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어?”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협박했다면 어쩔 거야?”“감히 날 죽일 셈인가?”“잘 들어. 당신은 오늘 날 망쳐 놨어. 이건 이미 심각한 외교 사고야. 감히 날 죽인다면, 당신은...”야규 로쿠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이미 섬나라 염류 고수들을 한 사람씩 발로 걷어차 버렸다.그리고 손을 뻗어 야규 로쿠로의 머리를 잡고 단숨에 숨통을 끊어 놓았다!이놈이!말 한마디 거슬렀다고 내 숨통을?!야규 로쿠로는 충격과 분노로 눈조차 제대로 감을 수가 없었다.만약 하현이 이렇게 대단한 줄 알았더라면 그는 분명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함부로 하현 앞에 당당하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하백진 일행은 무의식적으로 달려들어 말리려고 했지만 하현의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전혀 반응할 수가 없었다.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은 이런 광경을 원하지 않았다.하현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야규 로쿠로의 목숨줄을 끓어 놓을 줄은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다.“이 개자식!”“죽여!”야규 로쿠로가 죽자 대여섯 명의 섬나라 염류 고수들이 포효하며 섬나라 장도를 들고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돌진했다.“퍽퍽퍽퍽!”하현은 닥치는 대로 손바닥을 날렸다.순간 대여섯 명의 섬나라 염류 고수들이 픽픽 쓰러졌다.땅에 부딪히며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던 그들은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 되었다.“섬나라 고수가 겨우 이 정도라니!”하현은 손을 툭툭 털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섬나라 사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하구천을 대신해서 또 나설 사람 없어?”하현의 냉랭한 목소리에 섬나라 고수들은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아무도 감히 먼저 나서며 달려들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그들은 하현을 얕잡아 보았지만 무카이 마오가 참수되고 야규 로쿠로가 살해된 지금 섬나라 사람들은 다시 한번 대하가 얼마나 강한지 깨달았다.
사람들은 일이 이렇게 흘러온 것임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하구천이 이렇게 빨리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섬나라 사람들의 공이 컸다.하구천이 상석에 오르면 분명 섬나라 사람들에게 은혜로 보답해야 할 것이다.하지만 자신을 이 자리에 추켜세워 준 섬나라 사람들을 하현의 손을 빌려 제거하려 했음이 하현의 입에서 고스란히 폭로되었다...장내는 말 그대로 쥐 죽은 듯 고요했다.하구천 같은 성격의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뻔뻔하게 시치미를 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무의식적으로 하구천을 바라보았고 그들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 차 올랐다.특히 섬나라 귀족 집안에서 온 몇몇 고수들은 그 분노가 하늘에 치솟을 듯했다.그들은 하구천의 야망이 얼마나 큰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그래서 오늘 같은 날 한편으로는 섬나라 사람들의 손을 빌려 상대를 누르고 우위를 점하려고 했고 또 한편으로 대하 사람의 손을 빌려 섬나라 사람들을 처리하여 앞으로 항성과 도성에서 그들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했던 것이다!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하구천은 정말 비상하게 머리를 굴렸다.그래서 지금 섬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하구천에 대한 분노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하백진 일행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안색이 일그러졌다.저 망할 놈의 하현을 잡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말 몇 마디로 하구천과 섬나라 사람들의 친밀한 관계에 파열음을 만들다니!앞으로 하구천과 섬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협력하겠지만 하현이 한 말 때문에 양측은 분명히 서로를 경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그 입 닥치지 못해!”하현의 말이 장내를 얼어붙게 만들자 줄곧 팔걸이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던 하구천이 냉랭한 얼굴로 소리쳤다.그는 몸을 움직여 전방으로 사정없이 속력을 내며 돌진했다.전신의 경지였다!항성과 도성에서는 줄곧 하구천이 전신의 경지에 오른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모두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저 소문으로만 여겼다.그러나 지금 하구천
