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테이블 위의 컵이 설인아에 의해 던져져 땅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그녀가 정말 화가 났다는 것을 깨달은 도송애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인아 양은 모르겠지만 성혜인이 얼마나 많은 남자를 꼬드긴 줄 알아? 그도 그럴 것이지 그렇게 예쁜 얼굴로 먼저 들이밀기까지 하니 세상에 어떤 남자가 안 넘어가겠어? 반승제가 인아 양이랑 결혼했다고 해도, 성혜인이 자존심을 버리고 꼬신다면 반승제는 분명 넘어갈 거야.”설인아는 눈을 감고 덤덤하게 말했다.“우리 집안의 권력을 동원해서 도 대표님과 심복의 감옥살이는 면하게 해주죠. 하지만 TS 엔터의 주가는 분명 지킬 수 없어요. 성혜인이 공개적으로 발언을 한 이상 위에서도 분명 당신들을 조사할 거예요. 감옥에 가든지 아니면 충분한 돈으로 자유를 지킬 것인지 선택하세요.”“인아 양, 난 자유를 원해. 두 번째를 선택하지!”설인아는 차갑게 웃더니 엔디가 조용히 바닥에 앉아 부서진 컵 조각을 청소하는 것을 보고 입꼬리를 올렸다.“도 대표님은 이제 가보셔도 돼요. 저도 공짜로 구해 드리진 않아요. 돌아가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성혜인을 막으세요.”“그래, 인아 양 말 잘 기억하고 있을게.”도송애가 떠나자 홀 안은 조용해졌다.엔디는 컵 조각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설인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설인아가 뒤로 기대고 보니 1m 65㎝의 엔디가 더욱 아담해 보였다. 게다가 항상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어 더욱 작아 보였다.“엔디, 나 진짜 화가 나. 승제 오빠가 왜 성혜인 때문에 나섰을까? 지금 당장 성혜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네.”“아가씨, 말씀만 하시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설인아는 가볍게 웃더니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고는 얼굴색이 약간 창백했다.엔디는 얼른 옆에서 약병을 꺼내 그녀에게 약 몇 알을 먹였다.설인아는 심장이 좋지 않아 감정 기복이 심하면 가끔 이러곤 했다.약을 먹고 난 후, 그녀의 눈은 더욱 매섭고 어두워졌다.“그 얄미운 년은 건강한 몸뚱이까지 갖고 있으니, 진짜 미워 죽겠
설인아의 거처를 떠난 도송애는 자신의 차에 탔다.핸들을 잡고서는 지금부터 반드시 성혜인을 곤경에 빠뜨려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래야 설인아가 그녀를 놓아줄 것이다. 설인아의 복수가 감옥에 가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웠다.도송애는 바로 백지영이 떠올랐다.지금 백현문이 병원에 누워있으니 백지영을 지키고 있는 경비가 삼엄하지 않을 테니 가서 그녀를 건져내야 했다.백지영은 얼굴이 이미 망가졌고, 또 이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니 마음속의 원한이 얼마나 깊을지는 뻔했다.도송애는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곧 백씨 가문으로 향했다.입구에 있는 경호원에게 대충 얼버무렸다.“지영 씨를 찾아뵙겠다고 백 대표님께 미리 말씀드렸어요. 온 김에 백 대표님이 직접 고른 이 선물도 갖다 주려고요.”백지영이 갇힌 이후로 백현문은 어떤 선물도 주지 않았다.경호원은 도송애를 알고 있었고, 또 그녀가 강변에서 백현문과 만난 것도 보아서 의심하지 않고 바로 안으로 들였다.백지영은 이미 방안에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지만 백현문이 아직도 강가에서 시체를 인양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는 멘탈이 무너졌다.그녀는 미친 듯이 문을 두드리며 단식까지 선언했지만 아무도 그녀를 상대하지 않았다.백지영은 매일 이 방안에서만 활동할 수 있었다. 끊임없이 밖을 향해 소리를 지른 탓에 목은 이미 쉬어버렸다.방의 창문도 굳게 닫혔다. 그녀가 창문을 통해 뛰어내릴까 봐 백현문이 사람을 불러 빈틈없이 막아 놓았다.너무 시달린 백지영은 침대에 앉아 더벅머리에 구질구질한 모습으로 이미 희망을 잃고 있었다.그때, 밖에서 도송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영 씨, 괜찮아요?”백지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도송애와 아는 사이는 맞지만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도송애가 어떻게 이 중요한 때에 찾아올 수 있을까?문이 열리고, 도송애가 문 앞에 나타나 방긋 웃으며 백지영을 보았다.“지영 씨 잘 못 지냈나 봐요. 오빠는 지금 병원에 입원해서 두 달 후
