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승제는 그녀의 대답이 필요했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었고 성혜인도 승낙했는데 왜 전화를 하니 묵묵부답인 걸까?반승제의 안색과 함께 눈동자가 어두워졌다.“성혜인, 말하지 않는다면 화낼 거야.”성혜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대답하려 했다.하지만 목이 너무 아팠다. 마치 큰 손에 목이 졸린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고 눈물도 더 많이 흘렀다.성혜인은 몸을 심하게 떨면서 저도 모르게 쭈그리고 앉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혹시라도 울음소리가 새어 나올까 봐 말이다.성혜인은 서둘러 옆에 있는 겉옷을 움켜쥐고 그곳을 떠나려는데 다리에 뭔가가 부딪혔다.그러나 성혜인은 아픈 것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그 순간 몸의 모든 감각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었다.이곳은 그녀를 구역질 나게 했다.전화 건너편에서 또다시 반승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또 인정하지 않으려는 거야?”이번에는 조금 억울한 듯했고 곧이어 전화를 끊었다.성혜인은 그 방에서 나온 뒤에야 그곳이 호텔임을 알았다. 하지만 BH그룹 산하의 호텔은 아니었다.그녀는 서둘러 장하리에게 연락해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했다.그리고 성혜인은 길가에 서 있었다. 머리 위 햇빛이 유독 눈이 부셔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장하리는 아주 빨리 도착했다. 장하리는 그녀를 보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말했다.“성 대표님, 며칠 쉴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성혜인은 대답하지 않고 뒷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쉰 목소리로 말했다.“포레스트로 가요.”장하리는 백미러로 그녀의 표정을 힐끗 보았다. 이번에는 흔적이 더 심했다. 설마 또 반승제와 잠자리를 가진 것일까?하지만 반승제는 해외로 가지 않았는가?차가 포레스트에 멈춰 선 뒤, 성혜인은 아무 말도 없이 차에서 내려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뒤 오랫동안 샤워를 했다. 거의 가죽을 벗길 기세였다.그녀는 배현우가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못했다. 그저 과거의 아름다운 꿈이 산산이
유경아는 그 의사의 손놀림이 조금 숙련되어 보이고 진짜로 성혜인에게 링거를 놓아주는 걸 보고 그제야 안도했다.젊은 의사가 계속해 말했다.“요즘 걱정이 많은가 봐요? 밥 잘 챙겨 먹는지 지켜보세요. 위가 안 좋아서 지금부터 잘 관리해야 해요.”그는 손가락으로 성혜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으며 잠깐 그녀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있었다.“한 시간 뒤에 열이 내릴 거예요. 주방으로 가서 위에 자극이 가지 않는 음식 좀 준비해 주세요. 이틀 동안 밥을 먹지 못했을 테니 말이에요.”유경아는 조금 답답했다. 젊은 의사는 너무 다정하게 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렇게 문제 될 것도 없었다.그녀는 복도 밖의 감시카메라를 가리켰다.“의사 선생님, 여기 처음 오시는 거죠? 이곳에는 감시카메라가 24시간 돌아가요.”그 말은 그녀가 아래층으로 내려간 사이에 성혜인에게 무슨 해코지라도 한다면 오늘 밤 포레스트를 떠나지 못할 거라는 뜻이었다.의사는 싱긋 웃었다.“전 친구의 일을 망칠 생각이 없어요.”유경아는 그의 목소리가 아주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부드럽고 맑은 느낌이었다. 그녀는 곧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성혜인이 먹을 건 보통 유경아가 직접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도우미 두 명을 보내 성혜인의 문 앞을 지키게 했다.“새로 온 의사가 감히 무슨 짓을 하려 한다면 바로 내게 알려. 내가 경호원을 올려보낼게.”포레스트의 모든 사람이 반태승이 남겨둔 사람이었기에 다들 성혜인에게 충성을 다했고 배려심도 깊었다.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갔다.젊은 의사는 성혜인의 침대 곁에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그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몇 번이나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싶었지만 선 넘는 행동이라 성혜인이 불안해할까 봐 걱정되었다.그녀는 지금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고 마음도 굳건히 먹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그의 잘못이니 더는 그녀를 방해해서는 안 됐다.그러나 그의 몸속에 있는 다른 인격체가 너
