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한유나를 노려보았다. 주민재가 강하린의 각막을 가로채서 한유나에게 주었던 것이다.주민재는 한유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갖다 바치는 남자였다.“그리고 왜 병원에서 강하린 씨의 진료 기록을 찾을 수 없는지 알아요?”한유나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강하린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설마 당신이...”강하린은 주민재한테 진료 기록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주민재는 병원 측에 물어보고 나서 강하린이 거짓말한다고 말했었다.“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한유나는 강하린을 흘겨보면서 말했다.“저의 힘으로는 환자의 진료 기록을 시스템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민재 오빠뿐이죠.”한유나가 팔짱을 낀 채 말을 이었다.“강하린 씨는 민재 오빠를 많이 사랑하지만 오빠는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너무 불쌍해서 못 봐주겠어요. 사실 민재 오빠는 강하린 씨의 상태가 어떤지 다 알고 있어요. 주씨 가문 어르신이 조사할까 봐 일부러 강하린 씨의 진료 기록을 지우고 모른 척했을 뿐이에요. 저는 강하린 씨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멍청하네요.”“내가 당신 말을 어떻게 믿죠? 거짓말하지 마세요.”강하린은 붉어진 두 눈으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한유나가 혀를 끌끌 차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민재 오빠가 아니라면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아직도 제 말을 의심하는 건가요?”한유나는 강하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그리고 민재 오빠는 주씨 가문 어르신한테 적당히 둘러댔어요. 강하린 씨가 필요 없다면서 저를 데리고 왔거든요. 먼저 가보라고 전해달라고 해서 내려오는 길이었고요.”강하린이 차갑게 웃었다.“민재 씨는 위층에 있어요? 직접 만나서 물어봐야겠네요.”한유나가 강하린의 앞을 막아서면서 피식 웃었다.“굳이 그래야겠어요? 강하린 씨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한테 매달릴 필요가 있냐고요. 지금 얼마나 초라한지 몰라서 그래요? 아, 이제는 민재 오빠 앞에서 자꾸 주씨 가문 어르신을 들먹이지 말아요. 오빠가
그 말을 들은 주민재는 차갑게 웃었다.“그랬단 말이지?”“그리고 이혼합의서에 사인하래요.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얼른 이혼하자고 했어요.”한유나가 머뭇거리더니 말을 이었다.“민재 오빠, 강하린 씨가 저한테 오해한 것이 있는 것 같아요. 조금 전에 저를 노려보면서 말했거든요. 각막에 아직도 집착하는지 저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어요. 제가 강하린 씨의 각막을 빼앗았다고 하면서...”주민재가 엄숙한 어조로 물었다.“또 뭐라고 했어?”“볼 때마다 화나서 저의 눈을 오려내고 싶대요.”한유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민재 오빠, 저는 강하린 씨가 홧김에 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나쁜 사람은 아닐 거예요.”“그 여자는 아직도 반성하지 않고 있어! 감히 이혼으로 협박하다니...”주민재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강하린은 내가 이혼합의서에 사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 봐. 유나야, 할아버지 친구의 생일 파티에 나랑 같이 참석하자.”한유나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만약 어르신께서 알게 되면 오빠가 난처해지잖아요. 저 때문에 오빠가 곤란해지는 건 싫어요.”“이건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인 거야. 그러면 할아버지도 모를 테니 걱정하지 마.”주민재가 팔을 뻗으면서 말했다.“내 옆으로 붙어.”한유나는 씩 웃으면서 주민재의 팔짱을 꼈다.“알겠어요.”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주민재가 낯선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수군거렸다. 주민재가 유부남인 건 알지만 주민재가 아내와 함께 공식 석상에 얼굴을 비춘 건 처음이었다.모두 한유나가 주민재의 아내인 줄 알았다.주민재는 한유나와 같이 참석한 것이 후회되었다. 그래서 한유나를 그 자리에 두고 주상철의 친구한테 인사하러 갔다.주상철의 친구한테 아내도 아닌 여자를 소개해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주민재가 자리를 비우자 다른 가문의 사모님들이 한유나한테 말을 걸었다.“안녕하세요. 주씨 가문 사모님이시죠? 이렇게 젊고 예쁜 분인 줄 몰랐어요.”한유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안녕하
