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조사해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이건 인도인의 소행이 틀림없다.인도인들은 두 가지 계략을 동시에 진행할 만큼 음험하고 악랄했다.다만 인도인들도 세계적인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대하와 완전히 척을 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남선 일행을 완전히 죽이지 못할 것이라는 걸 하현은 잘 알고 있었다.왜냐하면 그건 너무 뻔한 결말이기 때문이었다.그래서 그는 별 걱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오늘 수상한 사람이나 외부인이 우리 국술당에 다녀간 적 없어?”“의심쩍은 사람은 없지만 전에 소란을 피우러 왔던 황금궁 사람들이 찾아왔었어요.”“그런데 그들은 소란을 피우러 온 게 아니라 세 명의 젊은 실력자들에게 사과하러 왔었어요.”“특히 그 까칠한 여자는 세 명의 젊은 실력자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머리를 조아렸어요...”“황금궁?”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무래도 이 일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황금궁 사람들이 사과를 할 거였으면 진작에 왔을 것인데 이제 와서 사과라니?하필 이때?그는 재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국술당으로 돌아갔다.30분도 채 되지 않아 하현이 국술당으로 돌아와 보니 국술당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경비를 맡은 집법당의 제자들조차도 모두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정말 혼수상태에 빠지면 내일은 경기를 할 필요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현은 여러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쏜살같이 뒤뜰로 향했다.루돌프 팀은 뒤뜰을 거의 응급실을 방불케 할 정도로 장비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각종 기구들이 깜빡거리며 불안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세 사람은 모두 병상에 누워 있었고 루돌프는 그 옆에 앉아서 무거운 얼굴로 그들을 지켜보았다.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루돌프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하현, 이들은 지금 깊은 잠에 빠져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해도 깨울 방법이 없어요!”“이미
”그런데 이게 정말 변약수라면 뭔가 마실 것에 몰래 탔다는 얘기예요.”“하지만 우리 국술당의 음식과 음료수는 모두 집법당 제자들이 책임지고 있어요. 잘못될 리가 없어요.”“세 사람이 혹시 남이 준 음식을 먹거나 마신 적이 있을까요?”“남이 준 음식...”남궁나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번쩍 뜨며 말했다.“사과로 건네주었던 그 차?”“뭐?”하현이 자신도 모르게 남궁나연을 쳐다보았다.“아까 사과하러 온 황금궁 사람들, 그 까칠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사과할 때 특별히 차를 세 잔 타서 세 명에게 대접했어요.”“이 차를 마시면 용서하는 걸로 알고 무릎을 꿇겠다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무릎을 꿇지 않을 거라고 하면서...”“그런데 그게 찻잎이든 물이든 다 우리 국술당에 있던 건데 어떻게...”하현이 얼굴이 어두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독을 넣겠다 마음먹었으면 방법은 너무 쉽지.”“예를 들어 변약수 속에 손가락을 몇 시간 동안 담갔다가 차를 따를 때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슬쩍 찻물에 닿게 하면 누가 알아차릴 수 있겠어?”하현의 말을 들은 남궁나연은 안색이 일그러지며 몸을 벌벌 떨었다.“대표님, 다 제 잘못입니다. 저는 어쨌든 황금궁 사람이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그래서 그들을 들이고 여기 와 사과할 기회를 줬어요...”“다 제 잘못입니다...”남궁나연은 몹시 난처해하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랐다.이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혹시라도 하현이 자신을 내통자로 오해하고 황금궁 사람들과 협력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믿어.”하현은 남궁나연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알 거야. 남선을 비롯한 이 세 사람의 안위는 이번 국전의 승패와 관련이 있다는 걸.”“머리가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누가 이 세 사람을 해쳐서 나라를 망신시키겠어?”“남궁나연, 당신 너무 걱정할 필요없어. 이들 세 사람의 상황이 그리 심각하진 않아. 나
