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이 더욱 조용해졌다.설우현은 당장이라도 성혜인에게 네가 내 여동생이라 알리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사실 여동생의 얼굴을 볼 면목조차 없었다.게다가 여동생 얼굴에 선명한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다.“혜인 씨, 누가 때린 거예요?”여동생을 강에 밀어 넣으려던 부하들의 짓이라면 아주 크게 혼내줄 것이다.그러나 성혜인이 퉁퉁 부은 볼을 만지작하며 대꾸했다.“그건 우혁 씨 핏줄에게 직접 물어보세요.”태연하게 대답하는 말 속에 다른 뜻이 있었다.그 말은 수십 개의 비수가 되어 설우현의 가슴에 내리꽂혔다. 그는 마음이 아픔과 동시에 난감함을 느꼈다.형이 한 짓이었구나. 하지만 형은 종래로 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지 않았었는데...그가 손을 바들바들 떨며 성혜인의 뺨을 어루만졌다. 저도 모르게 굵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성혜인이 깜짝 놀라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부잣집 도련님이 이렇게 우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설우현도 자신의 행동이 과했음을 인지하였다.하여 애써 옷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참으려 했지만 눈물은 그의 마음은 알지 못한 채 하염없이 흘렀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어...”설우현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성혜인이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반승제의 소매를 잡고 끌어당기며 반승제가 중재해 주기를 바랐다.하지만 반승제는 조금 전의 일에 충격을 받아 이쪽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의사의 아이를 낳겠냐는 물음에 성혜인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부정적인 생각이 자꾸 뇌리를 스치니 반승제는 점점 슬퍼졌다. 결국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성혜인이 저를 위해 아이를 낳아주고 싶지 않아 한다.모두 그가 이전에 저지른 잘못 때문이니 이제 와서 만회할 수는 없었다.고개를 든 성혜인의 눈에 띈 것은 반승제의 눈물이었다.고개를 돌리니 또 마주친 것은 설우현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다.성혜인은 당황스러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반승제가 왜 우는 건지 잘 알고 있었다. 아이를 갖기 싫어한다는 사실이 그를 괴
뜬금없이 성을 내는 동생의 반응에 당황한 설기웅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설우현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온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가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물었다.“설인아는 그렇다 치고, 그럼 혜인이는 안 힘들겠어요? 오늘 하마터면 형 때문에 죽을 뻔했어요. 대체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하게 굴 거예요?”설기웅은 침대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동생이 왜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어렸을 때부터 그들은 이렇게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밤 동생은 말다툼을 넘어 주먹까지 휘둘렀다.성혜인이 대체 그와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성혜인은 죽어 마땅한 사람이었다. 설우현과 반승제가 중간에 끼어들어 일을 망치지만 않았다면 성혜인의 시체는 영원히 강바닥에 가라앉았을 것이다.한바탕 화를 내니 머리가 지끈했다.“형, 오늘 밤 아버지 뵈러 가요. 아버지께도 형한테도 할 말이 있어요.”전화를 끊은 뒤, 설우현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모르는 설기웅은 양미간을 찌푸렸다.그가 떠나려 하자 설인아가 잠에서 깨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오빠, 가려고? 나는 어쩌고?”“안 돼. 오빠, 가지 마. 나 지금 아프단 말이야. 정말 죽을 것 같은데 날 두고 가는 거야?”설기웅이 다정하게 등을 토닥여주었다.“아버지께서 언제 깨실지 모르니까 한 번 뵈러 가는 거야.”그가 해명해서야 설인아는 안도했다.‘아, 성혜인 보러 가는 줄 알았잖아.’‘하하. 설의종은 앞으로도 영원히 깨어날 수 없을 텐데.’설인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알겠어. 오빠, 그러면 얼른 돌아와야 해.”설기웅은 고개를 끄덕이고 곧 자리를 떴다.설씨 가문으로 향하는 길, 그는 이제 설우현을 만나면 어떻게 교훈하고 야단칠지 생각하고 있었다.형에게도 모자라 여린 여동생에게까지 손을 대다니. 이건 기필코 확실히 교육하고 지나가야 할 문제였다. 반승제를 만나더니 함께 돌아버린 것인가 싶기도 했다.한시간 즘 지나서야 잔뜩 안색이 흐려진 설기웅이 설씨 가문 별장에 도착했
