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윤혜인의 턱을 더 높게 들어올리더니 각도를 바꾸어 조금의 틈도 벌어지지 않게 더욱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그의 키스는 차분하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쳤고 꾹 다문 윤혜인의 입술을 조금씩 벌리고 있었다.너무 뜨거운 이준혁의 입술에 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고 그녀의 작은 행동에 자극을 받은 이준혁은 더욱 깊은 입맞춤을 선사했다. 윤혜인은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너무 놀라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이준혁은 도대체 왜 그녀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임세희인데, 왜 그녀의 마음을 자꾸 흔들고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는 걸까?입가에서 짠맛이 느껴지자 거칠게 밀어붙이던 이준혁의 행동이 살짝 부드러워졌지만 여전히 그녀를 놓아주지는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귓볼에 살짝 입을 맞추다가 이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혜인아.”살짝 갈라진 이준혁의 목소리에 흠칫하던 윤혜인은 더욱 울고 싶어졌다.그녀는 이게 무슨 시그널인지 잘 알고 있었다.이준혁이 그녀의 몸을 원하고 있다…“계속 반항할 거야?”이준혁의 질문에 윤혜인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이준혁이 정말 그녀를 덮칠까 봐 감히 그를 자극하지 못했다.“날 화나게 하지 마.”계속되는 이준혁의 말에 윤혜인은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채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이준혁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돌려 그녀를 빤히 쳐다보면서 명령하듯 말했다.“날 봐.”이준혁의 손가락에 얼굴을 꿈쩍도 할 수 없었던 윤혜인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쳐다보았고 조금 전에 너무 거칠게 입을 맞춘 이준혁 때문에 그녀의 입술은 빨갛게 부어 있었다.촉촉한 윤혜인의 입술을 쳐다보던 이준혁은 또다시 참기 힘들었다. 평소에 고분고분하던 윤혜인의 갑작스로운 반항이 이준혁의 자극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윤혜인이 다른 남자와 같이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 화가 잔뜩 난 이준혁은 그녀의 남자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윤혜인의 눈가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몸을 격하게 떨면서 흐느끼던 그녀는 이준혁에게 욕을 퍼부었다.“이준혁, 이 나쁜 놈, 당신은 사람도 아니야, 맨날 날 괴롭히기나 하고…”순간, 심장이 저릿한 이준혁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물에 입을 맞추었다.하지만 그 행동에 윤혜인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대체 이준혁은 그녀를 뭘로 생각하는 걸까? 사랑하지 않으면서 왜 그녀에게 이런 짓을 저지르는 걸까?서럽고 분한 마음이 북받쳐 오른 윤혜인은 훌쩍거리면서 물었다.“날 사랑해요?”이준혁의 입술이 흠칫 떨렸고 어두워진 눈빛은 그대로 굳어진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의 침묵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윤혜인은 당장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를 10년이나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는 그녀에게 단 일말의 마음도 주지 않았다.손에 부상을 입은 탓에 힘을 줄 수 없었던 윤혜인은 입을 벌리더니 그대로 이준혁의 턱을 꽉 물어버렸다.“쓰읍!”갑자기 느껴진 통증에 이준혁이 숨을 들이마셨고 그녀의 턱을 살짝 꼬집으며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당장 놔.”입을 벌려 그를 놔준 윤혜인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렸지만 눈물은 계속 줄줄 흐르고 있었다.이준혁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윤혜인을 보며 그녀가 다른 남자를 위해 자신의 몸을 지키려고 반항한다고 여겼다.화가 치밀어 오른 이준혁은 결국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안 건드릴 테니까 그만 울어.”말을 마친 이준혁이 뒤도 안 돌아보고 방을 나섰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윤혜인은 심장에 구멍이 뚫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었으며 참다못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위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듯 너무 메스꺼워서 그녀는 구토를 멈추지 못했다.이준혁은 임세희를 찾으러 갔겠지? 그 여자야말로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이준혁에게 있어서 윤혜인의 유일한 가치는 2년 동안 바쳐온 이 몸뚱어리밖에 없으니까…윤혜인은 소리를 내지
