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 씨, 내가 충고하는데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거예요. 당신이 아무리 못 본 척을 하든 못 들은 척을 하든 기억상실을 했다 해도 남준 오빠는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박민정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차분하게 듣고 있었다.“다 말했나요?”이지원의 어안이 벙벙해하는 모습에 박민정은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그가 당신을 사랑한다고 그렇게 확신하면서 이민정 대스타님께서는 왜 원한이 가득한 얼굴로 저를 찾아왔을까요?”말을 마친 박민정은 냉소를 흘리고는 자리를 떠났다.눈앞에서 사라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지원은 예전의 도도하던 박씨 가문 아가씨일 때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 자신이 박씨 가문의 후원을 받기 위해 박민정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일을 생각하니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지금 박씨 가문은 이미 몰락했는데도 박민정은 뭘 믿고 아직도 이렇게 도도한 척한단 말인가? 이지원은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이때 매니저 윤재희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지원 씨, 전에 가지고 싶다던 곡 말인데요, 희망이 보여요.”“정말?”“다만...”매니저가 조금 머뭇거리자, 이지원이 말했다.“뭐가 문제야? 말해 봐.”“민 선생이 해외의 마이너 플랫폼에 올린 곡이 하나 있는데 아직 저작권을 신청하지 않았어요. 제가 이 곡을 들어본 적이 있는데 분명 히트할 거예요. 우리가 조금만 편곡하면 돼요...” 매니저의 말은 그냥 표절하자는 뜻이었고 이지원은 물론 알아들었다.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저작권이 없다면 그 사람의 작품이라 할 수 없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이지원의 동의를 구한 매니저는 그제야 마음 놓고 작업에 들어갔다.한편 전화를 끊은 이지원은 어떻게 박민정을 상대할지 고민했다....박민정은 집으로 가지 않고 예전에 살던 하씨 가문 저택으로 향했다.박민정의 어머니 한수민과 동생 박민호는 하씨 가문을 말아먹은 뒤 저택까지 저당 잡혔고 그곳에는 지금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박민정은 죽음으로 위
“난 왜 본 적이 없지?”그러자 박예찬이 입을 열었다.“민기 아저씨의 신분은 아주 비밀스러워 엄마가 위험에 처하지 않은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아.”“그래서 해외에 있었을 때도 주변에 보디가드가 있단 말만 들었지, 본 적이 없었구나.”조하랑은 찹쌀떡을 먹으며 말했다. 그녀의 곁에도 전문 경호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몸을 숨기지 않고 항상 그녀와 십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대기하고 있어 한눈에 찾아볼 수 있었다.연지석은 해외에서의 신분이 특수해 그의 주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까 봐 경호원을 보내 박민정의 가족을 지키게 했다. 십분 후, 정민기가 문 앞에 나타났다. 그는 꼿꼿한 정장 차림으로 다른 사람이 쉽게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조하랑은 그를 보자마자 두 눈이 반짝거렸다.“미남이시네...”박예찬은 센스 있게 그녀에게 티슈를 건네줬다.“입 좀 닦아, 이모.”조하랑은 침을 꿀꺽 삼켰다.박민정은 자기 절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얼빠였지만 마음속 깊이 숨겨둔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를 위해 조하랑은 27살이 될 때까지 결혼은 물론 연애도 해보지 못했다.“들어와요. 이분은 제 친구 조하랑이예요. 다른 사람은 없어요.”박민정의 말에 정민기는 방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이때 박예찬이 다가와 예의 바르게 말했다.“아저씨, 내일이면 단오잖아요. 들어와서 찹쌀떡 드세요.”정민기의 차갑고 딱딱한 얼굴선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괜찮아, 고마워.”박민정은 그가 혼자 있기 좋아하는 것을 알기에 더 이상 강요하지 않고 찹쌀떡을 조금 담아서 그에게 건네줬다.“미리 명절 축하드려요.”“네, 고마워요.”정민기는 찹쌀떡을 받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그가 떠나간 후 조하랑은 궁금해서 물었다.“이 자식 왠지 느낌상 보디가드 같지 않은데?”“무슨 뜻이야?”“뭐랄까... 딱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느낌이 그래...”정민기가 박민정에게 주는 느낌도 보통 경호원이랑은 차이가 있었다.비록 정민기가 박민정을
