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되고 있어요. 다 순조롭게 진행되는 중이에요.”“그럼 다행이네요. 도울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요, 민정 씨.”이윽고 손연서는 박민정의 손을 끌어 잡으며 말했다.“제가 인맥이 넓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몇 있으니까, 필요하면 소개해 줄게요.”“네, 그럼 굳이 사양하진 않을게요.”박민정이 웃으며 대답했다.도훈 엄마도 다가와 말을 걸었다.“예찬 엄마, 우리 집이랑도 협력할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그래요.”박민정은 흔쾌히 수락했다.지원의 엄마도 민망한 기색을 보이며 가까이 다가오더니 다른 학부모들 몇몇을 데리고 도움을 제안했다.박민정은 예상치도 못한 장소에서 여러 협력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역시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는 건 나쁠 게 없다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한편, 윤소현과 유남우는 먼 곳에서부터 박민정의 무리를 바라보고 있었다.“저딴 사람들, 다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지.”윤소현이 작게 중얼거렸다.오늘 온 대부분의 엄마들은 이미 최현아에게서 문자를 받은 상태였고 윤소현의 친정이 그 유명한 정씨 가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여기저기서 그녀에게 다가와 아부를 떨어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윤소현의 눈빛에는 자부심만 가득 들어찼다.“소현 씨, 듣기로는 조금 이따가 계주 경기가 있을 거래요. 그런데 소현 씨는 지금 임신 중이시니까 뛰면 안 되잖아요. 저희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경기를 취소해달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한 엄마가 아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다른 엄마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맞아요, 맞아요. 취소합시다. 임신한 상태에서 뛰면 안 되죠. 아이부터 지켜야 하는데.”하지만 그 말에 유지훈은 대놓고 싫다는 기색을 내비쳤다.“안돼요, 절대 취소하면 안 돼요! 계주 경기 상품이 한정판으로 새로 나온 차인데, 저랑 예찬이 둘 다 그걸 갖고 싶어 하거든요. 제가 무조건 갖고 말 거예요!”사실 유지훈에게 그 차는 아무것도 아니었다.하지만 박예찬이 유치원에 온 이후로 자신이 항상
윤소현 팀의 학부모들은 죽기 살기로 뛰었지만 김인우가 속한 팀은 마치 누가 이기든 딱히 상관없다는 듯 일부러 느릿느릿 뛰고 있었다.“이 사람들, 다 뭐 하는 거야?”박예찬이 하품하며 말했다.“역시 어렵겠어요. 서로 눈치 보고 그러는 거죠, 뭐.”“그럼 나한테는 볼 눈치가 없다는 거야?”김인우가 혀를 찼다.“유남우랑 정씨 가문에 비하면 아저씨는 좀 꿇리지 않아요?”박예찬이 대꾸했다.그리고 김인우는 아이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하지만 그는 이미 박예찬에게 그 자동차를 얻어준다고 약속까지 했으니 한 번 뱉은 말은 지켜야만 했다.김인우는 그대로 윤소현의 쪽으로 걸어갔다.“지훈아, 이 자동차 아저씨한테 팔래? 나중에 아저씨가 네가 원하는 거 사줄게. 어때?”처음으로 박예찬을 완벽하게 이긴 유지훈은 한껏 들떠 있었다.“안돼요! 이건 제가 이겨서 받은 거란 말이에요. 예찬이도 갖고 싶으면 노력해서 얻으라고 하세요.”오늘은 유지훈이 드디어 박예찬을 이긴 날이었다. 아이는 어린 마음에 승리의 기쁨에 도취해 있었다.김인우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하더니 뒤를 돌아 유남준을 바라보며 아프리카로 보낸다는 말은 진심이 아니길 바랐다.유지훈처럼 유치한 아이가 아니었던 박예찬은 김인우에게 다가가 말했다.“아저씨, 그냥 두세요. 장난감 하나 갖고 뭘 그래요. 별거 아니에요.”그 말을 들은 윤소현이 비웃으며 말했다.“장난감 하나도 못 얻는 주제에 그렇게 큰소리를 쳐?”박예찬의 화를 돋우기는 겁났던 유지훈도 눈치를 봐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이건 예찬이가 가질 수 없는 거야.”박예찬은 그런 두 사람을 무시하며 김인우의 팔을 잡았다.“아저씨, 우린 다른 거 하러 가요.”“그래.”김인우는 아이의 말에 흔쾌히 대답했다.그 역시 윤소현이 미리 다른 부모들과 짜고 치는 고스톱 중이라는 것을 이미 눈치챘다.윤소현은 박예찬이 다른 상품을 원하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다시 다른 학부모들에게 시선을 돌렸다.먼발치에서 지켜만 보던 세 사람 중 조하랑이
“어휴,”김인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년간 알고 지냈던 유남준을 떠올려본 김인우는 그가 농담 삼아 하는 말도 알고 보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도 이번만큼은 정말 농담이었을지도 모른다.유남준이 걸어왔다.“오늘 수고 많았어.”깜짝 놀란 김인우가 물었다.“남준아, 일단 칭찬부터 하고 죽이려는 건 아니지?”그 말에 유남준이 김인우를 흘겨보았다. 이 사람에게 정말 피해망상이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김인우를 무시한 채 유남준은 박민정과 함께 박예찬을 데리러 갔다.조하랑은 유남준의 앞에서 이토록 겁을 먹은 김인우를 바라보며 놀란 기색을 보였다.“맨날 내 앞에서 잘난 척만 하더니, 너도 이렇게 쩔쩔매는 사람이 있었네.”김인우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때 나한테 부탁했던 일은 잊었나 봐요?”조하랑은 그제야 자신이 김인우를 이용해 강연우를 쫓아냈던 일을 떠올리며 상황 파악을 마치고는 서둘러 사과했다.