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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소지아는 특별히 화장으로 자신의 병색을 감추고 좀 생기 있어 보이게 했다.

밖에 흩날리는 큰 눈을 보고 소지아는 목도리와 외투로 자신을 꽁꽁 싸맸다.

약물치료 후 일단 신체 기능이 떨어지면 마치 도자기 인형처럼 몸이 약해져 면역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떨어졌다.

그러므로 이틀에 한 번씩 혈액을 검사하여 적혈구와 백혈구의 비율을 확인해야 했고, 일정 수치 이하이면 약물 투여가 꼭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면역력이 너무 낮아 열이 날 것이고 생명이 위험해질 것이다. 소지아는 태만하지 못했고, 아름다운 외모와 따뜻함 사이에서 당연히 후자를 택했다.

뒤통수가 다른 부위보다 훨씬 얇아진 것을 보자 그녀는 검은색 털모자를 조심스럽게 썼다.

임건우는 당연히 그녀가 외출하는 것을 반대하며 말했다.

“지아야, 넌 지금 외출하기에 적합하지 않아. 어제 한 혈액 검사에서 네 수치가 수직으로 떨어졌어. 내가 주치의이니까 내 말 들어야지.”

소지아는 눈시울을 붉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선배, 아무도 전남편을 만났을 때 불쌍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예요. 아직 그리 나빠지기 전에 그의 인생에서 화려하게 물러나고 싶을 뿐이에요.”

소지아가 감추던 베개를 생각하면서 임건우는 여전히 한숨을 쉬었다.

“가능한 한 따뜻하게 하고.”

“이혼 수속만 하는 거니까 금방 돌아올 거예요.”

“내가 데려다 줄게.”

이번에 소지아는 거절하지 않았다. 단지 가능한 한 빨리 이혼하고 싶었다.

차에서 그녀는 핸드폰 문자를 살펴보았는데, 제일 위에 김민아의 문자가 보였다. 전 남자친구가 재결합을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찾아왔고, 또 회사에 가서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그녀는 휴가를 내서 전 남자친구를 피했지만 어쩐지 요 며칠 소식이 없었다.

의외로 이도윤이 많은 문자를 보내왔다. 그 중에는 또 답장하지 않으면 소계훈이 생명의 위험할 거라는 협박 메시지도 있었다.

소지아는 이도윤이 급히 자신과 이혼하려고 하지만 답장이 없는 것을 보고 그렇게 조급했나 싶었다. 곧 그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있었다.

개인탐정은 본업에 충실하여 많은 자료를 찾아 정리한 후 소지아에게 자료를 보내왔다.

자료는 소계훈과 조율이 매우 가깝다고 분명히 밝혔고, 그는 한 달 중 약 3분의 1이상의 시간을 내어 조율을 만났으니 심지어 그가 조율의 아파트에서 자고 이튿날에야 떠나는 장면을 CCTV에 여러 차례 찍혔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조율에게 여러 차례 돈을 입금했고, 그녀의 명의로 된 수억짜리 차가지 사줬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소지아는 마음이 다소 불안했다. 이런 정도의 관심, 나아가서는 금액이 이미 일반적인 자금 지원을 초과했다.

돈 많은 중년 아저씨가 자신의 딸뻘인 소녀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분명히 두 사람의 관계가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

어머니가 떠난 지 이렇게 여러 해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아 이런 욕구가 있는 것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지아는 여태껏 아버지의 생활에 관여한 적이 없었다.

어린 소지아의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늘 신성하고 위엄이 있어 설사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려 한다 하더라도 소지아는 아버지가 이렇게 젊은 여자애를 선택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인상이 다소 무너졌다.

조율은 이미 죽었고, 소계훈도 혼수상태에 빠졌으니 소지아는 잠시 두 사람을 연인의 관계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가령 조율이 아버지의 애인이라면, 아버지는 줄곧 사람에 대해, 일에 대해 무척 너그러운데다 조율은 또 이렇게 어렸으니 그는 틀림없이 조율을 살뜰하게 보살피고, 해치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정말 자신의 추측이 맞는다면 이도윤은 무엇 때문에 미친듯이 소씨 집안에 보복하는 것일까?

