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퍽퍽퍽!”얼굴에 해골을 새긴 남자의 몸이 날아가는 순간을 이용해 하현은 몸을 휘돌러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다.해골파 사내들은 온몸을 휘청거리며 하나같이 본능적으로 몇 발짝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매서운 하현의 손바닥은 그들의 뺨을 툭툭 스쳐 지나갔고 그들은 나부끼듯 쓰러졌다.손바닥이 아니라 전기 충격 같은 무시무시한 힘이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과 간민효의 놀란 시선 속에 하현의 몸놀림은 거침이 없었고 매서웠다.검은 옷의 사내들이 날아올라 뒤엉킨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사내도 무너졌다.그는 ‘퍽’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형님,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그는 방아쇠를 당길 기회가 있었지만 감히 당길 용기가 없었다.하현은 쓸데없는 말 대신 그를 발로 걷어차 버렸다.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마구 걷어차여 땅바닥에 널브러졌다.죽었는지 살았는지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이봐. 우리 강호의 규칙에선 포로를 죽이지 않아.”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이 광경을 보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그의 뒤를 따르는 몇 명의 여자들도 못마땅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하현은 다시 칼을 들이대며 해골파 사내를 발로 걷어차 정신을 잃게 한 뒤에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당신들의 규칙은 당신들이나 지켜.”“내가 죽이든 말든 당신들과 무슨 상관있어?”하현은 말을 마치며 부두목의 단전에 발을 디뎌 그대로 밟아 버렸다.하현이 아랑곳하지 않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하현에게 완전히 압도당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하현의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결단력 있게 행동했기 때문이다.전쟁터를 오래 경험한 그들조차도 하현 앞에서는 자신들이 세 살배기 아이처럼 더없이 순진하게 느껴졌다.회색 옷을 입은 노인은 잠시 후 어색한 웃음을 터뜨렸다.“젊은이, 내 이름은 간지삼이야.”“우리 아
“이렇게 쉽게 정신을 잃다니! 쯧!”하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발밑에 깔린 사람을 보았다.옷차림을 보아하니 모두 해골파에서는 거물급인 듯했다!그런데 결과는?그냥 슬쩍 밟았을 뿐인데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다.이게 정말 엄도훈이 그토록 열변을 토하며 무서운 사람들이라고 말한 해골파인가?설마 엄도훈이 일부러 자신한테 겁을 주려고 한 건 아니겠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주위에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비분강개하며 하나같이 이를 악물고 들개처럼 달려들었다.그들은 손에 총, 칼, 활, 쇠방망이 등을 쥐고 있었고 사슴을 앞에 둔 하이에나처럼 으르렁거렸다.그들의 노기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이때 간민효는 차량 뒤에서 뛰쳐나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말을 하면서 동시에 그녀는 검은 사내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그러나 총알은 나가지 않았고 ‘차칵’하는 소리만 황망하게 들렸다.“부두목!”그리고 이때 정신을 잃었던 부두목을 본 검은 옷의 사내들은 피가 거꾸로 솟는 듯 포효했다!“이 개자식! 감히 우리 부두목을 저렇게 만들다니!”“죽여 버리겠어!”얼굴에 해골을 새긴 한 남자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형제들아! 이 개자식을 죽이지 않고 부두목의 복수를 되갚아 주지 않는다면 두목이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어서 죽여!”사내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고 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다고 느낀 것이다.순간 그는 발밑에 힘을 꽉 주었고 발밑의 자갈들이 회오리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촤촤촤촥!”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몸 위로 자갈이 날아들었고 그들은 순식간에 모두 머리가 깨지고 피가 흘러 비명을 지르며 땅에 주저앉았다.활과 쇠방망이들은 갈 곳을 잃고 여기저기 내동댕이쳐졌다.곧이어 하현이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 앞에 다가와 손바닥을 휘갈겼다.해골파들은 안색이 급변하며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의 손놀림이 너무나 빨랐
