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밖으로 나가자 하현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전화가 빠르게 연결되었다. 맞은편 슬기의 목소리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 제가 아까 지하 주차장에 있어서 핸드폰에 신호가 안 잡혔어요.”"괜찮아요, 슬기 씨가 날 좀 데리러 와줘요." 하현은 무심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늘 저녁에는 갈 곳이 없으니 회사에 가서 좀 쉬는 편이 나았다."네? 네, 대표님 어디 계세요,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슬기는 명백히도 어리둥절해 했지만 이내 재빨리 입을 열었다.하현은 주소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 10여 분 후, 붉은 페라리 한 대가 하현 옆에 멈춰서고 창문이 열렸다. 슬기는 언제 가죽 미니스커트로 갈아입었는지, 하현이 약간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그녀는 말했다. "대표님, 막 드라이브하러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전화주셨네요. 옷을 갈아입을 겨를이 없었습니다.""괜찮아요, 개인 시간을 방해한 건 아니죠?" 하현이 물었다."아닙니다, 아니에요. 24시간 대표님을 모시는 게 당연하죠." 슬기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조수석으로 걸어가 하현 대신 차 문을 열어주었다.하현은 이 광경을 보고 말문이 막혔다. 남들이 이 모습을 보면, 자신은 정말 여자에게 달라붙어 사는 것이 되었다.곧이어, 페라리는 빠르게 시동이 걸렸고 굉음을 내며 밖으로 나갔다.차 안에서 슬기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소 긴장한 채 말했다. “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하현은 회사에 곧장 가고 싶었지만, 문득 아까 전의 일이 생각나 말했다. "김 부장은 설 씨네에 물건을 돌려주러 갔다지만, 슬기 씨는 거기에 뭐 하러 간 거예요?"슬기는 민망해하며 대답했다. "대표님, 김 부장님은 자기 지위가 충분히 높지 않아서 물건을 돌려준 뒤, 설 씨들이 모른 척할까 봐 저에게 가서 증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김 부장님은 우리 회사 직원이고, 대표님의 대학 동기이니 거절하기 그랬습니다.""그런데 설민혁 씨는 정말 뻔뻔해요. 김 부장님에게 프러포즈하다니, 자기가 누
그녀의 뒤에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시훈도 앞으로 다가가면서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는 낯선 얼굴인데, 여기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아가씨, 어떻게 부를까요? 저희 서울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몇몇 있는데 꼭 조심해야 해요. 절대로 그들과 어울리지 말아요. 아주 역겨울 거예요. 혹시 필요하시면, 저희 쇼핑몰을 제가 한번 구경시켜드릴게요. 저는 노스랜드 레스토랑의 매니저입니다. 이 지역은 제가 다 꿰뚫고 있어요.”누가 봐도 시훈은 슬기에게 관심이 많았고, 이런 미녀가 페라리를 몰고 다니니 보기만 해도 위상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그녀의 환심을 사는데 성공한다면 부와 미인 모두 얻게 되는 게 아닌가.하현은 원래 그들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몹시 귀찮게 굴어서, 그는 참지 못하고 시훈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거기 박 씨, 그쪽 레스토랑 2인자는 자꾸 와서 잘난 척하지 말아 줄래? 내 사람들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야?"