밤 10시, 황금궁 별장.이곳은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이 무성에 세운 별장으로 평소 황금궁의 중요 인사들이 출몰하는 거점이기도 했다.밖에서는 비바람이 몰아쳤지만 황금궁 별장에는 눈부시게 빛나는 불빛 아래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황금궁 별장 한가운데 있는 홀에는 샹들리에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고 주변의 장식들도 눈부셨다.오늘은 무성 황금궁의 외문 제일 자제인 황소군의 약혼식이 있는 날이었다.그의 결혼 상대는 황금궁 외문 장로의 딸이었다.이로써 황금궁 외문에는 강력한 연합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황소군은 무성에 있는 무학계 인사들을 많이 초대했다.무성의 상류층 인물들은 이런 연회를 통해 서로를 알고 정을 나누며 연대를 모색한다.그래서 이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옷차림 하나하나가 모두 명품관을 방불할 만큼 화려했다.여자들은 하나같이 럭셔리 브랜드의 드레스를 입고 서로 몸에 걸친 한정판 액세서리와 가방을 자랑하기 바빴다.동시에 그들은 남자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이리저리 요염한 시선을 던졌다.남자들은 값비싼 시계를 찬 손으로 잔을 들고 이리저리 여자를 물색하고 있었다.다만, 겉으로는 화기애애해 보이는 사람들 뒤로 누가 어떻게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들은 무성에서 최근에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 뒤 작은 소리로 웃고 떠들며 여자들 몸매 품평회나 늘어놓기 일쑤였다.그야말로 황금궁 별장은 저마다 웃음꽃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로비 2층에 있는 VIP 룸에는 신분이 높은 남녀들이 모여 있었다.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신분을 무슨 권력처럼 자부하며 거들먹거렸다.“자자자, 우리 황소군을 위해 건배!”“이 잔을 비운 뒤 우리 황소군은 구 씨 가문과 약혼하는 거로군. 정말 강대강의 연합이야! 훗날 황금궁 외문 일은 당신이 다 결정하겠어! 하하!”“황소군이 무성에서 아니, 아니, 대하 남서쪽에서 원대한 계획을 펼칠 것을 미리
황소군의 옆에 있던 구예빈은 늘씬한 키를 자랑하며 높이 틀어 올린 헤어스타일 아래에는 얼마인지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묵직해 보이는 보석이 박혀 있는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비둘기 알만 한 큼지막한 다이아몬드가 있었다.어떤 여자가 보아도 눈이 휘둥그레질 크기였다.두 남녀는 함께 앉아 다정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자세히 보지 않으면 세상 선남선녀가 없었다.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던 황소군은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여러분, 술을 마시고 싶으면 저한테 권하세요. 저의 피앙세를 난처하게 하지 마시구요.”“이 술은 제가 대신 마시겠습니다.”황소군은 구예빈을 위해 술잔의 90%를 흔쾌히 비웠다.이런 모습을 본 구예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소군, 당신 정말 친절한 사람이에요. 일찍 알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따름이에요.”“하하하, 우리 앞에서 둘이 너무 내색하는 거 아니야! 아유!”“자, 자, 자, 모두 술잔을 들고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합시다!”예닐곱 명의 유명 인사들이 함께 술을 권하자 모두들 빙그레 웃으며 술잔을 비웠다.“황소군, 내가 한 가지 들은 게 있는데.”“전에 국전에 나간다는 신분으로 감히 당신을 괴롭혔던 하현 말이야. 요 며칠 동안 이루어진 국전에서는 좀체 출전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지금 대하에는 세 명의 젊은 실력자만 이름을 날리고 있어! 하현은 아예 쏙 들어갔다니까!”“황소군, 내일 국전이 끝나면 우린 당신과 함께 국술당에 가서 그놈을 혼내줄 거야! 우리 황금궁을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보여 줘야지!”“맞아. 용문을 등에 없고 감히 우리 황금궁을 건드리다니! 우리 황금궁이 무학의 성지라는 걸 몰라?”술을 마신 뒤 사람들은 황소군을 대신해 하현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다른 여자들도 황소군을 치켜세웠다.“당신들 잘 모르나 본데 그날 황소군이 하현에게 양보한 이유는 바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였어요!”“그렇지 않았더라
