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혜인의 방에서 나간 남성은 곧바로 다른 방으로 향했다.이미 여러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아 그가 이 무리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K 씨, 세 군데 세력이 수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서 오래 버티긴 힘들 겁니다.”2주 동안 버틴 것도 모두가 최선을 다하며 수색을 방해했기에 이루어낸 결과였다.남성이 천천히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았다.“그럼 반승우한테 언질 줘요. 이 기회에 반승제를 죽이지 못하면 이제 그 몸 통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그의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몸을 통제한다고?가볍게 웃는 남성의 눈이 사악하게 빛났다.“그냥 그렇게 전해주면 돼요. 그리고 이거, 반승우한테 꼭 전해줘요.”그가 건네는 물건은 어르신이 성혜인에게 선물한 팔찌였다. 그녀가 종래로 착용하지 않은.공교로운 것은 반승제와 사이가 좋았던 그 며칠간, 성혜인이 마침 그 팔찌를 착용하고 그에게 어르신한테서 받은 것이라고 말했었다는 것이다.지금 이 남성이 그 팔찌를 반승우에게 준다는것은 반승우더러 시나리오를 쓰라고 명령하는 것이었다.그리고 그는 사람들 뒤에 숨어서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그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과정을 구경할 수 있었다.부하는 빠르게 팔찌를 들고 시야에서 사라졌다.남성은 먼 곳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반승우가 상자를 받을 때 그는 회사 꼭대기 층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프런트 데스크에서 누군가 상자를 가져다주며 말을 보탰다.“대표님, 배달원이 말하길 성혜인 씨 물건이랍니다.”배현우가 놀라며 즉시 상자를 열었고, 눈에 띈 것은 팔찌였다.성혜인에게서 본 적이 있는 팔찌였다. 성혜인을 데려간 사람이 팔찌를 보내온 것이다.배현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일순간 냉소했다.곧이어 그의 휴대폰에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대표님은 이 기간을 틈타 몸 통제권을 완전히 가져야 합니다.]이 메시지에 그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대표 사무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어두운 빛이 빠르게
그의 옆에 앉은 반승제는 몰골은 초췌했지만 기세는 절대 밀리지 않았다.“고작 팔찌 하나 들고 있으면서 모든 주식을 내놓으라니. 제가 바보인 줄 아세요?”배현우가 입꼬리를 치켜올렸다.“설마 팔찌겠어? 사인만 하면 혜인이를 데려와 네 곁에 있게 하겠다고.”“좋아요.”반승제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그럼 우리가 계약하는 날, 전 반드시 혜인이 봐야겠어요. 혜인이가 눈에 보이게 되면 사인해 드리죠. 형, 자꾸 저 가지고 놀지 마세요. 저 미치면 반씨 가문 전체가 뒤집힐 수도 있어요.”이렇게 말하며 그의 시선이 담담하게 고택 내부를 훑었다. 그곳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는 것처럼.배현우는 반승제가 말하는 바는 꼭 지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반승제가 회사 대표가 아니게 되는 날엔 반씨 가문의 세력조차 쓸 수 없을 텐데.그때가 되면 그는 직접 반승제를 찾아 반승우가 똑똑히 두 눈 뜨고 보고 있을 때 죽여버릴 것이다. 그럼 이 지겨운 두 형제를 드디어 완전히 해결해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이후엔 전체 반씨 가문에 제 것이 되겠지.그렇다면 기꺼이.“그래. 그럼 소식 기다리고 있어.”배후에서 이 모든 것들을 계획한 사람이 팔찌를 자신에게 보냈다는 것은 제 편에 서겠다는 말과 같다.배후의 사람은 반승제가 모든 것을 잃기를 원한다.아직 배후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목적은 확실히 안다.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지 않던가?설령 지금 이 순간 성혜인이 그의 손에 없다 하더라도, 반승제가 주식을 포기하고 싶어 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기만 하면 배후의 사람은 잠깐만이라도 성혜인을 보내줄 것이다.반승제가 금방 고택에서 나올 때, 집으로 들어오는 반기훈을 발견했다.둘째 아들을 본 반기훈의 눈이 일순간 일렁였다. 그러나 스쳐 지나가면서도 반승제는 그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이에 일순간 화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한순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과연, 이 둘째 아들은 영원히 길들지 않는 야생 늑대 같았다.역시 반승우
