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그녀를 발 옆에 두고 설기웅을 바라보았다.설기웅은 자신이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성난 사자가 된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전혀 이성적이지 않다.반승제는 고개를 숙이고 담배를 꺼내더니 새끼손가락에 총을 살짝 걸었다.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자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아무도 그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자신의 친구를 가장 잘 아는 서주혁은 거의 한순간에 설기웅과 설우현에게 달려들어 둘 다 아래로 눌렀다.다음 순간, 총알이 그들이 방금 서 있던 곳을 향해 발사되었다.그들이 제때 엎드리지 않았다면 총알은 설기웅과 설우현의 가슴에 명중했을 것이다.서주혁은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의 총구를 움켜쥐었다."승제야, 진정하고 주변도 찾아 봐.”반승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구두로 설인아의 손가락을 밟았다.설인아는 혼수상태에서 바로 깨어났고 그가 묻는 것을 들었다."어디 있어?”지금 이 목소리는 저승사자의 부름이나 다름없었다.그녀는 정말 두려웠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조금만 망설이면 반승제가 반드시 그녀를 죽일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우우, 몰라, 정말 몰라. 큰오빠, 작은오빠, 살려줘.”하지만 아무도 미친 반승제를 막을 수 없었다."모르겠어요, 그냥 화분을 부쉈을 뿐인데... 그녀가 쓰러져 있어서 죽은 줄 알았고 시신이 거기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정말 모르겠어요.”반승제의 발에 계속 힘이 들어갔고, 설인아는 손가락뼈가 짓밟힐 것만 같았다.“아파, 아파. 우우우, 아빠... 살려주세요.”몇 시간 전 성혜인의 고통은 그보다 천 배나 심했다.설기웅이 더 이상 참지 못하자 별장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밖으로 나와 손에 총을 들고 반승제를 겨누었다.반승제는 그저 손에 든 담배꽁초를 버리고 냉소를 흘렸을 뿐이었다."설기웅, 네 부하들이 감히 손을 쓴다면 너희 셋 다 살아서 제원을 떠날 수 없다고 장담하지.”설기웅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여기가 북미라면 반승제와 맘껏 싸움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하필이면 제원인데
이렇게 강력한 세 가문이 모두 투입되었지만 현재까지 성혜인에 대한 어떠한 소식도 없다. 그러면 성혜인이 스스로 도망간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녀를 끌고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뒤에 있는 세력 역시 매우 강력하다. 서주혁이 머리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꽁초를 집어서 밖으로 던졌다. "피우지 마. 계속 피우면 사람을 찾기도 전에 네가 먼저 죽을 거야." 반승제는 얼굴을 꽉 쥐다가 차에서 내려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차는 하룻밤 동안 운행되어 차체에 진흙이 덮여 있었다. 그의 바지끝까지 진흙으로 뒤덮였다. 높은 지위에 있던 반승제 대표는 벌써 사라졌고 이제 그는 그저 초라한 한 남자였다. 반승제가 차에서 내릴 때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서주혁이 그를 받아주었다. 그들의 세력이 설기웅의 빌라를 중심으로 반경 백 킬로미터의 지역을 덮었는데, 어떻게 그녀를 찾지 못할 수 있는거지. 성혜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녀는 이미 죽었을까? 이 가능성을 생각하면 반승제는 자신의 심장이 조여오는 것을 느꼈다. 그의 눈에는 붉은 핏줄만이 보이며, 머리가 어지럽다고 느꼈다. 혜인아...분노가 마음속으로 번지자 그는 한 통의 메시지를 보냈다. 십 분 후, 설기웅의 별장은 대형 굴착기 10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설기웅은 아직도 병원에서 설인아를 지키고 있어서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식은 이미 널리 퍼져 나갔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지만 설기웅의 별장의 참혹한 모습을 보고 나서는 더는 토론할 것도 없이 단톡방이 해체되었다.반승제가 그들에게도 화를 풀지는 않을까 두려웠다. 성혜인의 실종 소식은 관계자들 사이에 알려졌다. 3 일 동안 모두가 평온하지 않았다. 모든 곳을 다 찾아봤지만, 성혜인은 마치 사람처럼 증발해 버렸다. 반승제는 처음에는 분노하다가 나중에는 차분하고 조용해졌다. 반기훈이 그를 찾아와서 달래주었지만,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성혜인이 내부에서 남자들을 유혹하고 자신의 두 아들을
