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은 진아연의 방 한가운데 책상 위에 놓인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그 사진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사진이었다.게다가 사진 위에는 자신을 저주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이로써 소원은 선미가 진아연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그게 아니면 두 사람은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였고 원한도 없는데 왜 소원을 저주했겠는가?밖에서 집주인 아주머니는 계속 분노 섞인 목소리로 불평하던 중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아! 귀신이다! 아아아악!”소원은 놀라서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비명 소리가 난 곳은 화장실이었다.화장실로 다가간 소원은 욕조 안에 누워 있는 선미를 발견했다.바닥에는 피가 흥건히 고여 있었고 선미의 손목에는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수도꼭지에서는 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고 욕조의 물은 그녀의 입술 바로 아래까지 차 있었다.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물이 코까지 차올라 익사할 뻔한 상황이었다.그 끔찍한 장면은 누구라도 충격과 공포를 느낄 만큼 끔찍했다.하지만 소원은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하며 경찰과 구급차를 불렀다.그리고 집주인 아주머니를 부축해 집 밖으로 나왔다.집 안은 발을 딛을 공간조차 없었기 때문에 소원은 아주머니를 계단에 앉혔다.아주머니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셔츠의 단추를 풀어준 뒤, 다시 화장실로 들어갔다.소원은 진아연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대어 숨을 확인했다.미약하나마 숨은 쉬고 있었다.이 상황을 보며 소원은 진아연 스스로 이런 일을 벌였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대체 누구의 원한을 샀길래 이렇게 잔인한 방식으로 목숨을 위협받아야 하는 걸까?’소원은 진아연을 미워했지만 이렇게 고통스럽게 한 사람을 다룬다고 해서 자신이 행복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악인이 법에 의해 처벌받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여겼다.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과 구급차가 현장에 도착했다.경찰은 현장을 조사했고 진아연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었다.소원과 집주인 아주머니는 경찰차를 타고 함께 경찰서로 가서 진술을 했다.한편, 미우 그룹.
육경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의 통창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그의 키가 큰 체구와 균형 잡힌 몸은 우뚝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서른 살이라는 남자의 가장 좋은 시기에 성숙함과 재력, 자신감까지 더해져 그의 매력은 한층 빛났다.그는 알고 있었다.이번 일을 계기로 자신에게 또 하나의 배은망덕하다는 낙인이 찍힐 거라는 것을.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왜냐하면 방씨 가문을 등지는 또 다른 한쪽에는 소원이 있었기 때문이다.남자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응접실에 들어섰다.그의 곧은 자세와 당당한 태도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응접실 안에서 방현수는 마치 하룻밤 사이에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그는 수염을 매만지며 말했다.“육 대표, 요즘은 당신 얼굴 보기가 이렇게나 힘들어졌네.”육경한은 그에게 다가가며 예의 바른 태도로 대답했다.“무슨 말씀을요. 대표님께서 찾아오시니 미우 그룹으로서는 정말 영광입니다. 시간이 되실 때 언제든 들러주시면 좋겠습니다.”방현수는 코웃음을 치며 천천히 말했다.“내가 여기 앉아 있는다고 해서 방씨 가문을 더 이상 건드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나? 우리 방씨 가문에는 고작 두 사람밖에 남지 않았는데... 둘 다 감옥에 들어갔어. 이봐, 육 대표. 도대체 내가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육경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그 말씀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제 성격 아시지 않습니까? 전 방씨 가문을 직접적으로 해칠 이유도, 의도도 없습니다.”하지만 방현수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높였다.“그 여자가 한 짓이나 네가 한 짓이나 뭐가 다르단 말이야? 자네의 묵인이 없었다면 그 여자가 감히 그런 일을 벌일 수 있었겠어? 자네는 그냥 작게라도 손을 써서 그 여자가 아무것도 못 하게 막아야 했어.”육경한은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여자가 그 영상을 경찰에 넘길 거라고는 정말 몰랐습니다.”이 말은 완