그리고 나서 임경헌은 성혜인을 보며 건들건들 웃었다.“전에 제가 이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 형은 제 전화도 받기 싫어서 그냥 끊었어요. 최근에는 반씨 가문에 일들이 생겨서 오늘 받은 거죠. 하지만 절대 현장에는 오지 않았을 거예요. 제가 장담하건대, 1분도 안 돼서 다시 전화가 올걸요?”말이 끝나자마자 임경헌의 휴대폰이 울렸다.반승제가 걸어온 전화였지만 임경헌은 받지 않고 자신의 어깨로 성혜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이것 봐요. 절대 나한테 먼저 전화한 적이 없는 형인데 이번에는 아주 급했나 봐요.”임경헌은 성혜인이 보는 앞에서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반승제는 또 전화를 걸어왔다. 임경헌의 말대로 그는 확실히 조급한 모양이었다.이번에도 임경헌이 전화를 끊자 반승제가 곧바로 영상통화를 걸었다.임경헌이 손에 든 술잔을 하마터면 땅에 떨어질 뻔했다. 반승제가 급한 건 알았지만 이렇게 급한 줄은 몰랐다.‘내가 이번 생에 승제 형이 걸어온 영상통화를 받게 되다니!’임경헌은 덜컥 겁이 났다. 조금 이따가 반승제가 도착하면 제대로 혼이 날까 봐 성혜인을 보며 말했다.“형이 저를 죽이려고 들면 꼭 도와주셔야 해요. 이 모든 건 페니 씨를 위한 거였어요. 형의 마음을 똑똑히 알려주려고요. 만약 형이 페니 씨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왜 이렇게 조급해하겠어요? 형은 이 시간에 회의 중이었어요. 아마 회의도 중단시킨 것 같아요.”성혜인이 믿기지 않아 하자 임경헌은 그녀의 휴대폰을 잡고는 말했다.“못 믿겠으면 바로 심 비서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요. 형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 성혜인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하지만 임경헌이 심인우에게 전화를 걸었고 성혜인은 어쩔 수 없이 휴대폰을 잡고 물었다.“심 비서님, 승제 씨 지금 뭐 해요?”심인우는 통창 앞에서 쉴 새 없이 전화를 거는 남자를 보고, 또 회의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임원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회의실에 있는데 대표님께서 지금 통화 중이셔서 페니 씨 전화를
성혜인은 뒤에서 남자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키가 작은 그녀는 이마를 남자의 등에 대고 있었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이렇게 안고 있었다.반승제는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는 여자의 손을 잡았다. 손끝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취했어?”‘그 술이 뒤끝이 강하다고 했으니 분명 취했을 거야.’성혜인은 더 꽉 껴안았다.순간, 반승제는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서로의 심장 박동 소리만 들렸다.그는 속눈썹을 드리우고 돌아서서 그녀를 벽에 세게 밀쳤다.성혜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가 키스를 퍼부었다.남자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끝을 잡고 자신의 양복 단추에 얹은 채 키스를 하며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스카이웨어 꼭대기 층에는 반승제의 방이 있었다. 예전에 두 사람이 간 적 있었다.만약 엘리베이터 안에 CCTV가 없었다면 반승제는 여기서 그녀의 옷을 벗겨버렸을 것이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반승제는 아예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자기 방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성혜인은 키스로 인해 정신이 혼미했지만 문을 차버리는 그의 힘이 유난히 다급하고 거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문이 닫히자마자 그는 능숙하게 그녀의 옷을 벗기고 그녀가 자신의 양복을 벗기도록 이끌었다.첫 번째 잠자리가 끝나고 성혜인은 그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었다.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정신이 들어?”그녀는 취하지 않았다. 단지 그를 원했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들어 남자의 목젖에 키스했다.반승제는 뒤로 숨더니 그녀의 턱을 잡고는 유심히 관찰했다.“성혜인, 너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주동적일 수 있을까?“반승제.”그녀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고는 또 급히 그에게 키스하려 했다.반승제는 호흡이 약간 막히고 강한 불이 몸속에서 타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그녀의 키스를 피하고 약간 쉰 목소
옷을 챙겨 입은 반승제는 몸을 숙여 잠들어 있는 성혜인의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혜인아, 할아버지한테 단서가 생겨서 외국에 갔다 와야 해. 계속 자고 있어. 웨이터에게 아침 가져오라고 할게.”성혜인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고 반승제가 강하게 흔들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곤한 눈을 뜬 성혜인은 남자가 자신의 입술에 진하게 키스하는 것이 보였다.“나 외국에 갔다 올 테니까 밥 거르지 말고 잘 챙겨 먹어. 알겠지?”“음.”그녀는 정신이 혼미하고 피곤해서 몸을 뒤척이며 또 자려고 했다.남자는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안으며 부드러운 말투로 말했다.“우리 다시 만나는 거 공식적으로 이미 발표했으니 번복하기 없기다?”“그래요, 좋아요.”성혜인은 혼미한 상태로 다시 잠을 잤다. 꼬박 이틀 밤을 새웠으니 아무런 힘도 나지 않았다.그녀를 두고 가는 것이 너무 아깝지만 반승제는 할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성혜인은 점심에야 잠에서 깼지만 여전히 온몸에 힘이 없었다.