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너 같은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안 돼...”유진은 육경한의 냉혹하고 왜곡된 교육 방식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소원은 만약 자신이 고생 끝에 낳은 아이가 육경한의 가르침을 받아 똑같이 냉정하고 무자비하며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이 된다면 차라리 아이를 처음부터 낳지 않는 편이 나았을 것이라 생각했다.“그 애를 놔줘, 제발 보내줘...”소원은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하지만 육경한은 그녀를 단숨에 들어 올리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소원, 이 아이를 낳은 목적이 뭐야? 날 망가뜨리고 복수하려는 거였어?”소원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왜 아이를 낳아놓고도 얌전히 있지 못하고 다른 남자를 끌어들여?”육경한의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왜 내 아이가 다른 남자를 아빠라 부르게 하냐고. 죽고 싶어?”남자는 손아귀에 힘을 더하며 소원의 옷깃을 거칠게 붙잡았고 그녀는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죽고 싶어. 정말 죽고 싶다고! 내 가족들은 다 죽었어. 나도 살아선 안 되는 사람이야!”울다 웃기를 반복하는 소원의 모습은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하지만 걔는 살아남았어. 너무 강하게 버텼어. 내 병투성이인 몸에서조차. 그 강인함이 나를 두렵게 만들 정도로.”소원이 말하는 사람은 바로 유진이였다.태어나던 과정이 극도로 위험했지만 이 아이는 살아남을 운명을 타고났다. 세상에 나올 운명이었던 것이다.“육경한, 난 너를 증오해.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왜 안 죽었어? 네가 죽으면 얼마나 좋아!”“이제 연기 그만둔 거야?”육경한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안타깝게도 난 살아 있어. 아주 잘 살아 있다고. 그리고 만약 죽더라도 널 데리고 갈 거야. 내가 널 이렇게 사랑하니까.”마지막 말을 뱉고 나서 육경한 스스로조차 어리둥절해졌다.그러고는 미친 듯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기 시작했다.“하하하하, 소원. 내가 널 사랑한다? 정말 웃기는군, 하하하...”188cm가 넘는 남자가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눈물
그러나 소원이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문을 나서면 그녀가 유진이를 완전히 포기했다는 걸 의미하는 것이었다.그 후로는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다.바닥에 주저앉은 그녀는 혈연관계 99.99%라는 보고서를 바라보며 비참하게 웃었다.‘정말 아이를 원해서 이러는 걸까? 아니, 내 생각대로라면 육경한은 유진이를 날 조종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로 보는 거야.’공허한 눈빛으로 곧 소원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육경한, 날 죽이려는 거지? 그렇지?”이 말에 육경한의 심장이 날카롭게 관통당하는 듯했다.가슴이 파이고 허물어지고 썩어가는 기분이었다.육경한이 소원에 대한 사랑은 진짜였고 증오도 진짜였다.하지만 소원은 왜 언제나 독을 품은 위험물처럼 자신에게 상처를 입혀야만 직성이 풀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는 그녀를 보며 차갑게 물었다.“너희 엄마 만나고 싶어?”죽어 있던 소원의 마음이 조금씩 되살아났다.그녀는 꼭두각시처럼 고개를 돌려 육경한을 쳐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내뱉었다.“지금...뭐라고 했어?”“너희 엄마 살아 있어.”육경한이 말했다.이 한마디에 소원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을 잃었다.마음속에 있던 충동심과 저항심 모두 사라졌다.아들, 그리고 그녀의 엄마까지, 육경한은 이제 모든 카드를 손에 쥐고 있었다.결국 소원은 마치 생명 없는 인형처럼 남자의 무릎에 안겼다.턱이 소원의 머리카락 위에 닿자 육경한은 그녀의 향기를 탐닉하듯 들이마셨다.“소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잖아. 그러니까 이렇게 고집부리지 마, 응?”육경한은 꼭두각시 같은 소원이라도 자신의 품 안에 있으면 차갑고 단단했던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 거칠게 입을 맞추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항복하길 바라는 거라면 항복할게. 그러니까 더는 도망치지 마. 앞으로도 절대 도망가지 마.”이것은 육경한의 첫 번째 항복이었다.비록 두 개의 강력한 카드를 쥐고 있었지만 그는 이 여자에게는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을
