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깔린 무성 거리에 도요타 엘파가 자선모금 만찬장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백 퍼센트 확신할 만한 증거는 없지만 여러 가지 단서들과 분석으로 판단하면 설은아를 납치한 사람은 용천진이라는 한 사람으로 귀결되었다.평소 같으면 차후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가능한 한 빨리 증거를 수집한 후 정황을 좀 지켜보았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와 관련된 일에 하현은 조금도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그가 들은 바에 의하면 용천진이라는 사람은 고집이 엄청 세고 행동에 거침이 없다고 했다.촘촘히 작전 계획을 세우고 후방에서 책략을 도모하기보다는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용천진의 스타일이었다.그래서 오히려 용천진은 상대하기가 더 까다로웠다.행동할 때는 미친 듯이 밀어붙이기 때문이다.하현은 용천진의 손안에 들어 있는 설은아를 조금도 다치지 않고 구해 낼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그래서 자선모금 만찬장으로 가는 하현은 거칠게 차를 몰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신호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기 위해 역주행도 서슴지 않았다.하현은 차를 몰면서 공해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선모금 만찬장의 시스템을 해킹해 만찬장의 구조를 손에 넣었다.그동안 진주희는 하현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사실 그녀는 하현을 말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또한 자신이 이 일에 깊이 개입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곧 차는 번화한 도심을 벗어나 자선모금 만찬장으로 향하는 대로에 들어섰다.“봥!”바로 그때 하현의 눈꺼풀이 살짝 펄쩍였다.사이드미러에서 벤츠 5대가 도로 한 쪽에서 튀어나와 기세 좋게 추격해 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벤츠 그랜드에는 마스크를 쓴 남자 몇 명이 타고 있었고 손에는 총을 들고 있었다.분명 이 사람들은 하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하현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상대는 이미 미친 듯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벤츠 그랜드가 으르렁거리며 달려나와 하현이 가는 방향으로 밀치고
”탕탕탕!”안전장치를 푼 총을 들고 병언파들은 창문을 내린 뒤 하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전방에 달리고 있는 도요타 엘파를 향해 총탄이 빗발치듯 날아들었다.하현은 총소리를 듣고 순간 눈초리를 길게 빼더니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제일 앞서 달리던 벤츠 그랜드가 하현의 행동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앞선 차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뒤따라오던 차량들이 제동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그대로 선두 차량의 후미를 덮쳤다.벤츠 그랜드는 사나운 굉음을 내며 빙글빙글 돌다가 그대로 180도 방향을 틀었다.차량들은 일제히 괴성을 뿜었고 하현은 핸들을 꺾어 두 번째 벤츠 차량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두 번째 벤츠 그랜드의 운전자는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돌려 하현의 차량을 피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속도를 늦추지 않고 그대로 부딪혀 벤츠 그랜드를 넘어뜨렸다.스키드 마크가 진하게 도로 위에 궤적을 그려 놓는 모습을 보고 무병언의 안색이 험악하게 변하기 시작했다.용천진이 상대하는 사람이라 절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상대가 이 정도일 줄은 무병언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개자식! 우리를 아주 만만하게 봤군!”하현이 움츠러들지 않고 몰아붙이자 세 번째 벤츠 그랜드에 타고 있던 병언파들은 천장 루프를 열고 하현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하현은 와이퍼를 부러뜨려 루프에 상체를 내민 병언파를 향해 힘차게 던졌다.그러자 와이퍼 조각은 총을 겨누고 있던 병언파의 손목에 그대로 꽂혔다.남자는 비명을 지르며 차 안으로 주저앉았고 순간 총소리가 들었다.남자가 가지고 있던 총이 오발한 것이다.‘탕탕'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고 벤츠 그랜드는 그대로 통제력을 잃고 길가의 큰 나무에 부딪혔다.뒤에 남은 벤츠 그랜드 두 대는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무리들은 그대로 몸이 날아가 유리창을 깨뜨리고 도로에 풀썩 떨어졌다.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용천진의 비호 아래서 백