“미안해요, 방금은 내가 깜빡했나 봐요. 진짜 미안해요.”김인우는 조하랑에게서 사과를 받고 나서야 더 추궁하지 않았다.윤소현은 멀리서 티격태격 중인 김인우와 조하랑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화목하게 웃고 있는 박민정 가족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유남우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했다.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딘가 어색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서로 처음 보는 낯선 사람처럼 보였다.“남우 씨.”“왜?”유남우가 고개를 숙여 윤소현을 바라보았다.“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 것 같으니까 이제 그만 돌아가죠.”윤소현은 오늘 활동을 통해 유남우와 조금 더 가까워지길 바랐지만 그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평범한 활동들조차 전부 거절했다.“그래.”사실 유남우는 그저 일찍 집에 가고 싶었을 뿐이었다.윤소현은 그의 뒤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남우 씨...”윤소현이 말을 꺼내려던 찰나, 유남우의 전화벨이 울렸다.전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남우는 윤소현에
홍주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도련님, 도련님께서도 언젠가는 도련님만의 행복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유남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홍주영은 유남우에게 약을 가져다주기 위해 자리를 떴다.유남우의 건강 상태가 다시 악화하기 시작했고, 그 때문에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까지 되어버린 것이다.유남우는 약을 먹은 후, 휴게실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홍주영은 바삐 움직이며 그의 방과 사무실을 정리해주고 저녁 식사까지 주문해주었다.모든 일을 마치고 유남우가 식사를 끝내는 모습을 본 후에야 홍주영은 퇴근했다.밖으로 나와 보니 시간은 이미 밤 8시가 넘어 있었다. 그녀 역시 배가 고파왔다.8시 이후로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은 그녀에게 이미 익숙한 일이었다.하지만 오늘은 왜인지 모르게 배가 조금씩 아팠다.홍주영은 굳이 신경 쓰지 않고 곧장 차에 올라타 자신의 월세방으로 향했다....함미현은 정씨 가문에 입성한 이후부터 자신만의 세력을 천천히 키워나가고 있었다.사람들 모두 그녀가 정수미의 친딸이라고 생각해왔던 덕에 그녀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늘어났다.또 다른 이유로는 정씨 가문의 직원들이 거만하고 제멋대로만 굴던 대저택의 딸 윤소현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함미현은 커다란 사무실에 주위를 둘러보았다.“엄마,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엄마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거예요.”그녀는 곧장 휴대폰을 집어 들어 박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박민정은 함미현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의아함을 느껴 물었다.“무슨 일이죠?”“민정 씨, 전에 저 도와주신 거 정말 감사드려요. 저는 지금 지엔 그룹에서 일하는 중인데, 민정 씨네 회사가 협력사가 필요하다고 들었어요. 우리 회사와 협력하시는 건 어떨까요?”함미현은 자신이 전에 박민정에게 졌던 빚을 갚고 싶었다.이런 방식으로라도 박민정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다.하지만 박민정은 앞으로 어떻게 정씨 가문과 접촉하고 정수미에게 복수해야
그 말에 박민정은 급히 계약서를 확인해보았다.처음에는 계약서가 정씨 가문에게 유리하도록 수정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확인해 본 것이었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들의 앞에 있는 계약서는 지엔 그룹이 사실상 XS 그룹과 무료로 협력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였다.“실수한 거 아니야?”박민정이 함미현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던 찰나, 계약서에서는 한 장의 종이 메모가 떨어져 나왔다.그 종이에는 함미현의 글씨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민정 씨, 저와 저희 엄마는 정말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에요.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보답해드릴 건 없지만 이 계약서 꼭 받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제 작은 성의니까요.]“정말 예상 밖이네요.”진서연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이 계약 적게 잡아도 아마 수천억은 될 텐데, 이렇게 그냥 넘기다니.”박민정은 함미현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통화 중이라는 안내음만 들려왔다.박민정이 진서연에게 말했다.“서연아, 이 계약은 일단 가만히 두자.”“알겠습니다.”진서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한편, 함미현은 윤소현에게 자신이 체결하고 온 계약서를 보여주고 있었다.