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난영의 동작은 번개보다 빨랐다.그 누구도 감히 따라나서지 못할 속도였다.순간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하문산의 얼굴을 향해 그녀는 손안에 있던 검을 내리꽂았다.그때 깜짝 놀라며 노부인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무학에 심취해 있던 둘째 아들인 하문산이 당난영의 공격을 막지 못하다니!노부인은 망설일 겨를도 없이 얼른 앞으로 나가 손에 들고 있던 용머리 지팡이를 바로 앞으로 내던졌다.당난영은 갑작스럽게 날아든 지팡이를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노부인이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자신을 공격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나 당난영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를 삼키며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그리고 하문산의 얼굴을 향해 칼을 던졌다.당난영이 그래도 한 가문의 일원임을 생각해 짧은 칼을 썼지만 하문산은 그녀의 칼을 피할 수 없었다.하문산은 그대로 땅바닥에 ‘퍽'하고 쓰러졌다.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저절로 간담이 서늘해졌다.도저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두들 할 말을 잃었다.당난영은 하문산에게 일격을 가한 후 하현의 앞으로 돌아와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말했죠. 감히 내 사위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반드시 내 시체를 밟고 지나가야 할 거라고.”하문산은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고 온몸에서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이를 악물고 당난영을 노려보았다.평소 유약해 보이던 당난영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노부인의 안색도 어둡게 가라앉았다.“당난영, 넌 정말 무법천지구나!”“감히 시아주버님을 치다니!”“아랫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하극상을 벌일 수가 있느냐?”“반역자다!”“중벌을 받아 마땅한 반역죄를 범한 것이야!”“넷째도 널 지키지 못할 것이다!”당난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머니, 이건 무법천지가 아니라 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예요.”“사위가 얻어맞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순 없지 않습니까?”하현은 복잡한 심정으로 당난영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
하문준이 위험을 무릅쓰고 하현을 비호하는 것을 보자 하구천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험악해졌다.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쥐고 있던 술잔을 와그작 깨뜨렸다.주변에 있던 곽영준 등은 하구천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하문준이 하현의 편에 섰다는 건 소주의 자리에 변수가 생겼다는 뜻이다.결국 절체절명의 순간에 직면하게 된 것이 틀림없었다.노부인은 매서운 눈빛으로 하문준을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래, 좋아. 네가 이렇게 그를 지키고 싶다니 그렇게 하려무나!”“문주의 체면을 봐서 네 귀빈을 저 자리에 있게는 하겠다!”“하지만 난 네가 과거의 약속을 그대로 이행하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을 위해 정당한 일을 하길 바란다!”“아까도 말했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야. 그러니 난 구천이를 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로 정해야겠어!”“이 일은 그때 너도 받아들인 일이었어.”“그렇다면 항도 하 씨 가문의 미래를 위해서든 항성과 도성의 안정을 위해서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결정하자꾸나!”“내 뜻이 아니라 네 아버지의 뜻이라는 걸 잊지 않았을 거야!”노부인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 넌 구천이를 상석에 앉히고 대국을 주관하게 해야 해!”아버지의 뜻?!하문준의 아버지?전설의 옛 문주 하천성?!순간 연회장은 모두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하천성이 어떤 사람이던가?직접 항도 하 씨 가문을 재건한 거물이었다!게다가 그는 오랫동안 전쟁의 신이었고 줄곧 관문을 닫아걸고 천인합일의 이치에 닿으려고 수양한 사람이었다.하구천이 상석에 앉는 일이 하천성의 뜻이었다고?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하문준에게 쏠렸다.하문준이 노부인의 뜻을 거역할 수는 있어도 감히 옛 문주의 말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옛 문주의 명망과 역량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말 한마디면 하문준의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순간적으로 입을 꾹 다물어 버린 하문준을 바라