시훈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는데, 그는 하현이 감히 말대꾸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때, 시훈은 냉랭하게 말했다. "하현, 한낱 데릴사위인 당신이 내 앞에서 무슨 시늉을 하는 거야? 정말 여자에게 달라붙어 사는 게 대단할 줄 알아? 이 아리따운 여성분이 당신 실체를 꿰뚫어 보게 된다면, 당신은 빌붙을 곳도 없을 거야!"이 말을 하며 시훈은 슬기를 또 힐끗 쳐다보았고, 특히 ‘빌붙어 산다’ 라는 단어에 매우 힘을 주어 말했다.이 시각, 시훈은 이미 하현을 여자에게 달라붙어 사는 사람으로 단정지었다. 왜냐하면 이 페라리는 슬기의 것인 게 분명했다.하현과 슬기의 관계에 대해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하현이 싸늘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 시훈은 이어서 말했다. "하현, 당신은 정말 대단해! 설씨 집안에서 공짜로 3년을 얻어먹고, 여자에게 들러붙어 살기를 원하는 것도 그렇다 쳐. 그런데 지금 이런 부잣집 아가씨한테 빌붙다니, 당신 같은 사람은 정말 남자들에게 큰 망신을 줬어
슬기는 세리를 바라볼 기색 없이 시훈을 차갑게 쳐다보며 말했다. "이모가 좀 때려봤는데 왜? 레스토랑의 2인자 주제에 내 앞에서 잘난 척을 해? 화장실처럼 입도 더러운데 널 안 때리면 누굴 때리니?”이 순간, 슬기는 평소 남들 앞에서의 시크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고작 눈빛과 말 한 마디에 시훈은 기에 눌려 살짝 넋이 나갔다.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어안이 벙벙했다."와, 이 미인은 성질이 참 맵군요!""완전 우리 여신님이야. 이런 성격 너무 좋아!""이런 여자에게 보통 사람은 걸맞지 않아. 우리 같은 사람들은 상상밖에 못 해!"많은 사람들이 다시 조용히 의논하기 시작했지만, 큰 소리는 내지 못했다. 그들은 분명 슬기에게 들릴까 봐 무서워했던 것이다. 나중에 그 큰 손바닥이 힘차게 날라 오기라도 하면, 그들은 잘잘못을 따질 곳이 없었다.한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슬기는 뒤에 페라리에 기대어 있는 하현을 몰래 쳐다봤다. 하현이 입꼬리를 말아 올려 칭찬하는 미소를 짓자, 슬기는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을 업신여기는 놈, 내가 내 동창이랑 같이 쇼핑하러 나온 게 어때서? 나쁜 사람이 좋은 말을 내뱉을 리가 없지! 당신 헛소리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오늘 내가 당신 입을 찢어버릴 거야!" 슬기는 계속해서 욕을 했다.얼굴을 가린 시훈은 지금 이미 정신을 좀 차렸다. 그는 얼굴에 화끈거리는 아픔을 느꼈으며, 그의 눈은 불을 뿜을 뻔했다. 시훈은 하현과 슬기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좋아! 좋아! 좋아! 너희들 이 개 같은 한 쌍은 권력을 앞세워서 남을 괴롭히지? 내가 오늘 너희들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 같아? 두고 봐!"말을 끝마치자, 시훈은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전화번호 하나를 누르고, 아첨하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 대표님, 저희 쪽에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누가 제 앞에서 허세를 부리네요. 대표님께서 좀 도와주지 않으시겠어요? 네, 네!"전화를 끊자 시훈은 오만방자한 표정으로 하현을 가리키며 꾸짖었다.