육경한의 얼굴이 단번에 싸늘해졌다.방현수의 말은 듣는 사람을 우롱하는 태도로 육경한을 바보로 본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다.오랜 시간 수많은 풍파를 겪으며 단단히 단련된 육경한은 누구보다도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그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제가 대표님을 존경하는 건 사실입니다. 대표님은 저희보다 먼저 사업을 시작하셨고 경험도 풍부하시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당시 대표님께서도 충분히 이익과 손실을 따져본 후 결정을 내리신 거 아닙니까? 솔직히 말씀드리죠. 그때 대표님께서 그 프로젝트를 받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제 죄책감을 조금 더 이용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프로젝트를 수락하신 순간, 저희 관계는 돈과 물건이 모두 깨끗이 정리된 상태가 된 겁니다. 방씨 가문이 그동안 가져간 이익은 투자 대비 몇 배, 아니 몇십 배나 됩니다. 지금 와서 이 일을 다시 꺼내 드시는 건 저로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계속해서 이 문제를 거론하신다면 저도 공공의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할 겁니다. 상관없거든요.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육경한의 긴 발언은 방현수를 완전히 말문 막히게 만들었다.그는 육경한이 평소 강단 있고 냉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침착한 목소리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모습은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하지만 방현수도 노련한 사람이었다.잠시 침묵을 지키다 이내 그는 표정을 비틀며 말을 꺼냈다.“육경한, 자네 말은 내가 잘못했다는 뜻인가? 내가 늙은 몸으로 직접 찾아왔는데 이렇게 매몰차게 나온다니... 나더러 죽으라는 건가?”목소리가 떨리는 채로 방현수는 지팡이를 바닥에 힘껏 내려쳤다.그가 마지막으로 꺼내 든 카드는 바로 죽음을 빌미로 하는 협박이었다.그는 자신의 나이를 무기로 삼아 상대방이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려고 했다.방씨 가문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비난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방현수는 한숨을 쉬며 속으로 생각했다.‘민기는 어찌 됐
‘이건 협박이잖아. 전부 육경한이 이미 써먹고 남긴 수작일 뿐이지.’그는 사람과 협박을 주고받으며 말싸움으로 시간을 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실질적인 상업 전쟁을 선호했고 필요하다면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말 몇 마디로 강한 척하며 겁을 주는 방식은 방현수의 스타일이 아니었다.역시나 방현수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그게 무슨 뜻이지? 나를 망하게 하려는 것도 모자라 내 자식들까지 망하게 하겠다는 건가?”‘돌봐주긴 뭘!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육경한 이 녀석, 결국 내 자식과 손주들을 협박하는 거나 다름없잖아? 성대하게 열어주겠다고? 파렴치한 놈, 칼로 사람의 가슴에 직접 찔러 넣는 것처럼 아픈 곳만 골라 찌르다니!’분노한 방현수는 가슴이 터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이놈의 자식, 내가 못할 줄 알아? 내 나이에 이 늙은 뼈다귀가 뭘 더 아끼겠어? 네가 그 여자 때문에 친척이고 뭐고 다 끊겠다면 난 자네 미우 그룹 대문 앞에서 죽어버리겠어! 정말 나한테 망신 주고 성대한 잔치를 벌일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정말 모든 사람들 눈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나?”하지만 육경한은 오히려 더욱 차분해지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한번 해보시죠. 다만 그 뒤로는 대표님의 사생자들조차 돌볼 수 없게 될까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방현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제가 알기로만 해도 서울에 세 명, 아르틴국과 리셀국에도 각각 있고 유학 중인 손주들도 세 명이 있더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 결혼하고 자식 낳는 걸 지켜보지도 못하고 떠나실 건가요?”그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아마 대표님께선 크게 후회하실 겁니다.”육경한이 자신의 속내를 샅샅이 조사해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사실에 방현수는 말을 잃었다.심지어 사생자들이 어디에 있는지까지 세세히 알고 있었다니, 육경한은 진작부터 이런 상황을 기다렸던 게 분명했다.“육경한! 자네 정말 그 미친 여자를 위해 우리 방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거야?”방현수는 분노에
