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담담하게 말했다.“혹시 네 번째도 있습니까?”“물론이죠!”당당한 자태를 뽐내던 여교관이 입을 열었다.“넷째 당신이 이 업계의 문외한이니 운영에는 일체 간섭할 수 없습니다!”“누굴 뽑고 어떻게 운영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해요!”“매년 연말에 한 번씩 와서 배당에만 참여하면 됩니다.”“이 조건에 응하겠습니까?”이희광은 열 명의 교관들이 제시한 조건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이렇게 하면 국술당은 교관들에게 임대하는 셈이 된다.대부분의 수익은 교관들이 가져가고 하현은 매년 몇 푼 되지도 않는 임대료만 받을 뿐이다.운영상 발언권은 하나도 없었다.“만약 당신이 동의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이 국술당을 위해 온 힘을 쏟을 거예요.”“만약 당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당장 사직서를 내고 건너편에 무도관을 새로 차릴 거예요.”남궁나연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루의 시간을 줄 테니 잘 생각해 보고 알려주세요.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지 말지.”“지금은 좀 꺼져 주시죠. 학생들 수업 방해하지 말구요!”“남의 자식 망치면 누가 책임질 거예요?”남궁나연 일행이 할 말을 마친 뒤 하현에게 물러나라고 하자 그는 덤덤하게 말했다.“이것이 말로만 듣던 하극상인가요?”“열 명의 교관이 힘을 합쳐 날 밀어내시겠다? 아주 위풍당당하고 패기가 넘치는군요.”“그런데 자신감도 너무 지나치면 독이 되는 거 아닙니까?”“당신들은 뭘 믿고 이렇게 날 밀어붙이는 거예요?”“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 뭐든지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하현! 이런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시죠!”근육질 교관이 사납게 웃으며 얼굴 가득 비꼬는 표정을 지었다.“남자라면 좀 시원하게 행동하시죠? 말만 번지르르해서 무슨 소용 있어요?”“우리의 요구를 들어주든지!”“아니면 당장 여기서 꺼지고 혼자 소꿉놀이나 하든지요!”“당신한테 다른 선택지는 없어요!”지난 몇 년 동안 국술당은 분
”가능한 한 빨리 답을 하라고?”하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뒷짐을 진 채 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당신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분수를 모르는 것 같군.”“당신들 정말 모르겠어?”“그동안 당신들이 국술당을 이룩해 낸 것이 아니라 국술당이 당신들을 끌어올린 거지!”“당신들이 없었더라도 국술당은 여전히 무성 최고 무도관 중 하나였을 거야!”“국술당이 없어지면 당신들 소위 10대 교관들은 강호의 사기꾼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하나같이 기본적인 무학의 도리도 모른 채 돈 버는 방법에만 혈안이 된 아첨꾼들 같으니!”“무술을 익히던 그 초심은 다들 어디로 간 거야?”“당신들이 재벌 2세의 개인 무술 선생이 되려거든 얼마든지 나가서 해!”“하지만 그렇게 대충대충 학생들을 가르칠 생각하지 마!”“모두들 하나같이 무학을 가르친다면서 대충대충 보이는 것만 신경 쓰고 옆으로 찔러주는 떡값에나 혈안이 되어서야 되겠어?”“학생들을 좀 봐. 이 좋은 인재들이 당신들한테 무엇을 배웠는지!”“전부 겉만 번지르르한 동작들만 익혀서 뭣에 쓰겠어?”“뭐? 무술을 배우려면 바닥부터 깨끗이 닦으라고? 에이 퉤!”“아무것도 모르면서 헛소리!”“그런 식으로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은 굶어 죽어도 싸!”하현은 매서운 눈초리로 사람들을 노려보았다.“이 정도 수준인데 감히 당신들 같은 사람을 교관이라고 할 수 있겠어?”“당신들 자격 있어?”학생들은 어리둥절해서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그러다 어디선가 낮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아요.”학생들 중 몇몇은 여기 온 지 이미 2, 3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실력이라고 할 게 없었다.전에는 이런 점에 별로 의구심을 가지지 못했는데 오늘 하현이 하는 말을 들으니 학생들은 문득 뭔가를 깨달은 것이다.“개자식! 누가 감히 우릴 가르치래?”하현이 학생들 앞에서 훈계하듯 구구절절 늘어놓자 남궁나연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며 참을