”내가 애써 손을 쓰지 않았던 것은 단지 서로의 성이 하 씨이기도 해서 당신을 좀 더 오래 살게 하려고 그랬을 뿐이야.”“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뭐가 옳고 그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 이렇게 날뛰니 내가 당신을 배웅해 주지!”“솩!”하현은 바닥에 있던 섬나라 국검을 집어 들었다.그는 왼손으로 칼날을 살짝 만지며 섬나라 국검의 예리함을 느낀 뒤 냉랭하게 말했다.“하구천, 당신과 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깊은 관계라니 내가 섬나라 국검으로 당신을 보내줄게!”“날 보내주겠다고?”하구천은 고개를 들어 주위로 시선을 한 바퀴 돌렸다.분노와 공포로 얼굴이 하얗게 질린 노부인, 냉담한 얼굴로 일관하는 하문준, 그에 반해 다소 흥분된 듯한 당난영, 모두 하구천이 무슨 말을 할까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하구천은 이들을 한 바퀴 쭉 보고 나서야 매서운 눈초리로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오해하고 있는 일이 있어.”“난 비록 전신이라 불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내가 약을 먹고 전신의 힘을 발휘하는 거라고 생각해.”“하지만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어. 약을 먹든 어쨌든 난 전신이란 거야.”“전쟁터에서도 나 정도의 실력은 전신 중의 으뜸이야!”“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단한 능력이지!”“3분이 채 되기도 전에 하현 당신의 사지를 부러뜨릴 수 있어!”“그리고 3분만 더 줘. 그러면 날 방해하는 당신 무리들을 싹 정리하고 난 상위로 올라가는 거야!”“간단히 말해서 6분이면 난 진정으로 스스로 상석에 올라 항도 하 씨 가문의 문주가 될 수 있다는 거지!”“그리고 하현 당신은 죽은 개처럼 옆에서 엎드려 말하는 거야. 문주 어르신 안녕하십니까? 하고. 하하하!!”“엎드려 말하지 않으면 바로 죽여 버릴 테니까!”여기까지 말한 하구천은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말을 이었다.“자꾸 나와 섬나라 사람들을 이간질한다면 난 당신에게 10배, 100배 갚아줄 거야!”하구천이 큰소리로 이렇게 떠들어 대자
하구천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십여 미터 떨어진 하현을 매서운 눈으로 쳐다보았다.이럴 수가!?그는 하현에 대한 모든 자료를 낱낱이 조사했다고 자인했고 하현의 속내와 능력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방금 하구천은 자신의 거의 모든 에너지를 다 동원해 하현을 공격한 것이었다.그의 머릿속엔 이미 하현이 칼로 두 동강이 나 있었다.그리고 승리를 거머쥔 자의 위엄을 풍기며 항도 하 씨 가문 문주 자리에 스스로 늠름한 자태로 올라 있었다.그래야만 했다.그런데 하현 이놈이 자신과 거의 동급의 힘을 갖추었단 말인가?심지어 얼핏 보기엔 자신을 능가하는 것 같았다!설마 이놈이 계속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언제든 자신을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인가?이런 생각이 들자 하구천의 눈빛은 더욱 섬뜩해졌고 떠오르는 살의를 숨길 수가 없었다.그에게 있어 젊은 세대를 이끄는 전신은 오직 한 명이어야 했다.그건 바로 하구천!하현이 하구천을 능가할 수도 있다면 하구천은 바로 하현을 없애버려야만 했다.하구천에게 있어 어쨌든 세상에 그를 능가하는 자는 없어야 마땅했던 것이다.“나쁘지 않군. 하현, 꽤 괜찮아.”“내가 전에 본 당신 자료보다 지금이 훨씬 많이 좋아진 것 같군.”하구천은 손에 든 섬나라 장도를 뿌리치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언젠가 시간이 더 지나면 나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하지만 오늘은 이미 당신 결말이 정해져 있어!”말을 하면서 하구천은 천천히 목을 움직이며 온몸을 활짝 폈다.마치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려는 듯한 몸짓이었다.하현은 이를 보고 아무 흔들림 없는 눈으로 말했다.“그래?”“하구천, 당신 그렇게 자신 있어?”“나도 한마디 해도 될까? 난 방금 내 힘의 30%도 안 썼어. 그런데 내가 겁을 먹어야 하는 거야?”“30%라고?”하구천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하현, 방금 온 힘을 다해 나한테 덤벼든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어?”“허! 30%의 힘