그리고 어젯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머리가 아팠다.반승제가 옆에 있는 줄 알고 만졌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젯밤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용기를 내어 그를 껴안고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들려주려고 했지만, 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단지 반승제가 어젯밤 미친 사람처럼 행동했다는 것이 느껴져 허리춤을 보니 역시 손자국이 몇 개나 더 생겼다.순간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고 황당하기 그지없었다.그녀는 서둘러 일어나 목욕을 하고 나서야 몸이 좀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이때 문밖에서 웨이터가 노크했다.“고객님, 대표님께서 아침 식사를 가져다드리라고 하셨는데 지금 들어가도 될까요?”성혜인이 문을 열자 웨이터가 푸드트럭을 밀고 들어와 반듯하게 음식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그녀는 반승제가 출근한 줄 알았다. 휴대폰을 꺼내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진 상태였다.어쩔
설인아의 재촉을 받은 도송애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지금 인터넷상의 여론은 여전히 거센 상태였다. 어제 백지영을 내보냈지만, 어젯밤 그녀는 손을 쓰지 않았다.도송애는 두 손으로 운전대를 꽉 잡고 수소문 끝에 반승제가 출국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즉시 이 소식을 백지영에게 전했다. 반승제가 없으니 지금이 성혜인을 상대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였다.백지영은 이미 흥분하기 시작했지만 도송애는 여전히 그녀에게 주의를 주었다.“기회는 이번 한 번뿐이에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괜히 꼬리 잡히지 마세요. 성혜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그년은 반승제만 믿고 까부는 거잖아요!”백지영의 눈 밑에는 짙은 원한이 서려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성혜인을 차로 쳐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지영 씨가 해야 할 일은 성혜인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거예요. 그게 몸을 해치는 것보다 더 괴로운 거죠.”도송애도 이 단순한 바보에게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일깨워줄 만한 것은 이미 일깨워 주었다.전화를 끊으려 할 때, 도송애는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당부했다.“성혜인 그년이 반승제를 좋아하니까, 만약 반승제와 인연을 끊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그년의 정곡을 찌르는 일이에요.”백지영은 순간 눈이 번쩍였다. 어떻게 하면 두 사람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놓을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그녀의 입꼬리가 씩 올라가더니 곧 한 가지 방법이 생각났다.회사에 앉아 있는 성혜인은 기분이 꽤 좋았다.장하리는 그녀의 몸에 늘어난 흔적을 보고는 어젯밤 또 반승제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하지만 비서로서 뭐라고 말하기 어려워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지난번에 못 만났던 감독님과 오늘 다시 약속을 잡았어요.”성혜인은 그제야 지난번 백현문에 의해 끌려가던 날 자신이 한 감독과 약속이 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요 며칠 동안 반승제와의 일을 생각하느라 다 잊고 있었다.“몇 시 약속이죠?”“저녁 9시요. 감독님의 성
그 방 안은 조명이 아주 어두웠다. 너무 어두워서 상대방의 표정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혜인아, 따라와.”그의 목소리는 아주 온화했다. 그러나 성혜인은 어쩐지 그것이 꾸며낸 온화함 같았다.착각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선배, 저 나가고 싶어요. 저번에 제가 분명히 얘기했잖아요. 약속 기한이 이미 지났다고.”저번에 성혜인은 며칠 동안 기절해 있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는 아무도 없었고 아무런 설명도 없었기에 성혜인은 그를 경계하기 시작했다.비록 그가 과거의 가장 아름다운 꿈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혜인아, 저번에 잠들게 해서 미안해.”말로는 미안하다고 했지만 말투에서는 미안한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성혜인의 의심이 깊어졌다. 그녀는 몰래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나 술 때문에 약기운이 온몸을 흐르고 있어서 뜨거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성혜인은 몸을 돌려 조금 전 들어온 작은 문을 통해 나가 포레스트로 가서 찬물에 씻어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그러나 허리에 양손이 감겨오자 성혜인은 화들짝 놀라면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이거 놔요!”