강하린이 눈을 떴지만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누구세요?”“하,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눈 똑바로 못 떠?”강하린은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신현수라는 것을 알아챘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신현수가 했던 짓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했다.게다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강하린이 도망가려고 하자 신현수가 어깨를 꽉 잡고 차갑게 웃었다.“계속 마셔. 내가 너를 죽이려고 온 것도 아닌데 왜 도망가려고 해?”신현수는 강하린의 어깨를 있는 힘껏 잡았다. 강하린은 밀려오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고 몸을 덜덜 떨었다.“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네 아빠보다 내가 낫지 않아?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니까 무서워할 필요 없어.”화가 난 강하린은 마시다가 남은 술을 신현수의 얼굴에 뿌렸다. 신현수는 미처 피하지 못했고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신현수는 술을 닦으면서 강하린을 노려보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겁도 없이 감히 나한테 술을 뿌려? 오늘 내 손에 죽고 싶은가 봐.”신현수는 강하린의 머리카락을 잡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내가 틀린 말을 했어? 네 아빠가 사람을 몇 명이나 죽였는지 알아? 너도 살인자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이렇게 흉측한 꼴만 보이는 거겠지. 네가 갖은 수단을 써서 민재 형이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죽었을 거야. 너를 죽이려는 사람이 나뿐이겠어? 숨이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줄 알아야지.”강하린은 발버둥 치면서 말했다.“누군가가 우리 아빠한테 누명을 씌운 거야! 내가 꼭 증거를 찾아서 아빠가 한 짓이 아니란 걸 증명할 테니 기다려.”“억울하다는 거야?”신현수는 화가 솟구쳐 올랐다.“가증스럽게 피해자인 척하면 누가 너를 동정해 줄 것 같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신현수가 강하린을 밀쳐버렸다. 강하린은 넘어지면서 책상에 머리를 부딪혔고 충격으로 인해 앞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벽을 짚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신현수는 계속해서
옆에 있던 남자들이 강하린을 붙잡으려고 달려들었다. 강하린은 앞이 보이지 않아서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기에 웅크리고 앉아서 덜덜 떨었다. 남자들이 강하린을 끌어당기려고 할 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강하린의 앞을 막았다.그 사람은 다가오려는 남자의 손을 발로 걷어찼다.“당신 누구야? 좋은 말 할 때 꺼져. 너도 죽고 싶어?”남자를 단번에 제압한 사람은 바로 주도현이었다. 주도현은 그 남자를 들어서 던졌고 술병이 줄줄이 떨어지면서 산산이 부서졌다. 옆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멀찍이 피했고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술집의 보디가드가 달려왔지만 신현수와 친구들을 보고는 쭈뼛거렸다.“너 정체가 뭐야?”신현수는 화가 나서 주도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당장 꺼져! 그렇지 않으면 너도 저 미친년처럼 맞게 될 거야.”주도현은 신현수를 힐끔 쳐다보고는 쭈그려 앉아 강하린의 어깨를 토닥이려고 했다. 깜짝 놀란 강하린은 몸을 더 웅크리면서 소리를 질렀다.주도현은 옷이 다 젖은 강하린을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말했다.“하린아, 나야. 내가 왔으니까 두려워하지 마. 곧 너를 데리고 나갈게.”“도현이야?”강하린이 고개를 쳐들었지만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눈은 다른 곳을 향했다. 주도현이 멈칫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하린아, 앞이 보이지 않아?”강하린은 울음을 겨우 참으면서 고개를 숙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주도현은 외투를 벗어서 강하린의 어깨를 감싸주었고 천천히 일으켜 세워서 의자에 앉혔다.“조금만 기다려줘.”주도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있는 것들을 다 치우고 같이 나가자.”주도현의 목소리를 들은 강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천천히 피어올랐다.신현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너 누구야? 강하린이랑 무슨 사이인데 그래? 유부녀인 걸 알고도 그러는 건가... 감히 민재 형의 여자한테 손을 대?”주도현은 신현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지그시 쳐다
