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엘의 팔의 살갗이 조금 까졌을 뿐인데 대니얼은 입을 열자마자 20억의 치료비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Y국 돈으로 달라고 했다. 수소야는 말할 것도 없고 동혁조차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대니얼 씨, 당신네 식구들은 집이 아주 가난한 가 봅니다. H국에 와서까지 사기를 쳐서 돈을 벌려고 하는 걸 보니.” “이게 배상해야 할 일인지는 둘째 치고, 정말로 배상해야 한다고 해도 고작 저 가벼운 피부 외상에 치료비로 20억을 달라니요? 차리리 은행을 터는 게 낫겠어요.” “하하하.” 구경꾼들이 동혁의 말에 웃었다. 외국에서 못 버티고 H국으로 들어온 많은 외국인들이 H국에서는 오히려 귀빈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대학에 넘쳐나는 일부 원어민 강사는 이미 사람들도 모두 알만한 사회현상이 되어버렸다. 지금 동혁이 대니얼을 가리키며 비꼬는 건 많은 구경꾼들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동시에 일부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저 사람 말이 맞아. 무슨 피부 외상에 20억의 치료비? 그 댁 아이가 무슨 왕족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 “빨리 꺼져라.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H국의 말을 알아듣는 대니얼 일행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레이첼은 더욱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우리 가족은 Y국의 귀족이야. 우리 니엘은 당신들과 같은 H국 사람들보다 더 고귀한 신분이라고. 20억의 배상금도 적은 거야.” “Y국의 귀족은 다른 나라 사람을 막 협박해도 되나 보지?” 누군가 코웃음을 치며 말하자 다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분명 레이첼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 “여러분, 모두 조용히 하세요.” 대니얼 가족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그들과 함께 있던 H국의 중년 남자인 서진만이 갑자기 소리쳤다. “여기 계신 대니얼 씨는 Y국에서 수백 년을 이어온 오래된 후작 가문인 골스 가문의 사람이에요. 대니얼 씨가 다음 후작 계승자이기도 하고요.” “당신들처럼 흑수저인 줄 알아요? 밭에서 농사나 하고 살았던 당신들의
“당신도 우리 H국 사람이 아닌가요?” 수소야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녀는 서진만의 태도에 구역질을 느꼈다. 동혁도 냉정하게 말했다. “당신은 정말 이 사람들의 훌륭한 개군요.” “건방진 놈. 어디서 말을 함부로 지껄여?” 서진만은 분노로 안색이 어둡게 변하며 소리쳤다. “진만 씨, 이런 야만적이고 거친 사람과 대화 할거 없어요.” 대니얼이 갑자기 한마디 하더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그런데 이곳 유원지 직원은 뭐 하는 건가요? 내 아이가 다쳤는데 아무도 처리해 줄 생각을 하지 않네요. 그냥 잘못을 묵인하는 겁니까?” 사람들 속에 숨어 사태 추이를 지켜보던 유원지 직원이 이 말을 듣고 놀라 안색이 변했다. 그는 서둘러 무전기로 연락했다. “매니저님, 지금...” 곧 한 무리의 우주유원지 직원들이 빠르게 달려왔다. 그중 한 사람이 대니얼 앞으로 다가와서 허리를 굽혀 사과했다. “대니얼 씨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곳 우주유원지의 매니저 양유성입니다.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다 보니 좀 늦었습니다.” “대니얼 씨의 아이가 다쳤는데,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뭔가요?” 서진만이 불만스러운 듯 콧방귀를 뀌며 동혁을 가리켰다. “지금 대니얼 씨는 가해자 가족에게 사과와 치료비로 Y국 돈 20억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는데 저 사람들이 거부하고 있어요.” “이 일이 여기 우주유원지에서 벌어졌으니 당신들도 뭔가 반응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양유성은 이미 직원으로부터 대니얼 일행의 높은 신분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거기에 상대가 외국인이었기에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요, 저희가 대니얼 씨가 만족할 수 있게 조처하겠습니다.” 양유성은 한동안 허리를 굽혀 사과를 구하고 고개를 돌려 동혁과 수소야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 표정은 대니얼을 볼 때 와 확연히 달랐다. “두 분, 대니얼 씨의 요구는 들어서 아시겠죠? 어서 사과하시고 배상하세요.” 양유성이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다. 수소야는 유원