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윤소현이 물었다.“너 미쳤니? 왜 정씨 가문의 재산을 들여서 박민정을 도우려는 거야?”“저는 지금 민정 씨한테 너무 미안해요. 어쨌든 저는 지금 민정 씨의 인생을 대신 살고 있는 거잖아요. 민정 씨 이렇게나 착한 사람인데...”함미현이 말하던 중, 순간적으로 경계심이 발도한 윤소현은 다급히 그녀의 말을 끊었다.“헛소리 좀 하지 마. 그런 소리 다시는 하지 말라고.”“하지만 이게 사실이잖아요!”함미현은 일부러 윤소현을 더 자극했다.“너 지금 어디야? 내가 지금 당장 그쪽으로 갈게.”윤서현은 이 멍청이가 혹시라도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까 두려웠다.“저는 민정 씨한테 조금 더 잘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함미현이 말을 이었다.그러자 윤소현이 다급히 말했다.“거기서 딱 기다려. 내가 곧 갈 테니까.”그녀는 별다른 의심
반 시간 전, 윤소현과 함미현을 미행하던 정수미의 경호원은 사진을 찍어 정수미한테 보내 상황을 보고했다.“지금 당장 그쪽으로 사람 대기시켜!”정수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자 급한 마음에 빈손으로 사무실에서 뛰쳐나갔다.한편, 박민정도 함미현의 행동들이 이상하다고 느껴져 사람을 시켜 함미현의 행방을 알아내고는 진서연이랑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어려서부터 누구한테도 맞아 본적 없던 윤소현은 이미 함미현한테 뺨을 몇 대 맞아 얼굴은 퉁퉁 부어올랐고 힘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며 빌고 있었다.“미현아, 제발 부탁이야. 이제 날 좀 놔줘.”함미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가 불러들인 사람들한테 지시했다.“천천히 괴롭히면서 잘 혼내줘.”윤소현은 용서를 빌어도 소용이 없자 다시 협박하기 시작했다.“함미현, 내가 오늘 여기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엄마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함미현은 냉정하게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엄마가 워낙 날 그렇게 아끼는데 소현 씨까지 죽고 없으면 나한테 더 잘해줄 거에요. 그럼 내가 유일한 정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는 거고 아무도 날 위협할 수없을 거예요.”말이 끝나자, 함미현은 윤소현의 앞에 다가가서 따귀 한대를 매섭게 후려갈겼다.윤소현은 입꼬리마저 찢어졌고 함미현이 다시 손을 올려 때리려는 찰나 차 한대가 다가와 멈춰서더니 누군가 차에서 내리면서 소리쳤다.“미현아, 그만해.”차에서 내린 사람은 정수미였다.정수미는 사적으로 윤소현과 함미현이 숨기고 있는 게 뭔지 알아내려 했지만, 두 사람을 미행하던 경호원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윤소현은 눈시울을 붉히며 구세주라도 본 듯 정수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엄마!”급하게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정수미를 본 함미현의 얼굴색은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고 뒤따라오는 경호원의 포스에 윤소현을 잡고 있던 함미현쪽의 사람들은 겁에 질린 듯 손을 놓아버렸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정수미는 함미현을 보면서 물었다.함미현이 우물쭈
정수미는 방금 차에서 내린 박민정과 진서연을 돌아 보더니 함미현이 자신을 속인 일이 박민정과 관련 있을 거로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민정 씨,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예요?”“함미현 씨 찾으러 왔어요.”박민정은 담담하게 함미현앞으로 걸어가 계약서를 돌려주면서 말했다.“함미현 씨, 호의는 고맙지만, 저는 이 계약서를 받을 수 없어요.”박민정의 손에 쥐여있는 계약서를 보던 함미현은 무릎을 꿇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민정 씨, 저...”함미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소현이 다가와 계약서를 가로채면서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계약은 처음부터 무효였어. 당신이 돌려주지 않아도 우린 이 계약을 인정하지 않아.”정수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무슨 계약서인데?”윤소현은 가로챈 계약서를 정수미한테 넘겨주면서 말했다.“엄마, 이거에요. 함미현이 엄마 딸로 권력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푼도 받지 않고 박민정과 수억 원이 되는 큰 계약을 맺었어요. 이 일이 아니었으면 저도 미현이가 엄마 친딸이 아니라는 의심은 하지 못했을 거예요. 정씨 가문의 사람이 어떻게 이런 밑지는 장사를 할 수 있겠어요.”“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소현 씨는 진작 내가 정수미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협박해 왔잖아요. 오늘 난 당신이랑 같이 죽을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어요. 그 계약서는 제가 민정 씨에게 빚진 걸 갚은 거에요. 민정 씨가 전에 저랑 저의 어머니를 도와주었기에 보답하고 싶었던 거예요.“보답?”정수미는 너무 화난 나머지 웃음만 나왔다.“내 돈으로 다른 사람한테 은혜를 갚는다고? 내 친딸로 사칭하고 내 딸이 가져야 할 이익까지 누렸으면서 나한텐 왜 보답을 안 하는 거니?”함미현은 정수미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사실 민정 씨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소현은 어디선가 돌멩이를 주워 함미현의 뒤통수를 내리쳤고 함미현은 바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렸다.정수미는 경악하며 소리쳤다.“윤소현, 이게 무슨 짓이야!”윤소현은 박