”넷째 오빠, 정말 우리 가문 전체를 싸움판으로 만들 작정이야?”“아니면 오빠는 처음부터 구천이한테 자리를 내줄 마음이 없었던 거야?”“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제대로 말하지 않고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설마 정말 하현을 내세워 우리 가문의 지금 상황을 진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현재로서 하현을 소주에 앉히는 일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문주로서 오빠의 처사는 온당치 않아!”“앞으로 항도 하 씨 가문은 오늘부로 뿔뿔이 흩어질지도 몰라.”“넷째 오빠, 정말 가문의 역적이 될 생각이야?”하백진은 말을 마치며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는 하현을 정말로 눈엣가시처럼 여겼다.갑자기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고 딱 그 꼴이었다.하현만 없었다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자신들에게 끼친 피해가 여간 적지 않았다!무슨 짓을 해서라도 진작에 하현을 죽이지 못한 게 후회스러울 따름이었다. 하현을 죽였으면 오늘날 이런 꼴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무슨 말을 해도 늦었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자신의 형들과 여동생의 말에 하문준은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 마음에 씻지 못할 생채기를 내며 지나갔다.하문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자코 있자 당난영이 갑자기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앞으로 나섰다.“여러분, 오늘은 어머님의 기쁜 날입니다.”“어쨌든 축하부터 하죠.”“소주를 정하는 일은 나중에 다시 얘기하는 걸로 해요. 어떻습니까?”“당난영, 당신이 뭘 알아요?”하백진은 차가운 눈빛으로 당난영을 쳐다보았다.“기왕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니 오늘 속전속결로 처리해야 나중에 일이 커지지 않고 찜찜한 마음도 없죠.”“그러니까 넷째 오빠는 오늘 이 자리에서 도망갈 수 없어요!”“도대체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확실하게 우리한테 설명해야 해요!”“넷째 오빠, 대세에 순응해서 하구천을 등극시킬 거야?”“아니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고집을 부려 하현을 상석에
텐푸 쥬시로라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눈꼬리를 움찔거리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많은 사람들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칼날을 매단 것처럼 날카로워졌다.특히 하문성과 하문산 두 사람의 낯빛이 극도로 험악해졌다.텐푸 쥬시로라는 이름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듯했다.그들 사이에는 절대로 발설해서는 안 될 일이 있었던 것이다.특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입 밖으로 내어서는 안 되었다.그렇지 않으면 상상할 수 없는 재앙과 맞닥뜨려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하현, 또 뭘 하려고 그러는 거야?”노부인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왠지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자네는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사람이 아닌데 왜 자꾸 끼어들어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정말 내가 자네를 죽이지 못할 성싶은가?”“게다가 자네는 지금 우리 넷째의 데릴사위도 아닐 뿐더러 데릴사위라고 해도 난 절대 자넬 상석에 앉힐 마음이 없어!”“외부인이 어떻게 항도 하 씨 가문 소주가 될 수 있겠어?”하문준은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머니, 하현은 소주 자리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요.”“제가 미리 말씀을 못 드렸군요!”“난 그가 그 자리에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에게 문주 자리를 물려주고 싶은 거고요.”이 말을 들은 노부인은 흠칫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노부인은 하문준이 하현에게 자리를 물려줄지언정 하구천에게는 절대로 물려주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을 줄은 몰랐다.그녀 앞에서는 착하고 고분고분한 하구천이 도대체 하문준한테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 나온단 말인가?정신을 가다듬은 노부인은 냉정을 되찾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넷째야, 너희들이 왜 섬나라 사람을 데리고 나오는지 모르지만 다른 일로 얼버무리려 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이 일로 네 아버지를 불러낸다고 해도 날 원망하지 말거라!”“그리고 잊지 마라!”“네 아버지가 진정한 태상황이라
