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박하의 말에 설은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박하, 그런 농담 그만해.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오해? 누가 오해할 수 있겠어?”나박하는 껄껄 웃었다.“금정에서 우리 설 사장의 미모와 인품이 빼어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을 쫓아다니고 싶어 했던 일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뭐!”“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옆에 있던 진서기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은아는 이미 임자가 있어!”“이분이시지. 바로 소문난 그 데릴사위 하현. 설은아의 남편이야!”“곧 혼인신고한다고 들었어!”“그러니 당신들한텐 기회가 없다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진서기의 발언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갑자기 된서리를 당한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박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고 눈동자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가득했다.이 볼품없는 남자가 설은아가 결혼했던 전설의 그 데릴사위라니!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런데 최 여사님이 아주 싫어한다던데 재결합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진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말인즉슨 설은아 정도의 조건이라면 이 데릴사위를 당장 발로 걷어차야 한다는 거야.”“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아도 이 데릴사위보다는 낫지 않겠어?”“진서기!”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라듯 진서기를 노려보았다.모두가 좋은 친구 사이이고 진서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무례했다.그러나 하현은 진서기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하현입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 명의 여자들은 하현의 더러운 시선에 자신의 긴 다리가 눈에 들까 얼른 다리를 모았다.그러나 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명함을 꺼내 하현에게 공손히 건네
설은아의 말을 들은 진서기는 황급히 임민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임만아, 너도 너무해. 어떻게 그런 말을 자꾸 함부로 할 수 있어?!”“여기 왔으니 됐어! 우리 다 친구잖아!”“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우리 고성양이 언제 오시려나?”“어차피 우리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은 설은아가 고성양한테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거야.”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자신이 이미 설 씨 집안을 도와 오백억의 빚을 받아주었는데 설은아가 또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다니?!나박하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설은아, 무슨 일이야?”“당신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잖아?! 이번에 금정에 온 것도 더욱 그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장을 넓혀 보려고 온 거고!”“그런데 돈이 잘 안 도는 거야?”“음. 문제가 좀 생겼어.”설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가라앉히며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하현에게 이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하현에게 알려지더라도 할 수 없었다.나박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설은아, 얼마나 부족한데 그래? 말해 봐!”“내 체면도 좀 세워 주면 안 되겠어?”임민아는 나박하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쓰레기 처리 회사가 이미 멈췄는데 어떻게 은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나박하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 회사가 동결되긴 했지만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서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몇 채나 있어. 만약 필요하다면 그걸 팔면 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박하를 쳐다보았다.파산 직전에 자기 앞길도 막막할 텐데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의리는 꽤 있는 놈인가?조상의 집마저 팔려고 하다니?!설은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박하, 그 집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한테 넘겨준 마지막 자산이잖아!”“그걸 판다고 해도 난 절대 그 돈 못 받아!”“이
나박하는 고성양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랐다.“진서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중천 그룹만큼이나 유명한 장청 캐피털 로얄패밀리 고성양 말이야?”“오호! 뭘 좀 아는 모양이군!”진서기는 콧방귀를 뀌며 나박하를 쳐다보았다.“맞아. 바로 그 장청 캐피털이야.”“자산은 수조 원이 넘는 그룹이지. 그러니 현금 이천억 정도 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청 캐피탈이 중천 그룹과 마찬가지로 배후에 금정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왕 씨 가문을 두고 있다는 거야!”“이제 내가 왜 이 거물을 소개하는지 알겠지?”나박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별로 아는 건 없지만 중천 그룹과 장청 캐피털의 배후에 금정의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5대 문벌인 금정 간 씨 가문이나 10대 가문인 금정 김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왕 씨 가문도 5대 문벌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해.”“그런데 그 가문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승부조작을 많이 일삼아서 지금은 5대 문벌에 들지 못한다고 해.”“그렇다고 해도 금정에 있는 왕 씨 가문의 역량은 어마어마해.”“어쭈! 촌뜨기인 줄 알았더니 꽤나 식견이 깊은데?”임만아는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쳤다.“이왕 이렇게 고성양의 출신 배경도 알게 되었으니 잠시 후에 그가 오면 다들 영리하게 잘 행동해야 해. 그게 설은아를 돕는 길이야.”임민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장청 캐피털은 원래도 유명한 데다가 배후에 힘이 막강한 왕 씨 가문까지 있다니!역사와 전통이 깊은 금정에서 이 왕 씨 가문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장청 캐피털과 고성양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왕 씨 가문을 배후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것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그래서 지금 많은 남자들
