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1585화

Author: 김나비
이예린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았지만, 노련한 태도로 전혀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새로운 곳에 와서 그런지 잠이 안 오네요. 좀 걸으려고요.”

“네 오빠도 여기 있잖니. 그 아이가 네가 나가는 걸 보면 분명히...”

이예린은 곧장 심예지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오빠가 제 손발이 이미 회복된 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세요?”

“오빠가 정말 저를 죽이고 싶었다면, 이미 3년 전에 끝냈을 거예요. 하지만 오빠는 누군가처럼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마음 여린 사람이라고요.”

당시 도윤은 예린을 죽이지 않고, 단지 손과 발의 힘줄을 끊어버렸다. 그것만으로 지아를 위해 복수를 한 셈이었다.

더구나 지아는 죽지 않았기에, 도윤은 더 이상 예린을 해치지 않았다.

“너는 전혀 우리를 닮지 않은 모양이구나.”

예린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사실, 사랑에 눈이 멀어버리는 것은 그들 가문에 흐르는 피와 같았다.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도윤도 그러했으며, 예린도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시후가 예린을 구해준 순간부터, 예린은 자신의 목숨이 영원히 시후의 것임을 알았다.

“그래, 주변에서만 걸어 다니렴. 괜한 문제는 일으키지 말고.”

“알겠어요.”

예린은 몇 발짝 걸어가다가 멈추더니, 뒤돌아 심예지를 바라보았다.

“엄마.”

심예지는 온몸이 굳어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듯 예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니?”

심예지는 지난 몇 년 동안 예린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지만, 예린은 늘 과묵했으며, 좀처럼 말하지 않았다.

예린은 태도마저 차갑고 무관심했기에, 심예지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그저 여생 동안 속죄할 기회가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심예지는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았는데, 예린의 입에서 나온 ‘엄마’라는 단어는 너무나 큰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심예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이 차올랐고, 다시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뭐... 뭐라고?”

“엄마.”

이번에는 예린
Locked Chapter
Continue Reading on GoodNovel
Scan code to download App

Related chapters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86화

    이예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네, 엄마가 저를 사랑하신다니, 그걸로 됐어요.” 이는 모녀간의 응어리가 풀리는 순간이었다.예린은 심예지를 밀어내고, 눈앞의 여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고향에 돌아와서인지, 심예지는 예전보다 훨씬 더 건강해 보였다. “엄마, 아직 갈 길이 멀어요. 엄마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남은 삶은 잘 살아가세요. 더는 엉뚱한 사람들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엄마는 너를 다시 찾은 게 가장 큰 행복이야. 앞으로 이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은 너와 네 오빠가 평생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거란다.” 예린은 심예지의 말에 점점 마음이 흔들렸다. ‘여기 더 머물다가는 떠나지 못할 것 같아.’ “저는 단지 소씨 가문의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생각이 조금 많아졌을 뿐이에요. 엄마, 오늘 아주 피곤하셨을 텐데 이만 돌아가서 쉬세요. 저는 조금 걷고 올게요.” “그래, 너무 늦지 않게 들어오렴.” 심예지는 예린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하지만 예린이 급히 떠난 후, 심예지는 딸의 말이 평소와는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우리 모녀가 함께 한 시간은 길지 않았고, 그동안 예린이는 대부분 침묵 속에 지냈어. 그런 예린이가 오늘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을까?’ ‘더구나 방금 그 말은 작별 인사 같았는데...’ 심예지는 어린아이가 아니었기에, 곧바로 의심을 품고 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사실, 도윤은 심예지가 예린을 몰래 데려온 일을 일부러 눈감아주고 있었다.“도윤아, 네가 여전히 예린이를 미워한다는 건 알지만, 그 아이는 결국 네 친여동생이야. 너는 그동안 그 아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모를 거야. 이 엄마는 그 아이가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봐 너무 무섭단다.” [알겠어요,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도윤은 전화를 끊고서 최근 소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들을 떠올렸고, 이내 예린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분명 소 선생님을 도우려는 걸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87화

