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지아는 갑자기 바닥에서 뛰어올라 뱀 동굴에서처럼 도윤을 꼭 껴안았다.“나쁜 놈, 누가 도망가라고 했어?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도윤은 한쪽 무릎을 꿇고 동공이 심하게 확장되며 놀라움으로 가득 찬 눈빛을 보였다.어젯밤 지아는 분명 도윤을 역겹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미워했다.그는 다시는 기회가 없을 거라 생각했고 지아를 울리지 않으려 그녀의 눈앞에서 눈엣가시가 되지 않기 위해 떠나기로 했다.하지만 지아의 포옹에 불구덩이에서 타죽었던 재가 되살아나는 것 같았고, 도윤의 심장은 저도 모르게 마구 뛰며 억눌렸던 감정이 조금씩 되살아났다.“지아야, 뭐라고 그랬어...”지아는 도윤의 품에서 나와 이를 갈았다.“내가 엄청 걱정했다고, 못 들었어?”지아는 도윤의 옷깃을 세게 잡아당기며 자신의 목을 기울여 도윤의 입술에 키스했다.도윤의 머릿속이 펑 터졌다.지... 지금 뭘 본 거지?지아가 먼저 입을 맞추다니.예전엔 지아와 입 맞추려 갖은 방법을 썼는데 오늘 그녀가 먼저 다가오자 도윤은 익숙하지 않은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도윤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고 깨어나자마자 지아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두 사람의 머리 위로 비가 쏟아져 내렸지만 이 순간 시공간이 멈춘 것 같았다.도윤이 그토록 오랫동안 억눌러왔는데 지아라고 다를까.사랑과 증오, 죄책감 사이에서 오고 가다 그토록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서로 낯선 사람이 되길 선택한 것이다.세월이 모든 것을 씻어낸다는 옛말처럼 지아는 지난 몇 년 동안 도윤을 잊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번 재회를 통해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과거 도윤이 지아를 물에서 건져 올린 순간처럼 한 번의 눈빛이 평생의 기억으로 남았다.앞으로 지아는 아무리 멀리 떠나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도윤을 잊지 못할 것이다.오래도록 지속된 키스에 이 순간만큼은 지아는 모든 증오를 잊었다.내내 조마조마하던 마음이 살아 있는 도윤을 보는 순간, 오랫동안 쌓였던
그제야 꿈속에서 깨어난 도윤은 기쁨에 겨워 흥분에 취한 나머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내려오느라 다쳤을 지아를 생각하지 못했다.“지아야, 어디 다쳤어?”지아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도윤을 쫓아왔고, 막상 도윤을 만나자 어색한 표정이 가득했다.어젯밤 자신이 당당하게 도윤을 밀어붙였는데 이렇게 빨리 후회할 상황이 오다니.도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머릿속은 엉망이고 마음은 더 혼란스러웠다.“난 괜찮아.”동굴 안에는 불빛도 없었고 밖도 흐릿해서 낮이었지만 실제로는 밤과 비슷했다.다행히 도윤은 야생 생존 경험이 많았기에 비가 오기 전에 마른 장작을 많이 주워 와 자신 대신 지아를 위해 썼다.도윤이 라이터를 꺼내 마른 장작에 재빨리 불을 붙이자 동굴 안의 어둠은 순식간에 따뜻한 빛으로 밝아졌다.도윤이 돌아서서 지아를 바라보니 검은색 방풍 등산복을 입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긁힌 자국에 안에 입은 나시가 보였다.“어디 다쳤어?”도윤이 다시 물었지만 지아는 그간의 경험이 있으니 도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무의식적으로 손을 등 뒤로 숨기며 말했다.“다치긴 누가, 이 산의 길이 너무 익숙해서, 난...”도윤이 손목을 잡아당겨 손을 빼내자 피투성이가 된 손바닥에 마음이 아팠다.“지아야!”“괜찮아, 난 당신 생각만큼 약하지 않아. 이 작은 상처는 며칠이면 나을 거야.”도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미안해, 내가 또 다치게 해서.”“무슨 소리야,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난, 난 그저 여기서 죽으면 사람들이 날 의술에 소질이 없다고 할까 봐 그래서... 읍...”도윤은 이런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지아의 말을 막았고 아무리 바보라도 지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전에는 지아와의 재결합에 서두르느라 자신이 했던 일들 때문에 지아의 마음속에 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이 있다는 걸 잊고 있었고, 그 매듭이 풀리지 않았거나 그녀 스스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면 여전히 지아에게 진심을 보여줄 시간
