사받아 봐.”심예지가 건의했지만 지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그냥 위장병일 거예요. 커피가 너무 차가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집에 가서 위장약 좀 먹으면 돼요. 이제 할아버님의 생일잔치를 준비해야 하니까 그때 끝나면 다시 디테일한 검사받을게요.”“그래.”심예지는 손을 흔들더니 경호원을 불러 위장약을 사 오라고 시킨 다음 또 지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바꾸어 주었다. 관심을 받는 느낌은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지아는 차츰 심예지를 천천히 받아들였다.두 사람은 점심을 먹으면서 생일잔치의 디테일을 상의했고, 지아는 머뭇거리며 물었다.“어머님, 이번 연회에 그분 초대하실 건가요?”심예지는 단호하게 말했다.“기억해, 앞으로 이씨 가문의 상속자는 단 한 사람 뿐이고, 그 사람이 바로 네 남편 이도윤이지.”“알았어요.”“이따 이 집사에게 초대할 사람들 리스트를 잘 정리해서 너에게 보내라고 할 테니 요 며칠 별일 없으면 일단 재벌 집 사모님들 이름부터 외워. 앞으로 넌 도윤과 함께 가문을 이끌고 나갈 거야.”지아는 거절하려고 했다. 의학을 배우는 것과 이씨 가문을 다스리는 것을 비교하면, 그녀는 차라리 공부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르신과 심예지는 모두 지아에게 가문을 관리하라는 뜻을 보였기에 그녀는 연회가 끝난 후 다시 똑똑히 설명하려 했다.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남수가 임수경의 허리를 안으며 들어왔다.지아는 사실 이남수와 같은 남자가 매우 대단하다고 느꼈다. 수십 년이 지
체면이 꺾이자, 이남수는 화가 좀 났다. 그동안 줄곧 보지 못했는데, 전에 매일 그의 뒤를 따르던 여자가 지금은 뜻밖에도 감히 그에게 눈치를 주다니.그래서 이남수는 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리에 앉았다.“필요 없어, 우리 아는 사이거든.”종업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몇 사람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심예지는 우아하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며 휴지로 입가를 깨끗이 닦더니 더 이상 남자를 상대하기 귀찮아 지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다른 레스토랑에 가자.”“좋아요.”지아는 음식이 나올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서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이 두 사람을 마주하고 밥을 먹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간단히 인사했다.“그럼 이만.”이남수의 표정은 이미 많이 어두워졌고, 지아는 심예지의 팔을 안고 떠났다.“거기 서지 못해!”이남수는 심예지에게서 받은 분노를 지아에게 화풀이했다.“네가 도윤의 아내인 이상, 내 며느리라고 할 수 있는데. 지금 그게 윗사람한테 보일 태도야?”심예지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지아가 갑자기 욕을 먹자, 그녀는 화가 나서 이마에 핏줄까지 나타났다. 막 화를 내려고 할 때,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며느리? 이 선생님 지금 뭘 잘못 기억하신 거 아닌가요?”도윤은 멀리서 걸어오더니 지아를 자신의 품속으로 안았다. 이 모습은 정말 이남수와 똑 닮았는데, 아내를 보호하는 동작까지 똑같았다.이남수도 이미 오랫동안 도윤을 보지 못했다. 비록 전에 몇 번 만난 적이 있었지만, 인상이 가장 깊은 것은 여전히 3살 되던 해에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앳된 도윤의 모습이었다.그때의 이남수는 심예지의 ‘수단’에 짜증이 나서 오히려 도윤에게 화풀이를 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 당시 얼굴에 케이크 가득 묻은 그 아이는 이미 이렇게 많이 컸고, 특히 그 얼굴은 그와 너무 닮았다. 심지어 이유민보다 더 이남수를 닮았다.도윤은 이남수의 생각을
이 말은 도윤이 심예지가 과거에 한 일을 철저히 용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때 심예지는 원래 병에 걸렸던 환자였고, 아픈 몸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으며, 더구나 이 여자는 자신을 낳아준 친어머니이기도 했다.도윤은 기껏해야 서로 보지 않고 그렇게 보내려니 했다. 그러나 심예지가 뜻밖에도 먼저 트라우마에서 걸어 나와 과거를 반성할 줄은 몰랐다. 지아와의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도윤은 그저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잘 보호하고 싶었다.심예지는 조수석에 앉았고, 도윤은 지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앉았다.지아는 웃으며 그를 보았다.“여긴 어쩐 일이야?”“너 데리러 왔어. 방금 배불리 먹지 못했지? 집에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마음속에 자신밖에 없는 남자를 보며 지아는 달콤하게 웃었다.“좋아.”그녀는 도윤과 이남수는 다르다는 심예지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이런 남자라면 날 다치게 하기 않겠지?’경호원이 창문에서 물과 약을 건네자, 도윤은 즉시 지아에게 관심을 돌렸다.“어디 아파?”“너무 긴장하지 마. 