그 자리에 있던 학생들이 하나둘 들썩이기 시작했다.그들은 원래 무학을 수련하는 데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기 때문에 남궁나연을 우러러보았다.하지만 지금 하현이 두 학생의 문제를 정확히 집어내자 남궁나연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의심이 커져갔다.그들은 이 두 학생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여기 있는 학생들은 다들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었고 그동안 국술당을 드나들면서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혹여라도 돈 때문에 없던 이야기를 있는 것처럼 연기할 일은 절대 없다.“그리고 정말 이해되지 않는 것은 실제로 무술을 막 수련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여기 무도장에서 기본기를 연습시키고 있더군.”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이곳은 습기가 많은 지방이야.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체질을 연마하고 숨을 쉬다 보면 체내 습기가 높아지지.”“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지만 몇 년 후면 모두 류마티즘에 걸릴지도 몰라.”“그때 가서 어떻게 무예를 계속 배울 수 있겠어? 또 어떻게 다른 사람이랑 겨룰 수 있겠어?”“모두들 집에 가서 한약을 달여먹으며 몸의 기운을 보충해야 해.”하현의 말에 몇몇 교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남궁나연이 실내 무도관은 너무 좁다며 옥외에서 학생들을 수련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지금 하현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당신! 근거 없는 말로 호도하지 마!”남궁나연이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우리 황금궁 제자들 중 실외에서 수련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어?”“당신은 근거 없는 말로 우리의 오랜 명성을 무너뜨리려 하는 거잖아?”“어디서 수작을 부려?!”“우리가 그동안 끌어올린 명성이야!”“당신이 끌어내린다고 한순간에 망칠 수 있는 게 아니라고!”“개자식! 당장 사과해!”근육질의 교관도 발을 내디디며 목판을 부숴버렸다.“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우린 바로 여기를 떠날 거야!”
이 사람들은 세상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남궁나연 일행은 하현이 분명 후회할 거라고 믿었다.기껏해야 사흘, 아니 사흘도 되지 않아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가 다 함께 돌아섰다.하현이 방금 한 말이 일리가 있긴 하지만 남궁나연 일행이 더 믿을 만했기 때문이다.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던 두 학생마저 사라졌다.하현의 말이 맞지만 학생들은 남궁나연 일행이 각각의 재능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는 돈이 형편없이 적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만약 남궁나연을 잘 설득한다면 그들은 모두 진정한 기술을 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교관들과 학생들이 자리를 뜨면서 국술당은 텅텅 비었다.큰 연무장은 고요함만이 가득 찼고 하현과 이희광만이 덩그러니 남았다.바람이 휙 불고 지나가자 도포자락이 펄럭펄럭 휘날리며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났다.“당주, 이제...”이희광은 이 모습을 지켜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할 말을 잃었다.그는 하현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데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그런데 하현이 오자마자 인재들이 넘치던 국술당이 순식간에 텅 비어버릴 줄은 몰랐다.이희광은 슬슬 자신의 앞날을 걱정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를 찾아 앉았다.무성에서 보기 힘든 평온을 오랜만에 즐겼다.이곳은 도끼파 본거지처럼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무성에 있는 자신만의 본거지라 마음이 평온했다.“당주, 정말로 사람들이 다 가버렸네요.”이희광은 하현 옆에 서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이 국술당을 운영할 수 있을까요?”“차라리 아무도 없는 게 나아. 이참에 우리도 좀 쉬지 뭐.”하현은 느긋한 몸짓으로 다기를 찾아내어 보이차를 우려낸 뒤 천천히 찻잔을 집어 들었다.“지금 아무도 없을 때 가서 싹 다 정리해 버려.”이희광은 어안이 벙벙했다.“아니, 당주, 이러다가 우리 국술당 망하는