지아는 큰 셔츠 하나를 찾아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침낭에 누웠다.잠시 후 도윤이 돌아왔을 때 고개를 내민 지아는 두 사람이 신혼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도윤의 몸에 걸친 옷은 방수가 되긴 했지만 꽤 젖어 있었기 때문에 재킷을 벗어서 옷걸이에 걸자 안에는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젖은 옷이 달라붙어 몸의 근육 라인이 그대로 드러났고 도윤이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지아야... 나 웃옷 벗어도 되지?”어젯밤의 경험 때문에 감히 지아를 자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지아는 고개를 돌렸다.“응.”도윤은 웃옷을 벗어서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가 지아가 고개를 돌리는 것을 보고 바보처럼 웃었다.꿈을 꾸는 것 같았다. 지아는 목숨을 걸고 자신을 찾아왔는데, 그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일까.도윤은 문득 중독된 게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리워하던 지아를 만날 수 있었겠나.겨우 지아의 마음이 풀어졌으니 이제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도윤은 계속 장작을 쌓았지만 마른나무는 금세 타버렸고, 비가 언제까지 내릴지 알 수 없었다.정글은 낮과 밤의 기온 차가 크고, 특히 비 오는 밤에는 더 심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가 그치지 않으면 오늘 밤 장작을 많이 태워야 했다.그러려면 미리 장작을 충분히 준비해야 하는데, 아까 많이 모았다고 해도 내일까지 태울 수 없을 것이다. 지아가 곁에 있으니 하루를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보내고 싶었다.“지아야, 나 나갔다가 금방 올게.”도윤은 칼을 빼 들고 근처로 갔고, 한 시간 후 맨 어깨에 커다란 장작 뭉치를 짊어지고 뒤에 한 다발을 더 끌고 걸어 들어왔다.옷을 입지 않은 남자의 멋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도윤의 가슴과 복근, 특히 작업복까지 내려오는 두 개의 치골 라인이 선명하게 보였다.그는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고 머리에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그런 도윤에게 남성 호르몬이 마구 뿜어져 나와 색욕이 많지 않은 지아도 넋 놓고 보느라 눈가에 열기가 올랐다.도윤
지아의 다리는 마네킹처럼 비현실적으로 곧게 뻗은 데다 약탕에 자주 몸을 담그는 습관까지 더해져 발바닥마저 백옥처럼 하얗고 투명한 핑크빛이 감돌았다.지금 이 자세는 그녀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내 치명적으로 섹시했다.도윤은 어젯밤 옥수수밭에서 둘이 했던 일을 생각하며 침을 꿀꺽 삼켰다.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흥분되는 것이었다.“지아야...”도윤의 입이 말랐고 지아는 고개를 돌려 먹잇감을 바라보는 늑대 같은 그의 눈빛을 보았다.아이를 넷이나 가진 부모였지만 몇 년 동안 만나고 헤어진 탓에 지아는 여전히 소녀처럼 부끄러워했다.심지어 가끔은 무의식적으로 피했다가 너무 내숭 떠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하지만 많은 것들이 지아의 몸속에는 완전히 무의식적으로 새겨져 있었다.마치 지금처럼 지아는 물도 챙기지 않고 서둘러 침낭으로 들어갔다.지아가 놀란 것을 본 도윤은 황급히 시선을 돌리고 물을 꺼내 건네주었다.무심코 도윤의 손에 닿자 아직 마르지 않은 물기가 뜨거운 체온을 타고 느껴지며 자신의 손가락까지 젖는 것 같았다.흠칫한 지아는 고개를 숙이며 고맙다고 말했다.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부부도, 친구도, 낯선 사람도 아닌 묘한 관계였다.한 사람은 또 잘못해서 역겹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두려웠고, 다른 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운 상태였다.학창 시절 같은 반 친구를 짝사랑하다가 지우개가 어쩌다 넘어갔고, 지우개를 건네주다가 서로의 손가락이 닿았을 때 주체할 수 없이 마음이 설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도윤은 갈아입을 바지를 찾지 못하고 목욕 타월을 꺼내 둘렀다.밖에서는 빗소리를 제외하고는 가끔 장작이 타는 소리만 들렸다.젖은 옷은 불에 마르면서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지아는 건빵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침낭 속에서 잠이 들었다.다시 잠에서 깨어났을 때 공기를 가득 채우는 향기에 지아는 군침이 들었고 제대로 눈을 뜨기도 전에 귓가에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일어났어?”지아는 정신이