“이거 봐요. 내가 대니얼 씨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요.” 양유성은 동혁을 매섭게 노려보더니 몸을 돌리고 대니얼에게 허리를 굽혔다. “대니얼 씨, 강제로 사람을 쫓는 권한은 경찰에게만 있습니다. 저희 경호원들은 그런 법 집행 권한이 없어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대니얼 씨가 당신에게 지시하면 그대로 하기만 하면 돼요.” 이때 대니얼 옆에 있던 서진만이 꾸짖었다. “대니얼 씨의 뜻대로 하세요. 대니얼 씨가 뒤에 있는데 뭘 망설이나요? 경찰이 와도 감히 당신을 어찌할 수 없을 거예요. ” “대니얼 씨는 저 사람들을 쫓아버려서 망신을 주려는 것뿐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경찰에도 신고해 저 사람들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겁니다.” 서진만은 대니얼의 마음을 잘 헤아렸는데 뜻밖에도 그의 생각이 적중했다. “진만 씨 말이 맞아요. 우리 골스 가문 가족들이 모두 신사여도 누구나 우리를 모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대니얼은 동혁을 힐끗 쳐다보며 입가에 냉소를 띠었다. “이어서 나 대니얼을 화나게 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결과를 조금씩 느끼게 해 드리죠.” 악의에 찬 대니얼의 말에 수소야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녀가 동혁을 보고 망설이며 말했다. “그냥 제가 사과하고 배상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현장에 있던 몇몇의 H국 사람들이 대니얼을 대하는 태도가 수소야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저 자신만만한 대니얼의 말투로 보아 상대가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들이 와도 굽신거리는 태도로 대니얼에게 잘 보이려 할 거 같아.’수소야는 동혁을 위해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 했다. “엄마,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해요? 쟤네들이 같이 마리를 괴롭혔어요. 마리가 일부러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마리는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억울한 듯 중얼거렸다. 마리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마리 말이 맞아. 네가 잘못한 게 없으니 사과할 필요 없어.” 동혁은 마리의 작은 머리를 문지르며 수소야에게 말했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대니얼 일행의 빈정거림이 이어졌다. 주위에 둘러서서 듣고 있던 H국 사람들은 모두 분노에 찬 얼굴로 바뀌었고 마음속에서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왜? 우리가 잘못 말했어? 내가 말한 사실이 여기 바로 눈앞에 있잖아. 이 하등한 인간들아, 하하.” 구경꾼들이 수군거리자 대니얼 일행이 더욱 거리낌 없이 조롱을 늘어놓았다. 친구들이 옆에서 거들자 레이첼은 더욱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들었지? 이 하등한 H국 인간아.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우리에게 사과한다면 내가 특별히 너를 용서해 주마.” 레이첼은 손을 들어 동혁을 가리켰는데 다이아몬드 반지를 낀 굵은 손가락이 곧 동혁의 얼굴을 찌를 듯 매서워 보였다. 동혁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마디만 더 욕해보시죠. 그때 내가 때렸다고 탓하지 말고.” 대니얼 일행이 그 말을 듣고 모두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H국 사람들은 늘 이런 무의미한 독설을 하지. 사실 그 누구보다 힘도 없으면서. 뭐라 하더라, 그래, 참는 게 이기는 거라고 하면서 말이야.” “그래요, 뼛속까지 노예근성이 있으니까.” 레이첼은 팔짱을 끼고 무시하는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이 하등한 H국 인간아, 네놈이 배짱이 있다면 나를 때려봐? 그럼 난 오히려 네놈을 대단하다고 생각할 거야.” 동혁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고 그는 주저 없이 레이첼의 뺨을 후려갈겼다. 짝!주근깨가 가득한 레이첼의 통통한 얼굴에 또렷하게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시끄러웠던 현장이 순간 잠잠해졌고, 대니얼 등은 모두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주 잘했어. 잘 때렸어.’ 구경하던 H국 사람들 모두 속이 시원했다. “아...” 레이첼은 뺨을 맞고 잠시 멍해 있다가 다시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고 통통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아아... 저 쳐 죽일 H국 놈이, 나를 때려? 감히 나를?” “아아...” 현장 전체가 레이첼의 미친듯한 고함소리로 가득 찼다.