이리저리 훑는 김성훈의 눈빛에 언짢아진 이준혁이 고개를 들더니 살짝 웃으며 물었다.“그러지 말고 더 가까이 다가와서 볼래?”그 웃음은 얼음장 마냥 차가웠으며 살기가 가득했기에 김성훈은 어색하게 웃다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아니, 너무 격렬하게 한 거 아니야? 임세희는 그 허약한 몸으로 어떻게 감당해낸 거야?”“세희 아니야.”김성훈의 말에 이준혁이 굳은 표정으로 쌀쌀하게 대답했고 그 대답에 화들짝 놀란 김성훈은 입을 쩍 벌리고 다시 물었다.“뭐? 그럼… 설마 윤혜인?”이준혁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묵인한 셈이다.“내 기억으론 윤혜인은 말도 잘 듣고 고분고분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거칠게 놀았어?”김성훈이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묻자 곁에서 몸매가 화끈한 여인을 품에 안고 있던 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너랑 이혼하기 싫어서 얕은 수를 쓰는 거 아니야?”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이준혁이 결국 임세희와 결혼할 거라고 확신했다. 여자에게 곁을 주지 않는 이준혁이 임세희에게만 다정한 모습을 보이고 그녀를 애지중지 아꼈기 때문이다.더군다나 두 사람은 신분 지위가 비슷했기에 다들 임세희가 당연히 이씨 가문의 며느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모순이 생겼는지 임세희가 해외로 나가자마자 다른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이준혁이 갑자기 결혼 발표를 했다.처음엔 다들 이준혁이 윤혜인의 꼬드김에 넘어갔다고 생각하여 윤혜인을 미워하고 원망했지만 시간이 오래 지나고 보니 윤혜인은 조용하고 착실한 성격으로 문제를 전혀 일으키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들 윤혜인에 대한 오해는 많이 풀렸지만 그래도 그들은 임세희에게 더욱 마음이 갔다.이 바닥 문화가 그렇다.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한 건 그저 전설에 불과하고 그들과 같은 부잣집 도련님들은 결국 비즈니스를 위한 결혼이 답이다.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던 이준혁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니야.”차라리 이 모든 게 윤혜인의 얕은 수였다면 그는 이렇게까지 짜증이 나
육경한은 술집에서 같이 있던 여자에게 안긴 채 술집을 떠났고 김성훈은 술에 반쯤 취한 이준혁을 보며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오늘밤엔 우리집으로 오면 안 돼. 그러다가 숨어있는 기자들한테 찍히면 우리 둘이 뭐라도 있는 줄 알고 오해할 거 아니야.”“꺼져.”차갑게 한마디 내뱉던 이준혁이 말을 이어갔다.“난 집에 갈 거야.”이준혁이 차에 오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고 확인해보니 임씨 아주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임세희가 몸이 아파서 울고 있다는 말에 이준혁이 운전기사에게 말을 남겼다.“병원으로 가.”고급 외제차는 어느새 병원 주차장에 도착했고 뒤좌석에 놓인 이준혁의 핸드폰엔 부재중 전화가 반짝거리고 있었다.차에서 내린 이준혁은 담배를 한 대 다 피우고 나서도 올라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바로 이때, 하늘이 번쩍거리더니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했다.병원 입구를 힐끗 쳐다보던 이준혁이 다시 차문을 열고 차에 들어서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스카이 별장으로 돌아가.”한편, 이제야 겨우 침대에 누운 윤혜인은 조금 전에 너무 심각하게 구토를 한 탓에 도우미가 준비한 야식도 먹지 못했다. 도우미의 도움으로 샤워를 마친 그녀는 잠을 청하려고 노력했다.밖에서 폭우가 몰아치고 천둥번개까지 번쩍거렸지만 방안은 방음이 잘 되어 있기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윤혜인은 침대에 누워 오늘 이준혁이 했던 행동들을 떠올렸다가 남자와 여자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남자는 좋아하지 않는 여자랑도 그런 일을 할 수가 있구나.하지만 윤혜인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녀는 이준혁을 사랑하기에 자신을 이준혁에게 바쳤는데 결국엔 어떻게 되었는가…그녀가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이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저 보잘것없는 물건뿐이었다.윤혜인은 갑자기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이제부터 이준혁 생각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시간만 나면 머릿속에 온통 그 남자뿐이다.그녀는 아마도 이곳 스카이 별장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찌 됐든 이곳 구석구석에 두 사람이 알콩달콩했던 흔