경호원들은 방현수를 봐주지 않았다. 그의 고성이 사무실 문밖으로 쫓겨났고 아무리 소리쳐도 문 안으로는 들리지 않았다.그러나 방현수는 멈추지 않고 쉰 목소리로 계속 외쳤다.“육경한! 우리 민아한테 이렇게 할 수는 없어! 민아가 얼마나 자네를 좋아했는데, 저 여자가 우리 민아를 이렇게 망가뜨렸어! 자네가 민아한테 이럴 수는 없다고!”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결국 경호원들에게 부축받아 떠나야 했다. 하지만 복도 끝에서조차 희미하게 그의 외침이 들려왔다.경호원들은 그의 입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잘못하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일이 더 커질 우려가 있었다.대표 사무실이 있는 층에서는 직원들이 하나둘씩 수군대기 시작했다.“방 대표님 보니까 진짜 안쓰럽네. 육 대표님 너무 냉정하신 거 아니야?”“조용히 해. 누가 듣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육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큰일 난다고!”“뭐 어때, 자기가 한 행동인데 누가 뭐라 하면 안 돼? 난 차라리 이런 냉정한 사람 밑에서 일 안 한다. 잘리면 잘리는 거지.”“그러게. 방씨 가문이 예전에 위기에 처했을 때도 육 대표님이랑 미우 그룹을 버리지 않았잖아. 특히 민아 씨, 육 대표님한테 정말 헌신적이었는데 이렇게 끝나다니 진짜 불쌍하다.”“육 대표님 정말 과거는 전혀 생각도 안 하시는 분이네. 요즘 밖에서 우리 회사 소문 장난 아니야. 회사 대표는 냉혈한이라느니 직원들도 뭐 그리 좋은 사람들 아니라고 하더라.”직원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외부의 시선을 반영한 것이었다. 방씨 가문이 그동안 받았던 혜택에 대해서는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그 와중에 다른 의견도 있었다.“근데 그 민아 씨도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잖아? 내가 전에 본 영상에서는 육 대표님 친척인 그 명문가 딸 육연주랑 같이 여자 하나 때리는 장면 있던데.”“근데 민아 씨는 스트레스 받아서 그렇게 했다고 하던데? 그 여자가 자기한테 남자 뺏어갔다나 뭐라나.”“누가 알겠어. 우리는 내막을 잘 모르니까 괜
직원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누구도 일을 그만두겠다는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결국 미우 그룹의 복지와 대우는 업계에서 최상위급이었고 요즘같이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이런 직장을 떠나 다시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평소 같았으면 소종은 이미 마음이 흔들리는 이들을 정리했을 테지만 지금은 방씨 가문 문제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 시간이 없었다.그는 육경한의 사무실로 들어갔다.남자는 여전히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표정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지했고 그 모습은 단정하고 매력적이었다.“대표님, 방 대표님을 돌려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태도로 봐선 쉽게 물러나진 않을 것 같아요. 게다가 밖에 퍼진 소문들은 전부 방씨 가문에서 흘린 겁니다.”소종이 말했다.“알고 있어.”육경한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여전히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소종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고는 참다못해 물었다.“이대로 소문을 내버려 두실 겁니까?”“그럼 더 좋은 방법이라도 있나?”육경한은 눈을 살짝 들어 올렸고 소종은 답답한 듯 말했다.“하지만 그들이 퍼뜨린 말들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이대로 두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큽니다. 직원들조차 집중을 못 하고 일에 소홀해지고 있어요.”“그게 더 좋지 않나.”육경한은 담담히 말했다.소종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요?”육경한은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고 깨끗하고 길쭉한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냉정히 말했다.“이 기회를 이용해서 내부 팀을 정리할 수 있잖아. 방씨 가문과 관련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정리하라는 거야.”소종은 순간 모든 걸 이해했다.그동안 두 가문이 협력하며 방씨 가문과 연결된 사람이 그룹 내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일부는 방씨 가문으로부터 뇌물을 받거나 이익을 공유하며 내부에서 세력을 구축했을 수도 있었다.이번 기회에 그런 사람들을 모두 걸러내겠다는 것이었다.“그럼 방씨 가문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소종이 물었다.“내버려 두는 게 아니라 이미 기회를 줬어. 하지만