”제가 지금부터 할 얘기는 원래 생신날과 같은 경사스러운 날에는 어울리지 않는 얘깁니다.”“그런데 이 일에 관련된 사항들이 너무 어마어마합니다.”“그렇기 때문에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십 년 전 항도 하 씨 가문 문주인 하문준의 친아들이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마리아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바로 그날, 아기의 안전을 위한다며 당난영 부인과 아이는 따로따로 다른 차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돌이키지 못할 사건이 일어났죠!”“하문주의 친아들이 교통사고로 죽게 된 것입니다!”“이 일은 문주와 문주 부인에게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으로 남았습니다!”“두 분은 십 년 동안 이 사건을 조사했습니다!”“그런데 며칠 전 문주께서 드디어 이 사건의 주범을 확인했습니다!”“섬나라 신당류 검객, 텐푸 쥬시로!”“그리고 그에게는 또 다른 정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킬로 조직 ‘비명횡사'의 우두머리 ‘이의평'입니다!”“저와 문주는 천 리를 건너 섬나라를 습격해 그를 잡은 뒤 마침내 그로부터 자백을 받았습니다.”“이 사건 뒤에 숨겨진 진실, 그리고 섬나라 사람들의 소름 끼치는 음모를 알게 되었지요!”하현은 손뼉을 쳤다.“저는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에게 묻고 싶습니다. 섬나라 사람들의 음모가 우리 대하에서 실현되도록 놔둘 수 있겠습니까?”“십 년 전 사건의 진실을 정말 알아냈어?”“정말로 섬나라까지 가서 텐푸 쥬시로를 데려왔다고?”“소문으로만 듣던 그 조직이 십 년 전에 자취를 감췄는데 어떻게 그 우두머리를 잡고 신원까지 확인했다는 거야?”“신당류 검객이 킬러 조직이었다고? 분명 그 일에는 엄청난 배후가 있을 거야!”많은 하객들은 모두 저마다 의견을 쏟아내었다.동시에 오늘 노부인의 생일날 또 다른 국면이 펼쳐질 것임을 직감했다.모두들 흥분과 호기심, 기대로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다만 그중에 유난히 얼굴색이 어두워진 사람들이 있었다.특히 텐푸 쥬시로가 자백했다는 말을 듣자 그들의 눈동
하구천에게 더없이 중요한 순간에 하현이 등장한 것을 두고 노부인의 마음속엔 원망과 차디찬 분노로 가득 차올랐다.하문준을 억누를 방법이 있었더라면 하현이 이렇게 날뛰는 걸 가만히 두고 보진 않았을 것이다.하문준 역시 이 점을 간파한 것이 분명하다.그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어머니, 그리고 항도 하 씨 고위층 여러분들. 결국 일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어쨌건 결말이 나야겠죠?”“게다가 십 년 전 사건에 대해 다들 궁금한 것이 많으시잖아요?”“오늘 우리는 모든 것을 공개할 것입니다!”“한 번에 확실하게!”“모든 것을 다 말입니다!”하문준의 말을 들은 당난영은 심호흡을 하고 억지로 냉정을 되찾으려고 애쓰며 하현을 바라보았다.“하현, 당신이 무엇을 하든 난 끝까지 당신을 지지할 거야.”하현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하수진과 눈빛을 교환했다.그리고 나서 그는 텐푸 쥬시로 앞에 가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당신이 잘 협조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솔직하게 말해 준다면.”“약속대로 당신은 여기서 떠날 수 있어!”“하현, 걱정하지 마. 나한테 이런 기회를 주었으니 당연히 모든 것을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에게 알릴 책임이 있어.”텐푸 쥬시로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하현이 살길을 마련해 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는 비록 다량의 안정제를 투여받았지만 전반적으로 꽤나 활기가 있어 보였다.텐푸 쥬시로는 일어서서 시선을 한 바퀴 돌린 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오늘 정말 많이들 모이셨군요.”“얼굴이 낯익은 사람도 많으시고.”“거물급 인사도 적지 않군요.”“그런데 무슨 그런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하십니까?”줄곧 침착하게 냉정을 유지하던 하구천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텐푸 쥬시로를 가리켰다.“당신은 섬나라 검객 텐푸 쥬시로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알아보는 건 두말할 나위 없지.”“하지만 섬나라 사람들에 대한 신뢰는 글쎄... 썩 좋다고 보긴 어렵지.”“길가의
하구천도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텐푸 뉴시로가 자신의 신분을 증명하지 못하면 그가 한 말은 아무 가치도 없어.”하현의 표정이 냉랭해졌다.그때 텐푸 쥬시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하구천, 내 신분을 증명하는 건 간단해.”“내가 조직의 수장이라는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여기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나대신 내 신분을 증명해 줄 수 있어.”그러자 텐푸 쥬시로의 시선이 하백진의 얼굴에 떨어지더니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다.“항도 하 씨 가문 고명딸, 하백진. 용전 부인 맞지?”하백진이 순간 안색이 살짝 일그러졌고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대하에는 4대 주춧돌인 용문, 용옥, 용위, 용전이 있지...”“대하 건국 초기부터 용전의 존재는 대외에서 일어나는 모든 전쟁으로부터 대하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어.”“용전의 권세는 다른 4대 초석 중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어.”