박민정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어.”함미현이 정수미 딸로 속인 건 틀린 일이라 박민정도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었다.두 사람은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고 그날 밤, 그 둘은 티비를 보다가 함미현이 친딸로 사칭한 죄로 수감되었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뉴스에서 정수미는 친딸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 이백억 원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내걸었다.뉴스를 보던 진서연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함미현 참 비참하게 됐네.”옆에 있던 민수아가 사과를 먹으며 말했다.“적어도 몇 달은 부잣집 아가씨로 살았으니 그렇게 비참한 편은 아닌 거 같아.”“하긴 그러네요.”진서연은 민수아의 말에 찬성하며 대답했다.하지만 설인하는 오히려 그 말을 부정하며 말했다.“고작 몇 달간 부잣집 아가씨로 살려고 저렇게 속일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진서연과 민수아는 설인하가 방씨 집안의 아가씨였던 일을 알고 있었다.그들처럼 피라미드 최상급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당연히 그 위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것이고 반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목숨과 맞바꿔서라도 부자의 삶을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함미현은 아마 그녀의 아들을 위해서 그랬던 것일 수도 있어요. 재산을 전부 팔아서라도 아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싶었을 거에요.”진서연이 말했다.“그런데 정수미는 진짜 저렇게 통쾌하게 친딸의 정보만 제공하면 이백억 원의 현상금을 준단 말이야?”“그 이백억 원을 저도 갖고 싶네요.”그들이 뉴스를 보면서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있을 때 박민정은 베란다에 서서 어두컴컴한 밖을 내다보며 넋 놓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그때 유남준도 아래층에 있는 여자 몇 명이 함미현에 관해 토론하는 것을 듣고 박민정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왜 혼자 여기 이러고 있어?”유남준의 목소리에 박민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냉담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냥 바람 좀 쐬고 싶어서요. 이제 들어가요.”“그래.”침대에 누운 박민정은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박민정이 회사로 복귀한 후 긴장감이 감도는 사람은 윤소현뿐만이 아니었다. 이지원 역시 초조해하고 있었다.어렵사리 다시 연예계에 복귀한 그녀는 과거에 저지른 잘못들이 박민정의 기억이 돌아오면서 드러날까 두려웠다.이지원은 종종 몰래 박민정의 일거수일투족을 염탐하곤 했다.그날도 촬영을 마친 뒤 그녀의 차는 PMJ 회사 앞에 멈춰 있었다.이지원은 차 안에 앉아 박민정이 퇴근하기를 기다렸다.드디어 박민정이 회사에서 나오는 것이 보이자 이지원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내렸다.하이힐을 신고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그녀는 도드라진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박민정도 그녀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췄다. 누군지 알아보기 전에 이지원은 그녀 앞까지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민정 씨, 드디어 돌아왔네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리자 박민정의 마음 한구석에 본능적인 반감이 피어올랐다.비록 그녀는 이지원이 저질렀던 일들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목소리만으로도 불쾌감을 느꼈다.이때 진서연이 재빠르게 박민정 앞을 막아섰다.“당신 누구에요?”이지원은 그제야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는데 필러로 채워진 얼굴이 드러났다. 시간의 흔적과 연예계의 생존 경쟁 속에서 그녀는 온갖 방법으로 외모를 유지하려 애썼다.진서연은 그녀를 알아보자 얼굴을 찌푸렸다.“이지원 씨, 여기 왜 온 거예요? 또 우리 보스한테 해코지하려는 거 아니에요?”이지원의 눈에 차가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천한 년!'속으로 욕을 퍼부었지만 겉으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박민정에게 말했다.“민정 씨가 무사히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어떤지 보러 온 거예요.”박민정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렇다면 고맙네요.”그녀의 말투는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졌다.이지원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박민정이 아직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혹시라도 필요하면 언제든 나를 찾아와요. 부담 갖지 말고.”이지원은 친절한 척 덧붙였다.“우리 보스가 당신 같은 사람을 찾을 일은 없으니 그만 꺼져요!”진서연