반승제가 회사 지분을 내놓을 거라 약속했다는 소문에 파다하게 퍼졌다.업계에서는 너도나도 토론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성혜인 쪽은 마치 금지된 시간처럼 바깥소식은 전혀 모르고 있다. 그저 이 ‘K 씨’라는 남성이 알려주는 소문들을 귀동냥하며 반승제가 최근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아볼 뿐이었다.K 씨는 오늘도 어김없이 방으로 왔다. 성혜인은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청력이 전보다 예민해졌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그의 발걸음 소리는 비교적 특이했다. 그는 다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은 여유로움을 장착하고 있다.성혜인이 있는 방에서는 항상 마음을 안정시키는 향이 났고 맡기에 거북하지도 않았다.남성이 그녀를 부축하여 창가에 앉도록 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성혜인의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성혜인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넘겨주려 하다가, 뺨에 손이 닿을 것 같아 무심코 거두어들였다.“어제 업계에서 들려온 소식에 의하면 승우 씨가 당신을 데려다주기만 하면 회사의 모든 지분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혜인 씨가 생각하기에 반승제의 행동이 어떤 것 같아요? 함께 회사를 일으키기 위해 고생해 온 상류층 사람들에게 떳떳하지 못할 것 같지 않나요? 이렇게 여자 하나 때문에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겐 인생을 맡기긴 어렵죠.”성혜인은 이 며칠 동안 차분하고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어두워지는 낯빛을 감출 수 없었다.그녀는 심지어 벌떡 일어섰다. 가슴이 심하게 쿵쾅댔다.“이러면 안 돼요. 전 승제 씨가 이러기를 원하지 않아요.”남성이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입꼬리를 쓱 올렸다.“나중에 회사 대표 자리를 정말 포기하게 되면 살아서 제원을 떠날 수 있을지도 의문이네요. 확실히 반씨 가문의 사람들은 반승제를 그다지 신경 쓰지도 않고 있고, 외부 사람들은 반승제를 쓰러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 당신이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면 부담만 주는 것이 아닐까요?”성혜인은 머릿속이
성혜인은 머리가 어지럽고 초조했다. 두통에 관자놀이까지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파 토할 것 같았다.그녀는 방 안에 피운 향초가 자신의 정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남성이 일어나 성혜인을 조심스레 부축했다.“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바깥일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요.”성혜인은 남성에게 부축되어 침대에 몸을 뉘었다. 침대에 누우니 두통이 더 심해졌다.남성이 그녀의 입속에 약 한 알을 넣어주었다.“이 상태라면 제대로 쉴 수도 없을 테니 수면제라도 먹어요.”성혜인은 꼭두각시처럼 천천히 입을 벌리고 음식을 먹었다.남성은 침대 옆에 앉아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응시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귓가에 있는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지작거렸다.그러나 이미 잠에 든 성혜인은 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남성은 침대 옆에서 조용히 10분 동안이나 앉아 있었는데, 그의 시선이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 타오르는 향초로 향했다.성혜인의 생각을 충분히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양의 향초였지만, 성혜인의 의지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확고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그러나 만약 이곳에 계속 머무른다면 반승제 쪽 사람이 곧 찾아올 것이었기에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그가 향초의 양을 늘려 불을 붙였는데 바로 이때 다른 한 사람이 방에 들어오며 발견했다.“K 씨, 이미 최대로 쓴 건데 용량을 더 늘리면 혜인 씨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그러나 남성은 망설임 없이 하던 행동을 계속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 향초가 뇌에 미치는 영향은 복구할 수 있는 거예요. 짧은 시간 내에 뇌에 문제가 생긴다 해도 나중에 서서히 다 회복될 거예요.”문 앞에 서 있는 남자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성혜인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정신은 한결 맑아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향초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물건인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이 향초는 다른 사람이 몇 마디 말로 자극을 주었을 때 혼란스럽게 했고, 잠을