방금 차가운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위가 좀 아팠어.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지아는 방금 배불리 먹으려 했지만 이남수 부부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녀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위가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빠르게 약을 복용했다.도윤이 뭔가 생각 있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관찰하자, 지아는 그의 팔을 살짝 밀었다.“괜찮다니까 뭘 그렇게 걱정하는 거야? 어머님 말씀대로 생일잔치 끝나면 위장 검사받으러 가기로 했어.”“정말 괜찮아?” 도윤은 다시 한번 확인했다.“내가 무슨 일 있을 것 같아?”지아는 최근 몇 번이나 위가 아프다고 말했지만, 위장병은 반복적으로 발작하고 심지어 매일 아파도 아주 정상적이었기에 도윤은 전의 아무 일도 없는 검사 결과를 떠올리며 잠시 마음을 놓았다.그리고 사람 시켜 떡을 사 오라고 한 다음, 그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일단 이거 좀 먹고 있어. 곧 집에 도착할
차가 통제력 잃을까 봐 두려워하는 것보다 지아는 마음속으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내리막길로 들어서자, 기사는 최대한 방향을 유지하려고 애썼지만 차의 속도는 순식간에 치솟았다.귓가에 고동치는 바람 소리는 심지어 도윤의 심장박동 소리까지 뒤덮었다.전에 일어난 장면들이 지아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비 오는 밤 미친 듯이 달리는 차, 하늘에서 요란하게 번쩍이는 번개, 그리고 여자의 가슴이 찢어지는 외침 소리.“아!”지아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감쌌고, 머리가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꼈다.“지아야! 두려워하지 마, 내가 있잖아.” 도윤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 지아는 자기도 모르게 도윤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두 눈 꼭 감고 소리쳤다.“너무 무서워, 도윤아, 정말 너무 무서워!”지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마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이상 도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몰랐다.광풍이 세차게 안으로 밀려들자, 지아는 자신의 영혼마저 나갈 것 같았다.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는 뜻밖에도 만신창이로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정신을 차리자, 지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난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왜 오히려 죽고 싶은 거지?’시속은 이미 200km를 돌파했고, 도윤은 지아를 꼭 껴안으며 천천히 위로했다.“괜찮아, 두려워하지 마.”지아는 자신이 진실과 지척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하필 이 시점에 막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기사는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다들 꽉 잡으세요. 대략 10킬로미터 더 가야 완충 분리대에 도착할 겁니다.”이는 결코 긴 도로가 아니었지만, 지금 시간이 1분1초 지나면서 그들은 괴로움을 느꼈고 또 다른 의외의 사고가 나타날까 봐 걱정이 됐다.무릇 맞은편의 차가 선을 넘어 빠른 속도로 달리는 그들과 부딪친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다행히 도윤은 제때에 경찰에 연락을 했기에 이 도로
이런 비싼 차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차조차도 평소에 정비를 했으니 어떻게 갑자기 브레이크가 작동되지 않는 상황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지아는 점차 깨달았다.“지난번에 우리의 아이를 죽이려던 사람인가?”“내 어머니는 그동안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니, 어머니를 겨냥한 확률이 크지 않아. 그리고 내가 갔을 때 타던 그 차에 문제가 없었지만, 유독 네가 탄 이 차만이 사고가 났으니 십중팔구 너와 관련이 있을 거야.”지아는 눈을 부릅떴다.“정말 독한 사람이군.”기억을 잃고 깨어난 후, 지아는 도윤의 사랑과 보호만 듬뿍 받았다. 비록 도윤이 줄곧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오늘 죽음과 어깨를 스치고 나서야 지아는 비로소 실감이 들었다.완충대에 강제로 멈춰 선 차는 이미 변형되었다. 만약 완충하지 않고 직접 딱딱한 물건에 부딪힌다면, 이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들까지 산산조각 날 것이다.지아는 자신의 손바닥을 호되게 꼬집었다.“예전의 나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사람, 정말 없는 거야? 도대체 날 얼마나 싫어하길래 마음을 이토록 모질게 먹을 수 있는 거지?”“지아야, 난 절대로 그 사람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도윤은 두 사람을 집으로 데려갔다. 지아의 기분은 그리 좋지 않아 도윤은 줄곧 인내심을 가지고 그녀를 위로했다.