”이렇게 하자구.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이천억이 모이지 않을 수 있어!”“하지만 내가 가진 걸 다 내놓으면 아마 이백억은 될 거야!”나박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이백억에 대한 이자는 줄 필요없어. 우선 급한 불부터 꺼!”“나머지 금액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잠시 어리둥절했던 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박하, 당신 돈은 받을 수 없어!”“당신이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버리면 다시는 재기할 가능성이 없게 돼! 당신한테 그런 짐을 지울 수는 없어!”나박하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설은아,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도와줬던 거 지금 갚는 거야!”“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내가 어떻게 배은망덕할 수 있겠어? 절대 나한테 짐 지우는 거 아니야!”“아무튼 그렇게 해결하자구!”“그렇게 해!”“날 봐서 그렇게 해줘!”진서기는 결국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 돈으로 당신 묫자리 하나 못 사는데 뭘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한테 빌려준다는 거야?”“은아가 관장하는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 자리가 얼마나 씀씀이가 큰 줄 알아? 그 돈 이백억, 금방 없어질 거야!”“잘 들어! 은아를 위해 마련한 이 좋은 자리를 당신이 망친다면 난 다시는 당신 얼굴 안 볼 거야!”나박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뭐가 좋은 자리라는 거야? 뭐가 좋은 일인데? 내가 보기엔 당신은 좋은 먹잇감을 준비해 놓고 옆에서 이익이나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에 불과해!”“퍽!”나박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굳게 닫혀 있던 룸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이 걸어 들어왔다.그들 뒤에는 양복 차림에 사나운 표정을 한 남자들이 뒤따라왔다.보아하니 위풍당당한 경호원 같았다.맨 앞에 선 사람은 입생로랑 셔츠를 입고 있었다.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그의 모습은 겉보기로는 상당
이때 임민아는 재빨리 달려와 자신의 가슴을 고성양에게 바짝 붙이며 말했다.“고성양, 이렇게 오느라 수고 많았어.”“이렇게까지 체면을 세워 주니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됐어! 당신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고성양은 귀찮은 듯 짜증스럽게 말했다.“절세미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 있는 거야?”“고성양, 바로 여기야!”진서기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설은아를 얼른 끌어당겼다.“은아, 이 분이 바로 고성양이야.”설은아는 이제 고성양의 횡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나박하가 방금 한 말이 거의 사실일 거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로서 부족한 이천억 원의 자금을 떠올리며 억지로 웃음을 떠올렸다.“고성양, 안녕하세요.”“저, 제가 돈을 좀 융통하고 싶은데요.”“아하! 전설적인 미녀가 여기 계셨군요! 게다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라구요. 신분도 있고 지위도 상당한 데다 아주 인물도 빼어나시군요. 딱 내 스타일이에요!”고성양은 분명 설은아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신비에 휩싸인 왕 씨 가문을 등에 업은 그는 10대 최고 가문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경외심을 갖지 않았다.“설 사장님. 다들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쓸데없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어요.”“이천억이 다른 사람들에겐 융통하기 어려운 금액일지 모릅니다.”“하지만 나한테는 큰 문제가 아니죠!”“강호의 법칙에 따라 선이자 10%를 떼고 드립니다. 이자는 30%.”“2000억을 빌리면 우선 선이자를 떼고 1800억을 가져가면 됩니다. 한 달 후에 이자와 원금을 합쳐 2600억을 갚으세요!”“돈이 없으면 안 갚아도 됩니다. 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의 자산은 모두 저당 잡히게 됩니다.”“문제없죠?”설은아는 고성양이 말하는 조건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소문으로만 들리던 그 사악함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한 달에 이자만 800억이었다!내뱉는 말마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맞아, 설은아. 잘 생각해 봐. 금정에서 아무런 깊은 인맥이 없는 네가 그 많은 돈을 빌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고성양이 지금 요구하는 건 조금 지나친 면이 없진 않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임민아도 마뜩잖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눈 한 번 딱 감고 넘어가면 되잖아? 그럼 거액을 융통할 수 있다고!”“가장 중요한 것은 고성양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거야. 너한테는 정말 좋은 일이야!”“앞으로 네가 금정 비즈니스계에서 고성양과 인맥을 맺게 되면 너한테 절대 불리할 게 없어!”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 모두 고성양에게 돈을 빌렸다.그들은 그에게 몸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그녀들은 설은아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일을 여기서 정리하길 바란 것이다.