“엄마...”소원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는 주체할 수 없이 전미영에게 달려가 그녀를 끌어안았다.“엄마... 엄마...”소원은 흐느끼며 전미영을 부르고 또 불렀다.하지만 전미영은 마치 유리창 속에 전시된 마네킹처럼 아무 말도 없었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한참 울고 나서야 소원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녀는 전미영의 어깨를 흔들며 다급하게 물었다.“엄마, 엄마 왜 이래요? 저 기억 안 나세요? 저예요, 소원이요. 엄마 딸이잖아요. 저 소원이라고요.”마침내 전미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던 상태에서 입으로 희미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아... 아...”몇 차례 이상한 소리가 나오더니 그녀의 입가에서는 침까지 흘렀다.소원은 더 이상 전미영을 건드릴 수 없었고 그저 눈물범벅을 한 채 육경한을 돌아볼 뿐이었다.“우리 엄마 왜 이러시는 거야?”평소 강인했던 그녀, 특히 육경한 앞에서는 무너지지 않는 전사 같았던 그녀가 이렇게 산산조각난 것은 드문 일이었다.가슴이 찔리는 듯한 통증에 육경한의 몸이 움츠러들었다.잠시나마 소원을 안아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그러나 그는 결국 손을 뻗지 않았고 냉정하게 설명했다.“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적 같은 일이야...”짧은 한마디로 모든 상황이 정리됐다.전미영이 뇌사 상태에서 깨어난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때문에 그녀가 정상인처럼 돌아오기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했다.몇 년 전, 전미영은 계속 누워만 있었고 눈을 깜빡이는 것 외에는 어떤 움직임도 할 수 없었다.그 후 육경한은 최고의 의사를 찾아 전미영을 최고급 요양원으로 보냈고 끊임없는 노력 끝에 그녀는 손발을 조금 움직이고 앉을 수 있게 되었다.지금 TV를 보는 것도 요양원의 프로그램 중 하나였는데 뇌를 자극하기 위한 방법이었다.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전미영은 여전히 거의 아무 반응이 없었으니 말이다.엄마의 익숙한 얼굴을 보자 소원의 머릿속에는 과거에 봉인해 두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불이 켜진 부엌, 김이 모
다음 날, 소원은 피투성이가 된 소진용의 몸을 보았다.머리는 크게 함몰되어 있었고 한쪽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한때 소씨 가문의 영광을 상징했던 황금빛 응접실 바닥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아빠가 사라지자 그녀의 세상도 무너져 내렸다.소원은 엄마를 잘 보살피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지키지 못했다.지금 나타난 전미영의 존재는 그녀에게 족쇄나 다름없었다.그리고 이 족쇄는 소원을 완전히 속박했다.곧 육경한은 손을 뻗어 소원은 어깨를 다독였다.“아아아!!!”소원이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몸을 떨었다.그녀의 눈에 비친 육경한의 손은 피투성이였는데 그 피는 모두 소씨 가문의 사람들의 피였다.이러한 반응에 육경한은 공중에 손을 멈추며 표정이 어두워졌다.소원의 안에 깊이 새겨진 거부감과 혐오감이 선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그녀는 육경한을 증오하고 싫어했다.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가 자신을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지.“날 이렇게 두려워하면 곤란하지. 우린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할 텐데, 안 그래?”사악한 미소를 짓는 육경한의 눈빛에는 살벌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같이 살다니!”소원은 그 말을 듣고 어처구니가 없어 쓴웃음을 지었다.“원수끼리 같이 사는 거 본 적 있어? 육경한, 너 진짜 미쳤구나.”그러자 육경한은 냉랭하게 대꾸했다.“그동안 내가 미치지 않은 것도 기적인 거야.”하지만 육경한은 이미 내적으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소원이 떠난 이후, 그는 밤마다 뒤척이며 분노와 공포 속에 휩싸였다.그녀가 자신의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상상하면 외로움의 수렁에 빠져들었다.그 수렁은 끝도 없이 깊었고 육경한은 거기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머리가 곧 폭발할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소원은 언제든지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았다.“너무 비열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 넌 우리 엄마를 숨겼고 유진이를 찾아낸 것도 결국 날 협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거잖아.”“비열하다고?”육경한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그건 다 네가 이렇게 만든 거야
‘왜 소원이는 나한테 고개 한 번 숙이지 않는 걸까? 고개 한 번만 숙이면 되는 일인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내가 강압적으로 굴지 않으면 소원이는 영원히 나를 피해 홍수나 맹수를 대하듯 할 거야. 내가 비열해지지 않으면 소원이를 완전히 잃게 될 거라고.’육경한은 고개를 숙여 강하게 그녀와 입을 맞췄다.그에게 있어서는 ‘가지는 것’만 중요할 뿐, ‘소유’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소원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려 피했고 눈물은 둑이 터진 것처럼 멈출 줄 몰랐다.“육경한, 나 건드리지 마! 제발, 여기서 이러지 마...”이 장면은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듯했다.소진용이 입원해 있던 병실에서 육경한은 똑같은 짓을 저질렀다.