”풉!”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처참하기 짝이 없이 땅에 내리꽂혔고 여기저기 피가 뿜어져 나와 만신창이가 되었다.주위에는 먼지가 뿌옇게 일었고 도요타 엘파에서 나온 남자들은 하나같이 먼지를 뒤집어쓰고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었다.땅에 쓰러진 남자는 겨우 정신을 차렸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그는 하현을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그는 해골파의 수장이었다.강호에서 잔뼈가 굵은 사내였다.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병왕이라는 것이었다.어디든 거칠 것 없이 행동했던 그가 오늘 대열을 이끌고 임무를 수행하러 왔는데 하마터면 죽을 뻔한 것이다.그는 즉사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일어설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하현은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난 이렇고 싶지 않았어!겁도 없이 뛰쳐나오는데 난들 어떻게 해?당신들이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하현은 중년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고마워. 늙은이.”“뭐? 늙은이...”하현의 말을 들은 해골파 부두목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하현은 신경 쓰기도 귀찮은 듯 힐끔 사내들을 쳐다본 뒤 또 한 발을 내디뎌 땅에 착지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현장 곳곳이 아수라장이 되었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주변엔 격전이 벌어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음이 틀림없었다.습격을 당한 차량들은 네댓 대였는데 앞뒤 차량 안은 모두 핏빛이 되었고 차체는 총탄 자국으로 가득했다.가운데 도요타 차량의 보닛에는 회색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반쯤 무릎을 꿇은 채 부러진 칼자루를 들고 있었다.그는 아직 온몸에 팽팽한 긴장이 가득했지만 이미 기력을 많이 상실할 듯 보였고 언제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그의 곁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 몇 명이 누워 있었는데 하나같이 숨을 헐떡거리며 곧 숨을 거둘 것 같았다.도요타의 엘파 차량 뒤편에서 차체에 기대
계속해서 하현은 몇 대의 차량을 막아섰다.하지만 자금산으로 가자는 말에 택시들은 하나같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치듯 달렸다.하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은 이런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그는 공유 스쿠터라도 타 볼까 해서 살펴보았다.“하현,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이때 BMW 한 대가 멈춰 섰고 차창이 스르륵 내렸다.뜻밖에도 나박하가 웃은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그는 우연히 그 길을 지나가던 중이었다.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바로 조수석에 올라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자금산, 빨리!”자금산이라는 세 글자에 나박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분명 두려움에 사로잡힌 눈빛이었다.하지만 그는 곧 이를 악물고 말했다.“벨트 단단히 매세요.”말을 마치자마자 나박하는 액셀을 세게 밟았다.분명 이 지역 쓰레기 분리업자 나박하도 은혜를 알고 보답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그가 고성양에게 뺨을 맞던 날 하현이 대신 나서 준 것에 줄곧 고마운 마음을 품고 있었다.자금산은 많은 금정인들에게는 금기시되는 곳이었지만 지금 나박하는 아무 상관하지 않았다.차는 줄곧 나는 듯이 달려서 여러 개의 빨간 신호를 빠르게 무시하며 불과 10분 만에 자금산 산기슭에 도착했다.하현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다가 오랫동안 방치된 듯한 옛길을 가리켰다.그쪽에서 총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곧 차는 깎아지른 절벽 끝에 이르렀다.더 이상 길이 없어 나아갈 수도 없었다.하지만 하현은 얼른 차 문을 열고 벼랑 끝으로 돌진했다.벼랑 끝에 엎드려 내려다보니 아래에서 총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고 공기 중에 총탄 냄새도 났다.그곳에서 간민효 일행이 습격당한 것이 틀림없었다.다만 그곳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약 20미터는 아래에 있었고 게다가 지금은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하현, 무슨 일이에요?”나박하가 다가왔다.하현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밑으로 가는 길이 없을까요?