석양이 마지막 빛을 발하며 꼬리를 감추자 무성 자선모금 만찬장의 불빛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하며 사람들을 비추었고 얼추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만찬장뿐만 아니라 정원과 잔디밭까지도 인파로 북적거렸다.무성 상류층에서 온 손님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엄선한 종업원들까지 합한 전체 인원수는 천 명에 육박했다.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성대한 자선 파티였다.오늘 밤 참석한 손님들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자선모금에 돈을 기부할 것이다.세련된 프렌치 롱테이블에는 다양한 종류의 다과와 과일, 음식, 술 등이 가득했다.참석자들은 이따금씩 자리를 잡아 수다를 떨기도 하며 명함을 주고받기도 했다.만찬장은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가득 찼다.오늘 행사의 주최자는 다름 아닌 용 씨 가문 젊은 세대의 우두머리 용천진이었다.여기에 나타나 서로 성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 나타난 이상 그들은 용 씨 가문 후계자 싸움에서 용천진을 선택했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용천진이 순조롭게 상석에 앉게 되면 오늘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굽신거릴 것이다.외부인들 외에도 용천진이 거느리고 있는 72명의 여자들도 이 만찬에 참석했다.뜻밖에도 전에 용천진에게 쓰디쓴 충고를 했었던 다섯 번째 첩 사청인은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다.두 명의 아름다운 여인을 양쪽에 거느리며 용천진은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만찬장을 찾은 손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조 선생님, 조희연. 오늘 밤 조 세자가 오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군요.”용천진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객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어느 부녀 앞에 미소 띤 얼굴을 보였다.서북 조 씨 가문에서 온 조삼서와 조희연 부녀였다.비록 그들은 서북 조 씨 가문 방계일 뿐이지만 5대 문벌이라는 명예는 언제나 사람들을 놀래킬 만했다.다만 5대 문벌이라고 하더라도 용 씨 가문의 젊은 세대 우두머리인 용천진을 대하는
용천진도 사양하지 않고 조희연을 힐끔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조희연, 괜찮다면 잠시 후 내 방에서 얘기나 좀 나눌까?”“지금은 다 같이 술 마시고 다 같이 얘기하면서 즐겁게 만찬을 즐기고!”조삼서는 용천진의 말을 듣고 재빨리 잔을 들었지만 딸과 용천진과의 사이에 오간 말은 귀담아 두지 않는 듯했다.술이 세 순배 정도 돌고 나서야 조삼서는 웃으며 말했다.“용천진, 요즘에 일이 좀 생겼다지?”“세상에 어느 눈먼 놈이 감히 당신한테 빚 독촉을 하러 왔다는 소문을 들었어.”“겁도 없이 당신 투우를 죽였다고 하던데.”“아니, 무성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이래도 법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용천진, 괜찮다면 그 일을 나한테 맡겨줘. 그럼 내가 아주 혼쭐을 내고 말 테니까!”“오금이 저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혹독하게 알게 해 줄게!”“당신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겠어!”그와 같은 사람은 서북 조 씨 가문 안에서 널리고 널렸다.방계의 신분은 평생 서북 조 씨 가문 문주로 나올 수 없는 것이 가문의 규칙이었다.그래서 그는 오늘 밤 이 자선모금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딸이 힘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것을 이용해 권세를 누리는 것, 그것이 그가 가진 단 하나의 목표다.그래서 언젠가는 용천진처럼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이다.자신의 딸이 용천진의 여자가 되고 용천진이 순조롭게 용 씨 가문의 수장에 오른다면 서북 조 씨 가문에서 자신의 지위와 위상도 덩달아 높아져서 상석에 오를 수도 있다고 그는 믿었다.그래서 그는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아는 것처럼 행동했고 용천진이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용천진은 그런 조삼서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심드렁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요즘 안 그래도 확실히 그런 놈이 하나 있긴 하죠. 내 투우를 한 마리 죽이기도 했고요.”“하지만 이 모든 일은 사소한 일이고 내 통제 범위 안에 있어요.”“조 씨 어르신이 무슨 얘길 하
