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 너무 건방진 거 같은데.”“천 번 만 번 말하지만 잊지 마.”“여기는 무성이야.”“용 씨 가문 구역이라고. 함부로 날뛸 곳이 못 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청인은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녀의 눈빛에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칼집에서 칼을 꺼내었고 총을 가진 사람들은 안전장치를 풀었다.사청인의 말처럼 이곳은 무성이었다.하현은 외지인이었기 때문에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든 상관없었다.무성은 현지인들이 날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사청인의 부하들은 사청인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며 하현을 도륙 낼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그들은 거리낌 없이 하현을 갈기갈기 찢어 늑대들의 밥으로 만들 태세였다.그들이 데리고 있던 늑대들조차도 지금은 하현과 설은아를 뜯어버릴 듯 사나운 눈빛을 보였다.설은아의 안색은 말도 못 하게 창백해졌다.그녀는 이런 장면을 몇 번 목격하긴 했지만 어쨌든 힘에서는 밀리는 여자였고 떨쳐버리려야 떨쳐버릴 수 없는 두려움이 심장을 압박해 왔다.그러나 오히려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앞의 광경을 지켜보며 표정 변화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사청인 사장님, 다들 다 큰 어른들인데 이런 저급한 수작 그만 부리면 안 되겠어? 이건 당신을 더 우습게 만들 뿐이야.”“이 정도의 총과 칼이라면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그랬다면 아마 나 하현의 목숨은 무성에서도 열 번은 더 고꾸라졌을 거야.”“당신들의 이런 수작 하나도 소용없어. 지금 내가 여기 머리카락 한 올 다치지 않고 서 있다는 게 그 증거야.”사청인은 눈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고 아름다운 얼굴에는 어느새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그녀는 눈꼬리를 가늘게 뽑아 흘기듯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어. 내가 얻은 자료는 당신에 대한 정보가 아주 명확했거든.”“당신 같은 사람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지!”“하지만 당신도 알아야 해!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총을 든 경호원들 모두 하나같이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허풍 떨다가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게 분명해!그 결과가 어떻게 되나 두고 보자!감히 여자 앞에서 뻔뻔스럽게 센 척이나 하다니?!능력이 있으면 당장 용천진한테 찾아가 보시지?!지금 여기서 뭐 하는 짓이야?!“넙죽 엎드린다고?”하현은 눈꼬리를 가늘게 치켜세우며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그렇다면 내가 구린내 나는 용천진의 밑을 핥아 주겠어! 허!”“그렇지 않으면 무서워서 용천진을 마주 보기라도 할 수 있겠어?! 아이고 무서워라!”“쾅!”사청인은 앞에 놓인 테이블을 걷어찼다.“개자식! 감히 용천진을 갖고 놀아?!”“갖고 논다고?”하현은 웃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섰다.“내일 오후에 이천억 보내라고 용천진한테 전해.”“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이자 십억씩 붙일 테니까.”“3일 후에도 돈을 갚지 않으면.”“내가 직접 손을 쓰겠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곳을 떠나려고 했다.사청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감히 용천진을 위협하다니! 오늘 네가 살아서 여길 벗어난다면 내가 네놈의 성 씨를 따르지!”“어서 해치워!”사청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현장에 있던 경호원들이 모두 한 걸음 앞으로 나와 일순간 칼끝이 팽팽해졌다.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돌아보며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사청인 사장님, 지금은 아무나 하 씨 성을 따를 수 있는 게 아니야.”“당신이 한 다섯 살 어려도 그건 안 돼!”“감히 네놈이!”사청인은 버럭 화를 냈지만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이 손가락을 살짝 움직였다.“슝슝슝!”공기를 가르는 가벼운 파열음이 들렸다.순간 방금까지 살벌한 눈빛을 쏘아붙이던 경호원들이 하나같이 비명을 지르며 오른손을 감싸고 땅바닥에 픽픽 쓰러졌다.저격수였다!이미 저격수가 밖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순간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사청인의 성격상 쉽게 승복하지는 않을 거야.”“정 안 되겠다 싶으면 용천진에게 말을 전하기는커녕 스스로 나와서 우리와 죽기 살기로 싸우려고 들 거야.”“그게 더 귀찮지 않겠어?”설은아는 사청인의 성격과 행동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 무서운 여자가 체면을 잃고도 쉽게 굴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용 씨 가문은 정확히 삼파전이야. 세 명의 후보자 모두 힘이 팽팽해.”“아무도 쉬운 사람이 없어.”“그리고 쉬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아주 총명해.”“물론 오늘 우리가 했던 방법이 통했다고 하더라도 용천진을 빨리 굴복시킬 수 있는 건 아니야.”설은아는 의아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 쇠뿔도 단김에 빼랬지만...”“그렇게 급하게 서두를 것도 없어.”“그에게 사흘을 주겠다고 했으니 기다려 보자고.”“사흘 뒤에도 그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머뭇거린다면.”“그때 가서 손을 봐줘도 늦지 않아.”...용천진의 일은 잠시 접어두고 하현은 용문대회로 신경을 쏟았다.다음날 아침 10시, 하현은 용문대회의 도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다시 무성 체육관을 찾았다.이번 대회는 이전 대회보다 훨씬 수준이 높다.용문 내부의 거물들이 참관하러 나온 것도 대회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것이지만 심사하는 사람들도 용문 각 지회 부지회장 수준의 사람들이 아니었다.심사를 하러 온 사람들은 모두 각 지회장들이었다.이렇게 하는 목적은 용문대회의 절대적인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무성 지회장의 심사장은 바로 용문 무성 지회장이었다.하현이 시험장에 와 보니 자신 외에도 다른 수험생들이 십여 명 와 있었고 참관인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일부 용문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전 대회에서 떨어진 사람들이 참관하러 와 있었다.김방아는 지금도 뭐가