    지아는 오랜 세월 도윤과 함께해 온 만큼, 도윤의 평소와 다른 행동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당신,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아니야?” “혹시 우리 아빠 쪽에서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있는 거야?” 도윤은 손을 들어 지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아니야, 소식이 있으면 당신한테 제일 먼저 알려줄게. 당신, 요즘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좀 쉬어, 다 내가 알아서 할게.” 지아는 원래 잠이 오지 않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그녀에게 계속 경고하고 있었다.지아는 한숨을 쉬고는 방으로 돌아가 소식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 지아는 몹시 초조했고, 소씨 가문과 아버지를 위해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의 소씨 가문은 이미 복잡한 소용돌이가 되었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윤은 지아를 부드럽게 다독였고, 지아가 깊이 잠들 때까지 곁에 있었다. 도윤이 핸드폰을 꺼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는데, 전화를 건 사람은 진환이었다. [보스, 방금 미행 중인 사람이 보고했습니다. 아가씨께서 얼굴을 바꾸고 변장한 채, 도시 외곽에 있는 별장으로 가셨답니다.]도윤의 사람들은 이미 소임호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별장은 이미 위험한 장소로 알려진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예린은 호랑이가 있는 산을 알면서도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예린은 도윤의 사람으로서, 이렇게 큰일은 당연히 그의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알고 있어.”[그럼 아가씨를 막아야 할까요? 거긴 정말 위험합니다.]도윤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의 둥근 달을 바라보았다. 달빛은 아름다웠지만, 그 달빛 아래의 세상은 유난히 쓸쓸해 보였다. 도윤은 잠시 침묵하더니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그럴 필요 없어. 걔는 이미 어른이야. 자신이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잘 알고 있으니, 자신의 선택에 책임질 줄도 알아야 해.”[하지만...]“이번 일에는 우리가 개입할 필요 없어. 살든 죽든, 그건 걔의 운명이니까.” [알겠습니다.]진봉도 도윤의 의도를 이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88화

    예전에 예린은 두 사람 사이의 도화선이었지만, 이제는 도윤이 예린을 포기한 셈이었다.도윤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아는 도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아가 도윤의 손을 잡고 말했다.“많이 아프지?” “당신이 그때 겪었던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자기야, 난 괜찮아. 이젠 우리 모두 어른이 되었잖아. 그 애가 끝까지 고집을 부린다면, 나도 다른 방법이 없어. 게다가 이번에는 나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잖아.”“자기야, 만약 예린이가 이번에 정말로 당신 아버지를 구해낸다면, 과거에 당신에게 진 빚을 갚은 걸로 생각해 줄 수 있을까?”도윤은 중간에 끼어 있는 입장에서 아주 괴로웠다.예전에 도윤과 그의 가족이 지아에게 저지른 일은 여전히 도윤의 마음속 깊이 남아 있는 상처였다. ‘살아 있는 동안에 어떻게든 이 상처를 풀고 싶어.’ 이제 많은 일은 겪은 지아는 더 이상 예전의 소녀가 아니었다. 지아는 예린이 이번 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아가씨가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면 말이야.” 도윤은 오빠로서 무력감을 느꼈다.만약 소임호가 그 별장 안에 있지 않았다면, 도윤은 어떤 폭력적인 방법도 서슴지 않았을 것이었다. 비록 살아 있는 증인을 얻지 못한다고 해도, 그곳에 있는 적을 철저히 없애버렸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소임호의 존재는 도윤이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시언조차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도윤은 더욱더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제 그 복잡한 매듭을 풀어야 할 사람은 예린이었다.운명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이다. 예전에 예린이 지아에게 빚진 것을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갚아야만 했다. 두 사람 모두 피곤했지만, 한 명은 아버지의 문제로, 다른 한 사람은 여동생의 문제로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도윤이 지아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같이 기다려 보자.”“그래.”날이 밝으면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한편, 시후는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89화

