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천수가 아직 포기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에 아직은 공개할 수가 없다.꾹 입을 닫고 있는 이준혁에 원지민이 계속하여 말을 이어갔다.“준혁아, 네 전 와이프는 널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아.”그 말은 마치 커다란 자석처럼 이준혁의 가슴 깊은 곳에 박힌 가시를 다시 돋우어 주었다.허...원지민처럼 일면식도 없는 외부인조차도 그녀가 그를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줄은 몰랐다.그만큼 윤혜인의 마음이 선명하다는 것이다.이준혁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원지민은 그제야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고 감정도 안정되었다.“이건 아줌마의 뜻이니 계략을 쓰는 건 어때?”뜻밖의 제안에 이준혁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내가 없어도 아줌마는 계속 다른 여자를 소개해 줄 거잖아. 그렇다면 내가 방패막이가 돼도 상관없어.”그러자 이준혁이 미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이 제안에 동의하지 않는 모습이었다.“걱정 마, 난 너한테 그런 마음이 없어. 나도 당분간은 선을 보고 싶지 않아서 그래. 네가 나를 방패막이로 삼으면 나도 너를 허울로 삼을 거야. 아무도 손해 볼 거 없잖아.”이준혁이 그 어떤 부정도 하지 않자 원지민은 곧바로 기회를 틈타 멋대로 결정을 내려버렸다.“그럼 그렇게 하자. 네가 내 부탁 하나 들어주는 거로 퉁치자고. 공개 안 해도 돼. 그냥 각자 부모님한테만 말하는 거로 하자.”말을 마치고 그녀는 도시락을 들고 두어 번 흔들어 보이며 한마디 거들었다.“이건 내가 가서 먹고 보여줄게.”사무실을 나서자 원지민의 얼굴에 어려 있던 순진함도 일순간에 깨끗하게 사라졌다.이렇게 몇 년 동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이준혁이 그녀를 남자로 여기며 친구로 지냈던 시간이다. 그때야말로 그들이 가장 가까이 의지했을 때니까.원지민이 여자라는 것을 의식하게 된 후, 이준혁은 즉시 그녀를 멀리했다.결국, 원지민은 상심을 품고 유학을 떠났지만 돌고 돌아보니 그녀는 여전히 그를 놓아줄 수 없었다.그를 갖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켜졌고 편집증도
말을 이어가며 그녀는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한 틈을 타서 재빨리 지하철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지하철역 안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설마 잡으러 올 리는 없겠지?지하철을 탔는데도 윤혜인의 마음은 계속 두근거렸다.그녀는 한구운의 또 다른 그 얼굴이 너무 두려웠다.지하철이 곧 역에 도착하고 윤혜인은 군중을 따라 역을 나서 앞사람을 따라 걸었다.지하철역은 단지에서 2천 미터도 채 안 되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다.아파트 단지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앞사람이 다른 길로 꺾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윤혜인은 문득 불안한 마음에 동네 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그때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온몸의 신경이 곤두선 윤혜인이 가방 안에 있는 늑대 방지 스프레이를 슬쩍 움켜쥐자 등 뒤에서 들리던 발걸음 소리도 갑자기 빨라졌다. 그 순간, 윤혜인은 재빨리 몸을 틀어 그 사람을 향해 스프레이를 번쩍 들었다.그러나 그녀를 앞선 그 사람은 마치 그녀를 정신병자처럼 쳐다보는 것이다.그 사람은 정말 순전히 행인일 뿐이었다.윤혜인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미스트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그렇게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혜인아.”가슴이 흠칫 떨려났고 막 발을 옮겨 뛰려는데 남자가 뒤에서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남자의 목소리는 온화하면서도 청아했다.“혜인아, 난 너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얌전히 차에 타, 알았지?”화들짝 놀란 윤혜인은 지척에 있는 경비실을 보고 재빨리 언성을 높여 구조요청을 하였다.“살려...”그녀의 목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다.허리춤에 주삿바늘이 닿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이윽고 한구운이 젊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네가 도망간다면 배 속의 아이는 지킬 수 없을 거야.”아이가...한구운이 그녀가 임신한 것을 알고 있다.윤혜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뭘 하고 싶은 거예요?”“얘기 좀 하고 싶어.”“싫어요.”그러자 한구운이