그 괴상하고 위험한 느낌이 점점 더 뚜렷해지고 날카로워졌다.“혜인아, 일단 좀 자.”“전 자고 싶지 않아요! 자라고 하지 말아요!”그러나 이 일은 그녀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지난번의 꽃향기가 엄습해 오며 몸의 약기운까지 겹쳐 그녀는 순식간에 정신을 잃었다.남자는 성혜인을 은밀한 방으로 데리고 갔고 일찌감치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분부했다.“몸속의 약효를 좀 진정시켜.”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웃으며 말했다.“그리고 나랑 잠자리를 가졌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여자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남자는 그곳을 떠나 더욱 어두운 곳으로 향했다. 누군가 그에게 따져 물었다.“이것이 바로 당신이 나를 상대하는 수단이야? 성혜인을 이용해 날 협박하는 거?”“그래. 난 당신이 걸려들 줄 알았어. 반승우, 내겐 시간이 많지 않아. 내
반승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구석에 서서 오랫동안 침묵했다.남자의 미간에 드리워진 음울함이 더욱 짙어졌다.“저번에 난 성혜인을 대신해 전화를 받았어. 네 동생 반승제에게서 걸려 온 전화더라고. 내가 몇 번 더 받으면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반승제는 배현우를 조사하기 시작할 거야. 하지만 반승제는 지금 할아버지 일 때문에 발목이 잡혀서 그럴 정력이 없을 거야.”남자의 주먹이 거울에 닿았다. 그는 유도하듯 사근사근한 어조로 말했다.“그러고 보면 네 감정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성혜인이 내 스타일처럼 느껴지더라고.”“내가 성혜인에게 얘기해서 그것을 네게 주라고 할게.”“일찍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 그랬다면 저번에 위험을 무릅쓰고 반승제의 전화를 받지 않았을 거야. 하마터면 우리의 행적이 드러날 뻔했잖아.”남자는 의기양양해졌다.반승우는 온유한 외모에 말할 때도 부드러워서 그를 본 사람들은 절대 그의 얼굴을 잊지 않았다.그래서 그와 처음 만났을 때 성혜인은 그의 외모에 한동안 놀라워했었다.그리고 또 그 이유로 그녀는 반승제와의 베팅 계약 기간에 그와 만나려고 한 것이다. 직접 만나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반승우, 내 몸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줄게. 하지만 쓸데없는 수작은 부리지 마. 너도 알다시피 나는 결과를 신경 쓰지 않거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진짜 관계를 가질 줄 알아.”대화가 끝났다....성혜인은 잠을 잘 잘지 못했다. 그녀는 꿈에서 문득 반승제의 목소리를 들었다.“이제 우리는 만나는 거야. 난 이미 대외적으로 발표했어. 그러니까 후회하지 마.”“알았어요.”성혜인은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그것이 잠을 잘 때 반승제가 했었던 말이라는 걸 떠올렸다.당시 그녀는 너무 피곤해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그렇다. 반승제의 말처럼 두 사람은 만나고 있었다.그 일을 떠올려서였을까, 꿈속에서 성혜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자신의 지금 처지가 어떤지는 전혀 모른 채 말이다.잠에서 깼을 때는 낯선 천장이 보였다. 성혜인은
공지민이 눈을 떴을 때 천장이 보였는데 연승혁이 말한 대로 안전해진 것 같았다.그녀는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연승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공지민은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밖에 서 있던 연승혁의 부하들은 그녀가 나오는 걸 보고 격정스런 눈빛을 지었다. “공지민 씨, 괜찮으신가요?”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오빠는요?”“형님은 아직 의식이 없으십니다.” “오빠 보러 가고 싶어요.”그때 그녀는 일부러 미친 척하며 그를 몇 번 밀쳤고 기억에 의하면 그를 불더미 속에 밀어 넣었다. 그의 등은 아마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하지만 연승혁은 정말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녀를 안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그녀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호했다.공지민은 감동하기보다는 오히려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그와 함께 그곳에서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연승혁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연승혁은 병상에 누워 있었고 의사가 그의 상처를 살펴보고 있었다.섬의 의료 수준은 제원에 미치지 못했다. 연승혁은 등 부상으로 인해 이미 이틀째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는 감염을 우려하며 그의 곁을 이틀 동안 지키고 있었다. 