”촹촹촹!”하현은 부러진 칼을 버리고 손을 움켜쥔 뒤 연달아 들어오는 하구천의 칼날을 튕겨냈다.아홉 번째 튕겨나간 순간 하구천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결국 그는 섬나라 장도를 손에서 놓치며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탕탕탕!”뒤로 물러나는 순간 하구천은 숨겨둔 총을 꺼내들었다.왼손에 쥔 총은 이미 안전장치가 풀려 있었고 하구천은 하현의 가슴과 배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솩솩!”하현은 뒤로 물러서 강제로 거리를 벌렸고 가까스로 몸을 돌려 하구천의 총알을 피했다.“하구천, 이게 당신이 원하는 방식이야?”하현은 하구천이 들고 있는 총을 보며 비아냥거렸다.“이것이 당신이 자랑스러워하는 그 전신의 자신감이란 말이야?”“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고 총까지 미리 준비해 언제라도 쏠 준비를 하고 있었군.”“계속 떠들어 보시지!”하구천은 매서운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생사가 걸린 싸움은 그딴 도리로 따지는 게 아니야. 이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야!”“이런 기본적인 것도 몰랐어?”“특히 전쟁터에 나가서 살 수만 있다면 당신이 귀신이든 사람이든 그게 뭐가 중요해?”“승자는 왕이 되고 패자는 한낱 도적이 되는 거야!”“역사는 언제나 승자가 쓴 것이거든!”“내가 이길 수만 있다면 총을 쏘든 활을 쏘든 칼을 휘두르든 그게 무슨 상관있어?”“모두들 하현이 주제넘게 까불다가 나 하구천에게 뺨을 맞아 죽었다는 것만 알게 될 거야!”하현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일리가 있는 말이군.”“하지만 안타깝게도 당신은 날 이길 수가 없어. 그러니 당신의 그릇된 도리도 아무 소용없어.”“내가 당신을 못 이긴다고? 그런 같잖은 농담이 어딨어?”하구천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내뱉었지만 하현을 두 번이나 제대로 죽이지 못해서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순간 하구천은 어디 숨겨 놓았던 것인지 도자기 병을 하나 꺼내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순간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전신단!?”섬나라 사람들은
하현의 속도가 너무너무 빨라서 장내의 모든 사람들은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이것은 모두의 상상을 가뿐히 초월한 것이었다.사람들의 눈에는 하구천의 칼이 매우 느리고 하현의 손바닥이 매우 빠르게 느껴졌다.하구천이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던 하백진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머릿속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항도 하 씨 가문 둘째 아들 하문산은 갑자기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섬뜩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졌고 뭐라고 목소리를 내기엔 이미 늦었다는 걸 직감했다.“퍽!”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현의 손바닥이 하구천의 얼굴을 덮어버렸다.하구천은 눈앞이 캄캄했고 몸을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땅바닥에 널브러졌다.무겁고 고통스러운 소리와 함께 방금까지 제멋대로 날뛰던 하구천은 지금 땅바닥에 널브러진 채 낭패한 얼굴로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하현은 두 손을 뒷짐진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뺨 한 대였다!전신단을 삼키고 전투력이 폭발한 하구천을 하현이 손바닥 한 방으로 때려눕혔단 말인가?수많은 사람들은 등골이 오싹해지며 멍한 눈빛을 보였다.여자 귀빈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뺨을 때리며 뭔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수차례 확인하려고 애썼다.눈앞의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으억.”한참 만에 하구천은 드디어 얼굴을 매만지며 일어섰다.그는 이를 갈며 돌아서서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하현을 쳐다보았다.하구천의 눈에는 충격과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난 일대의 전신이야!”“전신단도 먹었어! 순식간에 30%가 넘는 전투력이 폭발했다구!”“그런데 어떻게 날 이렇게 쉽게 날릴 수가 있어?!”“믿을 수 없어!”“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오늘 밤 섬나라에서 배운 도법으로 단칼에 당신을 베어버리겠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구천은 양손에 들고 있던 칼을 앞세워 돌진했다.“퍽!”하현은 냉소를 지으며 몇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하구천의 뺨을 때렸다.전신이었던 하구천은 지금 입과 코에 피를 흘리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참고 있었다.그는 일대의 전신이었다!그는 문무를 겸비한 빼어난 인물이다!