윤혜인이 급히 해명을 늘어놓았다.“어린 시절 일을 전부 다 기억하는 건 아니라... 죄송해요.”열두 살 때, 그녀는 머리를 한 번 다친 적이 있어 많은 것을 잊어버렸다.“잊었어?”한구운은 계속 같은 말만을 반복하였고 늘 위장하던 웃음기마저 사라져 버렸다.그는 태어날 때부터 미쳐버린 어머니의 구타와 욕설을 전부 참아냈다. 그녀는 그 남자의 정부인이 되지 못한 것을 전부 한구운의 잘못으로 돌려버렸다.그가 너무 늦게 찾아온 탓이라고, 그러니 한구운은 영원히 남에게 보일 수 없는 사생아일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그녀는 가족에게 핍박을 받은 후 시골로 피신하여 자포자기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 술과 약에 취하여 나날을 보내던 여자는 때때로 곤봉으로 한구운에게 폭행을 가했고 며칠 동안 굶기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마침내 그에게는 어머니에게 반항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고 심지어 그녀가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그 어떤 동요도 느끼지 못했다.그렇게 한구운은 이렇게 음습하게 한평생을 보내리라 생각한다.그녀를 되찾기 전까지 말이다.가장 암울한 시기, 그에게 사탕을 건네준 그 소녀.그런데 당사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윤혜인은 흐릿한 남자의 얼굴을 보며 추측했다.“혹시 그 남자아이가 당신이에요? 그리고 그 여자애는 나인 것 같고. 맞죠?”그녀는 줄곧 한구운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가 자신에게 집착하는 데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해 왔다.그런데 한구운이 그녀의 말을 바로잡았다.“같은 게 아니라 너 맞아.”한구운은 점점 그 여자아이가 윤혜인이라고 확정을 지었다. 그 펜던트 뿐만 아니라 그녀의 향기, 그녀의 눈까지 모두 기억 속의 ‘그녀'와 똑 닮았기 때문이다.윤혜인은 감히 대꾸하지 못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지금 더더욱 날 해치지 말았어야죠. 우린 친구잖아요.”한구운의 잘생긴 얼굴은 달빛 아래 부드럽고 평온한 기색을 띠고 있었고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혜인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난 너에게 상처
그녀는 도무지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선배, 미쳤어요?”그러나 한구운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혜인아, 나는 네가 항상 내 옆에 있기를 바래. 나는 이곳의 모든 것을 원하지 않아. 오직 너만을 원해.”“전 싫어요!”윤혜인이 흥분 어린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선배, 전 이미 결혼했어요.”그 말 한마디에 한구운의 완벽한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혜인아, 난 네가 결혼했어도 상관없어.”“결혼했었던 게 아니에요. 저 이준혁과 재혼했어요.”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한구운이 갑자기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순식간에 강한 관성이 밀려오자 윤혜인은 미처 반응할 사이도 없이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려 조수석 가림막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다.이윽고 한구운이 눈동자를 붉히며 그녀를 노려보았다.“뭐라고?”윤혜인은 아직도 얼떨떨한 머리를 감싸 쥐며 다시 입을 열었다.“선배, 저 어제 이준혁 씨와 재혼했으니 그 사람이 틀림없이 나를 찾아올 거예요.”순식간에 차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한구운의 얼굴에는 온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오직 어두운 그늘만이 남았다.그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캐물었다.“왜?”그런 한구운의 모습을 보자니 윤혜인은 문득 온몸의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하지만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답했다.“그 사람은 내 아이의 아빠예요. 그러니까 준혁 씨는 반드시 나를 찾아올 거예요.”한구운은 순간 싸늘한 표정으로 윤혜인의 턱을 움켜쥐며 추궁했다.“그렇게 너한테 상처를 줬는데, 아이까지 한 명 잃었는데 전부 다 잊었어?”윤혜인의 턱을 움켜쥐고 있는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고 그의 표정은 보기에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난 네가 이 아이를 임신하게 된 건 사고인 줄 알고 따지지 않았는데 감히 이준혁과 재혼해?”윤혜인은 엄청난 고통에 자의식과 상관없이 생리적인 눈물이 맺혔다.하지만 한구운은 여전히 놓아줄 생각이 없었고 당장이라도 그녀의 턱을 쥐어뜯으려는 듯 또박또박 말했다.“너희 여