배현우가 냉소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것이 바로 반승제가 자신보다 못 한 부분이다. 자신은 성혜인의 실종으로 인해 절대 이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그가 조용히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데 반기훈이 곁에서 그를 불렀다.“승우야, 승우야?”그제야 배현우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요새 회사에서 수고 좀 해야할것 같아. 내가 보기에 승제가 당분간 회사는 안 나갈 것 같거든.”“제가 형인데,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이죠.”반기훈이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러나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보는 배현우는 다른 생각 중이었다.그 역시 성혜인을 데려간 사람이 누구일지, 무슨 목적으로 데려간 것일지 생각하고 있었다.병원.마침내 응급실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의사가 설인아가 누워있는 베드를 밀며 나왔다.“일단 목숨은 건졌습니다만, 인아 씨 몸이 너무 약해서 보호자 분이 수고스럽지만 열심히 보살펴주어야 합니다.”설기웅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벽에 기대었다. 이제야 딱딱하게 굳었던 팔다리가 조금 나른해지는 듯했다.“네. 잘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설인아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창백한 얼굴에 눈이 퉁퉁 부은 동생을 보며 설기웅은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았다.그는 입술을 짓씹었다. 눈에는 차가운 빛이 아른거렸다.곧이어 그의 전화가 울렸고, 받으니 부하의 목소리가 바들바들 떨려왔다.“대, 대표님. 반승제가 별장을 초토화시켰습니다...”참, 사람을 업신여겨도 유분수지.핸드폰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호흡마저 불안정해져 왔다.“성혜인 찾으러 간 사람들한테 전해. 찾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죽이고 처리하라고. 반승제 그 새끼가 유골까지 찾지 못하게.”전화기 너머에서 듣고 있던 부하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대표님, 정말 그렇게 해야 합니까?”설기웅은 종래로 이렇게까지 흉악한 일을 저질러보지 않은 사람이다. 이번에 반승제가 확실히 설기웅의 마지노선을 넘어버린 듯했다.“그래. 조만간 제
설우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기웅은 가문만 생각하지 외부인에게는 무자비하고 냉혈한이었다.또 이틀이 지나고, 세 가지 세력은 여전히 성혜인을 찾고 있었으며 업계 내부는 시끄러웠다.그러나 성혜인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다.이 이틀 동안 반승제는 줄곧 밖에 있었고 네이처 빌리지로는 돌아오지 않았다.네이처 빌리지의 모든 고용인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두 실종된 성혜인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갔다.그리고 모두가 애타게 찾는 성혜인은 이제야 침대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눈앞이 어두웠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침대 머리맡을 더듬으며 불을 켜려고 했다.이때 누군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몸은 좀 어때요?”몸이 뻣뻣해진 그녀는 이 목소리가 왠지 익숙한 듯 했다. 그러나 어디서 들었던지는 기억 나지 않았다.남성은 매너 있게 그저 성혜인의 손목을 살짝 쥐었을 뿐이었다.“많이 다쳐서 당분간 마구 움직이면 안 돼요.”“불 좀 켜주세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남성이 잠시 멈칫하더니 실내를 밝게 비추고 있는 햇빛을 바라보았다.그가 손을 들어 성혜인의 눈앞에서 흔들어 보였다.그러나 성혜인의 눈동자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성혜인 역시 금방 알아챘다. 그녀는 제 몸을 비추는 햇살의 온기를 느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건 없이 여전히 암흑이었다.“저 혹시 실명된 건가요?”머리를 세게 맞아서 신경이 손상된 건가?성혜인의 말투는 차분한 듯 했지만 한쪽에 늘어뜨린 손에 힘을 꽉 쥐고 있어 예쁘게 정리한 손톱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누군가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누군가 그녀를 확인하는 듯했다.외부인인 것 같았는데 두 사람은 성혜인의 건강 상황이 어떤지 이야기하고 있었다.둘 중 한 사람이 회복할 수 있느냐 물었고, 다른 한 사람이 단기간 내에는 어려우며 일시적인 실명인지 영구적인 실명인지도 알 수 없다는 대답했다.