    “약? 내가 약을 왜 먹어? 난 하나도 안 아프다고!” 어디서 자극을 받은 건지 조경선은 갑자기 예린을 세게 밀쳐냈다. “사모님 겁내지 마세요. 저예요.” 조경선의 흐릿한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잡기 시작했고, 표정도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래, 내가 키운 아이구나. 네가 날 해칠 리가 없지.” 조경선은 약을 삼키고 물 한 잔을 마셨다. “소씨 가문은 어떻게 됐지?” “여전히 난장판이에요. 상속권 문제로 서로 심하게 다투고 있고, 시월 아가씨는 깊이 연루되어 있죠. 지금까지 나타난 증거로는 시월 아가씨가 불리한 상황이지만, 혈액형 유전법칙은 최근 들어 완벽하지 않다는 반박도 나오고 있어서 무조건 신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게다가 소 대표님이 없는 상황에서는 DNA 검사를 진행할 수도 없고요.” 조경선이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한숨을 쉬었다.“그런 변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사모님, 아주 피곤해 보이시는데, 잠깐이라도 쉬는 게 어떠세요? 여기는 제가 지킬게요.” “아니야, 침입자가 있으니 내가 직접 지켜야 해. 너는 우리가 언제든 여길 떠날 준비를 해 둬. 여긴 이미 안전하지 않아.”“알겠습니다.”예린은 공손히 물러났지만, 조경선이 마신 물에 약을 섞어 두었다.몇 분 후, 조경선이 잠에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예린은 먹을거리 몇 가지를 준비해 다시 방으로 향했다.문에 다다르자, 조경선이 통화 중인 소리가 들려왔다. 조경선은 약간 진정된 상태였지만, 완전히 침착하지는 않은 듯했다.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멍청한 녀석, 지금이 절호의 기회야. 지금 당장 소시언과 소시하를 없애버리고 이 모든 걸 다른 방계의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워. 한 명은 팔이 부러지고, 한 명은 다리가 부러졌으니, 지금이 손쉽게 처리할 때라고!!” “나는 소임호가 평생 고통 속에 살게 할 거야!” 예린은 문 앞에서 몸이 굳어버렸다.소씨 가문의 몇몇 형제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처음엔 다른 적들의 소행인 줄 알았지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90화

    예린은 잠시 멍해졌지만 곧 평소처럼 순종적인 태도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예린이 대답하자 조경선이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다른 사람이었다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예린은 조경선의 곁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그녀의 아주 미세한 표정 변화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사모님, 푹 쉬세요.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그래, 이만 나가 봐.”예린은 돌아서서 나가려는 순간, 위험이 자신을 덮쳐오는 것을 느꼈고, 재빨리 몸을 돌려 조경선이 자신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탕!총성이 울렸고, 예린은 고개를 돌려 겨우 총알을 피했다.조금만 늦었어도 예린은 이미 조경선의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었다. “사모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예린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경선을 바라보았다. 조경선은 총을 쥔 손으로 예린을 겨누며 시원한 대답을 내놓았다. 아마 예린이 도망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네가 소시후를 짝사랑하는 걸 내가 모를까 봐? 그 사람을 그렇게 사랑하면서, 정말 그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저를 시험하셨군요!”예린은 자신이 오랜 세월 충성을 바쳤는데도 믿음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래, 너는 아주 잘 쓰이던 꼭두각시였지. 하지만 이제 더는 쓸모가 없어. 편히 죽으라고!” 조경선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별장 전체에 안전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침입자 발견!” 조경선이 표정을 구기며 소리쳤다.“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예린이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모님도 아셨잖아요,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요. 하지만 제가 그 사람을 위해 뭔가 할 거라는 건 예상하지 못하신 모양이네요. 지금쯤 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소 대표님을 구하러 갔을 거예요.”“키워준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것!” 예린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사모님께서 가르쳐주신 거잖아요. ‘여자는 강해지지 않으면 자리를 지킬 수 없다’고요.” “빌어먹을!”한편, 시후는 사람들을 데리고 별장을 침입했고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91화

    시후는 총성이 들려오자, 그것이 예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양지운이 초조한 표정으로 말했다.“소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만약 도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형제는 어떡하라고 이러십니까? 사모님은 행방불명이고, 대표님은 많이 다치셨습니다. 도련님께서 중심을 잡아주지 않으시면, 그분들이 어떻게 버틸 수 있겠냐고요.” 시후는 이를 악물며 돌아섰다.“가자!” 이는 예린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기회였다. 지금 예린이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더라도, 시후는 여기 머무를 수 없었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뒤돌아보지 말자! 지금은 아버지를 구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야.’ 시후는 날이 밝기 전에 소임호를 데리고 자신의 별장으로 돌아왔고, 이 일을 지아에게만 알렸다. 지아는 아버지와 오빠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가슴속 깊이 자리 잡았던 무거운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전화를 끊기 전, 지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빠, 이예린 씨는 어떻게 됐어요?] 시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대답했다.“그 별장을 떠날 때 총소리를 들었어. 하지만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아버지를 모시고 떠날 수밖에 없었지.” “사람들은 시켜 길목에서 기다리게 했지만, 그 아이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어. 아마도 그 아이는...” [그래요, 알겠어요. 저도 금방 갈게요.] 지아는 시후의 말을 도윤에게 전했고, 도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당신의 아버지가 무사하시니, 예린이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셈이야.” 도윤의 눈가가 살짝 붉어진 것을 본 지아는 도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예전에 아가씨가 나한테 저질렀던 일 때문에 내가 미안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위로는 해주고 싶은 마음이야.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겠지만 말이야.” 예린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소임호를 구출했지만, 결국 예린이 한 일은 그동안의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린이 저지른 잘못은 이번만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92화

