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서주혁이 기억을 잃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온시환은 당황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일단 나랑 돌아가. 네가 제원이 없는 이상 서씨 가문의 사람들은 빨리 재산을 나누고 싶어 할 거야. 그러니까 네가 전반적인 상황을 주관해야 해. 일단 병원에 가서 검사 좀 받아야 해.”그의 말처럼 이곳에 전문 의료진은 없었다.서주혁이 무의식적으로 다시 장하리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이분도 주혁 씨의 오랜 친구예요. 친구분이 찾아오셨으니 이제 위험한 일은 없을 것 같아요. 갑시다. 함께 돌아가요.”함께 가자는 말을 듣고서야 서주혁은 안색이 밝아졌다.세 사람은 함께 차에 올라탔고 온시환이 앞장섰다.사실 온시환 역시 며칠간 갇혀 있었다. 전에 반승제의 일로 그와 결탁하고 있다고 생각한 윗선의 사람들이 그의 종적에 대해 샅샅이 뒤져보다가 이틀 만에 겨우 혐의를 벗을 수 있게 되었다.서주혁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하마터면 기뻐서 통곡할 뻔했다.병원에 도착한 후, 온시환은 서둘러 서주혁을 데리고 검사실로 향했다.서주혁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을 서씨 가문에 미리 알렸으므로 검사가 끝나기도 전에 가족들이 찾아왔다.대략 십여 명이 모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장하리는 줄곧 서주혁을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서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두 좁은 복도에 대기하게 되자 구석으로 밀려났다. 이맘때쯤 검사를 마친 의사가 검사에서 나왔다.“큰 문제 없습니다. 오늘 중으로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서주혁은 회복력이 강했기 때문에 상처에 모두 딱지가 앉아 더 처치할 필요도 없었다.서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은 조금 미묘했다. 서주혁이 남겼을 주식을 놓고 경쟁하던 사람들은 난처한 상황에 놓였다.그들 중 서수연이 가장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그럼 뭘 기다리고 있어요! 선생님, 얼른 수술 시켜주세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30분도 안 되어 수술을 집도했다.서수연은 다급한 마음에 구석에 서 있는 장하리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하지만 장하리
서씨 가문의 사람들이 이름을 듣고 고개를 돌려 보았다.구석에 조용히 서 있던 장하리는 한순간에 받는 스포트라이트에 볼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며 몸이 굳었다.“대표님.”서주혁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찌푸려졌다. 둘이 함께 있을 때는 주혁 씨라고 부르더니 갑자기 대표님이라?그는 불만을 감추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이리 와봐요.”장하리는 천천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서씨 가문 사람들의 차가운 혐오와 증오의 눈빛이 모두 여실히 느껴졌다.걸어가는 사람을 보며 서수연은 드디어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렸다. 전에 주혁 오빠를 꼬셔 차에 탔던 그 천한 사람 아니던가?빌어먹을. 그 천한 년이 감히 오빠가 기억을 잃은 틈을 타 꼬리를 쳐?서수연은 장하리를 매섭게 바라보았으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로 날뛸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오빠의 수술이라는 것을.오빠가 빨리 기억을 되찾아야 서씨 가문의 상황이 안정될 것이다.장하리의 손을 마주 잡은 서주혁은 그녀의 불안한 감정을 눈치챘다.“제 걱정 때문에 그래요? 그냥 작은 수술일 뿐이에요. 3시간이면 깨어날 수 있다고 했어요.”장하리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렇게 많은 서씨 가문 사람들 앞에서 도저히 솔직히 말할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굽혀 서주혁의 귓가에 속삭였다.“주혁 씨, 수술이 끝나면 제일 먼저 제 이름을 불러줄래요?”허리를 어정쩡하게 굽힌 모습이 괜히 측은해 보이고 눈을 살며시 감은 모습도 연약해 보였다.서주혁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진지하게 대답했다.“그럴게요.”그제야 장하리는 안도하며 그의 손을 놓았다.“들어가요.”서주혁은 잠시 생각한 뒤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저는 하리와 이혼할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 이혼하라고 부추기거나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앞으로 하리는 제 아내입니다.”그의 선전포고에 서수연은 마음이 급해졌다. 장하리 이 미친년이 감히 아내라고 속여? 정말 비열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다.