"딸아, 노인네가 한 말 못 들었어? 평소 같았으면 천천히 놀아줬겠지만 오늘은 이 노인네가 기분이 안 좋아서 말이야..." 주안은 눈을 가늘게 뜨고 슬기의 화끈한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어렴풋이 바라보았다. 슬기의 얼굴은 낯익은 듯했지만, 그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뒤에 있던 시훈은 이 순간 온몸을 앞뒤로 흔들며 거리낌없이 웃었다.그의 웃음소리에, 주안은 실눈을 뜨고 멀지 않은 곳에서 차에 기대어 있는 희미한 실루엣을 바라보았다. 그는 사납게 웃으며 말했다. "시훈 씨, 저 녀석을 어떻게 할까요?"하현이 지금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시훈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시훈은 하현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우리는 문명인이니까 오늘은 좀 문명적이게, 저 놈이 무릎을 꿇고 바닥에 절을 하면서 할아버지라고 몇 번 부르게만 하면 돼요!""이 자식아, 들었어? 스스로 무릎을 꿇게 해, 그렇지 않으면…" 주안은 다치지 않은 손을 툭툭 털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 경비원들은 모두 허리춤에 차고 있었던 봉을 꺼냈고, 한 명 한 명씩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경비원들은 모두 주안이 키웠으며, 오후에 하현과 있었던 일로 인해 그는 특별히 새로운 인력으로 교체했다. 주안도 재수가 없었다. 이 신입들은 아예 하현을 모른다."그렇지 않으면, 내가 무례하다고 탓하지 말아요. 내가 지금 당신에게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순순히 무릎 꿇고 잘못을 인정하세요. 그런 다음 나한테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그러면 이곳을 무사히 떠날 수 있을 겁니다." 주안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따가 손맛이 좀 많이 매워도 나를 탓하지 마세요."이 순간, 시훈도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꺼내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잠시 후, 하현이 무릎을 꿇을 때 시훈은 그 장면을 녹화할 생각이었다.세리는 약간 미간을 찡그렸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를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녀는 줄곧 하현을 싫어했고, 일을 가로막을 의향이 없었다. 게다가 하현
"퍽!"주안의 얼굴에 그대로 떨어진 이 완벽한 발차기는 보는 이들의 눈을 현혹시켰다.그의 온몸이 순식간에 날아올라 허공을 몇 바퀴 돌다가 옆에 있는 꽃밭을 덮쳤다.이 장면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으며, 경비원들조차 놀랐다.잠시 후, 탄성이 끊이질 않았다."이 아름다운 아가씨는 정말 대단해요!"“이런 솜씨면 적어도 태권도 검은 띠겠죠?”잠시 멍 때리고 있다가, 경비원들이 하나둘씩 맹렬히 돌진했다. 어쩔 수 없었던 게, 그들의 두목이 맞았으니, 그들은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그만! 모두 그만!" 주안은 비록 이빨을 다 토해냈지만, 지금 그는 깜짝 놀라 죽을 뻔했다. 슬기가 입을 열자, 그는 드디어 이 낯익은 미녀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바로 하엔 그룹 대표의 비서였다! 평상시에 만난다면 무릎을 꿇고 그녀의 신발을 핥아야 할 거물이었다!그녀를 때린다니? 이게 무슨 국제적인 농담인가? 살고 싶은 게 맞기는 한가?곧이어 주안은 비틀거리며 일어선 후, 빠른 걸음으로 시훈의 곁으로 가 아직 넋이 나간 그의 얼굴에 뺨을 한 대 내리쳤다!"찰싹!"이 싸다귀는 정말 온 힘을 다해 때린 듯했다. 시훈은 힘차게 내팽개쳐져 버렸는데 그는 아주 멍한 상태였다."윤 대표님!" 시훈은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윤 대표님, 하현 이 데릴사위가 여자 한 명을 데리고 와서 귀찮게 굴었어요. 근데 왜 절 때렸어요?"“찰싹!”주안은 또 한번 시훈의 뺨을 세게 때리고 소리쳤다. "데릴사위가 뭐 어때서요? 데릴사위가 당신을 건드렸나요? 당신 같은 레스토랑 2인자는 매일 여기서 사람을 깔보기나 하고, 당신이 뭘 알아! 만약 당신의 그 빌어먹을 아버지만 아니었다면, 당신은 이미 남들에게 800번이나 처맞아 죽었을 거야!"