성혜인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심장이 땅 밑까지 철렁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이불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한약 냄새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듯했다.성혜인은 자신이 악몽을 꿀 거로 생각했지만, 혼수상태였지만 여전히 평온함을 느꼈다.남성은 침대 옆에 앉아 성혜인이 잠에 드는 것을 확인한 후 커튼을 내려 햇빛을 막았다.이때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이 그에게 보고했다.“반승제와 설기웅이 결국 맞붙게 되었습니다. 설기웅은 이미 BH 그룹의 프로젝트를 전력으로 방해하고 있습니다.”“그렇군요.”그의 시선이 먼 곳의 화원을 향했다가 다시 성혜인에게로 옮겨갔다.성혜인은 곤히 잠들어 있었다.다음 단계는 반승제가 성혜인에 대한 집착을 거두게 하는 것이다.사랑이 깊어질수록 결국 성혜인의 미래 결정에 영향을 끼칠 뿐이었다.그는 남자 하나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결책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방이 고요해졌고 그는 타오르고 있는 향초를 만지작거리려다 옆에 있던 사람이 문득 입을 열었다.“이 향초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당신이 혜인 씨에게 준 약과 함께 복용하면 정신을 흐리게 할 수 있어요. 이 두 가지는 신중하게 사용해야 합니다.”“저도 분수가 있죠. 절대 해치진 않을 겁니다.”다른 한 남자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을 나갔다....악몽을 꾼 반승제가 잠에서 깨 벌떡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린 그는 숨을 헐떡였다.주위를 둘러보고 나서야 자신이 소파에서 잠들었다는 것을 발견했다.벌써 며칠째 쉬지 못한 탓인지 눈은 온통 핏발이 섰고, 결국 더 버티지 못하고 소파에서 잠든 것이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악몽까지 꾸었다.꿈속의 내용을 떠올리며 그는 옆에 놓여있던 물컵을 들었다. 두려움을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손은 속절없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컵 속의 물도 덩달아 떨렸다. 그러다 마침내 컵에 손에서 떨어지며 ‘쨍그랑’ 맑은 소리를 내었다.이때 누군가 거실 문을 밀며 들어왔다. 심인우였다.반승제가 다급하게 물었다.“찾았어?”심인우가 어두운 안색으로 고개를 저었다.“대표님, 이 며칠 사이 반승우 씨가 회사 일을
심인우도 안타까운 마음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심 비서, 계속 찾아요. 모든 사람을 동원해서라도 찾아요.”반승제가 명령하며 소파에서 일어나 옆에 구겨진 채로 아무렇게나 놓인 외투를 집어 들었다.“저도 찾으러 갈 테니.”네이처 빌리지에 사람 그림자라곤 보이지 않는다. 반승제가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성혜인을 찾도록 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영문인지 절대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반승제는 초조했다.그는 심인우를 따라 차에 올라타 등을 뒤로 기댄 채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네이처 빌리지 내부는 여전히 으리으리했지만 안에 인기척은 없었다. 거의 팔리지 않는 빈집 같았다.또 꼬박 하루를 찾으러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아무 정보도 얻지 못했다.이제 반승제는 차를 어디로 몰아야 할지조차 몰랐다. 제원 전체가 자신의 땅이라 생각했는데, 혜인이를 완벽하게 보호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자신은 항상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다.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막연히 운전대에 엎드렸다. 그는 심지어 전에 성혜인이 없었을 때 자신이 어떻게 살아갔는지조차 생각 나지 않았다.그는 정말 무기력함의 극치에 달했다. 사랑하는 사람은 실종되었고, 그랬음에도 얻은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이때 장미가 전화를 걸어왔다.“승제야, 내가 보낸 메일 못 봤어?”반승제는 지하 격투장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의 God 신분을 숨기기 위해.이 사이 바쁘게 돌아치다 보니 장미 누나가 보낸 메일은 줄곧 확인하지 못했다.“나중에 다시 얘기해.”이 말을 남기고 반승제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마치 살기를 포기한 사람처럼 다시 힘겹게 운전대에 엎드렸다.장미는 놀라며 통화가 끊긴 휴대폰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왠지 반승제의 상태가 이상한 것 같았다.적어도 설인아가 설씨 가문의 친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엇이라도 말했어야 했다.그러나 그는 전혀 관심 없는 듯 굴었다.