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우 오빠!”생각에 잠겨 있던 임건우한테 고정연이 다가와 가볍게 불렀다.“응!”임건우는 감정을 추스렸다.아까 고양이가 보여준 기억은 오랜 역사의 한 장면으로, 지금 자신과는 먼 이야기였다. 역사의 무게는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지만, 언제나 그 분위기와 감정에 빠져 있을 수는 없었다. 예로부터 감동적인 영웅 이야기는 무수히 많았다.“무슨 일이야?”임건우는 고연정의 표정을 보고, 고연정이 방금 역사적 기억을 보지 못했음을 확신했다.고양이는 그 기억을 오직 임건우한테만 보여줬다.“건우 오빠, 제발 저를 선생님을 찾으러 데려가 주실 수 있나요?” 고연정은 애원하는 얼굴로 말했다. “우리 백화곡 사람들이 저 해골 군단을 만났으면 큰일이에요.”백화곡은 주로 약과 단약을 만드는 데 집중해서 무도 수련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백화곡은 강한 전투력을 지니지 못했고, 여호신이 백화곡을 멸하려고 했던 것도 그 이유였다.임건우는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바로 찾으러 가자.”이월은 조금 못마땅한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오늘은 안 될 것 같아. 곧 어두워질 텐데, 이 영산 비밀의 경지는 우리가 처음 오는 곳이라 밤에는 더 위험해. 내일 아침 일찍 가는 게 좋을 거야.”고정연은 지금 당장 가고 싶었지만, 이월의 말이 맞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어두워지면 길을 찾기 어려워지니까 길을 잃으면 더 큰 문제가 되었다.게다가, 백화곡이 해골 군단을 반드시 만날 것도 아니었다.결국 임건우는 이월의 제안을 따랐다.비밀의 경지에 들어오고 지금까지 거의 쉬지 않았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다. 어제는 해골 왕과 해골 군단과의 대전까지 치렀으니 이미 배가 고팠다.사람은 밥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나지 않는다.그래서 몇 사람은 주방이 있는 집을 찾았다.일부 목재를 찾아내어천 년 령지와 고기탕을 끓였다.사치스러울 정도였다.고양이조차도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고양이는 요리할 줄 몰랐고
이곳은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됐는지 알 수 없지만, 이 온천은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분명 온천은 아직도 살아 있었다.“여기 어떻게 발견했어?” 임건우는 놀라며 물었다.“아까 나무를 찾다가 창문 너머로 봤지. 어때? 마음에 들지 않아? 며칠 동안 씻지도 못했잖아. 땀도 많이 흘렸고, 씻고 싶지 않아?” 이월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말을 하면서 신발을 벗고,그다음으로 옷을 벗었다.금세 임건우는 이월의 완벽한 몸매를 보게 되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임건우의 시선 앞에서 이월은 우아하게 온천에 들어가 몸을 천천히 물속에 잠겼다.“내 작은 하인, 내려와서 내 등을 밀어줘!”임건우는 이미 느낌이 있었다. 전에 해골 더미 속에서 중간까지 진행됐던 일이 있어서 너무 답답했다. 어두운 낯선 환경, 현대 사회와는 동떨어진 이 환경에서 문명을 벗어던지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감정을 더욱 증폭시켰다.금세, 임건우도 온천에 들어가 이월의 등을 부드럽게 밀어주었다.“지금 우리 관계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물속에서 임건우는 이월의 아리따운 몸을 안고 있었다. 이 순간 임건우는 바깥세상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네가 어떤 관계라고 생각하든 그게 맞는 거야.” 이월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근데 여기서만이야...” 그녀가 덧붙였다.임건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왜? 아쉬워?”임건우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아쉬워.”“그럼 어쩌지? 이렇게 하자. 나가서 나랑 결혼할래?”“어, 그건...”임건우는 순간 곤란해졌다. ‘어떻게 결혼하라는 거지?’“왜, 힘든가 보네? 집에 있는 아내가 아쉬워? 그럼 날 포기할 수밖에 없겠네!”이월은 손을 뻗어 임건우를 밀어냈다. 그러고는 온천을 나와 마력이 깃든 물방울을 빠르게 증발시키고, 임건우 앞에서 옷을 하나씩 입었다.“안녕!”이월은 임건우를 남겨두고 떠나자 임건우는 갑자기 허전하고 추워졌다. 이월의 마력때문인지, 아니면 이월 자체가 아쉬운 건지 알 수가