박예찬은 박민정이 힘들게 자신을 돌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아무리 연지석이 괜찮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주변은 너무 위험하므로 박예찬은 엄마가 안전한 남자 곁에 있기를 바랐다.조하랑은 박예찬이 이런 궁리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녀도 옆에서 거들었다.“우리 아빠는 비록 내가 비즈니스 관계의 결혼을 하길 바라지만 소개해 준 재벌집 자제들은 다 괜찮게 생겼어.”박민정은 두 사람의 말에 당해내지 못하고 박예찬을 바라보며 말했다.“좋아. 하지만 어디까지나 하랑이 이모를 대신해서 나가는 것뿐이지, 너에게 아빠를 찾아 주려고 나가는 건 아니야.”“알았어.”박예찬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TV에서 방영하던 로맨스 드라마를 떠올렸다. 사랑은 보통 갑작스럽게 찾아왔으며 이런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야말로 가장 쉽게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 박예찬과 박윤우는 아직 너무 어려서 엄마를 지킬 힘이 없었고 만약 국내에 있는 동안 괜찮은 남자를 찾아 엄마를 보살피게 한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박민정은 이런 박예찬의 속궁리를 알 길이 없었다.밤이 되자 박예찬을 다독여 재운 뒤 박민정은 조하랑과 앉아서 대화를 나눴다. “너 내일 강연우를 찾으러 가려고?”조하랑은 부정하지 않았다.“그래,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내일 본가로 돌아온대. 민정아, 나 대신 선 자리에 나가줘서 고마워. 만약 이번 일로 강연우를 만나지 못한다면 난 아마 평생 후회할 거야.”박민정은 그녀를 안아줬다.“우리 사이에 굳이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아도 돼.”조하랑은 약간 목이 메어왔다.“너와 유남준은 지금 어떻게 돼가고 있어?”“그냥 그대로지 뭐...”그 말을 듣고 조하랑은 박민정을 꼭 끌어안았다.“하랑아, 나 갑자기 한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게 빚을 지는 거라는 말이 정말 맞다고 느껴져.”박민정은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너와 강연우는 서로 사랑하니까. 꼭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야.”조하랑을 위로하고 박민정은 쉬러 방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튿날, 새벽 다섯 시에 박민정은 조하랑을 문 앞까지 바래다줬다.나가기 전 조하랑은 몹시 긴장해 있었다.“민정아, 나 오늘 어때?”조하랑은 본바탕이 아주 좋았다. 둥글고 커다란 두 눈과 계란형 얼굴에 부드러우면서도 귀여움까지 겸비하고 있었다.“너무 예뻐.”“그럼 됐어. 너 그거 알아? 난 연우를 만난다는 생각에 너무 설레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긴장돼. 연우가 혹시라도 나를 싫어할까 봐...”“아냐, 그럴 리가 없어.”“우리 하랑이가 이렇게 예쁜데, 누가 싫어한단 말이야.”박민정이 조하랑을 안심시키자, 조하랑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문을 나섰다. 박민정은 그녀를 바래다주고 방으로 돌아갔다.“엄마.”박예찬은 왠지 벌써 깨어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하랑은 새벽 3, 4시 때부터 깨나서 준비했다.“우리가 너무 떠들어서 깬 거야?”박민정이 앞으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 물어보자, 박예찬은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질문을 해왔다.“엄마, 하랑이 이모가 만나려고 하는 아저씨 좋은 사람이야?”박민정은 한참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래, 하랑이 이모한테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그녀는 대학교 때 강연우를 만난 적이 있었다.그는 그들 동기 중 가장 잘생긴 남학생이었지만 아쉽게도 가정형편이 별로였다.조하랑과 강연우가 같이 있으면 외모는 진짜 잘 어울렸지만, 집안 조건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엄마에게는 연지석 삼촌이 좋은 사람이야?”박민정은 멈칫하더니 아무런 고민 없이 대답했다.“물론이지. 지석이 삼촌은 우리에게 엄청 잘해주잖아.”“그럼, 우리 돌아가면 지석이 삼촌 받아주면 안 돼? 주변에 예쁜 여자가 많긴 해도 다 엄마보다 별로야. 그리고 위험하기는 하지만 엄마를 지켜줄 거라고 믿어.”박민정은 또 한 번 놀랐다.유남준의 미니 버전 같은 아들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며 박민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윽고 그는 아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너 어제 엄마 보고 선보러 가라며?”“내가 확률 계산을 해봤는데 엄마가 성공적으로
