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내가 상석에 오르지 못하는 게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때 갑자기 기세등등한 모습을 한 여자가 다가와 눈을 아래로 깐 채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 이름이 하현 맞지?”“당신도 링에 올라 당주 자리를 쟁취하고 싶은 거지?”“부당주가 한 마디 전해달래.”“당신은 종인검의 상대가 못 돼!”“얼른 꺼져!”“종인검을 다시는 안 보는 게 당신 신상에 나아. 안 그러면 그가 당신을 죽이려 할 테니까.”이 말을 들은 용소설은 하현을 노려보며 말을 덧붙였다.“들었지? 부당주가 지금 기분이 좋아서 당신을 봐주려고 하는 것 같아. 그러니 더 이상 나도 따지지 않겠어!”“당장 여기서 꺼지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설마 죽고 싶은 건 아니지?”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부당주한테 말해. 상대를 너무 많이 자극하면 그것도 효과가 없다고.”“당신들은 설마 종인검 저 사람이 감히 날 칠 수 있다고 생각해? 그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종인검 정도로는 날 링 위로 끌어올리지 못할 텐데.”“당신들이 자꾸 나한테 저 링 위로 올라가라고 하니 난 오히려 집에 가서 발이나 닦고 자고 싶은데.”“당신들 연극 잘 봤으니 이제 좀 피곤해서 말이야. 먼저 가 볼 테니까 따로 배웅할 필요는 없어.”하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돌아섰다.용천오가 준비한 모든 계획은 오로지 하현을 자극해 링 위로 올리는 것이었다.그런 다음에는 종인검이 단칼에 해결할 것이다.하지만 이렇게 자극하고 압박하는데도 하현이 꿈쩍도 하지 않자 그들은 난감했다.자신들의 갖은 수법에도 하현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하현이 정말로 떠나려는 것을 보고 용소설의 표정이 갑자기 일그러졌다.만약 오늘 하현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녀 앞에 닥칠 결말도 그리 좋지 않을 것이다.용소설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하
”링에 올라올 줄 알았는데. 안 올라올 줄은 몰랐네.”“뭐? 당신 눈에는 내가 감히 못 올라갈 사람으로 보여?”하현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했다.종인검은 하현의 말을 듣고 차갑게 내뱉었다.“나도 당신에 관해선 좀 들었어. 듣자 하니 당신은 항성과 도성에서 남양의 전신 양제명을 등에 업고 우리 용오행 당주를 해친 후에 스스로 당당히 나서 당주를 폐위시켰다고 하던데.”“이번엔 무성에 와서 한여침과 당신 주위의 여자들을 등에 업고 위세를 떨치고 있군!”“대단해! 정말 대단해! 인정!”“꾀가 많고 재주도 좋아. 그리고 뻔뻔하기까지 해!”“이제는 날 감당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핑계를 대고 꽁무니를 빼려고 해!”“안타깝게도 말이야. 당신은 절대 미움을 사서는 안되는 사람한테 미움을 샀지 뭐야!”“용천오가 특별히 나에게 분부를 내렸지. 그래서 내가 당신을 친히 저세상으로 데려다주려고!”종인검은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비아냥거렸다.“당신 체면을 봐서 지금이라도 무릎을 꿇고 용문 집법당 영패를 내놓으면 살려주겠어!”“30초 정도 생각할 시간을 줄 테니 날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나야말로 당신이 그나마 인물인 것을 봐서 지금이라도 당신이 무릎을 꿇는다면 건드리지는 않을게.”“무릎을 꿇으라고? 내가?”종인검의 눈에 뾰족하게 날이 섰다.“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무릎을 꿇으라 마라야?!”“사람이 봐준다고 할 때 덥석 물 것이지 기어코 벌을 받겠다니 원! 진정한 고수 앞에서 그런 씨알도 안 먹힐 수법을 쓰다니! 정말 가소로워서!”말을 마치며 종인검은 손에 든 장검을 번쩍 들어 올렸다.칼날 위에 살벌한 기운이 하현을 향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곧이어 칼날은 잡아먹을 기세로 하현의 목을 향해 빠르게 떨어졌다.“퍽!”하현은 표정 하나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내디뎌 종인검 앞에 바짝 몸을 가까이 다가섰다.그리고 손을 들어 힘껏 손바닥을 휘둘렀