“그래서 상부는 용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통제 불능의 상황을 억제하기 위해 한 사람을 용전 전주가 되도록 했지.”“그야말로 중재자를 둔 거야.”“그러나 용전 전주가 된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 남자 중의 남자였어!”“그는 항도 하 씨 가문의 딸과 결혼했고 집안을 용전 천하로 만들기 위해 하 씨 가문을 흔들기 시작했지.”“그러나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어. 그의 아내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거야.”“그러던 어느 날 수많은 사람들의 보호를 받던 용전 전주가 뜻밖에 차에 치여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어!”“죽지는 않았지만 모든 능력을 잃게 되었지!”“그때 일은 내가 수행한 것이 아니지만 난 그 내용을 알고 있었어.”이 말을 듣고 모두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장내는 순식간에 싸늘한 분위기가 감지되었다.그 당시 용전 전주가 당한 사고가 뜻밖에도 ‘비명횡사'와 관련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물론 우리가 이 임무를 맡았을 때 교통사고를 내는 것이
하문준의 명령에 수십 명의 문주 호위대들이 나와 용전 항도 정예들 옆에 섰다.하문준은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텐푸 쥬시로가 모든 진실을 밝히도록 하고야 말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 같았다.텐푸 쥬시로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문성 앞에 다가와 말했다.“어르신, 이제 우리 당신 얘기 좀 합시다.”“십삼 년 전, 당신은 항도 하 씨 가문의 자금을 가지고 흑주의 석유 광산에 투자하러 갔다가 미국의 경쟁자들을 만났죠.”“그때 항도 하 씨 가문의 자금은 미국의 상대가 되지 못했죠.”“당신은 그때 엄청난 공을 세워 항도 하 씨 가문 내부에서 빨리 자리잡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어요.”“그래서 궁리 끝에 우리 ‘비명횡사'를 불렀어요!”“그때 일은 미제 사건으로 남았고 왜 미국 재벌들이 아무 생각도 없이 바다에 뛰어들게 되었는지 아무도 몰랐죠.”“당신은 그 기회를 잡아 석유 광산을 손에 넣고 항도 재단을 설립했죠! 정말 놀라워요!”“역시 세상 사람들 말이 하나도 틀리지가 않아요. 모든 부자들은 마음이 시커멓다니까.”“닥쳐!”하문성의 안색이 순간 험악해졌다.“텐푸 쥬시로! 네가 일대의 검객이고 넷째가 지금 널 비호한다고 함부로 지껄이지 마!”“증거도 없는 헛소리 자꾸 지껄이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그러나 하문성은 아무리 침착하려고 애를 써도 그의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은 숨길 수가 없었다.“그리고 다음은 당신! 하문산!”텐푸 쥬시로는 매서운 눈빛으로 하문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듣자 하니 당신은 영춘뿐만 아니라 팔극권도 수련했다더군요.”“무학의 성지에서 공공연한 비밀 아닌가요?”“그런데 당초 마침 무학의 성지 제자들 몇 명이 나와 강호를 누비다가...”텐푸 쥬시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문산은 책상을 탁 치며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텐푸 쥬시로 이놈!”“우리는 네놈이 ‘비명횡사'의 수장 이의평이라는 걸 알고 있어!”“그러니 지금 당장 십 년 전 그 일에 대해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
”해결되었으면 됐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세상 일에 대해 그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어떤 일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사소한 일들은 소꿉놀이 같아서 정말로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다른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간민효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 홀가분한 모습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우리 금장 간 씨 가문의 다른 하찮은 일보다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어차피 우린 연대한 사이잖아?”“참, 당신의 풍수관이 생기면 내가 첫 고객이 되고 싶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장난치지 마.”“내가 뭘 얼마나 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간민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연, 인연이야...”“이 일은 당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 같은데...”하현은 간민효의 말을 듣고 눈꺼풀을 펄쩍거리며 얼굴빛이 붉어졌다.“자, 장난치지 말고 당신이 선택한 곳부터 둘러보자고.”하현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이 모습을 본 간민효는 빙긋 웃으며 하현의 팔짱을 끼고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차에 타고 있던 나박하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이런 상황을 보고 당연히 설은아에게 바로 고자질해야 했다.