“아까 그 뭐야 최씨 집안 따님인가 뚱뚱한 게 꼭 돼지 같지 않아? 그러고도 무슨 자신감으로 선보러 온 걸까?”“하하하, 그냥 공룡 같던데 걸을 때 건물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잖아.”“그리고 전에 서씨 집안 따님은 새빨간 입술이 꼭 귀신같았지...”“이번에는 누구야?”“아마 조씨 가문 따님일걸, 듣기로 해외에서 연수하고 금방 돌아왔다고 하던데...” “해외에서 돌아왔으면 분명 개방적이고 방탕할 거야.”“조금 있다 우리 앞에서 춤을 추라고 하고 잘 추면 후보 자리에 올려준다고 할까. 하하하...”안에서 들려오는 저속한 말소리에 박민정의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녀는 이제야 왜 교양이 있고 품위가 있는 부잣집 따님들이 맞선을 마친 후 하나같이 화내고 욕설을 퍼부으며 떠났는지 알았다.이 사람은 애초에 맞선을 보러 온 게 아니라 친구들에게 유흥을 즐기게 하고 있었다.박민정은 조하랑이 이곳에 오지 않은 걸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조하랑의 성격상 오래도록 속상해할 게 뻔했다.안내원을 따라 들어선 그곳은 원래대로라면 점잖고 품위 있는 장소여야 했지만 지금은 더없이 더럽고 지저분했다.그들은 일부러 부잣집 딸들을 자극하기 위해 품에 몇 명의 예쁘장한 술집 아가씨를 껴안고 있었다.박민정이 나타나자 그들은 웃음을 터뜨렸다.“오우, 마스크를 쓰고 왔네.”“너무 못생겨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걸까요?”그들의 비웃음 소리가 귀를 찔렀지만 박민정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시선을 혼자서 술을 마시며 카드놀이를 하는 메인석에 앉아있는 김인우에게로 돌렸다.누가 그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졌기에 진주의 부잣집 딸들을 다 불러와 혼자서 고르고 있나 했더니 다름 아닌 진주의 황태자였다.만약 유남준이 진주의 폭군이라면 김인우는 진주의 황태자였다.한 사람은 진주 전체의 경제를 장악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진주 사람들의 생명줄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사람의 관계는 우호적일 수밖에 없었다.김인우는 아예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았기에 당연히 이번에 들어온 사람이 조
박민정의 맑은 눈과 마주친 순간, 김인우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았다!닮은 것이 아니라 분명히 박민정이었다.김인우는 그녀가 왜 맞선 자리에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박민정은 정민기에게 말했다.“갑시다.”정민기는 박민정을 데리고 떠났다.땅바닥에 엎어진 그 남자는 입으로는 욕을 하며 웅얼거렸다. “가지 마! 너희는 나한테 찍혔어. 딱 기다려!”다른 재벌 집 자제들이 비아냥거리며 그를 자극했다.“장 씨, 너무 약해빠졌어. 잘났으면 복수하던가!”“그래, 소리만 지르지 말고!”그 남자도 정민기에게 손을 대려고 했지만 방금 걷어차인 고통으로 일어서지도 못했다.어려서부터 받들어 자랐기에 이런 억울한 일은 한 번도 없었다.그는 기어서 일어나더니 욕설을 퍼부었다.“당장 사람을 데리고 가서 혼쭐을 내주겠어.”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인우가 그 남자의 앞에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는 차가웠다.“아까 무슨 짓을 한 거야?”“그년...”경호원 몇 명은 눈치가 없는 장 씨에게 주먹을 날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는 땅에 엎어져 피를 토했다.장 씨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몰랐다.주위의 다른 재벌 집 자제들도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김인우는 그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비서에게 물었다. “얘가 방금 무슨 짓을 했었어?”비서는 남자가 박민정을 모욕하려고 한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이 놈의 손을 남겨둘 필요가 없어.”김인우는 더 이상 선을 볼 기분이 나지 않아 박민정을 찾으러 갔다.등 뒤로 재벌 집 자제들이 애원하며 용서를 빌었다.그들은 끊임없이 흐느낄 뿐, 조하랑이 어떤 인물이며, 김인우가 왜 그녀를 위해 화를 내는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아마 장 씨는 오늘 여기에서 죽어나갈게 분명했다.김인우가 파라다이스에서 나올 때 박민정은 이미 사라졌다.그는 축 처진 손을 조이며 아까 현장에 온 사람들을 자세히 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원래 김 어르신께 선을 보는 모양새만 보여 드리고,