“민정아, 엄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하지 말아줄래? 날 욕해도, 화를 내도 괜찮으니 제발 그렇게 차갑게만 하지 말아줘, 응?”정수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지만 박민정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저는 화낼 이유가 없어요.”박민정은 솔직하게 말했다.지금의 그녀는 예전과 달랐다. 과거에는 기억이 있었기에 정수미가 친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후에도 냉대를 받을 때마다 깊이 상처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일이 없었다.그녀는 눈앞의 정수미를 낯선 사람처럼 느꼈고 그래서 아무런 아픔도 느끼지 않았다.정수미는 목이 칼로 베인 듯한 고통을 느꼈다.“모두 내 잘못이야... 전부 내 잘못이야...”어떻게 해야 박민정에게 사죄하고 보상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정수미는 눈을 떨구고 등을 살짝 구부린 채 방을 떠났다.그녀가 떠난 뒤, 진서연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박민정에게 물었다.“보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아이를 다치게 했다니, 무슨 소리죠?”박민정은 어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진서연에게 설명했고 진서연은 이야기를 듣자마자 분노를 터뜨렸다.“윤소현이 어떻게 그런 모함을 할 수 있죠? 제 생각엔 일부러 자기 아이를 다치게 한 게 틀림없어요.”그녀는 단 한마디로 진실을 꿰뚫었지만 박민정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설마. 그래도 자기 친딸인데.”“그 여자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진서연은 단호히 말한 뒤 박민정을 위로했다.“보스,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지켜드릴게요.”박민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래.”하지만 진서연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여러 차례 그녀에게 당부를 했다.박민정은 기억을 잃은 후 꽤 오랜 시간을 보냈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기억을 되찾으려 했지만 아직 성과는 없었다.그녀는 오늘도 진서연과 함께 회사로 출근했다.점심시간, 박민정은 모두가 쉬고 있을 때 잠깐 밖에 나가겠다며 자리를 떴다.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동안 주
가정부가 나가고 나자 정수미의 얼굴에는 피로가 역력했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악랄할 수 있지?”정수미는 깊은 후회에 사로잡혔다. 왜 하필 윤소현을 입양했을까?비서도 믿기 힘든 듯 고개를 저었다.“큰아가씨의 복수심이 너무 강해요. 자신의 딸마저 이용하다니요.”비서는 윤소현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정수미가 박민정, 그녀의 친딸을 미워하게 만들려 한 것이다.“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정수미는 스스로 중얼거리며 비서에게 묻는 듯 자신에게 묻는 듯한 말을 했다.비서는 사적인 가정사에 대해 조언할 수 없었기에 침묵을 지켰다.오랜 고민 끝에 정수미는 윤소현의 방으로 향했다.윤소현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몸에 상처가 가득하고 고열까지 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안히 잠들 수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소현아!”정수미가 더는 참을 수 없어 그녀를 깨우자 윤소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눈을 떴다.“엄마, 이 시간에 무슨 일이길래 제 방에 오신 거예요? 쉬셔야 할 시간 아니에요?”정수미는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너랑 얘기할 게 있어서 왔다.”윤소현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무슨 얘긴데 내일 하면 안 돼요?”“다혜와 민정이에 대한 얘기야.”정수미의 목소리는 냉랭했다.그 말을 듣자 윤소현은 순식간에 정신을 차렸다.“엄마, 박민정한테 경고할 거죠?”흥분한 그녀의 말투에 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아니, 너한테 경고하려고 왔어.”정수미의 단호한 말에 윤소현은 멍해졌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정수미는 가정부가 털어놓은 모든 진실을 이야기했고 윤소현은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해졌다.“엄마, 그 여자의 헛소리를 믿지 마세요! 다혜의 친엄마인 제가 어떻게 제 아이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어요?”“처음엔 나도 네 말을 믿었다. 네가 민정이를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네 감정을 진정시키려고 민정이를 경찰에 넘긴 거였어. 그런데 네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정말 실망이야.”정수미는 깊이 한숨을