웃음꽃이 가득한 자선모금 만찬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향했다.“왜 그래?”“무슨 일이야?”“누가 만찬장의 문을 이렇게 험하게 여는 거야?”“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오늘 밤 용천진이 이 만찬장을 주최한 것도 모르는 놈이야?”“자선모금 파티를 망치는 건 상관없지만 용천진의 심기를 건드리면 재미없을 텐데!”사람들이 놀라서 저마다 한 마디씩 하는 사이 용천진의 흥미로운 눈빛이 문 쪽으로 모아졌다.문 쪽에서는 또 한 번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이미 반쯤은 찌그러진 문에 도요타 엘파가 그대로 와서 부딪힌 것이다.요란한 소리를 듣고 달려온 용 씨 가문 경호원 십여 명이 부리나케 앞섰다.곧이어 도요타 엘파가 당당한 위용을 뽐내며 정원 안으로 들어섰다.곱게 차려입은 여자들은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다.자선모금 만찬장이 순식간에 엉망진창으로 변하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조금도 기가 죽지 않은 조희연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감히 누가 용천진의 저택 문을 저따위로 만든 거야?”“개자식! 누구야?!”“어서 꺼져!”바로 그때 몇몇 용천진의 심복들이 손에 총을 들고 살기를 가득 품은 눈빛으로 앞으로 나섰다.“탕탕탕!”말이 끝나기도 전에 잘 보이지 않는 운전석 쪽에서 총기 한 자루가 쑥 나와 총탄을 뿜어냈다.총탄이 날아오르자 심복들은 그대로 쓰러져 피바다를 만들었다.“앗!”“사, 사람이 죽었어!”방금 이 상황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하객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하나둘 사태를 파악하고 상류층의 체면이고 이미지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신발과 모자를 잃어버렸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조삼서와 조희연은 용천진이 주최한 자선모금 만찬장에 누군가 감히 쳐들어오는 것도 모자라 이렇게 순식간에 발포를 할 줄은 몰랐다.다가가려던 용천진의 심복들도 멈칫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딱!”용천진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지면서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그러자 준비되어 있던 경호원들 수십 명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그들은 하나같이 살벌한 표정을 드리우며 하현을 노려보았다.용천진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하현이 쳐들어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용천진은 이미 경호원들을 배치해 둔 것이었다.“탕탕탕!”하현이 떠들 틈도 주지 않고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방아쇠를 당겼다.장내 곳곳에서는 순식간에 총알이 난무한 전쟁터가 되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간발의 차로 무차별적으로 날아드는 총탄을 피했다.이어 그는 양손에 들고 있던 총의 방아쇠를 사정없이 당겼다.총알이 사방팔방으로 날아갔다.“앗!”“탕!”온갖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몇 분도 되지 않아 용천진이 준비해 둔 용 씨 가문 경호원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고 온몸에서는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그리고 몸을 숨기며 예리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리던 저격수들도 무도 하현에게 적발되어 쓰러졌다.그들은 방아쇠를 당길 겨를도 없이 이미 하현의 총탄 세례에 밀리고 말았다.높은 곳에서 저격수가 떨어지자 자선모금 만찬을 위해 정성껏 차려졌던 테이블들이 모두 산산조각이 났다.하현이 혼자의 힘으로 무적에 가까운 모습을 보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용천진의 경호원들은 겁에 질려 다시는 하현에게 총구를 겨누지 못했다.조 씨 가문의 경호원 십여 명이 나서서 뭔가 보여주려고 했으나 조삼서가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누가 용천진이 주최한 만찬장을 쑥대밭으로 만든 것인지 알기 전에는 절대로 섣불리 손을 써서는 안 된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일단 지켜보는 것이 우선이다.조삼서의 눈빛에 긴장감이 감돌았다.“이럴 수가!”“혼자서 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니?!”현장에 있던 손님들은 모두 만찬장의 가장자리로 물러났다.하현의 용맹함과 기세
