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은 지아의 말을 그다지 믿지 않았다. 만약 병원에 가는 것뿐이었다면, 지아는 굳이 한밤중에 떠날 필요가 있었을까?그러나 이예린의 일은 그로 하여금 지아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도윤은 이미 전처럼 지아를 거칠게 대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지아 곁으로 걸어간 다음 부드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왜 한밤중에 집에서 나온 거야? 경호원까지 따돌리고. 그러다 위험에 부딪히면 어쩌려고? 내가 말했잖아, 밖은 아직 위험하니까 어딜 가던 경호원 데리고 있으라고.”지아가 소시후의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니 도윤도 지아의 불만을 불러일으킬까 봐 더 이상 물어보지 못했다.“잠이 안 와서 나왔어.”도윤은 자신의 손등을 만지며 지아를 떠보았다.“소시후의 차에 올랐다고 들었는데, 그와 친한 사이야?”“아니. 단지 우리의 모두 성이 소씨이기 때문이야. 게다가 난 그를 구한 적이 있어서. 마침 그도 병원에 가는 길이라 날 태워줬을 뿐이야.”지아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말했다.“너 어젯밤에 독충의 기지에 갔다며? 뭐 좀 알아냈어?”지아의 눈빛은 도윤의 그 잘생긴 얼굴에 떨어졌는데, 이는 그녀가 도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도윤은 대답을 하려 했지만, 머릿속에는 이예린의 그 상처투성이로 된 팔이 떠올랐다.그는 아직 이 일을 처리할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적어도 도윤은 지아를 다치게 하지 않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그러나 도윤은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다. 그가 지아에게 모든 사실을 숨기기로 결정했을 때, 이것이 바로 그녀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상처란 것을.“한 고성에 찾아갔는데, 그곳은 현재 독충의 비밀 기지야.”지아는 도윤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표정을 조금도 놓치지 않았다.“그래? 뭘 발견했는데?”“그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몰래 찾아갔는데, 확실히 아주 큰 정보를 얻었어. 독충으로부터 많은 비밀 연구 개발 자료를 복사했거든. 이미 기술부에 넘겨 처리하라고 했어.”“자료 말고, 다른 사람 못 봤어?”도윤은
도윤은 지아의 몸에서 나는 차가운 기운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는 강제적으로 그녀를 데려갈 수 있었다.그러나 이런저런 일들이 발생한 후, 도윤은 그저 전의 잘못을 메우고 싶었고, 심한 말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차가운 눈빛조차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지아야, 그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발생해서 네 기분이 나쁘다는 거, 나도 잘 알아. 안심해. 난 가능한 한 빨리 네 아버지를 구해올 테니까 그는 괜찮을 거야.”지아는 도윤을 등진 채 계속 냉담한 말투로 말했다.“우리 아빠를 찾아오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거야? 그 주모자를 찾지 않으면 돌아와도 다시 다른 사람에 의해 죽겠지. 전에 나 대신 조사해 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언제 결과를 알려줄 거야?”만약 예전의 도윤이라면 단호하게 지아에게 말할 수 있었지만, 이 순간 그는 아무런 저력이 없었다.그는 지아에게 그녀의 가족을 다치게 한 것은 자신의 친여동생이란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예린을 포기해?’그러나 이예린은 도윤의 가족이었다. 어릴 때부터 애지중지하게 여긴, 그것도 그동안 줄곧 헤어져 가까스로 찾은 그의 친여동생이었다.도윤은 지아에게 모든 것을 밝히고 싶었지만, 지금은 적어도 이 모든 일의 자초지종에 대해 알고 싶었다.그는 마른 입술을 핥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지아야, 이 일은 네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내가 너와 약속했으니 당연히 잘 조사할 거야. 그러니까 우선 조급해하지 말고 나와 함께 집에 가서 푹 쉬어.”지아는 코웃음을 쳤다.“나 요 며칠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아. 우리 엄마와 함께 있을 거야.”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을 보고, 도윤은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기에 계속 여기에 남아 지아와 함께 있을 수 없었다.도윤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두 사람의 컨디션이 모두 좋지 않았기에 계속 대화하는 건 좀 위험했다.“여기에 남아있어도 되지만 진봉을 곁에 두고 있어. 무슨 돌발 상