비서는 정수미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제 생각에 둘째 아가씨는 아이에게 그렇게 잔인한 짓을 할 사람 같지 않아요.”정수미는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그래. 하지만 소현이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내가 그때 민정이를 도왔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거야. 어떤 난리를 칠지 몰랐겠지.”정수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다혜 일은 빨리 조사해 봐.”“알겠습니다.” 비서가 대답했다.정수미는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외손녀를 바라보며 다짐했다.“다혜야,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꼭 널 다치게 한 사람을 찾아낼게.”그녀는 윤소현을 편드는 것도, 박민정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지금은 윤소현을 달래며 조용히 진실을 파악하려 했을 뿐이었다. 어떤 사람이 이렇게 어린아이에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는지 밝혀내기 위해.밤이 깊었을 때, 정수미는 아이를 돌보던 가정부를 불렀다.“자, 말해 봐. 오늘 왜 거짓말을 했는지. 누가 너한테 뭔가를 줬니?”가정부는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대표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저는 거짓말 안 했습니다. 정말로 사모님께서 그랬어요.”정수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아직도 사실을 말하지 않겠다는 거야? 병원에서 네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민정이가 다혜를 안은 뒤로 다혜가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고 했지. 그런데 이제 와서 대체 어떻게 그게 민정이가 했다는 걸로 바뀐 거지? 네가 직접 민정이가 아이를 해치는 걸 봤어?”가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얼버무렸다.“민정 아가씨가 다혜를 때리는 걸 희미하게 본 것 같아요...”정수미는 더욱 화가 났다.“희미하게 봤다고? 그럼 왜 그 자리에서 막지 않았지?”가정부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 그게 제가 혹시 잘못 본 걸까 봐...”그녀의 말은 전혀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수미는 확신했다. 이건 명백히 거짓말이었다.“분명히 말하는데 네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말하면 용서해 줄 테지만 계속 거짓말을 한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정수미의 위협에 가정부는 몸을
“분명히 말하지만 오늘 이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이곳을 떠날 생각하지 마.”윤소현은 박민정의 손목을 세게 움켜쥐며 소리쳤고 박민정은 아무리 해명해도 소용이 없었다.“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 거예요?”“무릎 꿇고 사과해!”윤소현은 단호하게 네 글자를 뱉었다.그녀는 박민정이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그녀를 망신시키고 고통받게 하고 싶었다.‘무릎을 꿇으라고?’박민정은 아이를 해친 적이 없기에 당연히 그럴 수 없었다.“그건 못 해요.”윤소현은 다시 정수미와 고영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보셨죠? 증거가 다 있는데도 저렇게 나오잖아요. 사과조차 하지 않겠다고요.”그녀는 이어 말했다.“이제 경찰서에 보내는 수밖에 없겠네요.”윤소현은 휴대폰을 꺼내 신고 전화를 걸었다.고영란과 정수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정말 박민정이 그렇게 어린아이를 해쳤다면 사과를 해야 하는 게 맞을 터였다.그러나 박민정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결국 경찰에 연행되었다.아이의 상처는 모두 목격자의 증언에 근거하고 있었고 박민정은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만한 다른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그녀는 간단히 사건 경위를 설명한 뒤, 임시로 구금되었다.혼자 차가운 공간에 남겨진 박민정은 종종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마치 예전에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었던 것만 같았다.한 시간이 조금 넘었을 때 유남준이 그녀를 보석으로 풀어주었다.“왜 나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유남준이 물었다.그는 본가로 돌아갔다가 박민정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하인들에게 물어본 끝에 그녀가 병원에 갔다는 사실을 알았다.이후 고영란과 연락을 취해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박민정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도 내가 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가 그 아이를 해쳤다고 믿어요?”유남준은 거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누가 뭐래도 네가 했을 리 없어. 넌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야.”박민정은