윤혜인의 고운 눈동자에는 두려움과 놀라움이 가득했다.미친놈.이 남자는 정말 철두철미하게 미쳐버렸다.그녀는 아랫배를 꼭 감싼 채 경계 어린 눈빛으로 한구운을 경고했다.“한구운, 내 아이를 건드릴 생각은 하지 마. 내 아이가 있어야 내가 있어.”그러자 한구운이 담담하게 답했다.“난 네가 그를 기억하는 게 싫어. 그러니 이 기억은 내가 지워줄게.”윤혜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새하얗게 질려버렸다.하지만 그녀는 감히 그의 말을 의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한구운이라면 정말 그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안 돼!절대 그에게 끌려가서는 안 된다.한구운이 다시 차를 돌려 출발하려 하자 윤혜인이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소리를 질렀다.“악! 아파. 배가 너무 아파. 빨리 차 세워요.”그러자 한구운은 마치 그녀의 말 속의 진위를 고찰하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그녀를 물끄러미 관찰했다.“선배, 저... 아파요... 죽는 건 아닐까요...”윤혜인은 시트에 웅크리고 앉아있었는데 손바닥만 한 작은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이윽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적극적으로 그의 소매를 잡았는데 그녀의 작은 목소리는 마치 애교처럼 들리기도 했다.“선배...”부드럽고 찰진 목소리에 한구운은 잠시 멍해져서 조심스럽게 물었다.“정말 아파?”윤혜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다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어디 보자.”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혜인은 갑자기 센터 콘솔의 향수병을 들고 한구운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구운의 관자놀이가 깨지면서 새빨간 피가 옆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윤혜인은 재빨리 기회를 틈타 손을 뻗어 잠금 해제 버튼을 누르고 안전벨트를 잡아당긴 뒤 미친 듯이 문을 당겼다.그런데 다음 순간 등 뒤의 한구운이 곧바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세게 잡아당겼다.“악.”윤혜인이 갑작스러운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한구운은 싸늘한 눈빛과 함께 온통 피투성이인 얼굴을 하고 있어 감정이 없는 가면을 쓴듯한 착각이 들었다. “혜인
차는 앞으로 수백 미터나 밀려났다. 파란 차의 미친 듯한 움직임에 윤혜인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퍽!한구운의 등은 유리에 부딪혔다. 윤혜인은 의자에 묶여 있는 덕에, 그리고 한구운이 앞에 있는 덕에 부딪히지 않을 수 있었다. 안 그러면 앞으로 날아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뒤에 있던 차는 잠깐 멈춰 있다가 금세 다시 무서운 엔진 소리를 냈다.부릉!듣기만 해도 가슴이 벌렁거리는 소리였다. 윤혜인은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파란색 차는 다시 돌진하지 않고 엔진 소리만 시끄럽게 났다. 일종의 경고인 듯했다. 한구운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다친 채로 운전석에 가서 엑셀을 힘껏 밟았다.부릉!차는 쏜살같이 앞으로 날아갔다. 파란색 차도 금세 따라왔다.남자는 화려한 기술로 한구운의 앞에 가서는 억지로 차를 세우게 했다. 하지만 한구운은 차를 세우기는커녕 아까 당했던 것처럼 힘껏 파란색 차를 향해 돌진 했다.파란색 차는 진작 예상한 듯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렇게 둘은 아무도 양보하지 않고 신경전을 벌였다.잔뜩 겁먹은 윤혜인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이러지 마. 제발 이러지 마. 우리 일단 차에서 내리자, 응?”한구운은 걷잡을 수 없는 위험한 기운을 뿜어냈다. 그는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살아있는 한 절대 널 쉽게 넘기지 않을 거야.”파란색 차 안의 사람이 누군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윤혜인은 상대가 진짜 자신을 죽이려고 한 것인지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아닐 것이라고 위안하기는 했지만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두 차량은 아직도 서로 마주 붙은 채 신경전을 벌였다. 귀를 찌르는 엔진 소리에 그녀는 숨 막히도록 무서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얼굴도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졌다.이때 파란색 차가 먼저 양보하고 길을 비켜줬다. 한구운의 차는 시끄럽게 앞서 나갔다.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았던 윤혜인은 울면서 외쳤다.“오빠, 차 세워! 세우라고!”한구운 어두운 눈빛으로 지금도 따라오는 파란색
