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클로에는 울부짖으며 몸을 날려 하현이 있는 쪽으로 발길질을 했다.그의 몸은 기이하게 뒤틀리며 무서운 기운을 안고 하현에게 달려들었다.하현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그는 클로에 같은 인도 고수를 보고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동시에 진주희는 구석에서 걸어 나와 오른손을 한 번 휘두르더니 어느새 젓가락 하나가 그녀의 손을 떠나 클로에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 봉쇄시켜 버리는 것이다!단번에 급소를 찌르는 살벌한 몸놀림이었다!순간 클레에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는 진주희가 쓰는 기술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그러자 그는 공세를 멈추고 뒤돌아서서 주먹으로 한 방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촤칵!”젓가락이 공중에서 튕겼지만 클로에는 고통에 끙끙거리며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이를 본 김규민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클레에는 인도 고수였다.그런데 단 한 번의 공격에 열세에 빠지다니!그는 인도 선봉사의 고수였다!병왕의 실력에 버금가는 대단한 실력자였던 것이다!그런데 왜 진주희가 던진 젓가락 하나도 막지 못하는 것인가?진주희는 김규민 일행이 충격을 받든 말든 개의치 않았고 그녀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또 한 번 젓가락을 튕겼다.“촤칵!”다시 주먹으로 젓가락을 막은 클로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뒤로 몇 미터나 물러났다.클로에의 오른손 주먹 봉우리 위에는 어느새 심한 상처가 생겼고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김규민 일행은 그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진주희란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어떻게 저렇게까지 막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곧이어 그들은 하현이 왜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콧대가 높았는지 알게 되었다.이런 병왕급 사람들이 주변에서 경호를 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진주희의 실력을 실감한 순간 김규민은 더욱더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
”푹!”진주희가 끝까지 칼을 휘두르자 클로에의 오른팔에 순식간에 생채기가 났다.선혈이 낭자했고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그러나 클로에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같은 고수급이었기 때문에 그는 진주희의 살의를 똑똑히 감지했다.아니면 하현에게 손을 대는 순간부터 진주희는 자신을 죽일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클로에가 뒤로 물러나자 진주희는 오른손을 휘둘렀고 손에서 빠져나간 당도는 젓가락보다 몇 배나 더 빠른 속도로 클로에를 향해 날아갔다.칼의 속도와 힘의 위력을 알아차린 클로에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속도보다 진주희의 칼이 더 빨랐다.클로에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진주희의 칼이 그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윽!”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희번덕이며 클로에는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대로 생기를 잃어갔다.인도의 고수가 이름 없는 하찮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줄은 몰랐다.그러나 지금 누굴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없었다.한스러운 마음을 품은 채 클로에는 죽어갔다.장내는 충격으로 들끓었고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주희를 쳐다보았다.보기엔 그냥 보통 여자인데 어디서 이런 괴력이 나와서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것인가?영지루마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하현의 부하가 이렇게 결단력 있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좋아! 좋아!”“클로에까지 죽임을 당하다니!”“당신들 정말 무법천지구만!”김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섬뜩한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나 김규민과 한 번 해보기로 작정한 모양이지?”“그렇다면 상대해 줄게. 나중에 봐주지 않았다고 내 탓하지 마.”클로에도 죽고 브라흐마 아샴도 죽었다.이렇게 있다가는 김규민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이 일은 그녀 자신의 체면뿐만 아니라 김 씨 집안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더욱이 인도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만약
김규민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그녀 혼자만이 서 있었다.이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얼굴이 차갑게 식었고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김규민, 넌 아직 날 죽이지 못했어. 날 죽이기도 전에 그냥 도망가려고?”하현은 일어서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느릿느릿한 동작인 듯 보였으나 어느덧 김규민 앞에 나타난 하현은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거대한 힘이 느껴져 김규민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김 씨 가문 사람으로서 어떻게 함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순간 김규민은 숨을 몰아쉬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개자식, 능력이 있거든 날 건드려 봐!”김규민의 말에 패왕파 패거리들이 달려와 그녀를 보호하려 하였으나 진주희 한 사람에게 가로막혔다.“당신을 건드려 보라고?”하현은 손을 뻗어 김규민의 턱을 치켜든 다음 그녀의 뺨을 날렸다.김규민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하현은 흥미로운 듯 입가를 말아올리며 말했다.“건드렸다 어쩔래?”“내가 못할 줄 알았어?”김규민은 이를 갈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안하무인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언제 이런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 봤겠는가?순간 그녀는 하현을 씹어 죽여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어쨌든 그녀에겐 절대적인 망신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하현이 김규민의 뺨을 몇 대 더 때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냉소적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패가 하나 좋구만. 