이 말을 들은 하현은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감히 내가 어떻게 간 씨 가문 아가씨를 보고 싶어 할 수 있겠어? 당신 추종자들이 들으면 날 죽이려고 들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간민효는 살짝 질투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듣자 하니 형나운 같은 여자애들 따라다니느라 바쁘다던데. 바로 다음 날 그녀의 문제를 해결해 줬다는 둥 뭐라는 둥...”원망 섞인 말투에 하현은 뒷골이 당겨와 급히 말머리를 돌렸다.“지금 어디 있어?”“당신한테 할 말이 있어.”“나한테?”“나 마침 자금산을 지나가고 있어.”간민효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구시가지에 다녀왔는데 풍수관을 열기 괜찮은 곳을 발견했어. 어깨가 딱 벌어진 늠름한 곳이야.”“운이 아주 좋았어. 내가 적당한 곳을 찾았으니 우리 내일 같이 가 보자.”“당신만 괜찮다면 이쪽으로 정했으면 해.”“인테리어는 따로 할 필요없어. 형나운한테 가서 골동품 몇 개 받아서 갖다 놓으면 이제 하 대사가 데뷔하는 거지!”여기까지 말하고 난 뒤 간민효는 기분 좋게 웃었다.일이 아주 잘 풀려서 흡족한 것 같았다.간민효의 종잡을 수 없는 모습에 하현은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자, 당분간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방금 들은 바에 의하면 해골파 사람들이 당신을 상대하러 왔대. 그들 뒤에는 아마도 우리가 상대할 그 조직이 있는 게 틀림없어.”“그래서 당신은 각별히 조심해야 해.”“나의 첫 전우가 이대로 사라지는 걸 원치 않아.”간민효가 약간 의아해하며 말했다.“해골파가 나를?”“그들은 당신과 고명원을 찾아 헤매지 않았어?”“게다가 해골파가 어떻게 그 조직과 연을 맺었지?”“그건 모르겠지만 당신이 전에 비행기에서 공격받았던 적도 있고 하니까 이번에는 특별히 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아...”“조심해서 한 번에 몰아붙여야지.”“도둑이 두렵지는 않지만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돼.”하현이 한마디 당부했다.비행기 사건을 다시 떠올린 간민효는
”그리고 형님, 걱정하지 마세요. 해골파는 분명 형님이 마동수 일행을 처리한 것을 모를 겁니다.”“그러니 해골파의 일은 형님과 무관합니다.”“그들은 기껏해야 고명원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겠죠.”엄도훈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고명원은 지난번 사고 이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느리고 다닌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들 모두는 단정한 양복 차림에 강인한 사람들이어서 공격하기 어려울 거예요.”하현은 고명원의 얘기에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해골파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아?”“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어?”엄도훈은 약간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경악하며 말했다.“형님, 그들을 죽일 작정이세요?”하현은 침착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해골파 사람들이 간민효를 상대하려는 이유가 아마 장생전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다소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려는 것이다.만약 이 일이 장생전과 관련이 있다면 그는 해골파 모두를 전멸시킬 생각이다.한 번 고생으로 영원히 편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갈 것이다.“형님, 해골파가 이렇게 오랜 세월 여기저기 소요할 수 있었던 이유는 상대적으로 무맹이 약했던 것도 있지만 그들의 실력이 월등히 우월했기 때문이에요.”“특히 그들의 두목인 사람은 전신에 가까운 실력을 자랑합니다. 아주 끔찍스러울 정도라고 해요!”엄도훈은 하현에게 재빨리 충고의 말을 늘어놓았다.“게다가 그 두목은 원래 강호의 규칙 따위 안중에도 두지 않습니다!”“이기기 위해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고요.”“형님이 먼저 그들을 괴롭힌다면 아마 죽일 듯이 덤빌 겁니다! 절대 그들을 일망타진하기 어려워요!”“제가 형님의 능력을 못 믿는 게 아닙니다!”“도자기 같은 우리가 왜 항아리같이 거친 사람들에 맞서야 합니까?”“편하게 앉아서 저들이 하는 짓거리나 구경하면 됩니다.”“해골파가 간민효를 상대하려는 것은 죽음을 택
설은아는 회사 대출 문제가 해결된 뒤 화사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바빠서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설유아는 또 다른 연극을 제안받고 신이 나서 대구로 달려가 촬영했다.이영산 부부조차 연거푸 뺨을 얻어맞는 바람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북적거렸던 설 씨 집안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하현은 서둘러 가게를 찾지 않고 며칠 쉬었다가 다시 재개할 생각이었다.당장 급한 일이 있기도 했다.특히 그가 풍수지리사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이유는 장생전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그래서 그는 간민효 쪽에서 어느 정도 준비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때 잘 이야기해 볼 계획이었다.다만 간민효가 요 며칠 동안 적극적으로 그에게 연락을 하지 않아서 하현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하현이 이틀을 푹 쉰 다음 날 오후, 엄도훈이 공손한 태도로 전화를 걸어왔다.“형님, 잘 쉬고 계십니까?”“잠깐 얘기 나눌 시간 있으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쓸데없는 말 집어치우고 어서 말해 봐.”엄도훈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형님, 저도 서남 천문채에 반쯤은 발을 걸치고 있다는 거 아시죠.”“그래서 형님이 마동수 일행을 고명원에게 넘긴 후 제가 사람들을 보내서 좀 알아봤습니다.”“어쨌든 마동수 일행은 고성양 모자를 포함해 이제부터는 형님한테 폐를 끼치진 않을 겁니다.”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겠어.”엄도훈은 하현의 대답을 듣고 계속 말을 이었다.“또한 마동수 일행이 떠나기 전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들어보니 그들이 이번에 금정에 와서 형님과 고명원에 맞선 건 더 큰 거물을 겨냥한 전초전이었던 거예요.”“그들이 정말로 상대하려는 사람은 간민효입니다.”하현은 눈살을 찌푸렸다.“왜?”“간민효는 금정 간 씨 가문 딸이고 오래된 문벌 사람이야. 그들이 그녀를 귀찮게 하면 보복이 만만찮을 텐데 무섭지도 않은가 보지?”“누가 알겠어요?!”
