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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4화 업보

작가: 민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6-23 18:00:00
설기웅은 아직도 친자확인서를 보고 있었는데, 마치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설우현이 했던 모든 말이 귀에 박혔고 고막이 아팠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이는 설우현이 밤새 부탁하여 간신히 얻어낸 친자확인서일 뿐만 아니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두 눈 부릅뜨고 자리를 지켰던 터라 조작할 가능성은 아예 없었다.

성혜인은 명실상부 설씨 가문의 아가씨이자 그들의 친동생이다.

설기웅의 손끝은 마치 종이를 파고드는 것처럼 천천히 조여졌다.

눈앞은 캄캄해졌고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설우현은 심호흡 하고선 잔뜩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인아가 나쁜 짓하는 걸 감싸줄 생각이라면 더 이상 저도 할 말이 없네요. 이게 우리의 업보겠죠? 승제 씨랑 잘 만나고 있는 걸 빤히 알면서도 망치려고 했었는데 참 아이러니하네요. 혜인이가 우리 동생이라는 게. 안 그래요?”

설우현은 이 상황이 그저 우스웠다.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스스로를 억제했지만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제원에 있을 때 한 짓만으로도 충분히 어리석었는데, 설우현은 플로리아에 와서도 성혜인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 난 사람처럼 미쳐있었다.

어젯밤 만약 그들이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더라면 설기웅은 자기 여동생을 익사하게 만든 장본인이 된다. 즉 성혜인이 영원히 눈을 감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한 이 모든 것들이 그저 가짜 여동생을 위한 일이라니 얼마나 우스운가.

설우현은 심호흡하고 핸드폰을 꺼내 설인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설인아는 설우현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보고 몇 초 동안 망설였지만, 끝내 전화를 받았다.

“인아야, 너 도대체 형한테 무슨 수작을 부린 거야?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거지?”

설인아는 아직 그들이 성혜인의 신분을 알아냈는지 몰랐기에 말 한마디가 아주 조심스러웠다.

“오빠, 사과하려고 연락한 거 아니야? 어젯밤에 오빠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뻔했는데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이게 무슨 상황이지? 내가 그동안 오빠를 얼마나 좋아했는데...”