장미는 더 이상 반승제를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아 그가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칸막이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누군가 있었다. 누군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그가 천천히 칸막이로 다가가 문을 발로 차버리니 어색한 표정을 하고 있는 임경헌이 보였다.임경헌은 자신이 이곳에서 사촌 형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그는 요즘 가난하게 지내고 있었다. 전에 친구와 자동차 경주대회에 나가고 싶다고 말한 뒤 어머니가 모든 은행 카드를 정지시켰었다.비록 반승제가 준 카드에 돈이 많이 있긴 했지만, 그는 왠지 사촌 형의 돈을 더 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본래 그에게 있는 돈으로 스카이웨어에는 들어올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밤 그의 파트너가 이곳에서 접대하기로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왔어야 했다. 어찌 되었든 차량 행렬도 그들이 함께 산 것이었기에 술도 함께 마셔야 했다.그런데 칸막이 안에서 사촌 형의 미친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밖에는 분명 아무도 없는데 그는 흉악한 눈빛으로 누군가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하여 깜짝 놀라 숨어버렸는데 사촌 형이 화장실 문을 발로 차 열어젖힐 줄은 몰랐다.그가 어색한 웃음을 터뜨리며 어설프게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형, 이런 데서 다 보네요.”배현우의 안색이 일순간 굳어졌다. 계속 온화한 사람인 척 연기하려 했지만 임경헌이 자신의 말을 모두 들은 것 같았다.아예 죽여버릴까?끔찍한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마자 누군가 화장실 문을 똑똑 노크하더니 건들거리며 물었다.“경헌아, 화장실에 빠졌어?”임경헌 역시 다른 사람의 비밀을 캐내는 데는 영 취미가 없었다. 결국엔 비즈니스 협력뿐인데.누군가 들어오자 배현우의 미간이 다시 살짝 펴졌다. 그는 임경헌을 훑어보곤 자리를 떠났다.임경헌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문 앞에 있던 사람이 배현우가 자신을 스쳐 지나갈 때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곧이어 잔뜩 겁을 먹은 채 걸어 나오는 임경헌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겁이 참 많네.”그가 임경헌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씩 웃었다.최근 두 사람은 가까이 지냈다. 그들은 술도 함
임경헌은 거리에서 물건을 사 들고 포레스트로 반승제를 보러 갈 심산이었다.그에게는 아직 직접 벌었던 60만 원이 있었다. 전에 밥만 축내며 떠돌이 생활했기에했기에 이것이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돈이었다.그는 40만 원을 들여 반승제에게 줄 술 한 병을 샀다. 반승제에게 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건인 걸 알았지만 지금 그에게 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전부였다.이때 친한 형이 옆에서 말을 걸어왔다.“그거 월세방 세 들려고 모으던 돈 아냐? 남은 돈으로 이제 어쩌려고. 이미 60만 원으로도 외진 곳이라야 세 들 수 있는 건데.”임경헌이 술을 소중히 안고 차에 올라탔다.“그래도 써야죠. 사촌 형이 저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승제 형은 저한테 제일 좋은 사람이에요.”남성이 그를 따라 차에 올라탔다. 검은 가죽옷에 귀에 여러 개 피어싱을 단 모습이 보기에 차갑고 시크해보였다.“네 사촌 형이 그런 성격일 줄은 몰랐네. 다들 미친 사람이라 하던데.”임경헌이 또 그를 흘겨보았다.“형이랑 친한 사람들만 착하다는 걸 알아요.”차는 포레스트에 와서 멈췄고 그는 서둘러 내려 대문 앞으로 갔다.온 이유를 설명하자 경호원이 들여보내 주었다.별장 문을 열고 소파에 앉아 있는 반승제를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해졌다.티브이에서는 영문으로 된 흑백 영화가 틀어져 있었는데 뒤돌아보지도 않는 거로 보아 누군가 포레스트를 찾아올 줄은 생각지 못한 것 같았다.그가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피고 있었고, 테이블 위의 재떨이에는 이미 담배꽁초가 가득 쌓여있었다.“형.”임경헌이 가져온 술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선물 가져왔어요. 형이 요새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서.”반승제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술을 힐끗 보고 그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네가 직접 벌어서 산 거야?”임경헌이 멈칫했다. 그는 어떻게 알아차린거지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반승제가 등을 뒤로 젖혔다. 초췌해진 얼굴에 그간의 피로가 드러났다. 여태 밖을 샅샅이 돌아다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