하현은 이 말을 듣고 싱긋 웃으며 말했다.“만 씨 어르신 얘기를 하니 갑자기 떠오른 생각인데 말이죠. 내가 여기 어렵사리 무성에서의 본거지를 찾았는데 어떻게 해서든 만 씨 어르신을 초대해서 식사라도 대접해야겠어요.”“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여기서 식사하는 건 어때요?”“내가 잠시 후에 만 씨 어르신께 전해 놓을게요.”하현의 말에 영지루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너무 좋아요. 나도 한동안 만 씨 아저씨랑 같이 식사를 못했거든요.”“괜찮으면 만천구 오빠랑 만천우 오빠도 함께 불러요.”영지루는 분명 하현과 만 씨 집안 형제들의 관계를 알고 일부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만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 다음 그는 진주희와 한여침에게도 각각 전화를 걸어 국술당으로 오라고 했다.하현 일행은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운 국술당을 정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지루, 만진해 일행을 초대하는 일로 분주했다.준비하는 동안 시간은 훌쩍 지나갔고 곧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하현과 영지루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입구 쪽에서 자동차 굉음이 들려왔다.만진해, 만천구, 만천우 세 부자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만진해는 여전히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이었고 만천우는 역시나 예의 바른 공손한 모습이었다.만천구만 표정이 조금 편치 않아 보였다.아마도 아직 하현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여기에 별로 오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하지만 영지루가 있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온 것이다.하현은 당연히 만천구의 표정을 쓱 보고 그의 심정을 꿰뚫어 보았고 스스럼없이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만천구, 천우 두 분 잘 오셨습니다.”“특히 만천구 선생. 이렇게 틈을 내어 함께 식사 자리에 와 주어서 고맙습니다. 이제야 제 면이 좀 서는 것 같습니다.”“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입니다.”만천구가 딱딱한 표정을 지은 채 심호흡을 하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하나는 무성 체육관에서 벌어진 일
하현 일행이 소리를 듣고 동시에 입구 쪽을 보았을 때 차량 행렬은 이미 멈추어 대문 앞을 가로막았다.이어 문이 열리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벌떼 같은 기세로 주위를 둘러쌌다.이들 중에는 경홍근과 진 선배의 모습도 뚜렷이 보였다.다만 군중들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은 경홍근이 아니라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대머리 남자였다.그의 몸집은 큰 편이 아니었지만 뱃살은 두둑한 편이었다.이마에는 기름기가 줄줄 흘러 번들거렸고 걸을 때마다 당당한 기운이 넘쳐흘렸다.한눈에 봐도 눈에 거슬릴 게 없는 사람 같았다.“하 씨! 당장 나와!”사람들이 국술당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 선배는 호가호위하며 큰소리를 질렀다.그의 뒤를 따르던 곱상한 여자들도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지난번에 당한 수모와 억울함을 이번에는 반드시 되갚아 줄 요량인 듯했다.“오늘 겨우 개업했는데 누가 이리 와서 시비를 거는 거야?”“이것 참 재미있군.”“여러분들은 천천히 들고 계세요.”하현이 옅은 미소를 띠며 일어서면서 이희광, 진주희, 한여침 세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자신을 따라 나오라는 뜻이었다.영지루와 만진해 일행은 계속 식사를 이어갔다.어쨌든 그들은 손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라 주인과 같이 나가서 다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하현은 국술당 정문으로 갔고 몰려든 사람들을 쭉 훑어보았다.군중들 맨 앞에 있는 경홍근 일행을 보고 하현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입을 열었다.“아, 이게 누구신가? 상관아닙니까?”“어떻게 또 여기서 만나게 된 거죠?”“경찰서에서 이리도 빨리 나오시다니.”“난 지금 저녁을 먹고 있는 중이었는데.”“아쉽게도 많이 준비하지 못해서 같이 식사하자는 말은 못 하겠군요.”“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죠.”하현은 무덤덤한 기색으로 아무렇지 않은 듯 손을 흔들며 불청객들을 내쫓았다.“허참!”하현의 말을 들은 곱상한 여자들은 연신 헛웃음을 지으며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