“혜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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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 진실을 모를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조사가 필요없을 정도로 분명했다.원아정과 오예슬은 평소에도 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자주 서로의 사진을 SNS에 올리거나 함께 쇼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런 오예슬이 갑자기 원아정을 배신하며 폭로한 것은 분명 현장의 분위기에 겁을 먹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말이 거짓일 리 없었다.더구나 안정숙이 진위를 구별하지 못할 리 없었다.만약 공지민이 진짜 잃어버린 손녀라면 그녀가 이런 끔찍한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안정숙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안정숙은 지팡이를 단단히 쥐고 멀리 있는 원아정을 바라보았다.“아정아, 더 할 말 있어?”원아정은 속으로 오예슬을 한 대 걷어차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현장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게다가 그때 저질렀던 괴롭힘은 숨기지도 못할 만큼 노골적이었다. 조금만 학교에 조사를 요청하면 금방 드러날 일이었다. 이 상황에서 부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녀는 공지민이 이런 순간에 왕따 사건을 폭로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안정숙이 마치 홀린 듯 공지민을 편드는 모습에 어리둥절했다.“할머니, 그땐 제가 너무 어렸어요. 제가 잘못한 줄도 모르고 한 행동들이었어요.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요.”안정숙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지난번 사찰에서 공지민과 원아정이 다투는 모습을 봤을 때는 공지민이 성격이 지나치게 급하고 공격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그때 공지민은 갑작스럽게 괴롭힘 가해자를 마주했기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원아정은 재빨리 다가가 안정숙의 손을 잡았다.“할머니, 용서해 주세요. 오늘은 제 결혼식이에요.”결혼식을 언급하며 그녀는 안정숙의 태도를 살폈다. 이 결혼식이 계속될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그러나 안정숙은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며 단호히 말했다.“이 일은 내가 철저히 조사할 거야. 아정아, 그때 네 나이가 어리지도 않았을 텐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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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지민은 오예슬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커다란 땀방울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공지민은 입가를 살짝 비틀며 말했다.“고등학교 시절, 저는 심각한 괴롭힘을 당했어요. 저를 괴롭힌 사람은 바로 원아정이었고, 오예슬은 원아정의 부하였죠. 그들은 제 옷을 찢고 사진을 찍어 협박했어요. 저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고, 부모님과 동생은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집에는 저 혼자만 남았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괴롭힘은 점점 심해졌어요. 화장실에 저를 가두는 건 일상적인 일이었고, 낯선 남자와 억지로 키스하게 만들거나, 제가 문란하다는 소문을 퍼뜨렸어요. 어디를 가든 비난과 조롱이 따랐지만 저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요. 한 번은 무릎을 꿇고 제발 그만하라고 빌었지만 원아정은 점점 더 악랄해졌어요. 심지어 어느 날은 제 얼굴을 칼로 그어버리려고 했어요. 다행히 그 순간 누군가가 제때 막아줘서 가까스로 무사할 수 있었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하게 이어졌지만 특정 부분에선 잠시 멈추며 감정을 억누르는 듯 보였다.현장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사실 이런 일이 대가문에서 벌어졌다면 돈으로 해결하려 했을 테지만 결혼식 한가운데에서 이런 폭로가 터지니 마치 가문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난 셈이었다.원아정은 즉각 흥분하며 외쳤다.“거짓말이에요! 할머니, 쟤가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요!”공지민은 눈을 감은 채 온시환의 슈트 끝자락을 단단히 붙잡았다.“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가서 조사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원아정은 그 당시 저를 괴롭히는 무리의 대장이었어요. 그 뒤에는 항상 졸개들이 있었고, 학교에서는 아무도 그 애들을 건드릴 수 없었죠. 모두 제가 괴롭힘당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어요. 선생님들조차 원아정 집안의 권력을 두려워해서 침묵했으니까요. 한 번은 용기를 내서 경찰에 신고하기도 했지만 결국 원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24화 억울한 일이 있다면

    오예슬은 온몸이 굳어지며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역시나 바로 다음 순간 공지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고등학교 때 괴롭히는 게 부족했나 봐? 이런 자리에서도 나를 가만두지 않다니. 혹시 또 원아정이 무슨 말을 했어?”‘원아정? 오늘 결혼식을 올릴 신부 아닌가? 신부와 이 사건이 무슨 관계라는 거지?’처음에는 단순한 해프닝이라 여겼던 사람들도 원아정의 이름이 언급되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모두의 시선이 멀리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 있는 원아정을 향했다.원아정은 공지민이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레 자신을 끌어들이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은 그녀의 결혼식이었다.‘공지민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거야!’“공지민!”원아정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공지민은 마치 놀란 듯 온시환의 품 안에서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 모습은 그녀가 원아정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원아정은 가슴을 들썩이며 화를 억누르지 못했다.“공지민, 오늘은 내 결혼식이야. 일부러 방해하려고 온 거라면 내가 경호원들을 불러 너를 쫓아내도록 할 거야!”공지민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온시환의 품에 기댔다.온시환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대체 무슨 일이야?”공지민은 목소리가 떨리며 말했다.“말해도 소용없을 거예요.”안정숙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나섰다.“네가 어떻게 알아 소용없다고? 억울한 일이 있다면 지금 말해봐. 내가 너를 위해 나서줄 수도 있잖니.”안정숙의 이 한마디에 현장의 분위기는 한층 더 미묘해졌다. 그녀는 평소 원아정을 아낀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공지민의 편을 드는 듯했다.원아정은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여자는 속셈이 뻔해요. 제 결혼식을 일부러 망치려고 하는 거라고요. 결혼식을 계속 진행할 수 없을까요? 쟤가 할 말이 있다면 나중에 따로 대화하면 될 거예요.”그러나 안정숙은 단호했다.“지민이 맞지? 네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 해. 난 듣고 싶구나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23화 큰 억울함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신부가 이제 막 신부 대 앞에 다가가려는 순간, 예기치 못한 사고가 벌어지며 결혼식이 그대로 중단되었다.안정숙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다들 멍하니 뭐 하고 있어? 어서 빨리 내려가서 사람을 구해!”온시환이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방금 누군가의 시선이 그의 주의를 끌어, 물에 빠진 사람이 공지민이라는 사실을 놓쳤다.공지민을 물 밖으로 끌어 올리자 모든 이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녀의 드레스가 위로 말려 올라가며 허벅지 윗부분에 있는 독특한 모양의 반점이 드러났다.안정숙은 지팡이를 꼭 쥐었다. 그녀는 공지민과 가까운 곳에 있었기에 그 반점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평소 자애로운 미소를 짓던 안정숙의 표정은 순간적으로 격동에 휩싸였다. 그녀는 공지민을 살피러 다가가 그 반점을 확인하자마자 마음속에 놀라움과 희망이 떠올랐다.‘이 아이는 사찰에서 봤던 아이잖아?’안정숙의 이마가 살짝 찌푸려졌다. 오랜 세월 동안 가문의 실종된 딸을 사칭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허벅지에 꽃 모양의 반점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녀뿐이었기에 사칭자들은 그 반점을 흉내 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아이에게는 그 반점이 분명히 있었다.안정숙의 입술이 떨렸고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스쳤다.“이보게, 온씨 가문 젊은이. 어서 이 아가씨를 안게! 상태가 어떤지 확인해야겠어.”공지민은 몇 모금 물을 뱉고 나서야 조금 안정을 찾았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고 온시환의 품에 힘없이 기대 있었다.온시환은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일단 데리고 돌아가겠습니다.”그러나 안정숙은 공지민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오랜 세월 찾아 헤맨 사람을 겨우 발견했으니 그녀는 즉시 친자 확인을 하고 싶었다.안정숙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에 공지민의 목걸이에 엉킨 한 가닥 머리카락이 들어왔다. 그녀는 마치 얼굴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는 척하며 그 머리카락을 손에 쥐었다.“이 아이 이름이 뭐라고 했지?”“공지민입니다.”온시환이 대답하며 그녀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22화 무슨 짓을 하려는지 뻔히 보여