임건우의 표정이 변했다. 역시 해골이었다.임건우는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에 불사족이 영산성을 침공했을 때, 연맹의 삼천 명 결사대가 전사하고 정미현도 전사했어. 그리고 그 불사족은 이곳을 점령했을 게 분명했어. 그럼 지금 이곳이 불사족의 소굴인 건가?’임건우는 고양이가 보여준 기억을 떠올렸다. 바다처럼 밀려오는 불사족 대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강력함과 어마어마한 숫자였다.‘만약 영산 비밀의 경지 통로가 열리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임건우는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그건 분명 대재앙이 될 것이다.“건우 씨, 건우 씨, 제발 부탁합니다!”자신의 선생님을 걱정하는 한 여제자가 임건우한테 머리를 조아리며 울부짖었다. 여제자는 임건우의 강함을 알고 있어서 도움을 청해야만 장교은한테 희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구원을 찾으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었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임건우 일행이 다른 길을 통해 비밀의 경지 깊은 곳으로 들어갔을 테니, 이곳에서 정말로 임건우를 찾게 될 줄은 몰랐다.임건우는 머리를 조아리는 여제자를 일으켰다. 이마는 이미 상처투성이였다.“길을 기억하세요? 길을 안내해 주세요. 제가 선생님을 구하러 갈게요!”“나머지 셋은 이 성에서 쉬세요. 고연정은 앞집에 있어요.”머리를 조아리던 여제자는 몸에 상처가 있어 스스로 갈 수 없었다. 돌아가는 동안 백화곡의 장문인과 제자들은 모두 죽을 수도 있었다. 임건우는 여제자를 안고 번뢰각을 발동했다.번뢰각이라는 이름은 임건우가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꽤 적절한 이름이었다.지상에서 달릴 때 번뢰각의 속도는 어검비행보다 훨씬 빨랐다.특히 사람을 안고 있을 때 더 그렇다. 물론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었다. 임건우는 아직 어검비행에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수련이 부족하기도 했다. 앞으로 수련이 깊어지면 어검비행은 번뢰각을 넘어설 것이다.“야옹!”고양이가 갑자기 측면에서 나타났다. 원래는 작았던 모습
“장문, 전 죽는 게 두렵지 않아요. 장문이야말로 백화곡의 중심입니다. 백화곡은 저희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장문 없이는 안 돼요.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모두 저를 따르고, 장문을 보호하세요!”이 말을 한 사람은 스무 살 남짓한 여인이었다. 여인은 굳은 표정으로 말을 마치자마자 앞장서서 해골 군대의 포위망으로 뛰어들었다.“죽여라!”“이 괴물들을 죽여라, 하나를 죽이면 본전, 두 개를 죽이면 이득이다!”“장문, 다음 생에 다시 뵙겠습니다!”“아!”전투가 순식간에 시작되었고, 수많은 해골 군대가 몇 사람을 순식간에 휩쓸었다.“야옹!”바로 그때, 머리 위에서 고양이의 포효가 들려왔다.“선생님, 버텨주세요. 제가 건우씨를 데리고 구하러 왔습니다!”“아, 민영이다! 민영이 돌아왔다!”“모두 버텨! 우리도 살아남을 수 있어. 아직 희망이 있다. 장문을 보호해!”“쾅!”고양이는 착지하여 해골 무리 가운데 떨어지자마자 많은 해골을 밟아 죽였고, 강력한 충격으로 땅에 큰 구멍이 생겼다.임건우는 박민영한테 고양이 갑옷을 붙잡게 하고, 자신은 재빠르게 뛰어내려 저장 주머니에서 백골 채찍을 꺼냈다.“퍽!”“퍽퍽, 퍽퍽퍽!”백골 채찍이 해골 군대 사이에서 폭발음과 함께 울렸다.백골 채찍은 임건우와 맞지 않았지만, 해골 괴물들의 주의를 끌만했다. 곧 검은 물결 같은 해골 괴물들이 백화곡 사람들을 버리고 임건우한테로 몰려들었다.“대범천파라지!”“용상반야권!”“우르르, 우르르...”수많은 해골 군대가 장교은의 곁을 지나쳐 갔다. 백화곡 사람들은 돌격하는 동안 또 한 명의 동료가 영원히 쓰러졌다. 가장 앞장섰던 여인이었다.이 여인은 죽었다.하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남아 있었다.죽기 전에 희망을 봤고 하늘에서 내려온 구원군을 봐서였다.“장문, 일곱째 사매가... 갔습니다!”“흑흑...”전투 중 한 사람이 던져졌는데, 고양이 등에 있던 박민영이었다. 임건우가 던진 거였다. 고양이 등 위에서도 안전하지 않았고, 박민영은 제대로 붙잡을 수 없
임건우는 그 말을 듣고는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이 늙은이가 이번에는 제대로 판단했네’임건우는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장문께서 너무 겸손하세요. 여기는 대화할 장소가 아니니, 먼저 성으로 돌아가요.”장교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이 상황에서 누가 여기 더 머물고 싶겠는가? 다만, 올 때는 빨랐지만 돌아갈 때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고양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태울 수는 없었고, 또고양이가 아무나 태우려고 하지도 않았다.그렇게 해서 영산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음 날 황혼이었다. 백화곡 여인들은 서로 만나자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장문, 이 영산 비밀의 경지에서 한 달도 안 돼 나갈 수 있어요?”임건우는 상처를 싸매고 있는 장교은한테 물었다.장교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나갈 수 있어요.”임건우는 다시 물었다.“다른 방법은 없어요?”장교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아마 없을 거에요. 