그가 떠난 뒤 성혜인은 손등 위에 꽂혔던 바늘을 빼고 욕실에 들어가서 양치할 생각이었다. 입 안에서 온통 피비린내가 났다.유경아가 마침 국을 끓여 들어오면서 원망스레 말했다.“사모님, 위가 안 좋으신 거 뻔히 알면서 이틀 동안 밥을 안 드시면 어떡해요?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몸조리 잘하셔야 한다고. 앞으로 삼시 세끼 잘 챙기셔야 해요. 절대 일 때문에 끼니 거르시면 안 돼요!”성혜인은 유경아가 건넨 미지근한 물로 입을 헹구었다. 그러나 테이블 위 음식을 봐도 입맛이 돌지 않았다.“사모님, 좀 드셔야 해요. 위병이라도 도졌다가는 더 힘드실 거예요. 이것 보세요, 그 사이 또 살이 많이 빠지신 것 같아요.”성혜인은 가족의 정이라는 걸 별로 느껴보지 못했지만 유경아가 자신을 손녀처럼 대한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녀의 잔소리에 성혜인은 마음이 시큰하면서 억울함을 어디에 토로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성혜인은 자신에게 아름다운 약속이 있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열심히 앞으로 달려갔고 믿으려고 했다.그러나 배현우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그녀가 행복을 얻기 직전에 그녀를 수렁으로 빠뜨렸다.유경아는 한숨을 쉰 뒤 숟가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줬다.“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밥은 드셔야 해요. 아까 겨울이가 아래층에서 계속 짖었어요. 사모님의 기분이 안 좋은 걸 눈치챘나 봐요. 휴, 반승제 씨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비록 성격은 안 좋아도 사모님이 꽤 좋아하셨잖아요.”성혜인의 눈물이 순식간에 그쳤다. 그녀는 이 일을 어떻게 반승제에게 설명할지 결정하지 못했다.비록 두 사람은 서로를 좋아했지만 둘 사이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이 서로를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반승제는 감정 기복이 심했고 소유욕도 강해서 성혜인이 협력업체를 만나러 가도 무척 질투했다.만약 그가 이 일을 알게 된다면...성혜인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쩌면 모욕적인 말을 할지도 몰랐다.그녀는 조용히 음식을 먹
그는 반승우와 싸우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비록 그가 반승우의 덕을 보면서 자란 건 맞았다. 그리고 예전에 그를 이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무모한 시기가 지나자 그 방면에서는 많이 담담해졌다.반승제는 그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깐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반승우의 존재가 확실히 할아버지의 목숨에 위협이 된다면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그와 반승우의 관계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애가 돈독하지도 않았다.반승제는 고개를 숙여 성혜인이 보낸 메시지를 보았다. 사라졌던 웃음기가 다시 나타났다.그가 성혜인에게 답장했다.[내 SNS 봤어?]같은 시각, 성혜인은 반승제의 SNS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그가 그런 사진을 찍었을 줄은 몰랐다. 대표라는 그의 신분에 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마치 막 연애를 시작한 어린 소년 같았다.심지어 깍지를 낀 사진까지 있었다. 성혜인은 그 사진을 보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그러나 지난 이틀간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달콤함이 씁쓸함으로 변했다.[봤어요.][무슨 하고 싶은 말 없어?][잘 찍었네요.]그 다섯 글자에 반승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는 천천히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바로 앉았다.잘 찍었다고?일반인이라면 그 사진들을 보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성혜인은 당사자가 아닌가.[다른 할 말은 없어?]반승제와 마주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성혜인은 그의 표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그는 분명 차가운 얼굴로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그의 옆에 있었다면 그는 분명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봤을 것이다. 만약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는다면 반승제는 그녀의 목을 조르려고 할지도 몰랐다.3분을 기다렸지만 새 메시지가 없자 반승제는 불쾌해졌다.[정말 다른 할 말은 없어? 후회하지 마.]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메시지를 보냈다. 굳이 이렇게 할 필요 없이 SNS 게시물을 삭제