석양이 수평선에서 사라지자, 지아는 마침내 잠이 들었다. 도윤은 그제야 방에서 나왔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심예지가 하얀 돌기둥에 기대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어머니,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요.”심예지는 담배를 끄고 옆에 앉았다.“습관됐어.”“이 시간에 왜 아직 운동하러 가시지 않는 거죠?”심예지는 아주 자율적이라, 만약 특별한 일이 없다면 매일 저녁을 먹는 대신 요가를 하곤 했다.“너 기다리고 있었어.”심예지는 나른하게 의자에 기대었다.“말해봐, 오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다 보셨잖아요?”심예지는 손가락에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네 엄마는 비록 전에 미쳤지만 멍청하진 않아. 우리와 같
심예지는 도윤을 진지하게 바라보다 한참 후,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누가 그 남자 아들 아니랄까 봐, 독한 것까지 똑 닮았어. 넌 그 사이에 예상 밖의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조그마한 착오라도 생기면 차에 탄 사람들 모두 죽을 수 있다고!”“어머니, 제가 지아를 위험에 처하게 내버려 둘 줄 아셨어요? 그 사람은 정말 너무 교활하거든요. 비록 사람은 해외에 있지만 엄청난 능력이 있어요. 매번 내가 알아낸 사람들은 속죄양일 뿐, 그 사람의 종적을 좀처럼 알아낼 수가 없었어요. 그 사람이 잡히지 않는다면 지아는 계속 이런 위험에 빠질 거예요. 그거 아세요? 저는 눈만 감으면 그 두 아이가 떠오르곤 했어요. 그들은 얼마나 어린데, 태어나자마자 호흡이 없어졌고 심지어 지금은 시체조차 찾지 못하고 있죠.”도윤은 먼 곳의 정원을 바라보았다. 나뭇가지 끝의 작은 새가 재잘거리며 자유롭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지만 뒤에 이미 뱀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 기어올라 입을 크게 벌리고 그를 잡아먹을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도윤은 테이블 가장자리를 꽉 잡았다. 아이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지아보다 적지 않았고, 그는 아이와 만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렸다.그러나 이런 결말이 나타날 줄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도윤은 모든 것을 배치했지만 유독 마지막 고비에서 공든 탑이 무너졌다.그는 지아의 정서에 영향을 미칠까 봐 스스로 아이를 잃은 고통을 삼키며 지아 앞에서 조금도 감히 드러내지 못했다. 그러나 깊은 밤이 찾아올 때마다, 도윤은 몸을 뒤척이며, 아이가 지아의 뱃속에 있을 때 찍은 영상을 한 번 또 한 번 바라보았다.길거리에서 유모차 안의 아이를 봐도 그는 잠시 멍을 때렸다. 도윤은 이 원수를 마음 깊이 새겨두었고 하루도 잊은 날이 없었다.이번에 그 사람이 다시 손을 쓴 이상, 도윤은 재삼 고민한 끝에 이번 계획을 짰다. 그 사람이 이토록 경계하는 이상, 그가 파견한 사람도 틀림없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며, 조심성이 매우 강할 것이다.도윤은 망설임 끝
심예지는 방 문을 밀었고, 침대 위의 지아가 두 눈 꼭 감고 누워있는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정말 불쌍한 아이구나.”도윤은 그녀와 이남수의 고집을 그대로 물려받았는데,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대체 행운인지 불행인지 모른다.“안 돼!”지아는 악몽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도윤이 아니라 심예지가 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온몸에 땀을 뻘뻘 흘리는 자신이 추태를 보였다고 생각했다.“어머님.”“얘야, 나야. 네가 괜찮은 지 보러 왔는데, 좀 어때?”“괜찮아요.” 지아는 머리를 감쌌다.“악몽을 꾼 것뿐이에요.”“무슨 꿈이지?”구체적으로 어떤 꿈인지는 지아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녀는 단지 그 꿈이 매우 혼란스럽고 또 피비린내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 사람들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자신의 얼굴에 튄 그 사람의 피는 무척 따뜻했고, 마치 그녀 스스로 경험한 것처럼 실감이 났다. 바닥에 이리저리 쓰러진 그 사람들은 피가 빗물에 섞여 온 바닥을 어지럽혔으니 만약 정말 발생한 일이라면, 그 현장은 또 얼마나 참혹할까?지금 이 순간, 지아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잊어버렸어요. 아무튼 끔찍하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나요.”그녀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심예지는 지아를 위로했다.“A시에서 고양이 한 마리 키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사람 시켜 이곳으로 데려오라고 할게. 이국의 땅에서 자신이 키우던 애완동물을 보면 기분이 좀 좋아질 거야.”“고마워요, 어머님.”심예지에 대한 호감이 점차 많아지면서 지아는 그녀가 무척 섬세한 사람이란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런 남자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르렀다니, 지아는 사뭇 안타까움을 느꼈다.“하…….”지아는 자신의 위를 감쌌다. 오후 내내 공포에 잠겨 그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기에 지금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고 무척 아팠다.“또 위가 아픈 거야?”“네, 배가 좀 고프네요.”“먹을 거 가져오라