아침 일찍 유남준은 보디가드한테 박민정이 오늘 오전에 파라다이스에 갔다고 전해 들었다.“박민정이 파라다이스에는 왜 간 거야?”유남준이 아는 바에 따르면, 파라다이스는 재벌 집 자제들이 술을 마시는 장소이며, 내막은 더할 나위 없이 더러웠다.보디가드는 잠시 머뭇거렸다.“맞선 자리인 것 같습니다.”유남준이 눈매를 가늘게 뜨자 주위의 기압마저 가라앉았다.그녀가 볼일이 있다던 것이 맞선 보러 가는 것일 줄이야...유남준은 박민정을 다시 보게 되었다.그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보디가드는 유남준의 성격을 알기에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조심 사무실을 나왔다.오후 두 시,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유 대표님.”박민정이 들어오자마자 유남준 주위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눈치 챘다.그는 음험한 눈동자를 치켜들고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 차갑게 물었다.“왔어?”유남준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박민정은 무슨 뜻인지 몰랐다.“네, 저랑 같이 갈 곳이 있다고 어제 얘기 하셨잖아요.”유남준은 대답 없이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오늘 오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어?”그는 박민정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유남준은 이미 알고 있기에 이런 물음을 물어본 것이다.그의 심문하는 듯한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박민정은 한 치의 숨김이 없이 말했다. “소개팅 했어요.”유남준은 화가 나 헛웃음만 지었다.이런 말도 스스럼없이 할 줄 몰랐다.그는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고 말했다. “왜? 그렇게 공허하고 쓸쓸했어? 남자 둘로는 부족해?”공허하고 외롭다니? 그리고 무슨 두 남자?박민정은 화가 났다.유남준은 자신이 뭐라도 된 줄 아나 싶다.그녀는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유 대표님, 뭔가 오해를 하신 것 같은데, 저는 싱글인데 왜 선을 못 보나요?”“싱글?”유남준은 더 이상 마음속의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어두운 얼굴로 박민정의 팔을 휘어잡고 그녀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싱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밟아놓는 것은 참 무정한 짓이다.박민정은 입술을 꼭 오므렸고 손바닥은 통증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팠다.바움 그룹이 박민호 손에 있을 때, 비록 적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살아남았었다.하지만 이제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희망도 사라졌다.박민정은 유남준이 자신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황무지가 된 곳을 바라보았다. 목이 시큰거리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강자는 살아남고 약자는 죽는 법이죠. 유앤케이 그룹 대표인 당신의 결정에 따를게요.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가 쉬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어도 박민정은 여전히 기억을 잃었다고 인정하지 않았다.유남준은 그녀가 사태를 파악한 후, 자신에게 따지고, 울고, 소란을 피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었다.예전에 그녀가 유남준을 보던 시선은 지금처럼 담담한 것이 아니라 빛이 났었다.유남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아팠다. 훤칠한 손이 그녀의 목을 잡았다.“너도 박씨 가문을 나한테 팔아버린 거잖아! 잊어버렸다고 하면 없던 일이 되는 거야?”“나 아직 죽지 않았어. 그러니 너도 평생 남에게 시집갈 생각 마!”그는 눈꼬리가 빨개지고 이성을 잃었다.박민정은 창백한 채 입을 열었다.“하지만 제 기억엔 당신이 없어요.”“당신이 원하는 아내는 이미 죽었어요!”그녀의 말은 유남준을 철저히 격노시켰다.“잊어버렸으면 기억해 내! 죽었더라도 내 앞에 살아 돌아와!”그는 박민정의 몸부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뭐 하시는 거예요. 빨리 놔줘요, 안 그러면 고소할 거예요!”유남준이 박민정의 말을 상대하지 않고 그녀의 옷깃을 덥석 찢었다.“나를 잊었다며. 내가 기억나게 도와줄게!”그는 박민정의 붉은 입술을 깨물었다.“우으으,유남준씨,으아아...”그때 전화 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유남준의 어머니인 고영란이 전화한 것이다.그는 그제야 박민정을 놓아주고 전화를 받으러 갔다.“남준아, 왔어? 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