반승제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서주혁은 고개를 홱 돌리며 말했다.“꼴불견이네. 사랑은 사람을 눈 멀게 만든다더니, 너도 결국엔 본심을 잃게 될 거야.”그는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여자란 생물은 침대 위에서 성욕을 발산할 때만 쓰면 되지 진짜 보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이 점에 있어서 서주혁은 온시환과 같은 관점이었다. 그러나 온시환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침대에서는 신사적이었다.그러나 서주혁은 달랐다. 그는 능력도 없이 몸으로 이익을 보고자 하는 여자를 혐오했다.반승제는 그를 무시하고 몇 분 고민한 뒤 성혜인에게 답장했다.[좋아. 그러면 깨지 마. 일 다 끝내면 연락할게.]성혜인은 그 메시지를 보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나 고개를 들었을 때 거울을 통해 보이는 흔적에 웃음기가 점점 사라졌다.썸을 탈 때 분위기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반승제는 이렇게 달콤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은 뒤에도 성혜인이 새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는지 이따금 휴대전화를 힐끗댔다.서주혁이 이때 미간을 구겼다.“어르신의 신호가 또 다른 나라에서 나타났어. 북아메리카에서 한참 떨어진 곳인데, 우리 농락당한 건 아닐까?”어떻게 이렇게 빨리 움직인 걸까?반승제는 바로 앉은 뒤 휴대전화를 거두어들였다.“그쪽에 대단한 실력의 해커가 있는가 봐. 서주혁, 넌 일단 귀국해.”서주혁은 이미 노려졌다. 이곳에 오래 남아있는다면 상부의 의심을 받을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서씨 가문 전체가 감시받을 것이다.서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들고 있던 서류로 테이블을 톡톡 쳤다.“그러면 난 먼저 돌아갈게. 난 심지어 이 신호들이 우리를 유인하기 위한 것인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우리를 끌어내기 위해서 말이야. 설마 승우 형에게 칩에 관한 정보가 있는 걸까?”서주혁은 국내에 있을 때만 해도 칩을 주시했다.반승제가 눈썹을 치켜올리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난 내 사람을 시켜 신호가 나타난 곳
백지영은 반승제와 설인아에 대해 말하고 나서 다시 성혜인에 관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다.“성혜인이 반승제한테 차인 건 바로 깨끗하지 못해서야. 남자관계가 복잡했거든. 몰래 얼마나 많은 남자랑 만났는지 몰라.”“반승제랑 이혼하기 전에도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하는 걸 몇 번이나 봤어.”“반씨 집안 회장님도 지금 성혜인 편이 아니야. 듣자 하니 최근에 또 한 남자랑 이틀 동안 뒹굴었다 하더라고. 원인은 바로 반승제한테 차여서 스스로 타락한 거지.”백지영은 성혜인에게 약을 먹여 몸도, 명예도 전부 망가뜨릴 생각이었지만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그때문에 그녀는 가장 간단한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모두들 “씹고 뜯을” 가십거리가 필요하지 진실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니 말이다.그렇게 눈 깜짝하는 순간 반승제와 설인아의 소문뿐 아니라, 성혜인의 사생활 논란도 급속도로 퍼져나갔다.이 단톡방에서 저 단톡방으로, 마지막에는 결국 임경헌이 있는 단톡방에도 이 소문이 전달되었다.임경헌은 단톡방 속 여자들이 거리낌 없이 성혜인에 대한 험담을 나누는 것을 보고, 곧장 화가 치밀어올랐다.“누가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거야?! 성혜인은 내 미래 사촌 형수 될 사람이야. 만약 우리 사촌 형이 보게 된다면, 그 유언비어를 퍼뜨린 사람은 반시체가 되어버릴걸?”최근 반씨 집안의 혼란한 내부 상황을 다들 알고 있었는지라, 어떤 사람들은 임경헌에게 더 이상 공손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설인아가 직접 SNS에서 인정했어. 그날 밤 반승제랑 함께 있었던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웃기고 있네! 이 여자 왜 이렇게 뻔뻔해?!”계속해서 올라오는 문자들에 임경헌은 화를 참지 못하고 결국 단톡방에 분노를 표출했다.“우리 사촌 형이 그 여자를 좋아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한 거야. 이렇게 저급한 수단을 써서 아직도 성혜인의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니... 허허. 그날 밤 사촌 형이랑 함께 있었던 건 분명히 성혜인이었어. 형은 처음부터
