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클로에는 울부짖으며 몸을 날려 하현이 있는 쪽으로 발길질을 했다.그의 몸은 기이하게 뒤틀리며 무서운 기운을 안고 하현에게 달려들었다.하현은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표정으로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했다.그는 클로에 같은 인도 고수를 보고도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았다.동시에 진주희는 구석에서 걸어 나와 오른손을 한 번 휘두르더니 어느새 젓가락 하나가 그녀의 손을 떠나 클로에의 미간을 향해 날아갔다.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해 봉쇄시켜 버리는 것이다!단번에 급소를 찌르는 살벌한 몸놀림이었다!순간 클레에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그는 진주희가 쓰는 기술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그러자 그는 공세를 멈추고 뒤돌아서서 주먹으로 한 방 날려버릴 수밖에 없었다.“촤칵!”젓가락이 공중에서 튕겼지만 클로에는 고통에 끙끙거리며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이를 본 김규민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클레에는 인도 고수였다.그런데 단 한 번의 공격에 열세에 빠지다니!그는 인도 선봉사의 고수였다!병왕의 실력에 버금가는 대단한 실력자였던 것이다!그런데 왜 진주희가 던진 젓가락 하나도 막지 못하는 것인가?진주희는 김규민 일행이 충격을 받든 말든 개의치 않았고 그녀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또 한 번 젓가락을 튕겼다.“촤칵!”다시 주먹으로 젓가락을 막은 클로에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는 순간적으로 비틀거리며 뒤로 몇 미터나 물러났다.클로에의 오른손 주먹 봉우리 위에는 어느새 심한 상처가 생겼고 오른손이 덜덜 떨리기까지 했다.김규민 일행은 그 모습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서 있었다.진주희란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어떻게 저렇게까지 막강할 수가 있단 말인가?곧이어 그들은 하현이 왜 이렇게 기고만장하게 콧대가 높았는지 알게 되었다.이런 병왕급 사람들이 주변에서 경호를 하고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진주희의 실력을 실감한 순간 김규민은 더욱더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
”푹!”진주희가 끝까지 칼을 휘두르자 클로에의 오른팔에 순식간에 생채기가 났다.선혈이 낭자했고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그러나 클로에는 비명을 지를 사이도 없이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섰다.같은 고수급이었기 때문에 그는 진주희의 살의를 똑똑히 감지했다.아니면 하현에게 손을 대는 순간부터 진주희는 자신을 죽일 준비를 했을지도 모른다.클로에가 뒤로 물러나자 진주희는 오른손을 휘둘렀고 손에서 빠져나간 당도는 젓가락보다 몇 배나 더 빠른 속도로 클로에를 향해 날아갔다.칼의 속도와 힘의 위력을 알아차린 클로에는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하지만 그의 속도보다 진주희의 칼이 더 빨랐다.클로에가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진주희의 칼이 그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윽!”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희번덕이며 클로에는 땅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대로 생기를 잃어갔다.인도의 고수가 이름 없는 하찮은 사람에게 죽임을 당할 줄은 몰랐다.그러나 지금 누굴 원망해 봐야 아무 소용없었다.한스러운 마음을 품은 채 클로에는 죽어갔다.장내는 충격으로 들끓었고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주희를 쳐다보았다.보기엔 그냥 보통 여자인데 어디서 이런 괴력이 나와서 사람을 이렇게 처참하게 죽일 수 있는 것인가?영지루마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하현의 부하가 이렇게 결단력 있게 행동할 줄은 몰랐다.“좋아! 좋아!”“클로에까지 죽임을 당하다니!”“당신들 정말 무법천지구만!”김규민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면서 섬뜩한 웃음을 터뜨렸다.“보아하니 나 김규민과 한 번 해보기로 작정한 모양이지?”“그렇다면 상대해 줄게. 나중에 봐주지 않았다고 내 탓하지 마.”클로에도 죽고 브라흐마 아샴도 죽었다.이렇게 있다가는 김규민 자신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이 일은 그녀 자신의 체면뿐만 아니라 김 씨 집안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더욱이 인도인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뭐라고 하겠는가?만약
