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조의의 성질대로라면 틀림없이 한성호의 문제를 토론할 것이다. 만약 자신이 화를 풀지 않는다면 한성호는 평생 조의의 비서가 될 수 없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자 진루안의 안색이 자기도 모르게 좀 싸늘해졌다.‘나는 당연히 화를 풀지 못했어. 국왕의 비서로서 한성호는 이렇게 버젓이 손하림이 자신을 상대하는 것을 지지했어. 내가 아직 화가 나지 않았다면 정말 표정을 조작한 거야.’‘이번에는 누가 관련되었든 손하림이라도 내가 잘못을 들춰내야 해.’전광림의 장남 전해강에 대해 말하자면, 이 건성의 넘버2대신은 진루안도 호되게 처벌할 작정이며 절대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자신이 대신의 직위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자신이 더 높은 위치를 경쟁할 능력이 없는데, 오히려 내가 자신의 길을 방해했다고 탓해?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지.’‘자기가 도와주지 않았다고 나를 탓하면서 아버지를 죽인 원수로 여겨? 그야말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야.’또 각 지방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모두 법망을 피한 자들을 이번에는 모두 잡아들일 수 있을까? 탓하려면 그들 자신이 수렁에서 뛰어나온 것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진루안은 잠시 동안 정말 그들을 잡지 못하고 이들은 모두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을 것이다.진루안은 줄곧 소파에 앉아 있었고 조의는 시종 펜으로 글씨를 썼다. 다만 수시로 고개를 들어 진루안을 보았다. 진루안이 소파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눈에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고, 이틀 동안의 여론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조의는 은근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용국의 전신이자 궐주, 백 군신의 어린 제자이자 고대무술계 진씨 가문의 후계자야. 이런 기백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말해봐, 네가 졌어, 아니면 이겼어?” 만년필을 내려놓은 조의는 웃음기를 띤 채 진루안을 바라보며 물었다.조의의 질문을 듣고 즉시 일어난 진루안은 조의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국왕 전하, 이번에는 승패의 문제가 아닙니다.” 진루안의 지금 표정은 극히
“손하림의 아킬레스건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오랫동안 참았어.”“이 손하림이 날뛸 때는 나조차도 안중에 두지 않았지.”“이번에 나는 오히려 그 자가 어떻게 말하는지 한 번 보고 싶구나!”조의의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지금 그는 정말 살기와 분노를 일으켰다.진루안은 이런 조의를 보고 약간의 엄숙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조의에게 손하림은 암이었을 거야. 그러나 이 암은 용국의 중요한 부분에서 자랐는데, 병리를 찾지 않고 절제하면 쉽게 암이 확산될 수 있어.’손씨 가문은 극히 중요한 홍보 채널을 장악하고 있어. 만약 손하림이 완전히 필사적인 태세라면, 필연코 용국에 거대한 위험을 초래하게 될 거야. 이 위험은 조의가 감히 감당할 수 없고 감당할 방법도 없어.’그리고 지금 진루안이 여기에 와서 이 두 개의 견고한 증거들을 그에게 건네준 것이야말로 절대로 손하림이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진정으로 병의 근원을 찾게 해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루안아, 너는 손하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예리한 눈빛으로 진루안을 바라보며 조의가 물었다.진루안은 조의의 안색이 이렇게 무겁고 진지한 것을 보자, 이번에는 국왕이 농담하는 것이 아니라는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손하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고 묻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일종의 탐색이다. 손하림에 대한 내 증오가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알고 싶은 거야.’다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그와 손하림 사이의 모순은 손대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서 한 걸음씩 이어지면서 불구대천의 원수까지 된 것이다.“저는 당사자이니 모든 것은 국왕께서 결정하십시요.”진루안은 가볍게 웃으며 조의를 향해 말했다.조의는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진루안을 가리키며 화를 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너 이 녀석, 오히려 교활한 놈이네, 됐어, 네가 이걸 해 낸 게 나를 아주 놀라게 했어.”“원래 나는 네가 이번에... 네 녀석의 운이 강할 줄은 몰랐어.”조