“윤 대표님… 아니… 주안이 형..." 시훈은 억울하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오후에 저한테 한 말 잊었어요? 나를 보호해주겠다고 형이 직접 말했잖아요.”주안은 깜짝 놀라 몸을 부들부들 떨며 시훈을 꾸짖었다. "내가 퍽이나 당신을 보호해주겠다! 얼른 패버려. 오늘 이 놈을 때려 눕히지 않으면 너희들은 더 이상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어!"들이닥친 경비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내용이 너무 복잡해서 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그뿐만 아니라, 주안은 경외하는 얼굴로 슬기를 힐끗 쳐다보다가 그녀의 차가운 눈빛과 마주쳤다. 그제서야 주안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계속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너는 그 빌어먹을 시력을 가진 눈에, 이 아가씨가 누구신지 알겠니? 이분은 내 직속 상관이신데, 감히 이분을 귀찮게 하다니!""네!?"모여 있던 구경꾼들이 모두 멍해졌다.시훈조차 비명을 지르는 대신, 입을 크게 벌리고 슬기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주안과 같은 인물은 밖에서 거들먹거렸는데, 이 여자가 그의 직속 상사라니, 그녀는 얼마나 도대체 얼마나 대단할까!그런데 자기가 그녀를 희롱하다니…시훈은 온 몸을 떨었다. 망했다. 이번엔 정말 망했다.세리도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하현이 여자에게 빌붙는 솜씨가 이 정도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은아에게 빌붙어 사는 건 그렇다 쳐도, 이렇게 훌륭한 여자에게 들러붙다니, 이놈은 단언컨대 빌붙기 왕이었고, 그것은 아주 대단했다! 여자에게 빌붙는 게 뭐냐고? 바로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다!”"이…이 비서님, 제가 잘못했어요.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 주안은 이제 시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그는 사람들의 놀란 시선 가운데에 “쿵” 하고 슬기 앞에 무릎을 꿇었다."이놈들이 날 함정에 빠뜨렸구나. 이 비서님, 내가 평소에 당신을 얼마나 공경하는지 알고 있죠? 오늘은 내가 눈이 멀었으니 부디 용서해주세요…" 주안은 말을 하며 연신 머리를 땅에 박아 절을 했다. 바닥은 온통 흥건한 피로 젖었다."빨리 와서 무
"형수님, 형수님과…" 시훈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옳지, 착해라!" 하현이 쪼그려 앉아 손을 뻗어 시훈의 얼굴을 두드렸다. "이제 알겠지,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것도 때로는 미래가 밝아. 나 같은 머저리 앞에 무릎을 꿇은 너는 그럼 머저리만도 못한 거네!”말을 마치자, 하현은 시훈을 상대하기 귀찮아하며,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핸드폰을 사러 가야 하는데,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나?슬기는 주안을 매섭게 노려보며 쓸데없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현을 재빠르게 따라갔다."이 자식을 데리고 가서 한쪽 다리를 부러뜨리고 병원 문 앞에 던져버려!” 주안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안 돼요! 안 돼요!" 시훈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이 시각, 세리는 그새 어디로 도망갔는지 모른다. 그녀를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나?......잠시 후, 병원 정문 앞에는 다리가 부러진 형체 하나가 빵 배달차에서 떨어져 나왔다. 시훈은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현! 당신만 여자에게 빌붙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나도 할 수 있어! 나는 최고의 여자에게 빌붙은 다음 당신이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을 살게 해줄게…” 격노하여 욕을 퍼부은 후, 시훈은 다리 부상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한 채 벌벌 떨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하 씨 이모, 저, 제가 생각해 봤는데요…""가능해요. 그럼 며칠 후에 사람을 보내서 모시러 갈게요." 전화 맞은편에서 50, 60대로들리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감사합니다, 이모...""아직도 이모라고 부를 거야?""아니요, 어니요. 자기야, 자기, 몇 명 더 보내줘요. 나랑 안 맞는 쓰레기 하나를 좀 치워야겠어요…” 시훈은 눈꼬리를 움찔거리다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좋아, 네가 이해한 이상, 나도 누구인지 봐야겠다. 감히 우리 훈이를 괴롭히다니!"전화를 끊자, 시훈은 차가운 기색을 띠었다. 하현, 나는 다
하현의 뒤에서 슬기가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따라왔다. 그녀는 대단한 미인이라, 지금 하현 뒤에서 걸으면서도 온 땅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대표님, 제가 가르침과 관리를 소홀히 한 탓입니다. 오늘 이후로 아랫사람들을 한번 정리하겠습니다." 슬기는 하현이 진지하게 핸드폰을 보고 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그의 뒤에서 몸을 숙이고 말할 수밖에 없다."그래요?" 하현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에요."슬기는 마음이 조급해져 울먹거리며 말했다. "대표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대표님께서는 제 생명의 은인이시고, 저는 대표님께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발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하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나도 사실 슬기 씨를 탓한 적 없어요. 오랫동안 하씨 집안에서 열심히 일해왔고, 저 대신 이 사업 기반을 다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아랫사람들을 너무 제멋대로 내버려두는 거 아니에요?""