몇 분 후, 주위가 잠잠해지고 주도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 치웠으니 같이 나가자. 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게.”강하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도현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주도현은 멈칫하더니 곧바로 강하린을 들어 올리고 갔다. 깜짝 놀란 강하린은 자연스럽게 주도현의 목을 끌어안았고 어쩔 바를 몰라 했다.주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하린을 안고 술집을 빠져나왔다.술집 매니저는 아수라장이 된 것을 보고는 직원들을 불러서 부서진 술잔과 술병을 치우게 했다.“아까 그놈이 누군지 알아?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술집 매니저는 신현수를 일으켜 세우면서 공손하게 말했다.“죄송해요. 처음 보는 얼굴이라 저희도 당황했어요.”“왜 옆에서 보기만 하고 도와주지 않는 거야? 구경하는 거 재밌었어?”신현수는 술집 매니저의 멱살을 잡고는 따져 물었다. 술집 매니저는 깜짝 놀라서 싹싹 빌었다.“현수 도련님, 제발 살려주세요! 저희 술집은 고객들의 싸움에 절대 가입하면 안 된다는 규정이 있어요. 개인적인 원한으로 시작된 싸움에 끼어들 수가 없었어요.”신현수는 술집 매니저를 뒤로 밀었다.“당장 꺼져!”술집 매니저는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신현수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손으로 닦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여보세요. 민재 형, 조금 전에 술집에서 강하린과 마주쳤어요. 그저 몇 마디 나누었을 뿐인데 한 남자가 나타나서 강하린을 보호해 주더라고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커플인 줄 알겠다니까요. 그 남자가 강하린을 안고 나갔어요. 설마 강하린이 형 모르게 사귀는 남자는 아니겠죠?”그 말을 들은 주민재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파티에 참석하기 싫은 게 전부 그 남자 때문이었어? 강하린, 우리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 벌써 다른 남자를 유혹한 거야?’주민재는 굳은 표정을 하고 차에 올라탔다. 연회장에 있던 한유나는 재벌가 사모님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주민재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한편, 주도현은 강하린과 함께 근처
주민재는 강하린의 멱살을 잡고 앞으로 끌어당겼다.“당신이 입고 있는 이 옷은 뭐야? 왜 여기서 씻고 있었던 거냐고!”강하린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저기요!”그 모습을 본 주도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민재는 이제야 강하린의 눈에 초점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당신 눈이 왜 그래?”주민재가 멈칫하더니 물었다.“앞이 보이지 않아요. 먼저 이 손 좀 놓을래요?”강하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당신...”주도현은 달려가서 주민재를 밀쳤고 강하린을 막아주면서 말했다.“하린이를 그만 괴롭혀요! 다른 여자의 눈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 당신 아내의 각막을 빼앗은 게 말이 돼요? 당신 때문에 하린이가 실명하게 생겼어요. 더 이상 뭘 더 원하는 거죠?”주민재는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짓고 강하린의 두 눈을 쳐다보았다.“보, 보이지 않는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요. 하린이는 눈이 아픈 척 연기했던 거예요. 눈에 문제가 생겼을 리 없어요.”“아픈 척 연기한 거라고요?”주도현이 차갑게 웃었다.“그러고도 당신이 하린의 남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눈이 아프기 시작한 지 꽤 되었어요. 그동안 아무것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주도현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각막을 빼앗아서 다른 여자에게 주었죠. 당신은 하린의 희망을 처참히 짓밟았던 거예요. 당신이 좋아하는 여자가 각막 수술을 받고 회복했으니 된 거 아닌가요? 이제는 그만 하린이를 놓아주세요.”그 말을 들은 주민재는 정신이 들었고 차갑게 받아쳤다.“나랑 하린의 일에 끼어들지 마세요. 당신이 뭔데 참견질이에요?”주민재는 주도현의 뒤에 있는 강하린을 끌어당기려고 했다.“집에 가자.”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강하린은 깜짝 놀라서 온몸을 덜덜 떨었다.“이거 놔요!”주도현은 주민재를 뒤로 밀쳤다.“하린이 무서워하는 거 안 보여요? 당신이 필요할 때는 다른 여자의 곁을 지키다가 이제 와서 뭐하는 거죠? 하린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쳤으니 건드리지 마세요.”주민재는 입가에 묻은
주민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강하린을 바라보았다. 초점 없는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이상해졌다.무거운 돌에 눌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주민재 씨 때문에 하린이가 자극을 받고 힘들어하는 거 안 보이냐고요!”주도현의 말에 주민재는 노려보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아직 강하린과 이혼하지 않았어요. 만약 당신이 강하린한테 허튼수작을 부리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말을 마친 주민재는 밖으로 나갔다.주도현은 재빨리 달려가서 강하린의 어깨를 토닥여주었고 부드럽게 타일렀다.“하린아, 이제는 다 괜찮아. 그 사람은 이미 갔어.”