이때 지회장들 뒤편에서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무도복을 말끔하게 갖춰 입은 남자가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얼핏 섬나라 사람과 비슷한 용모였다.다만 그의 몸은 섬나라 사람보다 훨씬 우람했고 거칠고 사나운 기세가 풍겨 나와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워 보였다.하현은 이 남자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다 문득 그의 모습이 이가음의 얼굴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이 사람은 용문 무성 지회 이대성 지회장임에 틀림없었다.곧이어 몇 명의 관리가 차례로 무대에 올라 쓸데없는 장황한 연설을 늘어놓은 뒤 주변 심사위원단과 주임 시험관들을 소개했다.형식적인 절차가 다 끝난 뒤 이대성은 단상에 올라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현을 힐끗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다들 알다시피 쟁쟁한 실력자들을 꺾는 방법은 오직 실력밖에 없습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삼교구류의 살인술을 아는 것입니다.”“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을 보호하는 힘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그래서 이번 시험은 이전의 시험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여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그녀가 삼교구류의 음흉한 살인술을 만난 듯합니다.”“그래서 지금 매우 힘든 상황을 겪고 있어요.”“누가 그녀의 이런 상황을 해결해 준다면 내가 어찌 그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1등 자리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나의 신임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백억의 상금까지 받아 갈 수 있고 용문대회 최종전에 출전할 수 있는 자격까지 얻게 됩니다!”말을 마친 뒤 이대성이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자 용문 제자가 조심스럽게 휠체어를 끌고 나왔다.휠체어 위에는 한 여자가 끈으로 묶여 있었다.환자복을 입은 채 온몸을 오들오들 떨며 겁에 질린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여자는 확실히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인간 같은 모습이었다.가끔 그녀의 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시신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몇 미터
이대성의 말이 끝나자 모두들 서로를 쳐다보았다.이것은 용문대회였다.모두들 피 터지게 싸우는 살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지금 그들의 눈앞에는 병든 사람이 누워 있다.그들한테 병든 사람을 치료하고 구하라고 하는 것인가?문제는 이대성이 하는 말마다 일리가 있어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구양연조차도 뭔가 언짢은 듯 양미간을 만지작거리며 난감한 모습을 보였지만 뭐라고 설득을 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다.하현을 바라보는 김방아의 눈에는 어느덧 고소해 죽겠다는 통쾌한 눈빛이 가득했고 입가에는 기쁜 미소가 일렁거렸다.그녀는 이런 난제 앞에 하현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하현은 누군가와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건 할 수 있지만 눈앞의 이런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결국 강호에서 실력자로 거듭나는 건 세상 물정 좀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고되고 험난한 길인 것이다.하현이 여기서 망신을 당하고 떨어질 것을 상상하니 김방아는 새어 나오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자, 시작!”이대성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뒤로 물러나 조용히 시작하라는 손짓을 했다.첫 번째 수험생은 단발머리의 여자로 눈살을 찌푸린 채 앞으로 나와 이가음을 에워쌌다.잠시 후 그녀는 앉아서 이가음의 맥을 짚었다.대하의 무학은 줄곧 의술과 무술의 일체화를 중시했는데 옛날에 무술을 하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조금이라도 의술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단발머리 여자도 분명 어느 정도 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맥을 짚었을 것이다.하지만 이가음을 마주하자마자 그녀는 무서운 것을 본 듯 온몸을 떨었고 마치 악마를 본 듯 당황스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그녀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단발머리의 여자는 무성에서 꽤 유명한 무학 가문에서 태어났다.원래 그녀는 성격이 도도하고 오만해서 이 정도의 문제는 그동안 부모님이 전해준 강호의 경험으로 쉽게 해결할 수