염정아는 주삿바늘을 뽑아버리고 병실 문을 나섰다. 밖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서 있었는데 그들은 온시환의 사람들이었고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왔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보호 받을 필요가 없었다.경호원이 그녀에게 물었다.“염정아 씨, 어디 나가시려고요?”“여기가 너무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내려가려고요.”경호원들은 그녀를 보호하러 온 것이지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하지만 염정아는 진짜 바람 쐬러 나간 게 아니라 병원에서 나온 후 바로 원아정을 찾아 나섰다. 동생이 죽은 것에 대한 증오와 원아정을 찾아내서 무조건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은 복수의 불꽃이 가슴속에 계속해서 타올랐다.염정아는 30분 동안 거리를 헤매다가 하늘나라에 있는 동생이 도운 건지 정말 원아정을 찾아냈다.오늘의 원아정은 더 이상 부잣집 딸의 옷차림이 아닌 수수한 옷차림에 머리는 부스스하고 지저분한 모습이었지만 염정아는 그녀를 너무 잘 알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그녀는 백화점 밖에서 오고 가는 화려한 옷차림의 사람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연승혁의 부하들이 원아정을 못 찾을 만했다. 자신의 체면을 그렇게 중히 여기던 원아정이 거지의 모습으로 가장 번화한 상권에 나타날 줄은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염정아는 멀지 않은 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다가 칼을 사 들고 원아정을 향해 걸어갔다.원아정은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감지 못했고 마음속으로는 연승혁의 부하들이 평생 자신을 찾지 못할 거라고 기뻐하고 있었다.하지만 곧 뒤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외쳤다.“원아정.”아직 반응하지 못한 원아정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자 누군가가 그녀의 목을 향해 칼을 꽂았다.피가 사방으로 튀면서 주변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염정아는 자신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칼을 뽑았다가 분노에 휩싸여 다시 원아정의 몸을 향해 찔렀다.원아정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언제 발각되었고 또 왜 이토록 처참하게 죽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고 당시 CCTV를 확인한 결과, 남성 피해자가 소형차에 치인 뒤 뒤따라오던 트럭이 남성을 깔아뭉갰고 남성이 트럭 차대에 끼어서 몇 킬로미터를 끌려가다가 트럭 뒤를 따르던 차량이 핏자국을 발견하고 계속해서 경적을 울려 트럭 운전기사를 멈추게 했다.트럭 운전기사는 너무 놀라서 머리가 멍해졌고 계속 자신이 사람을 쳤다고 여겼는데 CCTV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주요 책임은 아니었지만 그도 연대 책임을 져야 했다.곧바로 누군가가 사망자의 가족한테 연락하려고 했지만 사망자의 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경찰도 난감한 상황에 빠져 사망자의 교통사고 보도를 TV로 방송하고 사망자가 입고 있던 옷을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같은 시각 염정아는 계속해서 동생을 찾고 있었고 흐려진 하늘을 바라보며 그녀는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불안하고 두려웠다.두 시간 후 온시환의 부하가 마침내 소식을 전해왔는데 바로 차에 치여 사망한 남자의 가족을 찾는 뉴스 보도였다.익숙한 옷을 본 염정아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옷은 동생의 옷이었고 그녀가 사준 거였다.“어디에 있어요? 동생 만나러 가야 해요! 꼭 가야 해요!”그녀는 심한 충격에 기절할뻔했지만, 동생의 곁으로 갈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텼다.시신은 병원 영안실로 옮겼는데 머리 빼고는 온전한 데 하나도 없었고 염정아는 시신을 보자마자 기절해 버렸다.온시환은 깜짝 놀라서 그녀를 급히 응급실로 데려갔다.염정아는 아주 긴 꿈을 꿨다. 그녀가 고등학교 때 괴롭힘을 당하고 부모님께 말씀드리자 부모님은 그저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뿐이었다.그녀가 슬픔에 잠겨 울고 있을 때 바보 동생이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서 막대 사탕을 건네줬다.막대 사탕은 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물건이었고 그때 그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면서 불렀다.“누나.”염정아는 동생을 미워했고 항상 동생의 존재가 자신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생각