”자, 집법당 고수. 이제 말해 봐!”“이제 당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말해 보라고. 그래야 내가 당신을 살려 둘지 죽일지 결정할 거 아니야!”말을 마치며 하현은 손바닥을 한껏 들어 올렸다.순간 아까 보였던 종인검의 교만함과 오만방자함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다.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현은 손을 뒤로 젖히고 힘껏 종인검의 얼굴을 후려쳤다.종인검의 얼굴은 말도 못 할 만큼 부어올랐고 사람들은 그 모습에 더욱 아연실색하였다.한족에서 지켜보던 용소설조차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서 있었다.종인검이 얼마나 무서운 실력을 가진 자인가!방금 그는 단칼에 집법당 큰 형님을 처단했다.그가 휘두르는 검은 무적이라고 할 만했다.그런데 왜 하현 앞에서 그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인 것인가?용호태도 할 말을 잃긴 마찬가지였다.심지어 그의 입가에서는 끊임없이 경련이 일었다.순간 그는 하현에게 얻어맞은 그날 오후로 돌아간 것 같았다.종인검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르는 하현의 손바닥이 마치 자신을 향하는 것 마냥 소름 끼쳤다.“퍽!”결국 종인검의 얼굴에 하현의 손바닥이 날아들었고 그의 얼굴이 링의 모서리에 부딪혔다.한참을 몸부림치던 그가 피를 한 모금 내뿜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마지막 일격을 날리듯 종인검의 앞에서 손바닥을 치켜들었다.“풀썩!”종인검의 눈을 움찔거리더니 망설임 없이 무릎을 풀썩 꿇었다.그는 정말로 무서웠던 것이다.이 장면을 본 사람들의 얼굴은 그야말로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었다.용호태와 용소설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들이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한 음모가 하현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뜻밖에도 종인검마저 무릎을 꿇고 말았다.지금 용호태는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이를 용천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릿속이 까맣게 타들어갔기 때문이다.하지만 하현은 그에게 피를 토할 만한 시간도 주지 않았다.하현은 품에서 영패를 꺼
뒷짐을 지고 냉랭한 표정으로 서 있는 하현.그 옆에 무릎을 꿇고 있는 종인검이 있었다.사방에선 하현을 연호하는 소리가 점점 기세를 더하며 커져 가고 있었다.모든 집법당 제자들은 어안이 벙벙해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졌다.종인검을 무릎 꿇리는 무적의 실력에다 용문 집법당의 영패까지 손에 쥐고 나타났으니 전설 속에 떠도는 영웅이 환생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눈앞에는 이미 당주가 결정된 것이었다.용소설은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입이 열 개라고 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그녀 뒤에서 방금까지 하현에게 비아냥거리며 냉소를 날리던 일행들은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고개를 떨구었다.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 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단발머리 여자는 마음속으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었다.하현에게 더 강하게 자신의 매력을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만약 그랬더라면 지금쯤 그녀도 그와 한 편이 이 영광의 주인공이 되어 있지 않았겠는가?“하현!”“당주 용오행을 해친 자가 바로 당신이야!”“그런 당신이 어떻게 우리 당주가 될 자격이 있어?!”용호태 주변 측근들이 하나같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그들은 오늘 그들이 어떤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어떻게 해서든 하현이 상석에 앉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맞아. 용오행이 내 손에 죽은 건 확실해.”하현이 냉랭한 표정으로 장내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그러나 용오행은 문규를 어겼어. 안팎의 적과 내통했으니 벌을 받는 건 당연한 거야!”“용문주는 집법당이 엉망진창이 되고 난장판이 된 것에 화가 나서 날 집법당에 보내 사태를 수습하게 하셨지.”“그래서 말인데,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자리에 오르려고.”“나의 원칙은 오직 하나야. 나를 따르는 자는 살고 나를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는 거.”“그래서 난 오늘 밤 용호태를 기다렸던 거야.”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두 손을 뒷짐지고 용호태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순간 용호태는 사색이 된 얼굴로 어쩔 수 없이 하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용호태... 당주께 인사 올립니다!”말을 하면서 그는 일행들에게 손짓을 했다.