부모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도리나 윤리는 무시한 채, 짐승 같은 본능만 남아있었다.떨고 있는 소원을 보며 육경한은 결국 마음을 단단히 먹지 못했다.그렇게 육경한은 소원을 한 손에 들어 올려 병실을 빠져나갔다.차에 오른 뒤, 소원은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계속 울었다.마치 평생의 눈물을 모두 쏟아내는 듯 보였다.‘유진이 하나라면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겠는데 이제 엄마까지...’이 두 사람은 소원에게 있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사람들이었다.‘하느님, 저에게 너무 가혹한 거 아니십니까?’소원은 결국 육경한에 의해 오아시스 아파트로 끌려왔다.다시 한번 그 감옥 같은 장소로 돌아오고 만 것이다.현관 앞에 선 그녀는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그러자 육경한이 뒤돌아보며 얇은 입술을 비틀어 비웃었다.“왜? 네가 살았던 곳이 더럽게 느껴져?”용기를 내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소원은 몇 번이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녀에게 이곳은 공포의 장소였다.한 발짝이라도 들어가면 그녀와 육경한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는 다시 얽히고설킬 것이었다.이내 소원은 문밖에 서서 육경한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이를 만나게 해줘. 유진이는 몸이 안 좋아.”“유진이 몸이 안 좋은 걸 네가 알긴 알았던 거야?
“내가 왜 도망쳐야 하지?”소원은 마치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들은 듯 크게 웃으며 말했다.“육경한, 네가 말해봐. 내가 왜 숨어야 하지?”육경한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사실 그는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소원은 원래부터 그의 것이었으니 말이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든 그건 변하지 않는 진리라 생각했다.“네가 날 그렇게 몰아붙이지 않았다면 내가 너를 피해 숨어야 했을까?”소원은 육경한을 바라보며 단호한 눈빛으로 물었다.“솔직히 말해봐. 네가 유진이를 진심으로 원하는 이유가 그 아이가 네 아들이라는 부성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인지.”그러자 주먹을 꽉 쥔 채 육경한이 입을 다물었다.그는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 그저 소원을 붙잡아 두고 싶었을 뿐이었다.이에 소원은 피식 차갑게 웃었다.“너도 알고 있잖아. 난 아이의 양육권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야. 증거를 모아서 끝까지 너랑 싸울 거라고.”곧 육경한은 비웃음을 터뜨렸다.“나랑 법정에서 또 싸우겠다고? 정말 제 분수를 모르는군.”소원은 차분히 말했다.“인생은 끊임없는 싸움의 연속이야. 육경한, 네가 돌아와서 만들어낸 성과를 기억하니? 하지만 지금은? 그때랑 비교할 수 있겠어? 지금 이 모습, 이건 다 내 성과야!”소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기에 육경한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유민 그룹은 이미 그녀의 두 차례 통합 전략으로 인해 상위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하여 육경한은 방씨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다시 부활할 계획이었다.사실 지금도 육경한은 여전히 수천억대의 자산을 가진 남자였고 소원 같은 여자를 제압하는 것은 개미 한 마리를 짓밟는 것만큼 쉬운 일이었다.소원은 그의 경멸 어린 눈빛에서 이런 생각을 읽어냈다.그러나 그녀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낙타가 굶어 죽어도 말보다 크다지만 네가 지금 나보다 백 배, 천 배 강하다고 해도 난 널 두려워하지 않아. 맨발은 신발 신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 못 들어봤
문 앞을 지키던 사람은 잠시 멍해졌다. 평소엔 말 한마디 하지 않던 서현재에게 이렇게 날카로운 면이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그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얌전히 사과했다.“죄송합니다.”이내 서현재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소원의 손을 잡고 병실로 향했다. 문을 지키던 사람들은 한마디도 못 하고 침묵을 지켰다.서씨 가문에서는 관계없는 사람이 면회를 오는 것을 금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서현재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는 규칙도 있었다. 그의 기분은 아주 중요했다.병실에 들어서며 서현재는 소원의 손을 꼭 잡은 채 가장 먼저 이렇게 물었다.“밥은 잘 챙겨 먹었어요?”그는 곧 소원의 손목을 만지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살이 좀 빠진 것 같아요.”‘내가 겨우 살을 찌워놨는데...’그러자 소원의 눈에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서현재가 신경 쓰는 부분은 항상 남들과는 달랐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몸 상태만 걱정했다.