만약 전에는 단지 추측일 뿐이었다면, 지금 도윤은 이미 이예린의 정체를 완전히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이 일의 모든 전말을 안 이상, 지아는 피해자로서 사건의 진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었다.도윤은 눈을 뜨지 않았다.“아직은 안 돼. 예린이가 최근 몇 년 간 많은 일을 겪은 것 같아.”진환은 그를 쳐다보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대표님,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지만, 이 2년 동안 대표님과 사모님의 사이는 배신과 오해로 가득했습니다. 작은 아가씨의 경력 때문에 대표님은 마음 아파하실 수도, 또 아가씨가 밖에서 고난을 겪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은 모두 사모님을 다치게 하는 이유로 될 순 없습니다. 이는 이씨 집안이 사모님에게 빚진 것이니까요.”도윤은 갑자기 눈을 뜨더니 백미러를 통해 진환과 눈을 마주쳤다.“그럼, 지아 대신 복수하기 위해 내가 예린이를 죽일까? 예린이가 수백 번 수천 번 죽어도 이미 발생한 그 어떤 일도 바꿀 수 없어.”진환은 입을 벌렸지만 결국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는 일이 지금 이 지경으로 된 이상, 무엇을 해도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진환은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피해자인 지아가 이 모든 것을 알았다면, 얼마나 큰 절망을 느낄까.도윤은 분명히 그녀를 사랑했지만, 이것은 확실히 마땅한 방법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면 지아는 점점 도윤을 멀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대표님, 이 일은 잘 처리하셔야 합니다.”진환은 이 말을 마친 후,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는 그가 도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충고였다.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이미 늦었을 것이다.도윤은 마음이 더욱 초조해졌다.“너와 내가 말하지 않는 한, 그녀는 모를 거야.”‘앞으로 기회가 많으니, 지아를 잘 위로하면 돼. 그녀에게 빚진 거, 천천히 갚아주자.’“독충 이쪽의 일은 속도 좀 내. 예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최대한 빨리 알아내고. 참. 아저씨 쪽은 아직 소식이 없는 거야?”“아직입니다.”도윤은
진수련은 백정일의 표정을 감상하며 미소를 지었다.“내가 약을 먹고 일부러 죽은 척했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왜?”백정일은 충격을 받았다.“왜 죽은 척을 한 거지? 요 몇 년 동안 당신은 또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독충과 관계가 있는 거야?”정정한 얼굴을 한 남자를 보고 진수련은 가볍게 웃었다.“당신은 여전히 예전처럼 쉽게 넘어오는군요.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도 어쩜 조금도 달라진 게 없는 거죠?”“무슨 뜻이지?”진수련은 천천히 일어나 손가락으로 백정일의 볼을 쓰다듬었다.“백정일, 당신 그거 알아요? 내가 오늘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그녀가 말할수록 백정일은 더욱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예전의 그 상냥한 여자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몰랐다.“난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채원이 교통사고 당한 거, 당신이 한 짓이지?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그녀는 당신 친딸이잖아!”“친딸?”진수련은 코웃음을 쳤다.“백정일, 우리 사이에는 확실히 아이가 하나 있었지만 그 아이는 이미 죽었어요.”백정일은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이 일을 모르는 것 같았다.“뭐라고?”“훗, 가끔 난 정말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평생 변진희 외에는 아무것도 개의치 않았으니까.”진수련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당신은 아마 30년 전에 전쟁터에서 구한 그 소녀를 벌써 잊었을 거예요.”백정일은 젊었을 때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적지 않은 전쟁터에 나갔는데, 그가 구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에 그는 확실히 아무런 인상도 없었다.그러나 백정일은 몰랐다. 그때부터 진수련이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을.그와 변진희는 어릴 때부터 죽마고우였는데,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변진희 한 사람밖에 없었다.그 후, 한 전투에서 백정일은 실종되었고, 사람들은 모두 그가 죽은 줄 알았다.진수련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구했는데, 그녀의 세심한 보살핌에 백정일은 드디어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그의 머리는 폭발로 인해 잠시 기억을 잃었