“너, H국 인간 놈, 네가 어떤 놈이건, 오늘, 난 네가 평생 후회할 만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대니얼이 독기가 가득 동혁을 향해 말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양유성을 보고 화를 내며 명령했다. “내 마음이 바뀌었어요. 경호원들에게 지시하세요. 여기 이 H국 인간 놈의 손과 다리를 부러뜨리고 쓰러뜨려서 무릎을 꿇고 반성하게 하라고요.” 대니얼은 H국 사람들 앞에서 동혁의 손과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지시했다. 그는 아주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게...” 양유성은 약간 주저하며 구경하고 있는 유원지의 고객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우주유원지의 사장으로서 대니얼과 동혁을 차별대우를 해서 이미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에 더해 대니얼의 지시를 듣고 동혁의 손과 다리를 부러뜨렸는데 만약 누군가가 이일을 폭로한다면, 우주유원지의 사업이 큰 영향을 받을 것이고 심지어 전 국민에게서 욕을 먹을 수 도 있었다. “뭐가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어요? 문제가 생겨도 여기 대니얼 씨가 계신데.” 서진만이 갑자기 한마디 했다. 그가 거들먹거리며 계속 말했다. “잘 생각해요. 이건 대니얼 씨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이런 기회는 잘 오지 않는다고요.” 양유성은 순간 대니얼과 다른 외국인 친구들의 신분을 생각했다. ‘그래, 이번에 요구를 잘 들어주면 대니얼 씨의 신임을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러다 설사 유원지의 명성이 무너진다고 해도 난 대니얼 씨의 도움을 받아 다시 일어날 수 있어.’ ‘하지만 반대로 지시대로 하지 않아 대니얼 씨 눈밖에라도 난다면 복수는 내가 당하게 되겠지?’ 양유성은 머릿속에서 계산을 하고 결정을 내렸다. “양 매니저님, 부르셨어요?” 그때 유원지의 경호원들이 도착했고 선두에 선 경호실장 권태우가 와서 물었다. 양유성이 손을 뻗어 동혁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사람이 말려도 말을 듣지 않고, 감히 내 유원지에서 사람을 다치게 했어요. 지금 현장에 있는 고객들의 안전을 위해서 즉시 저 사람을
‘분명하게 악의를 드러내면서 나보고 이해해 달라고?’ ‘이게 무슨 날강도 같은 논리지?’ 동혁은 불쾌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전 발을 움직일 생각이 없으니 용건이 있다면 여기서 처리하세요.” 권태우는 인상을 구겼지만 구경꾼들을 발견하고는 주변의 부하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잘 둘러싸.” 경호원들은 다른 고객들이 이 모습을 녹화하지 못하도록 꼼꼼히 둘러쌌다. 권태우가 고개를 돌려 동혁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발을 움직일 수 없으시다니, 그럼 제가 옮겨드리죠.” 그의 눈빛이 매섭게 반짝하더니 갑자기 손을 뻗어 동혁의 목을 잡으려고 했다. 매우 빨라서 일반인은 전혀 피할 수 없는 속도였다. “이렇게 사람에게 막 덤벼들다니, 당신이 정말 경호실장 맞나요? 범죄자 같은데?” 동혁은 어깨를 살짝 옆으로 틀어 피하며 권태우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권태우는 동혁이 이렇게 빠르게 반응하며 피할 줄은 몰랐다는 듯 의외의 눈빛을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권 실장 뭘 그리 꾸물거리고 있어? 빨리 처리해요.” 멀지 않은 곳에서 양유성이 불만스럽게 소리쳤다. 권태우가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내가 악랄하고 거칠다고 욕하지 마세요. 나도 지시를 받으면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니까. 양 사장이 당신 팔과 다리를 부러뜨리라고 하네요.” 말을 마치면서 권태우는 다시 손을 뻗어왔고 이번에는 동혁이 피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당신의 팔과 다리를 부러뜨려야겠군요.” 동혁은 싱긋 웃으며 권태우가 뻗은 팔을 붙잡아 살짝 비틀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냉소하던 권태우의 표정이 순간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으아!”가슴이 터져나갈 듯한 비명소리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반듯하게 세우고 있던 허리가 굽혀졌다. 결국 그는 두 다리에 힘이 빠져 동혁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 권태우의 이마에서 콩알만 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애원하는 눈빛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놔... 이거 놔죠.” 비정상적인