그리고 오직 그만이 그녀의 감정을 즉각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먹었어.”거짓말이었다.그녀가 먹은 것은 육경한이 억지로 먹인 것과, 쓰러지지 않아야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애써 자신을 밀어붙이며 조금씩 삼킨 음식뿐이었다.“걱정하지 마요. 유진이랑 어머님 일은 우리 같이 해결해요.”소원은 순간 멍해졌다. 서현재가 이렇게 빨리 유진이와 전미영의 일을 알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니 말이다.서씨 가문에서도 서현재는 다른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있었는데 특히 서진태 곁의 비서가 그의 은혜를 입었던 적이 있었다.과거 그 비서의 아이가 희귀병에 걸렸을 때, 오랫동안 병을 고치지 못했지만 그는 이문제를 드러내지 않았다.서진태의 월급과 보너스에 의존해 아이의 병을 치료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어느 날, 서현재는 비서가 통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물었다.그러고는 한의학 의사를 소개해 아이를 데리고 가보라고 했다.그렇게 마침내 비서의 아이는 병이 나았고 그는 서현재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서씨 가문의 도련님들
‘괜찮아. 내가 대답만 잘해주면 돼.’곧 소원은 손을 들어 서현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버리지 않을게. 우리 앞으로 잘 될 거야.”...서씨 가문 별장.육경한은 소파에 앉아 한쪽 다리를 탁자 위로 뻗고 있었다. 자세가 매우 오만했다.“어르신, 그때 저한테 뭐라고 하셨죠?”목소리에는 짜증이 가득했다.그는 과거 서씨 가문의 상황을 알았기에 서진태에게 한 번의 기회를 줬었다.그러자 서진태는 감격하며 무릎을 꿇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서현재를 소원과 떼어놓겠다고 약속했었다.하지만 육경한이 선처를 베푼 것은 절대 선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그는 서현재가 죽어 소원의 마음속 영원한 그리움이 되는 것보다는 둘이 서로 등을 돌리며 미워하게 되는 것을 더 보고 싶었다.서로 사랑했던 사람들이 미움으로 가득 찬 관계가 되는 것, 그것이 육경한이 바라는 장면이었다.그는 절대 서현재가 소원의 마음속 주홍글씨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서진태는 육경한의 오만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애써 참고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현재를 잘 감시하라고 제가 사람도 붙였지만 소원 씨가 찾아오는 건 제가 막을 수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직접 키운 아이가 아니라 현재랑 우리도 서먹한 사이인데 제가 너무 강하게 나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이 말은 육경한에게 변명으로 들렸다.서진태는 이제 이 상황에서 발을 빼고 싶어 했고 다리를 건너면 다리를 끊어버리려는 속셈이었다.사실 그는 서현재가 어떤 여자를 좋아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서씨 가문의 핏줄만 이어갈 수 있다면 말이다.서현재에게 젊고 예쁜 비서를 붙여 몇 번 유혹하게 하면 마음이 돌려질 거라 생각했다.서진태의 목적은 단 하나, 서씨 가문의 후손을 늘리는 것이었고 서현재는 그저 핏줄을 잇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그러나 지금 서씨 가문에 남은 도구는 서현재 하나뿐이었다.‘우리 서씨 가문의 그 많은 재산이 다른 데로 새게 할 수는 없지.’하여 서진태는 서현재와 관련된 일
컵을 받아 물을 마신 육경한은 이내 몸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컵을 내려놓자 소원이 말했다.“그럼 밥 먹어. 난 갈게.”육경한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소원은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나가려 했다.문 앞까지 왔을 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육경한이 침대에서 떨어졌다.키가 188cm인 남자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바닥에 넘어져 있으니 매우 허약해 보였다.소원은 급히 가서 육경한을 부축했다.“일어날 수 있겠어?”소원은 갑자기 허약해진 육경한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침대에 있던 사람이 왜 갑자기 바닥에 떨어지냐 말이다.이내 육경한이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아파.”이 말을 들은 소원은 순간 육경한이 꾀병을 부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색을 보면 연기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상처 난 등이 촉촉한 것을 보니 아마도 상처가 다시 터진 것 같았다.황산에 의한 상처는 피가 아니라 고름이 나오기에 소원은 상처가 터졌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날 육경한이 망설임 없이 뛰어든 것을 생각하니 차마 모른 척할 수는 없었기에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힘주지 마. 날 잡아. 조심하고.”소원의 팔에 기댄 육경한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오랜만에 가까워진 두 사람의 거리에 육경한은 심장이 졸깃했다. 소원의 몸에서는 여전히 은은한 향기가 났다. 그 냄새는 마치 약처럼 아픔을 잊게 했다.육경한을 다시 침대에 눕힌 소원은 침대 높이를 조절해 그가 더 편안하게 앉을 수 있게 했다.모든 것을 마친 후 소원이 돌아서자 육경한은 그녀가 또 떠날까 봐 급히 말했다.“소원아, 나 배고파.”순간 소원은 조금 전 넘어진 것이 진짜로 고의는 아니었는지 의심하게 되었다. 조금 전 넘어지면서 손을 다쳐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간병인은 어디 갔어?”“간병인 없어. 평소에 황진수가 도와줘.”육경한의 말에 소원이 짜증 내며 한마디 했다.“왜 간병인을 안