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하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주인 격인 그를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나박하가 고민에 빠진 그 시각 하현 일행은 이미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집복당 안 넓은 부지 앞쪽에는 큰 홀이 있고 한쪽에는 서재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각종 풍수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뒤편에는 사랑채 몇 개와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다만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내부는 꽤나 낡아 보였고 바닥의 청석도 파손된 곳이 적지 않았다.종이로 칠한 창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서 괴기스러운 영화를 찍거나 스릴러물을 촬영하기 딱이라는 생각마저
설은아의 말을 들은 하현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탁우가 감쪽같은 위장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설은아는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뭐, 어쨌든 우린 재혼할 거니까.”“남자들을 많이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왜? 다른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내가 홀딱 빠져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설은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은 간민효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난 다른 남자랑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일이 이렇게 흘러 버렸는데 자신이 설명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설은아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자자, 질투하지 마.”“내가 한 번 본 남자한테 사랑에 빠질 여자로 보여?”“김탁우는 오늘 밤 나한테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온 것뿐이라고.”“그러니 당신도 다른 여자들과는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았다가 내가 알기라도 하면 당신 곤란해질 거야.”“어쨌든 우린 아직 이혼한 사이니까!”말을 마친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로 주먹을 한 방 날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하현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지금 누구도 두려운 사람이 없었다.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한 여자 앞에서는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게다가 이 여자는 지금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다른 여자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경고장까지 날리며 그를 압박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하현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어나서 설은아와 얘기라도 좀 나눠 보려고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어제 일은 다 잊은 듯 씨익 웃으며 일이 있다고 말한 뒤 홀연히 집을 나섰
소란은 여기서 끝났다.하현은 임수범과 이산들을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해야 할 일은 두 사람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었다.자신의 앞에 놓인 곤궁한 처지를 헤치고 운명을 바꿔 나가는 일은 오로지 나박하가 감당할 몫이었다.소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던 왕인걸은 등줄기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현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 순간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다.소란이 끝난 후 왕인걸은 임수범 일행을 내쫓고 하현과 나박하의 테이블에 반찬 몇 가지를 더 제공해 준 뒤 나박하의 멤버십 기간을 1년 연장해 주었다.오늘 밤 그는 완벽하게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왕인걸의 어깨를 툭 건드릴 뿐이었다.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왕인걸의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식사가 끝나자 하현은 나박하에게 자신을 설 씨 집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적당한 가게를 찾는 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설은아는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설은아의 성격상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다지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마세라티 한 대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덩치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설은아의 차 문을 멋스럽게 열어주며 에스코트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설은아와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걸었다.