성혜인이 부탁드린다고 한다.한평생 순탄치 않은 길 앞에서 고달픈 처지에 놓여도 그녀는 종래로 구질구질하게 부탁한다는 말을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남성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지만, 큰 표정 변화는 없었다. 단지 좀 궁금하고 알고 싶어졌다.“보고 난 후에 그다음은요? 주식양도서에 사인하는 꼴을 두 눈 뜨고 보고 싶은 거예요? 반승제를 좋아한다면서 구렁텅이로 직접 끌어내릴 작정이에요?”성혜인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기에.남성이 그녀의 팔을 부축했다.“일단 방에 모셔다드리죠. 아직 앞이 안 보이니까 막 다니지 마요.”그러나 성혜인은 움직이지 않은 채 남성의 손을 뿌리쳤다.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이상하기도 하지. 분명 울고 싶지 않았는데, 반승제의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말을 들으니 너무 마음이 아팠다.성혜인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손가락 몇 개가 부러졌다 해도 그는 병원에 꼬박꼬박 가며 몸 관리할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자신을 잘 챙기지 않았다.그녀가 나타나기 전 반승제는 모든 사람에게, 심지어 본인에게까지 무관심했다.성혜인은 우리에 갇혀 어떻게 길을 찾아가야 할지 모르는 작은 동물 같았다.그녀가 등을 벽에 기대어 그대로 주저앉았다.땅바닥에 주저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았다.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눈앞은 그가 앞으로 걸어야 할 길처럼 막막한 암흑뿐이었다.남성도 조급해 하지 않고 물었다.“목 안 말라요? 가져다줄까요?”성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성혜인의 입술은 바짝 말라 피가 고여있었다. 말을 하려고 입을 벙긋하기만 해도 아렸지만 물을 마시고 싶지 않았다.남성이 쪼그리고 앉아 조용히 성혜인을 바라보았다.성혜인은 누군가 곁에 웅크리고 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곧이어 그가 성혜인의 턱을 받쳐 들고는 도우미의 손에서 물을 가져와 먹이기 시작했다.성혜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남성은 턱을 받친 손에 힘을 주며 놓아주지 않았다. 결국 우악스러운 힘에
룸 안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여러 사람의 시선이 반승제를 향했고,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그리고 이때, 술병 하나가 재벌 2세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사람들이 깜짝 술병이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웨이터 옷을 입은 임경헌이 걸어오고 있었다.심지어 웨이터 옷을 입으니 뜻밖에도 매우 멋있어 보였다.임경헌은 망설임 없이 재벌 2세의 멱살을 잡았다.“네가 뭔데 그딴 말을 지껄여?”임경헌은 이 며칠간 스카이웨어에서 일하고 있었다.그에게 남았던 20만 원은 이미 집세로 냈기에 식사할 돈이 필요하여 파트너의 소개로 이곳에서 웨이터 일을 하고 있었다.그는 이곳에서 업계 내에서 퍼지는 가십거리를 어느 정도 듣고 있었다.처음에 임경헌은 줄곧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신의 처지를 양아치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다.그러나 바로 그 친구들에게서 반승제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게다가 화장실에서 미친것처럼 혼잣말하던 반승우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불안했다.머리를 술병에 맞은 데다가 멱살이 잡힌 재벌 2세는 화가 나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이 미친 새끼가. 내 말이 틀렸어? 임경헌 이 새끼 네가 여기서 웨이터를 할 줄은 몰랐네? 그래. 전에 성혜인이 너희 집 인테리어 도와주기로 했다던데. 그 이후에 네가 성혜인을 반승제한테 소개해 줬다지? 둘 다 참 대단해. 같은 여자 하나를 데리고 놀면서도 역겨움도 몰라. 다 놀고 낡아빠진 여자를 반승제한테 넘겨주니 어떻디? 지금 반승제는 그 낡아빠진 걸 위해 회사도 버리겠다잖아. 멍청이 새끼들.”으스대던 재벌 2세가 임경헌에게 주먹을 맞았다.임경헌이 씩씩대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제지했다.온몸이 굳은 채 뒤돌아보니 줄곧 말이 없던 반승제였다.“형...”임경헌은 서글퍼졌다. 반승제는 그의 마음속에서 거의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의 마음속에서 반승제는 반승우의 대체품도 아니었으며 손대는 일이면 무엇이든 성공하는 유일무이한 형이었다.그러나 이 업계 내의 분위기 자체가 이러했다
