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포탄 냄새가 밴 하현은 설 씨 집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그는 집복당에 돌아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하현은 마당에 나가 권법을 하며 운동으로 몸을 좀 풀었다.삼십 분 후, 그가 현관으로 돌아왔을 때 황보정은 이미 다과와 물을 준비해 두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용호도 왔고 세 사람은 모두 함께 아침을 들었다.다만 반쯤 먹었을 즈음 대문 앞에서 처절한 비명이 울렸다.“하 대사님! 장 대사님! 저 좀 살려주세요!”하현과 장용호는 구조 요청을 듣고 손에 들었던 찻잔을 급히 내려놓고 뛰쳐나갔다.대문 앞에는 한 아줌마가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그리고 아줌마 뒤편에는 예전에 무덤에서 봤던 그 노인이 있었다.노인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그의 얼굴은 마치 대단한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장용호는 재빨리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가다듬은 후 부적을 한 장 꺼내 물에 탄 뒤 노인에게 먹였다.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린 듯 눈을 껌뻑거렸다.장용호는 노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물었다.“할아버지가 왜 이러시죠?”아줌마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잘 몰라요. 하 대사님 말씀 들어야 한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들어야지 말이죠! 아침부터 돌아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건만!”“그렇게 말을 안 듣고 계속 나다니더니 결국 이렇게 되었어요. 어찌나 고집이 센지! 맨날 괜찮대요!”“그런데 누가 알았겠어요? 오늘 나오자마자 이렇게 귀신 들린 것마냥 쓰러질 줄 어떻게 알았겠냐고요!”“어디 다른 데 갈 곳도 없이 바로 여기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어요!”“대사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며칠 전에 다 해결되지 않았나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확실히 잘 해결하긴 했지만 지금은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 것 같군요.”“이 증상은 예전과 똑같습니다.”“아주머니, 나한테 사실대로 말씀하지 않은
”어디서 발견한 거야?”하현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공원 오솔길입니다. 노인과 아줌마가 늘 산책하는 곳이었어요.”“위에 발자국이 하나 있는데 아마도 노인의 발자국 같습니다.”“아마도 십중팔구 노인이 이 종이 인형을 밟은 뒤에 오늘 아침 그런 상황이 나타난 걸로 보입니다.”“그리고 자세히 봤는데 주변에는 아주 보안이 잘 된 개인 소유의 건물들 외에 무덤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장용호는 종이 인형을 바닥에 내려놓고 의아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장용호에게 종이 인형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라고 했다.그는 한참을 유심히 바라본 뒤 라이터로 종이 인형에 불을 붙였다.“퓨!”종이 인형은 빠르게 타기 시작했다.그러자 종이 인형 위에 희미한 먹물 자국이 있는 것이 보였다.하지만 빗물에 씻겨 자세히 보이지가 않았다.불에 타고 난 조각들을 보니 역시나 주광록을 겨냥한 사람들의 소행일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정말로 장생전의 짓인가 보군...”하현은 중얼거리듯 나직이 입을 열었다.그는 장생전이 금정에서 큰 회오리를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예감이 들었지만 지금으로서는 단서가 너무 적었다.간민효에게 메시지를 보낸 뒤 하현은 잠시 이 일에 신경을 꺼 두었다.그의 앞에 당면한 일들을 다 처리하고 나니 이미 해 질 녘이 되었다.하현은 아무거나 먹을 생각으로 밖에 나왔는데 갑자기 그의 핸드폰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낯선 번호였다.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통화 버튼을 눌렀다.맞은편에서 설은아의 비서 이시운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큰일 났어요! 대표님한테 일이 생겼어요...”“빨리 좀 오시면 좋겠어요!”....설은아는 최근 김탁우의 소개로 여러 계약을 체결하고 있었다.오늘 밤 그녀는 진화개발 부사장 이양표와 계약을 하고 있었다.이양표는 이여웅의 사촌 형으로 진화개발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게다가 이여웅의 아버지로부터 깊은 신뢰