하현의 시선을 눈치챈 듯 남자는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돌아섰다.하현의 눈동자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항성에서 원가령과 약혼을 하려다가 자신에게 뺨을 얻어맞은 김탁우였던 것이다!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도 성형을 한 뒤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
넋이 나간 임수범은 초점을 잃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하현은 천천히 일어서서 그의 앞으로 걸어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쳤다.“임수범, 방금까지 큰소리 뻥뻥 치지 않았어?”“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찍 소리도 하지 않는 거야?”“내가 방금 힘 좀 써 봤는데, 어때? 이젠 승복할 수 있겠어?”이산들 일행은 이 말을 듣고 아연실색하고 말았다.하현이 감히 임수범을 이렇게 모욕할 줄은 몰랐다.게다가 임수범은 굴욕적인 하현의 말을 듣고도 입이 붙은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산들은 밀려오는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말했다.“임수범, 이 개자식이 감히 당신 얼굴을 건드리잖아?! 뭐 하는 거야? 어서 죽여 버리지 않고!”“퍽!”임수범은 손바닥을 뒤로 힘껏 젖혔다가 이산들의 얼굴에 내동댕이치며 버럭 소리쳤다.“입 닥쳐! 죽여 버리기 전에!”“보고도 몰라? 당신 병신이야?”“뭐? 감히 하현한테 대들라고?”“감히 하현을 상대하라고 날 부추기는 거야?”“죽고 싶어?”말을 하면서 그는 발을 들어 이산들을 향해 힘껏 발길질을 했다.이 여자만 아니었다면 그가 이런 비참한 몰골로 하현에게 미움을 살 일이 있었겠는가?지금 상황 판단 잘 하지 않으면 그는 죽어서도 묻힐 곳이 없는 신세가 되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하현?이산들의 얼굴은 벌겋게 부어올랐고 동시에 그녀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이 도대체 어떤 신분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어쨌든 임수범이 덜덜 떨 정도로 하현이 높은 신분이라면 나박하도 덩달아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이니 머지않아 출세의 길이 열릴 것이다!이런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치자 순간 그녀의 마음에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하현, 오늘 밤은 내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내가 눈이 멀었어요.”“이렇게라도 이제 서로 알게 되었으니 부디 나한테 사과할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말을 마치며 임수범은 미소를 머
이산들은 하현에게 코웃음을 치면서 얇은 입술을 치켜들어 연신 냉소를 흘렸다.“당신도 나박하랑 똑같아. 아무것도 없으면서 허세나 잔뜩 부리는 쓰레기들이야!”임수범도 비아냥거리는 얼굴로 말을 보태었다.“야, 당신이 정말로 나와 금정개발의 협력을 중단시킬 수 있다면 내가 당장이라도 여기서 당신한테 무릎 꿇고 아버지라 부를게!”주변에 있던 예쁘장한 여자들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키득키득 웃으며 임수범의 말에 동조했다.하현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는 경멸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들은 하현이 허무맹랑한 말로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했다.하현은 임수범을 힐끔 쳐다보며 냉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어디 내 아들이 되어 볼 테야?”“흥! 가당치도 않지!”“뭐? 너...”하현에게 잔뜩 화가 난 임수범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이산들의 핸드폰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그녀는 곁눈으로 슬쩍 핸드폰을 본 뒤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그러자 그녀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기 시작했고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게 핏기를 잃어갔다.화를 내던 임수범은 당혹스러워하는 이산들의 표정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이산들, 무슨 일이야? 왜? 무슨 일이냐고?”이산들은 얼이 나간 모습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금정개발 고위층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당신과의 계약에 문제가 있어서 날 해고하기로 결정했대...”“그리고 경찰서 사람들이 내가 구매한 건에 대해 전면적으로 개입하겠다고 했대!”“뭐라도 하나 꼬투리가 잡히면 난 끝장이야!”“임수범, 나 좀 도와줘! 제발 나 좀 도와줘!”“난 당신 여자잖아!”