한쪽 발을 슬리퍼에 넣은 윤혜인은 이준혁의 말에 깜짝 놀라 다시 침대위로 풀쩍 뛰어오른 뒤,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전 안 내려갔어요.”“혜인아?”이준혁이 눈썹을 살짝 들썩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는 유난히 다정했지만 그 말투가 다정할수록 뼛속까지 숨긴 그의 짜증 지수가 점점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윤혜인은 잘 알고 있었으며 이 또한 점점 위험하다는 신호이다.“내가 그렇게까지 별로는 아닐 텐데?”이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물었다. 2년 동안이나 함께 했는데 이 여자는 아직도 그를 경계하고 있다.순간, 그녀의 대답이 별로 듣고 싶지 않아진 이준혁이 갑자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품에 와락 껴안았다. 그러더니 손바닥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 위로 번쩍 들어올렸으며 자신의 턱에 찍힌 이빨 자국을 보여주었다.“늑대 새끼도 아니고, 너무 세게 물었잖아.”깊은 밤, 주위가 한없이 고요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준혁의 목소리가 유난히 섹시했다.조금 더 가까이 다가간 이준혁이 윤혜인의 귀를 살짝 물더니 말을 이어갔다.“내일 이대로 회사 갔다가 누가 놀리기라도 하면 넌 각오해야 할 거야.”윤혜인의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야릇한 스킨십이 불편했던 그녀는 손을 뻗어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준혁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이준혁이 갑자기 몸을 돌려 침대에 누운 채 이를 악물며 참고 있는 듯 말했다.“움직이지 마. 잠만 잘 거야.”윤혜인의 착각인지는 모르지만 왠지 이준혁의 말투에 피곤과 서러움이 섞여 있는 듯했다. 이준혁은 그녀의 허리에 손을 살짝 올렸다. 옷 위로 만졌는데도 뜨거운 이준혁의 손바닥이 고스란히 느껴졌기에 윤혜인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살짝 부르르 떨었다.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윤혜인은 혹시라도 이준혁에게 들킬까 봐 최선을 다해 참고 있었고 등 뒤에서 그녀의 말랑한 살결을 만지며 이준혁이 원망하듯 입을 열었다.“뭘 그렇게 긴장하고 있어. 얌전히 잠만 자겠다고 했잖아.”윤혜인은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
“네 생각엔?”이준혁이 팔목으로 머리를 지탱한 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윤혜인을 쳐다보았고 윤혜인은 살짝 눈치를 보다가 곧바로 대답했다.“된 거 같아요.”너무 오랜만에 이렇게 한 침대에 누운 거라 윤혜인은 괜히 더욱 난감하고 쑥스러웠다.“혜인아.”이준혁이 손을 뻗어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머리카락들을 정리해주다가 기다란 손가락으로 그녀의 귓볼을 만지작거리면서 물었다.“내가 언제 그렇게 빨리 끝냈어?”그의 말에 윤혜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고 귀까지 빨개졌다. 이준혁은 점점 빨개지는 귓볼을 감상하며 입꼬리가 자신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응? 그러지 말고 나 좀 도와줄래?”윤혜인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 남자가 언제부터 이렇게 야릇한 말을 잘하게 됐지?그녀는 몸을 살짝 움츠리더니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저 이제 그만 일어날래요.”이준혁이 그녀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윤혜인이 빠른 속도로 화장실로 후다닥 뛰어들어갔고 한참 동안 화장실 변기에 앉아있다가 조심스럽게 나와보니 침대에는 이미 이준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윤혜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도 그녀가 화장실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이준혁이 다른 방에 샤워하러 간 모양이다.이제 아침 8시가 거의 되어가니 이준혁은 샤워를 마치고 바로 회사로 가겠지.이런 생각에 윤혜인이 밖에 있던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그녀의 샤워를 도와달라고 높은 목소리로 불렀고 아래층에서 청소를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바로 올라가겠다고 대답했다.윤혜인은 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부탁하기 부끄러웠지만 그렇다고 혼자 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욕조에 물을 받은 윤혜인은 잠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궜다. 이내 욕실의 문이 열렸고 윤혜인은 여전히 욕조안에 앉아있었으며 그녀는 뒤도 안 돌아본 채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아주머니, 저 욕조물에 꽤 오래 담그고 있었어요. 수건으로 제 몸만 닦아주시면 돼요.”하지만 한참 기다려도 상대방이 대꾸를 안 하자 윤혜인이 고개를 들었고 유리창의
몸에 가운을 두르고 있긴 하지만 윤혜인은 여전히 차갑고 딱딱한 세면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읍…”윤혜인이 뭔가 말을 하려고 웅얼거리는 바람에 이준혁의 욕망이 더 불타올랐다. 윤혜인이 다치지 않은 손으로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고 했고 얇은 셔츠 안에 있던 그의 복근이 선명하게 만져졌다.하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이준혁을 밀어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되레 이준혁의 흥미를 더욱 불러일으켰다.이준혁이 한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을 머리위로 들어올리더니 등 뒤에 있는 거울에 밀어붙였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잡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리고는 기다란 다리를 세면대에 밀착한 채 그녀가 떨어지지 않게 보호했다.