“대표님, 방금 문자 받았는데 이제 들어가면 된답니다! 제가 이 망할 자식을 잡아올 테니 앉아서 기다리시죠.” 진봉은 흥분해하며 즉시 사람들 데리고 안으로 돌진했다.오늘의 일은 분명히 그가 세심하게 짠 계획이었지만, 도윤은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진봉이 씩씩하게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윤은 심지어 은근히 후회하기 시작했다.도윤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진봉을 부르려고 했다.염경훈은 몇 달 전 다리와 발을 다쳤는데, 비록 상태가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지금은 이런 행동에 참여하기 불편했다.도윤의 표정이 좀 이상한 것을 보고 그는 즉시 물었다.“왜 그러십니까, 대표님?”“느낌이 별로 좋지 않아.”“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 진환은 줄곧 실수를 하지 않은 데다, 오늘은 대표님께서 직접 나서셨으니 아무 문제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상대방도 단 한 사람뿐이죠.”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전에 그 사람 번화가에서 한참 동안 돌고 나서야 이곳에 온 거 아니었어? 만약 진작에 매복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독 안에 든 쥐가 우리라는 말씀이십니까?”도윤은 이 근처를 힐끗 둘러보았는데,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그럴 가능성이 있으니 진환더러 먼저 철수하라고 해.”도윤의 예감은 줄곧 틀린 적이 없었고 심지어 지금까지 그를 여러 번 구해주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염경훈은 줄곧 도윤의 판단을 믿었기에 즉시 진환과 진봉에게 사람들 데리고 철수하라고 알려주었다.문자가 발송되자마자, 앞의 버려진 창고에서 갑자기 귀청이 터질 듯한 폭파 소리가 터져 나왔다.아직 들어가지 않은 진봉은 갑자기 터져 나온 화염에 휩싸였고, 그는 바닥에 엎드려 창고를 향해 소리쳤다.“형!”아무도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지만, 도윤은 확실히 틀리지 않았다. 그들은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불길이 번지기 시작하자, 주변에도 불꽃이 튀더니 연달아 폭발하기 시작했다.“대표님, 매복
소임호는 눈앞의 광기 어린 조경선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조경선, 그동안 정말 행복했니? 그렇게 애써 계획해서 네가 얻은 건 뭐지?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우리는 모두 패배자라고!” “틀렸어.”조경숙이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그 당시의 나는 얼굴도 망가지고, 족보에서 제명되고, 가족들에게도 내쳐졌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데, 조경숙은 왜 모든 걸 가져야 해? 시골에서 돌아온 한낱 촌뜨기가 어떻게 나를 대신할 수 있었냐고!” “그래, 난 패배자야. 하지만 너희도 내 시체 위에 서서 잘난 척할 수는 없을걸? 우리 두 쪽 다 망가지는 게 내 승리니까!” 조경선이 고개를 숙여 소임호를 살펴보며 말했다.“당신 꼴을 좀 봐. 떠돌이 개랑 다를 게 뭐야? 참 안쓰럽지만, 이건 시작일 뿐이야.”“곧 소씨 가문은 완전히 망가질 거야. 나는 당신을, 그리고 소씨 가문을 반드시 파멸시키고 말 거야!” “너 정말 미쳤구나.”“그래, 난 미쳤어.”“하지만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젠 내가 겪었던 고통을 당신이 똑똑히 느껴야 할 차례야. 당신도 알겠지만,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경숙은 이제 심세호의 여자가 됐어. 정말 가슴 아프지 않아?” “참, 그건 모르지? 소씨 가문의 노친네는 이미 죽었고, 당신 아들들도 곧 당신과 함께 무덤으로 갈 거야!” “조경선, 너는 진짜 인간 말종이야!” 소임호는 극도로 분노하며 몸부림쳤고, 쇠사슬은 그의 몸부림으로 인해 요란하게 울렸다.하지만 조경선은 소임호의 턱을 잡고 비웃으며 말했다. “왜, 불만이야? 그럼 나한테 빌어봐. 그러면 그 자식들한테 고통 없는 죽음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꿈 깨.”소임호가 냉소하며 말했다.“죽어도 너한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당신을 죽게 두지는 않을 테니까. 당신이 죽으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처참히 망가지는지 보여줄 수 없잖아. 당신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할 거고,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조경숙은 눈이 멀어 다른 남