대표님, 다음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약속하겠습니다." 슬기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모든 일을 잘 처리해주세요. 우리는 곧 이런 사소한 일들까지 처리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 하현은 웃으며 화제를 바꿨다. "마음에 드는 핸드폰 없어요? 내가 하나 사줄게요."하현이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보자, 슬기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대표님,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제일 비싼 걸로 합니다.”말을 하면서, 슬기는 전시대 위에 놓인 폴더블폰을 집어 들었다. 그 스마트폰은 올해의 최신 제품이었는데, 몇 천만 원은 하는 기종이었다."여기 미인 분, 아까부터 계속 봤는데,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것은 한정판이고 5600만 원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대신, 전화번호만 남겨주실래요? 어때요?" 이때, 수트 차림의 풍채가 멋스럽고 스물일곱에서 스물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이 남자는 명백히도 젊고 부유한 남자였다. 이 순간, 그가 슬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반드시 원하는 것을 얻어야겠다는
”하현...”원가령은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았다.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곳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남자가 서 있는 것 같았다....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원가령의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양호남은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하현은 심무해를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고 기업청 최고 책임자는 스스로 서류철을 갖다 바쳤다.남양 무맹 대표는 직접 현판을 써서 가져왔다!이런 일이 양호남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일어난다고 해도 몇십 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아무리 생각해도 양호남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아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였다!그가 전신으로 태어난다면 모를까!하지만 양호남 같은 사람이 일대의 전신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그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이런 생각이 원가령의 머릿속을 휘젓자 그녀의 마음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찼다.“뭐야? 하현은 진정한 거물이었어!”“남양 3대 가문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였어!”“그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던 것은 나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었어!”“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야!”“대하의 촌뜨기라고 생각했는데.”“운 좋게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감옥에 갔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하현 같은 사람 백 명 천 명이 와도 양호남한테 안 될 줄 알았는데.”“이제 보니 양호남 같은 사람 만 명, 억 명이 와도 그의 앞에서는 감히 무릎을 꿇을 자격도 없는 거였어.”“잘난 척한 사람은 바로 나였어!”순간 원가령은 자신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충격?후회?현실 부정?아니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원가령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심지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하마터면 구역질
노부인의 얼굴은 사흘 밤낮을 지샌 사람처럼 새하얗게 변했다.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뒤쪽에서 고개를 내민 원청산을 보았다.“하현, 개업 축하해.”“남양 무맹을 대표해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원청산이 손을 흔들자 남양 무맹 제자들이 현판을 들고나왔다.현판 위에는 ‘양가백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양가백약!”글자 아래에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남양 무맹.구매 계약서도 주문서도 없이 양가백약, 남양 무맹이라는 여덟 글자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현판을 보고 모두 깨달았다.남양 무맹의 상처치료제는 모두 하현의 가게에서 구입할 것이라는 것을!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현판이 이곳에 있는 한, 양가백약은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관청이든 깡패들이건 아무도 감히 양가백약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이 현판만 있으면 남양 무맹이 뒤에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된다.돈을 넘어서는 천군만마 그 이상이었다!“뭐라고?!”원천신 일행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현기증이 난 듯 휘청거렸다.노부인 일행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페낭 무맹이 페낭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물며 남양 무맹이라니!남양에서 남양 무맹의 입김은 실로 말할 것도 없었다.이 현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비견할 만했다.이것만 있으면 하현과 양유훤의 개가죽 연고 가게는 틀림없이 날개 돋친 듯 남양 전역으로 확장할 것이다!노부인 일행은 지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현과 양유훤이 일어서기만 하면 양 씨 가문 절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양 씨 가문의 양씨백약이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겠는가?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이 제발 꿈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눈을 꼬집고 봐도