자동차가 지하 격투장에 멈추자 반승제는 성혜인을 업고 7층으로 향했다.그의 어깨에 기댄 성혜인은 그가 유난히 저기압임을 알 수 있었다.침대에 성혜인을 눕힌 후, 반승제는 욕조에 물을 받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그러나 욕조에 온수가 가득 채워진 후에도 그는 옆에 쭈그리고 앉아 무념무상으로 있었다.그가 유난히 욕실에 오래 있는 것 같아 잠시 들어와 본 성혜인은 깜짝 놀랐다.욕조에 물이 넘치도록 반승제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그제야 반승제는 꿈에서 깨어난 듯 황급히 일어나 수도꼭지를 잠갔다.욕실 문 앞에 선 성혜인이 입을 열었다.“임신하면 반신욕도 신중히 해야죠. 오늘은 안 할래요.”그가 멈칫하더니 다시 엉거주춤 욕조 물을 뺐다.성혜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이 반승제를 더 긴장하게 했다.그러나 그는 무어라 먼저 말을 꺼낼 자격이 없었다. 그는 성혜인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나 아이가 찾아온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원했다.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었다.그가 다른 한쪽의 노즐을 열어 물의 온도를 조절했다.“가운은 선반 위에 있어. 먼저 씻고 있어. 난 다른 욕실에서 씻고 올게.”성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반승제가 가고 난 뒤, 성혜인은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고 욕조에 발을 담그고 반승우가 남긴 주소, BKS, 그리고 그들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는 연구기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그녀는 아직 임지연도 찾지 못했고 해야 할 일도 산더미였다. 그리고 미스터 K가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를 약점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성혜인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수도꼭지를 잠갔다.한편 다른 욕실에 있는 반승제는 마음이 복잡했다. 성혜인이 아이를 없애겠다고 선언하면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막막했다.그가 목욕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오니 성혜인은 이미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에 책을 들고 대추를 입에 넣었다.“승제 씨, 제가 돌
끊임없이 울리던 휴대폰은 결국 배터리가 다 돼 전원이 꺼지고 말았다.설기웅과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그는 7층과 가장 가까운 방에서 반승제를 기다렸다.반승제가 방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로부터 설우현은 성혜인의 선택을 예상할 수 있었다.그는 여전히 성혜인에게 어떻게 그녀의 신분을 밝힐지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활짝 웃는 반승제의 얼굴을 보니 아마 아이를 낳기로 말을 끝낸 것 같았다.“안 됩니다.”설우현이 분개하며 책상을 쾅 내리쳤다.“그렇게 어린애한테 아이를 낳을 고통까지 안겨줄 셈이에요? 아직 반 오십도 되지 않은 애한테, 결혼식도 없는 혼인에 이혼까지 했으면서 너무 생각 없는 거 아니에요? 게다가 반승제 씨 지금 지명수배 중이잖아요. 그런데 아이까지 낳아주길 원하다니 정말 무책임하네요.”반승제가 그의 옆 의자에 앉았다.“그럼 지금 바로 혜인이한테 가서 말해봐요. 네가 설씨 가문에서 잃어버린 딸이라고. 오빠를 알아보기나 하는지.”설우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가문이 성혜인에게 했던 짓을 생각하면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입을 뻐끔거리다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제가 오빠로서 잘한 일이 없다는 건 압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계속 찾으셨어요. 그리고 찾으면 집안의 주식을 다 넘기겠다고 하셨으니 한 번이라도 뵈었으면 해요.”그가 의기소침해져서 집안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동안 한 짓이 있으니 성혜인이 설씨 가문을 싫어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반승제가 태연자약하게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설씨 가문에서 설기웅과 설인아는 어떻게 할 생각이죠?”말 속의 뜻은 이러했다. 두 사람에 대한 처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성혜인을 보내주지 않겠다는.“아버지가 혼수상태입니다. 설씨 가문의 주식이 모두 혜인이에게 넘어가면 설씨 가문은 혜인이의 것이 되겠죠. 만일 혜인이가 싫다면 제가 대신해서 만족스러울 만한 결과로 보여줄 겁니다. 반승제 씨, 우리 아버지께서 혜인이 계속 찾고 있다는 거, 알고 있잖아요. 딸이 죽은