”진화개발, 이양표!”하현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이양표가 이여웅의 지시를 받고 설은아를 이 일에 끌어들였는지, 아니면 일찌감치 설은아를 겨냥해서 SL그룹 재정 문제를 미끼 삼아 접근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나박하는 설은아에게 큰일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서둘러 액셀을 밟아 바퀴에서 불꽃이 튈 정도로 내달렸다.그 결과 불과 3분도 되지 않아 그들의 차는 로열 회관 앞에 멈춰 섰다.하현은 차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자마자 초조한 표정에 멍이 시퍼렇게 든 이시운의 얼굴을 보았다.“하현!”하현을 보자마자 이시운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안도하는 표정으로 달려들었다.“하현, 오셨군요!”그녀의 마음속에 하현은 확실히 믿을 만한 사람임이 분명했다.지난번 이국흥 일행이 보복하려고 나섰을 때도 하현은 그 사람들을 모두 묵사발로 만들었다.그래서 이시운은 하현이 생각보다 능력이 뛰어나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하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설은아는? 지금 어디 있어?”“8층에 있어요. 888호입니다!”이시운이 얼른 대답했다.“하현, 이양표는 상대하기 절대 쉬운 사람이 아니에요!”“그 자신이 진화개발 부사장이라는 것 외에 친동생이 불법적인 일들을 하고 있다고 들었어요.”“그는 금정에선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맞섰지만 결국 모두 짓밟히고 말았죠!”“우리 그냥 관청에 신고할까요?”이시운은 적잖이 겁이 나는 모양이었다.방금 하현이 오기 전까지 그녀는 누구에게 또 맞을까 봐 감히 신고조차 하지 못했었다.이제 하현도 왔으니 그녀는 보험 하나 드는 셈 치고 관청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시간이 없으니 그냥 내가 해결할게.”하현은 단호하게 말하며 이시운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얼른 로열 회관 로비로 들어갔다.로열 회관은 금정에서 아주 유명한 회합 장소였다.부지가 넓을 뿐만 아니라 거의 매일 사람들로 가득 찼다.빼곡한 룸들 사이의 통로에는 많은 미녀들이 허세에 가
”퍽!”부서질 듯 세찬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자 이양표는 화들짝 놀랐다.막 재미를 보려던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하현이 들이닥친 것이다.그는 자신이 약을 세 알이나 먹어서 절정의 효과를 보려던 찰나에 누군가가 들이닥쳐 흥을 깨뜨려 놓자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하현이 들어오는 것을 본 이양표는 갑자기 안색이 일그러지며 포효했다.“야! 이 개자식아! 죽고 싶어?”“퍽!”하현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앞으로 다가가 바로 그의 뺨을 때리며 날려 버렸다.이양표가 비명을 지르며 대리석 탁자에 부딪혔다.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주변에는 술잔들이 어지러이 깨지고 이양표는 피를 토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설은아는 몽롱한 상태에서 겨우 정신을 차렸다.안간힘을 써서 몽롱한 두 눈을 떠 보니 눈앞에 희미하게 하현의 모습이 보였다.하현임을 확인한 순간 그녀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말았다.“개자식! 너 누구야!”“지금 뭐 하는 거야? 내가 얼마나 공을 들인 줄 알아? 그런데 감히 날 방해해?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기껏 분위기를 다 잡아 놓았는데 하현이 이를 망치자 이양표는 자신이 땅바닥에 널브러진 신세였지만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소리를 버럭 질렀다.감히 자신에게 도발하다니!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게다가 오늘 이 충격으로 인해 중요한 부위에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재미를 볼 수 있겠는가?그런 걱정까지 들자 순간 이양표는 화가 불뚝 치솟았다.“어서 죽여!”구석에 서서 술을 마시고 있던 그의 부하들이 명령을 듣고 맥주병을 손에 들고 달려들었다.하지만 하현은 그들을 봐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순식간에 하현의 발길질이 그들을 향했다.하현이 땅에 착지한 순간 이양표의 부하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쓰러져 있었다. 하현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가 몸을 일으키려던 이양표를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퍽!”이양표의 몸은 그대로 날아가 문밖의 대리석 기둥에 부딪혔다