있다 해도 전 몰라요.”임건우는 고양이를 바라보며, 빨리 이곳을 떠나는 방법을 가르쳐주길 바랐다. 아니면 여기서 한 달 동안 머무는 건 불사 군단의 위협을 차치하고서라도, 멍하니 있는 것만으로도 매우 답답할 것이다....영산 비밀의 경지 시간은 바깥 시간이랑 일치하는 것 같았다.해가 지고 달이 올랐다.오늘 밤 달은 유난히 둥글고 약간 붉은 기운을 띠고 있었다.임건우는 성의 가장 높은 건물 옥상에 앉아 있었다. 적어도 백 미터 높이였고, 다리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으며 손만 뻗으면 하늘의 달을 딸 수 있을 것 같았다.“이월아, 너 그 전장에 가본 적 있니?”이월이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맨발에 두 개의 하얀 다리가 드러난 상태였다. 이월은 말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임건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느 전장을 말하는 거니? 아, 동해 삼국 결계 쪽 전장을 말하는 거야? 가본 적 있어.”“거긴 어떤 곳이야?”“난 가장 외곽 기지까지만 가봤어. 나도 밖에 나가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아빠가 날 꽉 붙
이월에 대한 고정관념이 크게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월은 마도 수련자이지만, 큰 문제에는 가치관이 매우 올 바랐고, 더 나아가 애국심도 있었다.“이렇게 큰일을 연호 일반 민중은 전혀 모르는 거야?”“비밀 유지령 때문이야. 이런 일 퍼지면 일반 민중이 알게 되어 공포를 일으키고 사회 혼란을 초래하며, 사람들은 삶에서 행복감을 잃게 할 거야. 생각해봐, 그런 생물들과 싸우는 데에 일반인은 아무 쓸모가 없어. 총으로도 죽일 수 없고, 오직 수련자들과 고급 전투 능력을 갖춘 능력자들만 의지할 수 있어.”“중장비도 소용없어?”“듣자 하니, 중장비는 큰 문제가 있다고 해. 삼국 결계 내에는 많은 제한이 있어서, 아빠 말로는 그게 천지의 규칙을 이용한 것이라 중장비를 사용하면 큰 위험이 따르고, 결계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면 정말 끝장난다고 해.”여기까지 말하고 이월은 한숨을 쉬었다.“지금 전선의 상황이 긴박해서, 내 숙모도 크게 부상을 입었어. 저 요수들이 결계 밖으로 나올지 누가 알겠어? 그래서, 건우야 네가 마음 준비를 해야 해. 결계 입구를 지키지 못하거나 전국의 힘을 동원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정보를 공개할 거야.”임건우 얼굴이 무거워졌다.최근 연호국의 국력이 점점 강해지고,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도 커지고 있었는데, 그런 알 발생하면 제일 먼저 피해를 보는 곳이 연호일 것이다. 다른 나라의 지원을 기대하는 것은 상상에 불과하다. 많은 나라가 연호가 쇠퇴하고 심지어 분열되기를 바란다. 그런 나라가 백 개는 아니더라도 여든 개는 될 것이다.처음에 임건우는 이월한테 삼국 결계의 전장에 해골 군대가 있는지 물어보려 했던 이유는 고양이가 보여준 기억 속의 영상을 통해 당시의 영산성과 다른 곳들이 불사족과의 전투로 위기에 빠지고, 성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걸 봐서였다.임건우는 결계 전장의 적들이 불사족일 가능성을 생각했지만, 이월의 정보에 따르면 불사족이 아니라 대량의 요수들이었다....그 후 한동안은 비교적 한가로웠다. 임건우, 이월
“헐, 이 보물창고도 엄청 크네?”임건우는 안을 들여다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보물창고라기보다는 창고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전체 면적은 축구장만큼이나 컸고, 다양한 물자가 안에 쌓여 있었다. 가장 많은 건 검은색과 흰색 무늬가 있는 돌이었는데, 손에 쥐면 엄청 무거웠다. 그러나 이 돌에는 영기가 없어서 용도가 뭔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다양한 무기도 있었다. 아쉽게도 너무 오래되어 많은 무기가 녹슬고 부식되어 사용할 수 없었다. 구석에 쌓인 몇몇 상자들은 곰팡이 냄새만 남아 있고 텅 비어 있었다. 임건우는 이 상자들이 원래는 영약을 보관하던 것임을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재라는 건 따면 보관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특별한 용기에 담지 않는 한 수백 년, 수천 년 동안 썩지 않는 약재는 없다.임건우는 고양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온몸에서 슬픔의 기운을 발산하고 있었다.“여기가 영산성의 창고인가?”“네 주인이 살아있을 때는 자주 오던 곳이었겠지?”임건우가 물었다. 고양이는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임건우는 이해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수천 년을 살아온 고양이 요괴의 머릿속에는 고대의 지혜가 가득했다.임건우는 여기서 한 바퀴를 돌면서 완전히 빈손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하나의 저장 가방과 두 개의 영무기를 발견했다. 저장 가방의 공간은 크지 않았지만, 약 5세제곱미터 정도였고, 그 안에는 임건우를기쁘게 만드는 게 가득 차 있었다. 그건 바로 영석이었다. 영석은 수련자들이 수련에 사용하는 매우 귀중한 자원이었다. 지금 지구 환경과 채굴된 정도를 고려할 때, 영석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 영석들은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또한 임건우는 두 개의 영무기를 발견했다. 하나는 긴 창이고, 다른 하나는 도끼였다.임건우는 이 둘을 모두 챙겼다.그 외에도 임건우는 영산패가 가득 든 짐 가방을 발견했다. 수량을 보니 적어도 만 개는 됐다.이로써 임건우는 영산패가 전혀 값어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드디어 한 달의