모두가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했지만 앞서 벌어진 상황 때문에 아무도 감히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이 일이 벌어지는 동안 객실 문은 열려있는 채로였고 문 앞에서 바닥을 청소하는 청소부는 객실 내부의 움직임을 모두 확인하고 있었다.재벌 2세가 망언을 시작할 때부터 그녀는 모두 똑똑히 듣고 있었다.예전이었다면 반승제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반승제에 대한 선망이 이미 매우 떨어진 것이다.그가 더 이상 BH 그룹의 대표가 아니게 되면 더욱 심한 차별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반승제의 손가락에 여전히 붕대가 감겨 있다. 원래 그는 스카이웨이에 오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를 서주혁이 걱정되어 데리고 온 것이었다.지금 반승제의 몸은 이곳에 있었지만 정신은 어디에 두고 온 건지 몰랐다.그의 시선이 줄곧 객실 입구에서 바닥을 닦고 있는 직원을 향했다.그의 기억이 맞다면 직원은 이미 같은 곳에서 십여 분 동안 닦고 있는 것이었다.성혜인의 머리카락은 모자에 의해 가려져 있었고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했다.그녀는 줄곧 잠자코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룸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곧 문이 닫히고 임경헌이 나왔다.내부의 술은 이미 교체되었고 임무를 완수한 임경헌은 자신이 받은 팁을 손으로 세고 있었다. 무려 40만 원이나 되는 돈이었다.앞으로 걸어가다 그가 실수로 직원과 부딪혀 급히 사과했다.“아, 죄송합니다.”부딪히는 바람에 성혜인의 고개가 귀로 젖혀졌고 손에 든 걸레도 붕 떠서 손에서 놓치고 말았다.성혜인은 이미 분장을 한 상태였다. 얼굴은 검게 칠했고 가짜 흉터도 덕지덕지 붙였기 때문에 보기에 매우 흉했다.부축해 일으켜 세우려던 임경헌이 멍하니 앞을 보며 바닥을 더듬고 있는 직원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스카이웨어에 어떻게 맹인이 들어온 거지?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모두 제원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므로 이 맹인이 다른 사람과 부딪히기라도 하면배상도 못 할 것이었다..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유를 물으
설기웅이 맞받아 주먹으로 반승제의 배를 가격했다.“그래도 성혜인보단 오래 살걸? 성혜인은 시체조차 찾지 못했잖아!”그의 말이 끝나니 주위 공기가 마치 무언가에 의해 순식간에 빨려 들어간 듯 가라앉았다.반승제가 쏜살같이 달려가 설기웅의 몸을 들이받았다.두 사람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주먹질을 했기에 주변의 꽃병이며 유리가 모두 깨져버렸다.이 순간 스카이웨어 담당자는 저 멀리 숨은 채 감히 싸움을 말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누구라도 두 사람의 높은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결국 지나가던 설우현이 이 장면을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형이 누군가와 주먹다툼을 하는하는 것을 보았다.이미 잃을 것이 없는 반승제에 비해 사릴 게 많은 설기웅이 더 손해 보는 싸움이었다.“그만해요! 아니, 승제 씨 왜 이렇게 싸움 잘하는 거예요?”싸움을 말리던 설우현마저 주먹에 뺨을 만고 광대뼈 부분에 멍이 들었다.반승제의 두 손은 한사코 설기웅의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성혜인이 죽었다면 설인아는 그보다 더 잔인하게 죽을 거야. 두고 보자고.”설기웅의 입가는 모두 피투성이였다. 그가 엄지로 쓱 문질러 닦더니 냉소했다.“네 목숨줄이 그때까지 달려있기나 기도해. 제원에 널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인 줄 알아?”설우현이 급히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며 다급히 말했다.“그만, 그만요. 형, 그리고 반 대표님. 두 분 다 체통을 지키셔야죠!”설기웅을 노려보는 반승제의 눈빛이 매섭고 음침하다.설기웅 역시 그를 노려보며 지지 않으려 했다.“네가 그날 나랑 우현이를 향해 총을 쏜 뒤로 설씨 가문은 평생 너랑 원수가 된 거야.”반승제가 입가의 핏자국을 닦으며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북아메리카로 돌아가는 날까지 살 수 있다면 마지막까지 결판을 낼 거다.”말을 마친 그가 바로 자리를 떴다.설우현은 불안한 얼굴로 얼른 형의 뒤를 따랐다.“반승제와 싸운 일은 무조건 아버지께 알려질 거예요. 최근 제원에서 반승제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