“오빠 이 여자한테 속은 거예요! 오빠랑은 아무 상관 없던 천한 여자일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잔뜩 찌푸려졌다. 이진이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말을 걸자 서씨 가문 사람들의 얼굴에는 혐오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이진의 목적은 이 사람들이 장하리를 음란한 여자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다.장하리는 그 어떤 반박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입술을 깨물었다.이런 환경에서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틀린 것이기에 차라리 서주혁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게 훨씬 낫다.장하리를 뚫어지라 노려보던 서수연은 그녀의 뺨을 한 번 더 때리고 싶었지만, 방금 전 서주혁의 행동이 생각나 그럴 수가 없었다.서주혁이 정신을 차린 후에도 계속 장하리를 감싸고 돌 가능성이 남아 있기에 지금 섣불리 행동하다간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어질 수도 있다.그러니 반드시 때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그녀는 장하리가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며 이를 갈았다.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키 크고 늘씬한 남자가 서 있었다.남자의 곁에는 임경헌이 있었는데 한동안 모습이 드러내지 않더니만 바람둥이의 분위기가 거의 씻겨나간 듯했다.그동안 반씨 가문과의 왕래를 끊은 그는 반희월의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사업에만 몰두했다. 옆에 있는 남자는 현재 그의 집주인이자 서씨 가문의 일원이었다.단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남자는 서씨 가문에서 쫓겨났고, 지금까지 그의 부모님은 여전히 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지난번 서씨 가문이 서주혁의 장례를 치를 때 서우진도 사의를 표하려고 참석했으나 서씨 가문 가족들은 그를 들여보내지도 않고 뻔뻔스러운 배신자라며 욕설을 퍼부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임경헌도 귀찮은지 캐묻지 않았다.서우진은 복도 가장 먼 곳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싶은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마침 의사가 나오자 그는 거듭 확인했다.“우리 형 정말 괜찮아요?”의사는 마스크를 벗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괜찮을 겁니다. 피가 조금 고여있을 뿐이지 금방 기억을 되찾을 거예요.”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는 10여 분 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다가 임경헌을 보며 말했
서우진은 포스 넘치게 경적을 울렸다.“우리 형이 반승제 씨랑 친한 사이인 건 알죠? 아이러니하게도 한 명은 기억을 잃었고, 다른 한 명은 반역이라는 누명을 쓴 채 도망치고 있네요. 승제 씨를 잡으려는 사람이 너무 많을수록 위험하니까 경헌 씨 같은 사회 초년생은 일단 본인 소유의 별장이라도 하나 마련하는 게 가장 좋아요. 물론 지금 모은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죠.”그 말을 들은 임경헌은 풀이 잔뜩 죽은 채로 씁쓸함을 드러냈다.그러자 서우진은 재빨리 다시 그를 위로했다.“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에 그만큼의 돈을 모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적어도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났으니 반은 성공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 밤 술 한잔 어때요?”“좋아요. 전 가장 비싼 술을 마실 거예요.”“제가 살게요.”서우진은 손목에 명문 시계를 찬 채 여유롭게 핸들을 돌렸다.속세의 때를 벗은 임경헌보다 오히려 그가 더 부잣집 도련님 같은 상황이 되었다....그 시각 병원.두 시간 후, 서우혁이 밖으로 나왔다.장하리는 보고 싶은 마음에 재빨리 앞으로 다가갔지만 이내 서수연에게 밀려났다.“어딜 만져요? 꼴도 보기 싫으니까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고 꺼져요.”이진은 장하리를 끌어당기며 비아냥거렸다.“하리 씨, 쟤네랑은 상대하지 말아요. 어차피 오빠 바보니까.”장하리는 두피가 저리는 느낌에 재빨리 그에게서 벗어났다.그 반응에 이진은 흥미로운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그녀의 턱으로 손이 향했다.장하리는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행동 좀 조심해주세요.”“어머, 하리 씨에게 이런 성깔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그는 장하라의 분노가 안중에도 없는지 마치 새기 고양이를 놀리는 듯 철저하게 무시했다.