강하린은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닦았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주민재는 호텔을 나서면서 전화를 걸었다.“강하린의 눈 상태가 어떤지 제대로 알아봐! 병원에서 진료 기록을 찾을 수 없다고 했었지?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고 보고해.”강하린은 울음을 그치고 주도현이 있는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도현아, 많이 다쳤어? 나 때문에 괜히 너까지 다친 것 같아서 미안해.”“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어. 자책하지 않아도 돼.”주도현의 얼굴에 상처가 생겼지만 참을 수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강하린이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주민재가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던데, 너는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주도현의 질문에 강하린은 생각에 잠겼다.“나는 그 사람이랑 꼭 이혼할 거야. 그런데 사인하지 않으면 이혼할 수가 없어.”“이혼 소송을 하면 돼. 내가 이혼 전문 변호사를 찾아볼게.”강하린은 주도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지금 소송하기에는 일러. 며칠만 더 기다려보고 다시 결정하자. 도와줘서 고마워.”강하린은 주민재한테 받은 상처로 인해서 마음이 너덜너덜해졌기에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꼭 이혼하겠다고 마음먹었다.주도현이 다정하게 물었다.“같이 병원에 가서 검사할까?”“아니. 집까지 데려다줘.”강하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병원에 가
고지안이 울먹이면서 말했다.“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어떻게 갑자기 실명할 수가 있어? 각막 기증자를 찾는 것도 시간이 걸리는데 어떡해... 너의 눈을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어쩌지?”강하린은 고지안의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지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이때 주도현이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하린아, 내가 꼭 각막 기증자를 찾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실명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고마워.”강하린은 쓴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이번 일을 통해서 이 세상에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운명의 굴레는 강하린을 실명하게 했고 새 각막과 멀어지게 되었다.‘하늘도 내가 실명하길 바라는 거겠지.’한편, 주민재는 강하린이 지내는 아파트 앞에 차를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 연기가 차 안에 퍼지면서 지독한 냄새를 내뿜었다.주민재는 초점없는 강하린의 두 눈이 떠올랐다. 기억속의 강하린은 맑고 깨끗한 두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런데 맑은 두 눈은 빛을 잃고 말았다.강하린이 각막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주민재는 강하린이 싹싹 비는 모습에도 믿어주지 않고 차갑게 내쳤다.‘내가 왜 하린을 믿지 않았을까?’주민재는 수술받는 날에 강하린의 각막을 빼앗았고 강하린은 결국 실명했다. 주민재는 가슴이 답답해졌고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이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비서는 강하린의 진료 기록을 찾아냈고 파일로 전송했다.주민재가 메일을 열어보니 빼곡히 적힌 진료 기록부가 나타났다.강하린이 치료받는 동안 주민재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주민재는 강하린과 같은 집에서 살면서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그전에 조사할 때는 분명 기록이 없었는데, 하필 지금 찾을 수 있게 되었어. 그렇다는 건...’주민재는 누군가가 배후에서 장난질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민재의 표정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늦은 밤, 고지안은 강하린의 얼굴을 씻겨주고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됐어.”주민재는 거절하고 나가 버렸다.한유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방금 집사가 주민재에게 전화해서 사모님을 병원에 모셔 왔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사모님이라면 강하린 말고 누가 있겠는가?지금 저렇게 서둘러 병원에 가는 걸 보니 강하린 그 몹쓸 년을 보러 가는 게 분명했다.한유나는 질투와 분노에 휩싸여 택시를 타고 몰래 주민재의 차를 뒤쫓았다.주민재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강하린은 이미 모든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이곳은 유명인이나 부자들만 이용하는 고급 개인 병원이었다.