이양표도 몸부림을 치다가 몸을 곧추세우고 테이블 위에 있는 양주병을 집어 하현을 가리키며 포효했다.“개자식! 감히 날 건드려?!”“날 망신시키다니!”“넌 이제 죽었어! 끝장이라고!”“오늘 죽기 살기로 한번 싸워 보자고!”이양표가 이를 악물며 악랄하게 퍼부었다.“오늘 내가 네놈이랑 설은아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네 자식이다! 자식!”“그래?”하현은 냉담한 미소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양표 앞으로 거침없이 다가갔다.“당신은 날 죽일 수 없어! 절대로 이렇게 죽일 수 없어!”말을 하는 동안 하현은 ‘촤창’소리를 내며 이양표의 손에 있는 양주병을 잡고 깨뜨려 날카로운 파편을 드러내었다.“이 정도면 어때? 괜찮은 것 같지?”“자, 이제 날 찔러 봐!”“반격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어서 찔러 보라고!”말을 하면서 하현은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하현의 거침없는 행동을 보고 이양표의 얼굴이 굳어졌다.분노하던 그의 표정이 어느 순간 얼어붙어 있었다.그는 도저히 손에 든 양주병으로 하현을 찌를 수가 없었다.하현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어서!”“여자들한테는 그런 패악질을 잘도 하더니 왜? 나한테는 도저히 그런 용기가 안 나?”“당신이 평소 약을 먹어야 그런 용기가 나듯이 지금도 약이 필요해? 약이 있어야 날 찌를 용기가 나겠어?”전주빈 일행은 이를 보고 눈꺼풀이 마구 펄쩍거렸다.그녀의 눈엔 하현이 미친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이런 사람은 정말이지 처음 보았다.그리고 하현이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보고 이양표는 온몸이 벌벌 떨려서 얼굴이 새하얘지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이양표는 억울하고 화나 나서 하현을 바로 찔러 죽이고 싶었지만 도무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그는 호화로운 생활에 익숙해 있었고 모든 사람들의 추앙 어린 시선을 콧대를 세우며 내려다보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하지만 이 사회에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다는 것을 잘
더욱 두려운 사실은 하현이 양주병을 깨뜨리고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오히려 다시 양주병을 들고 이양표를 향해 다시 한번 내리쳤다.“퍽!”큰 소리가 울렸고 이양표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분 때문인지 고통 때문인지 세상이 떠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늘 호의호식하던 그가 언제 이런 일을 당했겠는가?순간 그는 죽음의 공포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차렸다.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하현 이 나쁜 놈이 자신을 죽일 것 같았다!이양표 같은 쓰레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의 구경꾼들, 로열 회관의 경호원들까지도 모두 섬뜩함을 느끼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사람들은 똑바로 고개를 들어 하현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이렇게 단호하고 과감하게 이양표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보통 사람이 아닐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그 사람들도 세상 물정을 알 만큼 아는 사람들이다.실력이라면 어디서도 뒤처지지 않았다.하지만 문제는 하현처럼 독하고 결단력 있는 사람은 정말 처음 봤다는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사람들이 함부로 손을 쓸 수 있겠는가?하현은 또다시 양주병을 잡아들자 이양표는 완전히 정신을 놓으며 미쳐 날뛰었다.“개자식! 어리석고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나 이양표야!”“진화개발 부사장이라고! 내 동생은 이 바닥 거물이야!”“감히 나한테 이런 짓을 해?!”“죽고 싶어?”“으, 으흐흑...”하현을 향해 마구 퍼붓던 이양표가 매서운 하현의 눈빛을 마주 보고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분명 하현의 매서운 눈빛에 겁을 먹고 완전히 무너진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원했던 것도 바로 이런 것이었다.이런 쓰레기들은 바로 없애버리거나 아니면 그냥 겁에 질리게 해야 한다.그렇지 않으면 상대는 끝없이 치근거리며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처음이자 마지막이야!”“설은아는 내 아내야.”“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 뒤에 누가 있든, 누가 당신한테 이런 지시를 했든 난 상관하지 않아.”“감히 내 여자를 건드