    많은 일들은 한 번 실마리를 풀기 시작하면, 그다음부터는 물 흐르듯이 진행되기 마련이다.도윤은 살아남은 예린이 직접 진실을 듣기를 바랐다. 한편, 지아는 이미 부남진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부남진의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얘, 이렇게 오랫동안 전화 한 통도 없고, 너 때문에 걱정돼 죽을 뻔했구나. 그래도 도윤이가 너랑 있었다니 참 다행이었어.] 지아의 치료 덕분에, 부남진의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목소리에서도 힘이 넘쳤다. 가족의 목소리를 들은 지아는 벅찬 감정에 휩싸였다. “할아버지, 정말 큰 소식이에요.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부남진의 목소리가 한층 진지해졌다.[좋은 소식이야, 나쁜 소식이야?]“좋은 소식이에요. 저, 친아빠를 찾았어요!” 쨍그랑!지아는 수화기 너머에서 컵이 떨어져 깨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부남진이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놓친 것이 분명했다. [얘, 정말이니? 거짓말 아니지?]“더 일찍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너무 복잡하던 상황이 이제야 조금 안정됐어요.”지아는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부남진은 감격에 겨워했다.부남진에게 있어서 이 소식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과 같았다. 특히 지아의 아버지가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혈육이었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오를 정도로 기뻤다. 하지만 소임호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자, 부남진의 표정에는 곧장 걱정이 어렸다.‘그 아이는 유일한 내 혈육이야!’[지아야, 네 아버지는 좀 어떠니? 많이 다친 게야?]“할아버지, 오빠가 방금 아빠를 구해냈어요. 지금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아요. 남은 치료는 저한테 맡겨주세요.”지아의 차분한 목소리에, 부남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래, 네가 있다니 안심이구나. 지아야, 네 아버지는 네가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네,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연락드릴게요.” [그래, 이만 들어가 봐라.]수화기 너머의 부남진은 기쁨에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593화

    지아는 뒤돌아 도윤을 한 번 바라보았고, 도윤은 지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조금 있다가 바로 갈게.” 지아는 아버지를 빨리 만나고 싶었기에 더는 따지지 않고, 시후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시언과 시후는 이미 소임호의 곁에 있었는데, 지아가 방에 들어섰을 때, 그들은 모두 충혈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만난 기쁨과 과거의 날들에 대한 후회가 뒤섞여 있었다. 만약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더라면, 그 많은 고난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 모양이었다.지아의 심장은 빠르게 뛰었고, 그녀의 눈앞에는 소임호가 있었다. 소임호는 이전에 봤던 사진과 영상보다는 훨씬 젊어 보였지만, 몸 상태는 더 약해 보였고, 얼굴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눈앞의 소임호가 바로 지아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찾아 헤맸던 아버지였다.소임호를 눈앞에서 보게 된 순간, 지아는 그대로 멈춰 서버렸다. 마치 누군가 지아의 움직임을 봉인한 것처럼 말이다. 지아는 소계훈이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수없이 상상해 왔다.‘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실까?’‘그분들은 날 사랑해 주실까?“지아야, 왜 그래?”시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지아를 깨웠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분이... 소 대표님이신가요?”두 사람의 대화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단숨에 끌어당겼고, 소임호는 지아를 보자마자 멈칫했다.시월은 지아를 본떠 성형했지만, 지아와 똑같이 될 수는 없었다. 지아의 얼굴은 환희와 너무 닮아 있었다. 하지만 환희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기에, 다른 자녀들은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희미했다.다만, 소임호만큼은 환희의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소임호가 환희와 함께 했던 시간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그쪽은...”소임호가 지아를 보자마자 몸을 일으키려 하자, 시언이 부드럽게 설명했다.“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소지아 선생님이에요. 저희와 의형제를 맺기도 했죠.”“이번에도 지아 덕분에 많은 도움을