순간 우덕의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설설 기며 하현 앞으로 굴러와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찰관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 하늘 높으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제발 대인답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이 하찮은 놈을 불쌍히 여기시어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우덕의는 자신의 뺨을 수십 대 후려갈겼다.“제발 기회를 주십시오!”그리고 십여 명의 그의 심복들도 황공히 얼른 무릎을 꿇었다.감찰관의 공적은 다들 어느 정도 들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곧이어 하현의 낡은 가게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원천신 일행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눈가에는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그녀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우덕의는 하현에게 혼쭐을 내주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그런데 왜?왜 갑자기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것인가?이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하현은 그냥 대하의 촌뜨기 아니었던가?설마 그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우덕의를 무릎 꿇릴 만큼?원가령은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눈앞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녀는 하현의 가게가 손님은 하나도 없고 파리만 날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었다.하현이 목놓아 눈물을 흘리고 몹시 원통해하며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게 될 줄이야!바윗덩이 같은 무거운 좌절감이 원가령의 마음을 짓눌렀다.그녀는 어금니를 와그작 깨물었다.괴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하현, 순풍에 돛 단 듯 사업 번창하길 바랍니다.”“하현, 이 상처치료제는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감찰관, 축하하네.”원가령이 이를 악물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
”어떻게 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원가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불과 1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양호남이 우덕의 같은 남자가 되기를 바라며 흠모의 눈빛으로 바라보았었다.하지만 1분 후 우덕의는 죽은 개처럼 땅바닥에 널브러졌고 뺨이면 뺨, 다리면 다리, 심무해가 때리는 족족 맞고 있었다.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변할 수가!원가령은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양호남조차 온몸을 부르르 떨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자신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됐습니다. 심 맹주님. 개업하는 데 이렇게 피를 보면 되겠습니까?”우덕의가 얻어맞아 코가 시퍼렇게 멍들고 말도 못 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희미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우덕의가 죽든 말든 그건 하현에게 아무 상관없는 일이었다.하지만 오늘 여기서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은 분명 그의 사업에 영향을 미칠 것이었다.원가령 일행은 깜짝 놀라 돌아섰고 입을 연 사람이 하현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들은 모두 비꼬는 웃음을 지었다.“하 씨! 당신이 정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감히 심 맹주님의 행동을 막고 나서다니!”“당신 같은 소인배가 감히 심 맹주님을 막아서?! 당치도 않아! 당신...”눈을 부릅뜨고 굳은 얼굴로 말을 하던 양호남이 갑자가 뚝 멈췄다.끊임없이 이어지던 비명이 뚝 그쳤기 때문이다.방금까지 우덕의를 쥐 잡듯 때리던 심무해가 행동을 멈추었다.심무해는 앞으로 두어 걸음 나서서 공손한 얼굴로 하현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하현,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내가 경솔했어!”“이 모든 것은 다 내가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야.”“그렇지만 걱정하지 마. 내가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혼쭐을 내줄 테니까.”사람들은 심무해가 하현에게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모두 아연실색했다.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광경을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노부인은 눈꺼풀이 파르르