“당신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당신을 원망하지 않았어요. 나는 항상 시간이 지나면 당신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날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었거든요.”“날 무시해도 상관없어요. 난 아이를 잘 키울 계획이었으니까요. 우리는 한 가족이니 당신도 틀림없이 이 아이를 사랑하게 될 거예요.”“그러나 아이의 숨결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때, 난 당신이 미웠어요! 당신의 매정함이 미웠다고요. 당신은 어쩜 이렇게 잔인한 거죠? 차라리 모든 사랑을 그 천한 여자에게 줄지언정, 나와 아이에게 조금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다니. 그래서 나는 당신을 평생 후회하게 만드리라 속으로 맹세했어요!”여기까지 말하자, 진수련은 눈에 독기를 품었다.“후에 난 변진희가 임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난 아이를 잃었는데, 그녀는 대체 무슨 자격으로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과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나는 이 모든 것을 계획했고, 그녀가 아이를 낳은 후 그 아이를 훔쳐왔어요.”백정일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그 아이가 바로…… 채원이야!”“맞아요, 당신은 그 천한 년을 그렇게 사랑했잖아요?”진수련은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러나 난 당신을 너무 높게 봤어요. 그 아이는 우리 아이보다 훨씬 어렸지만, 당신은 뜻밖에도 의심한 적이 없었더군요. 하긴, 내 아이였으니 당신이 또 무슨 관심을 하겠어요?”“그래서 나는 백채원에게 엄청 잘해 주었죠. 그리고 일부러 백채원이 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에게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어요. 증오는 마치 씨앗과 같죠. 마음속에서 뿌리를 내리면 싹을 틔울 때까지 기다리면 되거든요.”“나는 밤낮으로 백채원의 마음에 심은 증오의 씨앗에 물을 주었고, 그녀가 무사히 자라도록 보호했어요. 그리고 그녀가 당신과 변진희에 대해 원한을 품었을 즈음에, 난 죽는 척을 했던 거예요. 내가 예상한 바와 같이, 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당신은 기다릴 수 없단 듯이 변진희와 결혼을 했죠.”백정일은 어색함에 얼굴이
진수련은 모든 진실을 털어놓았고, 잔혹한 현실은 직접 백정일의 뺨을 내리쳤으며 백정일은 일시에 절망을 느꼈다.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시간이 전혀 없었다. 가슴은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마치 바람을 넣은 큰 풍선처럼 곧 폭발할 것 같았다.“당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어?” 그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변했고, 목소리는 더욱 차가웠다.“아직은 부족하죠. 난 당신에게 두 번째 큰 선물까지 준비했으니, 잘 즐겨봐요.”진수련은 간드러진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아요? 당신이 변진희와 사랑을 속삭이는 매일 밤, 나는 벌레가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는 것만 같았어요! 이런 고통, 당신도 천천히 느껴봐요.”말이 끝나자 진수련은 다리를 번쩍 들고 백정일의 배를 향해 세게 차더니 쉽게 그의 통제에서 벗어났다.백정일이 배를 안고 일어설 때, 그녀는 이미 3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백정일, 난 이미 예전의 그 당신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바보가 아니에요.”진수련은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함이 묻어났지만, 눈 밑에는 미친 기색이 역력했다.“난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하나하나 죽는 것을 지켜볼 거예요!”백정일이 급히 병원에 도착했을 때, 백채원은 확실히 이미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만 의사는 방금 그녀에게 신체검사를 해주었다.비록 백채원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변진희의 친딸인데다 자신이 그동안 키웠으니 백정일은 여전히 좀 걱정이 됐다.“의사 선생님, 내 딸은 어떻게 됐어요?”의사는 고개를 저었다.“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요. 온몸 여러 곳에 분쇄성 골절이 있는데다 장기가 손상되어 바이탈이 약하네요. 비록 잠시 생명의 위험은 없지만, 지금 엄청 취약해서 휴식을 취해야 해요.”“그럼 골수를 이식하는 건…….”백정일은 단지 이 얘기를 꺼냈을 뿐이지만 의사는 바삐 고개를 저었다.“골수 이식이요? 그건 안 돼요, 아가씨는 이미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또 그녀의 골수를 뽑을 수 있겠어요?