공지민의 눈빛에 조롱의 기색이 스쳤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왜 이 사람은 타 죽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곧 눈가가 붉어진 채 천천히 병상 옆에 앉았다.“오빠는 괜찮아졌나요?”의사는 그녀를 보며 공손하게 답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이제 깨어나기만 기다리면 됩니다.”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승혁의 손을 잡았고 그대로 병상 옆에 앉아 떠나지 않았다.의사는 곧 방을 떠났고 방 안에는 연승혁과 공지민 두 사람만 남았다.공지민은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방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그녀는 옆에 있는 베개를 가져다 이 남자를 질식시켜 죽일 생각도 했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날 테니까. 그녀가 그렇게 하려던 찰나
남자는 이미 죽고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연승혁은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옆에 있는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옆에 있던 부하들에게 짧게 말했다. “정리해. 난 먼저 간다.” 호텔 쪽에는 이미 그의 부하들을 배치해 두었으니 원래라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방금 그 남자의 말이 자꾸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결국 직접 돌아가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연승혁은 자신이 공지민에게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이걸 단순한 게임으로만 여길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만약 공지민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원래는 30분은 걸려야 할 거리였지만 그는 1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가 머물던 호텔은 이미 짙은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서둘러 앞으로 나가 자신의 부하를 붙잡고 물었다. “공지민 어디 있어!” “형님, 공지민 씨는 아직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방 안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연승혁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다. 바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불길은 이미 너무 거세게 타오르고 있었고 섬의 소방은 아직 빠르지 않아 불은 이미 1층에서부터 꼭대기까지 번져 있었다. 지금 들어가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연승혁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밖에서 소식을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 어쩌면 공지민이 운 좋게 스스로 탈출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이성을 차릴 수 없었다. 곧바로 옆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고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자신이 자던 방으로 들어갔다. “공지민! 공지민!” 그는 큰 소리로 외쳤고 곧 방 한구석에서 공지민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짙은 연기에 눈을 뜰 수 없었던 연승혁은 최대한 몸을 낮추며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공지민은 방구석에 웅
연승혁은 즉시 공지민을 바라보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넌 이 방에 가만히 있어. 내가 가서 그 사람을 처리하고 나서 나랑 같이 제국으로 돌아가자.”공지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빠가 위험하진 않겠죠?”“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테니까 한잠 푹 자고 있어.”연승혁이 묵고 있는 호텔은 이 섬에서 가장 큰 호텔로 매우 호화로운 데다가 그의 부하들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공지민은 안전했다.공지민은 서서 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연승혁은 겨우 몇 걸음을 걸었을 뿐인데 이상하게 매우 불안했고 심지어 공지민이 그와 함께 움직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하는 건 결코 안전하지 않았고 그 사람이 혹시나 손에 총이 있다면 공지민은 위험할 수 있었다.그는 신이 아니었고 공지민을 100% 보호하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약간의 과실로 그녀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는 감히 모험할 수 없었고 그녀를 호텔에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연승혁은 차에 올라탔고 차는 30분 동안 달리다가 암초가 있는 곳에 멈췄다.