”좋아. 솔직하게 말해 주니 오늘 밤 당신을 죽이진 않겠어!”하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을 듣고 이양표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고 곧이어 자신의 바짓가랑이가 축축하게 젖어 오는 것을 보았다.지린 것이다...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전주빈에게 다가갔다.전주빈 뒤에 서 있던 십여 명의 경호원들은 모두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하지만 하현과 눈이 마주치자 그들은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고 입을 앙다물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꺼져!”칼날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에 키가 큰 경호원들은 눈꺼풀이 파르르 요동치더니 하나같이 입이 바싹바싹 마르고 급기야 말할 용기마저 잃어버렸다.결국 그들은 놀란 새처럼 후다닥 도망쳤다.이를 본 전주빈의 얼굴엔 망연자실한 낭패감이 흘러넘쳤다.그녀는 끝까지 도도하고 냉랭한 기운을 유지하고 싶었다.그러나 정작 하현의 차가운 시선이 떨어지자 그녀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전주빈은 한 걸음 물러서더니 못마땅한 듯 한쪽 입꼬리에 힘을 바짝 두었다가 쏘아붙이듯 말했다.“이봐, 나한테 뭘 원하는 거야?”하현은 전주빈을 냉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이양표가 이 구역 사람들을 남녀 불문하고 괴롭히고 다녔는데 당신은 그걸 막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옆에서 부추기며 같이 악행을 저질렀어. 그런데 어떻게 그게 당신과 무관하다고 생각해?”전주빈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그, 그건 내가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그런 거고...”멀지 않은 곳에 있던 이시운이 언짢은 얼굴로 나섰다.“우리 설 대표님께 약을 먹이고 날 때리고 심지어 날 내쫓으려고까지 했어요.”“그리고 나한테 경고했죠. 관청에 신고하면 우리 가족을 다 죽여 버릴 거라고!”그러자 전주빈이 싸늘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내가 그랬으면 뭐 어쩔 거야?”“내 말 똑똑히 들어!”“우리는 당신들이 함부로 할 사람들이 아니야! 감히 우리한테 대들었다가는...”“퍽!”그녀의 말이
30분 후, 금정 제일 종합병원.도요타 엘파가 병원 입구에 급하게 멈춰 섰다.곧이어 문이 열리고 차 안에서 수십 명의 사내들이 내렸다.그들은 모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대머리, 어떤 사람은 노란색으로 물들인 머리, 어떤 사람은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결론적으로 이들은 사람들에게 험악하고 껄렁껄렁한 인상을 주며 걸음걸이마다 오만하고 안하무인한 기운이 넘쳤다.병원의 경비원은 그들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물러섰다.간호사들도 하나같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혹여라도 그들에게 희롱당할까 봐 무척 몸을 사리는 듯했다.곧이어 마지막 차의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는 얼굴에 표범을 새긴 남자가 나왔다.그의 눈빛은 차갑고 매서웠고 온몸에서는 흉악한 기운이 넘실거렸다.마치 눈빛 하나로 모든 사람들을 죽일 것 같았다.내딛는 발걸음마다 거칠 것이 없는 패기가 드러났다.그는 병원의 금연 표시도 무시한 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담배를 집어 들고 건들건들하게 걸어 들어갔다.이 과정에서 그는 몇몇 예쁘장한 여의사와 간호사를 향해 휘파람을 불며 추파를 날렸다.그러나 그가 특수치료실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색이 순간적으로 어두워졌다.병동 입구에는 수십 명의 남녀가 이미 모여 있었다.“표범 형님!”그는 바로 이양표의 동생이자 금정 바닥의 두목 격인 이양범이었다.이양범은 줄곧 음지의 사업을 해 왔다.도박장, 오락실, 정육업 등, 거의 없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금정의 많은 사람들은 차라리 엄도훈을 건드릴지언정 이양범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어쨌든 엄도훈의 신사 상인 연합회는 행동에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이양범은 한계 따위 개나 줘 버린 지 오래였다.이양범은 병실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병실로 들어갔다.병실 안에 있는 이양표는 아직 혼수상태였다.그의 몸에는 크고 작은 관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머리에는 겹겹이 붕대로 감싸져 있었다.상대적으로 부상이 가벼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