    다음 날 아침, 염정아는 어제 포장해 온 음식을 데워 동생에게 새로 산 옷을 입혀주었다.솔직히 말해 동생은 잘생긴 편이었다.염정아는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깨달은 건 그들 모두가 피해자라는 사실이었다.“이제 갈게. 아이들 잘 돌봐줘.”“누나...”동생은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랐다. 마치 과거 그녀가 수없이 일하러 나갈 때 그랬던 것처럼 그녀를 아쉬운 눈으로 바라보며 따라오는 모습이었다.염정아는 마음을 다잡고 문을 닫은 뒤, 공지민의 팔을 붙잡았다.“가자.”공지민은 닫힌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깊은숨을 내쉬었다.“정아야, 두 달은 제원에 있어야 할 텐데, 집에 더 할 말은 없어?”염정아는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너도 보다 시피 동생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걱정 마. 큰애는 요리도 할 줄 알아. 동생이 못하면 애들이라도 버텨줄 거야.”그렇지 않다면 이 집이 지금까지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공지민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곧바로 제원으로 향했다.그들은 이번 여정으로 3일을 보냈다. 출발 전, 공지민이 온시환과 크게 다툰 후 3일 동안 서로 연락하지 않았다.그 사이 공지민은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허벅지에 염정아와 같은 모양의 빨간 반점을 새겼다. 그뿐만 아니라 염정아 몸의 모든 점 위치를 기억해 자신의 몸에도 똑같이 재현했다.염정아는 소심하고 큰 도시에 익숙하지 않아 직접 연씨 가문에 들여보낼 수 없었다. 그녀가 연승혁을 만나게 된다면 금방 모든 것을 들킬 것이 뻔했다.그래서 공지민은 다른 계획을 세웠다.그녀는 실종된 연씨 가문의 딸인 척하며 가문에 들어가 연승혁의 누나가 되겠다는 계획이었다. 그 위치에서 복수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공지민은 온시환의 별장 근처에 염정아를 위한 집을 임대했다. 그리고 염정아의 머리카락과 혈액 샘플을 채취해 필요시 친자 확인에 대비했다.모든 준비를 끝낸 뒤, 공지민은 기회를 기다리며 조용히 움직였다.염정아는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21화 절대 짐이 되진 않을게