Latest chapter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4화

    지아를 바라보는 장민호의 창백한 얼굴에 갈망이 스쳤다.“지아 씨, 나랑 함께했던 지난 2년 동안, 단 한 순간이라도 저를 좋아한 적 있었나요?” 차갑게 장민호를 응시하는 지아의 눈빛에는 얼음처럼 냉랭한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아니요, 늘 당신의 죽음만을 바랐어요.” 장민호가 쓸쓸히 웃었다. “그랬군요.” 모든 일은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법이었다. 탕!놀란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고, 붉은 선혈이 땅에 흩뿌려졌다. 장민호는 무덤의 차가운 사진을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미연아, 너한테 빚진 건 전부 갚았어...” 지아는 눈앞에서 연이어 죽어간 사람들을 보며 가슴속 깊은 곳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꼈고, 천천히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미연아, 우리의 복수가 이렇게 끝이 나네. 이젠 너도 편히 쉬어.” 지아는 이날을 너무도 오래 기다려왔지만, 복수를 끝낸 후에는 마음이 텅 빈 듯 허전하기만 했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지금, 따뜻한 봄바람 속에서 해경의 뒤를 쫓는 무무의 발목에서 짤랑거리는 방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해경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외쳤다.“어서 잡아봐!” 멀리서 꽃으로 화환을 엮던 소망이 지윤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허리 좀 숙여봐.” 지윤은 순순히 허리를 숙였고, 소망은 지윤에게 화환을 씌워주었다.“와, 정말 잘 어울린다! 아빠랑 똑같이 생겼어!” 지아는 어린 시절의 도윤을 보듯 따스한 눈길로 지윤을 바라보았다. “자기야.”바로 그때, 지아의 귓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가 고개를 돌리자, 한쪽 무릎을 꿇은 도윤의 모습이 보였다.도윤이 한 손에 다이아몬드 반지를 든 채 말했다.“나랑 다시 결혼해 줄래?” 아이들이 옆에서 환호하며 소리쳤다.“결혼해요! 결혼해요!” 지아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 씨...”도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지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며 말했다.“지아야, 다시는 너한테 상처 주지 않겠다고 맹세할게.” 소망이 꽃으로 만든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3화

    사랑에 미친 장민호는 이 모든 것이 지아가 2년에 걸쳐 설계한 함정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지아가 도윤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순간에야 자신의 정체가 이미 드러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 끝났구나...’비록 소씨 가문 사람들이 이겼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심세호와 조경선, 그리고 소시월이 힘을 합쳐 저지른 일들로 많은 이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으니, 소씨 가문 사람들이 완전히 이긴 것은 아닌 셈이었다. 심지어 소시영 또한 그들의 희생자가 되었고, 젊은 나이에 영면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지아가 시영의 무덤 앞에서 향을 올리며 말했다.“언니, 다음 생엔 꼭 행복하게 살자. 이번 생에는 내가 가족들을 잘 돌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바로 그때,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나뭇잎 한 장이 지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마치 시영이 지아의 말에 응답하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소영수는 소씨 가문 사람들과 함께 강렬한 기세로 돌아왔고, 환희 역시 마침내 안식의 땅에 묻혔다. 환희의 장례식은 비밀리에 치러졌지만, 부남진은 몰래 그곳을 찾았다. 부남진과 소영수는 무덤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는데, 생전 환희에게 가장 중요했던 두 남자가 환희가 죽고 나서야 얼굴을 마주한 것이었다. 아침 햇살이 희미하게 비추는 가운데, 눈가가 붉어진 부남진은 가지에서 가장 어린 복숭아꽃 한 송이를 꺾어 무덤 앞에 내려놓았다.“미안해, 내가 너무 늦었지...?”그 순간, 지아의 눈에 노인이 아닌 아침 햇살 속에서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낸 젊고 잘생긴 소년의 모습이 비쳤다.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던 조경숙의 눈도 치료하면 회복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지아는 장민호와 소시월을 데리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산속은 한창 따듯한 봄이었다. 산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강미연의 무덤 앞에는 형형색색의 작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소시월은 숨이 가쁜 상태로 강미연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었고, 장민호는 무덤에 새겨진 이름을 보며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이런 날이 올 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2화