입구에 서서 아직 들어가지 않은 소지아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그저 웃기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도대체 어떤 집안으로 시집을 간 거야?’백정일 말고 진심으로 변진희를 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니.전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어르신을 모셨지만, 그는 오히려 그녀를 가족으로 여기지 않았다.결국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은 백정일일 뿐이었다. 만약 그가 백채원의 목숨으로 변진희을 살린다면, 변진희는 깨어난 후 절대로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하물며 백정일은 어렸을 때부터 백채원을 키웠고, 이미 그녀를 자신의 친딸로 여겼다.그러니 그는 대체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아무리 선택해도 결과는 고통스러웠고, 백정일 역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다.이때 간호사가 달려왔다.“변 사모님 가족분들 맞죠? 환자분 이미 깨어났는데, 지금 가족분들 만나고 싶어해요.”백정일은 즉시 고개를 돌려 간호사를 따라갔고 지아도 재빨리 따라갔다.주치의가 입구에 서서 당부했다.“환자분의 뜻에 따르면 지금 중환자실에서 나와 남은 시간을 가족분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네요. 물론 결정권은 가족분들에게 있죠.”중환자실에서는 병문안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번 응급처치를 할 때마다 변진희의 몸에 엄청난 상처를 입혔다. 아무튼 그 안에 있으면 무척 괴로웠다.이런 방식으로 구해낸 환자도 오래 살진 못했다.백정일은 지아를 바라보았고, 지아는 슬픔에 잠긴 남자를 부축하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엄마의 뜻대로 해요.”변진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기에 지아는 적어도 그녀가 편하게 떠났으면 했다.이때 변진희가 밀려나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는 엄청 수척해졌고, 얼굴은 손바닥의 크기밖에 되지 않았다.비록 그녀는 많이 아파보였지만,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진희야, 많이 고생했지.”“엄마.”지아도 변진희의 이런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유난히 괴로웠고, 전의 원한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그녀는 몹시 아팠지만, 아직 백채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
결국 백정일은 변진희의 퇴원 수속을 밟았고, 집에 가서 요리까지 했다. 변진희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는데, 몸은 매우 허약했다.그녀는 백채원에게 전화를 한 번 또 한 번 걸었고, 지금까지도 시종 백채원을 걱정하고 있었다.백정일은 변진희가 슬퍼하지 않도록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이번 생에 그녀는 이미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했으니, 백정일은 변진희가 아쉬움을 안고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상관하지 마. 그 계집애는 원래 제멋대로여서 며칠 있다 집에 돌아올지도 몰라.”“하긴.”변진희는 백채원이 자신을 여전히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뿐, 더 이상 강요하지 않았다.식사하는 동안, 변진희는 이도윤에게 백채원은 아주 좋은 여자이니 앞으로 반드시 백채원에게 잘해줘야 하고 또 백채원에게 상처를 주지 말라고 끊임없이 당부했다.도윤도 차가운 기운을 거두고 일일이 승낙했다.비록 백채원이 없었지만, 변진희는 여전히 매우 즐거웠고, 심지어 술을 두 잔 마셨는데, 얼굴은 이미 새빨개졌다.그녀는 지아더러 자신과 함께 노을을 보러 가자고 했고, 보는 내내 그녀의 입은 쉬지 않았다.“지아야, 만약 내가 오늘처럼 될 줄 알았다면, 난 전에 너와 함께 있었던 모든 시간을 소중히 여겼을 거야. 나중에 네 아버지가 깨어나면, 나 대신 미안하다는 말 좀 전해줘. 내가 그의 마음을 저버렸거든.”“네.”“엄마는 진심으로 네가 행복을 얻을 수 있길 바라거든. 그러니 더 이상 채원이가 도윤을 빼앗은 일로 원망하지마, 응?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아무것도 바꿀 수 없잖아.”“안심해요, 난 그녀와 빼앗지 않을 거예요. 그런 남자를 포기한 이상, 난 다시 돌아보지 않을 거예요.”변진희는 지아를 오랫동안 바라보다 손을 뻗어 그녀를 안았다.“넌 참 착한 아이야.”그러나 이 세상은 가장 불공평했고, 상처를 받는 것은 항상 착한 아이들이었다.이튿날 날이 밝자, 백정일은 특별히 변진희를 데리고 산에 가서 해돋이를 보았다. 변진희는 그의 품에 안겨 하늘에 나타난 금색 햇빛을 바라보았다.그