그는 상석에 오르기 위해 섬나라 10대 검객들에게 세심한 가르침을 받았다.하지만 모두 소용없었다!그는 지금 하현에게 된통 맞아서 물에 빠진 개처럼 반격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하현의 손바닥에 거의 죽은 목숨이 되다시피한 것이다!하현이 무학의 성지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묘수라도 써서 하구천을 제압했다면 인정하고도 남았다.하지만 뺨 몇 대에 하구천이 이 몰골이 되다니 하구천의 자존심이 말도 못 하게 구겨졌다!하현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하고 확실했다.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그의 세대 어떤 사람도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하구천이 아무리 최선을 다해 본다고 한들 절대 막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자, 자타공인 항도 하 씨 가문 소주였던 하구천.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어!”“당신 같은 실력, 당신 같은 심보, 당신 같은 수법!”“어딜 봐서 당신이 상석에 오를 만한 자격이 있어 보여?”하현은 또 손바닥을 들었다.순간 전신이자 하 소주인 하구천은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큰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그것도 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의 생신날!하현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하구천의 뺨을 후려갈겨 코와 입에서 피가 터지고 얼굴은 퉁퉁 붓게 만들었다.뺨 몇 대로 그야말로 사람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것이다.섬나라 사람들조차 이 상황을 어찌할 줄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이 하구천을 좋게 보고 지원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그것은 하구천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존이었기 때문이었다.그런데 왜 하현 앞에서 결국 죽은 개와 같은 몰골이 되었는가?“퍽!”결국 하현에게 뺨을 맞고 하구천은 다시 쓰러졌다.이번에 그는 땅바닥에서 잠시 몸부림치다가 핏덩이를 토해내었고 일어서려고
”그리고 지금 이 순간부터 항도 하 씨 가문 위아래를 대대적으로 청소할 것입니다!”“섬나라 사람들이 두 도시에서 활개치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할 거구요!”“그리고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은 내 말 잘 듣거라. 항도 하 씨 가문은 문주가 내린 명령에 따라야 해!”“오늘부터 항도 하 씨 가문은 모두 한 사람의 목소리만이 있을 뿐이야!”“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의 명령은 곧 항도 하 씨 가문 최고 권위를 나타낸다!”“오늘부터 난 더 이상 가문의 일에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야!”“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도 더 이상 일절 관여하지 않겠어!”“이후 누가 가문의 후계자가 되든 그것은 문주가 정할 일이야!”자신의 태도를 단도직입적으로 밝힌 후 노부인은 두말하지 않고 돌아섰다.돌아서던 노부인은 잠시 냉랭한 기색으로 하현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그대로 몸을 돌렸다.그녀의 눈빛에는 하현에 대한 지울 수 없는 거리낌과 의심, 그리고 약간의 존경심이 느껴졌다.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장손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사실 하구천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미 모든 결말은 예견되었다.노부인이 주도적으로 공식 석상에서 모든 권한을 문주에게 넘기고 문주가 항도 하 씨 가문을 장악하게 한 것은 이미 그녀가 일련의 일들에 대해 어느 정도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처럼 세력이 큰 집안이 어떤 일을 임하는 데 있어서 모든 것을 무 자르듯 분명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다들 물러설 곳이 없을 것이다.“노부인이 비록 횡포에 가까운 행동을 잠시 보이긴 했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데 선을 넘지는 않으시는군!”하문준이 하구봉을 데리고 하문성과 하문산을 동시에 처리하고 있는 동안 하현과 당난영, 하수진은 한쪽 구석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하구천이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어.”“노부인께서도 그를 억지로 보호할 생각은 없었던 거야.”“다만 이번 일을 거치면서 큰아주버님과 둘째 아주버님의 세력은 항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