대니얼은 이를 악물고, 갑자기 고개를 돌려 양유성에게 화가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당신 사람들은 대체 뭐 하는 겁니까? 저렇게 다부진 몸을 하고서 H국 사람 한 명도 이길 수 없다고요?” “저, 저건 정말 뜻밖의 사고예요.” 양유성은 굽실거리며 사과를 했지만 사실 그 역시 무슨 일인지 의아하게 생각했다. “이봐요, 양 사장. 난 뜻밖에 사고이든 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저놈 팔다리를 부러뜨려서 내쫓아버리기만 하면 돼.” 대니얼이 펄쩍 뛰며 소리쳤다. “지금! 바로 말이요!” “네네, 알겠습니다.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양유성은 고개를 돌려 나머지 경호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 한심한 사람들, 내가 여태 당신들에게 월급을 헛준겁니까? 빨리 모두 같이 저놈 처리해요.” “매니저님, 그게, 저 사람 실력이 상당합니다.” 그러나 10여 명의 경호원 중 누구도 감히 나서지 못했다. 양유성은 동혁의 실력에 대해 잘 몰랐지만 경호원들은 방금 전 직접 똑똑히 보았다. ‘권 실장님이 저 사람을 한 대도 때리지 못했다고.’ “이 멍청이들, 저놈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당신들 숫자가 훨씬 더 많은 데 뭐가 겁난다고 이러는 거야?” 양유성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구르며 욕을 했다. “다 덤벼요. 지시에 불응할 거면 오늘 내로 모두 사표 써.’ 하지만 양유성이 아무리 욕을 해도 경호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지, 목숨 걸러 왔나? 고작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려고 내 팔다리가 부러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어.’ “개X식들, 너희들 뭐 하는 거야?” 양유성은 너무 화가 났지만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몸을 돌리고 허리를 굽혀 대니얼에게 말했다. “대니얼 씨, 아무래도 그냥 경찰에 신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놈이 제 직원의 손발을 부러뜨렸으니 고의적인 상해에 해당합니다. 분명 처벌을 받을 겁니다.” 대니얼은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저놈을 힘으로 어찌할
“대니얼 씨는 Y국의 골스 귀족가문 출신에다, 이번에 Y국 영사관에서 특별히 초청을 받고 오신 귀빈입니다.” “반면에 이 이동혁이라는 놈은 거칠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하찮은 시민에 불과한데 사과를 왜 하세요?” “이런 놈에게 사과가 가당키나 합니까?” 양유성은 동혁을 시큰둥하게 흘겨보더니 냉소를 흘렸다. 이 말을 듣고 놀란 오태산은 어지럽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동혁의 안색을 살폈는데 동혁의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을 보고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즉시 화를 냈다. “양 매니저, 내가 닥치라고 했는데 못 들었어?” “그게 사장님, 전 그저 사장님을 위해 드린 말씀입니다.” 양유성은 오태산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자기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사장님의 신분으로 이런 놈에게 사과를 하는 건 정말 격이 떨어지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뺨을 한 대 세게 얻어맞았다. 짝! 참다못한 오태산이 양유성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쳐 바닥에 쓰러뜨렸다. “이 개X식아, 네놈이 무슨 자격으로 이 선생님을 깔봐?” 오태산은 양유성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우리 우주유원지와 회사가 모두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아?” “알죠, 알아요. 혜성그룹이잖아요.” 양유성은 뺨을 가리고 오태산을 쳐다보았다. 오태산이 말했다. “그럼 넌 이 선생님의 아내분이 혜성그룹의 진 회장님이신 건 알고 있어?” “그, 그게 무슨...” 양유성은 믿지 못하겠다는 눈으로 동혁을 바라보았다. 화가 난 오태산이 이어서 말했다. “그럼 이것도 알고 있어? 여기 이 선생님은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야. 몇 천억의 자금을 손에 쥐고 운용하시는 분이라고. 그 돈을 조금만 써도 너 하나쯤은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도 있어.” “우아.” 현장에서 갑자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까 외국인의 아내를 때린 저 젊은이가 원화투자회사의 사장이라고? 거기에 몇 천억의 자금을 운용하는?’ ‘완전 부자였잖아.’