하지만 한 가지 이치만은 알아둬야 할 거야.”“푸른 산이 있는 한 푸른 물은 영원히 흐르게 마련이지.”“세상은 좁아서 돌고 돌아 결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는 법.”“내가 남겨둔 불씨가 언제 어디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지.”“외지인이 무성 같은 곳에서 함부로 날뛰다니. 하늘이 노할 일이야.”“계속 이러다간 나중에 그 업보를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그래?”“병왕급 부하 한 명 두었다고 감히 김 씨 가문을 건드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순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뒤로한 채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살인마라는 칭호만 봐도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하현이 운이 좋으면 가진 능력을 조금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살인마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젊은이, 외지에서는 함부로 날뛰었는지 모르지만.”“여기 무성은 그런 곳이 아니야. 바짝 엎드려야 한다고.”“어쨌거나 당장 우리 아가씨를 풀어줘.”“그리고 다시 브라흐마 아샴을 살려내.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두겠어.”“만약 거절한다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지. 미안하지만 당신을 죽일 수밖에. 너무 매정하다고 이 늙은이를 욕하진 말게.”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그림자가 바닥에 떨어졌다.착지하는 순간 ‘빠지직'하고 바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이 소리에 사람들은 겁에 질려 절로 뒷걸음질쳤다.인도인들도 모두 아연실색했다.그들은 항상 인도인의 무공이 천하무적이라고 자신했었는데 대하에 이런 수준의 고수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이런 고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는 인물이지 현실에서 실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하지만 정말로 그런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하현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이 사람을 쳐다보았다.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그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눈동자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렸는지 온통 새빨갰다.흉측한 몰골이 언제라도 사람들을 찢어버릴 것 같은 표정과 더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젊은이, 난 인내심이 그리 깊지 못해. 딱 3초 줄 테니 아가씨를 놓아줘!”살인마는 흉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당신은 그럴 자격이 못 되는 것 같은데.”“죽고 싶어?!”“이 개자식! 세상 물정도 모르는 녀석이 어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살인마는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뭔가 말로 한 대 얻어맞은
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뭐 그건 나중에 따져 보기로 하지.”살인마가 냉소적인 미소를 띠며 몸을 움직이려 하자 진주희가 뛰어들어 그에게 맞섰다.살인마는 그 이름답게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역시 고수는 역시였다.다른 건 몰라도 방금 덤벼든 인도인 클로에에 비하면 살인마는 훨씬 강한 상대였다.그의 붉은 손이 번쩍거릴 때마다 매서운 기운과 피비린내가 진동했다.피바람이 사람들을 휘몰아쳐 그대로 묻어버릴 것만 같았다.진주희도 못지않은 실력으로 당도를 뽑아 살인마와 맞섰다.하지만 그녀의 공세는 여전히 화려했다.사람들의 허점을 정확히 찾아내 쉴 틈 없이 밀어붙였다.이런 상황이 길어지자 치명적인 중상은 아니었지만 진주희도 조금 상처를 입었다.이 모습을 본 김규민 일행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냉소를 금치 못했다.그들이 보기에 살인마가 진주희만 죽인다면 하현은 끝장날 것 같았다.진주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하현의 가르침을 떠올렸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있는 당도의 속도에 집중했다.“촹촹촹!”칼의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핏빛 손바닥이 번쩍거렸다.장내는 곧 매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몇몇 패왕파 무리들은 다른 부상자들과 브라흐마 아샴을 조심스럽게 옮겼다.한편으로는 서로 싸울 공간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더 잘 포위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하현의 손은 여전히 김규민을 잡고 있었다.그래서 패왕파 패거리들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했다.혹시라도 김규민을 다치게 하면 그야말로 낭패였다.영지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수세를 점쳐 보았다.만약 진주희가 패하고 하현의 생사가 위험에 처한다면 법과 규칙을 무시해서라도 그녀는 사람을 보내서 손을 쓰게 할 것이다.다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법과 규칙의 중요성을 배워 왔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규칙을 깨뜨리려니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칼은 지독한 기운을 내뿜으며 핏빛에 물들고 있었다.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죽기 살기로 싸우던 두 사람이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 서 있었다.살인마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그는 진주희가 이런 방법을 택할 줄은 몰랐다.진주희는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덤벼든 것이고 살인마는 살고자 했다.그는 김 씨 가문에 들어온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였지 이렇게 도륙이 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간단히 말해서 진주희는 죽을 각오로 덤볐지만 살인마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순간 살인마의 몸이 허공에서 움츠러들었고 원래 기세등등했던 칼이 변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촹촹촹!”일련의 굉음이 울리고 불꽃이 튀었다.장내는 온통 칼날과 핏빛으로 뒤덮였다.곧이어 큰 소리가 나더니 진주희의 몸이 거꾸로 솟구쳤다.그녀가 착지하는 순간 창백한 기색을 드러내었고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렸다.