박민정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좋아요, 신고해요. 경찰이 와서 모든 걸 조사하게 해요. 제가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겁니다!”그녀는 나쁜 짓을 하기 않았기에 당당했다.윤소현은 당장이라도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영란이 그녀를 막아섰다.“소현아, 분명 이건 오해가 있을 거야. 민정이가 그렇게 어린 아이를 해칠 리가 없잖니.”정수미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우리 모두 한 가족인데 경찰까지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니?”그러나 윤소현은 눈가가 붉어진 채 항의했다.“엄마, 지금 제 딸이 이런 상태인데도 엄마는 저를 외면하시겠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 편을 들어주실 생각은 없으세요?”박민정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그만해요. 차라리 신고해요.”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할 방법은 경찰 조사를 통해서뿐이었다.윤소현은 사실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의 일은 박민정과 무관했으며 그녀 스스로 꾸며낸 일이었기 때문이다.“민정아, 흥분하지 마. 우리 가족 일이니 우리끼리 해결해.”정수미가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윤소현은 한 발 앞으로 다가서며 비꼬듯 말했다.“좋아요. 우리끼리 해결하죠.”“그럼 말해봐, 박민정. 내 딸이 이렇게 됐는데 넌 어떻게 책임질 거야?”“제가 한 일이 아닌데 왜 제가 책임져야 하죠?”박민정이 한 치의 주저도 없이 되묻자 윤소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지금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리 다혜는 늘 멀쩡했어. 그런데 네가 안은 뒤로 이렇게 됐다고!”박민정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말했잖아요. 전 그런 적 없어요!”그녀는 어린 다혜가 이렇게 심한 상처를 입은 걸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그런데도 윤소현은 여전히 공격적이었다.“엄마, 보셨어요? 얘는 끝까지 오리발만 내밀잖아요!”정수미는 한숨을 쉬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유다혜는 너무 어리고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고영란이 오늘 아이를 돌본 보모를 불러왔고 보모는 떨
박민정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망설일 필요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유남준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박민정은 고영란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해 윤소현이 말한 병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는 보이지 않았고 윤소현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더니 곧장 박민정에게 달려들었다.모든 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져 주위 사람들은 아무런 반응도 할 수 없었다.박민정 역시 피할 겨를이 없었고 결국 윤소현의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세게 내려앉았다.뜨겁게 달아오르는 통증이 얼굴을 타고 번졌다. 그러나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박민정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박민정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그녀를 막았고 그렇게 둘은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고영란은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도저히 가로막을 수 없었다.“박민정, 네가 어떻게 다혜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다혜는 이제 겨우 몇 달밖에 안 됐는데!”‘뭐?’박민정은 이해할 수 없었다.“뭔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전 당신 딸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우리 다혜 몸에 이렇게나 많은 상처가 났는데도 끝까지 모른 척하겠다고? 너 정말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윤소현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분노를 퍼부었고 박민정은 어쩔 수 없이 방어에만 집중했다.고영란이 아무리 소리쳐도 윤소현은 멈추지 않았다.“소현아!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당장 그만둬!”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고 윤소현은 그제야 멈췄다.박민정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정수미가 황급히 달려와 박민정의 얼굴에 선명히 남은 손자국을 보고 안타까워했다.“민정아, 괜찮아?” 그녀가 걱정스레 물었다.하지만 윤소현은 불만을 터트렸다.“엄마, 똑같이 엄마 딸인데 우리가 싸웠으면 두 사람 다 챙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박민정만 신경 쓰는 거예요? 너무 편애하시는 거 아니에요?”정수미는 한숨을 내쉬며 윤소현을 돌아보았다.“무슨 일인지 제대로 설명해봐. 왜 둘이