사실 원아정은 염정아를 잊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얘기를 꺼내자 그녀에 대한 기억이 조금 떠오르긴 했다.공지민이 나타나기 전에 확실히 다른 사람을 괴롭힌 적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염정아는 심호흡하고 말했다.“나랑 지민 언니는 동병상련의 관계일뿐이고 내 집안 사정이 어려울 때 지민 언니가 도와주고 돈도 줬어. 내가 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해서 지민 언니가 날 데려온 거고 날 숨기려고 한 게 아니야. 난 단지 집에서 수공업을 하고 있었을 뿐이야.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나서 대학도 못 가고 하니 학력도 없고 인맥도 없어서 돈을 벌려면 할 수 있는 게 수공업뿐이었으니까.”원아정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 외에는 염정아가 또 무슨 쓸모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염정아의 집안은 너무 평범했고 심지어 부모님도 모두 돌아가셔서 그녀의 곁에는 누구의 자식인지도 모르는 다섯 명의 자녀뿐이었다.원아정의 눈에는 혐오감이 감돌았고 특히 길가에 불쌍하게 웅크리고 있는 염정아의동생을 봤을 때 혐오감이 더욱 깊어졌다.하필이면 이때 염정아의 동생이 일어서면서 원아정한테 물었다.“저 언제 집에 갈 수 있죠?”그는 더 이상 제국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재미도 없고 가장 중요한 건 누나를 화나게 했으니 혹시나 누나가 평생 그를 안볼까 봐서 걱정이었다.동생의 얼굴에는 초조함과 억울함이 가득했고 빨리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보고 싶었다.원아정은 자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고생했는데 결국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자 염정아의 동생을 순순히 보내드릴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는 끊임없는 차량이 왔다 갔다 하는 도로를 가리키며 말했다.“저기 안으로 들어가서 걸어 다니다 보면 누군가 널 집으로 데려다줄지도 몰라. 저거 봐, 차가 저렇게 많은데 너희 집 방향으로 가는 차가 당연히 있지 않겠어? 널 집까지 데려다줄 사람도 무조건 저기 있을 거야.”염정아 동생의 눈에는 순간 희망의 빛이 반짝였고 그녀의 말을
염정아는 그들의 집에서 제원까지 오려면 거리가 엄청나게 멀었고 동생은 멀리 외출한 적이 없어서 표는 어디서 어떻게 사고 차는 또 어떻게 타야 되는지도 모를 텐테 그냥 애교부리며 농담한다고 생각했다.“내가 말했지. 내가 갈거닉가 그때까지 집에서 애들 잘 돌보라고. 안 그럼 나 화낼거야. 알지? 화내면 널 버릴 수도 있다는걸.”동생이 살면서 제일 무서운 일은 염아정에게 버림받는 일이었고 그 말에 당황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아니야, 나 집에서 애들 잘 돌보고 있을 테니까 절대 버리면 안 돼.”염정아는 전화기 너머로 동생의 당황함을 눈치채고 다시 달래기 시작했다.”말만 잘 들으면 안버릴테닉가 걱정하지 마.”“알았어. 나 누나 말 잘 들어. 진짜 잘 들을 거야.”전화를 끊은 후, 화가 치밀어 오른 원아정은 바로 동생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원아정은 동생을 통해 염정아를 불러내여 공지민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어 내려 했지만 동생은 그렇게 통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뺨을 맞고도 이유를 몰랐고 감히 되받아치지도 못했다.원아정은 힘들게 이 남자를 불러 제원까지 데리고 온 것만 해도 억울함에 미칠것 같았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니 더 화가 치밀었다.원아정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고 계속하여 염정아의 동생을 위협했다.“누나한테 다시 전화 걸어 꼭 나오라고 해요. 안 그러면 나도 당신 상관 안 할 거예요. 이렇게 큰 제원에서 누나한테 연락 안 하면 당신은 먹지도 못하고 길바닥에서 그대로 죽어 버릴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되면 사랑하는 누나도 영원히 못 볼 거 아니에요.”동생은 조금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누나한테서 버림받는 것이 더 두려워서 더는 연락 하지 않기로 했다.원아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바로 저절로 염정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염정아는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아까 물어보지 못한 말부터 했다.“너 누구 휴대전화로 연락한 거야? 왜 번호가 틀려?”원아정은 음험하고 악독한 소리로 말했다.“염정아, 잘 들어.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