“새아빠도 아빠 없는 것보다는 낫지!”“안 돼, 난 동의할 수 없어.”임건우는 화가 치밀었다. 이미 상당히 조심해서 이월이가 정말 임신했을지 확신할 수없었다.“항의는 소용없어.”“한번 해봐, 그러면...”“어떻게 할 건데?”“내 바지에 묶어둘 거야.”임건우는 이월을 꽉 껴안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멈추지 않고 그대로 밀어붙였다. 마지막 전투는 영산성에 대한 최고의 기념이 될 것이다.나가는 전송문은 들어오는 전송문과 다른 위치에 있었다. 이 두 전송문은 모두 단방향이어서 나가는 전송문이 열리지 않으면 임건우 일행은 나갈 수 없었다.“슈욱!”밖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이전의 나뭇가지 위에 있었다. 임건우과 이월, 그리고 고양이도 함께 나왔다. 백화곡의 사람들이 모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화곡은 들어갈 때 열여덟 명이었는데, 나올 때는 열한 명만 남았다. 일곱 명이 죽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모두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더구나 백화곡은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왔으니, 그 일곱 명의 죽음은 헛된 것이었다.“건우 씨!”장교은은 임건우가 나오자 다가가며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이건 전에 약속했던 진판이에요. 일부 손상이 있지만, 건우 씨한테 도움이 되길 바라요.”이 진판은 백화곡 사람들이 가져온 것이었다.“고마워요.”“건우 씨, 겸손해하지 마세요. 본 파의 일곱 제자가 영산 비밀의 경지에서 영원히 남게 되었으니, 이제 백화곡으로 돌아가 후사를 처리해야 합니다. 그러니 이만 헤어지겠습니다.”정교은은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아, 건우 씨, 제 제자가 말하길, 건우 씨 와이프가 백화곡에 찾아와 행방을 물었다고 하더군요...”장교은은 무심코 이월을 바라보았다. 비밀의 경지에서 임건우와 동거했던 여자가 임건우 와이프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란 듯했다.“네? 유가연은 지금 어디 있어요?”“이미 돌아갔어요.”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유가연한테 전화를 걸었을 때, 이번에 한 달이나 갈 거라고 말하지 않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 불구자를 잡는 일이 조금 번거로워질지도 몰라...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군.”윤문용은 임건우를 두고 한 말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자신 같은 신분 높은 사람이 정말로 다음 날 그 불구자를 찾아가겠는가?만약 그런 일이 소문 난다면 사람들에게 얼마나 비웃음을 살지 불 보듯 뻔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밤이 지나갔다.그날 밤, 백의설은 내내 임건우의 방에 머물렀다.두 사람 모두 수련 경지가 높아 며칠 밤을 새운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임건우는 백의설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고 그녀의 과거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임우진을 만나기 전, 백의설의 구미호 혈맥은 아직 각성되지 않았고 수련 경지 또한 형편없었다.임우진이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천성성의 망나니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그 상황에서 거의 치욕적인 일을 당할 뻔했지만, 다행히도 임우진이 제때 나타나 그녀를 구했다.이 사건이 백의설이 몇몇 가문을 멸문시킨 이유 중 하나였다.그중에는 그녀의 약혼자의 가문도 포함되어 있었다.얼마나 황당한 일인가?자신의 약혼자가 다른 남자들과 함께 백의설을 모욕하려 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사람도 아닌 짓이었다.시간은 흘러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하지만 윤씨 가문의 가주는 나타나지 않았고, 심지어 윤서희조차 오지 않았다.백의설은 임건우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며 말했다.“건우야, 보아하니 윤문용은 오지 않을 것 같군. 하하, 저 노인은 겁쟁이에 불과해.”“그가 오지 않는 건 겁이 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찮게 여겨서겠죠.”임건우가 대답했다.“그렇다면 내가 직접 찾아가면 되겠군요.”“흥!”백의설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늙은이가 뭐라고, 네가 직접 찾아가? 잠시만 기다려. 내가 가서 그자를 묶어서 데려올게!”임건우는 백의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수고 좀 해주셔야겠네요.”“우리 사이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잠깐 기다려.”“잠깐만!”임건우는 백의설의 손을