집사와 도우미는 마치 경호원처럼 강하린의 양옆을 지키고 서 있었다.의사는 강하린의 검사 결과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한 달 안에 수술하지 않으면 영구 실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강하린은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주민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지금 당장 적합한 각막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그가 물었다.의사는 고개를 저었다.“각막은 항상 부족합니다. 돈이 있다고 해도 운이 따라야 하죠.”주민재는 한참 후에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래도 최대한 알아봐 주세요.”진료실에서 나오자 강하린이 말했다.“화장실 좀.”각막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주민재는 그녀의 말에 도우미에게 말했다.“모셔다드려.”도우미는 강하린을 부축해 화장실 앞까지 데려갔다. 강하린이 말했다.“나 혼자 들어갈 수 있어요. 밖에서 기다려 주세요.”“알겠습니다.”도우미가 대답했다.강하린은 일을 보고 지팡이로 길을 찾으며 세면대까지 갔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내려놓고 손을 씻었다.금방 손을 다 씻었는데 발소리가 들렸다.그녀는 도우미인 줄 알고 말했다. “부축해 줘요.”“부축해 달라고?”한유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지팡이를 발로 차 버렸다.강하린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방금 목소리가 낯익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한유나 씨?”“눈은 멀었는데 귀는 참 밝네요.”한유나는 강하린의 앞
주민재는 강하린의 휴대폰을 집어 들어 고지안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린의 귀에 가져다 댔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네 친구한테 안전하다고, 네가 여기 있는 게 자의라고 말해.”강하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고지안의 다급한 목소리가 쏟아졌다.“하린아! 드디어 전화 받았네! 괜찮아? 주민재가 널 어떻게 하진 않았지?”강하린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나 괜찮아, 지안아, 나 지금 잘 있어. 그 사람이 날 어떻게 하진 않았어. 그러니 너 돌아가. 나 좀 다쳐서 사람 만나기 힘들어. 그리고 나 다시 여기서 살기로 했어. 미안해. 내가 여기 있고 싶어서 있는 거니까 이제 신경 안 써도 돼.”“거짓말!”고지안은 강하린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주민재와 이혼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절대 다시 돌아가지 않을 아이라는 걸 그녀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놈이 협박했지? 걱정 마, 말해. 내가 구해 줄게!”“아니야.”강하린은 다급하게 말했다.“정말 아니야. 함부로 행동하지 마! 나 지금 앞이 안 보여서 네 집에 계속 있으면 폐가 될까 봐 다시 돌아온 거야. 여기 있으면 돌봐주는 사람이 있잖아. 걱정하지 마. 나 정말 괜찮아. 민재 씨가 새 각막을 찾아서 내 눈을 고쳐 주겠다고 했어.”고지안: “그 사람 말을 믿어? 널 속이는 거 아니야? 전에 네 각막도 빼앗아 갔잖아!”“아니야, 이번에는 날 속이지 않을 거야.”강하린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지안은 잠시 침묵했다.“알았어. 네가 그렇게 결정했으면 난 네 선택을 존중할게. 하지만 나중에 힘든 일 있으면 꼭 나한테 전화해. 알았지?”“응.”고지안은 전화를 끊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주도현이 물었다.“어떻게 됐어요?”“별로 안 좋아요.”고지안은 미간을 찌푸렸다.“하린이는 분명 주민재 그 자식한테 협박당했을 거예요. 안 그러면 저런 말 할 리가 없는데. 평소랑 너무 달라요. 게다가 그 자식이 하린이 눈을 고쳐 주겠다고 했대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하
집사는 황급히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도련님!”주민재가 나가자 도우미는 겁먹은 얼굴로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는 눈짓으로 그녀에게 강하린의 상처를 소독하라고 지시했다.고지안은 어디에서도 강하린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주도현에게 전화해서 함께 찾아 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강하린의 그 친구는 뭔가 범상치 않아 보였는데 그가 도와주면 좀 더 빨리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것이다.하지만 둘이 아무리 찾아도 강하린은 없었다. 병원 CCTV 영상도 일부분이 지워져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한 게 분명했다.고지안이 절망하며 경찰에 신고하려는 찰나, 주민재의 전화를 받았다.“하린이 나한테 있어요.”주민재의 목소리는 차가웠다.“내가 찾았어요.”강하린은 코웃음 쳤다.“찾았다고? 웃기시네. 분명 당신이 데려간 거잖아.”