“나는 국왕이야. 용국 전체가 조씨 천하이니 두려울 게 없어.”“단지 너의 명성이 커지면 네 주변의 부하들이 딴마음을 품을까 봐 걱정했을 뿐이야. 그래서 이번에 일부러 너의 명성을 없앤 건 너에게도 좋은 일이다.”“이 일은 네 스승이 끼어들어 막지 않았어. 틀림없이 백 군신도 내게 동의하고 지지하는 거야.”“내가 여기서 한 가지 약속을 하마. 네가 용국을 배신하지 않는 한, 나 조의는 절대로 진루안 너를 저버리지 않겠어.”이렇게 말하는 조의의 표정은 이미 극히 무겁고 진지했다. 말투에도 진실한 느낌이 배어 있었다.이 말을 들은 진루안은 얼른 일어나 조의를 향해 예를 갖추었고,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전하, 안심하십시오. 저 진루안의 몸속에는 용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절대 용국을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명횡사하게 될 것입니다!”“하하, 그럴 필요까진 없어, 그럴 필요 없어.”마음이 시원해진 걸 느낀 조의는 크게 웃었다. 바로 책상에서 나와서 직접 진루안을 소파에 앉게 했다.“네 녀석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후배야. 심지어 너를 내 아들처럼 여겼지.”“너에 대한 기대가 정말 커. 루안아, 노력해라.”“내가 늙어서 퇴위하면 너는 다음 국왕의 가장 좋은 오른팔이 될 거야.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약속은 바로 이거야.”다음 세대 조정의 오른팔, 이 약속은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진루안은 이 말을 들었지만 아무런 충격이나 큰 기쁨도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 다른 사람들은 부귀영화를 추구하지만, 진루안은 용국을 점점 더 공평하고 공정하게 만들고 싶었다. 비록 좀 유치하더라도 여전히 이를 위해 노력했다.나머지차기 국왕의 오른팔과 같은 것들은 모두 허명일 뿐이다.진루안의 표정은 모두 조의가 눈여겨보고 있었다. 진루안은 기대 이상의 성과에 기뻐하는 기색도 없었지만, 조의는 화를 내지도 않았다.진루안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순수한 사람이야. 순수하고 거짓 없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나라와 국민을 위
‘보아하니 조의는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아. 내가 지금 이 순간 어떤 궤변을 늘어놓아도 이미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아. 그럼 오직 마지막 길만 남았어.’‘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해서 관대한 처리와 바꾸는 거야.’‘내 지위와 중요성, 그리고 손씨 가문이 또 홍보 플랫폼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조의도 한번에 나를 내칠 수 없어.’이렇게 생각하자, 손하림의 창백한 안색은 점차 사라지고 마음이 진정되었다.“국왕 전하, 제가 죄를 인정하러 왔습니다!”“전하께서 제 죄를 처벌해 주십시요!”흡사 늙어서 말라비틀어진 듯한 모습의 손하림이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쉬었다.조의는 의아하게 손하림을 바라보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손 대신, 그게 무슨 뜻입니까? 무슨 죄입니까?”“전하, 저는...”손하림은 조의의 표정을 보고, 또 소파에 앉아 있는 진루안이 극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뭔가 알게 되었다. 한숨을 돌리면서 바로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전하, 저는 이미 78세가 되었습니다. 재상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관직에서 물러난 뒤 노년을 편하게 보내고 싶습니다!”손하림은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해야만 손씨 가문 전체를 지킬 수 있고, 손씨 가문의 다음 세대의 희망을 지킬 수 있다.자신의 노쇠한 몸을 이용해서 손씨 가문을 마지막으로 비호는 것이다.그렇지 않고 자신의 죄명이 일단 대중에게 공개되면, 그 자신은 고사하고 손씨 가문도 대중에게 욕을 먹고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할 것이다.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그 자신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그러므로 조의의 뜻은 바로 이러할 것이기에, 그가 말한 것도 조의가 연기하도록 먼저 호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연기를 하는 거야? 당연히 진루안과 조정의 사람들이지.’“에이, 손 대신이 용국에 공을 세웠는데, 어떻게 물러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충격에 찬 표정으로 손하