이런 속박에 윤혜인은 정복당했다는 자극이 느껴지는 동시에 수치심도 함께 올라왔다.지금 이 순간, 윤혜인은 민감한 몸을 가지고 있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녀가 이준혁의 거친 입맞춤에 기절하려던 찰나, 이준혁이 그녀 입술에서 입을 떼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그녀의 목덜미에 계속 뜨거운 입김을 불어넣었고 윤혜인은 그 열기에 온몸에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그러던 중,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윤혜인이 소리를 지르며 어깨를 움츠렸고 고개를 돌려 뒤에 있는 거울을 비춰보니 이준혁이 그녀의 목에 빨간 키스마크를 남겼다.“살결이 왜 이렇게 약해.”이준혁이 거울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는 품에 안겨 있는 윤혜인이 아닌 거울에 비친 그녀를 보고 얘기하고 있었고 그의 말에 윤혜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올랐다.“당신… 당신…”윤혜인은 화가 나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이준혁은 여유롭게 턱을 들더니 이빨 자국을 보여주면서 그녀에게 경고했다.저렇게 복수심이 강한 남자가 어디 있어!하지만 그녀는 단지 그의 턱을 깨물었을 뿐, 입을 맞추지는 않았는데 이준혁은 자꾸 말도 없이 그녀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설마 이것도 복수라는 건가?핸드폰이 울리자 이준혁이 그녀 앞에서 전화를 받았고 주훈이 그에게 회의 시간
이준혁은 굳게 닫힌 방문을 보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윤혜인은 언제든 이렇게 얌전히 방안에 있어야 하고 그의 손바닥 안에 있어야 한다.그녀가 계속 반항을 한다면 그를 받아들일 때까지 괴롭혀야지.차에 오른 이준혁이 주훈에게 지시를 내렸다.“윤혜인이 대학교 다닐 때 가깝게 지냈던 남자가 있는지 한번 알아봐.”한편, 아침을 먹은 윤혜인은 다시 침대에 누웠고 요 근래 이준혁의 행동을 떠올리자 마음이 불안하고 착잡했다.함께 한 2년 동안 이준혁이 그녀의 몸을 좋아하고 탐한다는 건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생리적 수요를 만족하려면 임세희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이런 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더 자극적인 거잖아?혹시 임세희의 몸이 너무 약해서 이준혁이 그녀를 다치게 할까 봐 걱정돼서 관계를 안 가지는 건가?몸이 가장 뜨겁게 불타오를 때 이준혁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는 윤혜인은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여겼다.오후쯤 되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위층으로 올라와 누군가가 그녀를 찾아왔다고 전했고 윤혜인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녀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아래층으로 내려와보니 거실에 앉아있는 임세희를 단번에 발견할 수 있었고 윤혜인은 임세희가 스카이 별장까지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곳은 그녀와 이준혁이 결혼 후 줄곧 같이 살던 곳인데 말이다.“혜인 씨, 손은 좀 괜찮아졌어요?”임세희는 오늘 유난히 기색이 좋아 보였으며 말투도 한껏 다정했다.윤혜인이 위층에서 내려와 소파에 앉으며 담담하게 대답했다.“임세희 씨는 제 손이 걱정돼서 찾아온 게 아닌 거 같은데, 이곳엔 저희 둘만 있으니까 할 말 있으면 그냥 하세요.”눈부신 햇살에 비춰진 윤혜인의 백옥 같은 피부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고 물에 떠있는 하얀 장미 마냥 순수하고 아름다웟다.임세희는 그런 윤혜인을 보며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웠다.‘역시 여우 같은 계집애는 태생부터 남다르네, 남자들에게 놀아난 천박한 계집애 주제에
“감사합니다, 주 변호사님.”소원은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는 사람이 있다면 정보를 얻기가 더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주석훈이 너무나 성의껏 도와주자 소원은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했다.“다음에 제가 수고비 추가로 드릴게요. 시간을 뺏은 것에 대한 보상으로요.”“그럴 필요 없습니다.”그러자 주석훈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처음에 합의한 금액 그대로 주시면 됩니다. 저는 사건 단위로 일을 처리하지 시간을 기준으로 하진 않아요.”“예전에 이선 그룹 이준혁 대표님한테서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번 일도 이선 그룹 사모님께서 직접 부탁하신 거라 사건을 맡은 이상 전 끝까지 책임질 겁니다. 소원 씨, 나중에 문제 생기면 언제든 저와 상의하세요.”소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그렇게 주석훈과 헤어진 후, 소원은 주소에 적힌 감정 기관으로 택시를 타고 향했다.도착해서 본 기관은 규모도 크고 분위기가 엄숙했다.벽에는 여러 신고 관련 홍보 문구가 붙어 있었다.홍보 문구에는 ‘의사나 조수가 사적인 이익을 위해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익명 신고 시 거액의 포상이 지급된다’고 쓰여 있었다.