”하하하!”장내가 흔들릴 정도로 우덕의는 한바탕 크게 웃었다.그리고는 공손한 표정으로 심무해, 원청산 등이 있는 곳을 향했다.“청장님,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맹주님, 어찌 직접 오셨습니까?”“원 대표님, 이렇게 귀한 발걸음 하셨는데 나중에 꼭 한잔 올리겠습니다!”솔직히 말해 우덕의는 넋이 나간 듯한 얼굴이었다.기업청장은 그렇다 쳐도 원청산과 심무해는 그야말로 진정한 거물이었다.그들의 신분은 이런 일개 기업의 행사 자리에 함부로 나설 만큼 한가한 자리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우덕의는 그렇게 깊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원천신의 칭찬이 그를 신선이나 된 듯 붕 뜨게 만들었다.그래서 그는 스스로 앞장서서 이 거물들과 친분을 과시했다.기업청 청장은 의아한 미소를 지었고 원청산은 콧방귀를 뀌었다.황천화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오히려 심무해는 한 발짝 앞으로 나와 바로 손바닥을 휘갈겼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렸다!때마침 앞으로 나온 우덕의는 예상치 못한 심무해의 행동에 얼굴을 가리고 비틀거렸다.하마터면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땅바닥에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순간 우덕의의 얼굴에 큰 손바닥 자국이 벌겋게 떠올랐다.순식간에 사람들이 조용해졌다!모두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버렸다.믿을 수 없다는 듯 놀란 수십 개의 눈이 우덕의를 향해 있었다.그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얼굴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그도 자신의 신분이나 지위, 역량이 심무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우덕의는 얼굴을 만지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맹주, 이, 이게 무슨 뜻입니까?”“무슨 뜻이긴!”심무해는 냉소를 지으며 우덕의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우덕의는 피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다리를 움켜쥔 채 땅바닥에 넘어졌다.끙끙 소리를 내며 온몸을 부르르 떨던 우덕의의 입에서 하마터면 핏덩이가 뿜어져 나올 뻔했다.우덕의는
노부인 일행들은 모두 상기된 표정으로 달아올랐다.눈앞이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할 정도였다!이렇게 많은 거물들이 양 씨 가문을 응원하러 오다니!양 씨 가문이 흥하지 않을 수 없었다!“페낭 기업청 청장님 오셨습니다!”“페낭 무맹 황천화님 오셨습니다!”“페낭 무맹 여영창, 여수혁 부자 오셨습니다!”“페낭 무맹 심무해 맹주님 오셨습니다!”“남양 무맹 대표, 원청산님 오셨습니다!”목소리가 커질수록 등장하는 인물들의 신분이 점점 더 놀라웠다.현장에 있던 손님들은 하나같이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어쨌든 이 사람들의 신분은 페낭에서 가장 높은 지위였기 때문이다.그들 중 어떤 사람이 나타나도 좌중을 압도할 만했다!그런데 그들이 일제히 이곳에 나타나다니!정말로 천지가 뒤흔들릴 지경이었다!원천신과 우덕의 따위가 어떻게 이들과 견줄 수 있겠는가?양호남은 물론이고 원가령도 눈이 휘둥그레졌다.우덕의조차도 심무해와 원청산의 이름을 듣자마자 한껏 공손한 표정으로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우덕의 부맹주님, 정말 날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군요! 아유 정말! 귀띔이라도 해 주지!”잠시 침묵하던 원천신은 우덕의의 팔짱을 끼며 몸을 배배 꼬았고 그의 귀에 뜨거운 입김과 함께 낭랑하고 보드라운 목소리로 말했다.“양 씨 가문을 놀라게 해 주려고 당신을 불렀더니!”“당신은 날 놀라게 해 주려고 남양 무맹 대표 같은 거물들까지 초대하셨군요! 정말 이럴 줄은 몰랐어요!”여기까지 말한 원천신은 감정이 복받친 듯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나한테 너무 잘 해 줘요!”원천신은 이런 거물들을 데려오는 데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이 모든 게 다 우덕의 부맹주님이 하신 일이군요?!”노부인 일행들도 겨우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어 우덕의를 칭송해 마지않았다.“감사합니다. 부맹주님! 이 은혜 꼭 잊지 않겠습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하현은 우덕의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지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찻잔을 기울였고 원천신 일행을 힐끔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보아하니 사장님 인맥이나 수완이 아주 훌륭하십니다.”“보통 사람이었다면 아마 벌써 무릎을 꿇었을 겁니다.”“그런데 정말 이렇게 무지막지한 방법으로 날 몰아세울 생각입니까? 확실해요?”원천신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 씨! 이건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정의를 지키는 거야.”우덕의는 ‘하 씨’라는 말이 왠지 귀에 익은 것 같아서 뭔가 생각날 듯 말 듯했다.그러나 미색 앞에서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냉소를 흘리며 싸늘한 눈빛으로 돌변한 우덕의는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다.“개자식!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무지막지하다니? 몰아세우다니?”“내가 어떤 신분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어?”“내 명령 한마디면 당신 같은 얼뜨기들은 소리도 없이 죽을 수 있어! 알기나 해?!”“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해!”“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는 절대 사과할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우덕의가 호통을 치자 십여 명의 페낭 무맹 제자들이 목을 좌우로 비틀며 빠드득 소리를 내었다.