    공지민은 염정아가 돈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죄책감이 들었다. 원래라면 염정아는 이런 일에 휘말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제원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명을 손쉽게 위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공지민 자신도 이런 선택이 옳은지 확신하지 못했다. 결국 그녀는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정아야, 내가 카드를 줄게. 하지만 네가 나랑 제원에 가면, 너희 아이들은 누가 돌보지?”“동생이 돌볼 거야. 가끔 아래층 슈퍼 사장님도 와서 봐주실 거고. 슈퍼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다 있으니까 걱정 없어. 내가 매일 일하러 나갈 때도 동생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거든.”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염정아를 데리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사계절 옷들을 한꺼번에 샀다. 아이들이 열여덟 살이 될 때까지 입을 수 있을 만큼 넉넉히 준비했다.그녀는 염정아와 남동생에게도 새 옷을 사주었다. 동생은 옷을 입고 거울을 보며 신나게 웃음을 터뜨리며 염정아를 연신 불렀다.염정아는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공지민에게 물었다.“우리 내일 제원으로 출발해도 될까? 집에서 몇 가지 정리할 게 있거든.”“그래. 네가 필요한 게 있으면 바로 말해. 이건 내 카드야. 비밀번호는 네 휴대폰으로 보낼게. 필요한 돈은 언제든지 써.”“고마워.”염정아는 곧바로 동생을 옆으로 데리고 가서 세세히 일러주기 시작했다.동생은 비록 지적 장애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생활은 할 수 있었다. 다만 집 밖으로 나가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는 없었다.“잘 들어. 내가 몇 달 동안 집을 비울 거야. 아이들은 네게 맡길게. 아래층 미숙 이모가 정기적으로 먹을 걸 가져다줄 거야. 분유 타는 법은 이미 두 달 동안 가르쳤고, 기저귀 갈아주는 법도 배웠으니까 잘할 수 있지? 간단한 반찬 만드는 법도 알잖아. 아이들을 잘 돌봐줘.”동생은 순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입을 떼며 말했다.“누나가 너무 보고 싶을 것 같아.”“금방 돌아올 거야. 걱정하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20화 목숨이라도 바쳐서 널 도울게

    아이를 낳는다는 건 여성의 몸에 큰 상처를 남긴다. 염정아의 배가 어떤 상태일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식사가 끝나자마자 염정아의 남동생은 옆에서 토하고 말았다. 너무 많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댄 탓이었다.염정아 역시 속이 더부룩해 고생했지만 토하기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남동생은 토한 뒤에도 후회로 가득한 얼굴이었다.염정아는 그의 입가를 천천히 닦아주며 말했다.“그만 먹어, 안 그러면 내일은 아무것도 먹을 게 없을지도 몰라.”남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지민을 바라봤다.공지민은 계산을 마치고 포장한 음식을 들고 그들과 함께 염정아의 집으로 돌아갔다.집에는 아직 어린 다섯 아이들이 그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내인 쌍둥이는 아직 품에 안겨 있어야 했고 제일 큰 아이도 겨우 일곱 살이었다.염정아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며 막내들에게 줄 분유를 타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반면 남동생은 몇몇 아이를 달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공지민은 그녀가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모든 일이 끝났을 때 염정아의 얼굴은 이미 피곤함으로 가득했다.“지민아, 네가 여기에 찾아온 건 무슨 일 때문이지?”마침내 본론으로 들어가야 할 시점이었지만 공지민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염정아의 삶이 이미 이렇게 힘겨운데, 연씨 가문으로 엮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염정아는 그녀의 망설임을 알아차린 듯 부드럽게 말했다.“그냥 말해. 지금 내가 돈이 절실하다는 건 너도 알잖아. 지민아, 나는 욕심 많은 사람이 아니야. 네가 돈을 조금이라도 준다면 뭐든지 도와줄게. 아이들이 굶는 것만은 막아야 하니까. 집에 분유도 떨어졌고, 언제 또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겠어. 내 몸 상태도 별로라 공사판에서도 받아주지 않으니, 하루하루가 불안해. 내가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아이들은 대체 어떻게 될까?”동생과 다섯 아이들은 온전히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었다.공지민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말했다.“정아야, 네 허벅지 근처에 빨간 꽃 모양의 반점이 있지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19화 나도 데려가 줄 수 있어?