    “오빠, 대체 무슨 일이에요?”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지아는 루이스에게 함부로 다가갈 수 없었기에, 지아가 이 상황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시후뿐이었다. “지아야, 가까이 오지 마. 여긴 너무 위험해!”시후의 얼굴에 걱정이 가득해지자, 루이스가 고개를 돌려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내 실험은 곧 성공할 거야. 저 아이는 환희의 후손이라, 몸속에 환희와 같은 피가 지니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 지아의 얼굴빛이 달려졌다.‘스승님이 나한테 유독 신경 쓴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 예전의 지아는 그것이 자기 몸과 재능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루이스는 처음부터 지아의 정체를 알고 있던 것이었다. 루이스가 말한 ‘생체 개조 계획’도 사실은 환희를 되살리기 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저 사람...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할머니를 부활시키려고 이렇게 철저히 준비하다니!’ ‘하마터면 개조 계획이라는 거짓말에 깜빡 속을 뻔했어!’ 백발이 성성한 소영수가 아주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루이스, 그만둬! 환희는 이미 죽은 지 오래야. 환희의 혼도 이미 윤회에 들었을 텐데 부활이라니, 그건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는 일이야!” “네가 그동안 저질러온 실험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희생되었는지 알아? 아, 그걸로도 부족하다는 건가?” “네 과거 실험 데이터를 살펴봤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실패했더군. 그런데도 네가 저 아이를 건드리지 못한 이유는...”소영수가 지아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아이가 환희의 핏줄이고, 환희와 닮은 얼굴을 가졌기 때문이었어. 혹시라도 실험에 실패할까 봐 저 아이를 건들 수 없었던 거야, 그렇지?” 지아는 그제야 모든 것을 이해했고, 환희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느꼈다.‘할머니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목숨을 잃었을 거야.’ 루이스는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지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넌 내 최고의 실험 대상이야. 어서 스승인 나를 도와주렴.” 시후와 도윤이 동시에 지아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1화

    섬에 도착한 지아는 섬의 분위기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풍경은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섬 곳곳에 있던 로봇들은 사라진 듯했는데, 원래라면 섬에 내리자마자 로봇들이 눈에 띄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섬 가장자리에 밀집한 수많은 군함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은 대부분 외국 민간 무장 단체와 용병들이 사용하는 군함 같았다. ‘대규모 인원이 섬에 상륙한 모양인데...’ ‘대체 무슨 일이지?’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가 지아를 인체 개조 대상으로 삼으려 했음에도 지아는 루이스가 살아남길 바랐는데, 루이스처럼 뛰어난 과학자가 유명을 달리한다면 큰 손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스승님!”“자기야, 진정해. 이 섬에 많은 사람이 들어오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윤은 지아를 재빨리 진정시켰다. 이렇게 많은 군함이라면 분명 강력한 무기를 많이 실었을 테지만, 섬의 꽃과 나무, 건물들은 여전히 온전했다. “아니야, 이 섬에는 원래 사람이 많지 않았어. 대부분 로봇이었단 말이야! 그나저나 우리 오빠는 어디 있는 거지?” 지아는 며칠 전 시후가 치료를 계속하기 위해 여기에 왔던 것을 떠올린 후, 더 이상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섬 안쪽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다. 잠시 후, 지아는 겨우 작동하고 있는 한 로봇을 마주했는데, 로봇에서는 전기 스파크가 튀고 있었고, 몸체에서는 쇠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루이스 스승님은 어디 있어?” 지아가 다급히 물었지만, 이미 언어 기능을 상실한 로봇은 전자 화면에 두 글자를 표시할 뿐이었다. [뒷산.]‘뒷산이라니!’뒷산은 루이스가 지아에게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다. ‘거기엔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지아는 미친 듯이 뒷산으로 달려갔다.그곳에는 수많은 로봇과 인간들이 쓰러져 있었고, 원래 뒷산 입구를 막고 있던 기계 문도 강제로 파괴된 상태였다.‘큰일이네. 루이스 스승님은 괜찮으신 걸까?’ 루이스의 로봇도 많은 수를 자랑했는데, 상대는 그보다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70화

    그날, 부남진과 소임호는 단둘이 오랜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것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단지 가족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에 집중할 뿐이었다. 하지만 민연주는 조금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갑자기 이렇게 많은 자손이 생기다니, 만약 저 사람들이 모두 부씨 가문 사람이 된다면, 내 아들과 딸에게 돌아갈 재산이 줄어들진 않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인 법이다. 정말 이런 상황에 닥친다면, 그 누가 자기 이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지만 소임호와 부남진이 이야기한 결과는 모두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은 바로... 소씨 가문 사람들이 소임호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임호는 부씨 성으로 바꿀 생각이 없다는 것!즉, 소임호의 어머니가 소영수와 결혼한 이상, 소임호를 비롯한 그 자손의 생에는 소씨 가문 사람들에 속했기에, 부씨 가문과는 친척 관계로 왕래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부남진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소영수가 자기 자손들을 잘 대해준 것을 생각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었고, 소임호의 자손들에게 잠시 부씨 가문에 머무르며 상처를 치료해달라고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지아는 돌아온 이튿날 아이들을 데리고 묘지로 갔는데, 도윤과 함께 환희와 소계훈을 찾아뵙기 위해서였다. 묘지는 산속에 있었고, 산에는 복숭아나무와 배나무가 활짝 꽃을 피워 푸른 신록이 빛나고 있었다. 소계훈의 묘 앞에는 이끼가 조금 늘어나 있었는데, 지아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은 채 오랫동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아빠, 드디어 제 가족을 찾았고, 배후의 손도 밝혀냈어요.” “유일하게 아쉬운 건... 그 여자를 데리고 와 아빠의 묘비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하도록 하지 못한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저는 이제 성장했고, 다른 사람들을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도윤은 지아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소계훈의 묘비 앞에 담배 한 개비를 놓았다. “기대를 저버려서 정말 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9화