시간은 조금씩 흘러가고 있었고, 시월은 왜인지 모르게 더욱 불편해졌다. 분명 이건 소씨 가문의 내부 문제인데도 시월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반면, 소상현은 시월의 심정을 알 리가 없었는데, 머릿속이 온통 패배의 쓰라림으로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졌구나. 그동안 공들여 준비했는데도 결국 완패하고 말았다고.’ 소상현은 소임호가 단지 승자의 권리를 누리며 자신들 앞에서 거들먹거리려는 것이라 여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재호와 소윤성이 현장에 도착했는데, 두 사람은 비교적 평온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들은 소상현과 생각이 달랐다.소임호가 설령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한 어머니를 둔 이복형이었기에 굳이 소임호를 적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형님, 괜찮으세요?” “무사하시다니 다행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부장경에게 눈길을 보냈다.“저분은...”소임호가 설명했다.“이분은 부장경 씨인데, 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지. 오늘 이렇게 모두를 부른 건 우리 소씨 가문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야.” 역시나 소임호는 뛰어난 장악력을 보여주었다.사람들은 모두 부장경이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소임호의 단호한 태도에 중요한 이야기가 있음을 직감하고 모두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최근 소씨 가문엔 많은 일이 있었고, 명담이도 세상을 떠났어. 진심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지.” 소상현이 냉소를 지으며 비웃었다.“이런 자리에서까지 거짓 연민을 보일 필요는 없어!” ‘명담’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소상현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 모습을 본 소재호가 나섰다.“형님, 명담이 일은 큰형님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일이잖아요.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아직도 저 인간을 ‘형님’이라고 부르는 거야? 저 인간은 애초부터 우리 소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었다고! 봐, 지금 부씨 가문 사람들까지 들이닥쳤잖아!!” 그제야 소재호와 소윤성은 소임호가 부씨
소상현은 소임호의 말을 듣고 순간 당황했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지지하는 몇몇 사람들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오늘을 위해 소상현은 수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이렇게 쉽게 포기할 순 없어!’“후회 안 해.”“그래, 그럼 시작하자꾸나.”주주총회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한쪽에서 시월은 지아의 정체에 대해 생각할 겨를조차 없이 총회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이번 일에 시월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기에, 단 한 치의 실수도 허용할 수 없었다. 최근 회사 내 지분 변동이 심해,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그들이 다투는 것은 소영수가 보유했던 20%의 지분에 지나지 않았다. 소영수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고, 재산을 분배할 시간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소상현은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그의 상속권을 박탈하려 했다. 하지만 소임호는 손뼉을 가볍게 치며 변호사를 불렀고, 변호사는 밀봉된 서류봉투를 들고 들어왔다. 그 안에는 소영수가 미리 작성해 둔 유언장이 있었는데, 지분 양도서부터 가문의 재단, 부동산 분배까지 모든 내용이 명확하게 정리된 것이었다. 심지어 회사의 20%의 지분이 소임호의 것이라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 소상현은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며 외쳤다.“아니야! 이건 말도 안 돼! 우리 아버지는 울화로 돌아가셨고,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장을 남길 시간조차 없었어! 저 유언장은 가짜라고!” 하지만 소임호는 차분하게 말했다.“이 유언장은 아버지께서 반년 전에 미리 작성해 두신 거야. 믿지 못하겠다면 네 변호사에게 감정을 맡겨도 좋아. 서류 외에도 아버지의 영상, 음성, 그리고 친필 서명이 증거로 남아 있으니까.” 소지훈은 끝까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변호사에게 눈짓을 보냈고, 소지훈이 이끄는 변호사단의 수석 변호사가 나와 서류를 철저히 검토했다. 그러고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진짜입니다. 확실히 어르신께서 생전에 작성하신 유언장이 맞습니다.” 소상현의 마음속에 이루 말할 수