한 명 한 명 돌아설 때마다 이대성의 분노는 극도로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자식을 향한 마음이 간절했던 이유도 있었지만 그의 급한 성격도 한몫했다.하현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이대성은 갑자기 냉소를 지으며 비꼬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여기에 모인 사람들은 결국 제대로 된 능력도 없이 용문대회에 나선다고 큰소리를 쳤던 거였어! 그러면서 저마다 자존심을 거네 어쩌네 말들이 많아!”“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나? 아무 소용 없는 사람들이야!”“내 눈에 당신들은 모두 쓰레기들일 뿐이야!”“정말로 살육의 장에 던져졌을 때 어떻게 죽을지 분간도 하지 못할 어리석은 자들이라니!”“이렇게 간단한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강호의 바닥에서 살아남겠다고?!”이대성의 말에 방금 무대에서 내려온 수험생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출신 내력이 남달랐던 이들은 이대성에게 쓰레기라는 말을 듣자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치솟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대성의 신분을 떠올리며 그들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한편으로는 이대성의 실력과 신분이 무섭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국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신들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구양연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이대성이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이내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장내의 수많은 눈동자가 마지막 남은 수험생 하현에게 쏠려 있었다.모두의 눈과 귀는 하현이 이 기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주목했다.오직 김방아와 그녀의 친구들만이 비아냥거리는 표정으로 하현을 흘겨보고 있었다.그 눈빛은 하현이 분명 무능하고 무력할 것임을 예단한 것처럼 보였다.“드륵!”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일어섰다.그리고 그는 품에서 휴지를 꺼내더니 곧장 이가음 앞으로 다가갔다.“꺼져! 내가 언제 올라오라고 했어?”하현이 나가는 것을 보고 화가 난 이대성은 그를 쳐다보고는 험한 말을 퍼부었다.하현은 이
”저리 꺼져! 여기는 당신 같은 사기꾼들이 활개치는 곳이 아니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대성을 바라보다가 잠시 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럼 알겠습니다. 내가 당신 딸을 살리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시죠. 나도 굳이 살리려 하지 않을 겁니다.”“그래도 대회는 치러야 하니까 다른 문제를 내시죠!”이대성은 화가 치밀어 오른 목소리로 소리쳤다.“뭐? 다른 문제를 내라?”“그럴 필요없어!”“어차피 당신 같은 인간은 통과하지도 못해!”“이번 도 대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진급 자격을 잃었음을 선언한다!”“모두 꺼져! 어서 물러가라고!”“멀리멀리 꺼져!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마!”이대성의 막무가내 발언에 하현의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주변에서도 원성의 소리가 들려왔다.사람들은 하현과 이대성이 구체적으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들리지 않았지만 진급 자격을 잃었다는 이대성의 선언은 똑똑히 들었다.이번에는 더 이상 참지 못한 구양연 부지회장이 앞으로 나섰다.“지회장님, 이렇게 시험도 안 보고 하현을 떨어뜨리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니 뭔가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한번 해 보라고 하는 게 어떨까요?”이대성이 분노한 목소리로 말했다.“데릴사위가 무슨 능력이 있겠어?”“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거야?”“구양연 당신이 책임질 거야?”“당신이 그럴 능력이나 있어?”이대성의 말에 구양연은 쓴웃음을 지었다.비록 구양연도 용문 무성 지회 부지회장이긴 하지만 지회장인 이대성 앞에서는 강하게 나갈 수가 없었다.그저 이런저런 방향을 권할 수는 있지만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이대성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문제였다.구양연마저 욕을 먹게 되자 다른 시험관들도 뭐라고 말하기 어려웠고 결국 모두들 이대성의 말을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이를 본 김방아는 고소하고 통쾌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젊은이, 지회장이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군말 말고 물러서.”“지회장이 진급 자격이 되는 사람이 없다고 선언했으니 그만 매달리고 내려와.”“당신이 이러는 건 모든 사람들의 시간만 낭비할 뿐이야.”이대성의 말에 몇몇 시험관들이 맞장구를 쳤다.모두들 하현을 호통치고 나무라는 모습이었다.“좋습니다. 그렇다면 용문도 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스스로 물러나죠!”하현은 이대성과 몇몇 시험관들이 호통치는 모습을 보고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렇지만 지회장님.”“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긴 잘 들으셔야 할 겁니다.”“음험한 기운이 지금 따님의 가장 깊은 곳까지 침투해 있습니다. 말하자면 음기에 딱 달라붙어 있다는 얘깁니다.”“따님은 총기 오발 사고로 넋이 나갈 정도로 혼을 뺐고 그 틈에 음험한 기운이 음기에 달라붙은 거죠.”“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치료할 수 없습니다.”“대하 전역에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을 넘지 않습니다.”“무성 전체에서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을 겁니다.”“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따님은 평생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지내게 될 거구요.”