반대편의 살인마는 팔뚝에 칼자국이 나 있었고 가슴에는 깊은 상처가 생겼다.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역력했다.하마터면 진주희는 물론이고 자신도 함께 죽을 뻔했다.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이런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니 무서웠다.만약 이 실력이 계속 성장한다면 조만간 일대의 전신이 될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살인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증오와 질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평생 고생을 했지만 전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그런데 왜 이 여자는 전신을 넘나드는 실력이 있을까?살인마는 강호의 규율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이봐. 이 여자를 총으로 쏴 죽여!”“이렇게까지 날뛰다니 도저히 봐줄 수가 없군.”이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패왕파 패거리들은 모두 눈을 가늘게 떴다.김규민이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총부리를 돌려 진주희를 쏘려고 했다.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몸을 움직여 살인마 앞에 우뚝 섰다.그런 다음 그는 한 발을 올려 살인마의 가슴팍을
김규민은 한참을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그녀는 이미 끝없는 분노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침착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어서 해치워! 뭐 하는 거야?”“죽이라고! 어서!”그녀는 순간 자신도 끝장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차손녕은 죽었고 클레오도 죽었다.살인마도 죽었고 브라흐마 아샴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녀는 이 사람들의 죽음에 분명히 책임을 져야 했다.그렇지 못하면 아마도 앞으로 무성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지금 김규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온몸이 분노에 휩싸였고 패왕파 패거리들은 일제히 총구를 돌려 하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그러나 아무도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그러자 김규민은 서슬 퍼런 얼굴로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전화를 거는 사이 바깥에선 어느덧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김규민은 오늘 밤 하현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단단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현을 죽이고 싶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손을 뻗어 김규민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야?”“신고하는 방법 몰라?”“아니면 신고할 마음이 없다는 거야? 내가 해 줘?”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만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현이 만천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본 김규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나 김규민은 하현이 만천우를 불러들일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그녀는 계속 군대를 부를 것이고 하현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하지만 30분도 되지 않아 완전 무장을 하고 전투태세를 갖춘 수사관들이 술집에 몰려들어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통제했다.수사관들을 본 영지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팀을 이끄는 사람이 만천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만 씨 가문은 무성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가장 공평하고 공정한 가문으로 정평이 나 있다.수사관들은
만 씨 가문은 어르신부터 아래로는 두 형제까지 모두 관청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관청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다.이 사건의 피해자인 영 씨 가문이 가만히 관청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가문들이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정신이 번쩍 든 만천우는 얼른 취조실을 나섰다.두 시간 후 만천우는 다시 나타났고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듯 단호한 표정이었다.“하현, 일이 다 처리되었어요.”하현의 옆에 서서 만천우는 공손하게 사건의 결과를 보고했다.“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였음이 밝혀졌습니다!”“당신은 무죄로 풀려날 것이고 경찰서에서는 당신에게 훌륭한 시민상을 수여할 거라고 하는군요.”만천우의 말에 하현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말했다.“그럼 다른 사람들은?”“영지루 일행은 피해자이니 당연히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겁니다.”“인도인 일행은 중죄를 저질렀지만 외교적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잠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을 뿐 출국은 절대 불가능합니다.”“김규민은 악인을 도왔으니 잠시 억류된 상태로 수사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하구요.”“브라흐마 아샴은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긴 하지만 파란 알약을 과다 복용한 탓에 심근경색과 뇌졸중에 걸려 지금은 산송장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그래서 경찰에서는 당분간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모든 절차는 법에 따라 이뤄질 거구요.”그동안 있었던 과정을 막힘없이 말하던 만천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법과 규칙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괜찮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만 씨 가문은 김 씨 가문, 용 씨 가문, 황금궁과 인도인의 세력 때문에 이 일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으니까.”“이런 일이 생길 때면 만 씨 가문은 항상 외로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지.”“그러나 만 씨 가문에 대한 기관의 신뢰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