소임호는 손짓하며 비서에게 부장경을 위한 차 한 잔을 내오게 했다. 소임호는 이미 자신의 출생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 평소처럼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소임호와 부장경은 좌우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이목구비는 묘하게 닮아 있었는데, 비록 한 사람은 비즈니스계, 다른 한 사람은 군에 몸담고 있었지만, 미간에 드러나는 강인한 기개는 아주 비슷했다. 지아는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유전자의 힘이란 정말 신기한 거구나.’ 어머니가 다른 데다가 함께 자라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해도 묘한 동질감을 뿜어냈다. 반면,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소상현은 소임호가 등장한 순간부터 내내 안절부절못하더니, 부장경까지 나타나자 그 불안은 극에 달했다. 소상현의 얼굴엔 육안으로도 뚜렷이 보일 정도의 당황스러움이 드러났고, 그 어디에서도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 사람에게 소씨 가문을 맡길 리 없었다. 소임호는 소상현의 불안한 얼굴을 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둘째야, 정말 나랑 적대하며 회사를 차지할 작정이야?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마. 지금이라도 그 생각을 바꾼다면, 과거의 일은 모두 없던 일로 해줄게.”소임호의 눈에 소상현은 언제나 동생일 뿐이었다. ‘형으로써 동생을 지켜주는 건 당연지사야.’이는 소영수가 늘 소임호에게 했던 말이었다.“임호야, 상현이는 어리석고 자존심만 높아. 재호는 이쪽 일에 뜻이 없고, 윤성이는 정에 빠져 살지. 우리 소씨 가문을 짊어질 사람은 너 하나뿐이야. 앞으로도 수고 좀 해다오.” 어머니도 생전에 늘 이렇게 말했다.“네가 형이잖아. 형은 동생들을 더 많이 이해해 줘야 해.”비록 그들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도, 소임호는 소영수에게 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아버지는 떠돌던 나와 어머니의 삶을 끝내 주었고, 그 험난한 시절에 물질적 풍요를 떠나 안전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셨어.’ 그뿐만 아니라 소영수는 마음 깊이 소임호를 돌봐주고 키워줬으며, 단 한 번도
소상현은 오랜 세월을 그렇게 살아왔고, 그의 자식들도 자연스럽게 그런 영향을 받아 소지훈 역시 같은 생각을 품게 되었다. 형들보다 뒤처진다는 열등감과 질투심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말이다. 그래서 소지훈은 연예계로 진출했는데, 스타가 되면 가장 눈부신 존재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뜨거운 인기를 얻게 된 배경에 소임호의 존재가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 소지훈은 일부러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인맥 하나 없는 상태에서 연예계에서 두각을 드러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소임호는 그런 소지훈을 위해 아무 말 없이 훌륭한 매니저를 은밀히 붙여 소지훈이 어떤 부당한 대우나 불합리한 관행에 휘말리지 않도록 철저히 보호했다.게다가 소지훈이 직설적인 성격 탓에 적을 많이 만들어도, 그때마다 소임호가 뒤에서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소임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소지훈에게 맞춤형 성공 전략을 만들어 주었으며, 소지훈이 맡을 작품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고르기도 했다.그 결과, 소지훈은 단번에 톱스타로 떠오를 수 있었고, 스캔들 하나 없이 꾸준히 높은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소상현 부자의 성공 뒤에는 늘 소임호가 있었다. 하지만 소상현 가족과 달리, 소영수의 셋째 아들인 소재호 일가는 예술을 사랑하며 재산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소영수의 넷째 아들인 소윤성은 심예지와 파혼한 뒤 소씨 가문을 떠나 해외로 가서 조용히 지냈다. 즉, 이 집안은 소임호가 없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었다!소영수가 소임호를 특별히 아낀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제멋대로인 다른 아들들에 비해 소임호야말로 소씨 가문을 이끌 적임자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임호가 소씨 가문을 위해 조용히 헌신해온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위기가 닥쳤을 때 소상현은 소임호를 도울 생각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의 아들들을 짓누르며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하지만 부장
어릴 때부터 소상현은 모든 면에서 소임호보다 못했고, 태어난 그날부터 소임호의 후광 아래 살았다. 소상현이 소임호를 향해 품은 원망과 분노는 하루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비즈니스계의 천재’라는 수식어가 소임호 대신 자신에게 붙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수도 없이 해 왔을 정도였다.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소임호도 별 거 아니었을 거야.’ 소임호가 소영수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소상현의 마음은 크게 들떴다. 비록 자신의 능력이 소임호를 따라가지 못한다 해도, 신분만큼은 소임호보다 우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장경이 이곳에 나타나자, 소상현은 자랑스러웠던 신분마저 산산이 무너지는 듯했다.소상현의 얼굴은 보기 민망할 정도로 일그러졌지만, 이미 주위 사람들은 전부 부장경과 소임호에게만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소상현 부자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부장경은 지아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 채, 다른 식으로 입을 열었다.