그의 측근들 중 마뜩잖아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지만 용호태의 행동을 보고 결국 무릎을 꿇었다.“당주, 인사 올립니다!”사방팔방에서 집법당 제자들이 겁에 질린 용호태를 보다가 종인검에게 서선을 돌린 다음 영패를 들고 있는 하현를 쳐다보았다.순간 집법당 제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당주, 인사 올립니다!”모든 상황이 평정되었다....이른바 비공개 집법당의 무예 대결을 정리한 후 하현은 모든 뒤처리를 진주희에게 맡겼다.한여침은 사람들을 데리고 집법당을 진압했다.능력 있는 진주희의 지휘 아래 그녀 측근이 몇 명 더 투입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법당 전체가 쉽게 진압되었다.도끼파 본거지에서 돌아온 후 하현은 최희정 모녀가 풀려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었다.그러고는 일이 이렇게 흘렀다.무성에 온 지 사흘도 안 되어서 하현은 이미 도끼파를 평정하였고 무성 황금 회사를 손에 넣은 뒤 지금은 용문 집법당 당주로서 강력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이로써 그는 충분한 역량을 손에 쥐게 된 셈이었다.이런 상황에서 무성 경찰서에 전화해 무고한 두 사람을 풀어주라고 요청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물론 내일까지 무성 경찰서에서 최희정 모녀를 풀어줄 아무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하현이 직접 무성 경찰서에 가면 되는 것이었다.도끼파 본거지에 돌아온 하현은 설유아가 일찌감치 쉬러 들어간 것을 확인했다.그는 설유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뒤 머리를 닦으며 문자메시지를 뒤적거렸다.이슬기, 하수진, 동리아 등은 하현이 무성에 간 후 일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새로 진전된 사항이 있는지 묻고 있었다.하현은 그들에게 일일이 메시지를 보낸 후에야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이튿날 아침, 핸드폰이 ‘띵'하고 울리는 소리에 하현은
전화를 끊은 뒤, 하현은 설유아를 데리고 우선 무성 경찰서로 향했다.설은아와 최희정이 감옥에서 나오는 수속을 밟는 것 외에도 하현은 자발적으로 어젯밤 일정에 대해 진술하고 충분한 증언을 제공했다.어젯밤 있었던 용호태와 성원효의 죽음은 결국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해 있음이 분명했다.상대가 직접 경찰서의 힘을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리 선수를 치는 것이 낫다고 하현은 생각했다.무성 경찰서 2인자 성경무는 의아해하는 얼굴을 했지만 하현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알리바이를 말하고 녹취록을 작성하겠다는데 거절할 명분이 있겠는가?성경무는 마지못해 기록을 할 수밖에 없었다.두 가지 일이 앞뒤로 동시에 진행되었고 모든 수속이 완료되자 이미 오후 3시가 되었다.하현이 경찰서 정문에 서서 설은아와 최희정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 진주희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났다.이들 중에는 변호사, 보좌관, 경호원 외에도 하현이 낯익은 용문 자제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마 진주희가 용문 집법당에서 선별한 것 같았다.진주희는 역시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었다.누구든 하루아침에 용문 집법당이라는 조직을 장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하지만 능력이 탁월한 진주희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공손하게 하현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자발적으로 경찰서에 와서 녹취록을 작성하셨다면서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사전에 대비를 해 놔야지.”진주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도 도로 위의 CCTV를 포함한 증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당신의 어젯밤 여정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어요. 용호태, 성원효의 죽음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충분해 보입니다.”“적어도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무성 경찰서와 관청에서도 이 일로 우리를 귀찮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단지...”“방금 소식이 하나 들어왔는데요. 성호남이 펄쩍펄쩍 뛴다는군요.”“당신이 성원효을 죽였다며 복수를 할 거라고