”여러분, 나와 하현 사이의 갈등은 그리 깊지 않습니다.”“그날의 옳고 그름에 대해 저는 더 이상 입에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게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은 뒤에서 앙심을 품고 소심하게 복수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어쨌든 하 씨 그놈도 이번에 출전하면서 공로는 없지만 약간 고생은 했으니까요.”“여러분, 내 체면을 봐서라도 그를 좀 봐주시죠. 더 이상 그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그가 어떻게 될지는 그 자신의 운에 달렸겠지요!”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황소군의 말에 사람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황소군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다른 사람에게 아량을 베풀고 용서를 할 줄 알아!”“우리가 그런 얘기를 하다니! 우리가 아직 많이 식견이 좁았어!”“하현이 나쁜 행실을 한 것을 두고 사람들한테 이미 미움을 샀으니 당연히 벌을 받겠지. 황소군 당신까지 손을 쓸 필요가 있겠어?”“그만, 그만, 다들 오늘 저녁 맛있게 먹고 즐거운 얘기만 해요!”구예빈이 일어서서 화제를 돌린 후 창문을 열고 손님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오늘 밤 여러분이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든 절대 사양하지 마세요. 모든 것은 저희가 계산합니다!”홀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자, 자, 자, 황소군, 구예빈. 이건 당신들을 위한 선물이야. 특별히 시계를 골랐어. 평생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평생 의지하길 바라!”“구예빈, 이건 까르띠에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크리스털 신발이야.”한바탕 떠들썩한 시간이 지나자 귀빈실 사람들은 저마다 준비한 값비싼 축하 선물들을 내어 놓았다.오늘 약혼식이 끝나면 황소군은 황금궁 외문에서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자리에 우뚝 서게 된다.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이 틈을 놓칠 리가 있겠는가?그들은 권력자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 권력의 콩고물이라도 얻고 싶은 것이다.사람들이 줄줄이 선물을 건네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펑!”그때였다.별장 로비의 육중한
그러나 그 충격도 잠시였다.이내 곳곳에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하현의 이름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곧바로 생각난 것이다.요즘 인도인들과 이른바 국전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그러나 무성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그를 잘못 알고 있었다.소위 세 젊은 실력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인도인들을 진압하는 것 외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이 마침 무성에 있었기에 인도인들이 이전에 미리 도전하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여겼다.그렇지 않았더라면 그는 진작에 인도인들에게 밟혔을 것이다.이런 사람이 감히 여길 와서 소란을 피워?누가 그런 대단한 용기를 주었단 말인가?무슨 히어로라도 된 줄 아는가?황소군과 구예빈의 안색도 일순 굳어졌다.그들은 지금 이 시점에서 하현이라는 개자식이 감히 와서 소란을 피울 줄은 몰랐다.이것은 단지 그들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황금궁을 상대로 한 도전이었다!그들은 곧 대문 밖에서 뒷짐을 지고 천천히 걸어 들어오고 있는 하현을 보았다.뒤이어 용문 집법당에서 온 8명의 제자들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검은 관을 손에 짊어진 그들의 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냉엄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약혼식에 관을 들고 오다니!약혼식에 온 하객들은 모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남궁나연과 진주희 두 사람은 하현의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한 명은 하현을 위해 우산을 받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하현을 위해 길을 터주었다.남궁나연이 빙긋이 웃으며 황소군과 구예빈을 바라보자 두 사람의 안색이 동시에 굳어졌다.구예빈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남궁나연, 당신도 황금궁 사람인데 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 이런 곳에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도대체 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거야?!”남궁나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예빈을 빙긋이 바라볼 뿐이었다.오히려 입을 연 사람은 하현이었다.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일은 남궁나연과