여자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넌 먼저 돌아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 당분간 티 내지 말고 조용히 있어.” “알겠어요.”시월은 갑자기 한 가지 일이 떠올라 물었다.“맞다, 아빠는 어떻게 됐어요?” 그 말을 들은 여자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흥, 끝까지 고집불통인 쓰레기 같은 남자. 내가 겪은 교통을 천배, 만 배로 되돌려줄 거야!” 시월의 얼굴에 찰나의 망설임이 스쳐 지나갔다.“엄마, 이제 그만하면 안 돼요? 우리는 그동안 아빠가 가족도 잃게 하고, 집안도 망가지게 했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 꿈 깨! 이건 그 사람이 나한테 진 빚이라고!” 여자가 소시월의 옷깃을 꽉 잡으며 으르렁거렸다.“경고하는데, 나는 네 어미야. 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나는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 “엄마, 알겠어요, 나는 엄마의 딸이니까 당연히 엄마 편이에요.” 소시월은 여자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벗어나 두려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그 여자의 정서는 점점 더 불안정해졌다.사실, 그녀의 얼굴도 치료를 통해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집착이 너무도 강한 그녀는 치료를 거부했다. “이 고통을 평생 기억하면서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한테 천 배, 만 배로 돌려줄 거야!!” 여자는 평생을 복수 계획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하지만 소시월이 보기에, 복수를 이루더라도 그녀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을 것이었다. 소씨 가문은 지금 엉망진창이 되었기에, 소시월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소시월이 떠난 후, 여자는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 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는데, 여자가 자신의 지문을 입력하자, 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서서히 열렸다. 여자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어갔고,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는 손과 발이 묶인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여자는 그를 향해 다가가며 광기 어린 집착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소임호
소지훈이 폭로한 충격적인 사실은 소씨 가문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아에게도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출생 비밀을 찾아 헤매던 지아는,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중에 스스로 이야기의 중심인물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소씨 가문 사람들의 고충에 공감했던 지아는 이제 그들이 자기 혈육임을 알게 되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천천히 미끄러졌고, 무릎을 꿇고 앉은 채 계속해서 눈물을 흘렸다. “아빠, 엄마, 그리고 오빠들이...” 하지만 더욱 지아를 견딜 수 없게 한 것은 예전에 마주했던 그 시신이 자기 친언니였다는 사실이었다. ‘시영 언니는 너무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어.’ ‘심지어 나는 그걸 전혀 몰랐고, 언니의 마지막 가는 길조차 배웅하지 못했어...’ 지아는 너무 큰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지아야!”도윤은 지아를 안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침대에 누운 채 찡그린 표정을 한 지아를 보며 도윤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 ‘지아는 이미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어. 그런데 간절히 바랐던 가족마저 이런 모습으로 드러나다니.’ 무무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지아의 곁을 지켰다.도윤은 무무를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엄마는 괜찮을 거야. 그냥 과로한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아 기절한 것뿐이거든.” 한편, 소씨 가문의 황당한 해프닝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으며, 소영수의 장례식은 결국 소씨 가문 사람들의 싸움의 장이 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소지훈이 이긴 듯 보였으나, 사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은 체면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시월은 마음이 조급해졌고, 해가 뜨기도 전에 황급히 차를 몰아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 건물 꼭대기에는 까마귀들이 앉아 있었다.‘까악까악’ 울음소리가 밤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섬뜩하게 들렸다. 장미 덩굴은 낡은 담벼락 위로 기어오르며, 삭막하고 부패한 세상에 한 줄기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자, 햇살이 어둠을 찢으며 온 세상의