손하림은 늙은 여우다웠다. 조의의 말에서 깊이 숨어 있는 뜻을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조의의 깊은 뜻에 따라 즉시 조치했다. 이렇게 되면 조의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을 것이고, 그와 손씨 가문 모두 보전할 수 있다.그는 먼저 명예퇴직을 제기했다. 또 홍보 플랫폼은 모두 용국의 플랫폼이니 손씨 가문에서 그렇게 많이 차지할 수 없어서 국가에 반환하겠다는 제의를 했다.이 두 가지 일을 승낙하자, 그는 전혀 낙상을 입지 않고 안정되게 착륙할 수 있었다.“손 대신, 당신은 용국에 큰 공을 세웠으니, 용국은 당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무슨 어려움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손하림의 곁으로 가서 어깨를 다독이는 조의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손하림은 총애를 받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얼른 손사래를 쳤다.“국왕 전하의 이 말씀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어떻게 용국에게 폐를 끼칠 수 있겠습니까?”“그래요, 손 대신의 대국관은 아주 좋아요.” 조의는 아주 만족스럽게 손하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손하림의 태도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던 진루안은, 자신이 성질을 억제하지 못할까 봐 두 사람의 연기를 보러 가지 않았다. ‘손하림의 처벌에 대해서 나는 나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조의는 이미 내게 명확하게 타일렀고, 이 일에 내가 개입하지 못하게 했어.’진루안은 자신은 아직 국왕과 대치할 실력이 없고 국왕과 대치할 수 없기에,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게다가 비록 내 손에 손하림의 약점이 있지만, 그를 진흙탕 속으로 밀어넣고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 조의는 필연적으로 이광정의 존재를 고려했기 때문에 손하림을 잡고도 한 번 풀어준 거야.’손하림도 이광정이 소극적인 자세로 있으면 절대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것도 그가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미쳐 날뛰는 원인이기도 했다.‘지금은 비록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고 손씨 가문이 장악한 홍보 플랫폼을 대부분 내놓아야 했지만, 그의 행동은 여전
고개를 끄덕이고 웃은 진루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서 나갔다.‘여기까지 말했으니,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필요가 없어.’‘손하림과 조의의 연기는 또 내가 보라고 연기한 거 아니겠어?’조의의 그 말들은 손하림에게 들려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진루안에게 대세를 이해하게 하고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진루안에게 들려준 것이다. 이런 것들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서, 아예 자룡각 집무실에서 나온 것이다.진루안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는 조의의 눈에서 웃음기가 점차 줄어들면서 훨씬 무겁고 복잡해졌다.‘내가 이렇게 하면 반드시 진루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것을 알고 있어. 결국 진루안은 이번에 명성을 잃게 되었어.’‘설사 내가 직접 나서서 해명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반신반의하게 될 거야. 이전처럼 진루안이 좋은 사람이라고 완전히 믿지는 않겠지.’그리고 이것이 바로 조의의 계획이다. 그의 목적은 바로 이렇다. 바로 진루안을 더러운 다듬지 않은 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직 이렇게 해야 이 옥을 그의 손에 쥐고 사용할 수 있고, 언젠가 그들 조씨 일가가 진루안에게 쫓겨나지 않게 될 것이다.그는 자신이 이 방법을 사용한 것이 부끄럽지 않았다.용국을 위해서든 그들 가문을 위해서든 꼭 그래야 했다.‘진루안이 이해하지 못해도 좋고, 원망해도 소용없어.’원래 그는 진루안이 자신과 한바탕 크게 싸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좀 더 안심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러나 진루안은 뜻밖에도 한 마디도 내게 하지 않았어.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어.’‘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거야? 진루안이 더욱 성숙해지고 더 냉정하고 이성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해.’‘이건 좋은 일이 아니야. 이것은 내게 있어서 나쁜 일이야.’지금 조의는 오히려 진루안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차홍양을 총 한 방에 죽였던 것처럼 행동하기를 바랐다. 