두 사람이 걸어 나오는 것을 본 하현은 잠시 성호남의 일은 제쳐두고 미소를 머금고 앞으로 나섰다.“은아, 이제 괜찮아. 다 끝났어.”설은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녀도 3일 만에 이렇게 무사히 나올 줄은 몰랐다.하현이 그녀의 일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힘을 낭비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하현, 고마워.”설은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녀는 하현의 뒤에 서 있는 진주희에게도 고마움을 미소로 전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분은...”“아, 소개할게. 이분은 바로 무성 황금 회사의 집행총재 진주희야...”하현이 웃으며 진주희를 소개했다.“참고로 현재 무성 황금 회사의 지분 70%를 그녀가 관리하고 있어.”“간단히 말해서 무성 황금 회사는 그녀가 말하는 대로 운영된다고 볼 수 있지.”하현이 진주희를 소개하는 말을 듣고 설은아는 깜짝 놀랐다.진주희가 그렇게 대단한 여장부일 줄은 몰랐다.그때 뒤에서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최희정이 갑자기 어리둥절해하더니 부리나케 앞으로 나와 하현의 멱살을 잡아채며 말했다.“하 씨! 이 자식아! 이 여자가 무성 황금 회사의 지분 70%를 관리하고 있다고?”“그럼 내 지분 40%는?”하현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잘 들어요. 지분 40%는 원래 당신 것이 아니에요.”“당신의 능력 어딜 봐서 40%의 지분을 인수할 사람으로 보여요? 그럴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세요?”“만약 이 40%의 지분이 진주희의 관리하에 다른 30%의 주식과 통합해서 지금처럼 무성 황금 회사를 관리하지 않았더라면 오늘 당신들은 이렇게 무탈하게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게다가 당신은 평생 무성 감옥에 갇힐 수도 있었다구요.”하현이 거두절미하고 핵심을 콕 찔렀다.최희정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하현이었다.만약 주식이 모두 자신의 소유라는 사실을 최희정에게 털어놓는다면 아마 최희정은 그 자리에서 바로 미쳐 날뛸 것이 분명했다.모두를 속 시끄럽게
”이 불효막심한 것아! 뭐라고?”언제나 얌전하게 고분고분하던 막내딸이 자신에게 반기를 들자 최희정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다시 한번 말해 봐!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최희정은 정작 설유아보다 하현이 더욱 원망스럽고 얄미웠다.설은아가 자신의 말을 듣지 못하게 옆에서 조종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막내딸까지 세뇌당해 자신한테 이렇게 말대꾸를 하다니!최희정과 설유아가 말다툼을 벌이자 설은아는 이마를 문지르며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엄마, 유아야. 이제 그만해. 그만 싸워!”“겨우 감옥에서 나왔는데 좀 조용히 있을 수 없어?”“그리고 엄마, 엄마는 정말 그 계약서대로 황금 광산의 지분 40%를 엄마가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엄마가 가진다고 해도 그걸 엄마가 어떻게 관리할 수 있어?”“무성에 이렇게 많은 귀족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황금 광산의 지분을 무성에 아무런 근거도 없는 여자가 그걸 제대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겠어?”“내가 보기엔 회사의 지분이 절대로 엄마한테 좋은 게 아니야. 결국 엄마의 명을 재촉하는 명부가 되었을 거야!”“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럼 죽으란 말이야?!”최희정은 비아냥거리며 말을 이었다.“좋아, 네 마음이 여전히 이 개자식한테 가 있다는 거지? 흥!”“누가 누굴 죽인다는 거야?”“내가 가져가지도 않았는데 내가 왜 죽어?”“보자 하니까 넌 역시 내가 죽길 바라는 거야. 내가 없으면 넌 아무 부끄러움도 모르고 이놈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말도 안 되는 소리!”“내가 오늘 바닥에 머리를 쥐어박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허락할 수 없어!”말을 하면서 최희정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활개를 치고 걸어나갔다.최희정은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아무래도 뭔가 일을 낼 것 같아 보였다.바로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도요타 차량이 맹렬히 달려왔다.도요타 차량은 경찰서 정문 앞에 멈춰 서서 모든 사람들의 길을 막았다.이어 뒷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양복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