이런 점을 보면 이 기관이 사법 당국에서 전문 기관으로 지정된 것은 인맥이 아닌 철저한 절차와 엄격한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그럼에도 소원은 육경한이 어떻게 이런 철저한 검사를 피해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는 주석훈이 소개해 준 동창, 강백호를 찾아가 감정 과정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강백호는 말했다.“저희는 각 과정마다 최소 다섯 번 이상 검증을 거칩니다. 이렇게 철저히 검증하는 이유는 어떤 작은 오류나 부정행위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초반 두 번의 검사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후반 세 번의 검사는 다른 기관으로 혼합 샘플을 보내 재검사하기 때문에 절대 통과할 수 없습니다. 이 재검사 기관들은 모두 비공개로 운영되며 샘플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조작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분별력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렇게 대해야 마땅하지. 잘 대해줘봤자 소용없어!’“민아 씨한테 사과해.”육경한은 방민아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주려는 듯 말했다.이내 소원의 눈빛이 차가워졌지만 그녀는 유진을 떠올리며 결국 마지못해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제가 오해해서 그런 말을 했어요. 물론 민아 씨도 그런 의도가 없었다면 다행이고요.”소원이 잠시 멈추고 나서 말을 이어갔다.“나중에 엄마가 되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모든 엄마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는다는 걸요.”소원은 사과하는 듯했지만 실상은 방민아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유진에게 손을 대기라도 한다면 자신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워낙 통찰력이 뛰어났던 방민아는 이를 단번에 알아챘다. 마음이 불편하긴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물론이죠. 이해합니다. 저와 경한 씨와 결혼 후 바로 임신 준비를 할 예정이에요. 벌써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느껴지네요. 모든 엄마가 아이를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요.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하지 말아야 할 일도 하지 않을 겁니다.”가벼운 대답인 듯 보였지만 방민아 역시 소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는 것이었다.“미리 축하드릴게요.”자연히 그 뜻을 이해한 소원이 답했다.그러자 방민아는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었다.그들의 대화를 들을 마음이 없었던 육경한은 방민아에게 고개를 숙여 물었다.“걸을 수 있겠어요?”방민아가 말했다.“한 번 해볼게요.”한 걸음 내디디자마자 소원은 고통스러운 듯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윽...”결국 육경한은 방민아를 들어 올리며 뒤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차가운 바람이 지나가자 소원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불길한 예감이 그녀를 휘감으며 유진에 대한 걱정이 더욱 깊어졌다.그때 주석훈이 나와 말했다.“소원 씨, 육경한 씨가 감정을 의뢰한 기관은 이곳입니다.”그는 소원에게 주소를 건네며 덧붙였다.“이곳은 전문 사법 기관으로
방민아는 온몸을 육경한의 품에 기댄 채, 힘없는 모습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그 모습은 누가 봐도 애처로워 보였고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켰다.“저... 저는 괜찮아요. 소원 씨랑은 상관없어요.”이 말은 소원을 감싸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갈등을 피하려는 방민아의 태도를 부각시켰다.억울함을 감내하는 부잣집 딸, 이 얼마나 보기 좋은 이미지인가.방민아의 말에 육경한의 날카로운 시선이 소원을 향했다.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민아 씨한테 사과해.”자신이 본 상황이 전부였기에 그는 방민아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이 순간, 육경한은 예전의 그 차갑고 냉정한 남자로 되돌아갔다.소원이 자신의 뜻을 계속 거스르자 육경한은 이번에 확실히 그녀에게 교훈을 주기로 마음먹었다.이제 그는 더 이상 소원을 달래거나 설득하지 않을 것이다.그가 원하는 건 소원이 두려워하고 겁을 먹으며 예전처럼 자신에게 굴복하는 것이었다.그러나 소원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첫째, 난 민아 씨를 밀지 않았어. 둘째, 내가 민아 씨를 죽이겠다고 한 건 민아 씨가 유진이에게 악의를 품었기 때문이야. 육경한, 만약 민아 씨가 유진이를 해치는 걸 묵인한다면 너도 함께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거야!”소원의 말에 방민아는 입을 가리고 크게 놀란 척하며 말했다.“소원 씨, 왜 이러세요.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한 적 없어요. 그냥 소원 씨가 안쓰러워서 그런 거예요.”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눈물은 뺨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저는 단지 엄마로서 소원 씨가 안쓰러워서 아이를 잘 돌보겠다고 말했을 뿐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소원 씨, 제발 사실을 왜곡하지 마세요.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쁜 짓을 한 적이 없어요. 이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그녀는 고개를 돌려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육경한에게 말했다.“경한 씨, 저희 집안의 명예를 걸고 맹세할게요. 저는 절대로 아이에게 나쁜 일을 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저