위험천만한 상황에서 이준혁은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의 눈앞에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펼쳐졌다.피투성이가 된 한구운은 자기 몸으로 윤혜인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의 몸은 철근에 찔리고 깔려 너덜너덜해졌는데도 말이다.윤혜인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이준혁은 그녀를 밖으로 끌어냈고 약간의 찰과상만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옷을 붉게 물든 핏자국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잠시 후에야 그녀는 한구운이 자신을 희생해서 그녀를 지켜줬다는 걸 깨달았다.차가 미친 듯이 질주할 때 그녀는 진짜 죽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순간 한구운이 자기 몸으로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한구운이 의자를 뒤로 당겼기에 망정이지, 안 그러면 두 사람 다 철근에 관통됐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 다시 떠오르자, 그녀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그녀를 납치한 범인이 목숨 걸고 그녀를 지켰다. 이걸 미워해야 하는지, 고마워해야 하는지 헷갈렸다.그녀는 결국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고 이준혁을 바라보며 애원했다.“오빠 좀 살려줘요... 제발...”아무리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더군다나 한구운은 그녀를 다치게 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이준혁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윤혜인이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던 모습은 낙인처럼 가슴에 찍혔다.그는 앞으로 가서 확인했다. 창백한 안색의 한구운은 금방이라도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신고부터 했다. 전문가가 없는 상황에서는 한구운을 절대 건드릴 수 없었다.손가락을 굽힌 그는 한구운이 호흡은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이때 한구운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하... 봤어요? 혜인이... 날 위해 울고 있어요... 혜인이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다고요...”한구운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말을 마친 다음에는 피까지 토해냈다. 마치 마지막 힘을 짜낸 것처럼 그는 머리를 들어 이준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무언가 말했다.그 순간
남자의 냉정함에 윤혜인은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잠시 후 그녀는 차에서 내리려고 버둥거렸지만 이준혁이 말려 섰다.그는 윤혜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차가운 시선은 가슴을 찌르는 것 같았다.“그렇게 떨어지기 싫어?”그의 시선에 겁먹은 윤혜인은 머리를 흔들었다.“아니요. 난 그냥 죽어가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둘 수 없을 뿐이에요.”이 세상에서는 매 순간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저 사람이 낯선 사람이었다고 해도 이럴 거야?”이준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너 지금 이러는 거 다 저 새끼가...!”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아 있었지만, 그 사이에는 바다가 사이 두고 있는 것 같았다.윤혜인이 다시 한번 차에서 내리려고 할 때 이준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녀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겹겹이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안 돼!”윤혜인은 비명을 지르며 옷을 꽉 붙들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이준혁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속옷만 남을 때까지 벗겨졌다.그녀는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준혁 씨 미쳤어요?!”이준혁은 그녀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하나 남은 속옷까지 찢어냈다. 결국 그녀의 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준혁 씨... 빨리... 옷 돌려줘요...”이준혁은 적나라한 눈빛으로 그녀를 훑어봤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그 눈빛에 그녀는 금방이라도 몸이 갈기갈기 찢길 것만 같았다. 그의 눈빛이 너무 강하게 느껴져서 어디를 가려야 할지도 몰랐다.그녀는 물기 머금은 표정으로 애원했다.“돌려줘요...”이준혁은 차 창문을 열고 옷을 내던졌다. 한구운의 피가 묻은 옷은 보기만 해도 미칠 것만 같았다.“차에서 내리고 싶다며?”그는 낮게 깐 목소리로 말했다. 이를 악문 모습은 무언가 참고 있는 것 같았다.“가!”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윤혜인은 낯선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옷을 전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