“아...!”“독과부?!!”호위 대장은 백의설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온몸이 움찔하며 거의 기절할 뻔했다.“이, 이 여자가 그 악명 높은 독과부라니?”“너, 저 구석으로 가서 자결하라.”백의설이 차가운 목소리로 호위 대장에게 말했다.“내 아이 앞에서 사람 죽이는 건 싫다.”호위 대장은 얼굴이 창백해졌다.죽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독과부 같은 냉혹한 인물 앞에서 만약 그녀의 명령을 거역하면 내일 당장 자기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도 있었다.그는 부모와 아내, 자식들이 있었다.결국 그는 이빨을 꽉 깨물고 거리 구석으로 달려가 자신의 심장을 찔러 자살했다.죽기 직전,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아, 아가시... 제발... 제 가족만은...”주변의 다른 윤씨 가문 호위들은 입술을 떨며 말을 잃었다.이 일은 그들이 예상한 것과 아주 달랐다.임건우는 구석에서 죽은 호위의 시체를 한 번 훑어보고 남은 호위들에게 말했다.“내일 아침, 당장 나를 만나러 오라고 네 집 가주에게 전해. 그렇지 않으면 후회할 거다.”“아직도 안 가?!”그 말은 백의설이 했다.윤씨 가문의 호위들은 마치 목숨을 구한 듯 급히 꼬리를 내리고 도망쳤다.백의설은 기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그의 향기로운 체취가 임건우의 코에 닿았고 이 각도에서는 조금만 가까워지면 임건우의 입술에 닿을 것 같았다.백의설은 웃으며 말했다.“건우야, 이게 바로 스승님의 풍모지! 윤씨 가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만약 스승님이 여기 있었다면 한 칼로 윤씨 가문을 완전히 멸했을 거야.”“아버지가 그렇게 대단한 분이었나요?”임건우는 잠시 깜짝 놀랐다.그의 기억 속에서 임우진은 그저 평범한 상인이었을 뿐이었다.나중에 여러 정보를 통해 그의 실력을 알게 되었지만, 종합적으로 봐도 그는 그냥 초고수 정도의 존재일 뿐이었다.하지만 백의설의 말과 표정에서 보니 아버지는 임건우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강력한 인물인 듯했다.“아버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 숨기고 있는 거
주연우는 얼굴이 창백해졌다.“아가씨, 그가... 그가 내 외조카를 죽였어요. 그런데 왜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고 하세요?”백의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내키지 않으면 내가 강제로 해줄게...”말을 마치기도 전에 주연우는 무릎을 꿇었다.임건우는 이 상황을 보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사실 임건우는 천성성에 대해 별로 애착이 없었다.이곳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백의설이 자신 아버지의 제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지만, 아버지의 행방을 알 수 없었고 지금은 그저 딸을 데리고 돌아가 잠깐 쉬고 싶을 뿐이었다.“붕이야!”임건우가 하녀인 붕이를 불렀다.의식을 잃고 있던 붕이는 정신이 번쩍 들어 급히 몸을 일으켰다.“도련님...!”“아, 도련님 괜찮으세요?”붕이는 마치 꿈에서 깬 듯한 표정을 지으며 믿기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특히 주연우가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는 더 혼란스러웠다.‘저... 저 사람이 바로 강여진의 작은 이모였던가요? 그녀는 백리 가문에 시집가고 나서 천성성에서 으스대며 살았죠. 그런데 지금, 왜... 공자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죠?’‘대체 무슨 일이죠?!’임건우는 백의설을 향해 말했다.“누나, 저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당신께서는 굳이 배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붕이만 있으면 충분해요.”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 불구자, 독과부의 동생이라고?!”백의설은 붕이를 잠깐 바라본 뒤,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윤서희의 하녀인가? 하하, 윤씨 가문 사람들은 인정도 없고, 윤서희도 마찬가지겠지. 건우야, 내가 걱정돼서 가만히 둘 수 없겠어. 자, 가자!”백의설은 주연우에게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아기를 안고 임건우의 휠체어를 밀며 두 사람은 취보재를 나섰다.한편 윤씨 가문 가주와 윤서희는 임건우가 묵고 있는 곳에서 기다리며 지루해하고 있었다.윤문용이 말했다.“안 돼, 이렇게 그냥 기다리면 안 돼. 그 놈이 도망쳤다면 이 기회를 놓칠 수 있어. 인생에 그렇게 많은 기회가