”솩쏵솩!”순간 금빛 칼이 날카롭게 날아올랐다.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했다.순간적으로 달려들던 십여 명의 황금궁 외문 정예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넘어져 손목을 감싸고 몸부림쳤다.하현도 이 광경을 보고 감탄을 금치 않을 수 없었다.남궁나연이 요즘 제대로 회복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솜씨를 부릴 수 없었을 것이다.“뭐야?!”뒤에 남아 있던 십여 명의 황금궁 외문 제자들은 모두 소름이 쫙 끼쳤다.그들은 기본적으로 남궁나연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실력이 이런 경지에 이르렀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그때 남궁나연은 긴 칼을 빼들었다.그녀가 한 걸음 내디디며 사람들 사이로 날렵한 몸을 스쳐 지나갔다.칼날이 번쩍거리더니 사람들이 곧바로 손목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한 방에 끝났다!다 같은 황금궁 출신이었지만 이렇게 실력 차이가 크게 나다니!남궁나연은 이에 멈추지 않고 긴 칼을 휘둘렀다.무기를 꺼내려던 황금궁 제자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혔다.이 모든 것이 불과 30초 사이에 일어났다.남궁나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가 몸을 뒤로하고 하현에게 다가갔다.“어떻게 이럴 수가?!”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넋을 잃은 채 중얼거렸다.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그제야 사람들은 남궁나연이 국술당의 제일가는 교관이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떠올렸다.그녀가 이런 실력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곧이어 그들의 시선은 땅바닥에서 울부짖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로 떨어졌다.황소군 수하에 있는 정예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에 널브러질 줄은 아무도 몰랐다.남궁나연의 실력이 이렇게 살벌하고 무서울 줄은 그야말로 예상 밖이었다.그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모두가 놀라서 할 말을 잃었다.황금궁 외문 출신의 고수가 왜 하현의 수하로 들어가 그를 비호하는 최측근이 되었을까?왜 외부인을 비호하며 황금궁에까지 쳐들어왔
황지군은 황금궁의 내문 제자들 가운데 최고로 손꼽히며 황금궁 궁주가 될 수 있는 몇 안 되는 후보 중 한 명으로 알려져 있다.황지군은 황소군의 곁에 아복을 두어 황소군을 지원하고 비호하고 있었다.이번 기회에 황지군은 황금궁 외문을 철저히 통제하기 위해 이러한 수를 쓴 것이다.간단히 말해 오늘 이 약혼식에는 황금궁 실세의 의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컸다.이것은 황지군 일행이 외문을 지배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품었을 뿐만 아니라 하현 일행을 반드시 죽이겠다는 의미였다.황소군의 약혼식만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면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그런데 황지군의 원대한 계획에 방해를 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죽어서도 틀림없이 묻힐 곳이 없을 것이다!“쾅!”황소군의 목소리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뒤쪽 구석에서 노란 도포를 입은 남자가 발을 내딛더니 그대로 허공으로 몸을 날려 들어왔다.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남궁나연의 얼굴을 향해 발을 휘둘렀다.누가 봐도 한 방에 죽을 수 있는 필살기였다!아복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일벌백계하는 것이다!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황금궁의 제자 황지군이 외문을 통제하려는 뜻이 있음을 분명히 알린 것이다!황소군을 건드리는 자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휙휙!”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윙윙거렸고 곧이어 쏟아지는 폭포처럼 무서운 기세가 몰아쳤다.현장에 있던 하객들은 모두 남궁나연이 죽지는 않아도 도저히 몸이 성한 채 이곳을 빠져나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몇몇 여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도저히 남궁나연이 눈앞에서 죽는 꼴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그녀가 실력도 좋고 국술당의 제일가는 고수라고 하지만 어떻게 아복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남궁나연이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진주희가 한 걸음 내디디며 주먹을 앞을 날렸다.겁에 질린 사람들의 시선 속에 진주희의 주먹이 아복의 주먹과 부딪혔다.‘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마주치는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