    지아 일행은 다시 소씨 가문으로 돌아왔다.시후가 관리 중인 소씨 가문은 이미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시하의 다리도 많이 회복되어 이제는 더 시아 장애를 가장할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걸을 수 있었다. 시언의 건강은 단기간에 완전히 회복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졌고, 소임호 역시 지아가 떠나기 전보단 훨씬 건강해 보였다. 소시월이라는 사람 때문에 소씨 가문은 거의 전멸할 뻔했지만, 지금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지아가 돌아오자 소임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지아야, 시후한테 네 몸에 독벌레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 거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젠 다 나았으니까요. 그런데... 소시월은 아마 바닷속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요.” 소임호가 지아를 단단히 껴안으며 말했다.“괜찮다, 괜찮아. 난 그저 너희들만 무사하면 그만이야.” 짧디짧은 시간에도 몇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소임호의 모습을 보며 지아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엄마 쪽 소식은 없는 거예요?”“시후가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냈는데, 아직 추적 중이란다. 참, 부씨 가문에서 우리가 한 번 왔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최근 부남진은 신분상 모습을 드러내기 어려운 상황이라, 소씨 가문 사람들이 본국으로 가야만 했다. 마침 지아도 다른 아이들이 그립던 터였다.“좋아요. 아이들이 외할아버지와 외삼촌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기뻐할 거예요.” 그렇게 가족들은 전용기를 타고 본국으로 향했다. 본국은 이미 초봄의 시기로 접어들어, 추운 겨울을 지난 후 생기가 넘치는 대지를 뽐내고 있었다. 나뭇가지엔 새싹이 돋았고, 벚꽃이 활짝 피는 계절이었으니 말이다. 지아는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었고, 무무는 연한 초록색 원피스를 입고 지아의 곁을 따랐다. 도윤도 모처럼 정장을 입지 않고 모녀와 함께 커플룩을 맞춘 듯한 연한 초록색 줄무늬 셔츠와 흰 바지를 입고 있었다. 도윤은 차 문을 열고 무무를 안아 내렸다. 세 사람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눈길을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8화

    배신혁은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심규철은 말 그대로 충격에 휩싸였고, 머릿속엔 온통 한대경이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이 가득했다. ‘낡은 민간 보호시설에서 삼류, 사류 사람들과 부대끼며 자란 걸로도 모자라, 그 무엇도 가져본 적이 없으니 잃는 것도 두렵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이영화가 세상을 떠난 이후, 심규철은 심장후에 대해 그다지 마음을 쏟지 않았지만 물질적인 부분만큼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친아들을 찾은 지금, 심규철은 가슴 한편이 아려져 왔다. ‘그 결혼이 아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주고 싶어.’ 한편, 지아는 바닷가에 서서 멀리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비록 시월은 이미 바다 밑에 잠겼을 테지만, 지아의 마음은 조금도 평온하지 않았다. ‘죄의 근원이 사라지면 무슨 소용이야? 우리 소씨 가문은 이미 산산조각이 났고, 엄마는 아직 행방불명 상태인데.’ 지아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아직 젊은데, 무슨 한숨을 그렇게 쉬어?”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한대경이 물었다. 지아의 옆에 털썩 앉은 한대경은 바닥의 모래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한대경은 옆자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앉아봐. 별건 아니고, 그냥 얘기나 좀 하자고.” 지아는 한대경을 한 번 흘긋 보고, 무의식적으로 몇 걸음 물러난 뒤에야 자리에 앉았다. “아니, 조선시대도 아니고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거야, 뭐야?”한대경은 지아가 자신을 뱀 보듯 피하는 모습이 못마땅한 듯 말했지만, 지아는 고개를 저었다. “한대경, 우리가 친구로 지낼 순 있어도 그 이상은 불가능해.” 그 순간, 갑자기 다가온 한대경이 짙은 남성미로 지아를 압도했다. “소지아, 진짜 날 피하고 싶었다면, 애초에 나한테 희망을 주지도 말았어야지!” “정말 미안해, 한대경.” 지아는 그 임무에 한대경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터였다. “시도도 해볼 수 없다는 거야? 단 한 번이라도?”한대경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7화