“저기...”임건우는 백의설을 바라보며 말했다.“저를 찾으러 온 건 맞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제가 죽였습니다.”백의설은 콧방귀를 뀌며 차갑게 웃었다.“강여진을 죽였다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그래? 그 여자는 원래 하찮은 존재였어. 내가 직접 손 좀 봐주려고 했는데 네가 잘했다. 가자, 누나가 직접 너를 위해 복수해줄게.”“제가...”“걱정하지 마. 누나가 있으니까 넌 신경 쓸 거 없어.”“두렵지...”“그래, 이렇게 당당해야지. 좋아!”백의설은 임하나를 품에 안고 임건우의 얼굴에 기습적으로 입을 맞췄다.촉촉한 입술 자국이 임건우의 얼굴에 남아 있었다.그녀는 휠체어를 한 손으로 들고 아래층으로 향했다.1층.아래층에서는 많은 사람이 백리 가문의 부인, 즉 강여진의 이모를 중심으로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범인은 이미 아가씨가 위층으로 끌고 올라갔다던데 지금쯤 이미 죽었겠지?”“독과부가 실험용으로 데려갔다면 정말 끔찍하겠다!”“대체 독과부가 실험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미치겠네. 뭐, 피를 뽑고 가죽을 벗기는 건가?”“그렇게 궁금하면 너도 실험 대상으로 자원해 보지 그래?”사람들이 떠들고 있을 때 드디어 백의설이 모습을 드러냈다.하지만 이내 모두가 경악했다.“뭐야? 저 녀석이 아직 살아 있어?”“이게 무슨 상황이야? 아가씨가 저 녀석의 딸을 안고 있잖아? 더구나 이 표정, 내가 잘못 본 건가? 너무 다정한데?”“갑자기 부럽다. 나도 휠체어 타고 싶어졌다니까.”백의설은 임건우를 휠체어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그녀의 동작은 마치 귀중한 청화백자라도 다루는 듯 섬세하고 신중했다.그 뒤 백의설은 차갑게 부인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여기서 뭐가 그리 시끄럽지? 이곳은 백리 가문의 상점이다. 네가 여기 시장이라도 되는 줄 아나?”“아, 아가씨!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주연우는 백의설을 보고 움찔하며 긴장했다.하지만 곧 주연우도 백리 가문의 식구라는 점을 떠올리고는 자신감을 되찾았다.주연우는 임건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그때 모든 사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독과부가 이런 명령을 내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백의설은 도대체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모든 이들이 머리를 싸매며 혼란스러워했다.위층에서 임건우는 백의설을 보며 점점 더 궁금해졌다.임건우는 이전에 이 여자가 아버지의 제작한 법기라도 지니고 있는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법기가 아니었다.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끌리는 기운이었다.“혹시 백의설과 아버지가... 무슨 말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었던 걸까?”“백의설이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한 건가?”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그의 천의도법의 기운을 바라보는 눈으로는 백의설이 임신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네가 임건우라고? 그럼... 임우진을 아는 거야?”백의설은 임건우가 말을 시작하기도 전에 먼저 물었다.임건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알아요, 그분은 제 아버지입니다.”백의설은 손으로 입을 막으며 얼굴에 감격의 색을 담았다.“정말... 정말이구나! 너무 좋다!”임건우는 백의설을 보며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제가 어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요?”“어... 어?”백의설은 눈을 크게 뜨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후에는 머리를 거세게 흔들며 부정했다.“아니야, 내가 어떻게... 난 백의설이야! 난 네 아버지의 제자지. 그래서... 연배상으로는 네가 나보다 아래야! 그러니까 내가 너에게 제자라고 불러야 해!”“제... 제자라니!”임건우는 대체 무슨 소린지 이해하지 못했다.그 사이, 백의설은 임건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그녀의 보라색 비단 스카프는 이미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붉은 옷은 굉장히 섹시하게 몸을 감싸고 있었다.무릎 꿇은 자세에서 섹시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그녀의 한쪽 다리는 드러나며 임건우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그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제자야, 네 다리가... 어떻게 된 거야?”“누가, 누가 네 다리를 자른 거야? 그 원수를 내가 대신