”당신이 바로 그 전설로만 듣던 하현?”바로 그때 곱상한 여자들 틈에 둘러싸여 있던 대머리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거침없이 거들먹거리며 걸어 나왔다.하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이분은 또 누구신가?”“이분은 연경에서 오신 방 감독관이야. 전국에 퍼져 있는 각 요원들을 감독하는 거물이시지!”“내가 특별히 정의를 되찾아 달라고 부탁해서 모셔온 분이야.”상관 경홍근은 하현을 쳐다보며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참, 당신은 감독관이라는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를 텐데 말이야.”“간단히 말해 방 감독관 앞에서는 무성 경찰서 수장이라고 해도 쩔쩔매야 한다는 거지!”경홍근은 약삭빠른 인물이었다.그는 방 감독관의 신분이 만천우보다 높다는 것을 넌지시 말하며 하현이 만천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을 사전에 막으려는 수작을 부렸다.하현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 감독관?”“허풍이 너무 센 거 아닌가요?”“난 또 조한철이 직접 온 줄 알았네.”“깜짝 놀랄 뻔했잖아요!”경홍근은 냉소를 지으며 되받아쳤다.“조 세자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당신 같은 소인배를 밟을 시간이 어디 있겠어?”“하 씨! 잘 들어!”진 선배가 의기양양한 얼굴로 끼어들었다.“당신의 그 후원자가 와도 당신을 도울 수 없어!”“못 믿겠으면 전화해서 물어봐! 당신을 구해 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라고!”곱상한 여자들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하현을 노려보았다.얼마나 대단한 말을 하는지 두고 보자는 심산인 것 같았다.하현은 그들의 눈빛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경찰서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난 양심에 거리낌이 없고 규율과 법을 준수하는 사람이야. 경찰서 사람들은 공적인 일을 공정하게 처리하고 법의 정의를 수호할 뿐이지!”“당신 말대로 만 서장이 정말로 날 비호할 마음이 있었다면 아마 지금쯤 당신들은 감옥에 있겠지. 여기서 으스대게 내버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있어!”“첫째, 천억을 배상해!”“둘째, 머리를 세 번 조아린 뒤 한 손을 끊어. 그리고 상관한테 사과해!”“셋째, 당신의 아내와 처제가 한 달 동안 우리를 보필해야 해. 하루라도 빠지면 안 돼.”방 감독관은 손가락 세 개를 내밀며 입가에 냉소를 떠올렸다.“물론, 당신이 거절할 수도 있어!”“하지만 만약 당신이 거절한다면 난 당신을 우리 집으로 데리고 가서 천천히 얘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아!”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제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이 슬금슬금 앞으로 나왔다.눈빛이 매섭고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그들은 언제든지 하현을 잡아죽이고 국술당을 부숴버릴 태세였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방 감독관, 당신이 나한테 무례한 언행을 했다면 난 당신을 용서할 수 있었을 거야.”“하지만 당신은 세력을 믿고 남을 업신여기고 있어. 이건 죽음을 사는 거나 마찬가지야!”“이 자식이!”진 선배가 앞으로 나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방 감독관님이 하는 말이 뭐? 남을 업신여겨?”“당신 죽고 싶어 그래? 감히 방 감독관에게 그런 말을 해? 이 개자식이!”“똑똑히 들어! 당신이 스스럼없이 만천우를 움직였듯 우린 지금 방 감독관님을 불러서 당신 머리 꼭대기 위에 얹었어. 그래 기분이 어때?”“이래도 승복하지 못하겠어?”“승복하지 않으면 뭘 어쩔 거야? 버텨 봐야 무슨 소용이냐고?”“어차피 데릴사위인 주제에 쥐꼬리만 한 세력 가지고 이리저리 판을 흔들고 다니니까 뭐라고 된 줄 알아?”“미친놈! 미쳐도 곱게 미쳐!”“어디서 입을 함부로 놀려?!”“내 뺨을 때리고 상관 선생의 뺨을 때린 것도 모자라 감히 지회장의 부인한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라고 해?”“당신이 그렇게 대단해?”“능력이 있으면 오늘도 한 번 때려보시지? 어?”“때리라고 하잖아? 왜? 감히 못 때리겠어?”말을 하면서 진 선배는 일부러 하현 앞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었다.위세를 믿고 도발하는 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