이 말에 육경한의 눈빛이 순간 날카로워졌지만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그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 없이 소종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소종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그래도 오랜 시간 육경한을 보좌하면서 익힌 대로 뭐든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이라 마음에 걸린 말은 모두 털어놓았다.“대표님, 어쨌든 전 사모님이 서현재 도련님과 대화하는 걸 봤습니다. 둘이 약속해서 만난 건 아닌 것 같지만 사모님께서 꽤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더군요.”소종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덧붙였다.“대표님, 사모님께 그렇게 잘해주는데 사모님은 그걸 조금도 몰라주는 것 같아요. 서 도련님하고는 아직도 뭔가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 같고 정말...”“그냥 우연히 만난 거겠지. 별일 아니야.”육경한이 차가운 목소리로 소종의 말을 단칼에 끊었다.소종은 육경한이 소원을 그렇게까지 옹호하는 모습에 놀랐다. 심지어 말조차 꺼내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나지막이 말했다.“그런 것 같습니다. 둘 사이에 특별히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행동은 없었어요. 다만 제 생각엔 사모님이 대표님과 결혼했으면 서현재 도련님과는 거리를 두는 게 맞지 않나 싶습니다.”특히 서현재는 다른 남자들과는 성격이 달랐다.그는 과거에 소원을 데리고 도망친 적이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는 애매한 감정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소원이 육경한과 결혼한 것도 어쩔 수 없이 강요당한 결과였지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었다.소종은 이런 상황이 결국 다시 불씨가 될까 걱정했다.“게다가 대표님, 제가 보기엔 서현재 도련님 상태가 좀 이상합니다.”소종은 말을 이어갔다.“사람을 보는 눈빛이 너무 차갑고 깊어요. 누구를 봐도 같은 표정이고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았습니다. 처음엔 사모님과 무슨 갈등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굴더군요. 마치 나무 인형 같았습니다.”“서씨 가문에서 전에 서현재 도련님이 기억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하지만 기억을 잃어도
이지애는 멍하니 말을 잇지 못했다.“뭐라고? 결혼을 했다고? 난 왜 몰랐지? 어떻게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가 있어? 그럼 민아 씨는?”해외여행을 갓 마치고 돌아온 이지애는 육경한과 방민아의 파혼 소식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여전히 방민아가 육경한의 운명적인 아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결국 지금까지 육경한 곁에는 방민아 외에 다른 여자가 없었고 방민아는 자신과 딸 육연주를 기쁘게 해주는 데 능했다.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잘 대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방민아가 육경한의 아내가 되는 건 그녀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그래서 자연스럽게 이지애는 방민아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우리 둘은 이제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육경한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결혼은 조촐하게 했어요. 그냥 혼인신고만 한 거라서 누구도 몰라요.”그는 더 이상 뭐든 요란하게 하고 싶어 하는 나이가 않았다. 무엇보다 설령 자신이 성대한 결혼식을 원한다고 해도 소원이 이를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었다.두 차례나 자멸했던 소원은 서울에서 이미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졌고 결혼식을 대대적으로 치르면 그녀의 과거와 관련된 소문들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게 분명했다.그건 마치 소원을 공개적으로 비난받는 위치에 세우는 일이나 다름없었다.하여 육경한은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지애는 기가 막힌 듯 말했다.“경한아, 그게 어떻게 작은 일이니? 네 결혼이 작은 일이라니 너무 대충하는 거 아니야? 민아 씨가 아니라도 아무 여자나 데려다가 결혼하면 안 되지 않니?”“아무 여자가 아니에요.”육경한은 단호히 잘라 말했다.“그 사람은 내가 오래 고민하고 선택한 사람이에요.”속으로는 심사숙고하고 내린 결정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걸 사촌 누나 이지애에게 설명할 마음은 없었다.그는 대화를 본론으로 돌렸다.“연주 문제는 이미 확인했어요. 연주가 폭행에 가담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약물을 쓴 건 아니었으니 처벌은 그렇게 무겁지 않을 거예요. 아마 15일