주민재는 그녀의 말은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하린이는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지낼 겁니다.”“무슨 소리야?”고지안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하린이한테 무슨 짓을 했어? 걔 지금 어디 있어? 전화 바꿔 줘!”“지금 통화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난 하린의 남편이니 하린이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에요. 앞으론 신경 끄세요.”말을 마치자 주민재는 전화를 끊어 버렸다.“뭐라는 거야? 말 똑바로 해! 주민재!”고지안은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뭐래요?”주도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고지안은 욕설을 퍼부었다.“그 자식이 사람을 시켜 하린이를 납치했어요! 그러고는 지금 자기 집에 데려다 놓고 앞으로 신경 끄라잖아요! 대체 뭘 하려는 건지!”주도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 사람이 직접 데려간 건 아닌 것 같아요.”“혹시 짚이는 거라도 있어요?”고지안은 그를 뚫어지게 쳐다봤다.주도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전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목소리가 좀 익숙했어요. 근데 누군지 바로 생각이 안 나네요. 아마 그 사람이 하린이를 데려갔다가 주민재에게 걸린 것 같아요.”“어쨌든 지금 하린이는 지
“꺼져!”강하린은 차갑게 말했다.주민재는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지만 애써 눌렀다.지금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예민해진 것도 당연했다.하지만 주민재는 이렇게 무시당한 적이 없었다.고작 그 정도 죄책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처음부터 그녀가 함정을 파서 어쩔 수 없이 결혼한 건데. 그리고 그때 자신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진작에 그녀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었을 것이다.참으로 은혜를 모르는 여자였다.주민재는 벌떡 일어서서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좋아, 약 바르기 싫으면 관둬. 어차피 아픈 건 너니까!”그는 분노에 찬 발걸음으로 방을 나가 버렸다.강하린은 이를 악물고 손으로 더듬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사모님, 무슨 일로 침대에서 내려오셨어요?”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를 부축하며 방 안으로 데려갔다.“앉으세요. 약 발라 드릴게요.”“싫어요!”강하린은 갑자기 버럭 화를 내며 도우미의 손을 뿌리쳤다.“약 같은 거 필요 없어요! 여기서 나가게 해 줘요! 주민재가 내 허락도 없이 여기에 데려왔단 말이에요. 난 이미 이혼하자고 했어요! 날 여기서 나가게 해줄 수 있어요?”도우미는 당황한 듯 잠시 말을 잃었다가 대답했다.“사모님, 저는 약 발라 드리는 일밖에 해드릴 게 없어요. 다른 건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집사를 불러줘요!”강하린은 화를 내며 말했다.“집사를 데려오라고!”“잠시만 기다리세요!”도우미는 서둘러 나갔다.강하린은 벽을 짚고 서 있었다. 머리가 욱신거렸다.눈을 꾹 감자 괴로움이 밀려왔다.방금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화풀이를 한 거지? 분명 그 도우미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녀는 감정 조절을 제대로 못 한 자신이 한심했다.눈이 멀게 된 후 그녀는 스스로의 성격이 눈에 띄게 날카로워졌음을 느꼈다. 아마도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집사가 곧장 올라왔다.“사모님, 무슨 일이세요?”“여기서 나가고 싶어요.
만약 오늘 같은 일이 또다시 일어난다면?그녀가 시력을 잃은 데에는 그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녀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그는 이것을 책임감이라고 불렀다.아직 이혼하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부부였으므로 그가 그녀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차는 곧 별장 앞에 도착했다. 강하린이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었다.주민재는 차에서 내려 그녀 쪽으로 가서 문을 열고 안전벨트를 풀어 그녀를 안아 내렸다.강하린은 발버둥 치며 두 다리를 허공에 휘둘렀다.“놓으라고!”하지만 주민재는 무표정하게 그녀를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마중 나온 집사는 주민재가 강하린을 안고 있는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가 황급히 다가왔다.“도련님, 사모님께서는...”“눈에 문제가 생겨서 지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주민재가 말했다.집사는 놀라 말했다.“사모님께서 앞을 못 보신다고요?”“사모님 시중들 사람을 배치해요. 다치지 않게 조심하고...”“이게 무슨 뜻이야? 보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난 이런 싸구려 보상 필요 없어!”