겨우 3일밖에 안되는 사이에 탐정은 이렇게 많은 일을 밝혀냈으니, 실력이 대단한 것은 확실했다. 소지아는 일부 계약금을 주고 반드시 조율의 사인을 밝혀낼 것을 요청했다.

잠시 핸드폰을 보았을 뿐인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아찔하며 머릿속에는 온통 그 CCTV 화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화면을 보기 전에 소지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을 본 후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 뒤에 물음표를 던졌다.

흩날리는 흰 눈이 온 도시를 뒤덮고 천지간의 모든 것이 하얗게 변했다. 하얀 눈 아래 더 깊은 어둠이 숨어 있다는 것을 소지아는 잘 알고 있었다.

차가 길가에 멈추자 임건우는 신사적으로 먼저 차에서 내려 소지아를 위해 차문을 열었다.

소지아의 상태는 겨우 3일 전보다 좀 나아졌을 뿐, 몸은 여전히 허약하여 그의 눈에는 도자기인형처럼 쉽게 부서질 것 같았다.

“조심해, 천천히 내려와, 눈이 내려서 길이 미끄러우니까 넘어지지 말고.”

소지아는 감격에 겨워 웃었다.

“선배, 너무 긴장하지 마요. 난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으니 조심할게요.”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진 그녀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임건우의 부축하던 손을 놓고 몸을 돌려 마침 맞은편 검은 차 안의 사람과 눈을 마주쳤다.

이도윤의 눈빛은 임건우가 그녀를 부축한 손을 향했다. 그의 음산한 눈빛은 소지아의 등을 서늘하게 했다. 소지아는 그 남자의 수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자신을 미워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건드릴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것도 소지아가 감히 임건우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은 이유였다. 이도윤의 눈빛은 마치 칼처럼 예리했고 소지아는 재빨리 말했다.

“선배, 잠시 후에 수술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요? 나는 이혼만 하고 택시 타고 집에 갈 테니 먼저 가요.”

“아니야, 수술은 오후라서, 너 혼자 가는 건 그다지 마음이 놓이지 않아.”

소지아는 다소 조급해하다가 즉시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선배와 친척도 친구도 아니고, 선배도 나의 가족도 아닌데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에게 험담을 듣는 것을 겁나지 않아요?”

“그런 게 두려웠다면 이런 일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야.”

“선배는 괜찮아도 나는 두려워요. 선배, 설령 나와 그의 감정이 깨진다 하더라도 저는 아직 이혼 전이니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요. 앞으로 나에게 신경 쓰지 마요. 내가 죽든 살든 선배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니까요.”

소지아는 몸을 돌려 떠나면서 냉담한 뒷모습을 남겼다.

임건우는 의학 가문으로서 A시에서도 권세가 작지 않았지만, 이씨 가문과 비교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소지아는 이도윤이 뭔가 오해하여 임건우에게 손 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임건우는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달갑지 않았다.

‘하긴, 내가 무슨 자격으로 지아의 곁에 있겠어?’

그는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야 길가에 최고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리고 입가에 씁쓸한 웃음을 띠었다.

‘아직도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군. 아마 이도윤에게 오해받고 싶지 않았나 보네.’

임건우는 핸들을 돌리며 떠났다.

이때 검은색 고급차에서 진봉은 찬바람이 자신의 뒷덜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을 뿐, 감히 뒤를 쳐다보지 못했다.

이도윤이 차가운 콧방귀를 뀌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그는 하마터면 운전석에서 뛰어내릴 뻔했고 말을 더듬었다.

“대, 대표님.”

“눈에 거슬려.”

진봉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곧 차에서 내리겠습니다. 형이 운전하는 것이 좋겠네요.”

옆에 있던 진환은 기개가 없는 멍청한 동생을 노려보고 이도윤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차에서 내려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고, 진봉은 무기력하게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그제야 이도윤이 말한 사람이 임건우라는 것을 깨달았다.

가정법원 앞에서 소지아는 불안해하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보고 있었다.

검은 옷은 흰 눈 속에서 유난히 눈에 띄었고, 잘생긴 얼굴은 눈과 하나로 어우러져 소지아는 이유 없이 마음이 떨렸다.

그가 다가오자 차가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넌 그 남자를 위해 나와 이혼하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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