박민정은 그 아기가 윤소현의 딸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다가갔다.“무슨 일이죠?”보모는 그녀를 보고도 별다른 경계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하루 종일 울기만 하고 어떻게 달래도 소용이 없네요.”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을 따라온 보모에게 두 아들을 잘 돌보라고 지시한 뒤, 직접 아이를 안아 들어 달래기 시작했다.그러나 유다혜는 그녀의 품에서도 여전히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아마도 엄마가 된 경험 덕분인지 박민정은 아기를 돌보는 법을 잊었더라도 본능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알 수 있었다.그녀는 먼저 보모에게 아이가 충분히 먹었는지 물었고 이어 아이의 기저귀를 확인하며 배탈이 났는지 살펴보았다.하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도 아기가 계속 울자 박민정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아기를 병원에 데려가 보세요. 이렇게 계속 우는 건 뭔가 이상한 것 같아요.”보모도 동의했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보모가 아기를 다시 받으려던 찰나, 멀리서 윤소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지금 뭐 하는 거야? 누가 내 딸을 저 여자한테 맡기라고 했어?”윤소현은 높은 굽의 힐을 신은 채 빠르게 걸어와 박민정의 품에서 아이를 거칠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보모를 질책했다.“내 딸을 당신한테 맡겼더니 이렇게밖에 돌보지 못해? 내 딸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당신 책임인 줄 알아!”그녀는 이어 박민정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너도 아이가 있잖아. 내 아이를 왜 안고 있었던 거야?”박민정은 그 아이가 윤소현의 딸임을 알았더라면 절대 안았을 리 없었다.보모는 난처한 표정으로 해명했다.“작은 사모님, 다혜가 계속 울어서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께서 잠깐 도와주셨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악의도 없었습니다.”“악의가 없었다고?”윤소현은 여전히 울고 있는 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그 말이 사실이길 바랄 뿐이야.”그러다 보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작은 사모님, 아이를 병
윤소현은 말을 마치자마자 선두에 있던 여하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이어 한 하인을 거칠게 밀어내고 안으로 들어섰다.들어가자마자 그녀의 눈에 들어온 건 박민정과 유남준 가족이 함께 웃으며 화목하게 있는 모습이었다.그 광경에 윤소현의 눈빛이 질투로 뒤덮였다. 그녀는 곧바로 고영란을 향해 차갑게 비아냥댔다.“어머니, 저랑 남우 씨가 비록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저도 유씨 가문에서 떳떳하게 맞아들인 며느리입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저를 모른 척하시겠다는 거예요?”고영란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윤소현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유남우 역시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 모든 상황이 그녀에겐 큰 실수로 느껴졌다.“소현아, 내가 그런 말을 한 건 아니야. 어서 남우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렴. 여긴... 당분간 환영받지 못할 것 같구나.”윤소현은 이 말을 듣고도 뻔뻔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왜요? 제가 여기 있으면 어쩌시려고요? 혹시 당신 아들 유남우가 저지른 일들을 제가 다 까발릴까 봐 그러시는 건가요?”고영란도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윤소현이 마지막 퇴로조차 거부하자 냉소를 띠며 대꾸했다.“우리 아들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한번 말해 보렴.”윤소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뭘 말하냐고요? 당신 아들이 자기 형의 여자를 탐냈다는 거. 이게 바로 당신들이 자랑하는 유씨 집안의 가풍인가요?”그 말이 떨어지자 방 안에 있던 하인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박민정은 옆에서 두 아이를 달래며 이 상황에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그러나 유남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다들 뭘 보고 있어? 당장 저 여자를 끌어내!”윤소현은 유남준이 자신을 쫓아내려 하자 더 큰 소리로 외쳤다.“유남준 씨, 이 말을 듣기 싫은 거죠? 뭐, 당연하죠. 형의 여자를 뺏어갔다니, 저라도 그런 꼴은 못 참겠어요!”만약 그녀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유남준은 벌써 그녀에게 직접 손을 댔을 것이다.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