강하린은 목이 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당신 때문에 내가 눈을 잃었잖아! 내 각막 돌려줘!”집사는 그 말을 듣고 더욱 놀랐다.주민재는 미간을 찌푸리고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가 침대에 눕혔다.강하린은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며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하마터면 주민재의 얼굴을 때릴 뻔했지만 그는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화난 건 알아.”주민재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 마. 네 각막 가져간 대가, 반드시 갚아줄 테니까.”강하린은 손을 뿌리치고 차갑게 비웃었다.“갚아주면 다야? 난 당신을 절대 용서 못 해! 당신은 양심에 찔려서 이제 와서 보상해 주겠다는 거잖아? 늦었어! 난 아무것도 필요 없으니까 날 내보내 줘!”주민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부터 여기서 눈 나을 때까지 어디도 가지 마.”말을
신현수가 손을 흠칫 떨며 뒤를 돌아보니 주민재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민재 형?”신현수는 반사적으로 손을 놓고 일어섰다.“형이 어떻게...”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주민재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졌다.“현수 도련님!”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신현수는 제대로 한 방 얻어맞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한참 만에야 그는 경호원들에게 부축받아 간신히 일어섰다.주민재는 이미 코트를 벗어 강하린에게 덮어주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신현수는 속으로 뜨끔했다.“민... 민재 형...”“누가 얘를 여기 데려오라고 했어? 현수 너 정말 잘났다. 배울 게 없어서 여자 괴롭히는 것만 배웠어?”주민재는 차가운 눈초리로 그를 쏘아보았다.주민재? 강하린은 덮어준 외투를 꽉 쥐었다. 결국에는 주민재가 자신을 구하러 올 줄은 몰랐다.“민재 형, 그게 아니라 나는 그저...”“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네 다리를 분질러 버릴 줄 알아!”주민재는 그를 차갑게 노려보고는 강하린을 안아 들고 나가 버렸다.신현수는 분노에 찬 욕설을 내뱉었다.“빌어먹을!”주민재가 강하린에게 정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대체 저 둘은 무슨 사이인 거지?강하린은 주민재에게 안겨 나가면서 계속 저항했다.“놓으라고! 내려놔! 가식 떨지 말고!”“가식?”주민재는 차갑게 말했다. “내가 제때 안 왔으면 넌 어떻게 당했을지도 몰라. 고맙다는 말은 못 할망정 가식이라니?”“신현수가 날 납치한 게 당신 허락 없이 가능했을 것 같아?”강하린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글썽였다. “내 꼴이 이런데도 왜 아직도 날 놓아주지 않는 거야? 도대체 뭘 더 하려는 건데?!”“내가 허락했다고? 내가 언제 현수에게 널 잡아 오라고 시켰다는 거야? 정말 그랬다면 내가 널 구하러 오느라 이렇게 고생했겠어?”주민재는 은혜를 모르는 그녀가 한심했다.강하린은 차갑게 말했다.“당신이 평소에 그 자식이 날 괴롭히는 걸 눈감아 줬으니까 그런 거잖아! 이게 다 당신 때문
신현수는 휴대폰을 찾아내 버튼을 눌렀다. 아직 고장 나지 않았다.“솔직히 말해줄게. 널 납치하기 전에 민재 형한테 이미 말했어. 형은 너한테 조금도 관심 없었어.”그에게 말했다고?강하린은 이를 악물고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러고보니 주민재가 묵인한 거였다. 어쩐지 신현수가 저렇게 대담하더라니.전에는 아무리 그녀가 미워도 주민재의 눈치는 봤는데 이젠 그와 이혼하려고 하니 배경이 없어졌다고 이렇게 안하무인인 모양이었다.신현수는 강하린의 얼굴인식으로 휴대폰 잠금을 풀고 연락처를 뒤졌다.“어젯밤에 그 자식 이름이 뭐였더라?”강하린은 주도현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말했다.“나한테 앙심 있으면 나한테 풀어. 너랑 나 사이의 일에 다른 사람 끌어들이지 말고!”“오호, 네 상간남을 이렇게 감싸는 거야?”신현수는 비웃었다.“너 하나로는 내 화가 안 풀려. 감히 날 때린 놈은 댓가를 치러야지!”옆에 있던 사람이 귀띔했다.“도련님, 주도현이라고 합니다.”“아, 주도현.”신현수는 코웃음 치며 주도현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휴대폰 내놔!”강하린은 갑자기 달려들어 휴대폰을 빼앗으려 들었다.비록 빼앗지는 못했지만 신현수는 깜짝 놀라 화가 나서 그녀를 거칠게 밀쳤다.“망할 년, 놀랐잖아!”하지만 힘 조절을 못 한 탓에 강하린은 벽에 세게 부딪히며 머리가 터졌다.옆에 있던 자가 조심스레 말했다.“도련님, 머리에서 피가 나는데 치료해 줄까요? 아무래도 저 여자는 아직...”“필요없어!”신현수는 차갑게 말했다.“민재 형이 이년한테 마음도 없는데,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강하린은 벽에 기대어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쏟았다.‘그래, 민재 씨는 날 사랑하지 않으니 내가 어떻게 되든 신경도 안 쓰겠지.’전화가 연결되었다.“하린아, 무슨 일이야?”주도현의 목소리를 듣자 강하린의 심장이 떨렸다.신현수는 비웃으며 말했다.“하린이? 다정하게 부르네. 이 천한 계집을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지?”“당신 누구야? 하린이는 어디 있어?”