이 말을 들은 여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도무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그녀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현에게로 넘어갔다.이산들도 그제야 이 모든 게 하현이 한 짓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이를 갈며 그를 노려보았다.“개자식! 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하현은 임수범 일행들이 호들갑을 떨든 뭘 하든 내버려두며 눈길도 주지 않았다.그저 술잔을 빙글빙글 흔들며 몇 모금 음미하고만 있었다.나박하는 하현이 겁을 먹은 줄 알고 얼른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임수범, 오해야. 이 모든 게 다 오해라고!”“내가 당신을 오해한 거라고?”임수범은 손을 뻗어 나박하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거리낌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당신이 뭔데?”“무슨 자격으로 내 앞에서 오해네 어쩌네 그러는 거야?”말을 마치며 임수범의 시선이 하현에게로 향했다.임수범은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난 마음씨가 착해서 함부로 손을 쓰지 않아! 내 사람들이 손을 쓰게 하지도 않아!”“어쨌든 때리고 죽이는 일은 우리 같은 고귀한 도련님한테는 안 어울리는 일이거든. 너무 저급하잖아!”“너무 무능한 짓거리고!”“하지만 당신 가족이 직접 나서서 당신의 이 보잘것없는 놈을 죽이게 만들 거야!”“그리고 난 뒤 난 그들에게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예쁜 마누라를 얻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만약 그렇지 않고 예쁜 마누라를 얻는다면 결국 나 좋은 일만 되는 거지!”험악한 말을 내뱉은 임수범은 오만하게 웃었다.“앉아요.”하현은 저자세를 보인 나박하를 끌어당겼고 무덤덤한 얼굴로 임수범을 쳐다보았다.“임수범?”“건축자재업을 한다지?”“맞아. 내가 바로 임수범이야!”“내가 뭘 하는지는 왜 말하는 건데? 용서라도 빌려고? 아니면 나한테 덤비겠다는 거야?”“그런데 당신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 난 당신을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감히 나한테 덤벼들다니!”“내가 매달 몇 번씩이나 버르장머리 없는 사람들을 짓밟긴 하지만 당신처럼 이렇게 당돌한 사람은 처음이야.”“자자, 그래 내 이름 내 배경, 내 회사 다 알려 줄게. 어디 능력 있으면 마음대로 날 건드려 봐!”잠시 후 임수범은 명함 한 장을 꺼내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이산들은 이 광경을
왕인걸의 안내를 따라 하현과 나박하는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나박하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하현은 룸에 들어가는 것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창가 자리에 앉았다.그리고 그는 세트 메뉴를 주문하고 레드 와인 한 병을 개봉하여 마시기 시작했다.“하현, 우리 여기서 나가는 게 어때요?”나박하가 망설이는 얼굴로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내가 당신 실력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비록 이산들을 난처하게 만들어 나박하의 원한이 조금은 풀리긴 했지만 그녀 뒤에 있는 임수범을 떠올리자 그는 머리가 지끈거렸다.지금의 그는 누굴 건드리고 말고 할 위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무슨 말이에요?”하현은 똑바로 앉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당신은 이제 나의 형제이자 친구입니다.”“당신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나한테도 미움을 산 것입니다.”“당신 체면이 서지 않으면 내 체면도 서지 않는 거죠!”“지금은 떨어진 당신의 자존심을 조금 들쳐 세웠을 뿐인데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예요?”나박하는 옅은 미소를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이 날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난 정말로 당신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요!”“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내가 당신을 형제라고 여긴 이상 다른 건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하현은 나박하의 어깨를 툭툭 치며 어서 식사를 계속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당신한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금정 바닥에서 내가 당신을 보호하는 한, 천왕 노자가 와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어요.”“날 믿어 보세요!”“퍽!”하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식당 문이 벌컥 하고 열렸다.누군가가 발로 문을 걷어차며 기세등등하게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선두에 선 남자는 아르마니 정장 차림이었고 걸리는 건 다 부숴버릴 것처럼 잔뜩 화가 난 표정이었다.이산들의 인솔 하에 그는 나박하와 하현이 있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