도윤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자른 대나무를 조립하기 시작했다.고기를 굽는 동안 나무껍질과 덩굴을 모아 약간의 가공을 거쳐 밧줄로 만들었다.그는 여전히 상의를 입지 않았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자 등 전체에 상처가 드러내며 매우 남자다운 모습을 보였다.도윤은 고개를 숙이고 나지막이 설명하며 작업을 했다.“땅이 벌레 때문에 더러울까 봐 대나무를 잘라서 간이침대를 만들어 밤에도 편안하게 잘 수 있게 하려고.”도윤은 이 작업에 익숙해서 최대 30분 만에 침대를 만들 수 있었다.옆에는 그가 가져온 나뭇잎과 마른풀이 있었는데, 모두 습기가 조금도 없이 말리려고 미리 불 옆에 놓아두었다. 이런 폭우 속에서 어디서 찾았는지 모를 정도였다.아무 느낌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하룻밤만 자면 되는 건데 왜 귀찮게 그래?”“널 위해선 귀찮은 거 없어.”도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업에 고개를 파묻은 채 말했다.지아가 침대 너비를 훑어보니 도윤은 자신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듯했다.동굴에 불이 있다고 해도 오랜 시간 자고 나면 습기가 있을 테고, 몸속의 독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기에 지아가 말을 꺼냈다.“저기...”도윤은 지아를 돌아보았다.“왜 그래. 어디가 불편해? 또 손이 아파?”“아니.”지아는 자신을 바라보는 도윤의 시선이 조금 당황스러웠다.“내 말은 어차피 만들 거면 도윤 씨 것도 하나 만들어. 이 시기엔 원래 비가 많고 내일 또 큰 비가 올지 모르는데 폭우 속에서 간다는 건 말도 안 돼.”“난 필요 없어, 귀찮아. 남자는 바닥에 드러누우면 그만이야. 밖에서 그렇게 많은걸 따질 필요가 없지.”고개를 푹 파묻고 일에 몰두하는 남자의 모습에서 오만한 대표의 모습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도윤이 다시 한번 대나무 장대를 잡으려는 순간 작은 손이 그의 손을 잡았다.그 앞에 맨발로 서 있는 지아의 등 뒤로 불빛이 펄떡이며 뛰어올랐다.“내 말대로 해.”“알았어.”도윤은 조심스럽게 그녀를 힐끗 보았다.“근데 침낭이 하나밖에 없어서 싱
이 남자가...전에는 무모하고 위압적인 태도로 원하는 건 뭐든 요구하는 데 익숙했는데, 갑자기 예의를 갖추자 지아는 다소 어색했다.“나 배고파.”지아가 거절하자 도윤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지만, 억지로 강요하지 않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많이 먹어.”그렇게 말하며 도윤은 조용히 다시 침대를 만들러 갔다.지아는 멧돼지 고기를 한입 베어 물며 얼굴을 만져보니 동굴의 온도 때문인지 뜨겁고 빨갛게 달아올랐다.도윤의 든든한 뒷모습을 보면 그런 남자를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어젯밤의 자극적인 정사는 지아에게도 남달랐다.미움은 제쳐두고, 그런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잠자리에 드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었다.하지만 인간과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감정이다. 일련의 일들을 생각만 해도 지아는 가슴을 막는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도윤과의 친밀한 행위는 과거 자신에 대한 배신과도 같았다.도윤은 다 잊었다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다. 과거의 지아는 검은 수렁 속에 갇혀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다.지아는 앞만 보고 달려왔지만 진정으로 앞을 바라보지 못한 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이 모든 일들이 겪고 난 후 지아는 자신이 여전히 도윤을 사랑한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이 마음을 어떡해야 할까.분명 지금은 도윤도 많이 변해서 조심스러워졌지만 지아는 그런 모습을 원하지 않았다.그녀가 보고 싶었던 건 자신감 넘치고 강인한 도윤의 모습이었다.숲에서 멧돼지를 망설임 없이 깔끔하고 단호한 손놀림으로 죽인 것처럼.지아는 도윤이 우유부단해져서 자신 때문에 또다시 함정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지아야, 다 끝났어, 내가 해볼게.”도윤은 침대에 누워 두 번 구르며 지탱력을 테스트하고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그는 나뭇잎과 건초를 더 깔며 입으로 중얼거렸다.“호랑이를 만나지 못한 게 아쉽네. 호랑이 가죽을 벗겨 이불을 만들 수 있는데...”도윤은 지아와 함께 있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돌보았고 이건 남편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예전에는