소종은 육경한이 아이들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교도소 안에 있을 때 육경한은 모든 사람들의 면회를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두 아이를 그리워했다.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타세요, 대표님.”소종이 침묵을 깨며 한마디 했다.육경한이 차에 타자 소종은 그동안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이 대표님 가족이 소 대표님을 잘 돌봐주셨어요. 아이들끼리도 친하게 지내고... 그리고 김 대표님도 하정이와 유진이를 돌봐주셨어요... 그리고 윤혜인 사모님의 오빠가 8년 전에 결혼했어요. 집 가정부의 딸 구지윤 씨와 결혼했어요. 처음에 할아버지가 많이 반대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잘살고 있어요. 딸을 낳으면서 할아버지도 받아들이셨고요... 아, 참. 예전에 소 대표님과 친하게 지냈던 여경 강민혜 씨, 기억하시죠? 소 대표님의 친동생이었더라고요. 당시 소 대표님의 어머니가 과다 출혈로 위독하셨을 때 그 여경이 수혈해 줬거든요. 소 대표님이 두 사람의 혈액형이 같은 것을 알고 친자 확인을 했더니 강민혜 씨가 정말 친동생이었어요. 예전에 도둑맞아 죽었다고 알려졌던 아이가 사실은 살아 있었던 거죠...”소종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호화로운 호텔 앞에 도착했다.그들이 육경한을 위해 환영회를 준비한 듯했다.육경한이 말했다.“이런 거 필요 없어. 어떤 모임에도 참석하고 싶지 않아. 그냥 쉬고 싶어.”그러자 소종이 바로 말했다.“안 돼요. 오늘 식사 자리에는 꼭 가야 해요.”황진수도 말했다.“맞아요, 육경한 씨. 소소하게 준비한 것이니 우리 마음을 봐서라도 꼭 참석해 주세요.”마지못해 차에서 내린 육경한은 호텔 룸에 들어간 순간 방 안에 익숙한 얼굴들이 가득한 것을 보았다.예쁜 소녀가 육경한에게 다가오더니 큰 눈을 깜빡이며 그를 보고 말했다.“그쪽이 우리 아빠예요?”자신과 닮은 소녀의 눈매에 육경한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육하정이 계속 말했다.“엄마가 말했어요. 아빠가 잘못을 저질러
법정 안, 판사가 선고했다.“피고인 육경한, 살인죄로... 그러나 피해자와의 갈등 관계를 고려하고 증인의 증언을 종합하여 본 법정은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육경한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합니다...”“대표님...”방금 깨어나서 법정에 나와 주석훈의 살인을 증언한 소종은 울며 육경한을 불렀다.뒤에 서서 두 달 된 아기를 안고 있는 소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시울은 이미 붉어져 있었다.아기의 얼굴과 핑크색 이불을 본 육경한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더 이상 소원에게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소종을 보며 한마디 했다.“잘 돌봐줘.”육경한이 누구를 말하는지 바로 캐치한 소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대표님, 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게요.”...15년 후, 구치소 대문 앞.15년 전 입소할 때 입었던 옷을 입고 나온 육경한은 여전히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교도소에 있는 동안 좋은 표현 덕분에 감형을 받아 조기 출소했다.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육경한의 얼굴에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더 깊고 온화한 매력을 내뿜었다.구치소 밖에서는 황진수와 소종이 육경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종이 가장 먼저 달려와 그를 붙잡고 울었다.“대표님, 고생 많으셨어요!”키가 185cm나 되는 팔이 하나뿐인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대표님...”옆에 있던 황진수가 육경한에게 담배를 건네자 담배를 받은 육경한은 깊게 빨아들인 뒤 말했다.“내 재봉 솜씨가 얼마나 좋은지 알아? 나중에 너희들에게 옷 한 벌 만들어 줄게.”소종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슬픈 분위기가 육경한의 한 마디에 완전히 뒤바뀌었다.소종이 울다가 웃으며 말했다.“대표님, 기대하고 있을게요.”육경한이 코웃음을 쳤다.“꺼져.”먼 곳을 바라본 육경한은 소종과 황진수 외에 그를 맞이하러 온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왠지 실망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도 들었다.그녀가 오지 않아도... 괜찮았다.결코 좋은
“두 번째 것을 선택할게.”죽어도 소원을 구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온 육경한이었기에 고민할 필요 없이 바로 대답했다.“허허, 육 대표가 소원을 정말 많이 아끼나 봐.”주석훈이 비꼬는 듯한 말투로 한마디 했다.“그럼 시작하지. 육 대표,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죽은 소녀의 이름이 뭔지 기억나?”자리에 얼어붙은 육경한은 주석훈이 혹시라도 소원을 해칠까 봐 바로 앞으로 두 걸음 걸었다. 덫이 ‘탁탁’ 소리를 내며 그의 두 다리를 집었고 이내 피가 철철 흘렀지만 육경한은 극심한 고통을 참으며 말했다.“몰라.”손에 칼을 움켜쥔 주석훈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 소녀의 이름은 수정이야. 육 대표처럼 모든 지원을 다 받아 치료받은 사람은 기억하지 못하겠지.”큰 고통 속에도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육경한이 입을 열었다.“그 교통사고에서 소녀가 죽은 것은 알고 있었어. 하지만 나는 우리 미우 그룹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 그 사람들이 나를 먼저 치료한 이유는 대동맥이 눌러져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소녀도 나와 똑같이 심각한 상태라는 것은 예상하지 못했어. 그래서 그 후에 소녀의 가족에게 위로금도 보냈어.”육경한의 책임은 아니었지만 소녀가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 그녀의 부모님이 통곡하는 모습을 본 육경한은 소종을 시켜 소녀의 가족에게 2억 원의 위로금을 전달했다.“내가 네 말을 믿을 것 같아?!”주석훈이 매서운 눈빛을 내뿜으며 큰소리로 외쳤다.“어쨌든 넌 살아남았고 나의 수정이는 떠났어. 아무도 우리 수정이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지!”주석훈은 더 이상 게임 따위 생각하지 않은 채 미친듯이 울부짖었다.“너희들은 모두 냉혈 인간들이야. 너희들은 죽어도 싸!”말을 마친 주석훈이 칼을 휘둘러 소원의 배를 찌르려 하자 육경한은 재빨리 몸을 날려 자신의 종아리로 칼을 막았다.소원을 밀어낸 육경한은 격렬한 고통을 참으며 주석훈과 맞붙었다.팔다리가 멀쩡한 주석훈은 이내 다리가 다친 육경한보다 우위를 점했다.도우려고 한 발 나선 소