근처의 암초는 크고 새까맣기 때문에 숨어 있기에 좋은 장소였다.연승혁은 옆에 있는 부하한테 물었다.“여기에 있는 게 확실해?”“네. 확실해요. 저희 쪽 사람들이 지금 수색하고 있어요. 늦어도 30분이면 결과가 나올 거예요.”연승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보헤미안 스타일의 소매를 입고 있었는데 평소의 옷차림과는 전혀 달랐고 휴가를 온 것 같았다.멀지 않은 곳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양측이 싸우고 있는 것 같았다.연승혁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이제 그 사람은 도망칠 수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부하들은 온몸이 새까만 남자를 붙들고 걸어왔다.어쩐지 이 남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숨어 있더라니 그의 몸에는 검은 물감이 칠해져 있었고 마치 암초와 융합된 것처럼 보였으며 사람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연승혁은 담배에 불을 붙였고 밤바다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흔들렸다.그는 심호흡한 뒤 그 남자
연승혁은 한동안 그녀와 꽁냥꽁냥하다가 해변의 경치를 구경하러 가자고 말하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떴다.공지민은 바다를 극도로 두려워했다. 구은우가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후 그녀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았다.그녀는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지만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연승혁은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모래 위를 걸었다.“지민아, 어때? 여기 달이 특별히 예쁜 것 같지 않아?”공지민은 얼굴에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예뻐요. 이렇게 예쁜 달은 처음 봐요.”연승혁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말없이 서 있었다.그는 정말로 여기의 달이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여자와 함께 경치를 보면서 느낀 감정은 뭔가 더 특별했고 전에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공지민은 내내 연승혁한테 맞춰줬고 그가 바닷물을 만지고 싶다고 해서 그녀도 따라나섰다.바닷물에 발을 담그면서 연승혁이 물었다.“이런 해변을 보고 있으면 뭔가 떠오르는 게 있어?”공지민의 눈에는 의문으로 가득 찼고 그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연승혁은 구은우에 관해 얘기하고 싶었다. 그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공지민은 그때 구은우를 매우 사랑했고 그들이 서로를 가장 열정적으로 사랑할 때 구은우가 사망했는데 그녀가 그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이상우가 최면술을 사용했음에 불구하고 연승혁은 그녀가 갑자기 기억해 낼까 봐서 걱정이었다.하지만 공지민의 눈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연승혁은 안도감을 느꼈고 그녀를 품에 안았다.“기억 안 나면 됐어. 손 줘봐. 우리 여기 좀 둘러보다가 돌아가자.”공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오빠가 잡으려는 그 사람은요?” “아마 일주일 안에 잡힐 거야. 이 섬이 제국만큼 크지는 않지만 숨을 수 있는 동굴이 많아. 그 사람이 이곳에 들어온 후 바로 숨어버렸어. 그래서 내 부하들이 그를 찾아내려면 구석구석을 돌아다녀야 해.”그들이 며
공지민은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어서 그저 연승혁한테 기대어 있기만 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밖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누군가가 그녀를 들어 올려 따뜻한 침대에 눕혔다.이곳은 작은 섬으로 보였고 원주민들도 꽤 많아서 야시장은 매우 북적거렸다.공지민은 안겨서 이동하는 동안 많은 노점상들의 외침 소리를 들었다.또 30분이 지났을 때 음식의 냄새가 그녀의 코끝을 스쳤다.연승혁은 그녀를 일으키며 말했다.“왜 이렇게 많이 자는 거야? 너 하루 종일 잠만 잤어. 얼른 일어나서 뭐라도 좀 먹어. 이따가 야시장 구경하러 가보자.”“사람 잡으러 왔다면서 야시장을 구경할 기분은 나요?”“그 사람이 지금 이 원주민들 사이에 있어. 멀리 도망가지 못할 거야. 이곳의 출입구는 이미 부하들이 지키고 있어서 그 사람이 함정에 빠뜨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 돼.”공지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기울여 그의 뺨에 뽀뽀했다.“역시 오빠는 대단해요.” 연승혁의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는 역할에 완전히 몰입한 듯했다.“네 약혼자가 될 수 있는 걸 봐서 내가 좀 대단하긴 하지. 그러고 보니 네가 보는 눈이 있네.”“그럼요. 내가 안목이 높긴 하죠.” 그녀의 말을 들은 연승혁은 기분이 더 좋아졌고 그녀를 품에 껴안은 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이거 야시장에서 파는 것들인데 먹고 싶은 게 있나 봐봐.”연승혁은 많은 음식을 사 왔고 그녀는 확실히 배가 고파서 그의 품에 안겨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연승혁은 여자가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전부다 네 거니까 천천히 먹어.” “오빠가 뺏어 먹을까 봐 그러죠.”그녀의 입술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눈이 깊어졌다.공지민은 눈치채지 못한 듯 모든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곧장 침대에서 일어났다.“야시장 구경하러 간다면서요? 얼른 가요. 나도 너무 구경하고 싶고 이곳의 풍습이 궁금해요. 여기 국내는 아니겠죠?”연승혁은 그녀가 어린아이처럼