“언제 없어진 거예요? 왜 나한테 빨리 말 안 했어요?”주민재는 말하면서 빠른 걸음으로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한유나는 그가 나가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따라갔다.“주 대표님, 이따 다른 회의가...”“회의 취소해. 지금 급한 일이 생겼어!”주민재는 급하게 말하고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한유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며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무슨 뜻이에요? 하린이를 데려간 게 당신이 아니라고요?”고지안은 어리둥절했다.주민재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 내가 사람을 보내서 찾아볼 테니까 당신 쪽에서도 무슨 소식 있으면 곧바로 연락 주세요.”전화를 끊자마자 주민재는 곧 전화를 걸어 경호원들에게 강하린을 찾으라고 지시했다.경호원들은 즉시 병원으로 출동해 CCTV 영상을 확인했다. 영상에는 모자를 쓴 여자가 강하린을 데리고 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여자는 모자를 깊게 눌러써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강하린이 길가로 끌려 나온 후, 차 한 대가 멈춰 섰고 차에서 내린 누군가가 그녀를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경호원은 이 장면을 캡처해서 주민재에게 보냈다. 주민재는 남자의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악!”한 통의 물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 강하린의 온몸을 적셨다.쿵!물통이 바닥에 내던져지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때렸다.물에 흠뻑 젖은 옷이 차갑게 몸에 달라붙었다.신현수는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꼴인 그녀를 보며 경멸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너 같은 건 진작에 죽었어야 했어. 네 아버지 때문에 얼마나 많은 가정이 풍비박산 났는지 알기나 해? 너도 똑같은 죄인이야. 내가 너라면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낯짝도 없었을 거다!”강하린은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두 팔로 몸을 감싼 채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그런 모습에 신현수는 더욱 화가 났다.“말해!”턱에 격통이 느껴졌다. 그녀는 억지로 고개를 들었지만 눈앞은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신현수의 숨
강하린은 의아했다. 왜 이렇게 서두르는 거지?하지만 고지안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얼마나 걸었을까, 강하린은 점점 시끌벅적한 곳에서 조용한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갔다.세 층을 내려오고 나서야 자신이 원래 3층에 있었으니, 지금 1층에 도착한 셈이라는 걸 깨달았다.그녀는 의아한 듯 물었다.“지안이가 왜 1층에 있는 거죠?”간호사는 대충 둘러댔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1층에서 볼 일이 있는 게 아닐까요?”간호사는 계속해서 강하린을 데리고 갔다. 이때 강하린은 확성기 소리, 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소리, 각종 소음이 들려오는 걸 깨달았다.그제야 자신이 이미 길가에 나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지안이 병원 안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지 않았나? 그런데 왜 병원을 벗어난 거지?!강하린은 경계하며 간호사의 손을 확 뿌리치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당신, 지안이가 보낸 사람 아니지! 도대체 누구야?!”“어라? 생각보다 눈치 빠른데?”귀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순간 강하린의 머리칼이 쭈뼛 섰다. 신현수였다.그녀는 발소리를 들었다. 신현수가 다가온 것이다.강하린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뭐가 그렇게 무서워?”신현수는 그녀를 냉랭하게 노려보더니 초점 없는 그녀의 눈을 보고는 비웃음을 터뜨렸다.“정말 눈이 안 보이는 거냐? 진짜 장님이 됐다고? 꼴좋다! 어젯밤에 네 덕분에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그녀의 목덜미를 움켜쥐었다.“그러니까 이제 나랑 가자고. 내 화가 풀릴 때까지 절대 안 놔줄 거야!”강하린의 손에 있던 지팡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신현수의 손을 붙잡고 애원했다.“놔줘! 제발!”신현수는 그녀를 거칠게 차 안으로 밀어 넣고는 자신도 올라타 문을 세게 닫았다.“가자!”...고지안은 3호실 환자와 씨름하며 30분이 넘는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야 겨우 달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