연기가 제법인 황진수는 진짜로 배가 아픈 척했고 심지어 자신의 혀를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렸으며 이마에 땀까지 흘렸다.순간 멍해진 소원이 한마디 물었다.“왜 그래요? 의사를 부를까요?”황진수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아니요. 화장실 갔다 오면 될 것 같아요. 이것 좀...”그는 손에 들고 있던 죽을 높이 들었다. 혹시라도 소원이 받지 않을까 봐 일부러 그녀의 손에 쥐여 주기까지 했다.“소원 씨, 이것 좀 부탁드릴게요. 육 대표님에게 전해주세요. 의사가 염증이 생길 수 있으니 지금 차가운 걸 먹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황진수는 말을 마친 뒤 재빨리 사라졌다.죽을 들고 좌우를 둘러보던 소원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육경한이 있는 VIP층으로 향했다.문 앞에 도착한 소원은 죽을 경호원에게 넘겨주려고 했지만 육경한 병실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사실 조금 전 황진수는 그녀와 육 대표를 만나게 하기 위해 경호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철수하라고 했다.소원이 문을 두드리자 방안에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소원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고서를 보고 있는 육경한은 소원이 들어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는 황진수인 줄 알고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그냥 거기에 둬.”테이블 위에 놓여진 손도 대지 않은 음식과 손에 든 죽을 번갈아 본 소원은 육경한이 갑자기 죽을 먹고 싶어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다만 이 죽 가게가...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어제 샀던 죽 가게와 이름이 비슷한 것 같았다.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손에 든 죽을 놓은 소원은 육경한이 여전히 그녀를 알아채지 못하자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이때 육경한이 고개를 들더니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소원?”소원이 걸음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황 비서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나더러 대신 갖다 주라고 했어.”육경한이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나를 보러 온 줄 알았네.”약간 서운함이 담긴 말투에 소원은 이왕 온 김에 몇 마디 안부는 주고받아야
사생아가 많은 방현수는 여자아이인 방민아 하나쯤은 포기할 수 있었다.그리고 방민기는 이미 판결이 났고 방씨 가문이 아무리 인맥이 넓다고 해도 여론이 너무 떠들썩했기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그 일 이후, 방현수의 정신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가장 기대하던 두 아이가 동시에 문제를 일으켰으니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었다.방민아는 아마도 방현수의 비밀을 쥐고 있기 때문에 방현수가 돈과 힘을 들여 그녀를 빼내려고 하는 것이다.자신의 추측을 말한 황진수가 한마디 보탰다.“방민아 씨가 역시 보통내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방현수의 마음도 바꾸고요.”육경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방민아가 나오면 소원은 그녀의 첫 번째 타겟이 될 것이다. 여자들 사이의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 욱경한은 잘 알고 있었다.육경한이 황진수에게 말했다.“방씨 가문의 움직임을 주시해 봐. 그리고 방민아가 나오면 반드시 24시간 내내 감시하여 소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황진수가 말했다.“알겠습니다.”육경한이 또 물었다.“진아연 쪽은 어때, 소식이 있어?”진아연이 또 도망쳤다. 지난번 병원에서 목숨을 건진 후 몸이 나아지자 간호사가 한눈을 판 사이 몰래 빠져나갔다.아마도 육경한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그래서 육경한이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까 걱정되어 기회를 잡아 도망친 것이다.하지만 소원의 아버지 일도 그녀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육경한은 그녀에게 확실히 물어봐야 했다.이때 황진수가 말했다.“아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서울을 벗어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각 출입국 사무소에 다 물어봤지만 아직 다른 데로 갔다는 소식은 없습니다.”육경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긴장을 놓치면 안 돼. 진아연이 분명 무언가를 알고 있을 거야.”황진수가 알겠다고 하자 육경한도 조금 지쳤는지 한마디 했다.“이만 나가 봐.”황진수는 집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요리를 육경한이 한 입도 먹지 않은 것을 보고 한마디 말했다.“육 대표님, 입에 맞지 않아서 안