힘이 없을 때는 화가 난 모습조차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마련이다.모든 사람이 서주혁의 병실로 들어가 그가 깨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서수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장하리는 복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진은 고통으로 인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의 사전에는 여자를 때리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었지만, 장소가 병원이고 바로 앞에 서씨 가문이 있으니 참을 수밖에 없었다.그 고통이 지나가자,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싸늘한 시선으로 장하리를 바라봤다.그녀는 눈살을 찌푸린 채 그를 무시하고선 조심스럽게 병실 안을 들여다보았다.그렇게 장하리는 몸 전체 마비될 정도로 두 시간 동안 서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안에서는 인기척이 들려왔다.모두의 시선 속에서 서주혁의 눈꺼풀이 움직였고 그걸 알아차린 서수연은 재빨리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오빠!”서주혁은 눈을 뜨고 무심하게 천장을 바라봤다.“오빠, 지금 어때요? 괜찮아요? 뭐 생각나는 건 없어요?”눈물을 펑펑 흘린 서수연과 달리 서주혁은 머리가 아픈지 표정이 일그러졌다.비록 작은 수술이지만 몸이 찌뿌둥한 듯 사라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남은 가족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가득했으나 저마다 위선적인 모습으로 돌변했다.“주혁아, 괜찮다니 다행이구나.”“정말 하느님이 도와준 건가 봐요. 전 솔직히 죽었다고 끝까지 믿지 않았거든요.”번지르르한 말과 달리 그들은 당시 시신에 대한 추가 확인도 없이 서둘러 장례를 치렀다.서수연은 병실 문밖에 장하리를 바라보며 악랄함을 드러냈다.“오빠, 저 여자가 정신을 잃은 틈을 타서 본인이 아내라며 오빠를 속였어요. 정말 역겹지 않아요? 이런 건 절대 용서하면 안 돼요.”서주혁은 이제 막 깨어나서 그런지 모든 게 시끄럽게만 느껴졌다.그러나 서수연의 얼굴에는 흥미로움만 가득했다. 어쩌면 수술을 받은 후에도 장하리를 감싸고 돌지 확인하고 싶었던 모양이다.“오빠, 당연히 저 여자한테 따져야죠.”서주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너희들은 다 나가. 그리고 시환이 좀 불러와 봐.”이제 그는 온시환에게 확인해야 할 중요한 일이 떠올랐다.지금까지 장하리를 한순간도 언급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서수연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시환 오빠
말투는 오히려 예전과 똑같았다.마지막 희망이 철저하게 짓밟힌 장하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저 얼굴이 화끈거렸다.고통스러움과 수치심이 동시에 몰려온 상황에 하필이면 서수연까지 옆에서 부채질했다.“우리 오빠 한 말 들었죠? 그러니까 빨리 꺼져요. 안 그러면 사람 불러서 쫓아낼 거예요.”장하리이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밖으로 나가자 서수연은 조롱 섞인 목소리로 뒤에서 혼잣말했다.“난 주제 파악 못 하는 여자들이 그렇게 한심하더라. 남자 침대에 기어오르면 인생이 바뀐다고 착각한 모양이지? 자기가 얼마나 추잡스러운지도 모르고.”말을 마친 그녀는 심지어 장하리의 모든 일을 친한 친구에게 터놓았다.서수연과 친구들이 속한 그 무리는 꽤 유명했다. 비록 성혜인에게 당한 적이 있어 여전히 그녀를 두려워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사람은 장하리인 만큼 무서울 게 없으니 기세가 하늘을 치솟았다.또한 그녀는 성혜인으로 인해 겪은 모든 손실을 장하리에게서 돌려받고 싶었다.서수연은 가볍게 비웃고선 서주혁의 분부대로 온시환을 데려왔다.병실에 들어선 온시환은 주위를 둘러봤지만 장하리가 보이지 않아 조금 이상했다.서주혁은 수술 전에 그녀를 껴안은 채 입을 맞추며 난리를 피웠고, 장하리도 걱정된 모습으로 애간장을 태웠다. 하지만 그가 깨어났는데 장하리가 떠났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하리 씨는요?”온시환은 성혜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되레 장하리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그는 성혜인을 잔꾀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반승제의 아내였지만 바람을 피우며 그를 농락해 완전히 바보로 만들었으니까.하지만 장하리는 다르다. 언뜻 보기에도 매우 정직해 보였고, 심지어 반승제가 사람을 시켜 조사한 적이 있었으니 믿음직했다.“갑자기 그 여자 얘기는 왜 하는 거야?”서주혁은 짜증이 나는 듯 혐오감을 드러내더니 연신 헛구역질했다.그는 이불을 들추고 주저 없이 침대에서 내려와 화장실로 향했다.병실 입구에 서 있던 온시환은 그의 안색을 보고선 고