왜 붕이가 그렇게 놀란 반응을 보였을까?그 이유는 간단했다.백의설이라는 여자는 백리 가문에서 가장 잔혹하고 독살스러운 여인으로 악명 높았다.백의설의 손에 죽은 사람은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천성성에서만도 다섯 개 이상의 가문이 그녀에게 멸문지화를 당했다.그녀는 어린아이조차 남기지 않고 철저히 몰살시키는 잔혹함으로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천성성 사람들 사이에 이런 말이 돌 정도였다.“차라리 염라대왕을 건드려라, 독부인은 건드리지 마라!”이 독부인, 즉 독과부가 바로 백의설이었다.임건우는 계단 끝에서 모습을 드러낸 백의설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모습은 단아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겼다.그 순간, 임건우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임건우는 백의설에게서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마치 피로 연결된 것 같은 낯설지만 익숙한 감각이 임건우를 사로잡았다.동시에 백의설도 임건우를 응시하며 눈빛이 뜨거워졌다.그녀의 시선은 단순한 흥미를 넘어선 마치 오래전 잃어버린 가족을 만난 듯한 애틋함을 담고 있었다.그 뜨거운 눈빛은 임건우의 뺨을 데울 만큼 강렬했다.하지만 취보재의 사람들은 이들 사이의 묘한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대장은 백의설에게 급히 고개를 숙이며 상황을 보고했다.“아가씨, 이자가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리다 여진 아가씨를 살해했을 뿐만 아니라 저희 경비원까지 죽였습니다. 아가씨께서 위로 돌아가 주시면 이자를 반드시 잡아 처리하겠습니다.”퍽!백의설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그러자 공중에 떠오른 보이지 않는 손바닥이 대장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꺼져라.”백의설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그 말에 모든 이들이 몸을 떨었다.이제 독과부가 분노해 진짜로 화를 내는구나 싶었던 것이다.뺨을 맞은 대장은 얼굴이 창백해지며 급히 무릎을 꿇었다.“소인이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내려주십시오, 아가씨!”주변의 구경꾼들도 숨을 죽였다.그들은 임건우와 임하나를 바라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취보
“가고 싶다고? 꿈 깨!”“이 여종부터 죽여라!”몇 명의 경비원들이 사나운 기세로 휠체어를 붙잡았다.그중 한 명이 힘껏 주먹을 휘둘러 붕이에게 내리쳤다.이 취보재의 남자 경비원들과 비교하면 붕이의 실력은 그야말로 미미했다.그런 공격 앞에서 붕이는 피할 생각조차 할 겨를도 없이 단지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아!”퍽!하얀빛이 번쩍이 붕이의 눈앞에서 머리가 하늘로 솟구쳤다.피가 붕이의 머리와 얼굴에 튀었다.임건우는 한 손으로 아이를 안고, 다른 손으로 견곤검을 잡았다.휠체어를 움직이지 않았지만, 휠체어는 저절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붕이야, 밖에서 기다리고 있어.”임건우의 차분한 목소리가 붕이의 귀에 들렸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임건우가 강여진과 취보재의 경비원 한 명을 죽였다는 사실에 그녀는 깜짝 놀랐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이제 정말 끝났어!”“완전히 죽었어... 도망친다 한들, 백리 가문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야. 이 남자, 어떻게 이렇게 충동적일 수 있지?”붕이는 심장이 터질 듯 뛰고 있었다.백리 가문 사람들이 오면 도망칠 수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그런데 임건우는 취보재의 경비원들에게 포위당하고 있었다.붕이는 임건우를 끌고 도망칠 기회조차 없었다.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많이 있었고, 모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도망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오히려 몇몇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이 사람, 두 명이나 죽였는데도 이렇게 태연하네. 배경이 있을 거야.”“배경? 다리도 없는 남자, 어린아이까지 안고 있는데 배경이라니. 뒤에 궁녀나 시녀가 따라다닌다든가 그런 게 있을까? 그냥 머리가 핑 돌아서 날뛰는 바보 같은 녀석일 뿐이야.”“강여진은 여섯 번째 부인의 친조카라는 거 알아? 이거... 그냥 끝장이야.”사람들의 속삭임 속에서 임건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임건우는 아버지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바로 위층에서 온 기운이