“오빠... 이제 열두 시인데 왜 아직도 안 들어와? 나 버리는 건 아니지? 나 오빠 없이 못 살아...”설기웅이 미간을 꾹꾹 누르며 인상을 찌푸렸다.“늦게 갈 거야. 아버지랑 조금 더 있다가.”이에 설인아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오빠, 작은 오빠가 혹시 무슨 말 했어요?”예를 들어 성혜인의 진짜 신분이랄까.설우현이 반승제와 함께 급히 성혜인을 구하러 왔다는 것은 성혜인의 정체를 이미 알게 되었단 말이 아닐까? 그렇지 않으면 설우현이 그렇게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차고 갈 이유가 없지 않은가.설기웅이 알게 된다면 바로 저로부터 돌아서는 게 아닐까?“아무 말도 안 했어. 인아야. 너무 걱정하지 마.”“오빠, 오빠는 영원히 내 편이지?”설기웅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여동생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인아야. 너와 성혜인이 싸운다면 난 당연히 네 편이지. 네가 억울하고 화나는 것 잘 알아. 내가 나중에 다시 기회를 찾아볼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렴.”그러나 설인아는 여전히 불안했다.“알겠어. 믿고 있을게.”전화를 끊은 설인아는 망설임 없이 그 남성에게 전화를 걸었다.“설우현 혹시 성혜인 정체 안 거 아니에요?”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이 타이밍에 성혜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설기웅도 그들 편에 선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그녀가 어떻게 알까. 이 남성의 눈에 자신은 그저 버려진 장기 말이라는 것을.그는 버려진 장기 말을 상대하는 것조차 귀찮았다.“아니에요.” 말을 마친 그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려다.그의 가면이 옆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그는 대리석 테이블을 손끝으로 톡톡 두드리며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서주혁의 회복이 너무나 빨랐다. 제원시는 거의 그의 손안에 있으니 성혜인의 신분을 밝히는 것 정도야 쉬운 일이었다.하지만 역시 너무 눈에 거슬렸다.그가 양미간을 짜증스레 문지르고 있을 때 진백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운아, 우리가 의심받게 되면
사진 속의 그 여자는 나미선만큼 온화하지 않았다. 싸늘함을 내뿜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기가 남아있었고 두 사람은 몇 센티미터 떨어져 다정하게 기대어 있었다.카메라를 바라보는 설의종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은 부드러움이 가득 차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있지 않았다. 여자의 두 눈에서는 지혜로움이 느껴졌고 그 시선을 본 설기웅은 뭔가에 찔릴 듯 뒤로 몇 발짝 물러섰다.그는 몸을 추스른 후에야 비로소 숨을 내쉬었다.설기웅은 그 눈이 매우 익숙하여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 잠깐 밀려왔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사진 속의 여자는 지금의 어머니인 나미선과 전혀 닮지 않았다.나미선은 주부에 길들여진 여자처럼 평생 가족만을 바라보며 살았다.그러나 사진 속 여자의 눈에는 뭔가 아주 큰 것이 담겨 있었다. 야망이 느껴지면서도 포부도 보였고 마치 세상을 꿰뚫어 보는 듯한 통찰감도 느껴졌다.투명하면서도 세속적인 눈빛이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막상 만나보면 겁먹고 뒤로 물러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설기웅은 잠깐 바라보다가 천천히 사진을 설의종의 손바닥에 다시 올려놓았고 그렇게 사진은 그의 손에서 원래의 자연스러움을 되찾았다.설인아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알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온 설기웅은 모든 걸 뒤로하고 설씨 가문에서 잠을 잤다.깨어났을 때 그의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30통 이상 있었는데 모두 설인아에게서 온 것이었다.그는 재빨리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설인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오빠, 어젯밤에 안 들어왔지? 난 눈을 감을 때마다 그 남자들의 얼굴이 아른거려. 예전에 알던 사람한테서도 그 영상들을 받았어. 흑흑... 왜 사람들 다 그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도대체 영상은 누가 찍은 거야? 설마 성혜인 씨 아닐까? 플로리아에서 내쫓고 싶어서 일부러 날 망가뜨린 거잖아. 미워, 정말 미워죽겠어. 왜 아직도 안 죽는 거지? 저런 인간은 죽어도 싸다니까?”설기웅은 기분이 오락가락했다