병실 밖에 있던 황진수는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감정적 가치라니? 대체 무슨 말인가! 이지애는 가스라이팅에 정말 능숙했다.육경한에게서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한다면 그녀가 과연 육경한을 걱정하는 척하며 그런 감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었을까?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도 만족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탐욕스러워지다니...솔직히 말해서 먼 친척이 가까운 이웃만 못 한다는 게 틀린 말은 아니다.황진수가 소리 지르는 이지애를 끌어내어 경호원들에게 넘기자 이지애가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감히 나를 이렇게 대하다니! 내가 육경한의 누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오늘 나를 무례하게 대한 일, 나중에 분명 후회할 때가 있을 거야.”황진수는 냉정하게 말했다.“여사님, 더 이상 자신을 육 대표의 누나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저 사촌 누나일 뿐인데 왜 항상 ‘사촌’이라는 말을 잊으시는 건가요? 밖에서 본인을 육 대표의 친누나라고 말하며 사기를 치다 보니 입에 붙어서 못 고치는 건가요?”황진수는 이지애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육경한의 누나라는 명목으로 많은 회사 대표들에게서 이익을 취했다. 또 육경한과도 자주 만났기에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를 진짜로 육 대표의 누나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법, 이지애는 결국 자업자득의 꼴이 되었다.이지애가 분노하며 말했다.“너 같은 놈은 평생 이 꼴로 살 거야. 개는 사람을 구분하지 못해. 잘 들어, 경한이는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나를 누나로 생각할 거야. 그때면 널 첫 번째로 해고할 테니 두고 봐!”“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황진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너 정말!”이제 육경한이 그녀의 뒤를 봐주지 않으니 황진수도 당당하게 억지를 부리는 이지애를 무시하며 바로 경호원들에게 말했다.“데려가세요. 앞으로 육 대표 주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세요.”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지애는 욕을 하면서 문을 잡고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그런데 이때 누군가가 찾아와 이지애를 보더니 통
하지만 쉽게 인정할 이지애가 아니었다. 그녀는 도리어 육경한을 비난하며 말했다.“경한아, 우리 모녀를 돕지 않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지만 나를 모함하면 안 되지. 나는 너희 집에 빚진 게 없어. 네가 그 여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아. 그래서 그 여자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 여자를 위해 우리 연주를 희생시키면 안 돼. 너도 어릴 때부터 연주를 봐왔었잖니? 그런데 진짜로 감옥에 들어가 고통받는 것을 지켜볼 거야?”이지애는 말을 빙빙 돌리며 돈을 빌린 것을 일절 말하지 않았다. 다시 육경한의 탓을 하는 이지애는 교활하기 짝이 없었다.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사실 이 돈은 조사하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조사할 수 있어요. 그때 개업한 미용원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우리 엄마 돈으로 한 거잖아요. 누나, 내가 정말로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육경한의 말에 이지애는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어 일부러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경한아, 그때 미용원을 연 것은 네 엄마의 뜻이었어. 나는 단지 네 엄마를 도운 것뿐이야. 나중에 네 엄마가 돌아가시고 너도 큰 충격을 받았잖아. 그때 미용원도 파산 직전이었어. 그때는 네가 이 난장판을 처리할 겨를이 없어서 내가 대신 맡은 거야. 나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한 것인데 너는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니?”이지애의 임기응변 능력은 진짜로 일반인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았다.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그녀의 이런 말에 속았을지 몰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겪은 육경한은 이지애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사람은 역시 욕심에 눈이 먼 동물이었다.이지애의 현재 모습은 정말 탐욕스러웠다.하지만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고 있는 이지애는 육경한의 도움이 있어야만 육연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억울한 얼굴로 계속 말했다.“경한아, 미용원을 돌려받고 싶으면 바로 줄게. 내가 여러 해 동안 운영해 왔지만 사실 다 네 엄마를 대신해서 한 거야