말을 마친 하현은 손에 든 티슈로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으며 돌아섰다.“거기 서!”하현이 이가음의 상태에 대해 정확하게 집어내는 것을 듣고 이대성은 심장이 벌렁거렸다.갑자기 지금 하현이 이가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로 영영 저 모습으로 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젊은이,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니 그럼 내가 특별히 당신에게 기회를 주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당장 돌아와서 어디 한번 해 보라고!”“하지만 만약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미 말했잖습니까? 난 도 대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기권입니다.”“미안하지만 난 따님을 구하지 않을 겁니다.”“감히 이 녀석이!”이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
”너희들은 기껏해야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야. 형홍익 같은 사람이 봐줄 사람들이 아니라고!”“데릴사위 따위가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고? 그렇게 잘났다고?”“허풍을 떨어도 좀 그럴싸하게 해야지! 흥!”우다금은 이 일에 하현이 중간 역할을 했을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아니, 언니!”우다금이 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최희정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비록 그녀도 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우다금의 말엔 참을 수가 없었다.“자네, 어서 자네가 도와줬다고 말해!”최희정은 우소희의 그 정도 능력으로는 SL그룹에도 못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어떻게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그래서 하현이 정말로 형홍익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특히 무성에서의 일을 떠올리자 최희정은 하현이 확실히 어떤 거물과 인연을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비록 죽일 듯이 하현을 싫어하는 최희정이지만 우다금이 뻔뻔스럽게 모든 일을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설은아의 난처한 표정을 본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모님...”“이, 이모라니?!”하현이 뭐라고 해명을 하기도 전에 우다금은 앞뒤 따져 보지도 않고 무지막지한 얼굴로 퍼부었다.“이모라니? 내가 어떻게 당신 이모야? 누가 당신 이모냐고?”“데릴사위 주제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쓸데없는 말 하지 마!”“우리 소희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너네들같이 속물 덩어리들과는 상대하지 않을 거야!”“아까는 온갖 이유를 대며 도와주지 않으려고 데릴사위 하나까지 핑계를 갖다 붙이더니 이제 와서 내 딸이 좋은 곳에 들어간다니까 어떻게든 생색내려는 거잖아?”“정말 이렇게 뻔뻔한 사람들은 처음 봐!”“내가 다시는 이 집에 발을 들이나 봐!”“우리 소희가 이제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고 절
말을 하면서 우소희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였다.결국 형 씨 가문 그룹에서는 그녀의 체면을 세워 주며 높은 급여를 제시한 것이다.이만큼의 연봉을 받는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우다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소희야. 정말 형 씨 가문 그룹이래? 잘못 들은 거 아니지?”“맞아, 똑똑히 들었어. 인사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틀림없이 그 목소리가 맞아.”우소희는 만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형 씨 가문이 정말 눈치 하난 빠르네.”이 광경을 보고 설은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과 형 씨 가문의 관계가 이렇게 공고하고 깊은 줄은 몰랐다.전화 한 통으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결하다니!설마 간민효 때문은 아니겠지?그녀는 방금 하현이 전화할 때 건너편에서 여자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았다.금정에서 형 씨 가문을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현은 질투의 그림자가 설은아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그렇다고 형나운에게 전화했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자신이 또 다른 여자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질투의 화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할지도 모른다!하현과 설은아가 서로 무언의 묘한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우다금은 이미 자신의 딸의 운명을 점찍었다.“잘됐어! 정말 잘됐어! 형 씨 가문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어!”“하늘이 도왔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기회로 삼아 그녀는 친척들 사이에서 한껏 콧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언니! 하늘이 도운 게 아니야!”최희정이 어떻게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하현이 언니를 도와준 거야!”이 말을 듣고 하현은 깜짝 놀랐다.최희정의 승부욕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하현? 그 데릴사위가?”최희정의 말을 들은 우다금은 곁눈으로 하현을 흘겨보면서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귀가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