이는 진루안이 성장하지 않았고,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이태교는 전화를 받자마자 진루안이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대답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을 놓았다.‘손하림은 처리할 수 없지만 손하림과 함께 자신을 음해하려던 사람들은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그 자들을 진흙탕 속에서 밟지 않으면 내가 진루안이 아니야.’진루안은 이번에도 반드시 한 번 사소한 원한이라도 반드시 갚아야 했다. 조정의 위아래로 하여금 진루안 자신이 약한 사람이 아니고, 일단 자신을 화나게 하고 마지노선을 건드리면 그 결과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몇 명은 죽여서 위신을 세울 수 있어!”“전해강은 은 몇 년 동안 가둬 둬. 징계라고 할 수 있어!”“아무래도 전광림의 나이가 많은데 정말 전해강을 엄벌한다면 타격을 받을 거야.”진루안은 이태교에게 한 마디 지시하면서 이태교가 날카롭게 손을 대지 않도록 하고 전해강을 몇 년 동안 감옥에 가둬두는 것으로 판결하였다.이태교는 지금 소파에 앉은 채 진루안의 부탁을 들은 이태교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삐죽거렸다. ‘앞서 누가 차별 없이 대한다고 말했는지 모르겠어.’그러나 그도 전해강의 신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궐주님!][진루안이지?]이때 빙그레 웃으며 문밖에서 걸어 들어온 맹사하가 이태교를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이태교는 소파에서 일어나 맹사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핸드폰 줘, 내가 말할게!] 맹사하는 미소가 가득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태교는 감히 멋대로 대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맹사하에게 건네주었다.핸드폰을 귓가에 댄 맹사하가 크게 웃었다.[하하하, 루안아 아주 잘했어. 이번 일은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고 할 수 있어.]미간을 찌푸린 진루안은 맹사하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이태교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명단을 맹사하에게 넘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맹사하는 정사당 재상의 한 명이자 동시에 감찰원의 책임자로, 전문적으로 모든 관리들을 감찰하고 처리하는 기구의 책임자이다.어느 대신을 처리하든
“사하 숙부님이 계시니 안심이 됩니다.”고개를 끄덕이며 웃은 진루안은 또 맹사하와 이런저런 얘기를 몇 마디 더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진루안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손하림의 처리 방식에 대해 그는 당연히 동의하지도 않고 만족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것이 이미 가장 좋은 처리 방법이다. ‘정말 손하림을 감옥에 가둘 수는 없어. 그렇게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아.’‘손하림과 앞서의 전계상은 모두 정사당의 재상이지만 지위가 달라.’‘전계상의 배후에는 큰 가문이 버티고 있지 않아서 비천한 집안에서 일어난 반쪽짜리 재상에 속해. 게다가 전계상의 재상 순위도 손하림보다 훨씬 못했지.’‘그러나 손하림은 달라. 배후에는 손씨 가문과 같은 최고의 권문, 그리고 이광정과 같은 강한 손자가 있어. 그리고 손하림이 재상 중 상위권이라는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어.’‘만약 손하림이 모두 제거된다면, 용국 정사당으로서는 절대적으로 거대한 명예의 타격이야. 조의가 원하지 않는 결과지.’‘그래서 손하림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더라도 고작 명예퇴직을 시킬 뿐이야.’‘이것은 이미 손하림에 대한 가장 큰 징벌 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 더 엄중한 징벌 방식은 있을 수 없어.’진루안의 답답함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조의는 고려하지 않을 것이고 고려할 수도 없다.조의는 결국 용국의 국왕이다.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은 균형이다.진루안이 이 균형을 깨뜨리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 하필 그는 진루안을 이용해서 손하림을 명예퇴직의 지경으로 몰아넣었고, 또 진루안이 민간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을 무너뜨렸다.조의야말로 이번 일의 가장 큰 승리자이며, 나머지는 손하림이든 진루안이든 모두 실패자라고 할 수 있다.진루안은 주먹을 쥐고 있었다. 이 순간 그는 정말 돌아가서 조의의 면전에서 질문하고 싶었다. ‘설마 최소한의 공평도 없단 말이야? 설마 시비도 가리지 않는 거야?’그러나 지금은 이미 의기양양할 때가 아니기에, 결국 진루안은 성질을 억제했다. 그는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