이후 남자는 기분이 좋은 듯 소원의 입에 물린 천을 빼주며 말했다.“어떻게 여기에!”소원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바로 그녀를 계속 도와주던 주석훈이었다!자신에게 접근한 의도를 의심한 적은 있었지만 나중에 그의 여자친구가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과는 원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모든 사건의 배후가 주석훈이라니...“소원, 많이 놀랐지?”가면을 벗어 던진 주석훈은 마치 조금 전까지 잔인했던 사람이 본인이 아닌 듯 아주 평온해 보였다.“왜... 이렇게까지?”소원은 처음에 이해할 수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왼손을 사용해 물건을 잡는 모습을 보고 바로 깨달았다.“너였어!”소원은 확신에 찬 얼굴로 말했다.“상철 삼촌과 진아연을 죽인 사람이 너! 맞지?!”주석훈은 부인하지 않았고 그의 표정 또한 모든 걸 말해주듯 가볍게 웃으며 한마디 했다.“소원, 그 사람들은 죽어도 싼 사람들이야. 그들이 죽었으니 네가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사람들이 공모해서 네 아버지를 죽였잖아?”“아니야!”소원은 단호하게 부정했다.“그 사람들은 단순히 조종당한 희생양일 뿐이야. 내 아버지를 죽인 진짜 범인이 너였어?! 넌 그냥 증거 인멸을 한 거야!”“소원, 정말 똑똑하네?!”칭찬하듯 한마디 한 주석훈의 말에 소원은 분노로 가득 차올라 외쳤다.“왜! 아빠가 뭘 잘못했다고 죽인 건데?!”주석훈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원, 네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이유? 알고 싶어? 나와 육경한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기 때문이야.”“그게 아빠와 무슨 상관인데!”소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모른다고?”주석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진용이 죽어야만 너와 육경한의 갈등을 최대로 끌어올릴 수 있으니까. 넌 내 손에 있는 최고의 무기야. 넌 육경한에게 끔찍한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는 존재지. 지난 5년 동안, 본인만의 원칙이 있는 사람이 그것을 깨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얼마나 즐거운
소원이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남자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남자는 다친 전미영을 바닥에 내던졌다.전미영은 이미 의식을 잃었기에 지금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소원은 체념한 듯 보였지만 사실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몰래 반지 속의 장치를 작동시켰다.이내 독이 묻은 바늘로 남자의 팔을 찌르자 팔이 곧바로 마비되기 시작한 남자는 저린 감각이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망할 년! 감히 날 속여?”남자는 분노하며 소원을 발로 걷어찼다.배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소원은 엉덩이가 세게 걷어차인 바람에 비틀거리며 앞으로 두 걸음 나아갔다. 다행히 앞에 소파가 있었기에 소파를 붙잡고 간신히 몸의 균형을 잡은 뒤 있는 힘껏 소리쳤다.“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그러나 남자가 바로 달려와 순식간에 손수건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최면제의 효과가 서서히 올라옴과 동시에 문을 걷어차는 소리와 몇 발의 총성이 희미하게 울리는 것이 들렸다.소원은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제발 엄마를 구해 주세요...’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목걸이를 바닥으로 내던진 뒤 점점 의식을 잃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희미하게 정신을 차렸을 때는 운송 차 안인 듯한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었다.입안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었고 팔도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순간 소원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결국 구출되지 못하고 가면을 쓴 남자에게 끌려온 것이다.주위에 전미영이 보이지 않자 소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엄마가 같이 끌려오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엄마를 병원으로 옮겼을 거야. 그러면 희망이 있어.’하지만 엄마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없었기에 속으로 행운을 빌며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이 납치범에 대한 분노가 가슴 속 깊이 밀려왔다.‘이 사람은 대체 우리와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런 짓을 하는 거지?’덜컹거리며 달리는 차 안에 있는 소원은 졸음이 밀려왔다.임신 후기라서 그런지 이런 상황에서도 극심한 피