시하와 시언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모두 완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는데, 도무지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는 듯했다. 심지어 소시월조차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이걸... 오빠들은 알고 있었어?” 두 사람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어.” 소시월은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내 계획이 성공하려던 찰나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어. 절대 다른 사람이 내 계획을 망치게 둘 순 없어!’“단지 사진 한 장으로 뭘 증명한다는 거죠? 아빠와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고, 아빠는 비행기 사고로 시신조차 찾지 못했어요. 두 사람의 친자확인도 없이, 대체 무슨 증거를 내놓겠다는 거냐고요!” “이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했던 혈액형 검사야. 두 분은 모두 O형이야. 즉, 두 분은 O형의 자녀만 낳을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당신들 아버지는 B형이었어. 혈액형에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아주 적다는 건 알고 있겠지? 과연 당신들 아버지가 그 예외일까?” 소지훈은 다시 다른 사진을 꺼냈다.“혈액형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고.”“이건 할아버지의 여러 아들들 사진이야. 우리 아버지와 삼촌, 작은삼촌은 할아버지와 60% 이상 닮았지만, 네 아버지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지아는 소임호의 실물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형 스크린에 비춰진 소임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지아는 이성을 잃고 도윤의 손을 꽉 잡았다.“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 “많이 본 정도가 아니라, 완전 똑같아!” 두 사람의 대화는 오직 서로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임호가 부남진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부남진은 나이가 들어 얼굴이 많이 변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그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는 분명히 부남진의 젊은 시절을 그대로 닮은 모습이었다. “설마...”지아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자신이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진실이 이렇게 갑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시언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분노를 참지 못했는데, 그의 손이 여전히 멀쩡했다면, 지금쯤 소지훈의 뺨을 때렸을 것이었다. 시월과 심장후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아는 도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지? 저 사람이 한 말이 사실이야?” 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지아의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방금 들은 소식인데, 이 사진 속 사람을 한 번 봐봐.” 도윤은 핸드폰 속 사진을 열어 서른쯤의 매혹적인 여성을 지아에게 보여주었다. 지아는 그녀의 눈가에 있는 검은 점을 보자마자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할머니잖아!” 흑백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환희의 모습이 컬러로, 게다가 훨씬 선명한 화질로 나타난 것이었다. “맞아.”지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혹시 할머니의 행방을 알아낸 거야?” 도윤이 논쟁으로 가득 찬 현장을 보며 말했다.“아마 저 사람들이 답을 줄지도 몰라.” 소지훈의 폭로는 현장을 술렁이게 했다.“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지훈 도련님께서 파문을 일으킬 만한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요?” “당연하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도 이런 자리에서 저런 말을 할 순 없으니까요!” “어머, 정말 흥미진진한데요?”시월은 마음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오빠, 시언 오빠와 오해가 있는 건 알지만, 그런 거짓말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은 할아버지를 배웅해 드리는 날인데,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고요.” “할아버지? 허, 네가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거야?” “오빠, 적당히 좀 하세요!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웃기지도 않는다고요!” “웃기는 건 너희 같은 잡종들이지!”소지훈이 손뼉을 치며 준비된 프로젝터를 가리켰다.“여러분, 죄송합니다만, 이 자리에서 모든 이야기를 공개하고, 소씨 가문의 족보를 깨끗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죽어서도 소씨 가문에 매달리려는 사람이 없도록 말이죠!” “도대체 숨