단호함이 박힌 그 말을 들은 설기웅은 꼼짝도 못 하고 문 앞에 서 있었다.그렇게 몇 분 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하늘은 우중충하게 변했다.사람의 감정은 날씨에 쉽게 영향을 받는다.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던 설기웅은 그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차 한 대를 발견했다.차가 멈춘 후 설우현이 모습을 드러냈고 곧이어 반승제와 성혜인도 함께 내려왔다.성혜인을 본 설기웅은 온몸의 가시를 곤두세웠다.“여기가 어디라고 와? 죽고 싶어?”성혜인은 반승제 옆에 서 있었다. 우산을 들고 있던 반승제는 행여나 그녀가 비를 맞을까 봐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있었다.“형!”설우현은 혼자 우산을 들고 있었는데, 두 사람이 이대로 떠날까 봐 걱정하는 듯 안절부절못했다.“형, 제발 그만 좀 해요!”설기웅의 얼굴은 매우 싸늘했다.“우현아, 넌 도대체 왜 저런 여자를 설씨 가문에 데려온 거니? 우리 집이 더러워져도 된다는 거야?”설우현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해다.“일단 아버지 만나러 올라가요. 형, 아무리 이 상황이 불편하더라도 제가 아버지한테 말하려는 게 뭔지 듣고 가세요.”설기웅은 온몸으로 화를 내뿜었다. 그는 성혜인뿐만 아니라 반승제마저 원망하고 있었다.바람둥이 반승제 때문에 설인아가 이렇게 비참한 처지가 됐으니까.‘인아가 설마 반승제를 만나려고 그레이 지대에 갔던 건가? 빌어먹을! 쟤네가 우리 인아를 망쳐버렸어.’“아무 말도 안 듣고 간다면 전 이제부터 형이랑 연을 끊을 거예요.”예상치 못한 협박에 잔뜩 긴장한 설기웅은 어쩔 수 없이 분노를 억누르며 그들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갔다.성혜인도 설기웅이 짜증 나는 건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반승제가 옆에 있어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됐지만 설기웅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한 무리의 사람이 설의종 옆으로 다가가자, 도우미들은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반승제는 백발이 된 설의종을 보고 순간 깜짝 놀랐다.비록 설우현을 통해 들은 얘기였지만 직접 보니 더 충격적이었다.심지어 성혜인조차도 놀라서 눈살을 찌푸렸다
성혜인은 설기웅을 상대하지 않고 조용히 나미선을 바라봤다.닮았다. 성격은 다른 것 같지만 너무 닮았다.하지만 임지연이라면 절대 이런 말투로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고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을 것이다.임지연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항상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성혜인을 바라봤다.인생을 살면서 성혜인은 자신을 바라봤던 임지연의 눈빛을 수없이 떠올리며 힘을 받았고 그 힘으로 버티면서 살아왔다.그렇다면 눈앞의 이 여자는 누구일까?왜 설씨 가문 사모님인 임지연과 똑같이 생겼을까?설기웅은 두 사람이 자신을 무시하는 걸 보고선 더 이상 사양하지 않았다.“여기! 들어와서 당장 저 두 사람 끌어내. 우현아, 생각이 있다면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마.”참다못한 설우현은 옆에 있던 꽃병을 집어 들고 바닥으로 내리쳤다.유리병 깨지는 소리가 방 전체에 울려 퍼졌고, 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소란 피우는 건 형이잖아요!”그는 성큼성큼 설기웅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설기웅, 너 지금 누굴 내쫓으려고 하는지 알아? 누구한테 독설을 퍼붓는지 알긴 하냐고! 어젯밤 누굴 때렸고 누굴 죽이려고 했는지 아냐고! 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이게 아버지랑 성혜인 씨 친자 확인서야. 설기웅, 정신 차려! 네가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게 누구인지 이제 알겠어?”설기웅은 머리에 친자 확인서를 맞고선 순간 넋을 잃었다.종이 쪼가리는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고 설우현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발로 걷어찼다.“혜인이가 살아온 인생은 임수랑 똑같았어. 누군가에게 이용당한 임수아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려는 수작이었다고. 어차피 죽었다면 더 이상 안 찾을 거잖아. 혜인이가 우리의 여동생이야. 살아있었다고. 형이 우리 동생을 죽이려고 했어. 어젯밤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어떻게 혜인에게 이 진실을 털어놓을까,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계속 고민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차마 용기가 안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