육경한이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바로 그 여경을 찾아서 같이 있도록 해. 이 사람이 아직도 쇼핑몰 안에 있을 가능성이 커. 나도 지금 돌아가는 중이야...”소원은 순간 숨을 죽인 채 눈도 깜빡이지 않고 앞을 응시했다.바로 앞에 하얀 여우 가면을 쓴 남자가 한 중년 여성을 붙잡고 있었다. 그 중년 여성이 바로 모두가 찾는 전미영이었다.육경한의 말대로 그녀의 엄마는 정말 여기에 있었다.육경한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계속 들렸지만 소원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미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가면을 쓴 이 교활한 남자는 사람을 쇼핑몰 안에 붙잡아둔 채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짜 번호판 차량은 아마도 이 남자가 미리 파놓은 함정일 것이다.그녀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심리를 읽을 줄 알았다.가면 쓴 남자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 하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소원에게 말을 하지 말고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내비쳤다.자기 엄마가 상대방의 손에 있기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전화를 끊은 후 가면을 쓴 남자가 그녀에게 한마디 지시했다.“전화기를 꺼서 이쪽으로 던져.”소원은 남자의 말대로 순순히 전화기를 끄고 그의 앞에 던진 후 한마디 물었다.“누구세요? 지금 뭘 원하는 거예요? 제발 우리 엄마만 해치지 마세요!”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킨 소원은 남자를 향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그녀의 유일한 요구는 상대방이 엄마를 해치지 않는 것이었다.말을 하면서도 소원은 몰래 주변을 관찰했다. 가면 쓴 신비로운 남자는 정말 교묘한 장소를 선택했다.화장실은 휴게실 제일 안 쪽에 있었고 뒤쪽에 있는 창문과 거리가 가까웠다.남자는 전미영을 붙잡고 입구 쪽에서 소원과 정면으로 마주서 있었다. 이렇게 하면 좁은 포위망이 형성되어 소원을 한 구석에 가둘 수 있다.남자는 손에 흉기를 들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한 권총 비슷한 것
강민혜는 즉시 지시를 내려 이 수상한 차량을 중점적으로 조사하라고 했다. 육경한이 회사의 위기 대응팀과 협력해 조사하라고 지시하자 그들은 이내 차량의 이동 경로를 찾아냈다.육경한은 즉시 차량을 출동시켜 추적하도록 했지만 소원더러는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현재 상대방의 목표가 소원의 엄마가 아니라 임신 중인 소원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게다가 차량 추격은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원 같은 임산부에게 위험할 수 있었다.소원은 육경한이 그녀를 배려하기 위해 이렇게 하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상황에서 소원이 차량 추격에 참여해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고 본인까지 안 좋은 상황이 되면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친 셈이 된다.육경한의 부탁에 소원은 그의 말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육경한은 회사 경호원 한 팀을 불러 상대방의 차량을 추적하도록 했다.쇼핑몰에 남아 있는 경호원들은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소원을 경호했다. 소원의 걱정을 덜기 위해 육경한도 차량 추적에 나섰다.이렇게 되어 여러 대의 차량이 CCTV에 찍힌 그 검은 차를 추적하기 시작했다.소원은 쇼핑몰의 휴게실에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불안감에 휩싸인 그녀는 심박 수가 빨라져 의사가 와서 경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그녀의 몸에도 해로울 뿐만 아니라 조산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소원이 걱정된 강민혜는 현장에 남아 그녀를 달랬고 소원이 화장실에 갈 때도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했다.소원은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를 했고 강민혜도 옆에서 그녀를 위로했다.“소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은 분명 괜찮을 거예요. 그렇게 큰 고비도 넘겼는데 별일 없을 거예요. 게다가 경찰과 육 대표님이 모두 추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마음 놓으세요.”본인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소원은 육경한이 좋은 소식을 전해주길 간절히 기다렸다. 하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자꾸 구역질이 났다.이때 소원의 전화가 울렸다.육경한이었다.당황한