밤이 깊어지자, Z국에서 전통적인 가족 고별 의식이 시작되었다.지아는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섞여 소씨 가문의 방대한 자손들과 그들의 복잡한 계보를 바라보았다. 소영수의 직계 자손들 외에도 그의 둘째 동생과 셋째 동생 등의 곁가지 후손들까지 합쳐져, 효성과 의리를 다하는 자식들과 손주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별 의식은 곧 시작될 예정이었다.첫 번째로 향을 올리는 순서는 원래 장남의 몫이었지만, 장남이 사고를 당하면서 그 역할은 둘째에게 넘어갔다. 다른 자손들도 각자 자신의 향을 챙기러 움직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언과 시하를 대신해 시월이 나서서 향을 가지러 갔다. 하지만 소시월이 향에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 냉랭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소지훈이었다.“오늘은 가족을 위한 작별의 자리야. 미안하지만, 너는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시언이 즉각 반응했다.“소지훈, 적당히 좀 하지 그래? 여긴 할아버지의 영정이 모셔진 자리야. 할아버지께서 편히 눈감지도 못하게 할 작정이야?” ‘예전의 작은 다툼은 다 넘어갈 수 있어. 하지만 오늘처럼 외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저렇게 무례한 말을 하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시하는 상대적으로 차분해 보였지만, 그는 이 상황이 단순하지 않음을 직감했다. ‘연예계에서 단련된 소지훈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저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뭔가 계획이 있는 게 분명해.’ 시하가 둘째 삼촌인 소상현을 바라보았다. 소상현은 아들의 죽음으로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소명담의 시신이 발굴되었을 때, 소상현은 자기 친아들이 이토록 오래전에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백발의 노인이 흑발의 자식을 보내는 고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소상현은 소지훈의 말을 듣고도 아무 말 없이 공허한 눈빛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때, 입을 연 사람은 소상현의 부인인 오연희였다.“시언아, 너무 흥분하는 거 아니니
지아는 물 한 잔을 건네며 시언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는데,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스파이가 누구라는 거예요?” “방금 떠난 사람은 소지훈이에요. 지금은 연예계에서 활동 중인 사람인데, 우리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이고, 얼마 전에 죽은 소명담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동안 큰형이 다른 사람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우리가 모두 한 핏줄이고, 소씨 가문의 번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가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에요.”“누가 감히 가족이 자기 가문을 망가뜨리려 한다고 생각했겠어요?”“그런데 이젠 확실히 알겠어요. 저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한테 원한을 품고 있었던 거라고요.” 지아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어르신은 왜 편애하셨던 걸까요?” “원래 황제는 장남을 사랑하는 법이잖아요. 우리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첫 번째 아이여서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각별히 아끼셨어요. 어쩌면 과도한 애정을 쏟는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손자들인 저와 형제들에게도 각별히 대해주셨어요. 사촌들과 다툴 때마다 늘 우리 편을 드셨으니까요. 하지만 그 작은 편애가 쌓여 그 사람들의 원한이 된 거예요.” 지아가 시언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읽으며 말했다.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사연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저 사람이 소씨 가문을 해치려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왜죠?”“세상에 자기 이마에 나쁜 사람이라는 글자를 써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상대는 10년, 20년을 준비했잖아요. 저 사람보다 더 차분하고 계획적인 사람일 거예요. 소지훈 씨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꾸몄을 리 없어요.” “그 말도 일리가 있네요. 그럼...”지아의 표정은 여전히 깊은 뜻을 품고 있었다.“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이미 체스판 위의 말이 된 거예요. 판은 이미 시작되었고요.” 지아의 위로에 시언의 감정도 점차 안정되었다. “대체 우리 큰형과 무슨 계획을 꾸미는 겁니까?” “아무것도 하지