서주혁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옷을 정리하기 위해 근처 거울 앞에 섰다.“교통사고를 당하기 전에 승제의 부탁을 받았어. 설씨 가문의 아가씨를 조사해달라고 했거든.”온시환은 이 일에 대해 들은 적 있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시환아, 최근에 일어난 일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 좀 해줄래? 특히 승제랑 혜인 씨에게 관련된 일은 사소한 것까지 빼놓지 말고 전부 얘기해줘.”그는 장하리의 이름만 떠올려도 속이 불편한 듯 더 이상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온시환은 서둘러 플로리아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에게 알려줬다.서주혁은 10분이 걸려서야 지금까지 자신이 받았던 모든 정보를 정리했다.“교통사고 당하기 전에 세운이를 만났어. 만약 네가 세운이에게 다른 신분이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면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니 너무 수상하네. 어떻게 지금까지 숨긴 거지?”서주혁은 신중한 성격을 가졌다. 그들 몇 명은 모두 서로에게 진심이었기에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않기로 결심했었다.따라서 반승제가 진세운을 의심하는 제스처를 취했을 때는 그가 정신을 차려야만 뭔가 선택을 내릴 수 있었다.하지만 이제 진세운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 그다음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그때 세운이를 만나고 서천으로 향했어. 내가 조사한 바로는 설씨 가문의 아가씨가 서천 병원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거든. 우리의 인식 속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철밥통이잖아? 그런데 최근 따라 서천 병원에서 많은 의사를 해고한 거야. 그래서 직접 가보려고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게 됐어.”“주혁아, 승제 사람들한테서 들었는데 임수아 씨가 설씨 가문의 아가씨래.”서주혁은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겉모습만 본다면 임수아가 확실했지만, 그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이번에는 더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직접 서천에 가볼 거야. 사실 이미 마음속에 막연한 추측이 하나 있는데 괜히 내가 승제의 판단에 영향을 끼칠까 봐 말은 못 하겠어. 일단 한번 현장에 가봐야
두 대의 차량이 동시에 서천으로 향했다. 생각이 많아진 서주혁은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게끔 수많은 경호원을 동원했고 앞뒤로 경호하게 했다.그는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키보드를 내리치고 있었다.설기웅은 다른 차에 타고 있었다. 그의 핸드폰에는 수천 개의 메시지가 쏟아졌는데 그중 대부분은 설인아가 보낸 것이다.설의종은 설인아를 쫓아낸 후 모든 은행 카드를 끊었다.명문가는 기본적으로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강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동안 공주님 대접을 받던 설인아가 갑자기 떠났으니 사람들은 단번에 설씨 가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다며 확신했다.설기우은 허리를 곧게 세운 채 자신의 핸드폰에 담긴 설인아의 구조 메시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그동안 목숨 걸고 아끼던 설인아가 자신의 친동생이 아닐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어렸을 때부터 설의종은 친동생인 설인아를 많이 사랑해 줘야 한다며 강조했던 말이 뇌리에 박혔다.[오빠, 이 사람들이 날 비웃어. 나 너무 힘들어. 심장이 찢어질 것 같은데 이러다가 죽는 건 아니겠지?][임수아 씨의 일은 정말 내가 의도적으로 계획한 게 아니야. 난 혜인 씨가 목표였다고. 그 차에 설인아 씨가 탈출은 아예 몰랐어. 오빠, 이건 누가 일부러 설계한 게 틀림없어. 내가 혜인 씨를 싫어한다는 걸 알고 누군가 날 이용한 거야. 왜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지? 그렇게 오랫동안 설씨 가문에서 지냈는데 아무리 내가 가족이 아니더라도 믿어줄 수는 있잖아. 솔직히 이건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잖아.]설기웅은 메시지를 보고선 표정이 일그러졌다.때마침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고, 아니나 다를까 설인아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요즘 따라 전화를 더 자주 했지만 설기웅은 한번도 받지 않았다.하지만 방금 본 메시지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수신 버튼을 눌렀고 핸드폰 너머로는 설인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오빠, 평생 연락 안 받는 줄 알았잖아. 엉엉... 나 아파. 사람들이 어제 때렸어.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