동혁의 이런 비난에 경병수는 놀라서 쓰러질 지경이었다.‘주다정 저 멍청한 X이 자기만 망친 게 아니라 나까지도 망쳤어.‘시장님의 말은 우리 방송국 전체에 아주 불만이 많다는 걸 드러낸 게 분명해.’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면서 경병수는 꽉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시, 시장님... 저 주다정이 갑자기 미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희 방송국 직원들은 모두 시장님을 존경하고 있고, 불경한 의도를 품은 사람은 결코 없습니다!” 말을 하면서 경병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의 싸늘한 태도를 보자 주다정에 대한 분노가 솟구쳤다.‘이 멍청한 X이 나까지 말려들게 하다니!’경병수는 갑자기 주다정을 걷어차서 바닥에 쓰러지게 만들었다.거기서 그치지 않고 두 발로 계속 거세게 걷어찼다. 퍽! 퍽! “아악! 아파요. 양아버지 제발! 제발 그만 때리세요!!”주다정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누가 네 양아버지야!”주다정의 입에서 양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경병수는 넋이 나갈 정도로 놀랐다.재빨리 달려들어 주다정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연달아 따귀를 때렸다.짝! 짝! 짝!“악! 제발 그만!” “나는 너하고 아무 관계도 없어! 함부로 친척이라고 하지 마!” “한 번만 더 주둥이를 놀리면 때려 죽여버리겠어!”경병수는 이번에 정말 필사적이었기에 온 힘을 다해 주다정을 때렸기에, 주다정은 너무나 비통한 나머지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경병수가 아무리 둔하다 해도 동혁과 주다정 사잉에 원한이 쌓여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주다정은 이미 시장님의 마음 속에서 끝났어.’‘지금 만약 주다정이 내 수양딸이라는 게 들통나면 이동혁이 나를 그냥 두겠어?’주다정의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때리던 경병수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때리던 걸 멈췄다.지금 주다정은 갯벌의 진흙처럼 엉망이 된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마치 숨이 간들간들한 강아지마냥 입으로는 연신 끙끙 신음소리를 내
“이, 이동혁?!” 주다정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설마 요즘 내가 너무 잠자리에 탐닉하느라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건가?’ 자시을 때려 죽인다 해도 동혁이 여기에 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여기는 시장님의 관저이자 H시 권력의 중심지야. H시에서 가장 존귀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이동혁 같은 쓰레기가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어?’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나와서 자세히 보고는, 주다정은 다시 한번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책상 뒤에 있는 남자는... 정말로 이동혁이 맞아!’주다정은 완전히 멍한 상태였다.요 며칠 동안 주다정은 전력을 다해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모두가 욕을 퍼붓자, 동혁은 H시에서 쥐구멍이라도 찾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주다정의 예상대로라면, 지금쯤 동혁은 집 밖에도 못 나오고 쥐 죽은 듯이 지내거나, 몰래 H시에서 도망칠 계획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이동혁이 당당하게 시장실 한가운데 서 있다니?’ ‘이게 말이 돼?’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주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동혁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화를 냈다. “야, 이동혁! 너 같은 쓰레기가 왜 여기 있는 거야?” “넌 인간 말종인 쓰레기야! 이곳이 어디라고 너 따위가 감히 들어와?” 주다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시장실 안은 이미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시장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부시장 임창호와 방송국 국장 경병수.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시장실 직원들까지 누구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마치 바보를 보는 것처럼 주다정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눈길을 느끼자, 주다정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불안해진 주다정이 주변을 둘러보니, 시장실 안에는 동혁 외에 임창호 부시장과 시장실의 직원들이 있었다.‘시장님은?’주다정은 문득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이동혁이 이런 중요한 장소에 버젓이 나타난 데다가, 부