임건우는 미간을 찌푸렸다.눈앞의 여자는 이 장신구 가게의 점원임이 분명했다.손님으로 가게에 들어왔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대하다니?임건우의 눈빛이 차가워지며 말했다.“너희 사장은 손님이 왕이라는 걸 안 가르치더냐? 네가 감히 손님한테 빈정거리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그 말에 붕이는 얼굴이 창백해지며 깜짝 놀랐다.붕이는 급히 임건우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이 가게는 취보재, 천성성에서 백리 가문의 소유로 유명한 곳이었다.여기는 함부로 소란을 피울 곳이 아니었다.백리 가문은 가주가 단약을 구하러 갔다가 재산의 절반을 약신궁에 빼앗겼지만, 가주가 아직 살아 있었고 그의 영향력은 여전했다.오히려 백리 가문은 쇠락하지 않고 더 번성해졌고 지금은 재력으로 천성성에서 으뜸가는 가문이었다.윤씨 가문과 비교해도 그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더구나 눈앞의 여자는 단순한 점원이 아니었다.그녀는 백리 가문과 먼 친척 관계에 있는 강여진이라는 여자였다.원래 강여진은 지금처럼 잘나가는 인물이 아니었다.과거에 붕이처럼 윤씨 가문의 하녀였고, 그것도 임시 하녀로 지위는 붕이보다 낮았다.어느 날, 강여진이 윤씨 가문에서 물건을 훔치다 붕이에게 들켰고, 붕이는 그녀를 심하게 꾸짖었다.이 일로 강여진은 붕이를 원수처럼 여기게 되었다.하지만 세상은 아이러니했다.강여진의 고모가 백리 가문의 여섯째 아들과 결혼하면서 그녀도 자연히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고, 천성성에서 어느 정도 지위를 얻게 되었다.그 후로 강여진은 붕이를 볼 때마다 온갖 방법으로 모욕하며 괴롭히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았다.윤서희는 백리 가문과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붕이가 모욕을 당해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그런 강여진이 지금 분노를 터뜨렸다.그녀는 임건우의 다리, 그것도 다친 다리를 걷어차며 손가락으로 임건우의 코앞을 겨누고 욕설을 퍼부었다.“웃기지 마! 너 같은 불구자가 감히 우리 백리 가문의 취보재에서 행패를 부려? 네가 개똥이라도 먹었냐?”그녀의 발길질로
임건우는 깜짝 놀랐다.‘이렇게 비쌀 수가?’임건우는 윤서희에게 그 대해장단을 줬던 걸 후회했다.‘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텐데...’임건우는 탑을 한 번 바라봤다.사실 큰 관심은 없었다.기혈단은 연금술 약물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 속하는 것이었기에 그 약의 가치는 낮았다.그렇지만 그 약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바로, 수련하지 않은 사람도 복용할 수 있다는 점.그래서 많은 사람이 수련을 시작할 때 기혈단을 먹곤 했다.그때 윤문용과 윤서희가 임건우의 집에 도착했다.두 사람은 모두 검은색 밤옷을 입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그리고 빠르게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나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혹시 소식 듣고 도망쳤나?”윤문용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임건우가 가지고 있는 보물이 반드시 손에 넣고 싶었다.만약 임건우가 도망쳤다면 그 기회를 놓친 셈이 될 것이다.“그럴 리 없어요! 그가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어요?”윤서희는 차분하게 답했다.비록 윤서희는 이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사업가였고, 게다가 이미 얼굴에 상처를 입은 상태라 마음이 조금 왜곡되었다.윤서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업, 다른 건 다 부수적이었다.게다가 임건우는 그저 평범한 사람, 윤서희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보물은 아직 남아있어요!”“이건 붕이의 물건이에요. 남겨두었으니 분명 돌아올 거예요.”윤서희가 말했다.“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자. 반드시 돌아올 거야.”임건우는 딸을 안고 붕이와 함께 상업 거리에서 잠시 걸었다.시간이 이미 늦어져 딸은 하품을 연달아 하며 졸고 있었다.임건우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다음에 시간이 되면 다시 오자고 했다.그때 임건우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윙!심장이 잠시 쿵쾅거렸다.“뭐지?”“이 느낌... 익숙해!”“그건... 아버지의 기운이야!”임건우는 자신의 아버지, 임우진의 기운을 감지한 것을 깨달았다.이 사실에 그는 가슴이 뛰었다.그동안 임건우는 아버지가 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