    심규철은 약간 지친 듯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상황에 부닥치게 된 거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를 찾은 것 같군.’ ‘이 세상에 30년 동안 얼굴도 못 본 아들이 만나자마자 가족 걱정은커녕 결혼하겠다고 소리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리고 평범한 여자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상대는 이미 이혼한 데다 아이를 넷이나 데리고 있는 여자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가장 골치 아픈 건, 소지아의 전남편이 내 여동생의 친아들이라는 사실이야. 게다가 두 사람의 관계도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잖아?’ ‘손바닥도 손등도 모두 살인데,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심규철은 매우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한대경은 심규철의 곤란한 표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 한 개비를 건넸다.“나는 끊었단다.”심규철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한대경은 혼자 담배를 피우며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모습은 공사장의 현장 소장과 같았는데, 도무지 한 나라의 군주다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심규철은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대체 그동안 어떻게 자란 거지?’ “되는지 안 되는지 확답이나 주시죠.”한대경이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하자, 심규철은 아들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쉽지 않을 거라면 어쩔 셈이지? 그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야. 물론 두 집안의 사정을 따지는 건 아니란다. 네가 다른 사람을 좋아했다면, 거지가 상대라 해도 바로 혼약을 허락해 줬을 거야. 하지만 상대는 소씨 가문 사람이라고.” “넌 모를 수도 있겠지만, 요즘 소씨 가문에 문제가 좀 생겼어. 그 집안은 이미 진정한 소씨 가문과 관계가 끊긴 상태인 데다,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단 말이지... 이 결혼은 정말 쉽지 않을 거야.”한대경이 담배꽁초를 던지며 말했다.“그럼 안된다는 겁니까? 아버지라는 호칭을 쓴 게 아까울 지경이군요.” 한대경은 기분이 상한 듯 몸을 돌려 떠났고, 심규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뭐야, 왜 저렇게 쉽게 포기

  • 지나친 복수와 놓쳐진 사랑   제1666화

    시름시름 앓던 심규철은 지금까지 자신이 낳은 친아들이 오랜 세월 동안 외지에 버려져 있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아들이 수많은 겪었음에도 거대한 나무처럼 성장했다는 사실에 아주 놀랐는데, 거대한 나무는 맞지만, 어쩐지 그 나무는 조금 삐딱하게 자란 것 같았다. 부자지간임에도 피는 물보다 진하지 않은 것 같았으니 말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진실이 드러났다면,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동적이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한대경은 아버지를 만난 기쁨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심씨 가문의 큰아들이라는 신분과 소씨 가문의 여섯째와의 혼약에 훨씬 더 관심을 보이는 했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복잡하니, 천천히 논의해 보자꾸나...”“제가 친아들이라면서요?”한대경은 성격이 급하고 불같았으며, 그의 어머니와 똑같이 누군가의 설득 따윈 듣지 않았다. 한대경은 이미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관계를 철저히 파악했기에, 혼약의 존재를 알아낸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하마터면 혼약이라는 걸 전혀 몰랐을 뻔했잖아?’“그럼, 당연하지. 이미 친자 확인 결과도 나왔으니 말이야... 하지만 지금 소씨 가문 상황이 조금 복잡해서 지금은...”“어쨌든 저랑 결혼할 사람은 소씨 가문의 여섯째인 거죠?” “그래.”“그 혼약은 심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어른들이 정한 거고요?” “그래.”“그럼 됐으니, 어서 결혼부터 준비해 주세요. 저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습니다.” 심규철은 아들이 아주 성급하다는 것을 느꼈다.‘기다리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잖아? 만약 이 상황이 올림픽이었다면 쟤는 분명히 부정 출발로 탈락했을 정도야.’ “결혼 같은 중대한 일보다는 네 아비가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하지 않니? 그토록 오래 떨어져 지냈는데, 네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냐는 말이야.” 한대경은 냉담하게 말했다.“전혀요, 아버지는 이미 반쯤 땅에 묻혀가는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에 대해 제가 뭘 궁금해해야 하죠?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