”아직도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버릇 못 고쳤나 봐요, 네?”하현은 또 그의 뺨을 때렸다.얼굴이 벌게진 고명원은 손사래를 치며 싹싹 빌었다.“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하현,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퍽!”하현은 다시 손바닥을 휘둘렀다.“다음에 당신이 또 이런 짓을 하는 게 내 눈에 띈다면 그땐 정말 목숨 부지하기 어려울 겁니다!”고명원은 순간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싶었는지 한숨을 내쉬며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하현은 그제야 오른손을 거둬들여 물티슈로 손가락을 닦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똑똑히 기억하세요. 다음엔 절대 봐주지 않을 겁니다.”이시운은 눈앞의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넋이 나간 듯 얼어붙었다.우민은과 이국흥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눈앞에서 싹싹 빌고 있는 사람은 장청 캐피털 사장 고명원이었다!그런데 어떻게 하현 앞에서 저렇게 나약하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 수가 있는가?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알겠습니다.”“꼭 기억하겠습니다!”고명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자신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가 겨우 걷히는 것 같았다.“나머지 일은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하현은 이 말을 남기고 홀연히 돌아서서 설은아를 포르쉐 차량에 태웠다.“개자식! 자기가 뭔데 하라 마라야!”떠나는 하현의 당당한 뒷모습에 이국흥은 지팡이를 짚고 원망과 독기가 가득 서린 눈빛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포르쉐를 쳐다보았다.“믿을 수가 없어! 내가 금정에서 산 세월이 얼마인데 저따위 데릴사위 한 놈 처리하지 못한 거지?!”“두고 봐!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거야!”“내 이 다리가 다 나으면 바로 육 씨 가문에 찾아가서 뛰어난 고수들을 빌려서라도 저놈을 죽여 버릴 거야!”“무학의 성지에서 날뛰는 사람이 있다니! 흥!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지!”“그리고 저
”고 사장님?”하현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는 사람들 뒤에서 걸어 나오는 중년 남자를 실눈으로 차갑게 쳐다보았다.“고명원 사장님! 어서 이놈을 죽여 버려요!”하현의 말에 이국흥과 우민은은 동시에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냉소를 흘렸다.이 쓰레기 같은 놈은 정말로 두려움도 없는 무지렁이인가?!설마 고명원 같은 거물이 아무렇게나 나서는 사람이 아니란 걸 모르는 건가?고명원이 하현을 죽이고 싶지 않았더라도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정말이지 죽으려고 덤비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군중 뒤편에서 손에 염주 팔찌를 차고 무도복을 입은 고명원은 당당한 기품을 드러내다 이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란 나머지 오줌을 지릴 뻔했다.하현의 목소리를 그가 알아듣지 못할 리가 있는가?이때 그는 허둥거리며 달려왔다.그리고 하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순간 고명원은 자신의 눈앞이 캄캄해지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고 사장님, 바로 이 개자식입니다! 꼭 좀 죽여 주십시오!”이국흥은 이 상황을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고 사장님, 저놈을 죽여 버려요!”순간 우민은도 맞장구를 쳤다.“저놈을 죽여만 죽다면 내 한 몸 사장님한테 바치겠어요!”고명원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그는 덜덜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앞으로 걸어나갔다.일그러진 고명원의 표정을 보고 이국흥은 그가 화가 난 나머지 흥분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고 하현이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만을 고대하고 있었다.“퍽퍽퍽퍽!”고명원은 곧장 이국흥에게 다가와 두 사람을 향해 사정없이 손바닥을 휘둘렀다.고명원의 갑작스러운 따귀세례에 두 사람은 아무 반응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지금 날 놀리는 거야?!”“날 죽이려는 셈이냐고?!”고명원은 두 사람의 얼굴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그리고 나서 온몸을 덜덜 떨면서 하현의 앞으로 걸어가 재빨리 허리를 숙였다.“하현,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