방민아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소원 씨, 방금 법정에서 경한 씨가 아이를 이용해 소원 씨를 다시 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고 하셨죠? 제 생각엔 그건 오해인 것 같아요.”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방민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 말을 이어갔다.“경한 씨랑 약혼한 지 몇 달이 됐는데 그동안 저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잘 지내왔어요. 게다가 결혼 날짜도 정해졌고요. 그래서 저는 경한 씨를 믿어요.”소원은 이 말을 듣고 방민아가 의도적으로 자신과 육경한의 관계를 자랑하면서 동시에 자신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민아 씨가 육경한을 믿는 건 민아 씨 일이고 굳이 저에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소원이 단호히 대답했다.“민아 씨는 민아 씨가 믿는 걸 믿으시면 되고 저도 제가 믿는 걸 믿을 겁니다.”방민아는 망신을 당했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고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경한 씨는 항상 말을 간결하게 하는 사람이라 어쩌면 소원 씨가 그 뜻을 잘못 이해한 걸 수도 있어요. 경한 씨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사실 소원은 방민아와 더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그럼 다행이네요.” 그래서 소원은 방민아에게 짧고도 간단한 대답을 해줬다.그러자 얼굴에 살짝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지만 방민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말을 더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때 소원의 변호사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방민아는 곧 표정을 바꾸더니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소원 씨, 걱정 마세요. 제가 아이 잘 돌볼 테니까.”이 말에 소원의 얼굴이 굳어졌다.잘 돌본다는 말의 의미는 결코 말 그대로의 뜻이 아니었다.방민아는 유진이를 빌미로 소원을 위협하려는 것이 분명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소원의 눈빛이 무서울 정도로 차가워졌다.“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세요. 유진이를 건드리면 그쪽도 후회하게 될 겁니다.”그러나 방민아는 오히려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소원 씨는 지금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요.”그녀는 육연주처럼 무모
소원은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아이를 어머니 곁에서 빼앗는 것만큼 절망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육경한은 단 한 번의 말로 다시 한번 그녀를 깊은 늪으로 밀어 넣었다.소원은 마치 자신을 가로막는 커다란 그물이 머리 위에 드리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었다.주석훈은 소원의 절망적인 표정을 보고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애써 위로의 말을 건넸다. “소원 씨,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소원 씨 말대로라면 육경한 씨가 약을 복용해 온 건 확실한 사실일 겁니다. 이번엔 분명 무슨 술수를 쓴 거겠죠. 기운 내세요. 함께 노력하면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변호사는 냉철했고 고작 몇 마디 말로 소원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그래, 육경한이 약을 복용하지 않았을 리 없어. 이번 결과에는 분명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주석훈은 법원에 아는 사람을 찾아가 육경한이 감정을 받은 기관에 문제가 없는지 알아보기로 했다.그리고 소원에게 먼저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남겼다.그렇게 소원은 혼란스러운 상태로 입구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가다 그만 한 사람과 부딪혔다.코를 세게 부딪쳐 아팠지만 그녀는 급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괜찮습니다.”맑고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소원은 멈칫했다.얼굴을 들어 확인하니 역시나 서현재였다.원래도 아팠던 코가 더 시큰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고 소원은 고개를 숙이며 눈물이 터질까 봐 나지막한 소리로 다시 말했다.