육경한이 성큼성큼 다가가 물었다.“왜 그래, 장모님은?”“엄마가 사라졌어...”소원이 흐느끼는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충돌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전미영은 그녀 곁에 서 있었다.어떻게 된 일일까... 눈 깜짝할 사이에 전미영이 사라졌다.전미영은 걸을 수는 있지만 말을 잘하지 못하고 지능도 두세 살 아이 수준인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소원이 급히 찾으러 가려 하자 육경한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달랬다.“너무 급해 하지 마. 우선 CCTV를 보자. 경호원들에게 찾으라고 했어. 네가 걷는 것보다 경호원들이 움직이는 게 빨라.”소원도 육경한의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가짐으로 엄마를 찾아야 했다. 절대 당황하면 안 되었다.두 사람이 CCTV 실로 향했을 때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전미영이 사라지는 영상을 찾아냈다.영상을 보니 전미영은 처음에는 경호원의 뒤, 소원 곁에 서 있었다.하지만 조금 전 말싸움이 일어나면서 그 남자가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려 하자 경호원들은 소원이 다칠까 봐 소원과 육경한 주변으로 몰렸다.그러면서 전미영은 자연스럽게 뒤에 갔다. 원래대로라면 전미영도 별일 없어야 했지만 무슨 일인지 전미영이 갑자기 혼자 모퉁이 쪽으로 걸어갔다. 마치 그곳에 그녀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그녀는 불과 7, 8걸음 되는 모퉁이까지 아주 빠른 속도로 걸어갔다. 한편 소원과 육경한에게 정신이 팔린 경호원들은 전미영을 발견하지 못했고 전미영이 뒤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다음 모퉁이의 CCTV에는 소원이 비상구로 들어가는 것이 찍었다. 계단에 CCTV가 없었고 출구에 CCTV가 한 대 있었지만 전미영의 모습은 어디에도 찍히지 않았다. 즉 전미영이 출구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유일한 통로는 지하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지하 주차장 출구의 CCTV가 때마침 고장이 나 있어 전미영이 그 출구로 나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전미영이 실종된 지 불과 몇 분, 실종자를 한 시간 이내에
두 모자가 가식적으로 불쌍한 척하며 사람들의 동정을 구걸한 것을 안 사람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 모자를 제일 먼저 도우려고 나섰던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소원에게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눈이 어두웠네요.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는 정말 톡톡히 교육해야 해요. 얼마든지 책임을 물으세요.”주변 사람들도 같은 입장이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을 때 본인이 이런 말썽꾸러기 아이를 만난다면 분명 화가 날 것이다.게다가 이 모자는 역할 분담이 명확했다. 아들은 말썽을 부리고 엄마는 말재주를 발휘해 변명했다. 누구나 이런 일이 생긴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이다.구경꾼들이 흩어진 후 육경한은 두 모자의 앞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아이를 내려다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시킨 거야?”엄마가 아이를 뒤로 끌어당기며 말했다.“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요. 그냥 우리 애가 장난친 거예요.”여자는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왜 이래요... 우리가 그냥... 사과할게요... 아이고, 내가 왜 이렇게 불행한지...”그들은 완전히 피해자 행세를 하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자신이 피해자인 척하고 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다.조금 지친 소원이 육경한의 손을 잡아당기며 말했다.“됐어, 이만 가자.”“1분만 기다려.”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육경한은 아이를 뚫어지게 바라보더니 압박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누가 너를 시켰는지 말해. 안 그러면 바로 고소할 테니까.”겁이 많은 아이는 바로 오줌을 지리더니 이내 ‘와’하고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저씨가...”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육경한이 아이의 엄마를 밀어내고 차가운 눈빛으로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똑바로 말해!”“어떤 아저씨가... 아주머니와 부딪히면 엄마에게 100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엄마가 그러면 게임기를 사주겠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