이전에는 연승혁의 주변에 여자가 별로 없었고 오직 원아정 한 명뿐이었다. 원아정과는 단순히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만났던 거라서 그녀와의 경험은 그저 상쾌함만 느껴졌고 내면의 만족감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공지민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달랐다.연승혁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피부를 만지기 시작했고 무기력하게 기대어 있는 공지민이 마치 자신을 유혹하는 것만 같았다.연승혁은 힘겹게 시선을 돌렸다.그는 공지민이 다 씻은 후 옆에 있던 타월로 그녀의 몸을 감쌌다.침대에 누운 공지민은 곧 잠이 들 것 같았지만 연승혁은 욕구를 참느라 너무 힘들었다.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의 무해한 모습을 바라보며 침을 삼켰고 그의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연승혁이 손끝으로 그녀의 허리에서 가슴까지 쓰다듬을 때 공지민은 가끔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연승혁은 더욱 불타올랐지만 그녀가 현재 아픈 상태라는 걸 잊지 않았다.연승혁은 몸을 숙여 그녀의 목에 흔적을 남겼고 공지민은 참지 못하고 소리를 낸 후 그한테 물었다.“오빠, 우리 정말 약혼한 사이에요?”그녀의 질문에 연승혁은 순간 몸이 굳었다.공지민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냥 우리 둘 사이가 너무 순수해 보여서요.”연승혁이 그녀의 목을 힘껏 깨물자 공지민은 너무 아파서 소리 질렀다.연승혁은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직도 순수해 보여? 오늘 밤, 네 몸 전체에 흔적을 남겨줄게.”공지민의 볼이 빨개졌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연승혁은 그냥 말해본 거였는데 그녀의 반응을 보니 정말 그렇게 하고 싶었다.그가 그녀의 몸에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자 공지민은 허리를 굽힌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다.연승혁이 그녀의 몸에 키스하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비도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고 자신이 지금의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간다면 벌을 받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몸에 흔적을 하나하나 남길 적마다 그의 이성은 사라졌고 오늘 밤만은 그녀
공지민의 시선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곳은 온시환이 차를 세워둔 위치였다.오후부터 그녀는 강한 시선이 느껴졌고 신기하게도 그녀는 그 시선의 주인이 온시환이라는 걸 알았다. 온시환은 열 몇 시간 동안 은밀한 곳에 숨은 채 그녀의 곁을 지켰다.공지민은 연승혁를 향해 미소를 짓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하고 기절해 버렸다.연승혁은 그녀를 안아 들고 곧장 차로 돌아간 후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녀의 몸에 덮어줬다.별장으로 돌아온 후 그는 공지민을 안고 안방으로 데려갔다.공지민은 악몽을 꾸는 듯 이마에 땀이 맺힌 채 계속 뭔가를 중얼거렸다.“가지 마요.”“날 괴롭히지 마요.”그런 공지민의 얼굴을 바라보는 연승혁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그는 옆에 있던 휴지를 뽑아 그녀의 이마를 닦아주었다.중간에 공지민이 눈을 떴지만 그가 돌아온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았다.도우미가 몸보신하는 죽을 들고 오면서 물었다.“도련님, 제가 지민 씨 먹여드릴까요?”연승혁은 손을 들어 죽을 건네받으며 말했다.“제가 할게요.”도우미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연승혁은 공지민을 일으켜 세우고 흔들어 깨웠다.“지민아, 얼른 일어나서 이거 좀 먹어. 너 지금 열도 나고 저녁에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공지민은 어렴풋이 눈을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돌아왔네요.”연승혁은 고개를 기울여 그녀한테 입을 맞추며 말했다.“네가 그렇게 슬프게 우는데 내가 어떻게 돌아오지 않을 수 있겠어?”공지민은 그의 목을 감싸안으며 말했다.“역시 오빠밖에 없어요. 근데 또다시 나갈 건가요?”연승혁은 늦어도 날이 밝은 후 일 보러 다시 나가봐야 했다. 하지만 공지민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았고 혹시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이었다.그렇다고 이상우를 불러 공지민의 기억을 되돌리고 온시환 곁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그걸 생각만 해도 연승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 없이 그녀한테 죽을 먹여준 다음 옆에 있던 휴지로 그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염정아는