“시장님, 경병수 국장은 오랫동안 방송국에서 근무한 베테랑입니다. H시 내에서도 명망 있는 인물이고도 하고요. 만나보시겠습니까?” 임창호가 허리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송국 국장이?” 동혁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답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곧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 남성이 임창호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시장님, 이쪽은 시 방송국의 경병수 국장입니다.” 임창호가 간단하게 소개했다.동혁을 본 경병수는 첫눈에 새 시장이 과연 바깥에 떠도는 소문 그대로라는 느낌이 들었다.‘정말 너무나 젊은데!’시장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인 경병수가 겸손하게 인사했다. “시장님, 그냥 ‘경 국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가볍게 대답한 동혁이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임 부시장이 보고할 게 있다고 하던데 이번 우수직원 선발과 관련된 건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 시장님!” 순간 당황했던 경병수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이번에 저희 시 방송국에서 선발된 우수직원은 주다정이라는 경제 뉴스 앵커입니다.” “어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뒤에, 저희도 내부적으로 철저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동혁은 담담하게 물었다. “아 그래요? 조사 결과는 어떤가요?” 경병수가 몰래 동혁의 표정을 살폈지만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주다정이 앞서 시장이 단독으로 자신을 접견하기로 했다고 말한 걸 떠올리고, 시장이 주다정에게 악의가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주다정의 직속 상관인 자신이 주다정에게 좋은 얘기를 하라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경병수가 얼른 입을 열었다.“네! 시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내부 조사 결과 주다정 기자는 진지한 태도로 업무를 책임지고 있고 업무 능력도 아주 뛰어납니다.” “게다가 도덕성과 인품 면에서도 방송국 내에서 아주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주다정 기자가 몇 년 간 연속해서 우수직원에 선정된 것은 바로 방송국 전체 직원들의 지지를 받고
“오 사장님, 과찬이세요. 오 사장님은 리성투자회사에 명문가인 이씨 가문을 배경으로 가지고 계시기에, 언론계도 오 사장님 앞에서는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지요.” “오 사장님에 비한다면 저는 감히 비교할 가치도 없는 미미한 존재지요.” 주다정이 웃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이 전화를 한 이유가 말처럼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을 거야.’ “오 사장님이 갑자기 전화를 주신 게 혹시 저한테 시키실 일이라도...?” 전화기 너머에서 오한민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킬 정도는 아니고, 주 기자가 요즘 이동혁과 이동혁의 아내를 상대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겼어.] ‘휴... 다행이야.’ 그 말을 듣자 주다정은 한숨을 돌렸다.주다정은 오한민이 이씨 집안을 대표하는 동혁과 원한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게다가 이전에 오한민과 어정쩡한 관계였던 대니얼도 동혁에 의해 폐인이 되어 참혹한 모습으로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이동혁을 싫어하는 오한민이 이동혁을 도우려고 전화한 건 분명히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 주다정은 곧바로 억울하다는 듯이 가장하고 말했다. “오 사장님, 저는 정말 억울해요! 그 이동혁과 진세화 그 두 사람이 얼마나 저를 무시했는지 아세요? 심지어 제게 무릎을 꿇고 구두를 핥으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이 부부하고 끝까지 싸우려는 거예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부부의 힘이 너무 강해요. 제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여전히 그 부부를 넘어뜨릴 수가 없어요.” “오 사장님께서 좀 도와주신다면, 제게는 정말 큰 힘이 될 거예요.”주다정은 자본시장의 큰손인 오한민은 자신은 꿈도 꿀 수 없는 언론 매체 장악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한민이 일단 힘을 쓰기만 하면 이동혁 일가의 오명을 전국적으로 퍼지게 할 수 있어!’ 침묵하고 있던 오한민이 차갑게 말했다. [이동혁은 내 아들을 망가뜨린 놈이야. 나도 그 개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지.] [하지만 지금 그놈은
경병수의 말이 당연히 사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주다정은 속으로 득의양양했다.하지만 경병수의 말과 전혀 다른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저는 시장님이 너무 빨리 저를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아요.” “쉽게 얻게 된다면 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요” “쉽게 얻은 건 쉽게 버려지니까요.” “그래서 우선 시장님의 비서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감정을 쌓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싶어요.” “그래서 국장님이 이번엔 꼭 도와주셔야 해요.” “저하고 같이 가서 시장님께 업무 보고를 하시면서, 저를 비서로 적극 추천해 주세요.” 