“형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부장경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 특수한 신분인 탓에 직접 오시지 못해, 제가 대신 왔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같은 핏줄이지만 어머니가 다른, 형님의 동생입니다.”“아버지, 아버지...”소임호의 눈가가 약간 붉어졌다. 사실 소임호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어릴 적 의식을 갖기 시작했을 무렵, 어머니와 단둘이 지내면서도 ‘아버지는 누구일까?’ 하고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어머니는 그때마다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소임호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이었다. 그러다 소영수를 만난 뒤에는 그분이 바로 아버지라고 말해주었고, 실제로 소영수는 소임호를 친아들처럼 다정히 대했다. 물론 소임호는 소영수가 친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진실을 밝히지 않는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으며 더 이상 묻지 않았다.게다가 소영수는 친아들 이상으로 소임호를 아껴 주었기에, 소임호는 그저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이렇게 아버지가 먼저
부장경은 국내에서 먼 길을 달려왔는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소씨 가문에 대한 몇몇 영상과 사진을 통해 단편적인 정보만 알고 있었다.부장경은 소씨 가문 사람들과는 달랐다.비록 부장경도 소임호의 이복형제이지만, 부장경은 오래전부터 부남진이 젊은 시절에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이 부남진에게 평생의 후회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만약 그 여인이 부남진에게 아들이나 딸을 남겨줬다면, 부남진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부장경은 지난 삶을 미셸을 사랑하며 보냈지만, 미셸은 결국 가짜 여동생에 불과했다. 만약 비즈니스적으로 뛰어난 형이 있다면, 부장경에게 그것은 하늘이 준 기회와도 같을 것이었다. 같은 혈연으로 맺어진 형제인 것도 중요하지만, 정치와 비즈니스가 결합된다는 점에서 부씨 가문은 더 큰 번영을 가져올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아가 부남진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을 때, 부씨 가문은 이미 대화를 나누며 준비하던 참이었다. 민연주 역시 그 여인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더 이상 따질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것은 자신이 등장하기 이전의 일이었으니 말이다.게다가 소임호의 능력은 아주 뛰어났다. 그런 양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부씨 가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것과 동시에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었다. 민연주는 손익을 따져보았고, 무엇보다 부남진이 어렵게 찾은 아들을 반대해도 소용없겠다는 결과에 다다랐다. ‘그래, 오히려 통 크게 받아들이는 게 낫겠어.’부남진은 특수한 신분 탓에 떠날 수 없었기에, 대신 부장경이 부씨 가문을 대표해 소임호와 정식으로 인연을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부장경은 결단력 있는 기운을 풍기며 빠르게 걸어왔다. 회의실을 아주 넓었는데, 부장경과 그의 일행이 들어오자 그들이 내뿜는 살벌한 기운이 전장을 휩쓸 듯 회의실을 가득 메웠다. 부장경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조차 등골이 오싹해졌다. 최근 소씨 가문에는 너무 많은 일이 벌어져서, 지아조차 부씨 가문의 이야기를
이 말이 나오자마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몸을 움츠렸고, 그들 중에는 한때 소임호의 뒤를 따르던 사람도 적지 않았다. 비행기 사고 소식이 전해지며 소씨 가문이 혼란에 빠지자, 그 사람들은 곧장 새로운 선택을 했다.본래 군자는 좋은 벗을 택하는 법이지 않은가? 소임호가 죽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시후가 병으로 쇠약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했다. 게다가 다른 형제들도 믿음직하지 못하니, 결국 사람들은 소상현 쪽으로 몰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소임호가 죽음을 위장하고, 이렇게 난감한 시점에 돌아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일명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은 즉각 태도를 바꾸었고, 앞다투어 소임호에게 아부하며 말했다. “대표님, 무사하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저희는 날마다 대표님을 위해 기도드리며...”소임호가 차갑게 그들의 말을 끊었다.“빨리 극락에 가서 뼈도 남지 않길 바랐다고?” “허허, 여전히 유머러스하시네요.” “저희는 대표님께서 하루빨리 돌아오시길 바랐습니다. 대표님께서 부재중인 동안 회사가 이렇게 큰일을 겪었으니까요.” “이쪽으로 오시죠.”방금까지는 시후를 몰아세우며 목소리를 높이던 한 원로가, 소임호를 보자마자 태도를 바꿔 소지훈의 머리를 세게 때렸다.