용천진은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배치한 용 씨 가문 경호원들과 저격수가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하고 쓰러진 것을 본 순간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설은아를 납치하기 전에 용천진은 하현을 때려눕힐 자신이 충만했었다.그는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병언파뿐만 아니라 실력이 대단한 경호원들과 저격수까지 배치했다.그의 목적은 하현이라는 외지놈에게 자신의 위엄을 제대로 알리는 것이었다.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상황은 하현의 실력이 용천진이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강하다는 걸 보여주었다.“용천진.”하현이 냉랭한 눈빛으로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다시 한번 묻겠어. 내 아내 어디 있어?”“하현? 맞지?”“뭘 하려는 거지?”하현의 살벌한 표정을 본 조희연은 겁을 먹긴 했지만 어금니를 꽉 깨물고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여기가 어딘지 알아?”“자선모금 만찬장이야!”“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고!”“여긴 당신 같은 시골 외지인이 들어올 자리가 아니야!”“당신이 와서 행패를 부릴 곳은 더더욱 아니고!”“함부로 굴지 말고 어서 썩 꺼져!”“그렇지 않으면 당신 후회하게 될 거야!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감당하게 될 거라고!”“퍽!”하현은 직접 손바닥을 휘둘러 조희연을 땅바닥에 때려눕혔다.“당신이나 꺼져!”“오늘 난 용천진과 볼 일이 있는 사람이야. 개인적인 원한이 적지 않지!”“난 함부로 무고한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렇다고 내가 손을 쓰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조희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그녀는 서북 조 씨 가문 사람이다.어릴 적부터 오냐오냐 대접만 받고 살았었다!그녀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는가?!이때 그녀는 경호원이 들고 있는 총을 빼앗아 직접 하현을 쏴 죽이고 싶었지만 옆에 있던 조삼서가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조삼서는 분명 뭔가를 눈치챈 모양이었다.하현은 차가운 표정으로 용천진을 바라보며 천천히
용천진은 여전히 아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그는 이미 전체를 장악한 듯했다.용천진의 말을 들은 여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굴을 가린 채 그의 옆에 섰다.이때 용천진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하현이 자신의 이마에 겨누고 있는 총부리를 잡아 내리며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쏘아보았다.“하현.”“당신은 오늘 여기까지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고 이렇게 많은 경호원들을 다치게 했어. 내가 거느리는 여자도 두 명이나 때렸고.”“당신의 그 오만방자함,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평소 같았으면 벌써 당신을 죽여 버렸을 거야!”“하지만 오늘은 자선모금 파티라 보시다시피 이렇게 많은 손님들이 오셨어.”“일시적인 충동 때문에 손님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잖아?”용천진의 말에 사방에서 갈채가 쏟아졌다.역시 용 씨 가문 젊은 세대의 우두머리다웠다.이런 상황에서도 손님들의 안전과 이익까지 고려하다니 정말로 이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배포가 아니었다.사람들은 이제 적개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이 손끝 하나 까딱하기라도 하면 어디서든 날아와 그를 죽여 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용천진은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전체를 장악하는 아우라를 풍겼다.“하현, 이렇게 거리낌 없이 행패를 부리다니!”“이렇게 다짜고짜 내 체면을 깡그리 밟아 놓으려 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는데?!”“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이나 해 줘야 할 거 아니야?”“난 오늘 여기서 모은 기금으로 가난한 여대생들에게 기부하려고 했는데 당신이 다 망쳐놨어.”“당신이 나한테 설명을 해 줘야 하지 않겠어?”“물론 내가 뭘 잘못했는지 증거를 제시한다면 나도 할 말이 없겠지.”“만약 그렇다면 오늘 밤 당신은 여길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돼!”“하지만 만약 내가 잘못했다는 증거를 당신이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신 각오해야 할 거야! 절대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거든!”용천진의 말은 아주 점잖았고 온화했으며 한 마디 한 마디가 일리가 있는 말 같았다.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