“미안해요.”그리고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잠시만요.”서현재가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소원은 그의 부름에 걸음을 뚝 멈췄고 서현재는 그녀의 손을 가리킨 후 다정하게 손수건을 내밀며 말했다.“싸매요.”여전히 따뜻하고 친절한 서현재의 모습에 소원은 더 가슴이 아려왔다.하여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괜찮습니다. 고마워요.”이내 소원이 다시 떠나려 했지만 서현재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세게 잡았다.그러고 나서 단숨에 그녀의 상처를 손수건으로 감싸며 응급처치를 해줬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상대 변호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원고 측이 제출한 약물 분석 보고서는 애초에 저희 의뢰인이 복용한 약물이 아닙니다. 저희 의뢰인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합니다. 이는 최근 신체검사 결과와 저희가 법원에 신청한 정신 감정 결과 보고서입니다.”변호사는 한 단어씩 정확하고 또박또박하게 읽어나갔다.“이 보고서는 저희 의뢰인이 정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음을 충분히 증명합니다.”소원의 얼굴에서는 순식간에 핏기가 사라졌다.‘나보다 한발 앞서서 법원에 감정을 신청했다고?’그 말은 처음부터 소원이 육경한의 정신 질환 약을 가져다 증거로 삼으려 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그녀가 철저히 준비했던 모든 계획이 사실은 모두 육경한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이 사실을 알아차린 소원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주석훈도 의아했다.‘분명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왜 갑자기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 거지?’법원의 감정 결과는 신뢰도가 무려 99.99%에 달한다. 게다가 상대가 먼저 감정을 신청했다는 것은 이미 자신들의 패를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상대 변호사는 계속해서 반박을 이어갔다.“이 모든 것이 원고 측의 억측일 뿐입니다. 게다가 원고 측은 수년에 걸쳐 국내외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원고의 신체적, 심리적 상태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증명합니다.”변호사는 이렇게 말하며 소원의 해외 진료 기록과 국내 진료 기록을 제출했다.비교해 보면 오히려 소원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이후의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결과는 명백했고 예상대로 소원은 처참히 패배했다.육경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마디,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만 말했을 뿐인데도 손쉽게 그녀를 이겼다.“아닙니다.”소원은 목이 메어 힘겹게 입을 뗐다.“그렇지 않아요. 저 사람은 악마예요. 미쳤다고요. 저를 협박해서 아이를 가지게 했고 지금도 저를 협박해서 다시 그 더러운 관계를 이어가려고
증거 제출 단계에 도달했다.주석훈은 먼저 한 건의 동영상 증거를 제출했는데 그것은 과거 서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동영상 스캔들 사건의 영상이었다.그 영상은 한쪽이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이는 육경한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그 영상은 모두 처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소원의 손에는 여전히 원본이 남아 있었다. 육경한의 무뚝뚝한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소원이 이번 재판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가 분명해졌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그 속에 서현재도 포함되어 있었다.그는 영상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화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화면 속으로 뛰어들어 남자를 단단히 혼내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반응에 스스로도 놀랐다.평소 서현재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왜 이렇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거지?’영상이 끝난 후, 주석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존경하는 재판장님, 방금 보신 영상은 제 의뢰인과 피고가 등장하는 영상입니다. 피고는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으로 제 의뢰인을 협박하여 따르게 만들었습니다. 당시 상황에서 제 의뢰인이 어쩔 수 없이 요청했던 일이었지만 과정 전반에서 피고의 일방적인 폭력이 드러납니다. 이런 사람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저희는 피고가 정신과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아왔다는 증거를 확보했습니다.”주석훈은 한 보고서를 꺼내 들며 계속 말했다.“이것은 피고가 복용한 약물의 분석 보고서입니다.” 증거가 제출된 후, 판사는 이를 자세히 검토하고 나서 육경한에게 물었다.“원고 측 주장에 동의하십니까?”“동의하지 않습니다.”육경한은 망설임 없이 재판장의 말에 반박했다.소원은 그의 말을 듣고 어깨를 움츠렸고 옆에 있던 주석훈도 그녀가 긴장했다는 것을 느낄