그들은 언제라도 하현의 가게를 가루로 만들어 버릴 듯한 기세였다.하현은 그들을 무시한 채 그저 원가령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원가령, 당신과 그래도 알고 지낸 사이니까.”“나중을 위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지.”원가령은 코웃음을 치며 차가운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 씨! 콧대가 아주 하늘을 찌르겠어!”“얼뜨기 주제에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기회를 준다 만다는 거야?”“내가 페낭 상류사회를 이틀 동안 데리고 다녀 줬더니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줄 착각하는 모양인데!”“잘 들어. 우덕의 아저씨가 당신을 놓아준다고 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백약의 조제법을 얼른 양 씨 가문에 돌려줘!”“당신이 하는 것 봐서 나도 다른 사람들한테 당신을 좀 봐
”어? 양 씨 가문 손님이 아니라구? 다른 사람의 체면을 세워 주려고 왔다는 거야?”우덕의의 가는 눈동자에 매서운 기운이 가득했다.원천신은 소리 없이 싱긋 웃으며 긴 다리로 성큼성큼 우덕의에게 걸어와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 건넸다.그제야 우덕의는 상황을 파악했다.그는 조심스럽게 하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어느 정도 낯이 익은 것 같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그러자 우덕의는 시큰둥한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대하 촌뜨기가 감히 페낭, 그것도 양 씨 가문과 대적하겠다니? 겁도 없이 이렇게 공개적으로?”하현 일행이 자신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가 왔음에도 공손한 자세로 인사를 하러 오지 않자 우덕의는 더욱 불쾌해졌다.노부인이 이를 알아차리고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부맹주님,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우리 집안에 좀 안 좋은 일이 있습니다.”“우리 가문에 불효녀가 하나 생겼어요. 우리 가문과 결별했을 뿐만 아니라 곁에 기둥서방 하나 두고 우리 집안에 맞서려 하고 있어요.”“부맹주님 보기에 참 부끄럽습니다.”원가령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그는 양씨백약 조제법을 훔쳐서 양가백약을 만들었어요. 정말 뻔뻔스러운 놈이에요!”원천신도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말을 이었다.“저놈 때문에 화가 나서 죽겠어요!”“개자식! 정말 어이가 없어서!”우독의는 매서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살벌한 표정으로 나와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야! 네놈이 양 씨 가문과 원 사장님과 무슨 일이 있었든 상관없어. 그렇지만 그들이 지금 몹시 화가 나고 불쾌하다니 네놈을 가만둘 수는 없어!”“당장 무릎 꿇고 그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그렇지 않으면 죽는 게 어떤 건지 똑똑히 보여줄 거야!”우덕의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페낭 무맹 제자들이 흉악한 표정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매섭게 노려보았다.그들은 모두 우덕의의 심복이니 당연히 주인을 위해 몸을 날릴 것이다
원가령의 시선을 느낀 원천신이 잠시 자신의 딸을 바라보다 싱긋 웃으며 말했다.“가령아, 하현이 지금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사실은 등에 땀이 흥건할 거야.”“아마 겁에 잔뜩 질렸을 거라고.”“저렇게 밑바닥을 기는 하찮은 놈이 잘난 척하기는!”양호남은 원천신의 말을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저런 얼뜨기 놈은 허세 부리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어요!”어머니와 남자친구의 말에 원가령은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원망스러운 듯한 눈빛으로 하현을 힐끔거렸다.제발 그가 충격에 휩싸여 괴로움에 몸부림치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이때 십여 명의 페낭 무맹 제자들이 모여들었고 얼굴이 붉고 뚱뚱한 중년 남자가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차 문을 박차고 나왔다.“노부인, 원 사장님. 안녕하십니까?”“양 씨 가문 기념일 축하드립니다!”중년 남자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와 노부인 일행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마치 양 씨 가문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온 사람들처럼 깍듯한 모습이었다.“우덕의 부맹주님 오셨어요! 바쁘신 분이 이곳까지 와 주시고! 얼마 전에 섬나라로 여행 가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오늘 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일부러 오셨군요!”원천신이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부맹주께서 집에도 가지 않고 공항에서 바로 오셨다구요!”“바쁘신데 일부러 그렇게까지 해 주시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노부인은 크게 기뻐하며 앞으로 걸어와 우덕의와 악수를 나누었다.“이렇게 우리 가문의 체면을 세워 주시니 고맙다는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양호남 역시 신사답고 점잖은 자세를 취한 뒤 천천히 걸어갔다.“부맹주님, 오늘 우리 젊은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기회에 부맹주님께 많이 배우겠습니다! 나중에 젊은이들과 가볍게 몇 잔 하시죠!”“앞으로 우리 양 씨 가문이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우리 양 씨 가문은 신의를 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