시언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둘째 삼촌의 막내아들인 소지훈이 서 있었다.몇 년 사이, 예전의 어린 철부지는 이제 연예계에서 가장 뜨거운 스타로 떠올라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과거 얽힌 사연도 적지 않았다. 어린 시절, 시언은 1년의 세월을 들여 목각으로 ‘행려풍속도’를 복원했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난 것은 방대한 작업을 간신히 완성했을 무렵이었다. 그것은 바로 시언보다 열 살이나 어린 소지훈이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 정신없이 놀다가 실수로 작품을 망가뜨린 것.이는 대회 출품을 목표로 하던 시언에게 큰 충격이었고, 그는 동생을 가차 없이 혼내며 매질하고 말았다.두 사람 모두 소영수 내외의 후손들이지만, 둘째 집과 셋째 집은 어릴 적부터 소영수가 장남을 더 편애한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그들의 자식들까지도 소영수에 눈에 들지 못하고, 늘 냉대를 받으며 자랐다. 가문의 중심인 소영수는 이 일에 분노하며 소지훈의 손바닥을 피가 날 정도로 때린 뒤, 그를 사당에 무릎 꿇게 하며 삼 일 밤낮으로 벌을 주었다. 이 사건은 어린 소지훈의 마음에 깊은 원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후 시언이 이성을 되찾고 사과했지만, 소지훈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가문의 둘째와 셋째는 사이가 좋았지만, 유독 첫째인 소임호와는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장 불운한 이는 넷째였다. 그는 심예지와 청소년기를 함께 보냈지만 버림받았고, 그로 인해 사랑에 상처받아 결혼하지 않고 홀로 지내며 자손마저 두지 못했다. 시언이 소지훈의 눈에 담긴 냉소를 보며 말했다.“할아버지께서 생전에 똑똑히 말씀하셨을 텐데? 소씨 가문은 흥망을 같이해야 한다고. 소씨 가문이 이렇게 어려움에 부닥친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니?” 소지훈은 고개를 숙이고 시언의 옷깃을 잡았다.“그거 알아요? 나는 당신 집안이 너무 싫어요. 항상 체면을 차리려는 모습은 역겨울 정도라고요.”“허, 할아버지한테 대체 무슨 마법을 걸었길래 당신들만 그렇게 아낀 거예요? 우리도 분명 소씨 가문 사람이었는데... 지금이라
도윤은 음윤한 심장후에 비해 훨씬 키가 크고 건장한 체격을 자랑해서, 두 사람이 함께 서 있을 때는 대비가 확연했다.한 사람은 강인하고 압도적인 기운을 풍기고, 다른 한 사람은 부드럽고 우아한 매력을 가진 극과 극의 존재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도윤은 시선으로 심장후를 가볍게 스치고 난 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형님, 제 약혼녀인 소시월입니다.”심장후가 소개했다.“반갑습니다.”도윤의 시선이 닿는 소시월의 얼굴에는 지아와 약간 닮은 점이 있었다. 그 순간, 시월의 눈동자에 긴장이 스쳤고,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그렇습니까? 저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으신 거죠?”도윤의 질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했지만, 그 속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특유의 위엄과 탐색이 깃들어 있었다. 게다가 도윤은 소시월보다 훨씬 키가 컸기에, 그녀를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압도적인 아우라가 느껴졌다.소시월은 마음을 다잡고 답했다.“이 대표님께서 비즈니스계에서 쌓으신 명성은 제가 Z국에 있을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이번 기회를 통해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비즈니스에 있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이제 한 가족이 될 텐데, 앞으로도 많은 지도와 조언 부탁드리겠습니다.” 소시월의 답변은 빈틈이 없었고, 흠잡을 곳도 없었다.“좋습니다.”도윤은 시선을 돌리고 심규철과 함께 다른 친척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옮겼다. 소시월은 극도로 긴장했던 마음을 그제야 풀었지만, 찰나의 눈 맞춤에도 온몸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눈빛이 정말 무서웠어. 한 번이라도 나를 더 쳐다봤다면 숨통이 막혔을 것 같다니까?’‘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카리스마 넘쳤어.’“괜찮아?”심장후가 소시월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물었다. 소시월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괜찮아, 손님들이 또 많이 온 것 같던데, 나 먼저 가볼게.”“너무 무리하지는 마.” 소영수는 장례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