“경한아, 누나가 예전에 너에게 얼마나 잘해줬는지 잊은 것은 아니지? 그때 너에게 돈을 준 것 때문에 네 형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 너는 몰라. 그 자식이 죽을 때까지도 내가 친정에 돈을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어...”이지애가 끊임없이 과거의 일들을 들먹였지만 육경한은 그런 그녀가 단지 시끄럽다고 느껴졌다.원래부터 가족에 대한 정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고 게다가 이지애가 그때 돈을 준 이유는 그가 불쌍해서가 아니었다.육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누나, 그동안 내가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요. 그때 나에게 몇십만 원을 준 이유가 우리 엄마에게서 4억원을 빌렸기 때문에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후 누나는 나를 위로한다는 핑계로 우리 집에 와서 차용증을 찾아내 파기했잖아요.”육경한이 이 사실을 알고 있을 줄 몰랐던 이지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마음속은 아주 불안했지만 절대 인정할 수 없었기에 급히 부인하며 말했다.“경한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엄마의 돈을 빌렸다고 그래? 네가 오해하고 있나 본데 내가 비록 잘 살지는 못하지만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절대 아니야!”이 말을 들은 육경한은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육경한이 침묵하자 이지애는 육경한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생각해 웃으며 말했다.“경한아, 넌 생각이 너무 많아. 그런 말은 어디서 들은 거야? 보아하니 일부러 우리 사촌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사람이 말한 것인가 본데 나는 너희 집 돈을 빌리고 안 갚은 적이 없어.”육경한이 말했다.“누나,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육경한은 이지애에 대한 좋은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다.얼마 전, 집안 하인이 청소를 하면서 다이어리를 하나 발견했다. 펼쳐보니 그 안에 육경한의 엄마가 쓴 채무 리스트가 있었고 그중에 이지애가 육씨 가문에서 4억원을 빌린 내역이 명확히 적혀 있었다. 그것은 육경한의 엄마가 겨우 모은 돈을 빌려준 것이었다.그리고 날짜도 기록되어 있었다. 날짜를 확인해 보니 이지애가 미용원에 투자하여 금방 개
이 말은 육경한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차라리 묻지 말걸... 주석훈은 대체 무슨 친구란 말인가? 단지 몇 번 만난 사이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새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람이 되었단 말인가?육경한의 표정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한 황진수는 급히 말했다.“병원 간호사에게 물어봤더니 소원 씨가 병문안을 잠깐 왔다가 저녁에 바로 갔대요.”무덤덤한 표정을 지은 육경한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황진수도 더 이상 이것과 관련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업무 보고를 계속했다. 그런데 보고를 하던 중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육경한의 사촌 누나 이지애가 병문안을 온 것이다.“경한아, 우리 연주 좀 살려줘!”이지애는 육경한과 다툰 적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오자마자 울부짖었다.육경한이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지애는 육경한에게 말을 할 기회도 주지 않고 울부짖었다.“경한아, 오늘 아침에 연주를 보러 갔는데 애가 살이 쏙 빠졌어. 얼굴도 초췌해지고 말이야. 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몸에는 상처투성이야. 안 그래도 괴롭힘을 당한 애인데 또 그런 곳에 들어갔으니 버틸 수 있겠니...”이지애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나온 눈물은 진심인 것 같았다.이번에는 육연주의 잘못은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육연주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만 말하며 육경한의 동정을 얻으려고 했다.이 일로 육경한도 다쳤기 때문에 오늘 아침 이지애는 육연주를 욕하기도 했다. 건드려야 할 사람은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삼촌을 건드려 병원 신세 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가족에게 폐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 때문에 경찰서까지 끌려갔다.실제 피해자가 육경한이라면 육경한이 합의서를 써주면 육연주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육연주는 감옥에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소원의 진술 때문에 육연주는 고의 상해죄로 기소되었다.이 죄는 아주 무거운 죄로 변호사와 상담 후 최소 감옥에 몇 년은 있어야 하며 길면 5년에서 10년까지도 있을 수 있