다음 날 아침, 반승제가 탄 비행기가 제원에 착륙했다.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마중 나오라 하거나, 서주혁과 함께 가지 않고 바로 성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 공항에 도착했는데, 데리러 와줄 수 있어?”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하기는 했지만, 빨리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다그치는 듯한 느낌이 가득했다.하지만 그 전화는 성혜인이 받지 않았다. 이 시각 그녀는 회의 중에 있었고 핸드폰은 장하리의 손에 있었으니 말이다.장하리는 반승제의 말에 그저 화가 치밀어올랐다.‘뭐가 이렇게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그녀의 말투도 따라서 많이 차가워졌다.“반 대표님, 사장님은 지금 회의 중에 계십니다. 회의는 점심까지 계속될 거예요.”그 말에 반승제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조금 실망스러워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 수 없이 반승제는 심인우에게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다. 그러던 중 온시환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무리 안에 돌고 있는 소문을 아느냐고 물었다.“무슨 소문?”“성혜인 씨에 관한 거 말이야. 첫사랑이 있다던데?”잠시 흠칫하더니, 반승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누가 그래?”“글쎄, 그런 소문이 돌던데? 그리고 네가 출국한 이틀 동안 혜인 씨 호텔에 묵었어. 그동안 포레스트도, 회사도 가지 않고 말이야. 다들 말로는 첫사랑을 만났대.”반승제는 순간적으로 핸드폰을 더욱 꽉 움켜쥐었다.“누가 그런 유언비어를 퍼뜨려?”“승제야, 그게 유언비어인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 백지영 쪽에서 호텔 체크인한 증거를 제시했고 나도 호텔에 전화해서 확인했어. 진짜 이틀 동안 혜인 씨 호텔에 묵은 거 맞아. 요즘 회사 일도 그렇고 도송애 쪽이랑 분쟁도 심해서 바쁜 줄 알았는데, 호텔에 갈 틈은 어떻게 생겼는지...”이윽고 반승제는 차가운 말투로 온시환에게 경고했다.“백지영의 말은 믿으면 안 돼.”“승제야, 백지영의 말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네가 직접 성혜인 씨에게 물어보면 알 수 있잖아.”통화를 마친 후, 반승제는 손을 들어 미간을 어루만졌다.이
성혜인은 그와 함께 누웠지만 여전히 긴장한 듯 온몸이 굳어있었다.얼마 뒤, 귓가에 가벼운 숨소리가 들리고서야 그녀는 반승제가 잠들었다는 것을 알았고.반승제는 성혜인의 어깨에 턱을 대고 두 손으로 그녀를 꽉 안은 채 잠이 들었다.창문 밖의 풍경과 따스한 햇빛을 보며 성혜인의 심장이 시큰거려왔다.반승제라는 사람은 걸핏하면 화를 낼 정도로 성격이 매우 나쁘다.외부인에게는 덧없이 냉담하지만, 반승제에게는 쉽게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특히 반승제는 무방비한 상태일 때 더욱 사람의 가슴을 졸이게 만든다.곧이어 성혜인도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몸에 난 흔적 때문에 어젯밤 줄곧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지금 반승제의 기운이 느껴지니 성혜인은 안도감이 들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이 2인용 소파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잠을 청했다.도중에 사무실로 들어온 장하리는 성혜인이 없는 것을 보고 그녀가 쉬러 갔을 것으로 추측했다. 휴식실 문도 여전히 닫혀 있으니 말이다.장하리는 손에 든 서류를 책상 위에 놓고, 휴식실 문을 열려고 하며 성혜인을 불렀다.벌써 두 시간이 훌쩍 넘었으므로 이제는 오후의 서류들을 처리해야만 했다.하지만 살짝 열린 문틈을 향해, 장하리는 한 남자가 여자를 품에 꼭 안고 있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은 얇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반승제에게 완전히 덮인 것처럼 성혜인은 앙증맞게 잠들어있었다.그러자 장하리는 뱉으려던 말을 즉시 삼키며 재빠르게 문을 닫고 사무실을 떠났다.오후에 웬 사람이 성혜인을 찾아오자 장하리는 “사장님이 몸이 불편하셔서요, 무슨 일 있으시면 내일 다시 얘기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그렇게 성혜인은 밤 8시까지 푹 잤고 꼭대기 층의 사람들이 전부 떠나가고 나서야 유유히 잠에서 깼다.하지만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반승제는 여전히 그녀를 꼭 안고 있었다.‘영원히 이 손 풀지 않았으면 좋겠다...’성혜인은 덧없는 안도감을 느꼈다.바깥의 하늘은 이미 어두워졌고, 네온사인이 온 도시를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