“여긴 너 같은 애송이가 앉을 곳이 아니야! 어서 비켜, 대표님께서 오셨다고!”이 세상에서 진정한 힘은 실력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모두 이 회사가 누구의 손에서 태어났는지, 누구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인지, 누구의 뿌리이자 삶의 전부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본래 소임호가 없다고 생각하고 산 정상에 꽂힌 깃발을 훔치려 했지만, 고지에 닿기도 전에 장군이 병력을 이끌고 역습을 해온 꼴이었다.상황을 지켜보던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은 자연스레 소임호의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상현의 편에 서 있었으나, 소임호가 등장하자마자 모든 사람이 소상현에게 등을 보였다. 이 상황에 소상현도 살짝 당황했
소상현과 소임호는 원래 이복형제였지만, 어린 시절의 소상현은 아버지에게서 아주 엄격한 대우를 받았다. 그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네 형의 반이라도 닮으렴.”“형은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데, 넌 왜 그렇게 어리석니?” “이렇게 간단한 보고서도 이해 못 한다니, 네 형이라면...”소상현은 집안의 둘째였기에 형인 소임호와 비교되는 일이 많았다. 소임호의 빛나는 존재감 아래, 소상현은 얼마나 평범해 보였는지 모른다. 소상현은 이미 열심히 노력했지만 노력과 재능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소임호는 단순히 똑똑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노력도 부족함이 없었는데, 천부적인 재능 위에 더해진 노력은 금상첨화라고 할 수 있었다.즉, 소상현은 평생을 다 바쳐도 소임호를 따라잡을 수 없을 터. 소임호는 소상현의 평생의 트라우마였다. 그러던 오늘, 드디어 진실이 밝혀졌다.이번 기회에 소상현은 당당히 소임호와 그의 가족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모든 것을 되찾을 참이었다. “시후야, 너도 똑똑한 사람이니 길게 말하진 않으마. 네가 약간의 지분을 샀다고 해도, 우리 손엔 여전히 아버지의 지분이 있어. 결국 너희는 ‘패배’했단 뜻이지! 뭐 하러 사서 고생을 하니? 결국 사람들한테 비웃음이나 살 텐데.” 시월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그 말은 옳지 않아요! 우리 아빠가 할아버지의 친아들이 아니라고 해도, 우리는 한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에요. 우리 몸에는 할머니의 피도 흐르고 있으니까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렇게 오랜 세월을 애틋하게 사랑하며 함께 살아오셨는데, 우리한테 상속권이 없다는 게 말이나 돼요?” “게다가 이 회사는 우리 아빠가 맨손으로 일궈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렇게 크게 성장한 회사에 숟가락을 얹겠다니, 세상에 이렇게 구차한 일이 어디 있어요?” 소지훈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아버지, 더는 말싸움할 것도 없어요.” 소지훈은 손뼉을 치며 전문 변호사팀을 불러들였다. 그와 동시에 시후 측의 변호사들도 들어왔는데, 그들은
도윤은 지아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자기야. 이미 사람들을 보내 조사하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아.” 도윤의 세력은 대부분 A국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곳에서는 섣불리 행동하기 쉽지 않았다. 게다가 심세호는 이날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계획을 세웠으니, 심세호를 단번에 찾아내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소임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소임호가 보낸 사람들마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도윤은 이틀 동안 무릎을 꿇은 탓에 체력이 바닥나 빗속에서 기절할뻔했지만, 소씨 가문 사람들은 조금의 동정도 보이지 않았다.시하가 냉담하게 말했다.“저러다 죽으면 더 좋겠어.” 시언도 맞장구쳤다.“좋은 사람은 오래 못 산다더니, 나쁜 놈은 천년이 가도 안 죽는구나.” 소임호는 그저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당장 끌어내. 내 눈앞에서 치워버리라고!”지아는 그들의 태도에 머리가 아팠다.‘아무래도 가족들이 도윤 씨를 받아들이는 건 단기간에 이루어질 일이 아닌 것 같아.’ 지아는 진봉에게 도윤을 방으로 옮겨 정성껏 간호하라고 지시했다. 소씨 가문에서 도윤에 대해 가장 악의가 적은 사람은 시후였는데, 시후가 천천히 지아의 곁으로 다가왔다.“소시월이 자금을 다 모았어.” “그럼 이제 우리가 연극을 시작할 때네요.” 시월이 밤새 달려와 도착하자, 시후는 일부러 얼굴에 화장하고 아주 쇠약한 모습을 연출했다.“콜록콜록... 월아, 왔구나.” “오빠, 이틀 만에 상태가 왜 이렇게 악화된 거예요? 절대 쓰러지시면 안 돼요.” “걱정하지 마, 월아. 오래된 병이라서 그래. 그나저나 돈은 다 모은 거야?” “네, 오빠, 지금 상황은 좀 어때요?” “내가 있는 한,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의 재산을 지켜내려 하겠지만...” 시후는 일부러 기침을 몇 번 더 하며 말했다.“월아, 앞으로 우리 소씨 가문은 너한테 달렸어.” “오빠, 괜찮을 거예요. 그런 말은 하지 마세요.” 시월은 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