염정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공지민은 그녀의 표정을 통해 그녀가 그다지 나오고 싶어 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면회가 끝나갈 무렵 염정아는 갑자기 공지민한테 다가가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지민 언니, 나는 내가 그 사람한테 관심이 없는 줄 알았어.”공지민은 온몸이 굳어버렸고 눈이 따가워졌다.염정아는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경찰을 따라 다시 들어갔다.홀로 남은 공지민은 몸과 마음이 너무 괴로웠고 마치 수만 마리의 개미가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는듯한 느낌이었다. 경찰서 문 앞까지 나온 그녀는 속이 울렁거려서 토하고 싶었지만 나오는 건 위액뿐이었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복수를 계속할 것인가에 대해 망설이기 시작했다.마침 연승혁의 전화가 걸려 와 그녀의 위치를 물었다.공지민의 목소리는 여전히 쉬어있었고 무언가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연승혁은 드디어 도망간 사람에 관한 단서를 얻게 되어 그 사람을 잡으러 가는 중이었는데 공지민이 걱정되고 마음에 걸려 전화를 한 거였다.“나 지금 경찰서에요. 내 친구가 사람을 죽였어요. 오빠, 나 걔랑 있었던 일이 기억났어요. 고등학교 때 우린 둘 다 괴롭힘을 당했었어요. 근데 우리를 괴롭힌 사람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요.”연승혁은 그녀들을 괴롭힌 사람이 이미 죽은 원아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그가 목을 가다듬고 그녀를 위로하려고 입을 열기도 전에 공지민이 울기 시작했다.“오빠, 보고 싶어요. 왜 아직도 안 돌아오는 거예요? 너무 보고 싶어요. 나 지금 심장이 너무 아파서 숨이 멎을 것 같아요.”그녀의 울음소리를 듣자 연승혁의 심장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미 헬리콥터에 올라탔고 원래는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러 가야 했지만 그녀가 걱정되어 조종사한테 목적지를 바꾸라고 말했다.“우린 먼저 제국으로 돌아가고 다른 사람들은 계속 추적하라고 해.”조종사는 조금 놀랐다. 보스가 도망친 그 사람을 잡으려고 신경을 많이 썼고 이제 겨우 단서를 얻었는데 제국으로 돌아간다
경찰서에서 나온 온시환은 마침내 밖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사실 그는 공지민을 다시 찾아가 그녀한테 복수를 그만두라고,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가장 중요하다고, 계속 복수에 집착했다가 염정아와 염정아 동생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다.하지만 공지민이 건드린 건 연씨 가문이기에 그녀의 미래 운명은 염정아보다 훨씬 더 비참할 것이었다.온시환은 머리가 터질 것 같았고 너무 오랫동안 경찰서 앞에 서 있다 보니 허벅지가 마비될 정도였다.과거의 그는 상류층에 속해 있어서 인간성의 복잡성과 인정의 차고 따뜻함을 깊이 느낀 적이 없었다. 염정아의 일을 통해 그는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꼭 설명이 필요한 건 아니고 당사자가 후회하지 않는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다만 온시환은 이제 정말 지쳤고 그는 그저 공지민이랑 오랫동안 함께 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공지민은 마음속에 너무 많은 것들을 품고 있었고 오랫동안 원한으로 가득 차 있었다.공지민도 TV 뉴스를 통해 교통사고가 난 사람이 염정아의 동생이란 걸 알았다. 그녀는 매우 걱정스러웠고 염정아의 동생이 왜 제국에 있는지 혼란스러웠다.그녀는 서둘러 연승혁에게 전화를 걸었고 바람 쐬러 나가겠다고 전했다.연승혁은 그녀가 나가면 온시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봐 걱정됐고 그로 인해 지금 진행 중인 게임도 끝나버려서 그한테 불리할까 봐 단박에 거절했다.하지만 몇 시간 후 공지민은 울먹이면서 또다시 연승혁한테 전화를 걸었다.“고등학교 때 친구가 방금 뉴스에 나왔어요. 기억이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흑흑, 걔가 사람을 죽였대요. 오빠, 걔 만나러 가야 돼요. 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걔가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염정아의 동생이 죽은 다음 염정아가 원아정을 죽인 걸 봐서 염정아 동생의 죽음이 원아정과 관련이 있는 게 분명했고 염정아가 원아정한테 복수하려고 그녀를 죽였을 가능성이 높았다.공지민의 울음소리를 들은 연승혁은 마음이 아팠지만 그는 바로 동의하지 않고 사람을 시켜서 오늘의 뉴스를 조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