주다정은 언제나 명문가에 시집가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다.‘내 육체를 팔아서 단기간의 이익은 얻을 수 있겠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에 불과해’‘새 시장의 부인이 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쟁취할 거야.’‘남자의 그늘 아래서 늘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 없는 그런 정부 말고!’ 주다정이 간드러진 목소리로 경병수에게 속삭였다. “국장님, 꼭 도와주실 거죠?” “앞으로 제가 더 잘 챙겨 드릴게요.” 방송국에서 십여 년 동안 국장으로 있었기에, 경병수는 H시의 터줏대감으로 유명했고 인맥도 넓었다.자신이 적극적으로 추천한다면, 자신의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시장이 틀림없이 주다정을 비서로 채용할 거라고 생각했다,경병수는 잠시 고민했다. ‘주다정은 예쁘지만 솔직히 몇 년 동안 즐겨서 이젠 좀 질렸어.’ ‘마침 방송국에 젊고 예쁜 인턴들이 들어왔으니, 주다정을 대신할 새로운 타겟을 찾을 때가 됐지.’ 하지만 주다정은 너무 영악해서 줄곧 정리할 기회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 기회가 온 거야.’‘주다정과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다정이 정말로 시장 비서가 된다면 앞으로 아주 쓸모 있는 백 그라운드를 가지게 되겠지.’ ‘정말로 시장님 여자가 된다면 그럼 금상첨화지.’ ‘원래 주다정의 행실로 봐서는, 시장님과 같은 큰 인물은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다정 같은 여자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하지만 지금
이 말을 들은 나원재와 직원은 순간 멈칫했다. ‘시장님이 직접 주다정의 이름을 언급했어. 이건 뭔가 심상치 않아.’ ‘주다정에게 특히 깊은 인상을 받은 모양이지.’‘혹시 시장님이 주다정에게 관심이 있으신 건가?’ 동혁의 말에 주의하면서 나원재는 바로 직원에게 눈짓을 했다. 나원재의 신호를 알아차린 직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시장님, 주다정 기자도 왔습니다. 혹시 따로 접견하시겠다면 저희가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동혁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우수직원들을 접견실로 안내하세요. 좀 있다가 제가 가서 만나보겠습니다.” “방송국의 주다정 기자는 일단 기다리라고 하세요. 나중에 따로 얘기하겠습니다” ... “시장님께서 나중에 저를 따로 접견하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나원재가 바로 말을 전하자, 주다정은 곧바로 요염한 자태를 드러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시장님이 특별히 자신에게 신경을 쓰고 있어서, 나중에 단독으로 접견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오해한 게 분명했다. ‘내가 움직였기 때문에 마침내 시장님이 날 주목하게 된 거야!’ ‘분명히 내 미모에 반한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왜 다른 사람들은 단체로 만나고 나만 따로 접견한다고 했겠어?’ ‘아직 기회는 있어.’‘성세그룹 회장한테는 문전박대를 당했지만, 시장님한테서 예상치 못한 기회가 찾아왔어!’ 생각할수록 더 흥분한 주다정은 벌써부터 아랫도리가 근질거렸다.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한 주다정이 일부러 조심스러운 척하면서 물었다. “비서실장님, 시장님도 요즘 정시에 퇴근하시나요?” 나원재에게 묻는 주다정의 목소리에는 이미 변화가 생겼다. 전에는 공손하게 나원재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지만, 지금은 마치 동등한 위치에 있는 듯한 말투였다. 시장님의 여자가 된 자신의 지위가 예전과 다르다는 걸 마치 과시라도 하듯이. 시장님이 주다정에게 반했다고 착각한 나원재도 더 정중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최근에는 시장님께서 퇴근 시간 이후에도
곧 N도의 언론 매체들이 동혁과 관련된 기사를 장황하게 보도했다. 황지강의 경고가 있었기에 주다정은 이번에는 성세그룹과 원화투자회사를 곧바로 겨냥하지 못했다. 그래서 동혁과 원화투자회사와의 관계보다는 동혁과 수소야의 사적인 관계, 그리고 항난그룹을 장악하려는 의혹을 중점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번에 더 큰 파장을 일으키기 위해서, 주다정은 새로운 폭로를 터뜨렸다 바로 어린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예전 류혜진의 의료사고를 다시 들춰낸 것이다. 이제 류혜진은 아예 바깥출입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분노한 시민들이 하늘저택단지 입구에 모여서 류혜진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기 때문이다. “살인자!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해!” 이전에는 류혜진의 동생 류혜연이 류씨 가문과 계속 연락하면서 류혜진의 입장을 변호했다. 가문에서 언니를 다시 받아주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보도가 나오자 류씨 가문에서는 류혜연의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심지어 여러 경로를 통해서 류혜진이 의료사고로 인해 이미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다. ‘이런 소문은... 류씨 가문에서 고의로 흘렸을지도 몰라.’ ‘류혜진 때문에 류씨 가문이 연루되는 걸 피하기 위해서.’ 결국 류혜진은 온종일 집에서 눈물로 지새웠고 동혁에 대한 태도도 더욱 거칠어졌다.주다정 때문에 온 집안이 이렇게 되자 세화는 더없이 괴로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세화가 계속 주다정에게 연락했지만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부터 류혜진에게 호되게 욕을 먹은 동혁은 결국 시청으로 피해서 조용히 지내야 했다. 동혁이 사무실에 도착하자, 비서실장 나원재가 활짝 웃으면서 보고했다. “시장님, 어제 지시하신 각 부서의 자율 점검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 기관에서 ‘우수직원’을 선정했는데, 그 직원이 오랫동안 시 홍보 파트의 고위 간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두 사람 모두 바로 해임