김규민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오직 그녀 혼자만이 서 있었다.이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얼굴이 차갑게 식었고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쳤다.“김규민, 넌 아직 날 죽이지 못했어. 날 죽이기도 전에 그냥 도망가려고?”하현은 일어서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느릿느릿한 동작인 듯 보였으나 어느덧 김규민 앞에 나타난 하현은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거대한 힘이 느껴져 김규민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김 씨 가문 사람으로서 어떻게 함부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겠는가?순간 김규민은 숨을 몰아쉬며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개자식, 능력이 있거든 날 건드려 봐!”김규민의 말에 패왕파 패거리들이 달려와 그녀를 보호하려 하였으나 진주희 한 사람에게 가로막혔다.“당신을 건드려 보라고?”하현은 손을 뻗어 김규민의 턱을 치켜든 다음 그녀의 뺨을 날렸다.김규민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하현은 흥미로운 듯 입가를 말아올리며 말했다.“건드렸다 어쩔래?”“내가 못할 줄 알았어?”김규민은 이를 갈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안하무인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했다.언제 이런 모욕적인 대접을 받아 봤겠는가?순간 그녀는 하현을 씹어 죽여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어쨌든 그녀에겐 절대적인 망신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하현이 김규민의 뺨을 몇 대 더 때리려고 했을 때 갑자기 냉소적인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패가 하나 좋구만. 하지만 한 가지 이치만은 알아둬야 할 거야.”“푸른 산이 있는 한 푸른 물은 영원히 흐르게 마련이지.”“세상은 좁아서 돌고 돌아 결국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게 되는 법.”“내가 남겨둔 불씨가 언제 어디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일이지.”“외지인이 무성 같은 곳에서 함부로 날뛰다니. 하늘이 노할 일이야.”“계속 이러다간 나중에 그 업보를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그래?”“병왕급 부하 한 명 두었다고 감히 김 씨 가문을 건드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순
사람들은 놀란 가슴을 뒤로한 채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살인마라는 칭호만 봐도 이미 끝난 싸움이었다.하현이 운이 좋으면 가진 능력을 조금 발휘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살인마의 적수가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젊은이, 외지에서는 함부로 날뛰었는지 모르지만.”“여기 무성은 그런 곳이 아니야. 바짝 엎드려야 한다고.”“어쨌거나 당장 우리 아가씨를 풀어줘.”“그리고 다시 브라흐마 아샴을 살려내. 그러면 목숨만은 살려 두겠어.”“만약 거절한다면 그땐 나도 어쩔 수 없지. 미안하지만 당신을 죽일 수밖에. 너무 매정하다고 이 늙은이를 욕하진 말게.”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창문이 와장창 깨졌다.그리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그림자가 바닥에 떨어졌다.착지하는 순간 ‘빠지직'하고 바닥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이 소리에 사람들은 겁에 질려 절로 뒷걸음질쳤다.인도인들도 모두 아연실색했다.그들은 항상 인도인의 무공이 천하무적이라고 자신했었는데 대하에 이런 수준의 고수가 있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이런 고수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있는 인물이지 현실에서 실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하지만 정말로 그런 존재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하현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이 사람을 쳐다보았다.쉰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그의 얼굴은 창백하기 그지없었고 눈동자는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시달렸는지 온통 새빨갰다.흉측한 몰골이 언제라도 사람들을 찢어버릴 것 같은 표정과 더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다.“젊은이, 난 인내심이 그리 깊지 못해. 딱 3초 줄 테니 아가씨를 놓아줘!”살인마는 흉악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은 상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미안하지만 당신은 그럴 자격이 못 되는 것 같은데.”“죽고 싶어?!”“이 개자식! 세상 물정도 모르는 녀석이 어딜 감히 함부로 입을 놀려!”살인마는 안색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뭔가 말로 한 대 얻어맞은