게다가 만남이 잦아지면서 주석훈은 성격이 올곧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다워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직접 느끼게 되었다.아니나 다를까 주석훈이 차갑게 경고했다.“제 의뢰인에게 소송을 거는 건 되지만 한가지 말씀드릴 게 있어요. 공공장소에서 제 의뢰인을 모욕하고 없는 사실을 만들어 협박까지 하는 심각한 위법 행위를 저질렀어요. 영상으로 남겼으니 우리도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있습니다.”“...”육연주가 할 말을 잃자 주석훈이 말을 이어 나갔다.“그리고 제 의뢰인은 받은 걸 그대로 돌려준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그렇다는 건 앞서 만났을 때 이미 제 의뢰인의 따귀를 때린 적이 있다는 걸 증명하죠. 합법적인 방법으로 CCTV 영상까지 입수하면 오늘 사건의 입증 자료로 쓸 수 있어요. 그리고 아가씨가 만들어낸 얘기에 제 의뢰인이 심리적인 타격을 입었으니 제 의뢰인의 명예권을 침범한 거나 다름없어요. 민사 소송은 제기해도 되는 부분이라 끝까지 쫓아가 볼 생각입니다.”“닥쳐요.”육연주는 세도 너무 센 변호사의 말발에 약이 잔뜩 올랐다. 하필 육연주가 못 알아듣는 말들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참에 변호사가 얼마나 대단한 직업인지 이참에 알게 되었고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저 여자가 먼저 나 욕했어요.”육연주가 떼를 쓰기 시작했다.“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영상까지 확보했는걸요.”주석훈이 말했다.“당신 정말...”육연주는 화가 치밀어올라 미칠 지경이었다. 말로 벌어먹는 변호사에게 말로 덤볐으니 승산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하여 얼른 서현재를 옆으로 끌어당겼다.“현재 오빠, 다른 사람이 오빠 여자 친구 괴롭히는 거 보고만 있을 거예요...”서현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주석훈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육연주는 오만해도 너무 오만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육연주를 사랑했다고 서현재에게 말해줬지만 서현재는 자기가 이렇게 볼품없는 여자를 좋아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육연주는 화가 난 나머지 발을 동동 굴렀다.“현재 오빠, 나
법원 입구라 원래도 시비가 많이 갈리는 곳이었고 오가는 사람도 많았다. 내연 관계로 싸우는 경우도 파다했기에 딱히 놀라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소원 씨, 나 같으면 부끄러워서라도 일단 무릎 꿇고 싹싹 빌겠어요. 삼촌도 사실 그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소원 씨처럼 교양 없는...”육연주는 말하면 말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는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 소원이 손을 들어 육연주의 뺨을 후려갈겼다.철썩.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육연주는 고막이 아플 지경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한참 반응하던 육연주가 그제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원을 노려봤다.“미... 미쳤어요?”육연주는 소원이 싸대기를 날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빈약한 소원은 자기를 보호할 힘이 없어 남자에게 빌붙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소원은 예전부터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가 겪은 일들은 멘탈이 강한 사람이 아니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예전대로 육경한이 하라는 대로 했지만 소원은 육경한이 한 짓이 틀렸다고 증명하는 걸 포기한 적이 없었다.“육연주 씨, 이 따귀는 내가 맞은 걸 그대로 돌려주는 거예요.”소원이 말했다.“그리고 내 아이는 잡것이 아니에요. 나와 육경한 사이에 일어난 일은 삼촌이 직접 들려준 얘기를 들은 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뭐 육연주 씨가 지적한다고 해서 듣지는 않을 테지만요. 하지만 이 따귀는...”소원이 잠깐 뜸을 들이더니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받은 대로 돌려주는 게 내 원칙이라.”소원은 늘 다른 사람이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나서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육연주처럼 어이없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대해주는 게 답이었다. 소원은 이제 홀몸이 아니었기에 충분히 강해져야 했고 그녀를 괴롭힌 사람들에게 그녀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육연주는 소원이 한 말에 놀랐는지 벙어리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고 옆에 있던 서현재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