주다정은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그대로 드러낸 채. ‘H시의 대표 미녀에 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로 뭇 남성들의 이상형인 내가...?’ ‘성세그룹의 회장 눈에는 한낱 쓰레기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고?’‘아니, 쓰레기보다도 못한 보기도 싫은 인간이라는 거야?’ 주다정은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히는 걸 느꼈다. 하지만 주다정은 알지 못했다.사람은 자신의 선택에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자신의 몸을 무기로 남자들을 이용해서 위로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을 때. 주다정이 상류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은 영원히 막힌 것이다,‘상류사회 남자들은 바보가 아니야.’‘나 같은 여자와는 즐기기만 할 뿐 정말 평생을 함께 할 배우자는 아니라는 거지.’‘결국 최선의 결말은 돈 많은 눈먼 졸부를 만나서 겨우 호강이나 하는 정도겠지.’한동안 괴로운 표정으로 고심하던 주다정은 마침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고 화를 내며 소리쳤다.“그 회장이라는 인간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는 거야?” “나를 이렇게 모욕해? 두고 봐. 내가 반드시 내 인맥을 총동원해서 제대로 까발려 주겠어!” “성세 그룹도 같이 무너지게 해 주겠어. 내 손에 박살 나는 꼴을 똑똑히 봐 둬!” 주다정은 완전히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그저 불쌍하다는 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황지강이 어이없다는 듯 주다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주다정 씨, 성질도 참 대단하군요.” “회장님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큰소리치다니.” “하지만 인생을 더 산 내가 한마디 충고하지요.” “판을 엎어버리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판을 엎을 수 있는 힘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오히려 자기 발등을 찍을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마지막으로 비꼬듯이 내뱉었다. “잘 가요. 배웅은 사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주다정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천미에게만 가볍게 목례한
“회장님께서 저 여자에게 꺼지라고 하셨다고요.” 선우설리의 말투는 거칠고 상대에 대한 혐오감이 가득했다. 그녀는 전화에서 들었던 동혁의 말투를 모방해 말했다. 주다정은 멍해졌고 당황해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회장이 나보고 꺼지라고 했다고?’ ‘말도 안 돼!’ ‘난 H시 방송국의 메인이며 미모의 여성 진행자야.’ ‘이미지 너무 예뻐서 얼마나 많은 H시 남자들이 좋아하는데.’ ‘그런데 회장이 어떻게 나보고 꺼지라고 할 수 있지?’ 정신을 차린 주다정이 냉소하며 말했다. “선우 사장님, 설마 회장님의 말씀을 잘못 전달하시는 건 아니겠죠? 혹시 저를 질투하시는 건가요? 제가 회장님을 만나는 게 무서우세요?” ‘그래, 선우 사장은 날 질투해서 이렇게 말한 게 틀림없어.’ ‘지난번에도 내가 회장님을 뵈러 왔을 때, 그때에도 선우 사장은 줄곧 건성으로 날 대했잖아.’ ‘지금도 분명 똑같은 거야.’ “선우 사장님, 정말 너무 힘드시겠어요. 회장님 앞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고 모든 예쁜 여성이 회장님과 만나는 걸 막으려면 말이에요.” “쯧쯧, 얼마나 본인에게 자신이 없으면 그러겠어요?” 주다정은 단숨에 심리적인 동요를 회복하고,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선우설리를 바라보았다. 이미 사이가 틀어졌으니 그녀도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렇게 된 거 되도록 일을 크게 벌여야겠어. 소동 커져서 회장에게 전달되면 선우 사장이 비서일을 못하게 만들 수 도 있잖아?’ “주다정 씨라고 했나요? 당신에 대해 회장님이 하신 말씀은 듣기 거북할 정도예요.” “같은 여자로서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요.” “그러니 당장 성세그룹을 떠나세요. 괜히 안 좋은 일 당하지 말고요.” 선우설리는 주다정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봤는데 마치 한낱 술집 여자로 보는 것 같았다. 주다정은 선우설리의 말을 믿지 않았고 선우설리가 일부러 연막탄을 날린다고 생각하며 냉소했다. “괜찮으니 한번 말해보세요. 대체 회장님께서 저를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선우설리는 표정을 찡그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