다행히 고성양이 설은아를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설은아와 연결만 잘 시켜준다면 이자 문제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약속도 받은 터였다.간단히 말해서 오늘 설은아가 그에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그녀들은 고성양에게서 빌린 돈과 이자를 갚을 방법이 없었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이 불구덩이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자신들은 설은아한테 자매 같은 친구인데 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도 희생해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사람 됨됨이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진서기, 임민아. 너네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설은아는 그들이 이번 일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순간 설은아의 얼굴에 단호함이 가득 퍼졌다.“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고성양,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헛걸음한 것 같군요.”“오늘 밥은 제가 사는 걸로 하죠.”나박하는 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설은아가 다행히 나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빌리지 않겠다고?”고성양의 눈빛이 일순 싸늘해졌다.그는 금테 안경을 살짝 만지작거리다가
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은 이미 바닥에 넘어졌다가 일어선 뒤 나박하를 바라보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그녀들은 분명 고성양의 이런 행동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이럴 때 감히 누가 그의 길을 막으면 죽이려고 들 것이다.고성양의 주먹이 세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의 뒤에 양복차림으로 서 있는 십여 명의 남자들만 있으면 아무도 덤빌 엄두를 내지 못했다.이럴 때 뭐라고 입을 뻥긋한다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바닥에 주저앉은 나박하를 일으켜 세운 설은아가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고성양, 함부로 사람을 때리면 어떻게 해요?!”“자꾸 이러면 신고할 거예요!”“신고?!”고성양 뒤에 서 있던 우락부락한 남자가 냉소를 흘렸다.“이 일대 경찰들은 모두 우리 도련님의 사람들이야. 당신이 신고해서 경찰들이 들이닥친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에이, 그런 말 하지 마. 미인을 놀래키면 쓰나!”고성양은 입을 실룩거리더니 빙그레 웃으며 설은아를 바라보았다.“당신이 신분이 꽤 높고 힘이 좀 있다는 건 알지만 잘 들어! 이곳은 금정이야! 당신이 아무리 날고 기었다고 해도 이곳 금정에서는 나한테 바짝 엎드려야 할 거야!”“내가 좀 오만하고 포악하게 굴었다고 당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돈을 빌려주고 싶다면 절대 막을 수가 없어. 안 빌리고는 안 되지!”“내 눈에 들어온 이상 그 어떤 여자도 내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어!”고성양은 한 걸음 한 걸음 설은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쓰다듬었다.“이곳 금정은 당신들 같은 최고 가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야! 감히 당신이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개자식!”나박하는 설은아가 모욕당하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아 술병을 쥐어 부숴버리려고 했다.그러나 고성양의 발이 나서기도 전에 험악한 인상을 쓴 그의 부하가 나박하를 걷어차 버렸다.나박하는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땅바닥에 쓰러졌고 거침없이 기침을 쏟아내었다.
설은아는 최근 금정에서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로서 자금난에 맞닥뜨려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대구 정 씨 가문이라는 큰 산을 등에 업은 덕분에 상당히 능수능란하게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접촉하는 사업장마다 모두 온화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사업 얘기를 할 때는 보이지 않은 신경전도 팽팽히 오갔다.예리한 칼날을 상대에게 숨기고 긴장감 위를 줄타기하는 상담을 이어갔지만 다들 겉으로는 굉장히 예의 바르고 깍듯했다.하지만 고성양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최소한의 예의도 없이 밀어붙일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지켜야 할 선?”고성양은 별말 없이 다소 방탕한 미소를 보이면서도 눈에는 경멸의 빛을 가득 품었다.“우리 장청 캐피털에게 있어 장사란 나를 따르는 자는 흥할 것이고 나를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거야!”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머금은 고성양은 설은아의 뾰족한 턱을 치켜들기 위해 손을 뻗었다.몇 년 동안 장청 캐피털과 왕 씨 가문을 등에 업은 그는 줄곧 오만방자하게 금정을 휘어잡았다.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의 앞에서는 모두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했다.그래서 고성양은 더욱더 함부로 행동하게 된 것이다.그의 눈에는 최고 권문가의 직계 종속이 아니라면 누구도 예외 없이 짓밟을 수 있는 존재였다.최고 10대 가문 방계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자신이 설은아를 차지한 후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의 자산을 순리적으로 관장할 수 있는 순간을 떠올린 고성양은 설은아와 연을 맺는 것이 아주 괜찮은 사업 아이디어라 생각했다.“감히 내 아내를 건드렸다간 차라리 죽느니만 못한 삶을 살게 해 줄 거야!”“하느님이 와도 절대 당신을 봐줄 수 없을 거라고! 알아들었어?!”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말이 울려 퍼졌고 이어 누군가가 룸의 문을 발로 뻥 차고 들어왔다.냉엄한 표정의 하현이 단호한 모습으로 얼굴을 드러내었다.방금 밖에서 이슬기에게 전화를 하고 있는 동안에 룸 안에서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날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