하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뭐 그건 나중에 따져 보기로 하지.”살인마가 냉소적인 미소를 띠며 몸을 움직이려 하자 진주희가 뛰어들어 그에게 맞섰다.살인마는 그 이름답게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역시 고수는 역시였다.다른 건 몰라도 방금 덤벼든 인도인 클로에에 비하면 살인마는 훨씬 강한 상대였다.그의 붉은 손이 번쩍거릴 때마다 매서운 기운과 피비린내가 진동했다.피바람이 사람들을 휘몰아쳐 그대로 묻어버릴 것만 같았다.진주희도 못지않은 실력으로 당도를 뽑아 살인마와 맞섰다.하지만 그녀의 공세는 여전히 화려했다.사람들의 허점을 정확히 찾아내 쉴 틈 없이 밀어붙였다.이런 상황이 길어지자 치명적인 중상은 아니었지만 진주희도 조금 상처를 입었다.이 모습을 본 김규민 일행은 기세등등한 얼굴로 냉소를 금치 못했다.그들이 보기에 살인마가 진주희만 죽인다면 하현은 끝장날 것 같았다.진주희는 정신을 가다듬고 하현의 가르침을 떠올렸다.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의 손에 있는 당도의 속도에 집중했다.“촹촹촹!”칼의 그림자가 허공을 가르며 핏빛 손바닥이 번쩍거렸다.장내는 곧 매서운 기운으로 가득했다.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섰다.몇몇 패왕파 무리들은 다른 부상자들과 브라흐마 아샴을 조심스럽게 옮겼다.한편으로는 서로 싸울 공간을 넓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하현을 더 잘 포위하기 위해서였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하현의 손은 여전히 김규민을 잡고 있었다.그래서 패왕파 패거리들도 함부로 나서지는 못했다.혹시라도 김규민을 다치게 하면 그야말로 낭패였다.영지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마음속으로 수세를 점쳐 보았다.만약 진주희가 패하고 하현의 생사가 위험에 처한다면 법과 규칙을 무시해서라도 그녀는 사람을 보내서 손을 쓰게 할 것이다.다만 그녀는 어릴 적부터 법과 규칙의 중요성을 배워 왔기 때문에 주도적으로 규칙을 깨뜨리려니 마음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칼은 지독한 기운을 내뿜으며 핏빛에 물들고 있었다.일단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는 것이다!죽기 살기로 싸우던 두 사람이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 서 있었다.살인마의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그는 진주희가 이런 방법을 택할 줄은 몰랐다.진주희는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덤벼든 것이고 살인마는 살고자 했다.그는 김 씨 가문에 들어온 것이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였지 이렇게 도륙이 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간단히 말해서 진주희는 죽을 각오로 덤볐지만 살인마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순간 살인마의 몸이 허공에서 움츠러들었고 원래 기세등등했던 칼이 변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촹촹촹!”일련의 굉음이 울리고 불꽃이 튀었다.장내는 온통 칼날과 핏빛으로 뒤덮였다.곧이어 큰 소리가 나더니 진주희의 몸이 거꾸로 솟구쳤다.그녀가 착지하는 순간 창백한 기색을 드러내었고 입가에는 피가 흘러내렸다.반대편의 살인마는 팔뚝에 칼자국이 나 있었고 가슴에는 깊은 상처가 생겼다.그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역력했다.하마터면 진주희는 물론이고 자신도 함께 죽을 뻔했다.아직 젊은 나이인데도 이런 실력을 겸비하고 있다니 무서웠다.만약 이 실력이 계속 성장한다면 조만간 일대의 전신이 될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살인마의 눈에서는 어느새 증오와 질투의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평생 고생을 했지만 전신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그런데 왜 이 여자는 전신을 넘나드는 실력이 있을까?살인마는 강호의 규율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부하들에게 소리쳤다.“이봐. 이 여자를 총으로 쏴 죽여!”“이렇게까지 날뛰다니 도저히 봐줄 수가 없군.”이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패왕파 패거리들은 모두 눈을 가늘게 떴다.김규민이 상황을 알아차렸을 때 사람들은 하나같이 총부리를 돌려 진주희를 쏘려고 했다.그러나 그들이 움직이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몸을 움직여 살인마 앞에 우뚝 섰다.그런 다음 그는 한 발을 올려 살인마의 가슴팍을