소원은 순간 멍해졌다.이전까지 유진은 이 내용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 몇 달 더 있다가 유진에게 말하려고 했는데 유진은 이미 알고 있었다.소원이 동화책을 내려놓고 물었다.“유진아, 엄마가 임신한 거 누가 말해줬어?”유진이 말했다.“아줌마가 말해줬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엄마를 찾으러 가려고 했는데 엄마가 임신했으니 방해하면 안 된다고 아줌마가 그랬어요.”유진이 또 물었다.“임신했다는 것은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겼다는 거예요?”소원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엄마 배 안에 또 아기가 생긴 거야.”“너무 좋아요.”그녀의 임신을 바로 받아들인 유진은 얼굴에 기쁨이 가득했다.소원은 유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엄마는 3개월이 지난 후 너에게 말하려고 했어. 임신한 지 세 달이 되어야 말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르신들의 풍습이 있거든. 그래야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어.”유진이 말했다.“괜찮아요. 엄마, 아기는 분명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예요.”소원이 미소를 지었다.“좋아?”“당연히 좋죠. 항상 같이 놀고 싶은 동생이 필요했는데... 동생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엄마는 너만 행복하면 돼.”소원이 유진을 꼭 안아주자 유진이 말했다.“엄마, 남동생이든 여동생이든 상관없어요. 엄마가 낳은 아기라면 다 좋아요. 나중에 내가 없어도 동생이 엄마와 같이 있을 테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할 수 있어요.”너무나 순수한 유진의 말에 마음이 아픈 소원은 눈시울이 붉어졌다.“유진아, 네가 왜 없어? 너는 항상 건강하게 있을 거야. 엄마 옆에서 이 아기를 지켜줘야지.”유진이 어른스럽게 말했다.“알겠어요. 엄마, 아기를 꼭 잘 돌볼게요.”유진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소원은 녀석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야 옆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유진에게 약을 먹일 수 있지만 서현재의 연구 결과로 보면 그 약이 유진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그저 시도해볼 수밖에 없었다.소원은 유진에게 약을
“네.”주석훈은 전화를 끊고 직원증의 사진을 꺼내 그 위에 있는 예쁜 여자를 깊게 바라보았다.그러고는 사진을 얼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수정아, 봤지? 하늘도 나를 도와주는 것 같아. 아니면 네가 나를 돕는 거야?”사진 속의 여자를 보는 주석훈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렸고 눈에는 그리움이 가득했다.이때 주석훈의 가방 안에 있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렸다.번호를 확인한 주석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로 공포에 질린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제트 님, 제발 도와주세요...”주석훈이 물었다.“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되지?”상대방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저... 외국으로 보내 주세요.”“하하...”주석훈의 웃음소리가 갑자기 사악해졌다.“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저... 저는 제트 님의 비밀을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트 님의 뒷조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알잖아요. 내가 잡히면 이 비밀을 지킬 수 없을 거예요.”상대방의 떨리는 목소리에 주석훈이 한마디 했다..“많이 똑똑해졌네?”“나도 어쩔 수 없으니까요. 제트 님, 돈만 주시면 멀리 외국으로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게요.”몇 초 동안 생각에 잠긴 주석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얼마면 되는데?”“5천만 원이요.”전화기 너머로 금액을 말한 여자는 혹시라도 주석훈이 화낼까 봐 설명을 덧붙였다.“적어도 5천만 원은 있어야 외국에서 살 수 있어요.”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이틀 동안은 시간이 없어. 모레 밤에 항구에서 보자.”“아니요, 제트 님!”상대방은 경계하며 말했다.“우린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제트 님이 돈을 그곳에 두시면 제가 가서 가져갈게요.”주석훈이 코웃음을 친 뒤 말했다.“알았어. 항구에 둘게, 시간은 다시 알려주지.”“지금은 안 될까요...”전화기 너머의 여자는 매우 급한 듯했다.“나와 흥정할 생각하지 마!”주석훈이 싸늘한 목소리로 경고했다.“알겠어요...”전화가 끊