    공지민은 염정아를 품에 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운명은 어쩜 이렇게 잔인하고 불공평할 수 있을까.염정아도, 구은우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두 사람을 철저히 망가트린 현실이 너무도 가혹했다.염정아는 한참을 울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그녀의 눈에 식은 차가 보였다. 공지민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밖에서 뭐라도 먹자. 그리고 아이들한테 줄 것도 좀 사자.”염정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지민아, 네가 우리 집 주소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니.”“한 번도 잊은 적 없어.”공지민은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이곳에 오기 전, 그녀는 염정아를 이용해 연씨 가문에 접근하고 연승혁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렇게나 망가진 염정아의 모습을 보고, 그녀의 품에서 흐느껴 우는 친구를 보니 입에서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가 너무도 비열해 보였다. 복수라는 감정에 눈이 멀어 사람의 고통을 이용하려 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염정아는 외출할 만한 옷 한 벌조차 없었다. 입고 있던 옷은 군데군데 헝겊으로 덧대어져 있었다. 그녀가 옷을 챙기는 동안 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일어났다. 그는 순수한 눈빛으로 다가와 물었다.“누나, 어디 가?”“밥 먹으러 나가.”“나도 데려가 줄 수 있어?”늘 침을 흘리던 그는 지금 손수건을 들고 있었다. 아마 염정아가 그의 그런 모습을 싫어한다는 걸 알기에 조심하고 있는 듯했다. 염정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 같이 가자.”그녀는 이 동생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적 장애를 가진 그는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는 순진한 사람이었다. 부모가 약을 먹이고 강제로 그와 염정아를 함께 있게 했을 때도, 그는 아무것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한 번도 그녀를 자발적으로 건드리지 않았고 단지 그녀 곁에서 잠을 잤다.염정아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돌보고 막내에게 분유를 타 먹이며 남편과 같은 동생을 데리고 공지민과 함께 집을 나섰

  • 이혼했는데 전남편이 집착해요   제2218화 왜 내가 이 모든 걸 겪어야 하지?

    공지민은 여전히 조용히 소파에 앉아 있었다. 감정의 흔들림조차 없는 차분한 모습이 오히려 더 사람을 화나게 했다.온시환은 망설임 없이 그녀를 소파에 밀어 눕히며 말했다.“너는 침대에 있을 때만 겨우 말을 좀 듣더라.”공지민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그저 입가에 조소를 띄웠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네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 정도야?’그녀의 반응에 온시환의 자존심은 철저히 짓밟혔다. 그는 그녀 위에서 몸을 일으켜 서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바닥에는 정성스럽게 준비했던 고급 디저트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고 거실 테이블은 한쪽으로 넘어가 엉망이었다.온시환은 갑자기 답답한 마음이 몰려왔다. 반승제가 이 집 디저트가 아주 맛있다고 추천했기에 그녀를 기쁘게 해주고자 사 온 건데, 그녀의 마음을 얻는 건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공지민은 정말 마음이 없는 걸까.그는 아무 말 없이 큰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그 표정만 봐도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제야 숨어 있던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나와 어지럽혀진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손을 움직이며 공지민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했다.“지민 씨, 사실 시환 씨가 당신한테 잘하려고 애쓰는 거예요. 조금만 부드럽게 대처하면 덜 힘들 텐데요.”공지민의 턱에는 손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방금 온시환이 얼마나 강하게 그녀를 잡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하지만 공지민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가정부에게 짧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 뒤 차에 올라 고등학교로 향했다.그곳은 제원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녀는 염정아의 집 앞에 서서, 과거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어둠 속의 작은 틈에서 모든 걸 끄집어내는 듯했다.깊게 숨을 들이쉰 그녀는 문을 두드렸다.염정아가 바로 허벅지 안 쪽에 빨간 꽃 모양의 반점을 가진 사람이었다. 한 번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너무나 독특했기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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