김규민은 한참을 넋이 나간 채 멍하니 있다가 겨우 정신을 다잡았다.그녀는 이미 끝없는 분노와 통제 불능 상태에 빠져 침착함을 잃은 지 오래였다!“어서 해치워! 뭐 하는 거야?”“죽이라고! 어서!”그녀는 순간 자신도 끝장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차손녕은 죽었고 클레오도 죽었다.살인마도 죽었고 브라흐마 아샴도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그녀는 이 사람들의 죽음에 분명히 책임을 져야 했다.그렇지 못하면 아마도 앞으로 무성에서 완전히 사라질지도 모른다.지금 김규민에게 남은 선택지는 죽기 살기로 싸우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온몸이 분노에 휩싸였고 패왕파 패거리들은 일제히 총구를 돌려 하현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그러나 아무도 감히 방아쇠를 당기지는 못했다.그러자 김규민은 서슬 퍼런 얼굴로 계속해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그녀가 전화를 거는 사이 바깥에선 어느덧 천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다.김규민은 오늘 밤 하현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단단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하현을 죽이고 싶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와 손을 뻗어 김규민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지금이 어느 때인데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거야?”“신고하는 방법 몰라?”“아니면 신고할 마음이 없다는 거야? 내가 해 줘?”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만천우에게 전화를 걸었다.하현이 만천우에게 전화를 거는 것을 본 김규민은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러나 김규민은 하현이 만천우를 불러들일 수 있을 거라고는 믿지 않았다.그녀는 계속 군대를 부를 것이고 하현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하지만 30분도 되지 않아 완전 무장을 하고 전투태세를 갖춘 수사관들이 술집에 몰려들어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을 통제했다.수사관들을 본 영지루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팀을 이끄는 사람이 만천우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만 씨 가문은 무성에서 가장 강력한 가문은 아니었지만 가장 공평하고 공정한 가문으로 정평이 나 있다.수사관들은
만 씨 가문은 어르신부터 아래로는 두 형제까지 모두 관청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관청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는 것이다.이 사건의 피해자인 영 씨 가문이 가만히 관청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가문들이 뭐라고 왈가왈부할 수 있겠는가?정신이 번쩍 든 만천우는 얼른 취조실을 나섰다.두 시간 후 만천우는 다시 나타났고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듯 단호한 표정이었다.“하현, 일이 다 처리되었어요.”하현의 옆에 서서 만천우는 공손하게 사건의 결과를 보고했다.“모든 행위는 정당방위였음이 밝혀졌습니다!”“당신은 무죄로 풀려날 것이고 경찰서에서는 당신에게 훌륭한 시민상을 수여할 거라고 하는군요.”만천우의 말에 하현은 커피를 홀짝거리며 말했다.“그럼 다른 사람들은?”“영지루 일행은 피해자이니 당연히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겁니다.”“인도인 일행은 중죄를 저질렀지만 외교적 면책특권이 있기 때문에 잠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을 뿐 출국은 절대 불가능합니다.”“김규민은 악인을 도왔으니 잠시 억류된 상태로 수사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하구요.”“브라흐마 아샴은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긴 하지만 파란 알약을 과다 복용한 탓에 심근경색과 뇌졸중에 걸려 지금은 산송장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습니다.”“그래서 경찰에서는 당분간 다른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모든 절차는 법에 따라 이뤄질 거구요.”그동안 있었던 과정을 막힘없이 말하던 만천우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만족스럽지는 않겠지만 법과 규칙이 정한 테두리 안에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습니다.”“괜찮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만 씨 가문은 김 씨 가문, 용 씨 가문, 황금궁과 인도인의 세력 때문에 이 일을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으니까.”“이런 일이 생길 때면 만 씨 가문은 항상 외로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지.”“그러나 만 씨 가문에 대한 기관의 신뢰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