지아는 씻고 나니 온몸이 편안해졌고, 마음도 서서히 맑아져 이미 결심한 뒤였다.뒤돌아보니 도윤이 작은 노인처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그는 물고기 덫을 짜느라 바빴다. 떠나기 전에 건빵과 물 두 병, 과일 몇 개를 가져왔는데 원래 의도는 샘물 좀 마시고 야생 과일을 따서 먹으며 가능한 한 빨리 여길 떠나는 것이었다.하지만 폭우와 갑작스러운 지아의 등장으로 모든 계획에 차질이 생겼고, 내일도 비가 올 것 같자 도윤은 서둘러 물고기 덫을 뜨고 낚시 준비를 했다.지아는 어느새 도윤이 만든 대나무 침대에 앉아 새하얀 두 다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피곤하지 않아?”지아가 물었다.어떻게 피곤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는 밤새 잠도 못 자고 오늘도 하루 종일 바빴으며, 불 옆이 엄청나게 더워서 이마와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곧 끝나. 저기 강에 사는 물고기들은 살이 통통해. 비가 멈춘 뒤 물가에 내려가면 내일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거야.”말하며 도윤은 지아의 다리에서 시선을 떼고 물고기 바구니를 챙겨 어둑어둑한 밤 속으로 들어갔다.돌아왔을 때 그의 머리와 몸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는데, 찬물로 샤워를 한 게 분명했다.지아가 돌아보자 남자의 모습은 갓 목욕을 마친 인어처럼 보였고, 잘 다듬어진 복근을 따라 물방울이 신비로운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늘어져 있었는데 전에 있던 매서움은 사라지고 부드러움이 보였다.남자 아이돌 리더처럼 허리 몇 번 흔들면 여자들이 미칠 것 같았다.지아는 문득 얼마 전 봤던 영상 속에서 마스크와 모자를 쓴 남자들이 카메라 앞에서 몸을 흔들자 그 밑에 여자들이 수만 개의 댓글을 달며 난리를 부리던 게 떠올랐다.도윤의 몸은 일부러 헬스클럽에서 단련한 근육과는 달리 온몸에 난 상처가 야성미를 더했다.어느새 도윤은 지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양옆에 손을 지탱했다.앉아 있는 지아 위로 도윤이 살짝 몸을 숙이자 그의 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그녀를 감쌌다.“뭘 보고 있는 거야?”지아는 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지아는 대나무 침대에 손을 올린 채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하지만 속검은 도윤이 일부러 침대를 1.2미터 정도로밖에 만들지 않았는데 어디로 도망가겠나.곧 지아의 손바닥이 대나무 침대 가장자리에 닿았다.어젯밤엔 욱하는 마음에 한 말이었다. 강욱의 신분으로 자신을 만졌을 때도 지아는 역겨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인간은 화가 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날카로운 말로 상처를 입히는 경향이 있었고 지아는 다시 그 말을 할 리가 없었다.“홧김에 한 말이야.”자신의 마음을 분명하게 알게 된 지아는 어제와 같은 담대함이 없었다.도윤은 야생 표범처럼 침대에 무릎을 꿇고 조금씩 앞으로 기어갔다.곧 지아는 그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에 완전히 둘러싸였고 두 손으로 겨우 온몸을 지탱하고 있었다.도윤의 입술이 지아의 가늘고 하얀 목에 닿자 지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며 불리한 상황에 부닥쳤다.얇은 입술이 떨어지는 순간, 지아는 부드러운 도윤의 말을 들었다.“이러면 어때, 역겨워? 역겹다면 그만할게.”남자는 그녀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사람의 마음과 본성을 다스리는 데 있어 도윤은 확실히 달인이었다.지아는 섬세하게 피어난 꽃처럼 폭우 속에서 가볍게 흔들리며 몸을 떨었다.도윤의 입술이 천천히 위로 올라가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진득한 느낌에 지아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가슴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얇은 입술이 지아의 머리카락에 닿았고, 이로 비녀를 물어 부드럽게 빼내자 지아의 수천 가닥 검은 머리카락이 아래로 떨어졌다.도윤은 지아가 머리를 풀어 헤친 모습이 좋았다. 나른하면서 매혹적이었다.비녀를 만지작거리던 그가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지아야, 넌 이런 모습일 때가 가장 아름다워.”이렇게 말하며 도윤은 비녀의 끝으로 지아의 피붓결을 따라 스쳐 지나갔는데 시원한 촉감이 쇄골을 지나 계속 내려가다가 단추 앞에서 멈췄다.마치 금기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도윤은 부드럽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